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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바이오벤처 1세대 ‘바이로메드’의 R&D 전략

극한의 불확실성 이겨낸 바이오벤처 1세대 ‘블록버스터급 신약’개발에 성큼 다가서

김동원 | 225호 (2017년 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국내 바이오 벤처 1세대로 20년 넘게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바이로메드는 자체 기술력과 자금 동원력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미국 FDA 임상3상을 진행 중인 신약을 2개나 보유한 회사다. 바이로메드는 창업 초기 서울대 내 연구소에서 시작해 학내 벤처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며 성장했다. 특히 많은 투자금이 들어가는 신약 개발의 특성상 바이오 벤처들이 대부분 개발 단계 초기에 라이선싱 아웃(기술 수출)을 추진하는 것과 다르게 바이로메드는 ‘기술상장특례제도’를 활용해 코스닥시장 상장에 성공하며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했다. 또 규모는 작지만 나름 수익이 나는 사업(건강식품사업)을 인수해 회사의 현금흐름 문제를 해결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신지원(고려대 영어영문학과·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글로벌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한 신약 개발 경쟁이 뜨겁다. 미국, 유럽은 물론 중국, 일본 등 제약 강국들이 저마다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추세다. 이에 반해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능력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그동안 신약 개발보다는 복제약 위주의 성장을 추구해오면서 신약 개발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은 천문학적인 돈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신약 개발의 첫 단추인 후보물질 탐색부터 신약 승인에 이르기까지 보통 10∼15년이 걸린다. 1조∼3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자본도 필요하다. 이렇게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도 실제 성공 가능성은 1%가 안 된다.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국내 대형 제약사나 대기업 계열 바이오 기업을 제외하면 이 정도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바이오 벤처 1세대 중 대표주자로 꼽히는 ‘바이로메드(ViroMed)’가 자체 기술력과 자금 동원력만으로 미국 식품의약처(FDA) 임상2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3상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국내 바이오 업계에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바이로메드는 서울대 유전공학연구소 김선영 교수가 1996년 연구원 2명과 함께 학내 벤처 1호로 설립한 국내 최초 바이오 벤처다. 김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의 생물학·의학 연구소인 화이트헤드연구소와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구하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유전자 전달체로 사용되던 레트로바이러스의 일종인 것에 착안,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본격 나섰다. 유전자 치료제는 유전자를 세포 내에 전달하는 기술을 이용해 암, 유전 질환, 심혈관 질환 등 다양한 질환들을 치료하는 기술이다. 초기에는 불치·난치병 대상으로 개발됐는데 지금은 암, 심장질환, 관절염 등 시장이 매우 큰 분야를 대상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바이로메드는 전체 직원 약 70명 중 절반 이상이 R&D 인력이다.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도 80%가 넘는다. 코스닥 바이오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150여 개의 지식재산권도 보유하고 있다. 적극적인 R&D 투자 성과로 2005년 ‘기술특례상장제도’를 통해 코스닥에 상장했고 미국에서 2개의 치료제가 임상2상을 통과하면서 이후 기업 가치가 급상승해 최근에는 1조5000억 원을 넘나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2016년 전체 매출액이 68억 원 수준에 불과함에도 주식시장에서 1조 원을 훨씬 넘는 기업가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시장에서 이 회사의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의미다.

바이로메드는 특히 서울대 내 한 연구실에서 출발했음에도 자체 자금 동원력으로 10년이 넘는 임상 시험을 진행하며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도 해내지 못한 완전 새로운 신약 개발을 개발하면서 극한의 불확실성을 견뎌내고 있다. 아직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세계 시장에 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한 바이어 벤처라고 단정 지어 이야기하기엔 부족한 수준이지만 척박한 국내 신약 개발 환경에서 20년간 신약 개발에만 매진하며 꾸준히 성장해 나가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로메드의 성공 요인과 국내 대형 제약사들에 주는 시사점을 DBR이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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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로메드의 탄생과 성장

학내 벤처 장점 최대한 활용해 성장

바이로메드의 시작은 서울대 내 작은 연구실이었다. 창업자인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연구원 2명이 김 교수의 연구실에서 유전자 치료 연구를 진행하다 시장성 있는 결과를 만들어 냈고 이를 기반으로 회사를 세웠다. 사실 미생물학 전공자인 김 교수가 처음부터 직접 창업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초기에는 투자를 받아 연구를 지속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국내 대형 제약사 5∼6곳을 직접 찾아다녔다. 투자 및 경영은 대형 제약사가 맡고 김 교수는 연구에만 집중하고자 한 것. 그러나 이들 모두 투자를 거부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한 새로운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제약사 관계자들은 “일개 학교 벤처가 그런 걸 어떻게 연구하냐, 그런 건 글로벌 제약회사나 하는 것”이라고 무시하기도 했다. 결국 김 교수는 모든 걸 직접 하기로 결정하고 자본금 5000만 원을 모아 ‘바이로메디카퍼시픽’이라는 회사를 차린다. 이 회사가 바이로메드의 모태다.

