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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 버버리의 디지털 혁명

‘트렌치 혁명+밀레니얼 타기팅=젊은 名家’, 버버리, 디지털 혁신기업으로 대변신

김현진,여준상 | 200호 (2016년 5월 lssue 1)

 

 Article at a Glance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는 한때 지나친 라이선스 남발과 브랜드 전략의 부족으로 위기를 겪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고임원진은 디지털이라는 도구를 채택했다. 디지털로의 전환은 자연스레 밀레니얼세대를 최전선에서 공략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들은 지금까지 경쟁자들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대했던 럭셔리 고객군 내의블루오션이었다. 현재 버버리는 업의 본질이디지털 미디어 컴퍼니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디지털은 태양이고, 이를 중심으로 회사의 모든 일을 결정한다. 160년 전통의올드컴퍼니에서 밀레니얼세대에 가장 소구하는영 컴퍼니로 거듭난 버버리의 경영 비결은 아래와 같다.

 

1) 브랜드 구조의 단순 집중화를 통한 정체성 강화

2) 아이코닉 제품 부활을 통한 브랜드 특유의 기운 창출

3) 자기 브랜드에 몰입된 직원들을 브랜드 앰버서더로 활용

4) 밀레니얼 타기팅을 통해 전통 명가에 젊음의 코드를 주입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손지현(이화여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기사에 인용된 사진은 모두 버버리가 제공했습니다.

 

2012 426. 기자는 대만 타이페이 신인프라자에서 열린 디지털쇼, ‘버버리 월드 라이브에 초대됐다. 아시아 전역에서 초대된 기자들과 VIP들은 행사 관계자들의 안내에 따라 어둠상자처럼 생긴 쇼장 안으로 들어섰다. 쇼장 안의 풍경은 기존 패션쇼와는 사뭇 달랐다. 캣워크를 따라 그 주변에 쇼를 감상할 수 있는 의자들이 나란히 배치되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일단 무대가 없었다. 대신 고개를 조금 들어 올려다봐야 하는 각도의 벽면에 360도로 빙 둘러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의자도 없었다. 쇼 참가자들은 오로지 두 발로 서서 벽면 속 영상을 지켜보며 서서히 분위기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가슴을 뛰게 할 만큼 커다란 음악이 흐르고, 버버리의 트렌치코트와 우산, 그리고 최신 컬렉션을 입은 모델들이 몽환적인 이미지로 연출된 스크린 위로 하나둘 등장했다.

 

빠른 비트의 음악 때문인지, 모델들의 활기찬 워킹 때문인지,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듯한 묘한 기분 때문인지 판단할 새도 없이 쇼는 스피디하게 진행됐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단풍잎 모양의 금박지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스크린 안에서도 금박지가 쏟아져 내렸기에 이것이 스크린 속 장면인지, 실제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당시 기사는 이렇게 기록됐다.

 

“피지컬(physical)과 디지털(digital)을 교란하는 것은 버버리가 의도한 오감만족도의 취지다. 정보기술(IT)의 진화와 동행하는 버버리에서 실제와 가상의 구분은 더는 의미가 없어 보였다.”1

 

버버리는 그 후 4년이 흐르는 동안 이미 다른 경쟁자들보다 좀 더 잰걸음으로 디지털 세계로 진입했다. 사이트 및 온라인 판매 강화뿐 아니라 브랜드 철학에까지 디지털 시대의 문법에 발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약 6개월 뒤에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옷을 미리 선보이는 패션위크의 룰을 깨고 패션쇼와 동시에 캣워크의 모델들이 입은 옷을 바로 구입할 수 있게 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시작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SNS 플랫폼뿐 아니라 카카오톡, 위챗 등 각 국가별로 활성화된 채널을 통해 활발한 디지털 마케팅을 벌인 덕에 20대 이하 젊은 소비자들에 가장 소구하는 브랜드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태생적으로 배타적인 특성 탓에 여러 산업군 중에서도 IT와 관련된 혁신과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럭셔리 업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혁신기업이 탄생한 셈이다. 160년 전통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풍파를 겪는 동안 올드(old)한 브랜드란 이미지가 굳혀졌던 브랜드가 명품 업계가 주목하는 최첨단 브랜드로 거듭난 배경을 DBR이 분석했다.

 

 

 

 

 버버리의 아이코닉 제품, 트렌치코트를 만드는 장인의 모습

 

 

브랜드를 재정립하다

 

2006 7, 버버리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안젤라 아렌츠 전 사장2 은 첫 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임원들의 옷차림을 보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습하고 으슬으슬해 트렌치코트를 입기에 딱 좋은 날씨였는데도 60여 명의 임원 중 이 코트를 입고 나타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 할인 혜택으로 좀 더 쉽게 살 수 있는 옷을 임원들마저 입지 않는 마당에 어떻게 고객들에게 트렌치코트를 팔 것인가. 이것이 그가 품게 된 고민의 출발점이 됐다.3

 

당시 명품 시장은 너도나도 전 세계적으로 매장을 확대하면서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버버리는 매년 평균 2%씩 성장하는 거북이걸음을 이어가는 데 그쳤다. 각 대륙으로의 영토 확장에 힘입어 글로벌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이 과정에서 23개의 라이선스가 남발됐다.

