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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길림양행 ‘HBAF’ 리브랜딩 전략

“H는 묵음이야”의 그 아몬드
맛도, 마케팅도 ‘바프 스타일’ 신화를 쓰다

이규열 | 318호 (2021년 0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길림양행은 과감하고 개성 강한 패키지와 재료 본연의 맛을 충실하게 구현해 허니버터아몬드를 소비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될 수 있게 했다. 시식과 묶음 행사와 같은 프로모션, 말을 거는 듯한 아몬드 캐릭터 등 다양한 마케팅•세일즈 요소들로 소비자들이 브랜드와 소통할 수 있는 경험을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설계했다. 제품의 특성을 설명하는 게 일반적인 저관여제품 시장에서 브랜드 이름 자체를 강조한 광고 전략을 펼친 결과 ‘HBAF(바프)’라는 새로운 이름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파급력을 얻고, 리브랜딩에도 성공했다.



“H는 묵음이야.”

올 2월부터 온에어되기 시작한 한 아몬드 회사 광고에서 CF퀸 전지현이 던진 말이다. 전지현이 산책을 하고, 드라이브를 하고, 캠핑을 하고, 홈술을 하며 먹는 이 아몬드를 만든 회사의 이름은 길림양행이다. 길림양행은 몰라도 ‘만수르도 먹는 K아몬드’ ‘허니버터아몬드’는 한번쯤 들어봤을 소비자들에게 ‘HBAF(바프)’라는 새로운 브랜드가 공식적으로 선포되는 순간이었다.

‘바프’를 출시한 길림양행은 34가지 맛의 아몬드 및 견과류를 16개가 넘는 국가에 수출하면서 연간 14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20년 한 해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1억215만 봉지의 견과류를 팔아 치웠다. 식품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영업이익률도 10% 이상이다. 그만큼 아몬드로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막강하다는 의미다.

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중소 식품업체가 유통업계에 처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5년 허니버터아몬드를 선보이면서부터다. 허니버터칩 신드롬이 일면서 허니버터치킨, 허니버터오징어, 허니버터김자반 등등 허니버터 이름을 단 제품들이 무수히 쏟아졌으나 허니버터칩을 포함해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건 이 회사의 허니버터아몬드가 유일하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제품명부터 패키징 디자인까지 비슷한 무수한 카피 제품들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외국인 사이에서 최고의 한국 여행 선물로 꼽히면서 이름을 알린 허니버터아몬드가 내수 시장에서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마늘빵아몬드•군옥수수맛아몬드 등 다양한 아몬드 제품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배경에는 ‘패키지’와 ‘맛’을 바탕으로 한 개별 제품의 경쟁력이 있었다. 그리고 비슷비슷한 제품군 사이에서 브랜딩을 통해 승부를 걸려는 전략이 주효했다. 윤문현 길림양행 대표는 개별 제품의 히트와 초기 브랜딩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바프의 모든 제품을 하나의 브랜드로 인지시키려는 일종의 ‘리브랜딩’ 전략을 구사하며 주목받고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윤 대표와 백순흠 기획개발실장을 만나 길림양행의 브랜딩 전략, 특히 바프를 중심으로 한 리브랜딩 전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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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버터아몬드의 성공 신화

아버지 윤태원 회장에 이어 2006년부터 회사 경영을 맡기 시작한 이후, 윤 대표가 품은 가장 큰 고민은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었다. 아몬드 시장 자체가 심각한 레드오션이기 때문이다. 아몬드를 수입해 국내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회사로 출범한 길림양행은 90년대 이후 아몬드 수입 과정이 간소화되자 오히려 힘을 잃기 시작했다. 전 세계 최대 아몬드 회사 ‘블루다이아몬드’의 국내 독점 라인이라는 경쟁 우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물론 도매상들도 직접 아몬드를 수입했다. 무역 자체가 무기였던 회사로서 원가보다 저렴하게 파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었다.

원료를 가공하면 제품의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길림양행은 2010년 무렵 대형마트들이 진행하는 아몬드 PB(자체 브랜드) 사업에 발 빠르게 참여해 아몬드 제조의 기틀을 닦았다. 하지만 PB상품 특성상 소비자 가격 자체가 저렴하다 보니 마진이 적었다. 또한 PB 시장에서도 견과류 제조사들 사이에서의 치킨 게임이 시작될 조짐이 보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하던 아몬드 사업을 지켜본 윤 대표 눈에는 미국 업체인 ‘피셔(Fisher)’의 허니로스티드 땅콩이 다른 브랜드들보다 대단해 보였다. 비행기에 타면 주는 ‘비행기 땅콩’이라는 브랜드 인지도가 큰 각인 효과를 발휘했다. 그는 남들과 비슷한 물건을 파는 업종에 있다면 더더욱 차별화된 ‘브랜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윤 대표는 시장 플레이어가 많아져도 다양한 맛의 제품을 갖추고 있으면 그 자체가 브랜드로 인지되고, 다양한 맛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니버터아몬드가 경쟁력 있는 브랜드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준비 과정에는 어떤 요소가 있었을까.

