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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M의 글로컬(Glocal) 콘텐츠 전략

중국에는 신파극이 없더라고요...그리고 택한 현지화, 대륙을 흔들다

고성연,김재범 | 202호 (2016년 6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문화산업은 해외 진출이 쉽지 않다. 미국 할리우드의 강자들이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으며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거부감 등도 있기 때문에 글로벌화가 까다로운 영역이지만 CJ E&M은 중국과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중국에서 현지 파트너와의 공동 제작 방식으로 대형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았고 베트남에서는 1위 영화 사업자라는 타이틀도 꿰찼다. 철저한 현지화를 위해 콘텐츠의 원재료는 한국과 같지만 현지 문화에 맞게 각각 다른 토양과 요리법을 토대로 만들어낸 소위원소스 멀티 테러토리(One Source-Multi Territory·OSMT)’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CJ E&M 2020년께는 글로벌과 국내 매출비중을 73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글로벌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한 지배국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세력의 출현에 따라 이제 머지않아 더 이상 유일한 지배국이 되지 못할 것이다.”

 

‘군웅할거’ 시대의 서막을 예고하는 판타지 게임에 나오는 대사가 아니다. 프레데릭 마르텔이라는 프랑스의 저명 문화 비평가가 5년 넘게 3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대중문화 콘텐츠의 역학 구도를 탐문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1 여기서 대다수 소비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면서 문화영토의메인스트림을 이끌고 나가는지배국은 의심할 여지없이 미국이다. 영화나 TV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를 전 세계적으로 유통, 배급하면서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공룡 기업들을 거느린 거의 유일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2

 

단적인 예로 지난해 말 디즈니가 배급한 영화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통해 새 에피소드를 선보인 스타워즈 시리즈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수익은 총 33조 원에 이르고, 워너브라더스의 영화해리포터시리즈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8조 원이 넘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최근 글로벌 영화판은 물론 한국 극장가를 화끈하게 달군캡틴아메리카 시빌워’ ‘주토피아같은 할리우드발 블록버스터들의 여전한 존재감을 봐도 알 수 있듯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분야에서 대중문화 콘텐츠를 양산하고 지구촌 구석구석으로 유통시키는 거대 미국 기업들의 힘은 무적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지금은 마르텔 박사를 비롯한 문화산업 전문가들의 예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터넷이 콘텐츠 형태와 산업 구도를 바꿔놓은 디지털 시대가 펼쳐지면서 장르와 플랫폼의 경계가 무너지고 콘텐츠 수요가 갈수록 다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지형도를 새롭게 수놓을 세력으로는 흔히 중국, 인도, 브라질처럼신흥 경제국들이 꼽히곤 한다. 아무래도 인구와 경제 규모, 그리고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나라라는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 가운데 모두가 주시하고 있는 경계대상 1호는 단연차이나 파워’. 중국은 이미 지난해 영화시장에서 세계 2위로 올라선 콘텐츠 소비대국이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비호 아래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제2의 알리바바와 샤오미가 되겠다고 공격적으로 나서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21세기를 주도한다는소프트파워의 핵심 축으로 여겨지는 문화 영역에서 소비는 물론 생산으로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를 꿈꾸고 있다. 제조업 분야를 이미 휩쓸어버린 중국이 휴대폰 시장보다도 1.5배나 규모가 큰 황금시장에 대한 정복 욕구가 발동한 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그림 1)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설탕과 밀가루를 주로 만들다가 돌연문화라는 키워드로 사업을 꾸려가겠다고 선언한 CJ그룹(당시 제일제당)은 그에 못지않은 원대한 꿈을 품었다. 영상, 음악 등의 콘텐츠를 제작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아시아의 할리우드로 도약하겠다는 꿈이었다. 그 첫 행보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던 할리우드의 신생 스튜디오 드림웍스 SKG 3000억 원을 통 크게 투자하면서 영화사업에 뛰어들었다. 시작은 영화 배급이었지만 점차 영화 기획·투자, 멀티플렉스, 방송, 홈쇼핑, ‘체험경제의 정수를 담은 이벤트 등 다각도로 사업을 확대했다. 여기까지는 이미 세간에 꽤 잘 알려져 있는 얘기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2000년대 중반부터는 본연의 의지를 살려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1차 대상은 한류 효과를 활용할 수 있는 아시아 시장.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각국의 영문 첫 글자를 따 ‘VIP’ 시장이라고도 불린다)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시장에도 진출했다. 동남아시아는 인프라가 부족한 터라 21세기형 문화산업을 제대로 펼치기에는 시장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시장 규모는 우리가 키우면 된다는 담대한 생각으로 선점 효과를 노렸다. 아무리 장기적 시각에서 접근했다지만 리스크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단계적 진화를 꾀했다.3 그 과정에서과연 될까?’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서 온갖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CJ라는 브랜드는 아시아 시장에서 윤곽이 제법 뚜렷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할리우드의 강세와 문화할인(cultural discount)4 때문에 성공적인 진출이 까다롭다는 영화 부문에서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CJ의 활약은 돋보인다. ‘아시아의 할리우드라는 목표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지만 지금까지의 성공에는 글로컬(global+local) 전략이 그 중심에 버티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현지 파트너와의 공동 제작 방식으로 대형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았고 베트남에서는 1위 영화 사업자라는 타이틀도 꿰찼다. 미국과도 당당히 겨룰 수 있는 글로벌 문화콘텐츠 기업이라는 커다란 청사진 아래 아시아 시장을 나름의 차별된 방식으로 공략해온 CJ E&M의 전략을 집중 분석했다.

