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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메타버스 플랫폼 진입 전략

설계자 vs. 입주자, 참여 방법 선택하고
앱•웹과 다른 고객 경험 제공해야

이은경 | 329호 (2021년 09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새로운 비즈니스 장이 메타버스로 확장되고 있다. 기업들은 메타버스 시대 플랫폼의 설계자 혹은 입주자로서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이다. 메타버스 설계자는 막강한 자원을 보유한 기업에 1차적으로 유리할 수 있으나 종국엔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킬러 콘텐츠 서비스 제공이 핵심 경쟁 포인트다. 입주자는 치열한 경쟁 환경으로 인해 소비자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선택의 역설을 경계하고 현실 세계에서 제공 중인 서비스와 메타버스 속 서비스가 어떻게 다른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설계자와 입주자의 비즈니스 모델이 상이한 만큼 각 사에 맞는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비즈니스의 새로운 장, 메타버스

새로 알게 된 기업에 관심이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그 기업을 더 조사하기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스마트폰을 꺼내 웹 브라우저를 열고 기업명을 검색할 것이다. 만약 이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제품을 곧바로 이용하고 싶다면 홈페이지나 앱을 통해 바로 구매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웹과 앱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것은 오늘날 모든 기업의 필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됐다. 모두 1990년대에 인터넷이 상용화되고 2010년대에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가능해진 현상이다. 2030년대에는 ‘메타버스’가 앱과 웹을 능가하는 비즈니스의 새로운 장이 될 전망이다. 팬데믹으로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촉진되면서 이 시기는 2020년대 중반으로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록스의 일일 이용자는 4000만 명을 돌파했고 제페토의 누적 이용자 수는 2억 명에 달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메타버스 시장이 2030년, 1조5429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비즈니스의 장이 물리적 세계에서 웹의 세계로 확장되고 다시 앱의 세계로 진화할 때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기회를 붙잡은 기업들은 급격한 성장을 이끌어냈다. 앱이 본격 개화한 2009년 대비 2021년 구글(現 알파벳)의 시가총액은 9배, 애플의 시가총액은 35배 넘게 증가했다. 메타버스는 현재 개화 단계이기 때문에 어떤 기업이 부상하고 생태계가 어떻게 구축될지 예단하기는 이르다. 이런 시기에 기업은 어떤 자세로 변화를 준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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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가 될 것인가, 입주자가 될 것인가

먼저, 기업들은 메타버스 시대에서 플랫폼의 설계자가 될 것인지,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의 입주자로 참여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아마존이 될 것인지, 아마존에 입점한 커머스 업체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안드로이드 OS(운영체제)를 개발할 것인지, 안드로이드 OS를 기반으로 하는 앱을 개발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과도 같은 문제다.

지금 시점에서 메타버스 설계자로 활약하는 기업은 주로 포트나이트,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등의 게임 기반 기업이다. 또한 페이스북, 애플 등의 빅테크 기업이 막강한 기술력 및 사용자를 기반으로 조만간 거대 메타버스 설계자로 등판하리라 예상된다. 기업 비전이나 비즈니스 특성에 따라 메타버스 입주자로 포지셔닝하는 것도 효과적인 전략이다. 현재로서는 Z세대 고객과의 접점을 확보하려는 명품 업체들과 이미 Z세대를 주 고객으로 삼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사가 메타버스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설계자와 입주자는 메타버스에서의 역할 및 메타버스로 인한 비즈니스 모델이 상이하다. 설계자에게 메타버스는 그 자체가 회사의 자산이고 서비스이지만 입주자에게 메타버스는 비즈니스를 펼쳐 나갈 새로운 채널 혹은 판이다. 메타버스의 설계자와 입주자를 구분해서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1. 메타버스 설계자,
다(多)차원의 킬러 기능을 보유하라

