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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 Premium Frontiers: 이사도어 샤프 포시즌스호텔 회장

“영국서 성공하고 유럽 진출까지 20년 걸려… 사업은 기다림이다”

김현진 | 219호 (2017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호텔 산업의 변방 캐나다에서 유대인 난민 출신 부모 밑에서 태어난 이사도어 샤프는 현재 41개국에 걸쳐 101개의 호텔 및 리조트를 운영하는 ‘포시즌스’의 수장으로 럭셔리 호텔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그는 호텔의 성공 조건 첫 번째로 사람을 꼽는다. 사람이 결국 호텔의 이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대로 된 인성 및 태도를 갖춘 직원을 뽑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교육보다 앞서는 것이 채용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렇게 뽑힌 좋은 직원들은 ‘고객을 응대하는 방식으로, 직원을 대하는’ 포시즌스의 ‘골든 룰’에 따라 존중과 책임감을 익힌다. 서비스 기업의 베스트 프랙티스로 꼽히는 포시즌스의 신화는 이렇게 탄생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민혁(연세대 사회복지학과·경영학과 4학년) 씨와 박혜린(동국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아버지는 유대인 강제수용소로 유명한 폴란드 아우슈비츠 출신이었다. 캐나다에 정착한 뒤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배관공, 목수 등으로 닥치지 않고 일했다.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하고 엄격한 사람이었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늘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줬던 부모에게서 어린 시절부터 독립성을 배웠다. 전 세계적으로 101개의 체인 호텔 및 리조트를 거느린 ‘포시즌스 호텔&리조트’의 설립자, 이사도어 샤프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2015년 10월 서울의 중심, 광화문 사거리에 문을 연 6성급 호텔, ‘포시즌스호텔 서울’을 둘러보기 위해 지난해 말 한국을 찾은 샤프 회장을 DBR이 만났다. 각종 비즈니스 전문 서적들이 서비스 영역에서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라 칭송하는 ‘포시즌스’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로 호텔업계 전문가들은 단연 샤프 회장을 꼽는다. 직원과 고객, 즉 사람을 비즈니스의 중심에 둔 결과 한 세기를 대표하는 호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던 샤프 회장은 85세라는 고령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꼿꼿하고 다부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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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무려 20년 만에 방문한 것으로 안다.

이렇게 오랜만에 한국을 찾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20년 전에 방문했을 때, 새로운 사업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았다. 당시 많은 업체들을 만났지만 성공적이진 않았다. 새로운 도시에 진출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출 시기(timing)가 아니라 제대로 된 상품을 갖출 수 있는지(right product) 여부다. 일찍이 고급 호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던 광화문을 눈여겨봤지만 파트너나 부지 모두 마땅치 않았다. 뒤늦게 좋은 파트너를 만나 전격적으로 호텔을 세우게 된 것이다.1

이런 ‘제대로 된 상품’을 갖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고급 호텔 사업을 런던에서 처음 시작했고, 성공을 거둔 뒤 다시 유럽에 진출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남이 선점하지 않은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 등에서도 하염없이 기다렸다. 호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지라는 생각에 긴 세월을 투자한 셈이다. 비즈니스를 할 때 빠른 결정도 중요하지만 ‘기다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호텔을 비롯해 모든 럭셔리 브랜드의 기본 원칙은일관성이다.

도시별로 호텔의 테마는 다를 수 있겠지만 고객들이 포시즌스라는 럭셔리 브랜드에 기꺼이 지갑을 열게 되는 일정치의 기대 수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경제 위기 때도 포기하지 않은 게 있다면 품질이다. 경쟁 호텔들이 직원 수를 줄이거나 숙박요금을 낮출 때도 포시즌즈는 숙련된 직원을 지키려고 애썼고, 숙박 요금도 낮추지 않았다.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해 당장의 부담은 컸지만 이렇게 해야 일관성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원칙을 지키는 이유를 경영학 교과서를 통해 배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경영학을 따로 공부한 적도 없고, 건축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기에 호텔 경영에 대해선 잘 몰랐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이런 원칙은 양보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예컨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을 기준으로 봐도 고객들이 씀씀이를 줄이는 시기라고 해서 고급 호텔을 선택할 때의 기준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전이나 이후나 더 좋은 서비스, 더 좋은 입지, 더 좋은 상품, 인지도, 이 네 가지 요소가 고객들이 호텔을 고르는 선택 기준이었다. 여기서 입지와 상품은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 예컨대 도시 중심에 있는 호텔이라면 상품보다는 입지가 중요할 것이고, 리조트 환경이라면 입지보다는 상품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지겠지만 이 네 가지 요소 중 하나도 빠뜨릴 수가 없다.