 

 

 

왜 애초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나?

 

할리우드는 100여 년의 전통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패권을 장악했던 건 아니다. 20세기 초만 해도 세계 영화계를 쥐고 흔든 절대 강자는 최초의 상업영화를 만든 뤼미에르 형제를 탄생시킨 프랑스였다. 한 프랑스 영화사가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의 두 배 분량을 제작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헤게모니에 전환이 일어났다. 파라마운트, 폭스 등 메이저 스튜디오들을 주축으로 오늘날의 할리우드식 시스템이 미국에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비용 효율적으로 규격화된 제작 시스템과 더불어 배급과 마케팅, 상영까지 아우르는 수직적 통합, 장르 영화와 스타 시스템에 의한 흥행 공식…. 오늘날까지 규범처럼 자리잡은 스튜디오 시스템의 핵심적인 면모다.

 

한국 문화산업의 역사는 이제 고작 20년이다. 별 밑천 없이 문화사업을 하겠다고 CJ가 나섰을 때 주위의 반응은 싸늘했다. 하드웨어(시스템)가 됐든, 소프트웨어(콘텐츠)가 됐든 전반적인 한국의 문화산업 경쟁력도 취약했다. 잠재력이 돋보이는 출중한 인재들은 있었지만 1990년대 말에만 해도 할리우드 바람이 거센 탓에 한국 영화 점유율은 20%대 초반에 불과했다. 감히 자국 콘텐츠를 해외에 대대적으로 선보인다는 상상을 하기란 힘든 상황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CJ는 처음부터 밑도 끝도 없이 글로벌 시장을 지향했을까? 그저 한국 문화콘텐츠가 세계인의 일상에 스며들 수 있기를 바라는 꿈에서 비롯된 목표라면 지나치게 낭만적인 것 아닐까?

 

물론 꿈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이재현 CJ 회장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문화가 언젠가는 영미권 중심의 문화 패러다임을 깰 잠재적인 경쟁력을 가졌다는 믿음을 지녀왔다. 그래서 그는 입버릇처럼세계인이 매년 2∼3편의 한국 영화를 보고 매월 1∼2번의 한국 음식을 먹고, 매주 1∼2편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매일 1∼2곡의 한국 음악을 들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한국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더구나 원료가 들지 않고 보급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문화콘텐츠는 수출하기가 용이한 성격을 지닌 상품이기도 하다(디지털 시대엔 그런 이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또 문화상품이 의류, 가공식품 같은 소비재 수출을 견인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간접효과도 고려할 만하다.5 CJ처럼 가공식품 등의 소비재도 다루는 기업에는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물론 대단히 합리적인 이유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제조업에 열중하던 시절이었지만 이재현 회장에게는 문화산업이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릴 차세대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선진국들의 전례를 봤을 때, 1인당 GDP 15000달러를 넘어서면 국가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지는 게 필연적인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시작부터글로벌을 외쳤던 데는 내수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들은 성장의 한계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깔려 있었다. 특히 산업이 성장하면 제작비가 쉽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문화산업에 진출한 이상, 글로벌 시장 진출은 장기적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였던 셈이다.

