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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LG전자 트롬 트윈워시 신제품 개발

1등 강박증 가진 LG 세탁기사업부 불가능할 듯하던 ‘아이디어 名品’을 만들다

김현진 | 188호 (2015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최근 LG전자가 선보인트롬 트윈워시는 제조업 혁신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LG전자는명품을 만들겠다는 일념하에 통상 선행연구와 개발까지 2, 3년이면 완성되는 다른 제품들과 달리 8년간 공을 들여 이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연구개발부터 출시까지 투입된 인원은 150. 개발비용은 일반 제품의 5배 이상인 200억 원에 달한다. LG전자 세탁기 사업부가 지속적으로 1등을 유지해 온 비결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시장을 선도해 1등을 유지하고자 하는 ‘1등 강박증

(2) 핵심 인재의 육성과 유지

(3) 작은 것이더라도 고객의 불편함에 천착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권세은(성신여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세탁기가 여성을 구원한세기의 발명품으로서 그 역할을 시작한 이후 세탁기의 진화는 계속돼 왔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에 미친 영향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빨래 부담이 줄면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됐고 이것이 사회적 변혁을 이끌었기 때문이다.1

 

세탁기가 처음 발명된 시절, 사회의 요구는노동력의 절약이었다. 어떻게 하면 힘을 덜 들이고 세탁을 할 수 있는지가 혁신의 단초가 됐던 셈이다. 이어 한꺼번에 좀 더 많은 양의 빨래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세탁기의 크기 경쟁이 시작됐다. LG전자가 세탁기 시장에서 세계 1위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던 것도 결론적으로 크기 경쟁에서 승기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후 위생 관념에 대한 인식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분리 세탁에 대한 니즈가 높아졌다. 속옷, 아기 빨래 등 민감한 의류들을 일반 빨래와 따로 빠는 가정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세제 업계가속옷용’ ‘아웃도어용’ ‘실크의류용등으로 소재, 용도별로 다양한 제품을 내놓았던 것과 달리 세탁기의 혁신은 디테일한 진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빨래를 분리해서 하다보니 오히려 전체적인 빨래 시간이 늘고 있다는 불만이 주 사용자층인 주부들의 입을 통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니즈를 오롯이 담아 두 번 나눠 하던 빨래를 한 번에 할 수 있게 하는 콘셉트로 개발된 LG전자의트롬 트윈워시’(이하 트윈워시)는 통상 선행연구와 개발까지 2, 3년이면 완성되는 다른 제품들에 비해 훨씬 긴 8년간 공을 들인 혁신의 산물이다. 연구개발부터 출시까지 투입된 인원은 150, 개발비용은 일반 제품의 5배 이상인 200억 원에 달한다.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15에서 첫선을 보인 이 제품은 해외 무대에서도세탁실의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미 IT 전문 매체 <디지털트렌드>가 올해 출시된 가전제품의 디자인과 가격, 사용 편의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 결과, ‘올해 최고 가전에 꼽히기도 했다. 속속들이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신기술, 부품이 많아 이 세탁기에 457건의 특허가 출원됐다.

 

혁신의 결과를 위한 과정은 험난했지만 그 열매는 달았다. 7월 말 한국 시장에 첫선을 보인 트롬 트윈워시는 하루 판매량이 기존 동급 용량 세탁기(21㎏ 기준)의 최대 5배에 달한다.2 미국의 메이저 가전 유통사가 선적을 재촉하면서 유례없이 초도 물량이 비행기를 통해 공수되는해프닝도 발생했다. DBR이 국내 제조업의쾌거로까지 불리는 LG전자트롬 트윈워시의 개발기와 성공요인을 분석했다.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자

 

2006 8,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LG전자 가산R&D캠퍼스. LG전자 연구소, 상품기획, 디자인연구소 등 세탁 관련 부서의 실무자 1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세탁기 신제품 워크숍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이 회의 전부터 고민했던 이날의 큰 화두는분리세탁이었다. 분리세탁을 실천하기 위해 이들은 융합이란 화두를 수없이 떠올렸다.