1. 패키지 디자인의 문법을 깨다

브랜드가 되기 위해 윤 대표가 처음 손을 뻗은 건 패키지 디자인이다. 지금이야 가게에서 개성 넘치는 패키지를 찾아보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불과 10여 년 전 마트에서 사 먹던 땅콩 포장을 생각해보면 일관된 특징이 있다. 투명한 포장재 안에 든 땅콩이 고스란히 보이거나 라벨에 제품 실물 사진이 크게 박혀 있는 디자인이 일반적이었다. 견과류 업체 사이에서 디자인은 핵심 역량이 아니었다. 이미 시장에 디자인 문법이 정해져 있었고 업체들은 따르기만 하면 됐다. 그는 천편일률적으로 생긴 제품들 사이에서 유독 튀는 패키징을 만들면 소비자들 사이에 제품을 강하게 인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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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대에서 제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아몬드 원료 제품 겉면에 ‘베스트밸류(Best Value)’1 라는 문구와 엄지손가락 그림을 넣었다. 같은 가격에 최상의 품질로 보답하겠다는 의미다. 유통사에서는 이 패키징을 싫어했다. 윤 대표가 만든 ‘규칙 밖의 도전’을 반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2014년 연말, 없어서 못 파는 허니버터칩 열풍이 일었다. 특정한 맛이 신드롬이 되자 편의점들은 허니버터맛을 활용한 제품들을 개발해달라고 다양한 식품 제조사에 요구했다. 허니버터아몬드도 그중 하나였다. 편의점들이 어떤 제품이든 완성작을 어서 가져오라고 닦달하는 긴급한 상황이었던 만큼 패키징을 신경 쓸 것 같지 않았다. 패키징 하나만으로 브랜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윤 대표도 잘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브랜드답게’ 보이는 제품을 내놓고 싶었다. 대학원생 디자이너를 급하게 섭외했다.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브랜드가 되고 싶었기에 아무것도 참고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구상한 이미지를 디자이너의 손을 통해 구현해냈다. 아몬드 모양의 귀여운 캐릭터를 그리고, 배경은 아몬드와 버터의 실물 느낌을 살리면서 펜 터치를 많이 사용하도록 했다. ‘허니버터아몬드’라는 제품명 아래에는 벌집과 같은 육각형 모양을 넣었다.

이렇게 2015년 길림양행의 허니버터아몬드가 편의점 체인 GS25를 통해 처음으로 출시됐다. 허니버터아몬드의 인기는 윤 대표의 예상을 훌쩍 웃돌았다. 출시 첫 달 매출 2억 원을 기록한 후 그다음 달에는 10억 원, 그다음 달에는 20억 원씩 팔렸다. 중국에서도 바이어가 먼저 찾아와 수출을 제안했다.

허니버터아몬드의 대성공 이후 이 제품의 디자인은 시즈닝 아몬드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카피 제품들이 무분별하게 등장하면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위협받게 됐다. 한때 허니버터아몬드를 판매하는 업체는 길림양행을 포함 10곳 이상이었는데, 포장 디자인이 헷갈려 타사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도 많았다. 일부 경쟁사에 대해서는 상표 무효심판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는 등 허니버터아몬드 브랜드의 핵심 요소인 디자인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한동안 이어졌다.

소송에서는 ‘전체적으로 꿀이 버터와 함께 흘러내리는 모습’ ‘아몬드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부분’ ‘꿀벌을 의인화한 캐릭터 3마리가 버터 조각 위에서 만세를 부르거나, 버터 조각을 들고 날아가거나, 꿀단지 상단에서 꿀이 묻은 도구를 들고 있는 등의 모습’2 과 같이 윤 대표가 브랜드답게 보이고 싶어 넣은 요소들이 식별력을 인정받아 원조 허니버터아몬드라는 명성을 지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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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계속 성장하자 제조부터 영업까지 모든 업무를 직접 도맡아 하던 윤 대표가 제품 개발을 주도적으로 이끌기 힘들게 됐다. ‘카라멜아몬드 앤 프레첼’ 이후 백순흠 기획개발실장이 제품 개발을 담당했다. 윤 대표의 중•고등학교 동창이자 홍익대에서 디자인을, 미 파슨스대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후 유명 레스토랑에서 신제품 개발을 담당하던 디자인 및 요식업계 전문가였다.

백 실장이 합류한 이후 패키지 디자인의 목적과 방향성이 잡히기 시작했다. “매장에 진열된 수많은 제품 중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 초도 구매를 유도하라.” 이것이 길림양행이 지향하는 디자인이었다.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선명한 색상을 주로 사용하고, 다소 파격적인 테마를 디자인에 녹이기 시작했다. 서울시와 함께 기획해 서울의 밤을 표현한 ‘청양마요아몬드’는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동시에 즐길거리가 많은 ‘다이내믹 서울’의 모습을 맛과 디자인에 담고자 했다. 서울 중심가 포장마차에서 열심히 하루 일과를 마친 직장인들이 먹태에 소주를 기울이며 회식을 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얻어 제품을 개발했다. ‘술에 취해 쓰러진 아몬드 캐릭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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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실장은 “패키지 디자인도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며 패키징에 창의적 시도들을 녹이고 있다. 허니버터맛에서는 꿀벌이던 아몬드 캐릭터가 와사비맛 이후로 아몬드에 팔과 다리를 붙여 의인화한 덕분에 캐릭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상황 묘사가 가능해졌다. ‘인절미아몬드’에는 유명 민속화 중 하나인 김홍도의 ‘씨름’을 오마주했다. 씨름하는 두 사람 대신 두 아몬드 캐릭터가 인절미 떡을 친다. 그 뒤로 ‘양반 아몬드’와 ‘상민 아몬드’가 함께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인절미아몬드를 팔고 있는 캐릭터, 구경하는 뒷모습을 그린 캐릭터까지 원작의 구도를 충실히 반영했다. 흑임자아몬드는 배경을 수묵화 느낌으로 표현했다. 대신 밋밋하지 않도록 캐릭터들이 입은 한복에 강한 원색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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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디자인 전공자들이 봤을 때도 창의적인 상품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는 백 실장은 디테일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캐릭터들의 표정도 픽셀 단위로 세심하게 조정해 표현한다. 패키징 상단과 뒷면, 심지어 바닥까지 제품 전체에서 한 곳도 놓치지 않고 제품 특성에 맞게 각기 다른 디자인을 적용했다.