 

이는 할리우드가 겪은 운명이기도 했다. 20세기 중반, 스타들의 엄청난 몸값을 비롯해 첨단 기술에 드는 비용 등으로 제작비 규모가 커지자 본격적으로 수출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스튜디오들이 해외 관객들이 선호할 만한,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가 반영된 가족영화나 모험물 성격의 대작들에 치중하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이것이 콘텐츠 기업들의 글로벌 행보가 블록버스터 전략과도 맞닿는 이유다. 수천억 원의 제작비가 흔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아직 비교가 되지 않지만 어느새 한국의 토종 블록버스터도 제작비가 100억 원 정도는 가볍게 넘기는 사례가 많아졌다.

 

시장이 넓어지면 위험이 분산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영화, 드라마, 음악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는 고위험, 고수익 상품으로 꼽힌다. 아무리 노하우와 시스템을 갖춘다고 해도 흥행을 함부로 점치기 힘들다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로벌 무대를 기반으로 한 규모의 경제는 리스크를 분산하는 데 바람직한 요건이다. 물론 모든 국가에서 흥행에 실패하는 재앙에 가까운 콘텐츠도 있지만 특정 시장에서 더 인기를 끌거나 덜 끄는 콘텐츠도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중국 시장에서는 화려한 볼거리와 첨단 기술의 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이 인기를 많이 끄는 경향이 있다. <트랜스포머 4> 단 한 편으로 중국 극장가에서 3000억 원의 흥행 기록을 세웠고, 이듬해 <분노의 질주: 더 세븐> 3500억 원을 넘어서는 흥행 수익으로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둘 다 북미 시장의 박스오피스 수입을 웃도는 성적이었다.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중국 시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국 인구 전체가 문화소비의 주체가 될 수는 없겠지만 중산층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아시아 지역 중산층 인구는 5억 명 수준이지만 중국의 성장과 더불어 가파르게 상승해 2030년까지 30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화교가 많은 VIP 3국의 성장세도 무시할 수 없다. 당연히 아시아 대중문화 시장은 13억 인구와 거대 자본으로 최대 콘텐츠 소비국이자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국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다. 지금도 덩치가 충분히 크지만 이런 성장 잠재력이야말로 할리우드조차도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아이언맨 3>에 중국 여배우 판빙빙이 잠깐이지만 등장하고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에는 베이징과 톈진 등지에서 촬영된 중국판이 상영됐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6

 

CJ 2000년대 중반 아시아 시장에 처음 발을 담갔을 때 남들처럼 한류 붐에 편승해 단순한 수출 위주의 접근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규제와 시장 인프라 부족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다. 특히 중국 시장의 경우 한국 콘텐츠에 보내는 애정도 강했지만 자국 콘텐츠를 보호하려는 애국심도 강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외화 수입 쿼터를 강하게 설정해두고 있었다(분장제7 방식 34편으로 제한). 따라서 한국 영화는 연간 2∼3편 정도만 배급이 가능했다. TV 드라마도 편성, 판권 수 제한, 심의 규제 등 제약이 까다로운데다 방영되기까지 일정 시간이 소요되는 구조였다. 불법 콘텐츠 문제도 심각했다. 그래도 한국 예능과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온라인상에서 우회적으로 콘텐츠가 유통되는 경우가 많아지자 정부 차원에서 해외 포맷 수입 제한, 드라마 온라인 상영 제한 등 또 다른 방어기제들을 동원했다. 한국 콘텐츠의 중국 진출이 더 어려워진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미 아시아 시장에서 틈새와 가능성을 꿰뚫어봤기 때문이다. 문화적 장벽이 높긴 하지만 한류 덕에 ‘K스타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고, 범아시아 지역의 정서적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프로그램 형식을 판매하는 포맷 수출을 하면서 획기적인 기획과 아이디어에 현지의 정서를 결합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점도 깨달았다. 이런 배경에서 CJ E&M인재시스템이라는 핵심 자원을 활용한 현지화(glocalization) 전략을 수립했다. 공동 제작의 형태로 현지 사업자들과 파트너십을 맺으면서도 그들이 가지지 못한 ‘CJ만의장점을 제공하는 구도를 그려나갔다. 이처럼 한중 합작 형태의 협업을 하면 중국 정부에서 규제하는 외화 수입 쿼터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할리우드가아이언맨 3’ ‘트랜스포머 4’에 중국의 투자를 받고 공동 제작 형태를 취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배급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현지 시장에 뿌리를 내리자는 의도였다.