 

보통 통돌이형으로 세탁기 뚜껑을 열고 세탁물을 넣는톱로더(top loader)’ 세탁기와 세탁물을 넣는 도어가 전면부에 있는프론트로더(front loader)’형 세탁기의 장점을 각각 살린 복합형 제품을 내놓는 것이 이들의 미션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 혁신을 기획해야 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분리세탁을 큰 주제로 삼은 것은 당시 소비자들에게서 조금씩 흘러나오던 니즈를 귀담아 들은 결과였다.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LG전자가 2007년 전국 소비자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세탁기 사용 시 가장 불편한 점이 무엇인가를 물은 결과 60%가 세탁물을 여러 번 나눠 빨아야 하는 점을 꼽았다. 신생아 등 어린이가 있는 집에서는 80%가량이 분리세탁을 실천하고 있었다. 특히 신생아에 대한 위생관리에 예민한 엄마들이 많은 국내에선 엄마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기용 세탁기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아 세탁실이 좁은 국내 주거 특성상 세탁기 두 대를 놓을 만한 공간을 확보하기가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복합형 제품의 기획은 물리적으로 톱로더와 프론트로더를 결합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어떤 조합으로 두 개의 세탁조를 결합하는지를 놓고 열띤 토론이 계속됐다.

 

분리세탁의 아이디어는 한국뿐 아니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유럽, 미국의 소비자 조사를 통해서도 꾸준히 포착됐다. 세탁기를 많이 사용하는 주부뿐 아니라 주거 공간 설계를 하는 건설사 관계자 등 특정 집단의 프로슈머 대상 연구도 수차례 진행됐다.

 

트윈워시에는 서랍형 미니 통돌이 세탁기를 하단에, 그 위에 드럼형 세탁기를 얹고 두 세탁조가 서로 분리될 수 있게 한 혁신이 적용됐다. 드럼형 세탁기에선 어른 빨래를, 미니워시에선 어린이 옷 빨래를 한다거나 색깔이 있는 옷과 흰 옷을 동시에 따로 빨 수 있어 시간을 혁신적으로 절약해주는 효자 상품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각종 신제품 리뷰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다.

 

이 제품은 시간뿐 아니라 비용 절감 효과도 낸다. 미니워시를 가동할 경우에 사용되는 물과 전기는 큰 세탁기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큰 세탁기를 2대 돌리는 것보다 전기 및 수도요금이 덜 든다는 뜻이다.

 

세탁기 개발과 관련한 오랜 경력으로세탁기 달인’ ‘Mr.세탁기란 별명으로도 회자되는 조성진 LG전자 사장(H&A3 사업본부장)은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을 위한 선행연구를 시작한 2007년경 사업부장을 맡고 있었다. 2007년은 통돌이 세탁기가 주류를 이루다 막 드럼형 세탁기가 등장하면서 세탁기 시장의 판도가 달라지던 시기였다.

 

통돌이와 드럼의 전환기, 두 가지 타입 세탁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엇갈렸다. 이에 조 사장은두 세탁조의 장점을 결합한 신제품을 개발하라고 연구팀에 지시했고 이것이 트윈워시 개발의 씨앗이 됐다.

 

트윈워시 프로젝트의 목표는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 창출(value creation)이었다. 분리 세탁, 동시 세탁, 공간 절약, 시간 절약이라는 가치를 새롭게 조성하는 데 연구진은 온 힘을 쏟았다.

 

이렇게 개발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선행 연구에 돌입하면서부터 연구진은 큰 난관에 부딪혔다. 물리적으로 두 개의 제품을 결합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탁조() 안에 또 다른 미니 세탁조를 넣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강기영 세탁기 상품기획팀 차장은연구소에 의뢰해 실제 개발 가능성 여부도 따져봤지만 같은 통에 빨래를 넣고 칸으로만 분류할 경우 색상이 진한 옷의 염료가 빠져 흰색 옷에 이염될 수 있고 두 통이 함께 움직이면 진동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문제점이 발견돼 아이디어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결국 두 개의 제품 자체를 물리적으로 결합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디자인연구소는 상단의 드럼세탁기와 하단의 트롬 미니워시를 서로 따로 분리되지 않는 일체형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일체형 모델은 이음새가 없어 외관상 더 세련돼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았다.