포시즌스호텔은 16년 연속 <포브스>가 선정한 ‘일하고 싶은 기업’ 100위 안에 이름을 올려놓고있다.

기업 문화에 대한 남다른 소신이 있는 듯한데.

지금까지 말한 입지, 상품, 건물 자체의 디자인 등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람이다. 사람이 호텔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과거 포시즌스 이스탄불의 한 식당에서 이 호텔의 소유주인 부부와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일하던 직원이 당연히 터키인이 아니라고 믿었다. 뭔가 특별한 교육을 받은 외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포시즌스는 직원의 대부분을 호텔이 자리 잡고 있는 해당 지역사회에서 채용하고 있다. 이렇게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실천하게 된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직원들에게도 고객에게 적용하는 것과 동일한 ‘골든 룰’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직원에게 기대하는 고객 응대 방식과 동일하게 회사는 직원 역시 공정하게 대우하려 애쓴다. 또 호텔을 업그레이드할 때도 가장 먼저 직원 시설을 개선하는 데 힘을 쓴다. 한편 비관리직 직원들은 언제든 총지배인 같은 고위임원에게 호텔 시스템 개선과 관련한 제안을 할 수 있다.

또 인원 감축은 되도록 피하지만 경기 침체 등으로 불가피한 경우로 해고한 직원에게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한다. 그리고 경영 상황이 나아지면 최우선적으로 재고용한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일시적으로 고객 수요가 늘어 파트타임 직원이 필요할 때 해고자들이 가장 먼저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온 사례가 적지 않다.



직원 교육 역시 훌륭한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비결인가.

물론 교육이 도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비결은 ‘제대로 된 인재(right people)’를 보는 눈이고, 이들을 잘 엄선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교육이 아닌 채용 프로그램이 좋은 기업이다. 따라서 직원을 채용할 때 성격과 태도를 가장 많이 본다. 누구에게라도 훌륭한 웨이터가 되는 기술을 가르칠 순 있지만 사람들이 타고 나는 태도를 가르칠 수는 없다. 이러한 태도를 갖춘 인재를 뽑기 위해 우리는 말단 직원에서 총지배인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든 다섯 단계의 인터뷰를 거쳐 채용되도록 한다. 포시즌스가 최고급 브랜드로서 각광을 받고 또 친절한 서비스로 정평이 나다보니 이제는 구성원들 스스로 어떤 위치에 있든 “저는 포시즌스에서 일합니다”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프로페셔널한 동료 직원들에 대한 자부심에서, 또 각별한 팀워크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식이 선순환 구조를 낳고 있고 현재 4만5000명에 달하는 전 세계 포시즌스 직원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DNA를 형성하고 있다. 결국 사람이 답이다.

교육보다는 ‘제대로 된 사람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과거 서인도 제국에 속했던 카리브해의 섬, 네비스에서 코코넛 농장에 포시즌스 리조트를 세우는 작업을 했던 1990년대 초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현대 문물과는 관계가 멀었던 이 지역에 호텔을 세우면서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현지 주민들을 직원으로 채용해 교육을 시키는 것이었다. 이 섬에서는 젊은이들이 할 일이 거의 없었기에 이들은 학교를 마친 직후 섬을 떠나곤 했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9000명 가운데 노인과 어린이, 청소년을 제외한 3000명, 그중에서도 500명을 대상으로 회계, 음식 서비스 등 호텔에 필요한 역할에 대한 교육을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다. 자연재해 등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 호텔이 결국 성공 사례로 기억되게 된 것은 역시 사람의 힘이었다. 네비스의 주민들은 너무나 친절하고 외부인들에게 호의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 또 기꺼이 새로운 문물을 배우려 했고 자연재해 같은 큰 위기 앞에서도 의연했다. 이런 성정만 갖고 있으면 호텔 운영과 관련한 스킬은 교육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이런 믿음이 증명됐다.