 

CJ E&M의 콘텐츠 로드맵 전체를 보자면 순수한 우리 자본과 역량으로 만든 최초의글로벌 프로젝트설국열차처럼 유니크하지만 할리우드식 화법이 담긴범글로벌 콘텐츠 CJ의 내공이 담겨 있지만 로컬 정서에 맞는글로컬 콘텐츠를 현지에서 제작하는 이원화 구도를 짠 것이다. (‘CJ의 투트랙 전략, 글로벌 vs. 글로컬참조.)

 

당초 CJ E&M철저한 현지화를 위해 연출을 맡는 감독만큼은 중국의 인재를 끌어들이려고 했다. 장이머우, 천카이거 같은 중국의 거장이나 재능 있는 젊은 감독 들과 제휴를 맺는 방식을 염두에 둔 계획이었다. 실제로 절차를 밟아보기도 했지만 현지의 중국 제작사들과 도통 손발이 맞지 않았다. 영화 판권이나 정산 시스템을 자신들이 다 가져갈 테니당신들은 투자만 하라는 태도를 취했다. 한국 투자사에는 휘둘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텃새가 엿보였다. 그래서 방향을 살짝 트는 식으로 대응했다. ‘현지 감독이 안 된다면 우리가 직접 하자!’ 바로 이런 생각에서 기획해대박을 터뜨린 작품이 오기환 감독의이별계약이다.

 

글로컬 콘텐츠의 위력을 보여준이별계약8

 

2013 6월에 중국 시장에서 개봉한이별계약은 현지 관객들의 심장을 관통했다.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5주 동안 2억 위안,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370억 원을 벌어들였다. 이전에 한중 합작영화가 소소하게 만들어졌지만 사상 최고의 성적을 낸 작품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흥미롭게도이별계약신파감성이 풀풀 묻어나는 멜로 영화다. 오기환 감독이 10년도 더 전에 만들었던 이영애 주연의선물이 원작이다. CJ는 왜 흔하디 흔한 멜로 장르, 그것도 한국에서는한물간신파를 택했을까? 이는 치밀한 사전 조사를 토대로 한 역발상이었다.

 

 

 

 

 

“중국 영화판에는 신기하게도 신파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슬픈 멜로물조차도 잘 볼 수 없었죠. 그런데 한국 드라마 콘텐츠는 엄청난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로맨틱 코미디는 감동도 있고, 유머도 있는데 중국에서는 그런 류의 영화가 없었거든요. 통속적으로 눈물, 콧물 쏙 빼는 신파 멜로를 해볼 만하다는 결론이 났지요.”

- CJ E&M 영화사업 부문 중국투자배급팀 박은 과장

 

내용도 원작 그대로 가져가지 않았다. 젊은 중국 여성들을 타깃으로 하기엔 초점이 명확하지 않다는 판단에 스토리 전체를 싹 바꾸기로 하고 세 명의 현지인 시나리오 작가를 기용했다. 이 작가들이 단계별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려 10여 가지의 스토리가 탄생하고 죽기를 반복했다. 결국 감독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들이 저마다 한두 숟가락씩 아이디어를 보태는 식의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면서 현재의 스토리를 완성했다. 영화를 전개하는 방식도 현지의 리듬에 맞췄다. 영화 중반까지는 로맨틱코미디의 경쾌함을 유지하다가 뒷부분에서는 완전히 최루성 멜로로 변하는 식으로강약을 확실히 줬다. 중국 관객들은 원작의잔잔한 드라마식 전개만으로는 지루해 할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주 작업 덕분에 중국에서이별계약은 한국 영화가 아니라 웰메이드 중국 영화로 여겨졌다.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이 제대로 들어맞은 셈이다.