매출 비중이 높은 일부 국가에선 해당 국가에서 잘 팔리는 제품을 자체 생산해 판매할 수 있게 했기에 브랜드 간 통일성을 느낄 수 없었다. 즉 미국인이 느끼는 버버리의 이미지와 중국인이 느끼는 버버리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 또 남성복과 여성복 등 카테고리별로 각기 다른 총괄 디자인 책임자가 있고 홍콩에는 아시아인을 위한 디자인 사무실이 따로 있었다. 럭셔리 브랜드의 기본인통일된 아이덴티티가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버버리는 이전 CEO인 또 한 명의 미국 여성, 로즈 마리 브라보4 에 의해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그나마 많이 회복한 상황이었다. 1997년 취임해 2006년까지 만 10년을 근무하면서 브라보는 각 국가별로 남발한 라이선스를 정리하고 시장별 디자인, 가격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00 23000만 파운드였던 매출이 2006 74000만 파운드로 3배 이상 늘었다. 수익 개선에 힘입어 2002 7, 영국 증권시장에서 성공적으로 기업공개(IPO)를 단행할 수 있었다.5

 

제품군 역시 지나치게 다양했다. 예컨대 런던 본드스트리트에 있는 매장에서는 킬트(kilt)6 를 팔았고 애견 산책용 목줄도 팔았다. 제품군이 다양한 것은 좋았지만 뚜렷한 타깃 고객군을 설정하지 않은 탓에 브랜드 특유의 배타성(exclusiveness)이 희석돼 있었다.

 

이 브랜드의 핵심 제품이라 할 수 있는 버버리 코트는 미국 뉴저지와 이탈리아, 독일 등의 공장에서 영국 내 소비자 가격의 절반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렇게 전 세계 시장, 다양한 아이템 등으로 촉수를 뻗쳤지만 실속은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매출이 10배 이상 높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7 그룹, 그리고 PPR그룹8 과 경쟁을 벌여야 했다.

 

미국 인디애나 주의 시골 마을 출신인 아렌츠는 도나카란 등 주요 패션 업체들을 두루 걸치며 25년간 경력을 쌓아왔다. 이런 점이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45)9 와 닮았다. 영국 출신으로 역시 작은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베일리는 도나카란, 구찌 등 유명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도나카란에서는 아렌츠와 함께 일을 한 경험도 있다. 사교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은 남다른 궁합을 자랑했다. 아렌츠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좌뇌와 우뇌가 고루 발달된 점을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으로 꼽았다. 그는 스스로를패션 세계의 미친 창의성(craziness)을 존중하는 경영자, 베일리를패션의 상업성을 이해하는 디자이너로 소개했다.

  

아렌츠는 버버리 CEO 자리를 제안받자마자 베일리를 찾아갔다.10 그리고 그와의 긴 점심식사 끝에 그 자리에서 바로 버버리행을 결심했다. 디자이너와 CEO가 특별한케미를 자랑하게 될 것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회사에 와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됐다.

 

아렌츠가 가장 먼저 단행한 것은 베일리를브랜드 제왕(Czar)’으로 추대한 것이었다. 베일리에 대한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럭셔리뿐 아니라 좋은 브랜드로서의 필요충분조건은 일관성(consistency)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의상디자인뿐 아니라 각종 광고 이미지 등고객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베일리의 사무실을 반드시 통하도록 했다.

 

한 사람의 눈을 통해 모든 이미지가 일관성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다. 디자인 사령탑도 통일해나가기 시작했다. 홍콩의 디자인팀을 해체하고 트렌치코트를 주로 만들던 미국 뉴저지 공장을 폐쇄했다. 뉴저지 사무실의 디자인팀 일부는 영국 본사로 불러들였다. 영국 내에서도 제품군별로 주안점을 둘 아이템과 정리해야 할 아이템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브랜드 재정립의 일환으로 폴로셔츠를 만들던 영국 웨일즈의 공장도 폐쇄했다.

 

대신 요크셔 지방에 있는 캐슬포드(Castle ford) 공장 시설에 투자를 집중했다. 이 공장은 버버리를 상징하는 아이콘인 트렌치코트 등 레인웨어(rainwear)를 만드는 곳이었다. 이 모든 것이 숭배 및 예찬의 대상을 가리키는컬트(cult)’와 같은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11 버버리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고객들에게 보이는 모든 것들에 일관성과 통일성을 가하는원브랜드-원 컴퍼니전략에 힘을 싣기 위해 아렌츠는 베일리를 크리에이티브 총괄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로 임명하기도 했다.

 

역사에 집중하다

 

이러한 움직임은 브랜드의 핵심가치(core value)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었다. 버버리는 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에게 트렌치코트를 제공하고,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 코트를 입고 은막을 누볐던, 트렌치코트의 명가(名家). 그러나 아렌츠 사장 취임 직후만 해도 트렌치코트를 필두로 한 아우터(외투)의 매출 비중은 20% 남짓에 불과했다.

 

경쟁사는 어땠을까. 루이비통의 핵심 제품은 여행가방, 구찌의 핵심 제품은 가죽 제품이었다. 버버리의 역사는 트렌치코트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루이비통의 여행가방과 구찌의 가죽 제품이 여전히 그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데 반해버버리 코트라는 보통명사로까지 불리는 트렌치코트의 성적은 초라하기만 했다.