처음부터 고객 서비스를 핵심 가치로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캐나다라는 호텔 산업의 변방 국가에서 맨손으로 호텔 사업을 시작하다보니 주요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던 거대한 경쟁자들과 진검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럭셔리 호텔이지만 대체로 규모도 더 작고 후발주자였던 브랜드로서 이들과 차별화하는 방법은 고객들이 ‘제2의 집’이라고 느낄 만한 서비스였다. 지금은 웬만한 5성급 호텔들은 모두 갖추고 있는 컨시어지 서비스를 미국에 도입한 것도 포시즌스가 최초였는데 이런 특화된 서비스가 우리 호텔의 주요 타깃 고객층인 오피니언 리더들과 부유층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 미국 워싱턴에 세운 ‘워싱턴 포시즌스’는 런던에서 이미 운영 중이던 컨시어지 서비스를 도입한 첫 사례였는데 이를 위해 워싱턴을 잘 알고, 호텔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매니저를 고용해 컨시어지 데스크에 앉혔다. 그는 로비의 프런트데스크 주변에 앉아 단골손님을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하거나 구하기 힘든 공연이나 스포츠 관람 티켓을 구해줬다. 심지어는 이틀 안에 노래를 녹음해 호텔을 떠날 때 가지고 가고 싶다던 한 아랍 왕자의 무리한 민원도 들어줬다. 컨시어지 서비스는 워싱턴 포시즌스가 초창기부터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인이었다. <초우량 기업의 조건>의 저자인 경영 사상가 톰 피터스는 그의 책 앞부분에 우리 호텔 사례에서 경험한 친절한 서비스를 언급하며 ‘우리는 왜 1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포시즌스호텔이 워싱턴에서 반드시 묵어야 할 곳’이 됐는지를 알 수 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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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 사이에 감정노동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호텔업 역시 직원들의 감정노동 수위가 높은 영역인데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이 받은 만큼 상대방에게도 똑같은 친절과 호의를 베푼다고 믿는다. 회사 내에서도 상급자가 부하직원을 함부로 대해 감정노동 수위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호텔리어가 이런 스트레스를 상사 또는 동료를 통해 받게 된다면 고객들에게도 웃는 얼굴을 보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매니저들에게는 혹시 부하직원을 꾸짖을 상황이 생기더라도 ‘칭찬은 모두 앞에서, 비난은 개인적으로(Praise in public and criticize in private)’란 미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다. 고객과의 면 대 면 상황에서 다양한 일들이 발생하는 호텔업의 특성상 모든 직원들이 재량을 갖고 자기 선에서 책임지고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본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고 상사가 일일이 모든 일을 지시하다보면 효율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감정노동 수준도 높아진다. 우리가 운영하는 비즈니스가 그저 호텔일까. 나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문화 속에 직원에 대한 존중 정책과 권한 부여가 포함된다.



직원들도 고객을 대하듯 존중하고, 재량을 부여하는 것은 이상적이긴 하나 조직 운영에 있어 효율성은 오히려 떨어지는 게 아닐까.

또 포시즌스처럼 이미 조직 문화가 좋은 곳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닐까.

좋은 예가 있다. 한 번은 싱가포르 정부의 인사 관련 부서로부터 싱가포르를 방문해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들은 15년 안에 싱가포르 공무원들을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서비스 인재로 육성하고 싶어 했고 내게 “어떻게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 기업을 일궈낼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알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직원을 뽑고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일련의 과정도 지켜보고 싶어 했다. 또 우리가 사용하는 직원 채용 및 교육 포맷에 맞춰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서비스로 정평이 난, 효율적인 싱가포르 정부를 만들어냈다. 이제 사람들이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직원을 존중하고, 그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일견 느려 보이지만 옳은 인사 방침이라는 걸 말이다. 나는 모든 인간이 실패보다는 성공을 지향하고, 자신의 이름을 건 자발적인 일에 대해선 최선을 다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런 신념이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자발성은 곧 주인정신으로 이어진다.