 

선행 연구를 담당한 김동원 H&A사업본부 어플라이언스 연구소 세탁기선행팀 연구위원은일체형 모델은 생산적인 측면, 그리고 합리적 소비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사이즈가 너무 커지고 무거워지다보니 제품 포장, 물류, 설치상 불편한 점들이 속속 발견됐다. 또 소비자 입장에서도 기존에 트롬 드럼세탁기를 이미 가지고 있는데 이 제품을 별도로 구입할 경우 비용 부담이 커 보였다. 트윈워시는 가격(17, 19, 21) 230∼280만 원대로 동급 용량의 LG전자 일반 드럼세탁기보다 100만 원가량 비싸다. 70∼80만 원대(3.5)로 크기가 작은 미니워시만 따로 구입해 기존 트롬 제품과 연결해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소비자로선 합리적으로 구입할 수 있고 제조사로서도 기존 트롬 고객을 겨냥한 추가 판매 수요를 노릴 수 있을 듯했다.

 

 

분리형 모델 역시 단점은 있었다. 일체형보다 제품 외관의 캐비닛 면적이 늘어 생산비용(cost)이 높아지고 두 제품이 각기 따로 구동할 때 진동 이슈가 발생할 수 있었다. 분리형이냐, 일체형이냐 최종 판단을 앞두고 조 사장은 소비자 관점을 최후의 기준점으로 삼을 것을 당부했다. 이에 따라 기존 15㎏ 이상 용량의 트롬 드럼세탁기 아래에 별도로 부착할 수 있어 이 제품만 따로 구매하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미니워시를 별개의 제품으로 분리했다. 분리형으로 확정된 것이 2013년경의 일이다. 2006년부터 선행 연구가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단계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명-진동을 잡아라

 

별개의 제품으로 분리하다보니 그렇다면 과연 옆, 아래, 위 등 어디에 두 개의 제품을 배치할 것인지가 고민이었다. 일단 나란히 병렬 배치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처럼 보였지만 애초의 개발 목표였던 공간 절약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미니 통돌이 세탁기(미니워시)를 드럼세탁기의 위에 얹는 형태도 고민했다. 하지만 평균적인 키의 주부가 뚜껑이 위로 달린 미니워시 속 세탁물을 넣고 꺼내기가 쉽지 않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남은 옵션은 한 가지. 미니워시를 드럼세탁기의 위 또는 아래에 놓는 방법밖에 없었다. 결국 각각 17, 19, 21㎏인 드럼세탁기에 3.5㎏ 용량 통돌이 세탁기를 결합한 형태가 탄생했다. 통돌이형 세탁조를 아래에 넣다보니 자연스레 서랍형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연구진은 2004년 무렵, 북미시장에서 나름 인기를 끈 서랍형 받침대(페데스탈)가 달린 세탁기를 떠올렸다. 위쪽은 드럼세탁기, 아래는 세제를 보관할 수 있는 서랍이 달린 이 제품은 세탁실 내 수납공간을 절약해줄 상품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 힌트에서 영감을 받아 서랍 안에 통돌이형 미니 세탁기를 넣는 방안이 추진됐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세탁기 개발 시 업체의 필살기가 필요한 진동 이슈였다. 사실 처음부터 드럼세탁기 두 대를 결합하는 방안을 제외했던 것은 진동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위쪽 드럼 세탁통은 수직 방향으로, 아래쪽 통돌이 세탁통은 수평 방향으로 동시에 회전하는 원리다보니 두 제품의 진동을 합친 공진(共振·resonance) 현상4 이 우려됐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드럼세탁기를 합치면 진동이 심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위에 놓이는 드럼세탁기와 아래에 있는 통돌이 세탁기의 모터가 직각으로 위치하기 때문에 진동은 더욱 강할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내 층간 소음 이슈는 차치하고라도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있었다.