백 실장은 “특히 경영진이 시각적으로 얼마나 예민한지가 패키지 디자인의 수준을 결정한다”며 “개인적 안목에다 성공 노하우까지 체득한 윤 대표와 바프의 제품, 프로모션, 매장 디자인뿐 아니라 자동차, 가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에 대해 종종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토론하고 있다”고 말했다.

2. 제품 이름에 맛을 새기다

허니버터아몬드 맛의 비결은 당액 코팅에 있다. 튀긴 아몬드 위에 시즈닝을 묻히는 통상의 공정과는 달리 길림양행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당액 코팅을 구운 아몬드에 바르고 그 위에 시즈닝을 입힌다. 그 덕에 혀에 닿았을 때 짠맛으로 시작했다 단맛으로 끝나는 풍부한 맛이 탄생했다. 허니버터의 ‘단짠’ 매력을 층층이 구현해 낸 것이다. 유통 과정에서 기름이 말라 시즈닝이 아몬드에서 떨어지거나 산패가 빨리 진행되는 등 기름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품질 문제도 해결했다.

백 실장이 합류한 이후 맛에 있어서도 확고한 개발 방향이 정해졌다. 아몬드 및 당액 코팅과 잘 어울리는 건 물론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알 수 있는 ‘보편타당한 맛’을 제품으로 기획한다. 아몬드와 조화롭게 어울리는 완벽한 맛을 찾기 위해 100번 가까운 샘플 테스트를 거치거나, 더 개선할 점이 없는지 점검을 하다 완성된 제품의 출시가 몇 달씩 미뤄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대표 제품인 허니버터아몬드 외에도 다양한 맛을 표방하는 다른 제품들에서도 세심한 맛을 제대로 표현해 내기 위해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재료의 근원’을 찾는다. 티라미수는 에스프레소 위에 마스카르포네 치즈가 섞인 반죽을 올리고 코코아 파우더를 토핑으로 마무리하는 이탈리아의 대표 디저트다. 그러나 티라미수를 표방하는 스낵류의 제품 중 에스프레소가 생략되거나 마르카르포네 치즈 대신 생크림을 사용하는 제품이 다수다. 길림양행은 편법을 택하지 않고 티라미수 본연의 맛을 아몬드에 녹이기 위해 집중했다. 티라미수의 기원과 변천 과정까지 추적하며 원두와 코코아 종류를 선정하고, 코팅 순서도 실험해 레서피를 개발했다.

물론 아몬드와 당액과의 조합을 생각하면 본연의 맛보다는 다소 변형이 필요한 맛도 있다. 이 과정에서는 신메뉴 개발 경험이 있던 백 실장은 물론, 평소에도 유명한 맛집들을 돌아다니며 맛을 음미하는 것을 취미로 삼아 온 미식가 윤 대표의 직관과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허니버터아몬드의 뒤를 이은 와사비맛아몬드 개발 과정에서는 코를 찌르는 맛을 리얼하게 살려 소수의 마니아를 잡을지, 와사비의 맛을 줄여 대중적인 맛으로 만들지가 고민이었다. 윤 대표는 와사비는 음식과 곁들여 먹는 게 일반적인 만큼 와사비 자체의 맛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스테이크에 생와사비를 찍어 먹는 정도’의 맛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렇게 탄생한 와사비맛아몬드는 국내에서도 반응이 좋았고, 특히 중국과 홍콩에서 잘 팔리는 수출 효자 품목이 됐다.

곧 출시 예정인 ‘헤이즐넛봉봉’도 레스토랑에서 힌트를 얻어 완성도를 높였다. 설탕 당액 위에 초콜릿이 얹어지니 헤이즐넛 특유의 부드럽고 고소한 향기가 묻히고 너무 달아지는 단점이 있었다. 각종 찻잎을 뿌려 향과 맛을 더하는 레스토랑 디저트를 떠올린 것이 고민을 푸는 열쇠가 됐다. 레스토랑 레서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차 코팅에 얼그레이 원액을 섞었더니 약간의 떨떠름한 맛이 더해지면서 헤이즐넛 본연의 매력이 더욱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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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각인시키는 ‘경험’ 설계

고객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남겨주는 일은 팬데믹 시대, 리테일의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3 젊은 소비자를 잡기 위한 온라인 마케팅 역시, 창의적으로 보이기 위해선 좀 더 고도화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길림양행은 아몬드란 제품을 둘러싸고 소비자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선사하는 시도를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1. 통 큰 시식 마케팅