김 교수는 이전까지 한 번도 창업이나 투자 유치를 한 경험이 없었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바이오 벤처라는 개념도 생소하고 전문 투자자도 없을 때였다. 때문에 창업 초반에는 돈이 없어 회사의 모습을 제대로 갖출 수 없었다. 학내 연구소에서 김 교수와 연구원 2명이 원천 물질을 연구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창업 초창기에는 바이로메드가 학내 벤처라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R&D를 주목적으로 하는 바이오 업체에 연구실은 필수인데 바이로메드는 초기 연구실 설립에 따로 투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996년을 전후해서는 학내 벤처라는 개념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도 바이로메드에 학교 내 인프라 사용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심지어 특허 출원을 위해 대학본부에 문의했을 때도 “알아서 하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 젊은 연구원들로 구성돼 있던 유전공학연구소 교수들은 산·학 협동과 창업에 우호적이어서 실험실 창업을 가능케 하는 규정과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이로 인해 바이로메드는 초기 큰 비용을 아끼며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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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평균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했고 당장 내다 팔 신약이 없는 바이오 벤처에게 투자금을 유치하는 일은 회사의 존폐가 달린 일이었다. 이런 막막한 상황을 뚫어준 것은 의외로 해외 기업들이었다. 국내 대형 제약사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던 바이로메드만의 연구 성과를 해외 제약사들이 먼저 알아본 것이다. 특히 창업 후 1년쯤 지나 영국 옥스퍼드 바이오메디카(Oxford Biomedica)가 바이로메드 기술을 라이선싱하면서 7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 창업 초기 ‘가뭄의 단비’ 역할을 했다. 운도 따랐다. 영국에서 70만 달러가 들어온 직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졌다. IMF 관리 체제가 시작되면서 환율이 2배 이상 뛰고 은행 금리가 30%까지 치솟으면서 70만 달러가 150만 달러 정도의 가치로 불어났고 이게 초기 종잣돈 역할을 하며 바이로메드가 적극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들어온 초기 투자금으로는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바이오 신약 연구를 계속할 수 없었다. 이때 다시 한번 외국에서 바이로메드의 기술력을 알아본 기업의 투자가 이뤄진다. 2000년 일본 다카라슈조사가 바이로메드의 레트로바이러스벡터를 수입하면서 600만 달러를 투자한 것. 비상장 바이오 벤처가 6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엄청난 규모다.

그때 상황에 대해 창업자인 김선영 교수는 “당시 일본 기업들은 유전자 치료제와 관련된 나름의 노하우와 기술 제품이 있었는데 우리의 레트로바이러스벡터 기술과 자신들의 기술을 합치면 시너지가 날 것으로 보고 전략적 투자를 했다”며 “그때 들어왔던 일본 기업들은 수백억 원씩 이익을 얻고 성공적으로 엑시트했다”고 설명했다.

파이프라인 다변화를 통한 리스크 헤징

일본으로부터의 자금 유입으로 숨통이 트인 바이로메드는 본격적으로 파이프라인 다변화에 나선다. 파이프라인이란 신약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 단계에 있는 품목들을 의미한다. 신약 개발을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파이프라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중에 잘 개발된 신약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보통 바이오 벤처 초기에는 부족한 자금과 연구 능력으로 1개의 파이프라인만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

창업 초기 바이로메드가 집중했던 분야는 레트로바이러스벡터다. 이때까지 바이로메드뿐만 아니라 외국의 다른 기업들도 대부분 유전자를 세포 안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바이러스성 벡터를 활용했다. 그러나 바이러스성 벡터는 변이에 의한 암 유발 가능성과 면역성 발동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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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일본으로부터 투자가 들어오면서 파이프라인 다변화를 선택한 바이로메드는 레트로바이러스벡터뿐만 아니라 플라스미드 DNA를 활용한 유전자 치료제 개발 연구로 포트폴리오 확장에 나선다. 이게 오늘날 바이로메드를 세계적 유전자 치료제 연구 및 개발 업체로 만들어준 ‘pCK 벡터’ 기술이다.

