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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비제이 고빈다라잔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 교수: ‘3박스 솔루션’

획기적 혁신은 기술 아닌 비즈니스 모델
작게 시작하되 크게 생각하며 키워가라

배미정 | 360호 (2023년 0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전략은 현재가 아닌 미래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3박스 솔루션을 바탕으로 현재 효율성을 위해 경쟁하는 프로젝트(박스1)뿐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경쟁하는 프로젝트(박스2와 박스3)에도 투자해야 한다. 이를 위해 비선형적 변화와 전략적 의도 등을 담은 전략 아키텍처를 한 장으로 정리해 전사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또한 박스1과 박스3의 지배적인 논리와 역량 등이 상충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이의 균형을 이루는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제이 고빈다라잔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 교수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국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의 국제 비즈니스 담당 교수이자 동 대학원의 글로벌 리더십 센터 설립이사다. GE에서 최고혁신관리자를 지내며 GE 최초의 회사 소속 교수로 활동했다. GE의 자기 파괴 전략으로 잘 알려진 ‘리버스 이노베이션(Reverse Innovation)’ 모델을 제시해 혁신에 관한 선진국 중심의 생각을 180도 바꿔놓았다. 2005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늙은 코끼리를 구하는 10가지 방법』뿐 아니라 『퍼펙트 이노베이션』 『리버스 이노베이션』 등의 책을 동료인 크리스 트림블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 교수와 공동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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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혁신이란 주제에 열정을 갖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하겠다. 인도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나는 어려서부터 많은 문제에 봉착했고 자원(돈)이 부족했기에 혁신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혁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준 스승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반에서 1등을 해서 95점짜리 성적표를 들고 가면 1등에 안주하지 말라며 5점을 더 맞는 데 집중하라고 했다. 등수보다는 나의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할아버지는 내게 경쟁에 골몰하지 말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집중하라고 가르쳤다. 성과를 압박하기보다는 늘 꿈을 크게 꾸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런 가르침 덕분에 나는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다트머스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연구하고, 실리콘밸리 인큐베이터의 파트너로 일하면서 ‘3박스 솔루션(3 Box-Solutions)’이라는 혁신 프레임워크를 완성할 수 있었다.

혁신을 이끄는 3박스 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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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여러분이 속한 조직이 실행 중인 프로젝트를 3개의 박스에 나눠 담는다고 가정해봐라. 박스1은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을 관리하면서 기존의 운영 방식을 따르면서 최적화하는 프로젝트가 해당된다. GM의 경우 내연기관차의 비즈니스 모델을 최적화하는 프로젝트가 여기에 해당된다. 박스2는 변화된 환경에 맞지 않고 혁신에 걸림돌이 될 만한 기존의 관행, 아이디어, 태도를 과감하게 버리는 일이다. 박스3은 미래를 창조하는 프로젝트가 해당된다. 많은 조직이 박스1에만 과도하게 집중하는 전략을 펼친다. 물론 이 부분도 중요하지만 잠재력을 실현하는 진정한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박스2와 3에 투자해야 한다. 모든 조직의 현재 전략은 2030년에 시장 리더가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즉, 오늘날 전략의 내용은 2030년에 뭘 할지가 아니라 2030년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지금 박스3에 해당되는 어떤 프로젝트를 실행하는지가 돼야 한다. 예컨대 2030년이 되면 모빌리티 산업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며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공유자동차가 대세가 될 것이다. GM이 진정한 잠재력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2030년에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현재 어떤 활동을 통해 그런 미래를 만들어낼지를 전략으로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박스1은 효율성을 위한 경쟁, 박스2와 3은 미래를 위한 경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를 위한 경쟁과 미래를 위한 경쟁 모두 중요하기에 현재를 잘 관리하는 동시에 어떻게 미래를 만드는지가 기업의 전략적 도전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즉, 기업은 2022년 현재 성과를 창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시에 2030년의 미래 가능성을 실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말로는 쉽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왜냐하면 박스1에 투입되는 역량과 인력이 박스3에 필요한 그것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GM의 경우 내연기관차, 즉 박스1의 핵심 비즈니스와 동시에 자율주행차를 발전시키는 계획을 추진해야 하는데 기존 자동차와 자율주행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역량과 프로세스는 완전히 다르다.