길림양행은 오프라인 매장의 경험 설계를 2019년 12월, 서울 명동에 오픈한 ‘HBAF (Honey Butter Alomond & Friends, 허니버터아몬드 앤드 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에 녹여냈다. 플래그십 스토어를 낸 이유는 당시 명동의 대형 상점들이 특히 외국인 관광객 수요를 겨냥해 길림양행의 아몬드 제품들을 지나치게 싸게 팔거나 타사 제품과 묶어 파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애써 만든 브랜드 가치를 지키고, 브랜드 이미지를 좀 더 직관적으로 알리기 위해 당시 월세만 3억 원에 달했던 부지, 명동역 6번 출구 바로 앞에 매장을 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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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매장이라기보다는 공간 구석구석에 경험을 가득 채워 넣은 ‘바프 테마파크’에 가까웠다. 다양한 제품을 알리기 위해 시식에 가장 큰 공을 들였다. 당시 출시한 20여 종의 모든 제품이 매대에 깔렸고, 그중 주요 제품 7개를 고객들이 시식해볼 수 있었다. 매장은 제대로 둘러보지도 않으면서 제품만 한가득 집어 가는 소비자들도 많아 한 달 시식 비용만 8000만 원씩 나갔지만 시식 경험이 구매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었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다 보니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줄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 평균 매출 15억 원이라는 실적을 낼 수 있었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수익보다는 홍보’라는 인식을 깨고 그 자체로 튼튼한 수익 모델이 된 것이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 스토리’를 알리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 많아 봤자 매대 두 칸에 한두 종류를 진열할 수밖에 없는 유통업체와 달리 마음껏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진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품 탄생 스토리를 캡션 형식으로 전시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여섯 살배기 아들에게 힌트를 얻었죠. 평소 견과류를 멀리하던 녀석이 빙수에 토핑한 아몬드만큼은 즐겁게 먹는 모습이 놀라웠습니다. 비결은 잔뜩 버무린 콩고물과 연유,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있었죠. 그 맛을 정확히 구현하기 위해 전통적인 인절미 콩고물에 여러 재료를 적절히 배합했습니다. 인절미 떡보다 더욱 부드럽고 달콤하며 고소한 인절미아몬드는 그렇게 탄생했죠.”

패키징 속 캐릭터들도 ‘현실 세계’에 등장해 고객들을 반겼다. 인형, 에코백, 컵, 펜 등 다양한 캐릭터 굿즈도 선보였다. 캐릭터들과 함께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아기자기한 포토존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오픈 초기부터 인기를 끌던 플래그십 스토어는 2020년, 예기치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오픈 3개월 만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주 고객이던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기자 길림양행은 내수 시장을 붙잡는 데 사력을 다해야 했다. 팬데믹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제조사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수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유통가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견과류 제품 시장도 정체됐다. 어떤 행사를 기획해도 매출이 기대한 만큼을 넘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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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표는 당시 23주년 행사를 앞둔 홈플러스를 찾아가 팝업 스토어를 제안했다. 플래그십 스토어에서처럼 시식을 중심으로 소비자들의 경험을 기획했다.

이번에는 34종 전부를 시식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방역이 최우선 과제인 시기인 만큼 외부 노출을 최소화한 전용 시식통도 제작했다. 팝업 스토어용 매대도 모듈 형식으로 만들어 팝업 스토어 장소가 바뀔 때마다 매대를 제작하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이벤트 코너가 자취를 감춘 마트에서 시식은 그 자체로 최고의 경험이었다. 고객들은 줄을 서서 여러 종류의 아몬드를 맛보고 어떤 맛이 더 맛있는지 치열하게 토론했다. 다행히 홈플러스의 시식 행사는 성황리에 끝났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경험’을 원한다는 점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렇게 성공 데이터를 토대로 홈플러스뿐 아니라, 스타필드, 이마트, 롯데마트, 교보문고 등으로 팝업 스토어 채널을 확장했다. 스타필드에서는 전체 팝업 스토어 매출 1∼2위를 차지하는 인기 코너가 됐다. 팝업 스토어에서의 판매 데이터가 흥행의 증거로 작용하면서 각 유통업체는 상설 매대에서도 길림양행 제품의 진열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2020년, 마트 매출은 오히려 전년 대비 25% 늘었다.

2. 프로모션도 ‘묶음’으로

자사 몰 ‘HBAF 스토어’에서는 캐릭터와 프로모션을 활용해 소비자 경험을 구축했다. 패키지에 새겨진 캐릭터들이 단톡방에 모여 대화를 주고받는 콘셉트로 제품을 소개했다. 소비자들은 아몬드 캐릭터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모바일 쇼핑이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커머스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스마트폰 환경에 적합한 세로 화면으로 페이지를 꾸몄다. 자사 쇼핑몰에서의 요일별 행사도 성공을 거뒀다. 월요일마다 공식 몰에서 6+1, 사이즈 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아몬데이’는 공식 프로모션으로 자리 잡아 월요일 평균 매출이 다른 요일 대비 2배 이상 높다.

자사 몰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프로모션 전략도 고도화했다. 소비자들이 즐겨 먹는 한 제품만 고집하기보다 여러 종류의 맛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묶음 상품을 대대적으로 프로모션했다. 이런 프로모션을 통해 ‘뜻밖의 맛’을 접한 소비자들은 이후 이 제품을 재구매했고 향후 더욱 다양한 제품을 시도했다.