바이로메드가 자체 개발한 DNA 치료제 기반 기술인 pCK 벡터는 플라스미드 DNA를 활용한 일종의 플랫폼이다. 이 pCK 벡터에 생물학적 활성이 다른 치료유전자를 집어넣으면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도 되고, 유방암 치료제도 되고 하는 식이다.

이전에도 바이러스성 벡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플라스미드 DNA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플라스미드 DNA는 세포막을 잘 투과하지 못하고 유전자 발현량이 낮아 유전자 치료에 이용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바이로메드의 pCK 벡터는 기존 플라스미드를 개량해 발현량을 수십 배 이상 높였다. 또 플라스미드 DNA 내 불필요한 서열을 제거해 안전성도 확보했다.

이 기술이 적용된 바이로메드의 대표 제품군이 바로 ‘VM202 라인’이다. 바이로메드는 pCK 벡터에 HGF(간세포증식인자) 유전자를 집어넣어 VM202-DPN(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을 개발해 미국 FDA 임상2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현재 3상을 진행 중이다. 현재 당뇨병성 신경병증(DPN)으로 인한 통증 처방약 시장은 연 5조 원 가까이 형성돼 있다. 화이자의 ‘리리카’가 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지만 임상2상까지의 데이터를 비교분석해 보면 VM202가 리리카보다 훨씬 뛰어난 결과(효능과 안전성)를 보이고 있다. 특히 리리카는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어 당뇨병성 신경병증을 앓고 있는 환자 중 60∼70% 정도는 이 약을 처방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VM202는 임상 결과 리리카 등 경쟁 약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출시가 되면 당뇨병성 신경병증 시장 확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의 한 시장조사 회사에 따르면 VM202와 같이 신경 재생 효과가 있는 제품이 출시되면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시장은 20조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VM202’는 작용 기전상 당뇨병성 신경병증뿐만 아니라 허혈성 지체질환,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허혈성 심장질환 치료제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현재 허혈성 지체질환 치료제인 ‘VM202-PAD’도 미국에서 임상2상을 마치고 임상3상을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허혈성 지체질환의 경우 미국에서만 매년 8조 원 이상의 다리 절단 비용이 발생할 정도”라며 “‘VM202-PAD’가 시판되면 VM202 관련 시장은 훨씬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바이로메드는 이 밖에도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치료제 ‘VM202-ALS’에 대해 미국에서 임상2상을 진행하고 있고 허혈성 심장질환 치료제 ‘VM202-CAD’는 한국에서 임상2상을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하나의 플랫폼을 활용해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만들었기 때문에 수년 안에 글로벌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2개 이상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장과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

바이로메드를 포함해 1세대 바이오 벤처들은 창업 후 원활한 자금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약 개발이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 보니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해줄 투자처를 확보해야 하지만 성공 확률이 낮은 바이오 벤처에 꾸준히 투자해줄 투자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이로메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특히 처음부터 미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신약을 개발하다 보니 국내에서 임상을 진행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통상 바이오 벤처들은 높은 수준의 임상 비용을 감당할 자금이 없기 때문에 전 임상 단계나 임상1상 정도에서 라이선싱 아웃을 시도한다. 그러나 자사의 기술력과 시장성에 자신감이 있던 바이로메드는 조기 라이선싱 아웃 대신 자본 시장을 활용하는 방법을 택한다.

마침 정부도 적극적으로 제도를 개선해 바이오 벤처들을 지원한다. 2005년에 이른바 ‘기술특례상장제도’를 도입한 것. 기술특례상장제도는 이익을 내지 못 해도 우수한 기술력으로 미래 가치를 인정받으면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전까지는 바이오 벤처에게 상장은 꿈 같은 이야기였다. 신약 개발이 완료되고 상용화되기 전에는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바이오 벤처 특성상 국내 주식시장 상장 조건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바이로메드는 기술특례상장제도의 수혜를 입은 첫 기업이었다. 어려움도 있었다. 바이로메드가 개발 중인 유전자 치료제에 대해 비전문가인 기술인증평가 위원들에게 아무리 그 중요성과 시장성을 설명해도 대부분 반신반의했다. 워낙 생소한 분야고 한국이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할 능력이 되느냐에 대한 의심이 많았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기술인증평가를 통과한 바이로메드는 2005년 1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다.