 

두 개의 모터가 함께 돌아가며 발생하는 진동을 잡는 일은 아직 어느 전 세계 어느 가전 업체도 성공한 적이 없는 기술이었다. 중국의 가전업체 하이얼 역시 5월 유사한 제품을 선보이기는 했다. 이 제품은 드럼형 세탁기 2개를 상하로 직렬 배치한 것으로 콘셉트 면에서는 트윈워시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탈수는 동시에 진행할 수 없는미생의 상태로 시장에 나왔다.

 

세탁기는 탈수 때 더 많은 진동이 발생한다. 드럼세탁기와 통돌이 세탁기의 모터를 최고속으로 가동시키는 실험 중 드럼세탁기가 미끌어져 분리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선행 연구를 맡은 김 위원은전체 연구 기간을 통틀어 가장 당혹했던 순간이라며진동 문제 하나 때문에 이 제품이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절박한 마음에 밤잠이 잘 오질 않았다고 말했다.

 

고민에 휩싸인 연구진에게 한 줄기 빛이 된 솔루션은 가전업계가 아닌 타 업종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자동차 제조 시 충격 흡수용으로 사용하는 서스펜션(suspension)였다. 주행 시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 운전자에게 충격이 덜 가게 하는 장치인 서스펜션은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과 타이어를 노면에 확실하게 접지시키는 기능을 한다. 연구원들은 통돌이 세탁기에 다는 서스펜션을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설계 변경해 캐비닛을 통해 전달되는 진동을 최소화했다.

 

통돌이 세탁기의 서스펜션에는 진동을 줄이기 위한 스프링이 달려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물과 빨래가 투입될 경우 무게 탓에 통이 자연스레 밑으로 쏠리게 된다. 이에 진동을 줄이기 위해 서스펜션이 약간 기울어진 형태로 부착된다. 이번 제품에는 세탁조가 아래로 쏠리는 현상을 막으면서 세탁조의 내부 공간도 더 확보하기 위해 이 서스펜션 스프링을 제거한 채 테스트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스프링이 제거된 상태에서 기존의 기울어진 서스펜션이 작동할 경우 진동을 잡을 수 없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연구진은 펜듈럼(진자)의 원리에서 착안해 서스펜션을 수직으로 설치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진동이 반 이상으로 뚝 떨어졌다. 진동을 잡는 데 성공한 연구진의 입에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트윈워시가 자동차 산업에서 벤치마킹한 요소는 서스펜션뿐만이 아니었다. 문을 여닫는 부분의 힌지가 안전한지 검증하기 위해 자동차 문에 사용되는 힌지를 참고했다. 자주 문을 열고 닫아야 하는 세탁기 문은 최소 1만 회를 열어도 문제가 없어야 했기에 모터쇼에 디자이너를 파견해 힌지 사진만 찍어 온 뒤 다양한 실제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소비자 조사 등 상품기획을 담당한 강기영 LG전자 세탁기 상품기획팀 차장.

 

 

끝없는 시행착오

 

진동실험 성공으로 한 고비를 넘긴 트윈워시 프로젝트는 드디어 상품화를 위한 구체적인 연구 단계로 진입했다. 김곤 세탁기ED 수석연구원을 비롯한 연구진은 시제품(prototype) 제작을 마친 선행 연구의 산물을 검증하는 역할에 돌입했다. 선행 연구 시 검증한 신기술이 상품력이 있는지, 생산이나 품질면에서 좀 더 최적화할 요소는 없는지 살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이 연구소의 미션이다.

 

선행 연구만으로도 꽤 완성도가 높다고 자부했지만 실제 제품화 테스트 과정에서 보완할 점들이 속속 발견됐다.