2020년 초반만 해도 월 1억 원에 불과하던 국내 온라인 매출이 연말 무렵에는 12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온라인 전체 매출에서 자사 몰이 차지하던 비중도 2020년 평균 7%에서 현재 19%까지 커졌다.

해외 매출 전체에서 6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은 인플루언서인 ‘왕훙’이 직접 제품을 추천해주는 라이브 커머스를 주축으로 수입 아몬드 판매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국에서는 전문 쇼호스트보다 왕훙이나 아이돌이 직접 사용하는 제품을 소개할 때 소비자들이 더 큰 신뢰를 느낀다. 식품업계의 ‘톱 3’ 왕훙으로 꼽히는 ‘리쟈치’ ’웨이야’ ’쉐리’를 포함, 인플루언서들과 협력 관계를 맺고 기획한 생방송들이 잇따라 히트하면서 관광객이 끊기면서 주춤해진 오프라인 매출을 만회하고 있다.

‘바프’로 리브랜딩 도약

길림양행은 회사의 성장을 위해 리브랜딩을 통한 브랜딩 강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온•오프라인에서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홍보가 활발히 이뤄지면 다양한 제품이 고루 판매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비자들이 잘 몰랐던 독특한 맛들의 정체를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실제 구매로도 이어지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하나의 제품이 아닌 브랜드 전체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 일부 인기 제품에 편중된 매출 구조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작년 미국의 아몬드 풍년이 리브랜딩을 하기로 결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당 3∼4달러 선이던 아몬드 가격의 수요가 2달러대까지 떨어지면서 영업이익이 개선되는 뜻밖의 호재를 겪은 것이다. 윤 대표는 “여기서 발생한 이익을 미래 매출을 촉진할 선순환의 출발점으로 삼기로 하고 브랜딩에 재투자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홍보 및 마케팅에 5개월간 100억 원의 예산을 편성, 첫 광고를 집행하기로 했다.

1. 생소한 발음이 PR 포인트

리브랜딩의 출발점은 브랜드 이름을 다시 정하는 것이었다. 기존에 판매하던 제품 패키지에 적힌 브랜드 이름은 ‘탐스팜(Tom’s Farm)’이었다. 허니버터아몬드를 출시하기 전, 뭐라도 이름을 ‘브랜드스럽게’ 붙여 보자는 심정으로 윤태원 전 회장이 자신의 영어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흔한 상표명이라 해외에 상표를 등록할 때 같은 이름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해외 진출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만큼 개성 있는 브랜드로 인식되기 쉽지 않은 이름이었다. 국내 소비자들조차 대표 제품인 ‘허니버터아몬드’는 알아도 패키지 우측 상단에 소심하게 새겨진 ‘탐스팜’은 눈여겨보지 않았다. 브랜드의 핵심인 상표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윤 대표는 플래그십 스토어의 이름에 썼던 ‘HBAF’의 로고 디자인을 떠올렸다. 직선이 많이 쓰여 안정감 있게 보이면서도 알파벳 B의 곡선이 귀엽게 느껴져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았던 디자인이다.

윤 대표가 ‘HBAF’를 브랜드명으로 쓰자고 제안하자 백 실장과 광고대행사의 반대가 컸다. ‘Healthy But Awesome Flavors’, 즉 ‘건강하지만 놀라운 맛’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지만, ‘HBAF’를 어떻게 읽느냐부터가 문제였다.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하던 당시에는 ‘에이치비에이에프’로 알파벳 그대로 읽었는데 부르기도 어렵고 의미도 없어 보였다.

윤 대표의 고집으로 일단 이 이름을 쓰기는 하되 부르는 방법을 달리하고 그 자체를 홍보 포인트로 삼기로 했다. H를 묵음 처리하고 ‘바프’로 부르기로 하면서 소비자들에게도 입에 착 달라붙는 제품명이 되기를 바랐다.

“산책길 바프” “일할 때 바프”처럼 광고 및 홍보 영상에서 브랜드명을 반복적으로 노출하면서 바프라는 이름을 소비자들의 뇌리에 깊게 남겼다. “H는 묵음이야”라는 문구를 모델이 직접 언급하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줬고 블로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 언급되며 2차 바이럴이 이뤄졌다.

2. 광고 모델 전략

배우 전지현을 광고 모델로 쓰기로 한 것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입히기 위해서였다. 그저 그런 아몬드 제품이 아닌 ‘1등 아몬드’로 좋은 품질의 제품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톱 모델이 필요했다. 특히 수많은 광고 속에서도 묻히지 않고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위트와 분위기를 갖춘 모델을 원했다. 전략은 주효했다. 광고가 온에어된 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세련된 영상미와 전지현의 조화를 지적하며 “전지현이 아몬드 광고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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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래처를 감동시키다

길림양행은 거래처와의 관계를 쌓는 일에도 CF를 활용했다. 제조사 입장에서 전국에 1만 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한 편의점은 반드시 집중 공략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편의점 고객들은 원래 사려고 계획한 특정 브랜드의 제품이 매장에 없더라도 대체품을 사는 경우가 많아 편의점주는 같은 제품군이라면 할인이나 행사에 우호적인 제조사의 제품을 들여놓는 게 일반적이다. 편의점 점주들의 마음에 들어 매대에서 ‘한 뼘’ 더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프의 주 고객층은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는 2030 여성이었기에 이 채널을 집중 공략하지 않으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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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오픈 전날, 윤 대표는 편의점 담당자들에게 “그간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며 연락을 돌렸다. 서울 코엑스 케이팝 스퀘어 가로 81m, 세로 20m 크기의 거대 전광판 화면에 ‘××에서 만나세요’라고 주요 편의점에 찾아오라는 문구를 넣은 것이다. 편의점 입장에서는 거액의 광고 효과를 누렸다.