또 다른 예로, 1905년에 미국 보스턴에서 영국 런던으로 이동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배를 타는 것 하나뿐이다. 배를 타고 가려면 45일이 걸린다. 그런데 더 빨리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주를 모아 배를 연구하고 엔진 속도를 높이고 날씨 상태를 연구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시스템하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박스1에 해당하는 사고방식이다. 지난 100년간 이런 노력 끝에 이제 배를 타고 가는 시간이 5일까지로 크게 단축됐다. 그런데 1905년 라이트 형제는 근본적으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배가 아니라 날아갈 순 없을까? 그 성과로 현재 배로 5일이 걸리는 거리를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수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진정한 혁신을 이루기 위해 기업은 박스1의 성과를 최적화하는 동시에 비행기를 만드는 것과 같은 획기적인 실험을 해야 한다. 배의 성능을 최적화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자원은 비행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그것과 완전히 다르기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현재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미래에 할 일을 지금부터 생각해야 한다.

비고객을 고객으로 전환하라

박스1의 사고방식은 박스2, 3과 완전히 다르다. 박스1의 프로젝트는 늘 확실한 신호, 즉 현재 몸담고 있는 산업의 선형적 혁신에 대응해 비즈니스 모델을 점진적으로 개선시킨다. 반면 박스2와 3의 프로젝트는 늘 약한 신호, 비선형적 변화에 대응해 획기적인 혁신을 실험한다. 이런 비선형적인 변화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인터넷이다. 업계의 비선형적 변화는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는 계기가 된다. 여러분의 업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선형적 변화는 무엇인가? 기술뿐 아니라 고객과의 단절이 비선형적 변화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미래의 고객은 현재와 다르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요구하고, 새로운 경쟁자가 출연해 기존 기업이 쇄신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새로운 고객, 즉 미국 기업의 입장에서는 신흥국 고객이 혁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미국 기업이 미국 소비자를 타깃으로 만든 박스1의 비즈니스 모델을 인도의 소비자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도 시장과 미국 시장의 고객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미지의 신흥국 소비자에 대응하려면 혁신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예로 GE헬스케어는 신흥국 고객을 대상으로 심전도 기계의 혁신을 이뤄냈다. 미국 병원의 첨단 진료실에는 고가의 대형 기계들이 많다. 미국의 병원 고객들은 그곳에서 주로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인도에서 그런 장비는 1%의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다. 인도의 대다수 인구는 시골에 사는 저소득층이다. 하루 2달러를 버는 인도 국민이 200달러짜리 심전도 검사를 받으려면 100일을 일해야 한다. 그럴 바에는 검사를 안 받고 아픈 채 살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격도 문제지만 기존의 대형 심전도 기계는 첨단 의료 시설이 갖춰진 병원이 없는 인도의 시골 지역에서는 아예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집마다 그런 대형 설비를 갖추는 것이 무척 어렵고 그런 설비를 갖추더라도 전기 공급이 불안정해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기존 설비는 교육받은 의사들만 작동 가능하기에 의사가 없는 인도의 시골에서는 사용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핵심은 인도인도 미국인처럼 심장마비에 걸릴 수 있다는 건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즉, 현재 비(非)소비자들도 소비자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다만 소비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소비하지 못할 뿐이다. 이들을 소비자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박스3의 혁신이 필요하며 그런 혁신이 기업에 엄청난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나는 2008년부터 2년간 GE헬스케어의 최고혁신관리자로 일하면서 심전도 기계를 혁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00달러짜리 심전도 기계를 개발해 누구나 10센트만 내면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루 2달러만 버는 사람도 충분히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가격이다. 또한 이 기계는 콜라 캔보다 가볍고 내장 배터리로 작동해 인도 시골 마을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용법이 굉장히 쉽다. 녹색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고 붉은색 버튼을 누르면 멈추는 식으로 만들어 신호등의 색깔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이 기계의 개발은 박스3의 혁신에 해당되며 GE는 이를 통해 엄청난 규모의 비소비자를 소비자로 전환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진정한 혁신은 ‘배면뛰기’

삼성은 1970~80년대 반도체, 90년대 디지털 TV, 21세기 스마트폰 시장을 만들었다. 다음에는 어떤 시장을 창조할 것인가가 새로운 도전 과제이다. 높이뛰기 금메달 선수의 기록을 살펴보면 혁신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높이뛰기의 기록은 높이 뛰는 방식의 혁신이 있을 때마다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최초의 방식은 가위뛰기였다. 길을 걷다 바위를 보면 허들을 넘듯이 뛰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일종의 규칙이 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뛰어난 가위뛰기 선수가 되고자 했다. 전형적인 박스1의 사고방식이다. 가위뛰기의 효율성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선수는 박스3의 실험 또한 계속해 나갔다. 이후 무게중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른발로 뛰어올랐다가 오른발로 착지하는 웨스턴 룰, 오른발로 뛰어올라 왼발로 착지하는 이스턴 룰의 기술이 개발됐다. 더 나아가 배면뛰기는 두 발로 동시에 뛰어올라 몸 상체를 체조 선수처럼 180도 돌려 머리로 바를 먼저 넘는 방식이다. 지난 100년간 높이뛰기는 바를 보고 다리로 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배면뛰기는 이런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머리와 목에 이어 다리가 제일 마지막으로 바를 넘기며 엉덩이로 착지한다. 조직에서도 배면뛰기와 같은 혁신이 필요하다. 가위뛰기를 잘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박스2와 박스3의 실험을 통해 배면뛰기의 혁신도 만들어 내야 한다.