 

먼저 서랍형 세탁기의 안전성 이슈였다. 일반 가구에서도 키가 높은 장식장이나 책장을 설치할 경우 벽과 가구를 고정하기 위해 못을 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서랍이나 앞으로 당겨 여는 형태의 문을 부착할 경우 가구가 앞으로 쏠려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할까 우려돼서다. 두 개의 세탁기를 쌍둥이처럼 붙이느라 키가 높아진 세탁기에 서랍을 달다보니 역시 서랍 개폐 시 앞으로 넘어지는 사고가 우려됐다.

 

발생 가능한 또 다른 안전사고는 미니워시를 단독으로 사용할 경우 예상될 수 있는 것이었다. 미니워시와 드럼세탁기를 따로 구매할 수 있게 하다 보니 미니워시만 따로 설치해 세탁기나 싱크대 등 가전, 가구 위에 올려놓고 쓰려는 소비자들이 있을 듯했다. 이런 가구에 그냥 올려만 놓고 사용할 경우 서랍을 열고 당기는 과정에서 제품 자체가 앞으로 넘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소비자의 사용 패턴을 감안해 미니워시만 단독으로 가동되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 장치도 추가로 집어넣었다. 즉 미니워시 위에 드럼세탁기 같은 무거운 물체가 올려져 특정 스위치를 가동시켜야 세탁기가 가동되는 기술을 접목한 것이다.

 

 

 

김동원 세탁기선행연구팀 연구위원(가운데) 과 선행연구팀원들.

 

비교적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현 연구팀의 경험이 부족할 수 있기에 관련 경험이 풍부한 고참 연구원을 초청해 의견을 듣는 리뷰 자리도 수차례 마련했다. 기술전문가인 고참들에게서는 젊은 연구진이 놓쳤던 디테일한 아이디어를 들을 수 있었다. 서랍형 제품에 대한 안전성 문제도 그들의 입을 통해 지적된 부분이었다.

 

미니워시는 금형을 완성도 있게 마무리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이전의 세탁기들이 통상 5, 6개월 만에 금형을 완성했던 것과 비교해 기간이 2배로 늘어난 셈이었다. ‘세상에 없는 그 무엇을 만드는 길은 그만큼 멀고 험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2014년 말, 드디어 금형 개발이 완료됐다. 2015년 초 출시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이 정도 완성도라면 무난하게 기존 출시 일정을 맞출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실제 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필드 테스트에서 또다시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역시 세계 최초로 선보인 미니워시에서 발생했다. 서랍을 열고 문을 닫는 부위가 완벽하게 밀폐되지 않아 가끔씩 물이 새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극히 일부 제품에서만 발생한 현상이었기에 문제의 원인을 찾는 일이 더욱 어려웠다. 실제 물이 새는 원인을 찾아 이를 보완하는 과정에 또 4개월이 소요됐다. 약속했던 출시 예정일을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연구팀은 목이 바싹 타들어갔다.

 

다행히 이 분야 최고 권위자이자 선배 연구원인 조 사장이 나서조바심 내지 말고 완성도 있는명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하라고 다독였다. 이에 따라 원래 올 3월 출시 예정이었던트롬 트윈워시의 생일은 여름인 7월로 미뤄졌다.

 

사실 누수 문제는 보기에 따라 큰 이슈가 아닐 수도 있었다. 불량 제품이 나올 확률이 10만 대에 1대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량률로는 0.00001%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이보완 후 출시를 지시한 것은 세탁기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달리는 선두주자로서의 자존심이 작용한 것 같다고 LG전자 실무자들은 입을 모았다.

 

 

 

김곤 세탁기ED 수석연구원(뒷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과 세탁기ED연구원들.

 

 

UX와 디자인에서명품을 발견

 

디자인연구소는 혁신이 과연 필요할까 싶었던 세제 투입구 부위에도 큰 변화를 시도했다. 보통 제품 전면부에 서랍 형태로 부착하는 투입구 대신 세탁기 위쪽(꼭대기) 왼쪽 부위에 옆으로 밀어 문을 여는 슬라이드형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기존 서랍형 세제 투입구는 앞쪽 턱이 높아 세제를 넣기 불편하다는 소비자 지적이 있었다.