 

아렌츠는모든 전략을 트렌치코트를 중심으로 짜자고 강조했다.12 트렌치코트 안에는 이 브랜드의 핵심 요소가 모두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도 험한 날씨로 대표되는 런던 날씨에도 거뜬히 견딜 수 있는 기능성 소재로 만들어져영국다움(Britishness)’이란 요소가 살아 있었다. 거기에 시대감각에 맞는 디자인만 강화하면 브랜드 내의 스타 제품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해보였다. 심지어 경쟁이 될 만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가운데 트렌치코트를 핵심 아이템으로 내세우는 사례는 전무했기에 고객들의 인식 속에 독특함(uniqueness)으로 기억될 수 있었다.

 

단지 이미지로만 트렌치코트를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제품이 실제 매장에서 눈에 띄게 배치되고 원활하게 판매될 수 있도록 가장 잘 팔리는 50개 스타일에 ‘6-6-6-6’ 시스템을 적용했다. 각각 판매 가능 분량을 기준으로 6주 동안은 매장에, 6주는 창고에 보관하고, 6주 분량은 실제 생산을 진행하고, 나머지 6주 분량은 원자재 상태로 유지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제품 판매 주기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세팅하면서 고객이 원할 때 해당 제품이 품절돼 기다리게 하거나 가망 고객을 잃는 일이 없도록 했다.

 

 

핵심 제품을 제대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고객들과의 접점에 있는 판매 직원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 버버리의 핵심 제품이었던 폴로셔츠를 파는 데만 익숙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트렌치코트 한 벌을 파는 것이 폴로셔츠 10벌 이상을 파는 것보다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도록 성과 측정 시스템을 개선했다. 이들이 고객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버버리에 트렌치코트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잘 알아야 했다. 이를 위해 판매 직원용 제품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장인이 대부분의 공정을 수작업으로 한 땀 한 땀 트렌치코트를 만드는 모습의 비디오를 제작해 직원들이 직관적으로 제품의 가치를 인식하게 한 것이다. 트렌치코트가 하나 완성되려면 3주가 걸린다.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100개가 넘는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한 벌이 완성되는 귀한작품이라는 사실을 이후 꾸준히 직원과 고객을 대상으로 교육해나가기 시작했다.13

 

교육을 좀 더 활성화하기 위해 버버리가 채택한 툴(tool)이 아이패드였다. 전 세계 판매 직원들에게 모두 지급된 아이패드는 현재까지 매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매장에 전시되지 않은 제품의 옵션을 보여주고, 가격 등 쇼핑 정보를 안내하는 가이드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더해 장인정신이 묻어나는 제작 공정 등도 동영상으로 바로 보여줄 수 있게 했다.

 

이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그러나 자연스럽게 버버리는 물론 지금까지 럭셔리 업계가 메인 타깃으로 삼지 않았던 새로운 소비 계층이 부각되기 시작됐다. 바로밀레니얼세대(Millennials)’였다. 이들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1980∼2004)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다. 미국 세대 전문가인 닐 하우와 윌리엄 스트라우스가 1991년 펴낸 책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Generations: The History of America’s Future)>에서 처음 언급돼 하나의 세대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청소년 때부터 인터넷을 사용해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IT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아 교육수준도 높은 편이다. IT에 대한 관심과 정보가 많아테크(tech)세대, X세대의 뒤를 잇는 Y세대로 불리기도 했다.14

 

아렌츠는기고문15 에서 이들 세대가 경쟁자들이 지금껏 소홀히 하고 무시하기도 했던, 도화지의 여백(white space)과 같은 소비층이라고 설명했다. 밀레니얼세대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해 선배 세대에 비해 물질적으로 여유롭지 않고, 소유보다는 공유나 임대 형태로 재산을 활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당장 소비 여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굳이 타깃으로 삼지 않았던 계층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한 것은 밀레니얼세대의 개인적인 소비 성향이었다. 밀레니얼세대는 다른 씀씀이는 줄여도 자신의 개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품에 지갑을 오히려 활짝 열었다. 또 이들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삼은 것은 그동안 기존 세대에게는체크 패턴’ ‘전통적’ ‘고루함등의 이미지로 인식됐던 브랜드 이미지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됐다. 버버리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한 이들 집단을 핵심 고객층으로 설정하는 데 대한 사내외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이들이 거꾸로 버버리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었기에 새로운 시도를 부담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첫무기역시 트렌치코트였다. 기껏해야 안감의 디자인, 단추의 위치 정도만 바꿔 다양성이 제한적이었던 트렌치코트를 망토 스타일, 소매가 짧거나 스커트처럼 보이는 스타일 등으로 디자인을 추가하고 다양한 색상을 추가해 무려 수백 가지의 옵션을 확보했다. 

 

 

 

밀레니얼세대를 위한 디지털 마케팅

 

디지털은 버버리 부흥 전략의 중심이 됐다. 버버리는 그저 부수적인 마케팅 수단으로써가 아닌 기업의 핵심 정신으로 디지털을 활용했다. 물론 전통적인 조직의 DNA를 한 번에 바꾸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조직 내부에서의 혼란을 수습하는 일이 중요했다.

