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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5. 수면시간과 신경과학

어젯밤 중간에 깨서 푹 못 잤다고요?
‘분할수면’이 되레 생체시계에 적합

이수정 | 253호 (2018년 7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기술 발전과 진보는 인류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지만 수만 년간 인류가 축적한 생체 시계에는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불면증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우리가 병이라고 생각하는 분할 수면이 생체 시계에 더 적합하다고 밝힌다. 8시간 깨지 않고 숙면해야 건강하다는 요즘 생각과 달리 인류는 오랫동안 중간에 깼다가 다시 자는 분할 수면을 해왔으며 새벽에 깬 시간 동안 맑은 정신으로 중요한 일을 했다. 디지털 시대에 24시간 근무가 가능해지면서 수면 시간의 유연성도 커지고 있다. 필자는 분할 수면을 잘못된 습관 혹은 병으로까지 여기는 고정관념부터 재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루 8시간 숙면의 신화
불면증은 현대인의 고질병 중 하나다. 한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수면 장애와 주간 졸음증을 호소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수면 장애로 치료받은 인구는 2012년 35만 명에서 2016년 50만 명으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수면 장애의 종류는 불면증, 기면증, 하지불안증후군, 렘수면행동장애, 야뇨증, 수면무호흡증 등 상당히 다양하다. 1 그런데 수면 장애 환자의 절반 이상은 불면증에 시달리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60대 이상 노인이다.

수면이 심신의 피로회복뿐 아니라 면역 체계, 인지기능 강화에 도움을 주고 따라서 적절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건강에 각종 악영향(당뇨, 고혈압, 비만 등의 대사성 질환과 치매,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조울증이나 ADHD 등)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들은 이미 수천 편에 달한다. 연구 결과들은 특히 중년과 노년층 건강에 양질의 수면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매일 밤 깨지 않고 7~8시간 동안 숙면해야 건강하다는 얘기가 고정관념이자 신화일 뿐임을 밝히는 연구들이 주목받고 있다. 8시간 수면은 인간의 생체 리듬에 부적합하며, 오히려 중간에 깼다가 다시 자는 ‘분할 수면’이 인간의 생체 리듬에 맞으며 건강에 좋다는 내용이다.

1990년대 초 정신과 의사인 토머스 베어(Thomas Wehr)는 광주기성 2 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 대상자들을 한 달간 매일 14시간 동안 벙커 안의 어둠 속에서 지내게 했다. 평소 인공조명 덕분에 잠자는 8시간 정도만 불빛 없이 지내던 실험자들은 14시간이나 어둠 속에서 생활하게 되자 점차 원래의 생물학적 생체시계에 따른 수면 패턴으로 바뀌어 갔다. 매일 아침 15분 정도씩 늦게 일어나던 실험자들이 4주가 끝날 무렵엔 뚜렷하게 두 단계의 수면 시간으로 구성된 이상수면(bi-phasic sleep) 형태로 잠을 자게 된 것이다. 수면 패턴은 첫 번째 4시간 동안 잠을 잔 후 1~3시간 정도 깨어 있다가 두 번째 4시간 수면에 들어가는 분할 수면(split sleep)으로 바뀌었으며 실험자들은 낮 동안 졸음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3

불면증이 생체시계에 맞지 않는 현대인의 수면 습관 때문에 생긴 사회적 질병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번 깬 후 곧장 잠들려고 애쓰면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수면 중간에 자꾸 깨어나면 병인가 싶어 불안해하는 심리적 압박감이 불면증을 더 부추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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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 수면의 기원
2001년 버지니아테크대의 역사가 로저 에커치는 16년에 걸쳐 무려 500여 편의 방대한 문헌을 조사한 후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에커치는 두 개의 수면시간으로 구성된 이상 수면이 산업화 이전까지 인류가 기나긴 밤을 보내던 보편적 습관이었음을 일기, 법정 기록, 의료기록, 문학작품 등을 통해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4