 

‘이별계약’은 한국 영화계 중장년 감독들이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는 데 발판이 됐다는 점에서도 CJ를 비롯해 ‘K필름의 만리장성 넘기 여정에 의미 깊은 이정표를 세웠다. 앞서 안병기 감독의필선’, 허진호 감독의위험한 관계등 현지화 전략을 앞세운 프로젝트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데 이어이별계약이 확실한 흥행의 족적을 새기자 다소 미지근하던 공동 제작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바뀌었다.9 제작을 둘러싼 조건이 훨씬 개선됐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원래 중국 영화시장은 한국과 달리 제작사들이 가져가는 몫이 따로 없다. 그런데 영화접속의 장윤현 감독이 연출은 맡은 서스펜스·스릴러·재난 영화평안도의 경우는 현지 공동제작사를 설득해 기획·개발 단계에서 받는 운영비 대신 제작 지분을 받는 데 성공했다.

 

 

 

OSMT의 가능성을 제시한수상한 그10

 

글로컬 콘텐츠 전략의 또 다른 결실인 영화 ‘20세여 다시 한 번은 공동 제작에 대한 자신감이 빚어낸 독특한 기획물이다. ‘바디 체인지를 소재로 한 흥미로운 각본과 배우 심은경, 나문희의 환상적인 연기 궁합에 힘입어 2014년 초 한국에서 865만 명이 넘는 관객몰이에 성공한수상한 그녀의 리메이크작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그렇지만 콘텐츠 재활용이 아니라 투자 단계에서부터 한중 동시 제작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하면 리메이크작이 아니라이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콘텐츠의 원재료는 같지만 현지 문화에 맞게 각각 다른 토양과 요리법을 토대로 만들어낸원소스 멀티 테러토리(One Source-Multi Territory·OSMT)’ 작품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현지화를 위해 각본, 인력, 심지어 세부 장르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줬다.

 

우선 감독부터 배우까지 현지 최고의 인력을 대거 끌어들였다. ‘최면대사라는 히트작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인기 감독 천정다오가 메가폰을 잡았고, 각색 작업도 현지 작가와 함께 진행했다. 이 영화의 주연은 중국을 대표하는 배우 양즈사, 구이야레이가 맡았는데 천정다오 감독은 현지 관객들이 중심 인물 간에 얽히고설킨 멜로 라인에 재미를 느낀다는 점에 착안해 한국 버전과는 조금 다르게, 3대에 걸친 남성들이 한 여자를 좇는다는 점을 코믹 요소로 내세웠다. 판타지와 코믹을 섞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버전이휴먼 코미디물이라면 중국 버전은 멜로를 강조한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로 만들어진 셈이다.

 

또 세부 내용에 있어서도 다른 부분이 꽤 있었다. ‘수상한 그녀에서는 할머니가 젊은 처녀로 몸이 바뀐 뒤 신체의 변화를 찜질방에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실감하는데 ‘20세여 다시 한 번에서는 중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광장춤(지역 공원 등 광장에서 중·노년 여성들이 운동 겸 여가로 추는 군무)’을 함께 추는 과정에서 신체의 변화를 실감하고 기뻐하는 것으로 각색했다. 또 영화 삽입곡으로 중화권은 물론 한국에서도 유명한 등려군의 명곡들, 90년대 빅히트 드라마황제의 딸장면을 활용해 중국 전 세대 관객들의 향수와 감성을 자극했다.

 

“콘텐츠 현지화도 그렇지만수상한 그녀의 국내 마케팅 경험을 바탕으로 ’20세여 다시 한 번개봉 전에 중국 마케팅 스태프와 워크숍을 진행하고 프로모션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공동 제작 콘텐츠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했다는 생각에 저희도 고무돼 있습니다.”

