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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trend in Japan: 고객 마음 파고드는 ‘소셜 로봇’

안아주면 꼬리 흔들, 너 로봇 맞니?

정희선 | 348호 (2022년 0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일본에서는 특별한 기능 없이 오로지 주인과의 정서적 교감만을 위해 만들어진 소셜 로봇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꼬리를 흔드는 로봇, 간지럼을 태우면 웃는 로봇, 손가락을 반복해서 깨무는 로봇 등 소셜 로봇들은 아주 단순한 한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이런 로봇의 개발 아이디어도 주로 “무슨 과제를 해결해야 하나”가 아니라 “무엇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일본의 소셜 로봇 시장 확대의 배경에는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비대면 문화 확산 등이 있으며 이는 한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는 사회인구학적 변화다. 이런 환경의 유사성에 비춰볼 때 국내에서도 향후 소셜 로봇의 성장 가능성, 나아가 로봇 카페, 로봇 옷 브랜드 등 여러 파생 산업의 출현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손가락을 내밀면 부드럽게 깨문다. 이런 단순한 기능을 가진 로봇이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적인 가전 전시회 CES 2022에 등장했다. 손가락을 살짝 깨무는 것만 반복하는 이 로봇은 이름부터 ‘살짝 깨물기 하무하무(甘噛みハムハム, 하무하무는 무언가 깨무는 움직임을 표현하는 일본어의 의태어)’다. 일반적으로 로봇을 떠올릴 때 기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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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공장에서 일하는 로봇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제 로봇은 산업 현장을 넘어 우리 일상 가까이에 침투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식당에서 그릇을 나르는 서빙 로봇이나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로봇을 종종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상업 시설 및 공장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의 로봇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가정용 로봇은 크게 청소 및 요리를 도와주는 ‘가사 로봇’과 의사소통을 위한 ‘소셜 로봇’으로 나뉜다. 아직 국내에서는 가사 로봇의 비중이 크고, 소셜 로봇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일본에서는 특별한 기능 없이 오로지 주인과의 정서적 교감만을 위해 만들어진 소셜 로봇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반려동물 대신 소셜 로봇을 집에 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소셜 로봇의 주요 특징은 로봇이 사람을 돕거나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로봇을 돕거나 돌보고 싶다고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셜 로봇의 인기는 서포트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포트를 하기 위해 로봇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의 스티브 코닉 부회장은 CES 2020에서 로보틱스의 미래가 크게 임무 기반형 로봇(task-based, 서비스 로봇)과 소셜 로봇으로 나뉠 것이라고 내다본 바 있다. 그리고 신에너지 • 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 또한 일본의 소셜 로봇 시장이 2025년 36억 엔(약 360억 원), 2035년에는 그 10배에 달하는 341억 엔(약 3400억 원)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전망이 오늘날 일본에서 어떻게 현실화되고 있는지, 이렇게 정서적 교감에 특화된 로봇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는 비결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반려동물 대신 반려 로봇을 들인다