“… 그는 비록 첫 번째 잠에서 시작된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그걸 알았고, 자기 꿈의 증인이 아닌 이 방 너머에 있는 대상의 존재로 두려움을 떨쳐버리려 창문을 열었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바나비 러지(1840)』엔 ‘첫 번째 잠’이란 구절이 나온다. 오늘날에는 거의 쓰지 않는 ‘첫 번째 잠’이란 말은 영어(first sleep, first nap or dead sleep)뿐 아니라 프랑스어(premier sommeil, premier somme), 이태리어(primo sonno, primo sono), 라틴어(primo somno, concubia nocte)에도 존재한다. 예컨대 옥스퍼드 영어사전엔 두 번째 잠을 아침잠이라고 설명돼 있다고 한다.

또 소설 『보물섬』으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은 27살이 되던 1878년, 프랑스 세반느 지방을 도보로 가로지르며 여행기를 남겼다. 자정이 지나 첫 번째 잠에서 깨어난 그는 어둠 속에 누워 담배를 피웠고 문명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쾌적한 ‘완벽한 시간’을 음미하며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에 대한 감상을 적었다.

19세기 소설가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인이 질병으로 생각하는 분할 수면은 불과 150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고 평범한 인류의 오랜 습관이었다. 분할 수면의 기원은 19세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커치는 그리스 로마 시대 호머의 오디세이, 버질의 아이네이스뿐 아니라 1969년 나이지리아 부족의 인류학적 보고서에서도 분할 수면의 증거를 찾아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습관을 기록을 통해 세세하게 발굴한 에커치의 연구는 발표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에커치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인류의 일상적인 밤은 현대인의 밤과 매우 달랐다. 고대로부터 인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숙면이 신체의 건강을 지키고 지친 영혼을 치유한다고 여겨왔다. ‘잠이 보약’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언제 잠자리에 들어 몇 시간이나 자야 할지에 대해선 항상 의견이 분분했지만 16세기경에 이르면 대체로 저녁 9~10시경 침대에 누워 6~8시간 정도 자야 한다는 의견으로 수렴됐다. 일부 부유한 가정을 제외하곤 대부분 양초나 수지를 태워 불을 밝힐 형편도 안 됐기 때문에 주로 난로나 화덕가에 둘러앉아 꼭 필요한 집안일을 하면서 저녁을 보냈다.
분할 수면의 기원이 초기 기독교 전통에서 유래됐다는 의견도 있다. 6세기 베네딕트 성인이 권고한 수도승은 자정에 일어나 기도와 찬송을 드려야 한다는 베네딕트 교단 규율은 이후 프랑스와 독일 수도원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1세기 가톨릭교회는 어둠에 잠긴 시간이야말로 신에게 은총을 간절히 구해야 할 시간이라며 새벽 기도를 독려했다. 하지만 에커치는 분할 수면 습관이 가톨릭교회가 지배하기 이전인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보편적이었음을 옛 문헌과 부족 사회의 전통을 통해 반박하고 있다.

선조들은 해가 지고 2시간 정도 지나면 잠자리에 들었고 자정쯤 깨어나 1~2시간 정도 이런저런 볼일을 보다 두 번째 잠을 잤다. 깨어 있는 동안엔 보통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바로 전에 꾸었던 꿈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으며 성행위를 하기도 했다. 어둠이 내리고 고된 노동이 끝난 직후엔 모두 피곤함에 지쳐 쓰러져 자기 바빴기 때문에 아이들 대부분은 첫 번째 잠과 두 번째 잠 사이에 만들어졌을 거라는 주장도 있다.

첫 번째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사람들은 달빛이나 기름 램프 불빛에 기대 바느질을 하거나, 땔감을 쪼개고 아기를 돌보는 등 집안일을 했으며, 기도나 명상을 하거나 시나 책을 읽었다. 이 시간은 좀도둑들 역시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간이라서 집이나 축사의 문단속을 다시 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 한밤중에 이웃집이나 친구를 방문하기도 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에커치에 따르면 이상 수면에 대한 언급이 문헌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말경이었다. 북부 유럽 도시 상류층에서 시작된 이 변화는 이후 20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서서히 서구사회 계급 전체로 퍼져나갔다. 불면증에 대한 묘사는 19세기 말쯤 문학에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이상 수면이 완전히 사라진 시기와 일치했다. 에커치는 1920년경에 이르면 사회적으로 이상 수면의 존재가 완벽히 지워졌다고 분석한다. 도심지의 가로등과 가정의 점등, 밤새 열려 있는 커피 하우스의 유행 덕분에 사람들은 유흥을 즐기며 밤을 지새우기 시작했고 수면 패턴 또한 결정적 변화를 맞게 된다.