박스1이 경쟁자와 성과 격차를 줄이는 것이라면 박스2와 3은 경쟁자와 가능성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양쪽을 균형 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2030년 기업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리고 지금부터 8년간 성과 격차뿐 아니라 가능성 격차를 줄이는 데 자원을 얼마나 할애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2022년부터 진행해 2030년에 리더가 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골라봐라. 모범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 즉, 동종 산업 내 다른 기업의 가위뛰기를 벤치마킹해서는 선두 주자가 될 수 없다. 전략은 100달러짜리 심전도 기계와 같은 모범 사례를 만드는 것이다. 배면뛰기 또한 벤치마킹이 아니라 창조의 산물이다.

마이크로파이낸스는 박스3 혁신의 또 다른 모범 사례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설립자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는 방글라데시에서 25달러의 대출만 있으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데 기존 은행이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부한 이들을 위해 직접 은행을 만들었다. 그는 선두적인 상업은행의 모범 사례를 참고로 해서는 이들 비고객을 고객으로 전환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기존 은행과 반대로 농촌 지역, 여성에게 담보 없이 대출하고, 지점이 없이 방문하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접근 방식으로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창조했다.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자선 사업이 아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엄청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전략 아키텍처를 한 장으로 정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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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2, 3으로 성공하려면 조직 내에서 소통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내가 컨설팅하는 기업의 경영진에게 전략적 계획을 보여 달라고 하면 수십, 수백 장의 두꺼운 문서를 보여준다. 이런 문서로는 미래를 구현할 수 없다. 미래는 예측 불허하기에 디테일한 계획을 수립해 실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획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해서 준비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도 안 된다. 미래를 준비하는 방식으로 나는 ‘전략 아키텍처’의 수립을 제안한다. 종이 한 장에 다음의 5가지 포인트를 담아 전사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첫 번째로 해당 산업의 비선형적인 미래 변화(Non-linear shifts)가 무엇인지를 가정한다. 불확실하지만 약한 신호에 대응해 가설을 세우는 것이다. 두 번째로 전략적 의도(Strategic Intent)를 설정하는 것이다. 유누스 박사의 전략적 의도는 빈곤 퇴치, 즉 빈곤을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과거의 유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전략적 의도를 가시적으로 세워야 모든 임직원이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세 번째로 현재 기업의 핵심 역량을 파악하고, 네 번째는 3박스 솔루션을 실현할 연간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이다. 자원은 박스1에 100% 할당해서는 안 되며 박스2, 3에도 적절하게 배분해야 한다. 현재의 성과 격차를 줄이기 위해 박스1에 50~70%, 현재 핵심 비즈니스 주변의 역량을 키우는 박스2에 20~30%, 핵심 비즈니스를 흔드는 박스3에 10~20%의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적절하다. 현재 포트폴리오의 프로젝트들을 3개의 박스로 구분해보고 그 비중이 적정한지 체크해라. 마지막으로 미래를 위해 현재 키워야 할 새로운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정의한다.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종이 한 장으로 요약해 전 직원과 공유한다. 이 중에서 전략적 의도는 미션 선언문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전략적 의도는 다음의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 번째는 방향성(direction)이다. 미션 선언문은 기업 이름만 제거하면 다른 기업에도 적용 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독창성이 없고 무의미하다. 유누스 박사가 빈곤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성, 여정의 종착점은 명확했다. 두 번째는 동기부여(motivation)이다. 포드의 CEO가 기업의 목적으로 주주 가치 극대화를 얘기한다고 해서 직원들의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직원들이 스스로 매일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도전적(challenge)인 생각이다. 전략적 의도는 원대한 꿈과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성공 가능성을 20%로 봤다. 박스3의 시작은 비현실적인 꿈이어야 한다. 우리의 행동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2030년에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큰 꿈을 꿔야 한다.

