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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olumn

거대한 혁신의 동기는 ‘우리’

민규식 | 294호 (2020년 4월 Issue 1)
필자가 동료들과 함께 개발한 ‘인공와우’는 달팽이관 안에 전극을 이식, 몸속에 삽입된 전자회로를 통해 전기신호를 전달함으로써 선천적 청각장애인이나 고도 난청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돕는 혁신적인 전자약(Electroceuticals) 중 하나다. 최근 ‘전자약’이라는 키워드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데, 전자약은 1960년대에 이미 이식형 심장박동기(Pace Maker)로부터 시작된 개념이다. 전자약은 뇌와 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전기전자공학적 방법으로 모사해 뇌와 신경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모든 이식형 의료기기를 지칭한다.

전자약을 제작하기 위한 요소 기술로 다음의 네 가지가 필수적이다. 첫째, 신경과 신호를 주고받기 위한 신경 인터페이스 기술, 둘째, 신경에 전달할 전기신호를 발생시킬 수 있는 전자회로 집적 기술, 셋째, 안정적으로 체내에 전력을 공급/생성/보관할 수 있는 무선 전력전송 및 저장기술, 넷째, 앞서 기술한 시스템이 장기간 몸속에서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임플란트 패키지 기술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생체신호를 모니터링하고 이것을 전자약에 활용하기 위한 AI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간단히 열거하기만 해도 개발하기 쉽지 않은, 아니, 위의 모든 기술을 모두 하나의 스타트업이 개발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대기업들조차 도전하기 꺼려하는 분야이다 보니, 필자가 전자약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인공와우’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많은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WHO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4억6000만 명이 난청을 겪을 정도라 시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 하지만 난청 인구의 80% 이상이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기에 2000만 원에 달하는 고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한 해 팔리는 인공와우가 약 6만∼7만 대에 불과한데 이 또한 대부분 선진국에서 소비된다. 이마저도 두세 개의 회사가 전체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독과점 구조가 고착화된 상태다. 그나마 인공와우를 만들 수 있는 회사도 전 세계에 다섯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필자와 동료들은 시장에서 빈부격차에 따른 인공와우 수급 불균형의 현실을 타개하고자 2015년 국내 유일의 인공와우 개발회사인 ‘토닥’을 창업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우리가 힘든 기술 개발을 거쳐 지금까지 어려운 혁신에 올인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새로운 아이디어도, 뛰어난 기술도 아니었다. 모두가 공유하는 ‘강력한 동기’가 혁신을 이끌었다. 그 동기는 누군가에게 잃어버린 소리를 찾아줬을 때 느끼게 될 짜릿한 희열이다. 우리의 동기가 ‘남’이 아닌 우리 자신으로부터 비롯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소리를 되찾아줄 수 있다는 점 자체보다는 우리 제품을 통해 소리를 되찾은 사람들의 얼굴에 번질 미소를 보며 행복해하는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얘기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인공와우의 개발에 성공하고 저개발국의 청각장애인들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을 뿌듯해 할 ‘나’, 성공한 회사의 임직원으로서 성취감을 느끼고, 더 큰 혁신을 이룸으로써 동료들의 나아진 삶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나’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강력한 동기가 안정적인 삶이나 쉬운 길을 가고 싶은 유혹을 뛰어넘어 이렇게 작은 스타트업에 뛰어들어 큰 꿈을 품게 만들었다.

현재 우리 팀은 반도체 공정을 응용해 전극의 제조원가를 혁신적으로 낮추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 이를 적용한 인공와우 시스템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혁신의 길은 늘 막막하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혁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또 그 미래에 행복해 할 우리 자신에 대한 강력한 동기가 있기에 앞으로도 도전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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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식 토닥 대표
필자는 2006년 서울대 물리학부를 졸업하고 2014년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에서 ‘대량 생산 가능한 인공와우 전극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과 의료기기 사업부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다 2015년 토닥을 창업했다. 토닥은 반도체 공정을 응용한 전자신경 임플란트 및 인터페이스 기술을 기반으로 뇌신경-머신 인터페이스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국내 유일의 인공와우 회사다.
  • 민규식 | 필자는 2006년 서울대 물리학부를 졸업하고 2014년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에서 ‘대량 생산 가능한 인공와우 전극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과 의료기기 사업부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다 2015년 토닥을 창업했다. 토닥은 반도체 공정을 응용한 전자신경 임플란트 및 인터페이스 기술을 기반으로 뇌신경-머신 인터페이스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국내 유일의 인공와우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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