김선영 교수는 “코스닥시장 상장으로 약 300억 원 정도의 자금이 들어왔고 이 자금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바이로메드는 상장 후에도 몇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임상에 들어가는 비용을 조달했다. 특히 2016년 미국 FDA 임상3상을 독자적으로 진행하기로 하면서 2016년 3월과 10월 2번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3월에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150억 원 유상증자를 진행했고 10월에는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1393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제 값이 반영되지 않은 조기 라이선싱 아웃보다는 직접 임상3상을 실시해 VM202의 몸값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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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로메드는 임상3상 전 복수의 글로벌 제약사와 라이선싱 아웃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임상2상까지 드는 비용보다 임상3상에 드는 비용이 몇 배는 더 많기 때문이다. 보통 바이오 벤처들은 임상3상 전에 대부분 라이선싱 아웃을 한다. 그러나 바이로메드는 강공법을 택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에 끌려다니지 않고 직접 임상3상을 실시해 시장에서 제값을 받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김 교수는 “신약 허가를 받아 매출이 발생하기까지 비용이 계속 들어가기 때문에 협상에 시간을 끄는 것보다는 직접 임상을 진행해 임상 기간을 줄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며 “임상3상을 직접 진행하는 과정에서 혹은 향후 임상이 완료된 후 협상력 강화로 더 높은 가격에 라이선싱 아웃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과 연구의 분리를 통한 전문성 강화

2000년을 전후해 한국에서는 바이오 벤처 창업 붐이 불었다. 당시 장밋빛 미래를 낙관하며 기술만 믿고 창업에 나섰던 수많은 연구자들이 경영, 자금·리스크 관리, 마케팅 등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너지고 좌절했다. 그러나 바이로메드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창업자가 과감하게 경영 전반에서 일찌감치 손을 떼고 전문 경영인을 영입한 것. 2009년 바이로메드는 삼성물산 출신으로 로커스테크놀로지스(현 한솔인티큐브)라는 SI업체 CEO를 지낸 김용수 현 대표이사를 영입해 경영 전반을 맡긴다. 김 교수는 이때부터 CSO로서 연구 분야만을 총괄한다.

바이로메드에서 김용수 대표의 역할은 리스크 관리와 선진 경영 시스템 확립이었다. 특히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자금 운용을 잘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김 대표가 바이로메드 합류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의 적자를 가중시키고 있던 ‘시약 사업부’를 없앤 일이다. 바이로메드는 코스닥시장 상장 후 상장 유지 요건인 ‘연매출 30억’을 맞추기 위해 2006년 5월 국내 생명공학 제품 전문 판매 회사인 ‘진바이오텍’을 흡수합병해 진단 시약 판매에 나선다. 연간 23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던 회사를 인수해 연매출 30억 원을 안정적으로 달성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의도와는 달리 시약 판매 사업을 하면 할수록 영업손실이 커졌다. 30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매년 30억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감내하면서 사업을 지속해야 했던 것. 상장으로 인한 주식 보상 비용, 시약사업부 합병 시 발생한 금융 비용, 조직 확대로 인한 판관비 증가 등으로 진단 시약은 팔수록 적자가 커졌다.

김용수 대표는 이때 과감하게 시약 사업을 포기하는 결정을 한다. 김 대표는 “매출액 30억 원 맞추자고 시약 사업을 3∼4년간 했는데 이 사업으로 회사가 총 50억 원 이상을 까먹고 있었다”며 “회사 내부적으로 직원들은 이 사업 없애면 30억 원 어떻게 맞추냐며 걱정했지만 그대로 두면 회사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길 위기였다”고 설명했다.

대신 김 대표는 회사의 ‘캐시카우’가 돼줄 신사업으로 천연물 신약을 선택한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감당하고 ‘계속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한 사업구조를 갖추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에 바이로메드는 2009년 10월 천연물 신약 개발회사 ‘헬릭서’를 합병한다. 헬릭서를 인수한 바이로메드는 2012년 골관절염 치료제 ‘레일라’를 개발해 로열티를 7% 받는 조건으로 피엠지제약에 판권을 이전한다. 또 기능성 건강기능식품을 줄줄이 출시하며 2013년부터 흑자 전환에도 성공한 상태다.

김 대표는 “회사 R&D 예산 중 천연물 신약의 비중은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바이로메드가 보유한 바이오신약의 첨단 기술을 천연물 신약에도 도입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로메드는 어떻게 국내 대기업들도 못한 일을 해냈을까?