 

아렌츠는 CTO(Chief Technology Officer)를 불렀다. 그리고버스의 뒷자리가 아닌 앞자리에 앉아 달라고 부탁했다. 서비스나 지원 부서로 여겨졌던 IT 관련 팀의 위상을 격상하고 디자인과 판매(retail) 쪽 모두에서 전략의 중심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아렌츠의 요청을 경청하던 CTO는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이렇게 정리했다.

 

‘조직 내부에서 나오는 괴짜 의견(crazy idea)들을 취합해 이 아이디어들을 중심으로 기술을 수립할 것. 그리고 이런 의견을 조직원들이 활발히 낼 수 있는흰 캔버스(blank canvas)’를 마련할 것.’16 아렌츠와 베일리는 버버리를디지털 미디어 컴퍼니로 소개했다. 그리고 다가오는디지털 쓰나미시대에 경쟁자들과 버버리를 차별화하는 도구(differentiator)’로 디지털을 활용하기로 했다. ‘디지털은 태양이고 이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간다는 것이 디지털 전략의 핵심이었다.

 

 

다행히 당시 버버리의 영국 본사 직원 중 70% 30세 미만의 밀레니얼세대였다. 이미 회사 밖에서 기술 혁신을 체화하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사는 이들에게 회사 내부의 변화는 받아들이기 쉬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통했다.

 

한 세기를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인만큼 기업 내 위계질서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아렌츠는 이를 줄이고 젊은 직원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게 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전략혁신위원회(Strategic innovation council)를 열고 젊은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들이 내놓는날 것상태의 아이디어는 베일리가 직접 경청했다. 이 위원회에 속한 젊은 직원들의 역할은 특히 밀레니얼세대의 쇼핑 성향에 비춰꿈을 꾸게할 만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나온 아이디어들은 임원들이 주축이 되는 중역 회의에서 논의됐다. 임원들의 역할은 이들의 아이디어를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 의견들을 어떻게 하면 충분히 지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었다.17  밀레니얼세대 공략을 위해 같은 세대 직원을 활용하면서 소비자 지향(customer orientation) 전략이 자연스레 조직의 질서로 스며들게 했다.

 

 

 

 

2016년 3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버버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열린 '아트오브더트렌치 서울' 행사에는 배우 고준희 씨(왼쪽)등 여러 스타들이 참석했다.

 

2016년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봄/여름 시즌 여성복 패션쇼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이 아직도 럭셔리와 온라인의 방정식을 놓고 수없이 저울질하는 사이 버버리는 강력한 리더십과 팔로어십을 바탕으로 온라인 영토를 선점하기 시작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은 훈풍을 등에 업은 돛단배처럼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2009 11월 론칭한아트오브더트렌치(Art of the trench)’였다. 이는 브랜드의 핵심 제품인 트렌치코트를 입은 연예인과 예술가, 패셔니스타들을 찍어 올린 글로벌 소셜미디어 웹사이트다. 국내에서도 최근 배우 이종석, 차승원, 고수, 최지우, 한효주, 고준희, 이영진과 모델 김재영, 김성희, 강승현, 포니, DJ 페기 굴드 등 영화, 디자인, 미디어, 패션, 음악과 엔터테인먼트에 종사하는 약 30명의 유명 인사들이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고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들을 웹사이트에 올리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들의 이미지는 서울 청담동에 새로 오픈한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열린 이벤트를 통해 올 3월 선보여졌고 동시에 버버리닷컴을 비롯,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카카오, 라인, 웨이보 등 다양한 SNS를 통해 공개됐다. 각국에서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가 공개되는 버버리 플랫폼은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소유한 소비자들이 자신의 스타일링 노하우를 동료 소비자들과 공유하는 브랜드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리테일에서의 혁신도 진행됐다. 2012 9월 영국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에 문을 연 버버리 매장은 오프라인에서의 온라인 체험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모든 의상에는 전자태그가 삽입돼 옷을 들고 특수 거울 근처로 가면 해당 의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 함께 매치하면 좋을 의상들, 런웨이에서 모델이 입은 모습 등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2009 9월 런던에서 열린버버리 프로섬 2010년 봄·여름 패션쇼에서는 온라인 채널을 통해 최초로 버버리 패션쇼 전체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기도 했다. 당시 해외 언론들은 통상 바이어, 에디터 등 패션업계의 핵심인 소수의 업계 관계자를 위해 열렸던 쇼가민주화를 맞았다는 등의 해석으로 패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했다.

 

 