메타버스의 설계자는 메타버스라는 공간을 전반적으로 기획, 디자인하고, 그 안에서 돌아가는 각종 콘텐츠와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주관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장의 임대인이 되는 셈이기 때문에 몹시 매력적인 비즈니스 영역이며 그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메타버스 설계자는 메타버스에서 활동할 개인 입주자는 물론 메타버스를 즐겁고 유익한 공간으로 만들어줄 여러 서비스와 콘텐츠 공급자를 확보해야 한다. 메타버스는 수요 측 고객과 공급 측 고객을 이어주는 양면 시장(Two sided market) 플랫폼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교차 네트워크 효과(cross-side network effect)가 발생한다. 다시 말해 수요 측 고객이 많을수록 공급 측 고객이 더 들어오고, 공급 측 고객이 많을수록 수요 측 고객이 더 들어온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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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측면에서 메타버스 ‘호라이즌(Horizon)’을 준비 중인 페이스북은 설계자로서 유리한 입지에 있다. 약 27억 명의 페이스북 사용자를 호라이즌으로 입주시켜 수요 측 고객을 비교적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두터운 자사 사용자층에 더해 몰입도 높은 VR 기술을 구현함으로써 메타버스 시대의 선도적 설계자가 되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현재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2012년 인수), 왓츠앱(2014년 인수) 사용자까지 더해져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기업이지만 모바일 앱 세계에서는 안드로이드(구글)와 iOS(애플)에 올라가야만 하는 입주자의 입장이다. 따라서 앱 세계의 설계자인 구글이나 애플이 개인정보 관련 정책을 변경할 경우 광고 매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시대에는 반드시 설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미 막강한 자원을 가진 기업만이 메타버스 설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생 기업도 킬러 기능이나 서비스를 갖춘다면 유망한 메타버스 설계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주목할 만한 기업은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이다. 디센트럴랜드는 동명의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반 가상현실을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제공한다. 2015년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고, 2017년 8월 ICO(초기코인공개) 1 를 통해 단 35초 만에 2600만 달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서비스는 2020년 2월 오픈했다.

‘세컨드라이프 + VR + crypto2 ’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디센트럴랜드의 기본 콘셉트는 메타버스를 대상으로 한 부동산 비즈니스다. 사용자는 디센트럴랜드에서 통용되는 가상 화폐 ‘마나(MANA)’를 가지고 디센트럴랜드 마켓플레이스에서 토지를 거래할 수 있다. 디센트럴랜드의 토지는 ‘랜드’ 단위로 거래되고, 1랜드는 현실 토지로는 약 16m×16m 규모로 가상 세계 안에 존재한다. 토지를 구매한 사용자는 이 안에서 건물을 짓거나 소셜 이벤트를 개최하는 등 자기만의 공간을 구축할 수 있다. 잘 가꾼 공간 안에서 비즈니스를 하거나 임대 및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것도 가능하다. 디센트럴랜드에서 벌어들인 마나는 가상 화폐 거래소에서 현실 화폐로 환전이 된다. 2021년 7월30일 기준, 10마나는 7.16달러로 거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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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트럴랜드의 현재 사용자 수는 페이스북이나 포트나이트 등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인 게 사실이다. 2021년 1월, 디센트럴랜드에 들어오는 DAU(일간 활성 사용자)는 약 150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개월 만에 DAU가 1만 명으로 증가하는 등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디센트럴랜드는 사용자에게 메타버스 대지를 제공하고 그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활동 자유도를 극대화했다. 그리고 메타버스에서의 활동이 현실의 경제 활동으로 직결될 수 있도록 블록체인 기반의 화폐 및 거래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러한 특징은 활동 자유도를 극대화하고 현실 경제와 연결돼야 한다는 메타버스가 추구해야 할 지향점과 일치한다. 따라서 기존의 소셜네트워크나 게임 서비스를 기반으로 메타버스로의 진화를 도모하는 페이스북, 포트나이트보다 메타버스 설계자로서 유리한 점이기도 하다. 즉, 메타버스에 입주해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로 자유롭게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싶은 입주자들에게는 디센트럴랜드가 상대적으로 더 매력적인 플랫폼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한 미술관이 메타버스 안에 갤러리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오프라인에서 보유하고 있는 미술 작품들을 디지털로 변환한 후,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 자산으로 만들고 이를 메타버스에서 전시하고자 한다. 메타버스 갤러리에 입장하는 유저에게 소정의 입장료를 받고, 작품 구매를 희망하는 사람에게는 갤러리 안에서 바로 디지털 작품 혹은 실물 작품을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나 포트나이트에서는 아직 이 미술관의 비즈니스를 지원할 만한 활동 자유도나 화폐 시스템이 없다. 그러나 디센트럴랜드에서는 가능하다. 토지를 사서 갤러리 건물을 구축한 뒤, 소유하고 있는 디지털 작품들을 전시하고, 갤러리를 운영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2. 메타버스 입주자,
인터넷•모바일과 차별화된 고객 경험 고안하라

메타버스 시대 초반에는 설계자들 간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메타버스가 네트워크 효과를 가진 양면 시장 플랫폼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2강 혹은 3강 수준의 과점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모바일 앱 세계에서도 초반에는 심비안, 블랙베리, 타이젠과 같은 다양한 운영 체제가 경쟁을 벌였으나 결국 안드로이드와 iOS 양강 체제가 굳어진 것과 같은 원리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기업에는 메타버스를 설계자로서 바라보기보다 입주자로서 활용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보다 빠르고 안전한 전략이다.

