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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 패러독스

박용 | 39호 (2009년 8월 Issue 2)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판매 상품에 탄소 배출량이나 물 소비량, 대기 오염 영향 등을 표시하는 ‘에코 라벨’을 붙인다는 야심 찬 계획을 7월 중순 내놨습니다. 제품 표면에 영향 성분을 표시하듯 상품의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항목별로 투명하게 표기하도록 협력 업체를 독려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면 티셔츠에 붙은 에코 라벨을 보고 이 제품 생산에 쓰인 물 소비량이나 탄소 배출량은 물론, 원료인 면 생산을 위해 제초제를 뿌렸는지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상품 포장에 과도한 재료가 쓰였는지도 따져볼 수 있죠.
 
월마트의 이 계획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객관적인 지표도 개발해야 하고, 협력 업체의 참여도 이끌어내야 하니까요.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구상이 현실화한다면 그 파급 효과는 유럽연합(EU) 등 정부 차원의 규제를 능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업계와 시장의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사실상의 기준(de facto standard)’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물 소비량을 50% 줄이고 포장재도 덜 쓰는 농축 세탁 세제가 시장에 처음 나왔을 때는 시장 반응이 시큰둥했습니다. 하지만 2007년 월마트가 이 농축 세탁 세제만 판매하겠다고 밝히자 시장점유율이 급등했을 정도로 월마트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월마트의 발표가 나오자 제조업계는 벌집 쑤신 듯 시끄럽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미 “생산 원가가 높아지고 영업 기밀이 노출될 수 있다”거나 “유통업체가 너도나도 지표를 만들면 제조업체만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월마트는 올해 10월까지 미국 내 협력 업체를 대상으로 에코 라벨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이후 조사 대상을 전 세계로 확대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조사가 끝나면 월마트의 구체적인 계획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만 할 일은 아닙니다. 제조업 강국이자 수출국인 한국의 기업도 월마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가 읽고 있는 소비자 코드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월마트 경영진은 소비자의 상품 구매 기준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가격만 보고 상품을 고르는 게 아니라, 환경이나 인류에 덜 해로운 방법으로 생산했는지도 따져본다는 것이죠. 특히 1980년에서 2000년대 태어난 젊은 세대에서 이 같은 모습이 두드러진다네요.
 
재밌게도 월마트가 이 계획을 내놓자 미국 내에서 ‘월마트 패러독스’라는 말이 나왔답니다. 월마트가 지구 환경과 인류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기여하는 기업 브랜드를 정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월마트 브랜드 이미지는 극과 극이라는 겁니다. 미국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BBMG가 미국 내 소비자 2000명에게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회사가 어딘지를 물었더니, 월마트가 최악과 최고의 기업으로 동시에 선정됐다고 합니다.
 
‘월마트 패러독스’는 인류와 지구 환경에 기여하는 지속 가능한 기업이라는 이미지 정립을 위한 리브랜딩의 길이 멀고 험하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경영 철학과 사업 모델을 재정립하고, 고객과 지속적으로 소통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한들 ‘무늬만 착한 기업’에 불과할 뿐입니다. 여러분의 기업은 혹시 ‘월마트 패러독스’에 빠져 있지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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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

    박용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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