- CJ E&M 영화사업 부문 마케팅1팀 강은경 팀장

 

결과는이별계약을 뛰어넘는 대성공이었다. 2015 2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115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역대 중국 로맨틱 코미디 중 9위의 성적을 거뒀고, 한화로 638억 원이라는 수익을 올렸다. 원소스 멀티 테러토리 작품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수상한 그녀는 베트남, 일본 등에도 진출했다. ’내가 니 할매다라는 제목을 단 베트남판은 외화를 제외한 역대 베트남 영화 중에서 흥행 1(59억 원)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거머쥐었다.11 아시아권 3개 국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콘텐츠로서 위상을 드높이는 성과를 올린 것이다. 베트남판은 할머니와 손자의 사랑, 고부갈등 같은 가족 간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췄다. 또 슬랩스틱 요소와 말장난 등을 강화했고, 조연진을 실제 코미디언들로 구성했다. 주인공의 어려운 과거로 베트남 전쟁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코미디를 좋아하는 베트남 관객에게 슬랩 스틱과 감동 코드를 오가는 구성이 먹혔다는 분석이다. 이 맛깔진 멀티 콘텐츠의 영토 확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OSMT 소스로 요리한 태국판과 인도네시아판도 올해 안에 개봉될 예정이다.

 

  

 

글로벌 행군 가속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글로컬 콘텐츠 전략은 드라마와 예능 같은 방송 분야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사실 KBS태양의 후예 SBS ‘런닝맨등이 중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하면서 한국 드라마와 예능은 아시아 지역에서 한류 열풍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CJ E&M은 기존 콘텐츠나 포맷을 그대로 수출하기보다는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다양한 합작 콘텐츠를 빚어내는 데 공을 들여왔다. 이런 행보에는 현지 정서를 반영한다는 의도도 담겨 있지만 해외 콘텐츠에 방어적인 태도가 강한 중국 등지에서 합작 형태의 콘텐츠가 잠재력이 크다는 판단도 들어 있다.

 

드라마인현왕후의 남자를 모티브로 공동 제작한상애천사천년은 성공적인 합작 콘텐츠의 좋은 예다. 스크린 스타 징보란과 정솽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는 예전에는 중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독특한 구성에 힘입어 첫 방송에서 1.21%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 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올해 시즌 2 방영을 앞두고 있다. CJ E&M은 현재 2011년 중국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인기 드라마의 후속작인남인방-친구(男人?-朋友)’의 제작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수한 드라마 제작 노하우를 갖춘 국내 감독과 스태프들이 현지 스태프들과 함께 완성도 높은 작품을 위해 작업 중이다.

 

예능 콘텐츠에서도 제법 시너지가 발휘되고 있다. 조상들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렛츠고 시간탐험대의 중국판은 사천위성 TV에서 역대 최고 시청률 1.60%를 찍고 현재 시즌 2 방송을 앞두고 있다. 또 우리에게 친숙한 tvN ‘꽃보다 할배는 파트너인 상하이동방 위성에 중국판인화양예예(???)’에 대한 제작 노하우 전수와 전반적인 컨설팅을 진행해 큰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다.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직 시장은 무르익지 않았지만 K콘텐츠에 호의적인 신흥 시장에서는 파트너십이나 공동 제작을 통해동반 성장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우리 콘텐츠 공급만 늘리는 게 아니라 글로컬 전략을 통해 문화 콘텐츠 수준을 높여 시장의 크기와 체력을 근본적으로 키운다는윈윈 로드맵인 것이다. 베트남에서의 첫 합작 드라마인오늘부터 청춘은 그런 의도가 실제 성과로 잘 반영된 사례다.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거머진 이 드라마의 성공은 어쩌다 마주친 행운이라기보다는 베트남 시장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온 결과물이다. CJ E&M 2011년 영화을 시작으로 베트남에서 영화 직배 사업을 시작한 이래 현지 영화계 인력과의 네트워크를 꾸준히 확장시켜왔고, 2013년에는 베트남 국영 방송 VTV와 드라마 공동 제작 파트너십을 맺으며 방송 콘텐츠 현지화 사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산물이 바로오늘부터 청춘이다.