버버리는 이후에도 소셜미디어의 유행과 트렌드에 발맞춰 각 플랫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재빨리 공급해냈다. 이렇게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자체제작에 있었다. 버버리의 온라인 계정 운영을 위한 영상 등 시각물은 베일리의 지휘하에 회사 내부에서 제작됐다. 통상 광고물의 경우 전문 제작사나 광고대행사에 외주를 주는 럭셔리 업계의 관행을 깨고 회사 내부에 관련 조직을 둔 이유만 봐도 버버리가 디지털 채널을 위한 소통을 마케팅수단이 아닌전략’으로 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 제작의 이유는 의미의 왜곡을 막고 소비자와 좀 더 가깝게 소통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버버리의 영상물은 일관성(예컨대 모든 홈페이지의 첫 화면에는 아이콘 아이템인 트렌치코트가 반드시 등장)과 빠른 업데이트 등 럭셔리 브랜드의 미덕과 밀레니얼세대의 소비 행태가 최적화된 비율로 조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버버리의 다양한 SNS 활동은 <그림 2> 참조.)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버버리의 매출도 탄력을 받았다. ( 1) 아렌츠 재임 기간 주가는 재임 초에 비해 3배 가까이 올랐다. 물론 늘 탄탄대로였던 것만은 아니다. 2012 9월 매출 증가율이 최저치로 떨어져 순이익이 시장 예상치를 밑돌 것이라며 수익경고(profit warning)18 를 발표하기도 했다. 마침 이 내용을 막 발표한 시기와 맞물려 열린 2013년 봄/여름 버버리 컬렉션에서 아렌츠는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을 중심으로 하는) 경영전략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 내 수요 감소, 유로존 재정위기 장기화처럼 외부 요인에 의한 단기적 충격 때문에 장기적인 전략을 수정할 수 없다는 단호한 선언이었다.19 마침 이때 열린 버버리 컬렉션은 큰 호평을 얻었다. 베일리의 디자인 역량이 돋보이는 영민한 쇼였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고, 이로 인해 부정적인 시각을 해소하는 데도 보탬이 됐다.

 

혁신은 계속된다

 

2014 5. 애플로 이직한 아렌츠의 뒤를 이어 CEO를 맡게 된 후계자는 놀랍게도 베일리였다. 디자이너로 출발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오른 그가 CEO까지 겸직하게 된 것이다. 총괄 디자이너가 경영까지 맡게 되는 것은 글로벌 브랜드로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인사 혁신이었다. 이는 버버리에서 13년간 근무하며 다양한 역량을 보여준 베일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창의적이고, 유연하고, 스마트했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출렁이기 시작했다. 아렌츠의 사임 발표 당일 주가는 7%가량 하락했다. 반면 베일리가 구축한 디자인 전략과 일관된 비주얼 관리를 통해 쌓은 노하우, 젊음이 디자인과 IT를 바탕으로 한 회사 전략에 가장 부합할 것이라는 긍정론도 적지 않았다. 그는 영국의 젊은 뮤지션을 발굴해 그들의 음악을 버버리 소셜미디어와 매장 등을 통해 전달하는버버리 어쿠스틱을 직접 운영해오기도 했다. 버버리의 DNA라 할 수 있는영국스러움’ ‘음악등의 요소를 그만큼 잘 이해하는 이가 없다는 내부의 평가도 그의 ‘CEO 적임설에 힘을 실어줬다.

 

베일리는 이후 아렌츠가 이식한 디지털 DNA를 자신의 방식으로 차근차근 살찌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7, 영국 언론들은 일제히베일리가 버버리의 매출을 되살렸다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중국 및 홍콩의 실적개선에 힘입어 주가도 올랐다. 이후 베일리의 경영 능력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다.20 지금도 여전히디자이너 출신 CEO’의 능력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브랜드에 대한 열정과 애정만큼은 지금까지 버버리를 거쳐 간 여느 경영자보다 크다는 것이 대체적인 내부 평가다.

 

 

 

베일리 재임 이후 글로벌 채널뿐 아니라 각국의 로컬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마케팅도 보다 활발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2015년 한국에서 카카오, 일본에서 라인 등과 제휴를 맺고 각국의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플랫폼과 방식으로 온라인 콘텐츠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구글, 애플 등에 이어 세계의 혁신 기업들과 제휴를 확대해나가면서 뉴욕의 리서치회사 L2가 럭셔리 산업 내 브랜드를 디지털 IQ 인덱스로 평가하는 ‘L2 패션 디지털 인덱스에서 2015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베일리는 최근 글로벌 패션업계에 혁명적 선언을 하며 이슈의 중심에 섰다. 올해 9월부터 매년 네 차례(1, 2, 6, 9) 선보였던 남성복과 여성복 쇼를 통합해 연 2(2, 9)만 열고 쇼에 나온 의상들은 쇼가 끝나자마자 즉시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팔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패션쇼 명칭도 기존의 봄/여름 또는 가을/겨울 컬렉션이 아닌버버리 컬렉션으로 부르기로 했다.

 

 

지금까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 참가해 파리, 런던, 뉴욕, 밀라노에서 각기 열리는 이른바세계 4대 패션위크는 쇼가 열리는 시기와 무대 위에서 선보이는 의상 사이에 계절의 간극이 존재했다. 그래서 한여름에는 모피와 가죽이 등장하는 가을/겨울쇼가, 한겨울에는 수영복을 입은 모델들이 등장하는 봄/여름 쇼가 열렸다. 바이어와 에디터 등에게 주문 및 촬영 등의 시간을 확보하고 브랜드로서도 주문량을 보고 물량을 조절하기 위한 암묵적인 합의였던 셈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카르텔처럼 유지됐던 이런 공식이 디지털 시대 문법과 맞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거의 모든 브랜드가 실시간으로 쇼 영상과 사진을 각종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급하고 있어 실제 이 제품이 고객들의 손에 전달되는 시점에는 ‘SNS 등에서 너무 많이 보이고, 심지어 SPA(제조유통일괄형) 브랜드를 통해 이미짝퉁까지 등장한 제품이다보니 식상하기 짝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버버리는 선구적으로 패션 업계의 연례행사를 고객 중심의 질서로 전환했다. 기다릴 필요 없이 내가 원할 때, 원하는 아이템을 손에 넣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버버리의 혁명적인 행보와 발맞춰톰포드등 일부 브랜드도 같은 길을 택했다. 좀 더 보수적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패션협회는 당분간은 기존 방식을 유지할 것임을 밝혔지만 이미 많은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2003 7,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21 에서 베일리는앞으로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달라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분명히 디자인 분야에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패션 디자인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도전을 좋아하니까라고 답했다. 그리고 거의 10년이 흐른 2012 5, 기자와 다시 만난 그는 “10년 전 예측이 맞아 떨어져 신기하다. 난 버버리에서 여전히 디자인을 맡고 있지만 패션뿐 아니라 건축 웹디자인 패키징, 음악, 그래픽디자인도 맡고 있다고 말했다.22