혁신은 장거리 마라톤

미래를 위한 경쟁은 결국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뛰기가 아니다. 100m 달리기에서는 시작이 완벽해야 한다. 하지만 마라톤을 뛸 때는 크게 숨을 쉬고 빠르게 출발하려고 하지 않는다. 마라톤은 초반 400m를 잘 뛰려고 집중하는 동시에 최종 목표를 생각한다. 2030년을 계획하려면 지금부터 미래를 생각하며 좋은 전략을 짜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현재를 위한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는 데 급급한데 이는 전략이 아니다. 기업에 전략을 물어보면 내년을 계획하고 그로부터 2%씩 성장하겠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는 전략적 계획이 아니다. 방향성, 동기부여, 도전적 목표 설정을 명확히 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뛰어야 할지는 400m씩만 생각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가설을 세우고 작게 시작해 실험하고 빠르게 규모를 키워야 한다.

미국의 여성 수영 선수인 케이티 러데키는 중장거리 자유형 부문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선수이다. 이 선수의 인터뷰 영상을 꼭 한 번 보길 추천한다. 기자가 그녀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른 선수와 경쟁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만 집중한다. 시간을 상대로만 경쟁한다.” 리우올림픽 때 코치는 그녀에게 800m 자유형에서 8분15초 내의 기록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조건 깨겠다고 생각했고 8분4초로 해냈다. 은메달리스트와 무려 48초 차이였다. 그녀는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성적에 머물지 않고 최고를 향해 나아갔다. 3박스 솔루션은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개인들도 미래가 지금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행동에 나서야 한다. 오늘 박스1에 충분한 시간을 보냈는지, 박스2, 3에 시간을 할애했는지 매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박스3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안 하더라도 지금 손해가 현실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이랑 마찬가지다. 2030년에 건강하려면 지금 운동을 해야 하는데 이 당연한 일을 못하는 이유는 당장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 운동하지 않는다고 당장 몸이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미래에 건강이 나빠질 것이다. 지금 그것을 실감하지 못할 뿐이지, 미래는 오늘 하루 매시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DBR mini box : 김한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와의 대담

도전과 모험 위한 ‘박스3’ 전담팀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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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이 고빈다라잔 교수는 김한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의 진행으로 온•오프라인으로 포럼을 경청한 참가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김 교수와 청중의 질문이 담긴 질의응답 세션을 요약, 소개한다.

김한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획기적 혁신을 얘기할 때 보통 하이테크, 성능이 높은 제품과 서비스, 고가, 고마진을 얘기한다. 그런데 이번에 얘기한 GE헬스케어와 마이크로파이낸스의 사례는 기존의 획기적 혁신과 다르다. 획기적 혁신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비제이 고빈다라잔 교수 획기적 혁신은 획기적인 기술이 아니라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의미한다. 비즈니스 모델이란 누가 나의 고객이며, 나는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이며, 어떤 밸류체인 아키텍처로 가치를 전달할지에 대한 답이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내부적으로 일관적이면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박스3 혁신의 경우 세 가지 질문 중에서 적어도 한 가지 답을 비선형적으로 바꿈으로써 가능하다. 예컨대, 비소비자를 소비자로 만들거나, 박스1 고객을 대상으로 비선형적으로 가치를 변형하거나, 같은 고객을 대상으로 같은 가치를 전달하지만 가치사슬의 아키텍처를 비선형적으로 바꾼다고 하면 박스3 혁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박스3의 혁신은 기술적 혁신 없이도 가능하다. 꼭 빅테크 기업에서만 혁신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기존 기술의 활용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에어비앤비의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 전달 방법을 찾은 예이다. 물론 기술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배면뛰기는 높이뛰기의 착지면이 모래에서 부드러운 바닥으로 바뀌었기에 가능했다. 맨땅에서 배면뛰기를 했다면 등이 부러질 것이다. 1942년에 이런 기술적 혁신이 있었고, 이런 변화를 알아본 딕 포스버리 선수가 배면뛰기 방식으로 1968년에 금메달을 받았다.