당신은 혁신가로도 유명하다.

호텔 내 구두닦이, 다림질 서비스에서부터 24시간 룸서비스까지 지금은 호텔 업계의 표준이 된 많은 규범들을 당신이 세계 최초로 도입한 바 있다.

혁신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을 찾는 일, 즉 ‘누구를 위한 혁신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호텔리어가 아닌 건설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단 하나, 호텔을 짓고 운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사람은 ‘고객’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객들이 호텔에서 기대하는 바는 무엇일까, 사무실과 집을 떠난 제3의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원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혁신이 꼭 대단한 ‘발명’일 필요는 없다. 호텔 화장실 내에 샴푸와 린스를 갖추는 것도 포시즌스가 가장 먼저 시작한 서비스인데 세 명의 누이를 비롯해 대부분의 여성 여행객들이 호텔에서 제공하는 비누만으로 샤워를 하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을 관찰한 끝에 시도한 것이었다. 이제 많은 호텔들이 자신들이 객실에 갖춘 침대가 가장 편안하다며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지만 1960년대, 내가 호텔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침대를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는 호텔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집 밖에서 자는 잠’은 집에서 만큼 편안해야 한다고 느꼈고 1968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편한 침대’를 찾기 위해 애썼다. 이제 포시즌스 하면 편안한 침대를 떠올릴 정도로 우리 호텔의 시그니처 서비스가 됐는데 호텔업의 본질, 고객이 기대하는 바를 간파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자부한다. 또 이것이 럭셔리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저 화려하고 비싼 것이 아닌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내 불편을 해결해주는 것이 사람들이 기대하는 ‘사치’ 아닐까.

또 하나, 혁신을 생각할 때 많은 경영자들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까 섣불리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나도 이해한다. 특히 호텔 산업은 노동집약적이고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채용해야 하기에 임금 압박이 심해진다. 다른 호텔들이 이 노동력을 비용으로 보는 것과 달리 우리는 이를 하나의 자산으로 바라봤다. 고용으로 우리 사업이 개선될 수 있다면 자산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아닐까. 혁신은 바로 이런 것이다. 화장실에 샤워 가운을 비치한 것도 같은 논리로 시작했다. 사람들은 ‘고객들이 샤워 가운을 모두 훔쳐갈 것’이라 우려했지만 나는 긴 여행 끝에 사람들이 피로를 푸는 몇 안 되는 수단은 샤워라고 생각했고 그때 입을 푹신한 샤워 가운은 사치가 아닌 필수 요소라 여겼다. 샤워 가운 주머니 안에 ‘이 가운이 마음에 드신다면 룸서비스를 불러주십시오. 구입할 수 있습니다’라는 쪽지를 넣었더니 실제 판매로도 이어져 결국 쏠쏠한 수익원이 됐다. 이 사례는 고객들의 경험을 더욱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고객 입장에서 생각한 작은 혁신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셈이다.



자신이 돈을 낸 만큼의 가치를 뽑으려는 가치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고 온라인을 통한 호텔 예약 및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럭셔리 관련 소비 시장이 타격을 받았다.

서비스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일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나.