광고가 나간 바로 다음 날, GS25가 바프 제품 9종을 론칭하자고 연락해왔다. GS25가 운영하던 지하철 광고판과 매장 내 광고판에도 바프의 광고가 깔리기 시작했다. 세븐일레븐 역시 기존에 진열되던 제품 4종에서 2종을 더해 6종을 판매해 보라고 제안했다. 주요 편의점에서는 한 달 만에 매출이 3배가량 올랐고, 여러 유통 채널 중 비중이 가장 낮았던 한 마트에서조차 광고 방영 이후 매출이 2배까지 뛰었다.

길림양행은 조만간 사명도 바프로 바꿔 바프 브랜딩에 더욱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름 탓에 그간 중국 업체가 아니냐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K아몬드’라는 명성에 걸맞게 글로벌한 이미지를 입히기 위한 시도다. 바프는 ‘세계관 입히기’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다양한 업체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 중이다. 이마트와는 가수 김연자를 내세워 믹스넛 제품인 ‘아몬드 파티’를 출시했고, 애경산업의 화장품 브랜드 ‘AGE 20’s’와는 허니버터아몬드 캐릭터를 그린 커버 팩트 제품을 내놓았다. 아이스크림 브랜드 배스킨라빈스가 이달의 맛으로 ‘아이스 허니버터아몬드’란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제주공항 등 주요 면세점에는 바프가 직접 운영하는 매장을 열기로 계약했고, 플래그십 스토어도 국내외로 확대할 예정이다. 굿즈와 콘텐츠 등에 바프 캐릭터를 접목한 IP 사업도 준비 중이다.

마카다미아, 헤이즐넛과 같은 고급 견과 및 믹스넛 라인도 확대할 계획이다. 팬데믹 사태 이후 제품의 안전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식품 안전을 더욱 도모하기 위해 모든 공정을 자동화한 강원도 원주 공장도 2021년 말 오픈을 목표로 준비 중에 있다.

윤 대표는 장기적으로는 미국에서 아몬드 농장을 직접 운영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아몬드를 수입하는 비용도 아끼고, 아몬드의 성지에서도 바프의 제품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재배와 제조를 함께하는 건 리스크 분산 측면에서 최적의 사업 포트폴리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몬드 값이 떨어지면 제조에서, 아몬드 값이 오르면 재배에서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DBR mini box I : Interview: 윤문현 길림양행 대표
“직원들이 회사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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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제품 개발, 세일즈, 제조까지 모든 걸 혼자 도맡아 하던 윤 대표에게 어느덧 260여 명의 직원이 생겼다. 2021년 현재, 그가 꿈꾸는 ‘바프’는 어떤 모습일까.

세일즈 전략이 중요한 업종인데 영업 전략은 어떻게 짜고 있나?

미리 성공을 거둔 매장을 선례로 들며 거래처를 설득하는 데이터 중심의 세일즈 전략을 펼치고 있다. 사실 다양한 신제품을 내놓았지만 1등 제품인 허니버터아몬드 말고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길림양행 제품을 찾아보기 힘든 때도 있었다. 문제는 세일즈였다. 마트나 편의점의 매장 진열 시스템(Planogram, POG)i 에 따라 길림양행에 주어진 매대는 단 두 칸이었다. 매장들은 판매 데이터를 근거로 두 칸 모두 가장 인기가 많은 허니버터아몬드로 채우고, 1+1 행사도 허니버터아몬드로만 진행하고 싶어 했다. 신제품을 내놓는다고 한들 유통업체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이를 인지해달라고 전해야 하는 영업사원들도 경영진에게 어려움을 호소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마트에서 길림양행 제품의 가짓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건 명동 거리 노점들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티라미수 맛 등 다양한 제품을 흥행한 데이터를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충격에도 팝업스토어들이 인기를 끌면서 채널을 확대할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3일 내내 진행되는 영업 성과 보고 회의에서는 영업사원 개개인과 직접 세일즈 전략을 토론하며 고민한다. 거래처를 설득할 수 있는 데이터가 무엇일지 연구하고 전사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지원책을 점검하는 자리다. 필요할 경우 직접 거래처 현장을 찾아가기도 한다. 개발부터 제조, 수출까지 모든 과정을 다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CEO인 나 스스로가 최고의 영업사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을 위한 복지가 상당하다고 알려졌다.

‘접대 없는 영업’을 지향하되 그 비용을 직원들을 위해 쓰고 있다. 매주 수요일 점심은 ‘먹고 싶은 것 무엇이든 먹는 날’로 정했다. 단가가 높은 로브스터든 스테이크든, 평소 먹고 싶었던 요리는 뭐든 주문하게 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다양하게 접해보는 경험 자체가 식품회사 직원들에게는 창의성을 쌓는 일이다. 금요일에는 워라밸 지원 차원에서 직원 모두 네 시에 퇴근한다. 임원들에게는 자신이 꿈꾸던 드림카를 지급하기도 한다. 사무실의 가구들도 덴마크 고급 브랜드로 채웠다.