그렇다면 메타버스 초창기인 현재 메타버스에서 비즈니스를 펼치기에 수월한 입주자는 어떤 기업일까? 먼저, 디지털로 서비스가 가능하며 아바타를 통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이 메타버스 진입에 유리하다. 게임이나 SNS가 현재 메타버스의 주요 서비스인 이유다. 이 맥락에서 제1 금융권 기업들의 메타버스 진출을 흥미롭게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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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은 7월1일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Gather.town)’에 ‘KB금융타운’을 오픈했다. 온라인 뱅킹, 모바일 뱅킹이 활성화되면서 대폭 축소됐던 은행 영업점이 메타버스에서 부활한 것이다. 게더타운 플랫폼의 특성상 그래픽은 단순한 편이지만 메타버스 내 가상 영업점인 ‘KB금융타운’은 실제 은행 내부와 유사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사용자가 아바타로 KB금융타운에 들어가면 마찬가지로 게더타운에 접속한 KB국민은행의 직원과 화상 대화를 하며 상담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두 아바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카메라가 켜지고 화상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메타버스 내 KB금융타운에는 금융업무를 위한 공간뿐 아니라 사내 재택근무자들의 소통 및 협업 공간, 공원과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놀이 공간도 조성돼 있다.

하나은행은 네이버 Z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우리은행은 SK텔레콤의 플랫폼 ‘점프 버추얼 밋업’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금융사들의 메타버스 입주는 아직 실험 단계이지만 미래의 금융 혁신을 메타버스에서 발현하려는 전략을 확인할 수 있다.

입주 기업이 고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인터넷, 모바일과 차별화된 메타버스만의 고객 경험이다. 예를 들면 현재 온라인 쇼핑의 경우 약 20여 년 전인 웹 초기 시절에는 온라인 사기, 배송 지연과 같은 다양한 문제를 겪었다. 지금과 같은 안전한 결제 시스템과 신속한 물류 시스템이 갖춰지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은 ‘집 안에서의 쇼핑’ ‘24시간 가능한 쇼핑’ ‘편리한 가격 비교’ ‘오프라인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등 오프라인과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기에 앞서 제기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며 성장 가도를 달려왔다. 아직 메타버스 안에서의 실물 쇼핑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다. 메타버스 쇼핑이 지금까지의 온라인 쇼핑과 다른 어떤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가 메타버스 진입을 고려하는 커머스 업체가 풀어야 할 숙제다.

이 같은 방향성이 정립된 이후에는 자사 비즈니스에 가장 적합한 메타버스 플랫폼이 어디일지 선택할 수 있다. 생생한 VR 콘텐츠로 새로운 고객 경험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디센트럴랜드보다 페이스북의 호라이즌이 더 적합한 메타버스 플랫폼일 것이다. 아바타나 게임의 요소를 활용해 메타버스 비즈니스의 차별점을 확보하려는 기업은 로블록스나 포트나이트 입주를 고려할 것이다. 자사의 메타버스 고객 경험을 지원해줄 플랫폼이 없다면 직접 개척을 하거나 주요 플랫폼과 파트너십을 맺고 개발 협업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메타버스만의 고객 경험을 형성해가는 대표적 사례는 교육 업계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디지털 전환이 급가속화된 교육산업을 살펴보면 단순히 화상 비대면 수업과 같은 소극적 차원이 아닌 교육 공간을 메타버스로 옮겨온 적극적 차원의 변화도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기존 온라인 강의나 행사는 주로 단방향의 전달 위주이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오프라인에 비해 직접 참여한다는 ‘현장감’이 덜하다. 그러나 메타버스에서의 교육은 오프라인과 유사한 공간 속에서 아바타를 활용함으로써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오프라인 교육이 팬데믹 이전으로 재개되더라도 교육 측면에서 메타버스만의 고객 경험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할 수 있다. 향후 VR, AR 기술로 메타버스 안에서 실감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면 역사나 과학 교육 콘텐츠를 매우 생동감 있게 체험하며 배울 수 있게 된다. 로마시대를 복원한 VR 메타버스에서 당시의 전쟁, 정치, 건물, 의복 등을 경험할 수 있고 인체 내부를 AR로 구현한 메타버스 콘텐츠로 의대생이 가상 수술 실습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같이 메타버스 시대에 걸맞은 교육 콘텐츠를 갖춘 기업은 주요 메타버스 플랫폼들의 입주 러브콜을 받게 될 것이다.