바이오 산업의 시장 규모는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크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추정하는 2017년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시장 규모는 2243억 달러(253조7000억 원)에 달한다. 특히 ‘블록버스터 신약’을 개발한 회사들의 경우 연매출 규모가 10조 원 이상인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의 아봇(Abott)사와 아이사이(Eisai)사가 출시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류머티즘 치료 신약 휴미라(Humira)는 2015년 한 해에만 141억 달러(약 17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로슈가 개발한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 암젠의 ‘엠브렐’ 등도 모두 10조 원 안팎의 연간 매출을 올렸다. 미국의 대표 바이오 벤처 ‘길리아드사이언스’의 경우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를 앞세워 글로벌 톱10 제약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또 신약 개발은 특허를 통해 시장을 5∼15년간 독점할 수 있고 제품 생명력도 길기 때문에 한 번 개발에 성공하면 수십 년간 엄청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국내 제약사 중 세계 시장에서 신약 개발로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둔 기업은 드물다. 대부분 대형 제약사들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 대기업들은 신약 개발보다는 바이오 시밀러 쪽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바이로메드는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유전자 치료제 개발과 관련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업계 리더로 꼽힌다. 특히 지금까지 개발된 국산 신약들이 기존 의약품보다 효과가 조금 더 우수하다는 뜻에서 ‘바이오베터(Biobetter)’ 혹은 ‘개량’ 신약이었다면 바이로메드가 미국 FDA 임상3상을 진행 중인 VM202-DPN의 경우는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비아그라(발기부전 치료제)와 같이 해당 분야 세계 최초의 신약인 ‘퍼스트 인 클래스(first-in-class)’로 평가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어떻게 작은 학교 내 연구실에서 출발한 벤처기업이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신약 상용화를 눈앞에 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바꿔 말하면 왜 국내 대형 제약사나 대기업 계열 바이오 업체들은 이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할까.

1. 의학적 미충족 수요(Unmet medical needs)

미국에서 임상3상을 진행 중인 ‘VM202’가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유는 이 제품이 의료 시장의 ‘unmet medical needs’를 충족시키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다른 어떤 제약사도 해결하지 못했던 난치병을 해결하는 최초의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 국내 바이오 업체 중 일부가 신약 개발에 뛰어들어 미국 FDA 임상을 통과하기도 했다. 특히 LG생명과학(현재 LG화학에 합병)의 경우 퀴놀론 계열에 속하는 항생제 ‘팩티브’로 지난 2003년 미국 임상3상을 통과하기도 했다. 3000억 원 이상의 R&D 비용을 쏟아부은 이 의약은 한국 최초 미 FDA 신약 허가 승인을 받은 약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기대를 모았으나 상업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했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Unmet medical needs에 부합하는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LG생명과학은 2012년에는 바이오 의약인 ‘서방형’ 인간성장호르몬 ‘밸트로핀’으로 미국에서 임상3상을 완료하기도 했다. 다른 기업의 특허에 저촉이 안 되는 범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인간성장호르몬 단백질을 개량해 매일 주사하는 대신 수주에 한 번 주사해도 되는 형태로 개량한 제품이다. 그러나 이 제품은 시판 승인을 받고도 실제 시판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김선영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이 바이오 신약 개발 분야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임상으로 들어갈 만큼 가치가 있는 물질을 찾는 능력”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전 세계 의약제품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에서 팔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제품을 만드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바이로메드가 VM202 기술을 활용해 개발 중인 4가지 질환은 모두 시장 규모가 크고 딱히 치료제가 없거나, 있어도 부작용이 심한 경우가 많다. 바이로메드는 창업 이후 3년 동안 선진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구축했고, 그 기반 아래 4∼5년 동안 유전자 전달체 개발에 매진했다. 그리고 실제 적용을 위해 3년 동안 동물실험을 하고, 각종 유전자를 넣어 치료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내 임상 시험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새로운 치료제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시장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상품성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바이로메드가 작은 바이오 벤처로 출발해서 20년 가까이 꾸준히 신약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은 바이로메드가 개발 중인 치료제가 시장성이 큰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투자자들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2. 처음부터 메이저 시장에 도전한 벤처 정신

바이로메드는 창업 초기부터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신약을 개발해왔다. 미국 시장이 전체 의약품 시장의 4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시장이고 미국에서의 임상 실험과 의약 승인은 다른 국가 시장 진입을 용이하게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미국에서 승부를 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바이로메드처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못한다. 일단 미국 FDA 임상을 통과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다. FDA는 의약품 등에 대해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고 신중하게 관리 및 승인하는 기관이어서 FDA에서 승인된 신약은 매우 안전하고 뛰어난 약효를 가진 신약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사실상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간편한 확인 임상을 거치거나 아예 별다른 특별한 절차 없이 출시가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FDA 임상 통과율이 매우 낮고 기간도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FDA에서 임상을 수행했거나 진행 중인 신약들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면 임상1상에서 신약 승인까지 완주할 확률은 평균 9.6%로 10%가 채 되지 않는다.