 

이 밖에 태국은 제2의 베트남이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기대주다. tvN 드라마응급남녀와 예능 프로그램렛미인등이 수출돼 인기를 끌면서 교류가 확장됐다. 이를 계기로 CJ E&M은 지난 4월 말 태국 1위 종합 미디어 사업자인 트루비전스와 미디어 콘텐츠 합작법인 설립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사는 올해 안에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CJ E&M의 콘텐츠 기획, 제작 역량과 트루비전스의 현지 마케팅 노하우를 결합해 태국에서 현지화된 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고 광고 사업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CJ E&M 2020년께 글로벌과 국내 매출 비중을 73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 야심만만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영화는 물론 드라마, 예능 등 다방면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공동 제작 프로젝트는 효과적인 무기가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처음에는 주로 한국 스태프가 현지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공동 제작 1.0’) 점차 국내 히트작을 변형하고 가공하는 방식으로 현지화 콘텐츠가 꾸준히 기획됐다면(‘공동 제작 2.0’), 이제는 서로의 장점을 접목시키며 현지 시장에 맞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내는공동 제작 3.0’ 단계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12

 

 

시사점

 

문화산업은 산업적 특성으로 인해 북미와 유럽, 그리고 일본의 일부 기업들을 제외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 문화산업 분야에서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의 기업들은 국내 혹은 좀 더 넓게 보자면 문화권 내의 지역(예컨대, 동아시아 지역)을 염두에 두고 문화상품을 기획 제작하고 배급/유통하게 된다.

 

CJ도 기본적으로는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 혹은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라는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아시아권의 문화산업에서는 한류가 주류문화의 성격을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고, CJ가 아시아의 문화산업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CJ또한 아시아 문화산업의 중심에 서서 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연말에 개최되는 아시아의 음악 축제이자 시상식인 MAMA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권을 제외한다면 한류 자체가 주류 문화에 편입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CJ E&M의 비아시아권에서의 행보도 해당 지역 내에서의 주어진 한계 속에서 제한된 팬덤을 염두에 둔 전략을 수립 집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Alan Rugman이 지적한 대로 대부분의 산업에서 글로벌을 표방하는 많은 기업들의 경영활동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글로벌이 아닌 ‘regional’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서유럽의 기업들은 북미나 아시아보다는 서유럽 지역을 주 활동 무대로 하고 있고 미국 기업들도 대부분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산업에서 기업활동의 중심이 regional이라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일반 제조업도 아닌 문화산업에서, 문화적으로 유사한(문화적 거리가 가까운) 국가라 할지라도 사실 자국을 벗어나서 외국에서 성공을 거두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국 내에서의 골목대장(national champion)에 머무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CJ 활동의 중심이 북미나 유럽이 아닌 아시아 지역이라는 것은 전혀 실망할 일이 아니며 사실 아시아 지역의 성공만으로도 CJ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볼 수 있다.

 

CJ E&M의 성공요인에서 중요한 부분은 현지화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국제경영의 오랜 주제 중 하나인 기업의 해외 진출 시의 표준화/적응화(현지화) 전략의 틀로 분석해보면 CJ E&M은 초기에는 표준화 전략을 택했으나 점차 해외에서의 경험이 쌓이면서 현지화 전략을 수립 집행하고 있다. 다양한 층위의 현지화가 가능한데 CJ는 각 장르별로 주어진 제약과 기회를 고려해 다양한 수준의 현지화를 진행했다. 또 현지화에 있어서도 진출 국가의 다양한 플레이어들을 적극 활용하는 민첩함을 보여주었다.