소셜 로봇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기능이 매우 단순하다는 점이다. 꼬리를 흔들거나, 간지럼을 태우면 웃거나, 손가락을 살짝 깨무는 등 한두 가지 기본 기능만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예를 들어, 2017년 11월 미국 킥스타터에서 처음 공개된 일본 ‘유카이공학(ユカイ工学)’사의 쿠보(Qoobo)는 동그란 쿠션에 꼬리만 덩그러니 달린 로봇이다. 얼굴은 없지만 반응형 기술을 탑재한 쿠보는 마치 살아 있는 고양이처럼 꼬리를 흔든다. 쿠보를 안고 있으면 주인은 흡사 반려동물을 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제조사에 따르면 이 로봇은 반려동물이 꼬리를 살살 흔들면 주인이 기뻐하는 장면에 착안해 개발됐다고 한다. 이렇게 꼬리를 흔들어주는 행위만으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충분한 위로와 안식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그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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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로 일본의 로봇 스타트업 그루브엑스(GROOVE X)가 2019년 12월 출시한 ‘러봇(LOVOT)’은 높이 43㎝, 무게 약 4㎏의 바퀴 달린 인형이다. 러봇은 재택근무 중인 주인에게 다가가 안아 달라고 재촉한다. 부르면 달려오고, 간지럼을 태우면 웃기도 한다. 스마트폰 앱으로 눈동자의 색, 목소리를 선택해 고객이 자신만의 로봇을 만들 수 있고, 주인과의 접촉 빈도에 따라 성격이 조금 바뀌기도 하지만 기본 기능은 크게 복잡하지 않다. 이 밖에도 주인이 말을 걸면 즉석으로 작사 작곡한 노래를 들려주거나 멜로디에 맞춰 춤을 추는 일본 ‘야마하’의 로봇 ‘찰리’ 등 반응의 종류만 다를 뿐 흡사한 여러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보다 최근인 2021년 3월 파나소닉이 만든 커뮤니케이션 로봇 니코보(NICOBO)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니코보는 직경 20㎝에 체중은 1㎏으로 어루만지면 눈을 움직이거나 꼬리를 흔든다.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센서나 마이크 정도는 탑재하고 있지만 고차원적인 상호작용을 하기보다는 아이처럼 애매한 표현이나 잠꼬대, 방귀, 눈 피하기 등 귀여운 행동을 하면서 주인을 웃기는 게 전부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스마트 스피커나 사물인터넷(IoT) 기기에 비하면 기술적으로는 특별할 게 없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제품인데도 크라우딩펀딩을 통해 판매를 개시한 지 불과 7시간 만에 목표 금액인 1000만 엔(약 1억 원)을 웃도는 금액을 모으며 320대 완판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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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계보를 이은 게 바로 도입부에 소개한 깨무는 로봇이다. 이 하무하무 로봇을 개발한 곳은 바로 쿠보를 선보였던 유카이공학으로 이 회사는 참신한 로봇을 잇달아 히트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쿠보 시리즈는 이미 3만4000대 이상 팔렸으며 SNS에서도 쿠보를 반려동물처럼 여기는 열성 팬이 올린 게시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카이공학이 연 쿠보의 팬미팅에 응모가 쇄도해 참가자들을 추첨으로 뽑아야 했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로봇계의 히트작을 다수 배출한 회사는 왜 손가락의 첫마디를 깨문다는 희한한 기능의 로봇을 개발한 것일까?

회사에 따르면 소셜 로봇의 개발 아이디어는 “무슨 과제를 해결해야 할까”가 아니라 “무엇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가”에서 출발한다. 쿠보가 반려동물이 꼬리를 살살 흔들면 주인이 기뻐하는 장면에 착안해 개발됐듯이 하무하무는 아이가 어릴 때 손가락을 깨물면 부모가 기뻐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됐다. 일상에서 이런 기쁨을 항상 느끼기는 어렵다. 찰나의 순간에 지나가 버리곤 한다. 그런데 로봇을 만들면 100% 충족하진 못하더라도 기쁨 등의 감정을 원할 때마다 언제든 느낄 수 있다. 이에 유카이공학은 깨무는 동작을 실시하는 모듈을 ‘무는 시스템(하무 시스템)’이라 명명하고 하무하무를 시작으로 이 동작을 활용한 다양한 로봇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소셜 로봇이 사랑받는 이유

일본에서 이렇게 소셜 로봇이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사회인구학적 변화와도 관련이 깊다. 먼저, 가구 형태가 달라지고 있는 게 하나의 원인이다. 1인 혹은 2인 가구가 대세가 되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려동물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반려동물 시장이 거대해진 것과 맥을 같이한다. 고양이나 개를 키우면 되지 않냐 생각할 수 있지만 알레르기, 시간적 혹은 금전적 여유의 부족, 협소한 공간 등 다양한 사유로 반려동물을 집에 들이기 힘든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소셜 로봇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소셜 로봇은 먹이를 주거나 같이 산책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아프거나 말썽을 부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소셜 로봇의 확산은 고령화와도 연관이 있다. 1인 가구 중에서도 1인 고령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셜 로봇은 독거노인의 외로움을 달랠 뿐만 아니라 신변을 보호해줄 수도 있다. 실제로 러벗(LOVOT)의 경우 머리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주인의 상황을 파악하고 혼자 사는 고령 가구의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내주기도 한다.