임상에 드는 비용 역시 웬만한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임상2상 완료까지 최소 300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 통상 임상3상이 전체 임상에 들어가는 비용 중 80%를 차지한다고 하니 산술적으로 모든 과정을 다 통과해 신약이 시장에 나올 때가 되면 최소 1조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미국 의약품 시장이 크고 매력적이어도 우리나라 제약사나 바이오 벤처들이 쉽게 미국 FDA 임상을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에 비해 규모가 작은 국내 제약업계는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낮고 연구 비용이 적게 드는 복제약을 만들어 국내 시장에 파는 비즈니스 모델을 위주로 발전해온 것이 사실이다. 대기업 계열사들 역시 원천기술이나 핵심 물질 개발 등 불확실성이 크고 장기간의 개발 기간이 걸리는 프로젝트보다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성과를 볼 수 있는 바이오 시밀러 시장 위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매년 성과를 내고 이를 평가받아야 하는 기업 CEO들 입장에서 미국 시장은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로메드가 벤처기업이었기 때문에 무려 20여 년 동안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도 회사를 끌고 올 수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미국의 사례를 봐도 신약 개발 초기 단계를 주도하는 회사는 대부분 벤처기업들이다. 대학이나 연구소의 성과를 바탕으로 탄생하는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대형 제약회사들에 자신의 기술을 이전하거나 이들 회사에 합병됨으로써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이나 대형 제약사들은 아직까지 기술력이 뛰어난 바이오 벤처를 인수합병하거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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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점은 바이로메드의 창업과 이후 성과의 영향으로 국내 연구자들, 특히 교수들을 중심으로 유전자치료제 벤처기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Clinical trial data base에 의하면 상용화를 위한 기업이 개발하고 있는 임상3상 중인 유전자 치료제는 13개 정도다. 이 중 한국 기업이 수행하는 것이 4건인데 그중 2개는 바이로메드 제품이고, 나머지 2개는 신라젠과 코오롱생명과학의 제품이다. 특히 바이로메드나 코오롱생명과학이 타깃으로 하는 질환은 만성적이면서 시장이 매우 큰 당뇨 합병증과 퇴행성 관절염이다. 미국에서 향후 5년 안에 블록버스터급 유전자 치료제가 나온다면 이 13개 중의 하나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 교수는 “바이로메드가 자체적으로 미국 FDA 승인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모습이 다른 바이오 업체들에 긍정적인 자극이 돼서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을 노크하는 바이오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국내 대기업들도 연구개발의 모든 단계를 스스로 하려는 기존 사고방식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실력 있는 바이오 벤처들을 M&A하거나 오픈 이노베이션에 나서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바이오 산업 생태계 조성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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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양한 글로벌 임상 경험으로 획득한 전문성

신약 개발 과정에서 가장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드는 과정이 임상 시험이다. 특히 국내에 비해 해외 시장은 제도나 기준이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도 높고 비용과 시간도 더 드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많은 국내 기업들은 불확실성이 큰 해외 시장보다 국내 시장에서 승부를 보려고 한다.

그러나 바이로메드는 처음부터 미국, 유럽, 중국 등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 직접 몸으로 뛰며 임상 0시험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나름의 노하우를 획득했다. 바이로메드가 미국에서 2개의 임상3상과 1개의 임상2상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다년간의 임상 경험을 통해 쌓은 전문성과 네트워크 덕분이다.

특히 바이로메드의 전문성은 CRO(위탁연구기관 혹은 임상시험수탁기관) 활용에서 잘 나타난다. CRO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제약회사나 바이오 기업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일컫는다. 주로 전임상 CRO, 임상 CRO 등으로 분류되며 독성 시험, 환자 모집, 임상 시험 관리, 제품 허가 관리, 모니터링, 데이터 관리 및 통계 분석, 허가용 자료 제출을 위한 서류 준비(medical writing)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통 해외 임상을 진행할 경우 해당 국가의 기준이나 절차에 대해 밝지 못하기 때문에 CRO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규모가 영세하고 해외 임상 경험이 없는 대부분의 국내 바이오 벤처들이 믿고 해외 임상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만한 국내 신약 품질평가 기관이나 임상시험수탁관리기관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바이오 벤처가 해외 CRO에 위탁해 임상 시험을 진행하는데 비용이 비싸고 제대로 관리를 못 해 CRO 업체들에 끌려다니기 일쑤다.