3개의 박스 사이의 균형을 이루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굉장히 어려운 과제다. 상충되는 것을 동시에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스3의 실험을 하려면 현재 비즈니스 인력과 상충하는 역량을 가진 인력이 필요하다. GM의 경우 가솔린차로 100% 수익을 내면서도 전기차에 투자해야 한다. 박스1에서 한 번 성공하면 인재, 환경, 고객군, 조직 구조, 퍼포먼스, 성과 지표 등에서 지배적인 논리가 생기는데 이는 박스3을 저해하는 양날의 검이 된다. 4마리 원숭이가 코코넛 나무 아래 앉아 있다고 해보자. 굶주린 원숭이가 코코넛을 따러 올라갔다가 전기 충격을 받는다. 소리를 지르고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고, 충격을 받는다. 이를 반복하다 보면 원숭이는 나무에 오르는 것이 위험하다고 이해한다. 그리고 바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이때 실행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태풍을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이해하고 이것이 지배적 논리가 되면 조직 구조에 녹아들고 매뉴얼이 된다. 머지않아 지배적 논리가 더욱더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마치 성경책처럼 따르는 논리가 돼 바꾸기 어렵다. 그런데 실험에서 네 마리 원숭이를 새로운 나무로 옮긴다고 생각해보자. 자율주행차와 비슷하다. 전기 충격은 없지만 원숭이는 새 나무에 앉아서도 태풍을 기다릴 것이다. 다음의 실험에서 한 마리를 교체한다. 개척자 원숭이다. 이 원숭이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다른 세 마리 원숭이가 말릴 것이다. 계속 말리면 새 원숭이는 생각한다. 올라가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다음에는 한 마리씩 교체해서 새로운 네 마리 원숭이가 되지만 전기 충격 장치가 없는 나무에 앉아서 다 같이 태풍을 기다리는 일이 벌어진다. 이렇게 사고방식을 바꾸는 게 어렵다. 원숭이를 바꾸려면 새롭게 사회화를 해야 하고, 이것이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다. 사고를 바꾼 원숭이가 CEO가 되지 않는다면 바뀌기 힘들 것이다.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역할 차이는 무엇일까? 조직에서 튀는 사람은 특히 한국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박스1와 박스3의 인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박스3을 전담할 별도의 팀이 필요하다. 박스1과 완전히 물리적으로 분리돼야 한다. 다른 방식으로 고용하고 보수를 줘야 한다. 물론 내부 사람도 배치해서 박스1와 3의 연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전담팀은 늘 겸손해야 한다. 박스1을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지배적인 로직도 조직에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스3의 리더십이 겸손해야 박스1과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모함인 기존 조직과의 연결을 유지해야 한다. 박스3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조직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나는 스핀오프를 신뢰하지 않는다. 박스3이 스핀오프돼 모함과 단절되면 그 유니크함을 잃게 된다. 일반적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다름없다. 물론 모함과 연결하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중간에서 박스1과 3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중재해야 한다. CEO가 박스1이라는 모함의 엔진이 왜 중요한지, 왜 박스3은 다른 인적 구성으로 이뤄져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세 번째로 박스3 전담팀은 미래를 보는 사람들이기에 박스1과 다른 평가지표를 적용해야 한다.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 이들이 미래에 대한 가정을 세워서 분석하고, 학습한 내용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경영진은 부하 직원들이 누구도 아이디어를 내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반면 중간관리자는 목소리를 내고,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고위급에서 항상 재정적인 성과 지표를 강조해 혁신이 어렵다고 한다. 이런 조직의 상충되는 관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조직 내에는 이미 다양한 아이디어가 존재한다. 성장에 필요한 혁신 아이디어가 이미 존재하는데 그것을 추출해 내는 것이 관건이다. 병목 현상은 중간관리자, 고위 임원에게서 나타날 수 있다. 고위급 리더부터 기업의 미래는 비선형적이라고 믿고 그에 준비하는 태세를 갖춘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CEO가 달라지지 않으면 중간도 변하지 않는다. 예컨대, 박스3팀에 어느 정도는 보호막이 있어야 한다. 다르게 생각할 자율성을 줘야 한다. 자율주행차는 우리가 아는 자동차가 아니라 ‘바퀴 달린 컴퓨터’, 일종의 IT 비즈니스이다. 모빌리티와는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것을 CEO가 인지하고 보호막을 만들고 소통의 가교가 돼야 한다.

제조산업은 이미 박스1의 핵심 역량에 많이 투자했는데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까?

한국은 제조업의 강점을 가진 기업이 많다.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같은 기업은 디지털화를 통해 음악, 여행, 사진, 출판 등의 시장을 선점했다. 아직까지 디지털화되지 않은 분야에 가치 창출의 기회가 많다. 예컨대, 자동차, 비행기 엔진, 선박 등의 분야는 아직 디지털화되지 않았다. 한국 기업은 이런 제조업에 강점이 있고 안전, 효율, 디자인에 집중했다. 여기에 디지털화까지 이뤄진다면 선두 주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이미 소프트웨어 투자가 많이 이뤄지고 있으며 제조업의 강점이 있기에 양 쪽의 융합이 충분히 가능하며 전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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