 

물론 치열한 럭셔리 비즈니스 세계에서 꽃길만 기대할 수는 없다.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경제 성장 둔화와 반부패 감시 강화 등으로 중국의 내수 시장이 세계 명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 대한 매출 비중이 높은 버버리로서는 적잖은 리스크로 작용하는 포인트다. 또 다른 브랜드들보다 일찍 진출한 온라인 판매와 관련해 위조품 거래 방지 등에도 주력해야 한다.23

 

 

 

 

현재 버버리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토퍼 베일리 CEO

 

라인과 파트너십을 맺은 버버리

 

2015년 10월 서울 청담사거리에 문을 연 버버리 플래그십 스토어

 

아울러 온라인 판매 시 각 국가별로 다르게 책정된 제품 가격을 소비자들이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는 만큼 가격 차이에 따른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이에 맞게 가격 전략을 세우는 것은 남은 과제 중 하나다. 버버리 역시 한국에서도 영국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각 제품의 가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제품 또한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직접 배송되지만 구매 및 결제는 한국 사이트에서만 진행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대체로 본사가 있는 현지 판매 가격이 해외보다 저렴하다보니 소비자들이 자연스레 가격 비교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은 브랜드 입장에선 리스크다. 지난해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는 미국 홈페이지를 통해 50% 세일을 진행하자 국내 공식 판매 가격 대비 60%까지 가격 차이가 벌어지면서 소비자들이 미국 사이트로 몰리기도 했다.24 온라인 유통으로국경 없는 쇼핑이 가능해졌고 해외 직구에 대한 소비자들이 노하우가 높아진 만큼 전 세계적으로 가격 정보를 관리하는 것은 큰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버버리뿐 아니라 온라인 판매 플랫폼을 갖춘 모든 글로벌 브랜드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또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한 판매, 마케팅 활동이 럭셔리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게 노력하는 것도 영원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성공요인 및 시사점

 

버버리가 오늘날 가장 혁신적인 럭셔리 브랜드가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성공요인을 추출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여러 브랜드들의 미래 전략 수립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1) 브랜드 구조의 단순 집중화를 통한 정체성 강화

 

많은 브랜드들이 자연스레 대형화를 맞게 되면서 겪게 되는 몇 가지 오류가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외형 중심의 확장에 함몰되는 것이다. 브랜드가 잘나가면 여기저기에서 러브콜이 들어오고 이에 힘입어 지나치게 다양한 제품 및 지역과 연계해 브랜드 확장을 하면 브랜드의 응집성이 약해진다.

 

브랜드가 우선되기보다는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지역이라는 신()프로젝트가 우선시되고 어느 순간 이런 제품 및 지역 중심의 운용이 전체의 브랜드 관리를 지배하게 된다.

 

흔히아이덴티티라고 불리는 애초의 브랜드 정체성, 또는 브랜드 비전이나 고객과의 약속, 브랜드 핵심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많은예외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러다보면브랜드 중심이 아닌 제품 또는 지역 중심의 조직구조와 관리 시스템이 생겨나게 된다. 예외는 처음 한 번 만들기는 어려워도 그 이후부터는 수월하다. 그리고 나면 곧 관행이 된다. 이는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브랜드 혁신을 통해 옛 명성을 되찾고자 하는 명가(名家) 브랜드 부활의 첫 출발점은 제품, 지역 중심의 확장형 구조를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브랜드 중심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브랜드 중심 구조는 단순화와 집중화를 통해 실현된다. 그런 점에서 버버리는브랜드 제왕(Czar)’이었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중심으로 브랜드 관리 구조를 단순집중화하면서 통제력을 강화시켰다는 측면에서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누군가는 브랜드 확장이나 라이선싱이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고 매출을 올린다는 측면에서 장점이라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 브랜드 특유의 무형적 자산을 구축한다는 측면에서는 지나친 확장, 분산은 독이 된다. 확장을 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확장을 하되 브랜드는 일관성을 가지고 통제돼야 한다. 효율적 관리를 위해 중앙집중식 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최소한 그 브랜드의 영혼, 철학만큼은 훼손, 희석돼서는 안 된다.

 

2) 아이콘의 부활을 통한 브랜드 특유 기운 창출

 

한때 잘나가던 브랜드가 소비자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와 그 브랜드를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는 아이코닉 제품25 이 훼손되고 약화되면서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더 이상 에스프레소 커피향이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몽클레어 매장을 갔는데 더 이상 패딩을 볼 수 없다면 어떤 느낌일까? 투미 매장을 갔는데 방탄소재의 백팩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면?