바이로메드는 다년간의 미국 FDA 임상 진행 경험을 통해 현지 CRO 관리 노하우를 터득했다. 적은 비용으로도 고품질 임상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 교수는 “국내 대기업들이야 현지에서 최고의 CRO를 선정해 모든 걸 맡겨 편하게 임상을 진행할 수 있겠지만 바이로메드 같은 작은 회사는 그렇게 할 여력이 없다”며 “결국 자사의 제품과 기술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자신감이 있어야 하고 다년간의 임상 시험 경험으로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관리를 타이트하게 해서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바이로메드는 일반 기업의 30% 정도의 비용을 들여 미국 FDA 임상을 진행 중이다.

4. 긴 호흡으로 시장으로부터의 신뢰 구축

원래 바이오 신약 개발은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고 개발 기간도 10년이 넘을 정도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기업이 기술지상주의와 의욕을 앞세워 R&D 투자에 나설 경우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짙다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바이로메드는 이러한 딜레마 극복을 위해 명확한 시장 요구에 기반을 둔 제품을 개발했다. 즉 당뇨병성 신경병증이나 당뇨병성 족부궤양 질환 등 시장 잠재력이 분명히 존재하는 분야를 선택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R&D에 과감한 투자를 하더라도 현명한 모험을 했다는 사실이다. 오랜 기간이 걸리는 신약 분야의 고유 특성을 인정하고 성급하게 시장 진입에 나서지 않았다. 그 대신 외부 투자 자금 적극 유치와 함께 규모가 작더라도 매출과 이익에 실제 기여를 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함께 키워나갔다.

벤처캐피털 업계 역시 바이로메드가 20년간 꾸준히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비결로 혁신적인 기술력과 시장과의 약속을 지킨 것을 꼽는다. 김 사장은 “그동안 ‘이렇게 회사를 키우겠습니다’라고 개발 과정과 향후 일정을 공개하고, 늦어지면 배경 설명을 충분히 해왔다. 이것이 투자자 신뢰를 얻은 비결”이라고 회고하며 바이오 벤처 창업자들에게 “절대 시장을 속이거나 장밋빛 전망으로 과대 포장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김용수 대표 역시 ‘신뢰’가 불확실성의 터널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처음 와서 바꾼 것 중 하나가 바로 IR 자료를 다 과거형으로 바꾼 것이다. 그전까지 대다수의 바이오 업체들은 IR 자료를 미래형으로 만들어왔다. ‘2020년까지 임상3상 완료’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건 회사의 희망사항이지 그 목표를 못 지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불확실성이 큰 바이오 업계에서는 더 그렇다. 그래서 2010년 이후 바이로메드는 무조건 IR 자료에 과거형 문장만 썼다. 확정된 것만 이야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는 바이오 벤처 1세대로서 초기 바이오 벤처들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은 결과다. 초기 바이오 벤처들은 2000년대 초반 벤처붐을 타고 많은 투자금을 모았다. 앞선 기술력에 자신감이 넘쳤던 초기 바이오 벤처들은 단기적으로 높은 평가 가치(valuation)를 받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무리한 약속을 남발했다. 기초 연구 단계에서 나타난 소규모 성과를 확대 해석하며 몇 년 안에 신약을 출시하겠다는 식으로 홍보했다.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업체가 늘었고 수많은 바이오 벤처들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김 교수는 “아직 바이로메드가 성공한 회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꾸준히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모습이 시장의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향후 전망

바이로메드를 성공한 바이오 기업으로 부르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학내 작은 연구소에서 출발해 20여 년간 꾸준히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을 위한 한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 높이 살 만하다. 특히 2005년 이후 코스닥 기술특례상장 벤처기업 39개 중 21개 기업이 공모가를 밑돌고 있는 현실에서 1호 기술특례 상장한 업체인 바이로메드가 시가총액 1조5000억 원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이로메드는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약 제품 개발에 도전한 만큼 태생부터 ‘선발 주자(First mover)’일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했던 만큼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그만큼 위기도 많았다.

그럼에도 바이로메드가 극한의 불확실성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앞선 기술력 덕분이다. 바이로메드는 원천 기술을 활용한 특허 개발과 시장성 있는 제품 개발 능력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창업 이후 3년 동안 선진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구축했고, 그 기반 아래 4∼5년 동안 유전자 전달체 개발에 매진했다. 그리고 실제 적용을 위해 3년 동안 동물실험을 하고, 각종 유전자를 넣어 치료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내 임상 시험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에서도 출시하지 않은 제품을 대상으로 막대한 자금과 10년이 넘는 기간을 들여 임상 시험을 진행하며 극한의 불확실성을 견뎌내고 있다.