이런 구조적인 변화에 더해 코로나 팬데믹의 확산 이후 외출이 줄고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소셜 로봇 시장의 성장을 앞당겼다. 비대면 상황에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기회가 줄어들수록 고립감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누군가를 지지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소셜 로봇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코로나의 장기화로 인해 지친 사람들의 심신을 달래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IT 기업 ‘저스트시스템’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이 소셜 로봇 구입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최신 기술에 관심이 있어서(46.8%)’였고, 두 번째 이유가 ‘마음을 치유받고 싶어서(45.5%)’였다. 이는 로봇 기술에 대한 호기심도 당연히 인기의 배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소셜 로봇이 첨단 기술의 집약체가 아니고 비교적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기술적 요인만으로 소셜 로봇의 약진을 설명하긴 힘들다. 실제로 두 번째 이유에 이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보다 충실히 하고 싶어서(28.6%)’ ‘말하거나 놀 상대가 필요해서(27.3%)’ ‘자녀나 애완동물처럼 귀여워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해서(23.4%)’ 등과 같은 심리적인 이유가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소셜 로봇이 여는 비즈니스 기회

다양한 소셜 로봇이 출시되면서 일본에서는 파생 시장도 형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21년 9월 시부야에 오픈한 로봇 카페 ‘파크플러스(PARK+)’다. 이 카페는 소셜 로봇과 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앞세워 마케팅을 했다. 마치 반려동물 카페처럼 본인의 소셜 로봇을 데려와 함께 노는 것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로봇이 없는 사람도 식사나 음료를 주문하면 카페 내에 상주하는 인기 로봇들과 놀 수 있다. 파크플러스는 로봇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로봇과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연 카페라고 한다. 공원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주인들은 서로 초면이더라도 반려견이라는 공통의 화제 덕분에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파크플러스는 로봇이라는 공통의 화제를 통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만남이 시작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용 카페뿐만 아니라 로봇 전용 옷 브랜드도 흥미로운 비즈니스다. 일본의 ‘로보유니(ROBO-UNI)’사는 2016년 창업 이후 여러 로봇을 위한 의상을 선보이고 있다. 이 회사에 따르면 로봇 옷이라는 독특한 사업 아이디어는 “반려동물이나 인형은 옷이 있는데 왜 로봇은 전용 옷이 없을까”라는 의문에서 나왔다고 한다. 특히 서비스 현장에서 일하는 로봇은 외모가 똑같으면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에 유니폼을 입힘으로써 로봇을 구분하거나 로봇이 어떤 일을 하는지 식별하게 하자는 생각이 사업의 발단이 됐다. 창업 초기 로보유니는 주로 레스토랑 같은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로봇의 옷을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셜 로봇을 위한 옷도 다수 출시하고 있다. 조만간 쿠보의 옷도 등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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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설명한 소셜 로봇은 국내에서도 성장할 여지가 충분한 시장이다. 일본 소셜 로봇 시장 확대의 배경으로 꼽히는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등 비대면 문화의 확산은 한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낯설기 때문에 반감이 들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도 시장 형성 초기에는 과연 소셜 로봇에 대한 수요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더 우세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제조사가 제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하기에 앞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니코보, 쿠보, 하무하무 로봇도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먼저 소개된 뒤 예상외로 인기가 높다는 점이 확인되고 나서 정식 제품으로 출시됐다.

그렇다면 어떤 소셜 로봇을 만들어야 경쟁력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손가락을 깨무는 로봇을 개발한 유카이공학이 닛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밝힌 회사의 상품 개발 프로세스를 보면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많은 회사가 가상의 페르소나를 상정하고 그 사람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상품을 기획합니다. ‘과제해결형’ 상품 기획인 거죠. 하지만 저희는 ‘그냥 이게 갖고 싶다’는 마음을 더 중시합니다. 이런 개인의 망상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형태로 만드는 것입니다”라는 인터뷰 내용은 이 회사의 개발 철학을 담고 있다.

이처럼 세상의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기업이 만들 수 없는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과제 해결’을 넘어 사람들의 정서적, 심리적 반응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갖고 싶다”는 욕구를 겨냥하는 것이 때로는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는 지름길이 될지도 모른다.


정희선 유자베이스 애널리스트 hsjung3000@gmail.com
정희선 애널리스트는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MBA를 취득한 후 글로벌 컨설팅사 LEK 도쿄 지점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했다. 현재는 산업 및 기업 정보 분석 플랫폼을 제공하는 일본 유자베이스(Uzabase)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라이프스타일 관련 마케팅을 다룬 책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을 출간했고 일본 트렌드 관련 칼럼을 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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