 

아이코닉 제품이 흔들리고, 약화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면 그 브랜드에 대한 연상의 피라미드도 무너지게 된다. 공들게 쌓아왔던 소비자의 브랜드 인식체계가 무너지고 그 브랜드도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많은 브랜드에서 소비자 인식체계는 아이코닉 제품에 대한 인식과 믿음이 그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세월의 변화, 트렌드의 변화라는 논리하에 훼손되면 브랜드의 정체성을 잃게 되고, 고객들이 그 브랜드를 더 이상 떠올릴 이유가 없게 된다. 브랜드 네트워크 내에 구심점이 있어야 그것이 매개가 돼 다른 제품과 아이템으로 이어지면서 네트워크가 원활하게 돌아갈 것인데, 구심점이 사라지면 아무리 거대한 네트워크라도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아이코닉 제품을 벗어난 신상품 출시는 다각화라는 측면에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브랜드의 특유성을 잃게 되고 고객에게는 브랜드 연상의 구심점을 박탈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은 자연스레 해당 브랜드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마치 구심점을 중심으로 잘 돌아가다가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한순간에 밖으로 튕겨나가는 형국이다.

 

 

버버리는 2006, 안젤라 아렌츠 전() CEO가 들어오면서 아이코닉 제품인 트렌치코트에 대한 부활을 시도했다. 더 정확히는 새로운 시대와 세대에 맞춰 발전적인 아이코닉 제품의 리뉴얼을 단행한 것이다. 젊은 층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개성을 입힌 스타일로 확장되면서 300여 개의 트렌치코트 옵션이 탄생했다. 이는 브랜드 재활성화와 관련된 여러 베스트 케이스 중에서도 유례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획기적 시도라 할 만하다.

 

아무리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더라도 아이코닉 제품만큼은 지켜져야 한다. 세월의 변화에도 사라지지 않는 명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코닉 제품을 버리지 않고 핵심으로 가져가되 시대의 변화에 맞춰 발전적으로 재해석, 리뉴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른 브랜드에서 볼 수 없는 그 브랜드만의 고유한 기운(aura)이 느껴지고 그것이 소비자에게는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3) 자기 브랜드에 몰입된 직원들이 가장 훌륭한 브랜드 앰베서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앰베서더(ambassador)가 있듯 브랜드에도 그 브랜드를 대표하는 얼굴격의 앰베서더가 있다.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브랜드 앰세서더다. 특히 고가의 명품일수록 관여도26 가 높기에 고객들은 직원들에게 많이 의존한다. 직원들로부터 그 브랜드에 대한 첫인상이 만들어지고 그 브랜드의 마니아가 되는 데는 직원들이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직원들이 먼저 그 브랜드의 마니아가 되도록 교육,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브랜드 관리 전략이 된다. 직원들이 자기 브랜드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그 혼(spirits)을 체화시키게 되면 그 기운이 그대로 고객에게 전달이 된다. 그런 면에서 버버리는 직원들을 통해 훌륭한 브랜드 재건을 이뤘다 할 수 있다. 아이코닉 제품인 트렌치코트에 대해 장인정신을 느끼고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귀한 존재로 각인되도록 교육한 것은 버버리에 대한 몰입이 그대로 고객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효과를 낳았다.

 

 

 

최근 브랜드인게이지먼트(engagement)’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고 있다. 단순히 브랜드에 만족하고 좋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에 빠져들어 브랜드와 관련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개념을 고객에게만 적용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고객향 브랜드 인게이지먼트이전에직원향 브랜드 인게이지먼트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 터치포인트, 즉 고객과 브랜드 사이의 접점에는 직원이 존재한다. 특히 직원에게 많이 의존하는 제품군일수록 이들에게 해당 브랜드의 인게이지먼트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피상적 교육이 아니라 기저에 깔린 고유한 철학, 장인정신(craftsmanship)을 느끼도록 교육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갈수록 IT에 친숙한 직원, 고객이 많아지는 것을 감안하면 버버리처럼 직원들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고 이를 통해 그들이 고객들에 대한디지털적 앰베서더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4) 밀레니얼 타기팅을 통해 전통 명가에 젊음의 코드를 넣다

 

 

 

 

 

이번 케이스 스터디에서 다룬 버버리의 변화에선 미래 세대를 겨냥한 선견지명 타기팅이라는 성공요인을 추출할 수 있다. 밀레니얼 직원과 함께 밀레니얼 고객을 타깃으로 하면서 젊음이라는 키워드를 버버리에 불어넣은 것이다. 버버리에 대해 지각된 브랜드 연령(perceived brand age)을 측정한다면 2006년을 기점으로 수치가 점차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을 것이다.