바이로메드의 경쟁력은 대학 내 우수 기술 인력과 창업자의 세계 수준의 과학 지식, 연구 네트워크 등에서 나온다. 바이로메드가 학내 벤처로 출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바이로메드는 외부 투자자금 적극 유치와 함께 규모가 작더라도 매출과 이익에 실제 기여를 할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함께 키워나갔다. 당장의 실적이 없이 연구개발비만 매년 수억씩 들어가는 바이오벤처들이 회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할 사업을 찾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수의 바이오 벤처들은 부동산 임대업이나 자원개발 사업 등 본업과 관련이 없는 사업을 벌여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바이로메드는 본인들이 보유한 핵심 신약 개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천연물 신약 개발 기업을 인수하면서 본업과 부업 간의 시너지를 추구한다.

향후 바이로메드의 성패는 글로벌 제약사, 이른바 ‘빅 파마’와의 라이선싱 협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임상3상이 진행 중인 신약 2종이 어느 정도 시장성을 인정받아 빅파마에 기술 이전이 되느냐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바이로메드와 시장의 기대만큼 좋은 가격에 라이선싱 아웃이 가능하다면 바이로메드가 한국의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김동원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tunakim@smu.ac.kr

김동원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한 뒤 부산외대, 덕성여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글로벌경영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신한카드, 메리츠화재, 한국야쿠르트 자문 교수를 하면서 마케팅 개념을 실제 적용하는 다수의 프로젝트와 교육 과정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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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 비용 어떻게 줄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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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은 미국 터프츠대(Tufts University) 내 터프츠약품개발연구센터(Tufts Center for the Study of Drug Development)가 미국 FDA 임상 시험을 진행한 바이오 기업들이 임상 시험에 투입한 투자금을 조사한 자료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약 9억6500만 달러(약 1조900억 원)에 달한다. 반면, 바이로메드는 VM202의 임상 시험을 미국에서 진행하면서 임상2상 완료까지 약 500억 원의 연구 비용을 투입했다. 또 향후 임상3상 예산 집행 계획을 살펴보면 바이로메드는 임상3상 완료까지 약 1400억 원의 자금을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다. 임상 시험 전체에 들어가는 비용이 2000억 원 정도다. 신약의 종류나 임상 대상이 되는 환자 수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바이로메드가 일반 제약사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가격에 임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바이로메드는 임상 시험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까. ‘빅 파마(글로벌 제약사)’들은 보통 임상 시험을 진행할 때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CRO 업체를 선정하고 임상 시험 과정의 A부터 Z까지를 이 업체에 일임한다. 일종의 턴키 계약을 하는 것. 이럴 경우 CRO는 알아서 임상 시험을 진행할 미국 내 병원과 의사를 선정하고 환자 규모, 환자 관리 방식 등을 정하게 되는데 임상의 품질은 높일 수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영세하고 자금력이 떨어지는 바이로메드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임상1상을 진행할 때부터 임상 시험에 필요한 세부적인 부분 중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직접 수행하는 전략을 택했다. 임상 시험의 여러 단계 중 임상 사이트 구축이나 담당 의료진 섭외, 임상 시험 설계 등 많은 부분을 직접 담당해서 CRO에 줘야 할 비용을 줄인 것이다.

임상을 진행할 병원과 의료진은 창업자인 김선영 교수와 회사의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결했다. 임상1상을 미국 텍사스심장연구소(Texas Heart Institute Stem Cell Center)에서 에머슨 페린 교수(Dr. Emerson Perin)의 주도로 진행한 바이로메드는 이때 쌓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노스웨스턴병원 등 13개 미국 내 병원들을 직접 섭외해 임상2상을 진행하며 CRO 업체 사용 비용을 줄였다. 임상 시험 설계 단계에서도 바이로메드는 환자의 규모 설정, 약물 투약 방법 결정, 환자 방문 및 관리, 의료진 교육 등을 직접 하면서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고 직접 할 수 없는 부분만 CRO 업체를 활용해 비용을 줄였다.

김선영 교수는 “다년간의 임상 시험 경험으로 쌓인 임상 관리 노하우와 축적된 임상 시험 사이트 및 의료진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김동원 김동원 | (현)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글로벌경영연구소장
    (전)부산외대, 덕성여대 교수 역임
    (전)신한카드, 메리츠화재, 한국야쿠르트 자문 교수
    tunakim@s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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