다만 잠을 많이 자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뿐 아니라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16세기 영국과 미국 청교도들은 병자나 아이들도 아니면서 잠을 많이 자는 걸 “불필요한 나태함”(리처드 백스터)이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만연하면서 적절한 수면시간에 대한 논쟁이 붙기도 했다. 영국 왕 찰스 1세에게 3시간만 자라고 권고했던 제러미 테일러 목사의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6~8시간의 수면이 적당하다고 여겼다.

생체 시계와 수면 호르몬
그렇다면 이상 수면은 우리의 생체 리듬과 어떻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저녁 식사를 하면 우리 몸의 혈당량이 높아지고 인슐린 분비가 급증한다. 당뿐 아니라 다른 아미노산까지 혈액에서 제거하는 인슐린 덕분에 소장에서 흡수된 트립토판은 다른 아미노산과 경쟁할 필요 없이 혈뇌장벽을 쉽게 통과한 후 대뇌에서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으로 변환된다. 졸음을 유발하는 이들 호르몬 때문에 우리 몸은 식사 후 두어 시간이 지나면 첫 번째 수면에 돌입한다.

수면 중엔 약한 자극에도 쉽게 깨는 얕은 잠부터 업어 가도 모를 정도의 깊은 잠까지 4단계로 나누어진 논렘수면(NREM sleep)과 꿈을 꾸는 렘수면(REM sleep, Rapid Eye Movement sleep)이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보통 사람들은 한 번도 깨지 않고 7시간을 푹 잤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수면은 수면 구조(sleep architecture)라 불리는 논렘수면, 렘수면, 일시적 각성 등의 복잡한 조합으로 구성된다.

중간에 잠을 깨지 않는 단상 수면의 수면 구조를 분석해보면 초기의 얕은 잠에서 바로 깊은 잠으로 들어가 1시간 반 정도 집중적으로 깊게 잔 후 수면이 진행될수록 점차 렘수면이 늘어나면서 잠에서 깨어나게 됨을 알 수 있다. 꿈을 꾸는 상태인 렘수면은 주로 수면 말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밤 동안엔 각성을 유도하는 신경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비량이 오르락내리락 변동을 거듭하면서 수면 중 각성을 유도한다.

하지만 이상 수면을 하게 되면 이 같은 수면 구조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 번째 잠에서 깬 후 각성 상태가 지속되면 아세틸콜린 분비는 계속 증가하는데 깨어 있는 두 시간 동안 우리 몸에 축적된 아세틸콜린으로 인해 두 번째 잠 동안 밀도 높은 콜린성 렘수면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된다. 우리는 아민성 렘수면시보다 콜린성 렘수면 시 더 생생한 꿈을 꾸고 더 쉽게 꿈을 기억한다. 또 이상 수면을 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얕은 잠이 줄어들면서 논렘수면이나 렘수면이 늘어난다. 