이런 회사 정책이 입소문나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직접 바프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대기업에서 온라인몰을 담당하던 한 직원이 입사를 문의해오기도 했다. 전 직장만큼 연봉을 줄 수 없다고 솔직히 얘기했지만 그는 자유로운 조직문화와 워라밸이 이직을 결심한 이유라고 말했다. 청담동에 서울 사무소를 오픈한 것도 오피스 위치와 환경을 중시하는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함이다.

임파워먼트(empowerment, 권한 위임)는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팀장들에게 최대한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직원들의 임금 협상에서도 팀장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 대신 팀장들은 명확한 데이터를 제시해야 한다. 바프에는 직급이 없고 직책만 있다. 누구든 위아래에 얽매이지 않고 열정을 갖고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조직이 되길 바란다. 자신의 역량을 입증해내면 바로 보상을 지급한다. 입사한 지 몇 달 안 된 직원이라도 성과를 내면 새로 연봉 협상을 하거나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한다.

중소기업에서 이렇게 과감한 복지와 보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투자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대출도 현금 보유량의 절반 이하로만 받고 있다. 어릴 적, 빚으로 고생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에 직원들에게 맘껏 투자해도 태클 걸 사람이 없다.

회사가 작고 힘이 없을 때는 직원들이 툭 하면 그만뒀다. 사업을 키우고 싶어도 브레이크가 걸리기 일쑤였다. ‘사람이 곧 재산’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게 됐다. 직원들이 회사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회사가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시행착오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다.

물론 추후 미국 농장 사업에 진출할 때는 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도 바프만의 조직문화에 공감할 수 있는 투자자와 함께할 것이다.



DBR mini box 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제품력•디자인•파격 광고 3박자…차별화 전략 성공


바프 사례는 마케팅 성공 공식을 잘 따라준 모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마케팅에서의 성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제품 자체의 경쟁력이다. 두 번째는 제품에 입혀진 브랜드에 대한 차별화다. 제품의 경쟁력, 차별성은 특히 초기 단계에 제품이 시장에서 부각되게 하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모방해 들어오면 그것만으로 차별이 쉽지 않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브랜드에 대한 마케팅이 중요해진다.

바프는 이 두 가지 요소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독특한 제조법을 개발해 제품력을 높였다. 시즈닝이 떨어지지 않도록 튀기지 않고 굽는 방식, 코팅 배합 및 가열 시간과 온도 등에서 차별점을 찾아 적용했다. 첫 번째 성공 이후에 이어진 신제품 개발 역시 적기에 잘 이뤄졌다. 허니버터 이후에 34종의 맛으로 확장했는데, 이러한 외연 확장은 민첩한 판단과 의사결정 환경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톡톡 튀는 개성 넘치는 맛을 찾아 끊임없이 탐구하고 테스트하는 노력에서 배울 점이 많다. 이러한 신제품 출시를 브랜드 관리에서는 라인 확장(line extension)이라고 하는데 브랜드를 지속가능하도록 키우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하나의 성공이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소비자들이 기존 제품에 지루해 할 때 잇따른 신제품 출시로 주의를 환기하고 지속적 관심과 함께 충성도로 이어지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아몬드 스낵과 같은 카테고리는 저관여적 특성으로 인해 ‘골라 먹는 재미’ 효과를 노려야 한다. 이를 두고 심리학에서는 ‘다양성 추구(variety seeking) 행동’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본성을 겨냥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트렌드에 따라 소비자의 입맛도 변하고 들쑥날쑥 불확실한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위험을 피하는 차원에서 브랜드 포트폴리오 전략도 의미가 있다. 바프는 34종의 라인 확장으로 이뤄진 포트폴리오 관리를 통해 다양한 니즈와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브랜드 대응력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제품력 다음에는 브랜드 마케팅의 차별화다. 브랜드 마케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브랜드 표현 요소(brand element) 개발, 두 번째는 브랜드커뮤니케이션 개발이다. 브랜드 표현 요소에는 네임, 로고, 캐릭터, 패키지 등이 있는데 사람으로 치자면 얼굴, 즉 인상에 해당된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라는 말처럼 제품이 잘 만들어졌으면 거기에 입히는 브랜드 표현 요소가 중요한 인상 형성의 역할을 한다. 이름을 잘 짓고, 로고와 캐릭터를 잘 만들고, 패키지 디자인을 잘해야 첫인상의 강력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브랜드 표현 요소는 흔히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 비유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에는 비록 이름으로 표현됐지만 이름 외에 다양한 표현 요소가 그 제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제품이라는 존재 자체도 중요하지만 존재가 빛을 발하고 가치를 온전히 표출하는 데는 브랜딩, 즉 브랜드 표현 요소 개발이 중요하다. 아무리 잘 만든 제품이라도 브랜드 표현 요소가 잘 입혀지지 않으면 제품 그 자체로서의 가치만 존재하고 만다. 영원히 OEM 기업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제품만 믿고, 제품력에 도취돼 브랜딩에 소홀하면 미래가 없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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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프의 브랜드 표현 요소 중에서도 패키지와 의인화된 아몬드 캐릭터가 단연 돋보인다. 패키지는 소비자들이 그 브랜드를 처음 만나는 중요한 터치포인트다. 패키지의 모양과 컬러에 대한 첫인상은 즉각적 행동 유발로 이어질 수 있다. 1초도 안 되는 순식간에 손이 가게 만드는 효과가 나오게 된다. 바프는 시즈닝별로 그 특성을 쉽게 잘 녹여낸 패키지 디자인, 즉 색상과 그림을 통해 맛에 대한 빠르고 정확한 상상을 가능케 하는 ‘시그널링 효과(signaling effect)’를 잘 창출했다. 아몬드 캐릭터 의인화 또한 묘수다. 브랜드 의인화는 최근 마케팅계의 화두다. 삭막해져 가는 사회와 함께 디지털, 첨단화로 점점 차가워지는 브랜드 성격들에 정겹고 따뜻함을 입히는 시도가 필요하다. 좀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성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의인화가 좋은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구나 캐릭터는 의인화하기 좋은 대상이며, 의인화된 캐릭터만으로도 브랜드 전체에 온기를 쉽게 불어넣을 수 있다. 점점 재미없어지는 세상에 희화화된 캐릭터를 보면 그 자체로도 충분한 ‘펀(fun)’ 대리만족 효과가 나타난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이면서 재미 추구 성향이 높은 젊은 MZ세대에게 잘 먹힌다.