메타버스 설계자 경쟁이 종식돼 2강 혹은 3강의 구도가 형성되고, 메타버스 입주에 필요한 절차가 시스템화되는 시점에는 기업들이 메타버스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하기에 매우 수월할 것이다. 지금 안드로이드 OS 위에서 앱을 개발하거나 아마존에 판매자로 들어가 온라인 쇼핑 비즈니스를 하기가 어렵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메타버스 시대 초기부터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로 시장을 개척하는 입주 기업은 더 빠르고 더 거대한 성장을 이뤄갈 수 있다.

메타버스 시대의 함정, ‘선택의 역설’

설계자가 판을 벌이고, 입주 기업이 콘텐츠를 채우고, 개인 입주자들이 들어와 새로움을 누리는 메타버스. 아직 초창기이긴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시대의 흐름은 분명 메타버스를 차세대 비즈니스의 장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그러나 메타버스 시대가 본격화됨에 따라 주의해야 할 사항도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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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가 직면할 가장 큰 난관은 수많은 선택지가 주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일 것이다. 메타버스 속 선택의 역설 문제는 역설적으로 유저 활동의 자유도가 매우 높은 메타버스의 장점 때문에 발생한다. 메타버스의 가장 큰 특징은 메타버스에 들어온 고객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탐험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연속성 있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쇼핑을 위해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소통을 위해 SNS 플랫폼으로, 공부를 위해 교육 플랫폼으로 각각 접속해서 활동하지만 메타버스는 이 모든 활동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제공한다. 사용자가 직접 무언가를 생산하고 거래하는 창의적인 활동도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메타버스 이전 시대를 초월하는 수많은 선택지가 생긴다.

선택의 역설이란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가 제시한 행동경제학 이론으로,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질 경우 소수의 선택지만 있을 때보다 만족도가 떨어지거나 선택 자체를 포기한다는 내용이다. 선택의 역설은 실험을 통해 증명됐다. 마트 시식대에 잼을 6종류 뒀을 때 고객의 30%가 결국 잼을 구매했으나 같은 조건에서 잼을 24종류 뒀을 때는 단 3%만이 구매했다. 전통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졌으니 고객은 자신의 취향에 더 잘 맞는 제품을 선택해 구매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고객에게 과도한 비교로 인한 인지 부하를 초래해 선택을 아예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집에서 TV 리모컨으로 프로그램을 고르다가 수백 개의 채널을 그냥 넘겨버린 경험도 ‘선택의 역설’의 일종이다. 볼 만한 프로그램이 화면에 나와도 뒤에 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선택을 미루다가 결국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마는 것이다. TV보다 훨씬 더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넷플릭스는 이 선택의 역설을 ‘맞춤형 추천’으로 해결했다. 사용자와 콘텐츠에 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추천을 제공하는 것은 이제 넷플릭스뿐 아니라 대부분의 인터넷 활용 업체가 사용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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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메타버스는 기존 단일 서비스 업체들과 ‘맞춤형 추천’의 맥락이 다소 다르다. 메타버스 안에서 이동, 탐험, 구매, 생산, 소통한 모든 행동이 로그로 쌓이며, 이 데이터들은 이질적인 특성을 갖는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적절한 분석이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다. 예를 들면 넷플릭스는 ‘영상 콘텐츠’ 관련 데이터로 ‘영상 콘텐츠’를 추천하고, 아마존은 ‘쇼핑’ 관련 데이터로 쇼핑할 물품을 추천한다. 데이터의 양은 많아도 종류가 동질적이기 때문에 머신러닝 등의 패턴을 파악하는 분석 기법으로도 맞춤형 추천 알고리즘이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서는 단순히 데이터의 양뿐 아니라 데이터의 종류와 범위가 훨씬 방대하다. 메타버스에서 이 같은 구매 관련 추천은 일부일 뿐, 소비자가 상품 및 서비스를 인지하고 내게 유익할지 고려하며 나아가 이 같은 구매 결정이 얼마만큼의 만족도를 줬는지, 다른 사용자에게 제품을 추천하는지 등 데이터까지 하나로 분석해야 한다.