 

향후 과제

 

요즘 한류도 3.0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장금같은 K드라마로 불붙은 한류 1.0, K팝이 이끈 한류 2.0는 이제 영화, 예능, 게임, 캐릭터, 식문화 등 전방위적인 콘텐츠가 중화권을 넘어 지구촌 곳곳으로 확산되는 한류 3.0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문화 열풍이 타 문화권에서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류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현상이 될지 모른다. 1980년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홍콩 영화들의 전성시대가 한 세대도 지속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 문화산업의 도약은 한류 3.0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진화를 거듭할지와도 맞물리는 문제다. K콘텐츠가 글로벌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국적을 말해주는 ‘K’라는 수식어가 굳이 없어도 고유의 색이 드러나면서 다양한 사회에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한국적인 것만을 밀어붙이기보다는 현지 문화와의 소통과 융합을 모색해야 한다. 글로컬 콘텐츠 전략이 부상하고 있는 이유다. ‘아시아의 할리우드가 되겠다는 포부로 일찍부터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CJ는 지난 20년에 걸친 창조적 여정에서 이 교훈을 얻었고 과감히 실행으로 옮기고 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콘텐츠 소비대국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드디어 나름의 존재감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CJ의 향후 행보를 장밋빛으로 낙관하기는 힘들다. 소프트파워의 핵심 축으로 일컬어지는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맹위를 떨쳐온 미국과 신흥 강자의 지위를 노리며 파죽지세로 몸집을 불리고 있는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큰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CJ가 한국에선 문화산업의 물꼬를 트면서 우뚝 선 토종 골리앗으로 여겨지지만 글로벌 전장에서는 다윗이다. 거대한 자본으로 얽히고설킨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결국 브랜드화된 콘텐츠를 무섭게 쏟아내는 진짜배기 골리앗 기업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어야 한다. 그 기업 명단에는 프랜차이즈 영화 시리즈인스타워즈: 깨어난 포스한 편으로 2조 원이 넘는 수익을 누린 디즈니도 있고, 미국 2위 멀티플렉스 체인 AMC에 이어 영화다크나이트를 만든 할리우드 영화제작사 레전더리 픽처스를 66000억 원에 인수한 중국의 공룡 기업 완다도 있다. 최근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동시에 끌어낸 나홍진 감독의 영화곡성 100억 원을 투자했다고 알려진 이십세기폭스,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옥자 570억 원이란 거금을 쏟아붓은 넷플릭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들이 꼭 경쟁자로 남으란 법은 없다. 플랫폼과 콘텐츠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될 수 있는 복잡다단한 생태계인데다 그 어느 때보다 변화가 많은 역동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CJ는 글로벌 강호들이 포진한 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국내외 여건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중국은 문화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만들기 위해 대형 기업 육성 정책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경쟁 구도 정착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균형 잡힌 시각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대기업을 만들기 위한 토양 구축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DBR mini box

 

 CJ의 투트랙 전략, 글로벌 vs. 글로컬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CJ의 콘텐츠 전략은투트랙(two-track)’이다. ‘설국열차의 경우처럼 구미권까지 전략적 반경에 넣은 대작에 투자하고 제작하는범글로벌전략이 하나의 큰 줄기라면, 다른 하나는 한류의 장점을 활용한글로컬 콘텐츠전략으로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다. 문화산업을 일으킬 때부터 할리우드와 공존할 수 있는아시아 맹주를 목표로 삼은 이유는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기업의 진취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방송이든, 영화든 내수시장으로는 어림도 없는 한국 기업들의 태생적 한계로 인한 숙명에서 비롯됐다. 예컨대 한국 영화시장이관객 수로는 르네상스를 누리고 있다지만 우리나라 콘텐츠 기업들의 수익률을 보면 대부분 한 자릿수이거나 마이너스일 정도로 현저히 낮다. 2015년 한국 영화산업만 봐도 1인당 연간 평균 관람횟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4.22회에 이른데다 관객 수 2억 명을 3년 연속 돌파했고 매출도 전년 대비 4.2% 증가했지만 개봉작의 투자수익률(분석 대상 73편 기준)은 마이너스(-7.2%)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매출 규모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큰데다 두 자릿수 이익률을 누리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고성연HBR Korea 에디터 amazingk@daum.net 김재범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 dreamie@skku.edu

 

고성연에디터는 한국경제신문에서 7년간 기자로 일했으며 2008년 임페리얼대(Imperial College London)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영국의 크리에이터에게 묻다> <CJ< SPAN>의 생각> 등을 저술했다.

 

김재범교수는 영국 런던대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성균관대 경영대학 및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 연구 분야는 국제경영, 문화예술경영, 디자인경영이다. 등 저명 국제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한국디자인학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한국문화경제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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