가치소비 트렌드가 전 세계적인 현상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가격(price)을 팔지 않는다. 가치(value)를 판다. 고객이 지불하는 가격만큼 훌륭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증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상에 지친 가족이 오랜만에 큰맘을 먹고 일주일간 휴가를 온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들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일 것이고,
1분1초가 낭비되지 않고 완벽한 경험이 되길 원할 것이다. 또 거의 하루 단위로 새로운 도시에서 미팅을 하는 비즈니스맨을 생각해보자. 그에게도 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저녁식사를 거르게 돼 밤 10시에 룸서비스를 부를 수도 있다. 그때 제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그의 컨디션을 좌우하고, 중요한 협상 결과를 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포시즌스가 상장을 추진하던 1986년 무렵, 각각의 투자자들과 일련의 미팅을 갖기 위해 여러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어렵게 시간을 내준 이들에게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호텔 측이 제공한 장비가 고장 나 미팅을 망쳤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불행을 막고 기회를 지킨다는 것만으로도 포시즌스에 숙박비를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즉 현대인들에게 포시즌스에 오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격 대비 가치(value for money)’를 적용한 사례가 될 것이다. 우리의 비즈니스는 ‘시간을 현명하게 쓸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각광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당신은 지금도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프라이빗 제트기를 활용한 ‘세계 일주 투어 패키지’를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패키지인가.

전용기를 타고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머무는 도시의 포시즌스호텔에 묵는 투어 패키지다.2 올해부터 선보이는 상품으로는 두바이 사막에서의 낙타 트래킹, 니스 해안을 레이스용 페라리 포뮬러1을 타고 달리는 ‘글로벌 게이트웨이’, 중국 만리장성에서 소림권법을 보고 일본 불교 문화 체험을 하는 ‘인터내셔널 인트리그’, 다양한 음식 문화를 체험하는 ‘컬리너리 디스커버리’가 있다. 이 가운데 올해 5월27일 시작해 도쿄, 홍콩, 치앙마이, 뭄바이, 플로렌스, 리스본, 코펜하겐, 파리 등을 여행하는 컬리너리 디스커버리의 출발지로 서울이 선정됐다. 서울을 선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한국 음식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있어 건강에 관심이 많은 VIP들에게 인기가 높고 아직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선 덜 알려져 신비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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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포시즌스 본사에 수면 습관을 연구하기 위한 ‘디스커버리 스튜디오’라는 리서치 센터를 설립한 것으로 아는데 어떤 기능을 하는 곳인지.

40개 이상의 국가에서 포시즌스 브랜드의 호텔을 운영하다보니 고객들에게 최고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잘 지켜지는지 점검해보고 싶었다. 포시즌스가 유명해진 계기인 편안한 침대에서부터 베개, 새로 들인 커피 머신, 직원들이 입게 될 유니폼을 비롯해 호텔 내에서 고객들이 접하게 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실험하고 전 세계 직원들이 실제 체험한 뒤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일종의 연구개발(R&D)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혁신을 위한 실험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많은 호텔리어들이 당신을 멘토로 삼고 싶은 스승으로 꼽는다.

정작 당신의 멘토는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엄청난 부동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대형 호텔을 짓는 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사실 비즈니스적으로 딱히 멘토로 삼은 인물은 없었다. 하지만 가난한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핍박을 피해 캐나다라는 행복한 나라에서 살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선물’이었던 만큼 강인한 생활력과 정신력을 가진 부모님에게서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분들은 한번도 “누군가를 이기라”거나 “1등을 하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노력형인 내 성격을 알았기에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말없이 지지해줬고, 나는 성장 과정에서의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내가 스스로 고심한 결정이 믿을 만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리고 ‘사람들이 당신을 대해주길 원하는 방식으로 직원들을 대하라’는 것을 조직 내 ‘골든 룰’로 삼게 된 것은 그저 만들어진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다. 부모님이 주신 평생의 가르침이 반영된 결과다. 이런 정신은 포시즌스라는 브랜드가 더욱 확대될 미래에도 지켜질 것이다. 이는 헛된 공언이 아니다. 경영 이념이 이미 문화로 굳어진 조직만이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정신적 특권이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DBR mini box

포시즌스호텔은?