선도 수련이나 이슬람교 같은 종교에는 자정에 깨어나 기도를 드리는 전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자정을 신령한 존재와 영적으로 교류하는 시간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상수면 구조에 따라 기도를 마친 후 잠자리에 들면 콜린성 렘수면으로 암시성이 강한 생생한 꿈을 꾸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심이 더 깊어졌을 듯하다. 이런 생리적 변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깨우침이 아마도 새벽기도나 자정 기도를 독려한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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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락틴은 수면 개시와 관련성이 높은 호르몬이다. 이상수면에서 두 번의 수면을 취하는 동안 프로락틴이 집중적으로 분비되면 낮 동안 프로락틴 수준은 매우 낮은 상태로 유지된다. 황체자극호르몬인 프로락틴은 원래 유즙 분비를 유도하고 생식 기능을 억제해 성욕을 억제한다. 첫 번째 수면 중 분비된 프로락틴은 깊은 잠 단계의 논렘수면을 증가시켜 숙면을 유도한다. 프로락틴이 생식선 자극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해 서파(Slow wave) 5 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프로락틴은 두 번째 잠의 렘수면 또한 증가시킨다. 산업화 이전 인류는 첫 번째 잠에서 깼을 때 정점에 이른 프로락틴 호르몬으로 인해 현대인은 겪은 바 없는 심리 상태를 경험했다. 프로락틴이 유도하는 고요함, 평화, 심신의 이완과 행복한 마음 상태를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시간을 기도하거나 자신을 돌아보고 명상을 하며 보냈다.

첫 번째 잠에서 깨어나 각성 상태가 되면 도파민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도파민에 의해 프로락틴 호르몬 분비가 중단되고 성호르몬 반동 현상에 의해 성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한다. 이때 분비된 황체형성호르몬은 프로게스테론의 생산을 유도하고 스테로이드 호르몬인 디에이치이에이(DHEA)는 테스토스테론의 생산을 촉진한다. 이들 호르몬 덕분에 다시 졸음이 밀려오고 신체 온도 또한 상승해 다시 숙면에 들게 된다. 또 남성의 경우 아침 무렵엔 높아져 있는 테스토스테론 수준 때문에 건강한 아침 발기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6


단상 수면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밤사이 프로락틴이 이상수면보다 소량 분비되면서 다른 호르몬 분비 역시 부진해진다. 테스토스테론은 오전 느지막한 시간이 돼서야 피크에 이르며 프로락틴 또한 하루 종일 소량씩 찔끔찔끔 분비된다. 프로락틴은 성 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므로 테스토스테론이나 에스트로겐 수준은 전반적으로 낮아진다. 반면 프로락틴을 온종일 분비하도록 만드는 에스트라디올의 분비 수준은 높아지는데 이 고농도의 에스트라디올 때문에 우리 몸에 지방이 축적된다. 갱년기에 접어든 중년여성들의 두툼한 나잇살은 아마도 수면 장애로 인한 프로락틴 호르몬 변동 불균형 때문에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또 프로락틴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으면서 도파민 시스템과 생식샘 자극 호르몬 분비까지 망가져 성욕이 감퇴된다. 이 모든 나쁜 소식이 어쩔 수 없는 노화 현상이 아니라 인류가 지난 150년간 인공조명으로 대낮처럼 환해진 밤 생활을 즐긴 대가라면 우리 몸은 인류가 창조한 문명에 조용히 복수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한밤중에 깨어났다가 금방 다시 잠들게 되면 이것도 분할 수면, 즉 이상 수면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첫 번째 수면 후 적어도 한 시간 반 정도는 깨어 있어야 두 개의 분할된 수면으로 인식한다. 이보다 짧은 경우엔 중간에 수면을 방해받은 단상 수면(monophasic sleep)으로 인식해 이상 수면에서 나타나는 프로락틴 호르몬 급등과 생체시계에 따른 호르몬 분비가 뒤따르지 않는다. 7 수면 전문가 제시카 겜블은 이상수면을 취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수면 사이에 두 시간 정도 깨어 있으며 집중력이 최저로 떨어지는 시간으로 알려진 새벽 3시에서 4시 반 사이에 졸음을 유발하는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이 급등하면서 피로감을 느끼고 다시 잠자리에 들게 된다고 한다. 겜블은 일찍 자고 한밤중에 깨어 있는 패턴만 일정하게 유지하면 이상 수면을 하더라도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한다.