기존의 웹이나 모바일 플랫폼에서 이 같은 연속적인 데이터는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제각기 수집돼 통합적인 분석이 어려웠다. 그러나 메타버스에서는 고객 여정 단계마다 연속성 있는 데이터가 수집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분석이 가능하다. 메타버스에서 수많은 선택지를 앞둔 사용자들에게 적합한 맞춤형 추천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하는 행동경제학적 접근 방법이 필요한 이유다. 개인의 여러 행동으로부터 종합적으로 그 사람의 니즈와 욕망을 읽어내야 한다.

메타버스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장을 열어가려는 기업들, 특히 설계자로서 플랫폼의 전반적인 사회경제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고객을 모으려는 기업들은 메타버스가 직면할 ‘선택의 역설’과 행동경제학적 데이터 분석을 통한 메타버스만의 ‘맞춤형 추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메타버스 입주 기업 역시 이러한 시스템이 잘 갖춰진 플랫폼에 탑승해야만 효과적으로 메타버스 안에서의 비즈니스를 영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메타버스의 설계자는 현실 세계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쇼핑몰을 구축하거나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도시 전체를 기획하는 셈이다. 사람들은 이 도시가 여행할 만하다고 생각하면 찾아와서 먹고 이동하고 쇼핑할 것이다. 지내기에 좋다고 판단된다면 더 오래 거주하며 자신만의 생산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다. 어떤 도시에 사람이 몰리고 비즈니스가 활성화될지는 1차적으로 그 도시가 가진 볼거리, 즐길거리 및 시스템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이 충분히 갖춰진 이후에는 도시를 찾은 고객이 도시를 잘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여행 가이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여행 가이드는 고객의 기호에 따라 맛집을 소개해주거나 관광지를 추천해준다. 메타버스 역시 플랫폼이 갖춰진 이후에는 메타버스에 접속한 이용자 개개인에게 맞춰 쇼핑, 네트워킹, 게임 등을 제안하는 여행 가이드가 필요하다. 한 발 앞을 내다보는 메타버스의 설계 기업, 그리고 비즈니스하기 좋은 최적의 메타버스를 물색하는 입주 기업은 이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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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 접목한 데이터 분석 전략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선 메타버스 시대에 과연 어떤 기업이 막강한 설계자로서 메타버스를 운영하게 될지가 메타버스에 주목하는 전 산업의 최대 관심사다. 로블록스나 제페토처럼 방대한 Z세대 사용자를 기반으로 현재 메타버스를 선도해가는 기업, 페이스북처럼 VR/AR 기술을 혁신의 모멘텀으로 기획하는 기업, 디센트럴랜드처럼 블록체인을 활용해 현실과 직결된 경제 시스템 구축에 집중하는 기업 모두에게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한편 어느 기업이 메타버스 시대를 주도하든 고객을 더 잘 이해하고 가이드하는 것은 설계자에게나 입주자에게나 필수적이다. 기존의 방식보다 한층 더 통합적이고 깊이 있는 데이터 수집 및 분석 기술은 메타버스 플랫폼의 보이지 않는 핵심 역량이 될 것이다. 2000년대에는 딥러닝의 등장이 데이터의 패턴 분석 및 AI 기술이 새 분기점을 맞이하고 비즈니스의 뒷단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부터는 사용자의 다차원적 로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행동경제학을 접목한 데이터 분석 기술이 메타버스가 직면할 선택의 역설을 해소할 수 있을지, 또 이를 통해 메타버스가 지속가능할 수 있을지가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은경 센티언스 최고전략책임자(CSO) ek.lee@sentience.rocks
필자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IT 산업 분석 및 전략 수립 업무를 담당했으며 KAIST 경영대학원에서 ‘온라인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소비자 행동 및 기업 전략에 미치는 영향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행동경제학 AI 기반으로 게임 유저들을 분석해 개인화 오퍼를 제공하는 솔루션 기업 센티언스의 CSO로 재직 중이며 메타버스의 의미와 배경, 주요 기업의 방향성, 전략 등을 정리한 『메타버스 백서(Whitepaper on Metaverse)』 발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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