193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이사도어 샤프 회장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당시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젊은 건축가로 경험을 쌓기 시작할 무렵, 한 클라이언트가 호텔 신축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면서 호텔 사업에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리고 1955년 9월, 신혼여행에서 느꼈던 좋은 호텔에 대한 고민이 호텔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달콤한 첫날밤을 보내기 위해 토론토에서 제일 인기가 좋은 호텔을 예약했으나 낡은 가구와 좁은 실내, 공용 화장실 탓에 한숨도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공항 옆이라 위치가 좋았던 이 호텔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샤프 회장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어서 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호텔을 짓겠다는 장대한 계획은 세웠지만 경험도, 사업 자금도 없던 청년에게 덜컥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날 리 없었다. 그는 약 5년을 공들인 끝에 투자자를 모집하는 데 성공했지만 좋은 부지를 찾기엔 예산이 부족했다. 그러다 당시 매춘부나 마약상들이 활개를 치던 토론토 중심부의 도심 슬럼, 자비스가(街)에서 겨우 쓸 만한 땅을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열악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1960년 문을 연 이 호텔은 당시 늘어나는 호텔 수요와 맞물려 큰 성공을 거뒀고 이 성공에 힘입어 계속 후속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 무렵 호텔의 이름도 구상했다. 영어로 사계절이란 뜻의 포시즌스(Four Seasons)란 이름은 독일 뮌헨의 최고급 호텔 ‘피어 야레스차이텐’에서 따왔다. 독일어로 똑같이 사계절이라는 뜻이다.

두 번째 호텔 프로젝트였던 ‘인온더파크’에선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숙박업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직관을 발휘했다. 샤프 회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용한 방, 편안한 취침, 활력을 찾아주는 상쾌한 아침 샤워를 선호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건축업에 잔뼈가 굵은 그는 당시 경험을 살려 소음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음 기술을 도입하고, 폼매트리스를 모든 객실에 도입했으며 물의 수압을 쾌적하게 조절해주는 샤워헤드를 장착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호텔들이 도입하고 있지만 당시로선 혁신적인 서비스였다. 또 고객들이 체크인을 하기 전 미리 흡연 여부를 물어본 뒤 흡연자와 금연자를 분리해 투숙하게 하고 체계적인 트레이닝법을 접목한 ‘피트니스 인스티튜트 센터’도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업계 최초의 시도였기에 언론이 주목하는 호텔로 거듭날 수 있었다. 자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1970년 돌체스터, 리츠 등 고급 브랜드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던 영국 런던의 5성급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 후유증으로 많은 고급 호텔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었고 이미 영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역사와 전통을 가진 호텔이 즐비한 상황이라 반대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샤프 회장은 오히려 경기가 회복되면 호텔업이 살아날 것이고, 특히 런던을 찾는 미국인 비즈니스맨, 사업가 같은 새로운 수요를 공략할 수 있다고 믿어 이 계획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당시 런던의 경쟁 호텔들이 간과하던 전 객실의 에어컨 서비스, 최고급 침대와 베개, 24시간 룸서비스 등을 새롭게 도입하면서 결국 문을 연 첫해 유럽 내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올해의 호텔’에 선정됐다.

이후 1년에 2개 이상의 최고급 호텔을 전 세계 주요 도시 및 관광지에 추가하게 된 포시즌스는 경영상 두 차례 큰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첫 번째는 1970년대 초 오일 쇼크 이후 이어진 불황이 계기가 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투자를 받거나 자금을 빌려 호텔을 짓는 비용을 모두 충당하면서 사업 성패에 대한 리스크를 모두 지는 구조로 사업을 운영해왔는데 이후로는 땅 주인이나 디벨로퍼로부터 투자를 받아 호텔 건설을 대행하는 식으로 리스크를 분산했다. 대신 호텔의 디자인과 건축, 운영 등은 포시즌스 측이 계속 맡는 것으로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

1986년에는 주식시장에 상장을 했고 2007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 게이츠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에게 지분 95%를 팔았다. 현재 샤프 회장은 5%의 지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2010년까지는 최고경영자(CEO)를,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회장직을 맡고 있다. 여전히 그가 진두지휘하는 포시즌스호텔 앤드 리조트는 2017년 2월 현재 41개국에 걸쳐 101개의 호텔 및 리조트를 거느리고 있다.




참고 자료

<사람을 꿈꾸게 만드는 경영자> 이사도어 샤프 지음, 양승연 옮김, 지식노마드,2011 , BBC, 2016.10.10

포시즌스 홈페이지(http://press.fourseaso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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