생체시계에 의해 지배되는 호르몬은 신체와 사고, 기분과 감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하지만 인공조명과 기술 발전이 창조한 24시간 사회는 인류가 수십만 년간 집적해 일체형으로 내장시킨 우리 몸의 생체 리듬을 깨고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인공조명은 인류에게 빛을 선물했으나 생체시계 교란이란 어둠 또한 가져왔다. 수면 시계를 몇 시간이나 뒤로 돌려놓는 바람에 잠을 몰아 자는 단상 수면을 일상화시켰기 때문이다. 시간 생물학자인 찰스 체이슬러(Charles Czeisler)는 “우리가 인공조명을 켤 때마다 수면에 영향을 주는 약을 무심코 먹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건강을 위해선 일찍 잠자리에 들고 대신 한밤중에 깨어나 저녁에 했을 일들을 처리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24시간 사회의 수면 관리
인류가 오랫동안 분할 수면을 해왔다는 점과 우리 생체 리듬엔 오히려 분할 수면이 적합하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가 수면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좀 더 유연하게 수면 현상을 대할 수 있게 해준다. 한밤중에 깨어났을 때 억지로 다시 자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1~2시간 소일하다 졸리면 다시 잠드는 게 정상적이고 건강한 행동이라는 얘기다.
이상 수면의 현대적 형태는 시에스타와 같은 문화적 관습이나 오후에 밀려드는 식곤증에 남아 있다. 점심식사 후 잠깐 낮잠을 자면 첫 번째 잠에서 깨어났을 때 더 맑은 정신으로 오랫동안 깨어 있을 수 있고. 전반적인 수면시간도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현재 인류의 20%는 원래 인간이 깨어 있던 시간(08:00~17:00)이 아닌 시간에 일하고 있다고 한다. 8 이들은 낮에 일하는 사람들보다 비만, 당뇨, 관상동맥질환 등의 발생률이 훨씬 높고 질병으로 인한 결근율도 높다. 수면 부족은 작업 효율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우리의 건강과 생명도 위협한다. 졸음운전은 교통사고 사망 원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연결된 24시간 사회가 도래하면서 남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깨어 있어야 하는 직업군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통적인 간호사, 의사, 파일럿, 군인, 경찰, 소방관뿐 아니라 최근에는 택배기사들까지 밤샘 근무가 일상화되고 있다. 이들 직군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양질의 수면 환경을 제공할 것인가는 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상수면과 관련된 연구들은 이들에게 더욱 유연한 수면 관리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전통적인 12시간 직무 전환제는 8시간이나 그보다 더 적은 시간으로 쪼개지는 게 우리 생체 리듬을 유지하는 데 더 적합할 것이다. 또 낮잠은 주간뿐 아니라 야간에 깨어났을 때도 각성 수준을 높여주며 수면시간 자체를 줄여준다. 낮잠을 허용하는 직장 문화는 업무의 효율과 속도를 확실히 높여줄 뿐 아니라 한밤중에도 중요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또 한밤중에 깨어나 활동하는 것도 건강한 행동이라고 사회 전체가 인식할 필요도 있다. 그렇게 되면 불면증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줄어 불면증 치료에 쏟아붓는 불필요한 낭비가 줄어들 수 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부는 한밤중에 깨어나는 걸 덜 피곤하게 여기면서 자녀 양육을 덜 힘들게 여길 수 있다. 무엇보다 한밤중에 홀로 깨어나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고 행복을 느끼는 고요한 시간은 끊임없는 비교와 과도한 경쟁으로 지친 현대인의 외로운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줄지도 모른다.

BBC 뉴스에 따르면 이상수면을 하는 사람들 중엔 한밤중에 일어나 기도나 요가를 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거나, 드라마를 몰아서 보기도 하고, 가만히 누워 좀 전에 꾸었던 꿈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산책을 하거나 밤거리 풍경 사진을 찍기도 한다고 한다. 9 이 모든 것들은 건강에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수천 년, 아마도 수만 년 동안 인류가 행해온 정상적인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한밤중에 깨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필자소개
이수정 경희대 치의예과(신경과학 전공) 교수 soojung.lee@khu.ac.kr
경희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호주 멜번 의과대학에서 신경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치의예과 치과생리학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수면, 압상스 간질, 비만과 치주염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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