 

아마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그들의 핵심 고객층을 경제력이 있는 중장년층으로 상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현재 관점에서는 유효한 주 고객층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연 이들이 여전히 주 고객층이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 주 고객층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들이 좋아하는 브랜드 또한 동반 노화해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버버리는 좀 더 멀리 내다봤다. 미래에 유효한 고객, 더 중요한 고객, 버버리 이미지를 젊고 건강하게 보이게 할 고객을 찾아 나섰다. 지금은 다소 어릴지라도 현재의 버버리에 록인(lock-in)27 된다면 미래에도 충성고객으로 한동안 함께할 수 있는 계층만큼은 미리 공략한 셈이 된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브랜딩은 브랜드의지각 나이(perceived age)’를 젊게 상정하면서 브랜드의 건강도를 높이는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버버리의 경우 전통적인 상징물인 트렌치코트를 올드(old) 고객의 전유물로 놔두지 않고 젊은 밀레니얼에게 친숙하도록 변형해 집중 공략하는 역발상 시도가 돋보였다.

 

또 전략혁신위원회를 통해 젊은 밀레니얼 직원들이 그들과 같은 또래의 고객을 향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고 그것이 채택되도록 하는 조직운용 측면에서의 고객지향성 또한 돋보이는 전략이었다.

 

말로만 하는 고객지향성이 아니라 타깃을 가장 잘 아는 같은 세대의 직원들이 그들의 마음을 읽고, 실행토록 하는 진정한 조직운용 측면에서의 고객지향성이었다. 그동안은 교육을 통해 피상적, 주입식으로 고객지향을 하라는, 즉 고객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다가가도록 강요하는 일방향적 고객지향성이었다면 조직 내에서 스스로 고객지향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져간 점이 차별적이다.

 

전통 명가라는 구습에 사로 잡혀 있지 않고 역발상적 타기팅과 동세대의 고객-직원 관계를 만듦에 따라 고객지향성이 절로 일어나게 만든 브랜드 조직운용은 여러 기업에 시사점을 준다. 특히 전통을 고수하다가 자칫 젊음이 부족해 보이는 함정에 빠질 수 있는 많은 럭셔리 브랜드에게 어떻게 하면 젊음의 코드를 매끄럽게 심어줄 수 있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DBR mini box

버버리의 디지털 전략은?

 

 

버버리가 벌인 최근 혁신의 배경에는 어떤 전략이 있을까. DBR은 버버리의 런던 본사 대변인(spokesperson)과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최근 진행한 각종 활동 및 성과에 대해 물었다.

 

 

디지털 마케팅에 대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이유와 그 성과는?

 

우리는 디지털과 연관된 각종 활동을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고객들이 브랜드와의 접점에서 만날 때 접하는브랜드 경험을 끊임없이 개선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 지난 18개월간 버버리닷컴(Burberry.com)을 지속적으로 진화시켜왔고 덕분에 자사 홈페이지인 이 구매 경로가 버버리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유통 채널이 됐다. 소셜미디어 관련 활동은 고객이 브랜드에 대해 알게 되는 고객 접점을 늘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20개의 글로벌 및 로컬 플랫폼을 아울러 총 4000만 명에 달하는 팔로어를 거느리게 됐다. 이 숫자는 매년 30%가량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 진행하는 디지털 마케팅 가운데선 카카오와의 협업이 눈에 띈다. 이 파트너십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버버리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메신저 플랫폼인 만큼 이를 통해 고객들과 소통을 나눌 수 있는 여지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5 9월 파트너십을 체결한 이후카카오 라이브를 통해 2016년 봄·여름 여성복 컬렉션을 생중계했고 이 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버버리 화장품들을 쇼 바로 직후에카카오 키프트숍을 통해 구매할 수 있게 했다.

 

 

 럭셔리와 비럭셔리 제품 쇼핑의 차별점 중 하나가 고객 서비스다. 온라인에서는 이것이 오프라인에서처럼 완벽히 구현될 수 있을까.

 

고객들이 쇼핑을 통해 얻고 싶은 혜택 중 하나가풍부한 브랜드 체험이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으로 바로 시연하기 어려운 브랜드의 세계를 좀 더 생생하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버버리는 2012 4월부터 전 세계 24개국의 200여 개 직영 매장에서 ‘buy online and collect-in-store(온라인에서 구매하고 오프라인에서 제품을 찾을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고객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비스를 모두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즉 온라인으로 제품을 구입한 뒤 매장으로 직접 찾으러 와서 실제 착용감, 사이즈 등을 체크했다.

 

 

최근브릿’ ‘런던’ ‘프로섬등 버버리의 세 개 라인을 하나로 통합한 이유는?

 

고객들의 소비 행태를 살펴보니 더 이상 소비자들이 일하러 갈 때 입는 옷, 레저활동 시 입는 옷, 파티용 의상 등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고객들은 이제 정장과 캐주얼을 믹스매치하는 등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맞춰 의상들을 조합해 입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분류에 따라 브랜드를 세분화하는 대신 하나의 통일된 브랜드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탐험할 수 있게 했다.

 

 

 

 생각해볼 문제

 

● 밀레니얼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이 기존의 올드 고객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문법일 수 있다.

명품 업체 입장에서 새로운 고객을 수용하면서도 기존 고객들의 반감을 유발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 버버리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브랜드 제왕을 임명하면서도 디지털 기술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함께 보여줬다. 우리 브랜드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근본적인 정체성은 무엇이며, 적극적으로 변화를 꾀해야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 버버리는 브랜드 전도사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판매 역량을 극대화했다.

우리 기업에서 브랜드 전도사를 육성하고 활용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마련해야 하나?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marnia@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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