캐릭터의 활용은 브랜드 보호 측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허니버터아몬드는 원료명이기에 그 자체로는 어느 누구의 독점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를 형상화하는 다른 디자인적 요소, 즉 캐릭터와 그림의 사용은 차별적 요소로 인정받을 수 있다. 꿀, 버터, 아몬드를 형상화한 캐틱터와 그림이 없었다면 브랜드 법적 보호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원재료명과 같은 일반명사를 사용하는 네이밍은 필히 법적 보호를 위해 다른 브랜드 표현 요소의 디자인을 통해 차별화를 선제적으로 꾀해야 한다. 성공한 뒤에 ‘미투’ 브랜드들이 우수수 등장해 물을 흐려버리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고 만다. 성공한 뒤를 감안한 선제적 브랜드 보호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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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마케팅의 두 번째인 브랜드커뮤니케이션은 소비자와 어떻게 만나고 소통하는가의 문제다. 우선 광고를 통한 만남이 남달랐다. 과감하게 광고에 투자했는데 중소기업이 5개월에 광고로 100억 원을 집행한다는 것은 놀라운 투자액이다. 광고를 비용으로 보지 않고 미래 브랜드 선점을 위한 투자로 보는 역발상이 주효했다. 비용으로 보면 아끼려 든다. 투자로 보면 과감한 배팅이 가능해진다.

매출 규모에 맞게 소소한 광고 집행이 아니라 파격적 규모의 광고 집행으로 조기에 소비자의 인식을 선점하는, 이른바 ‘인식의 꼭대기(top of mind)’ 효과를 창출하는 발상 전환이 돋보인다. 전지현이라는 톱 모델의 기용으로 폭발적 주목을 끌고자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제품의 세세한 기능을 복잡하게 나열하기 바쁜 보통의 저관여 제품과 달리 미니멀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바프라는 브랜드 알리기에 집중하는 역발상 또한 사람들의 궁금증 유발과 함께 독특한 브랜드 이미지 형성에 기여한 바가 크다.

다음은 소비자와 만나는 물리적 접점에서의 차별화다. 플래그십 스토어와 팝업 스토어를 통해 다양한 경험의 가치를 전달하는 소통이 돋보인다. 일반 소매점에서는 특성상 몇 개의 맛에만 노출이 제한되기에 이들 스토어를 통해 34개에 이르는 다양한 맛을 경험케 하는 전략은 중요하다. 팝업 스토어는 젊게, 빠르게, 가볍게, 다양하게 가는 요즘 트렌드에 맞춰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을 보여주기에 젊은 세대와 잘 맞아떨어진다. 편의점 공략 또한 절묘한 전략이다. 가벼운 스낵의 특성상 젊게, 빠르게, 가볍게, 다양하게 가는 편의점 채널과 잘 맞는다. 광고 속에 유통 파트너를 끌어들이는 역발상 또한 윈윈 전략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광고를 통해 단순히 브랜드 알리기에 그치지 않고, ‘××에서 만나세요’라는 문구를 통해 구매로 이어지는 행동 유발 효과까지 이뤄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집중 전략’을 시사점으로 꼽을 수 있다. 명동, 외국인 집중효과인데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그 효과에 ‘잠시 멈춤’ 버튼이 눌러져 있지만 바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 볼 수 있다. 명동을 중심으로 외국인에게 집중해 인기를 끌자 입소문이 나면서 마트에까지 확산 효과가 발생했다.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 장악하면 주목 효과가 생긴다. 인식의 꼭대기 효과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인식을 장악하면 그다음은 쉬워진다. 저절로 확산효과가 나타난다. 어느 한 곳을 집중 공략해 독보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심리적 효과를 노리는 매우 중요한 마케팅 전략이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marnia@dgu.edu
필자는 고려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단법인 서비스마케팅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저명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저서로 『한국형 마케팅 불변의 법칙 33』 『역발상 마케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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