 

연구진이 숱하게 밤을 새며 개발에 매달린 또 다른 요소는디테일한 사용감이었다. ‘명품을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기에 디테일까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슬라이드형 세제 투입구에도 디테일의 요소가 담겼다. 바로슬라이딩감이었다. 즉 가장 이상적으로 밀리는 감도가 어느 정도인지 찾아내야 했다. 너무 힘들게 열려도, 지나치게 잘 열려도 최적의 필(feel)을 구현하기 힘든 만큼 최적의황금비율을 찾는 것이 절실했다. 세탁기의 주 사용층이 주부이다 보니 사내 여사원 및 외부 주부사원을 대상으로 수차례 사용감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여는 힘이 2∼3㎏ 정도면 가장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있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러한 디테일한 과정에까지 조 사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고민하는 실무진 앞에서 칠판에 직접 구조도를 그려주며 함께 다양한 샘플을 만들고 검증했다.

 

김 수석은 마지막 디테일한 사용감을 찾는 이 과정에서 가장 마음을 졸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100%가 부족했을 때보다 2%가 부족한 걸 발견했을 때 더 답답하지 않나아내를 비롯해 실제 주부들에게도 끊임없이 물어보는 등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연구진이 개발 초기, 소비자 행태 조사 단계에서부터 실제 세탁기를 사용하는 가구들을 방문하고 사용 습관, 소비자들의 불만 등을 직접 들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LG전자는 마케터가 아닌 실제 제품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들이 직접 사용 습관을 살피는 가정 방문 과정에 반드시 참여하도록 한다. 소비자 조사에 엔지니어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의 주요 가전업체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김 수석은사실 개발만 해도 시간이 빠듯한 엔지니어들이 가정 방문까지 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때 소비자들의 사용 행태를 직접 눈으로 보고,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 직접 듣는 것이 결정적인 순간 인사이트를 제공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세탁기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움직임을 떠올리다 연구진은 냉장고 문을 여닫는 동선을 기억해내고 드디어유레카를 외칠 수 있었다. 냉장고 역시 서랍을 열고 문을 당기고 하는 동작성을 많이 반영해야 하는 가전인데다 그동안 축적된 소비자 조사도 많았던 만큼 이를 통해 세제 서랍을 열기 위한최적의 감도를 찾아냈다.

 

디자인연구소는 세탁기를기계가 아닌디자인 오브제로 인식하게 한다는 목표로 미적 측면에 힘을 기울였다. 기술 측면에서 다양한 시도 끝에 탄생한 제품이니만큼 디자인 콘셉트도 매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 재질, 크기로 제작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투자가 필요한 목업(mock-up) 모형도 20차례 이상 만들었다. 최고경영진이 디자인의 완결성에집착했기에 디자인연구소의 긴장도도 더불어 높아졌다. 전호일 H&A디자인연구소 수석연구원은제품 콘셉트가 달라질 때마다 새롭게 디자인을 해야 했고, 그때마다 여러 실무부서와 긴밀히 협력해야 하다보니 일주일씩 집에 못 들어가는 일이 허다했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디자인 콘셉트를 정하기에 앞서 디자인연구소가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이 사용성이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자경험(UX)의 혁신이 필요했다. 사용성이 눈에 보인다는 것은 소비자가 대번에 세탁기의 각 부위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쓰기 쉬운 세탁기를 만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예뻐야 했다. LG전자의 드럼세탁기 브랜드인트롬이 국내에 처음 나온 2001년 당시 세탁기 디자인은 그저 네모반듯한 직육면체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매장 직원들로부터디자인에도 변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혁신적인 디자인은 마침 트윈워시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전면부가 평평하지 않고 살짝 앞으로 튀어나와 배가 불룩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소는 이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인체공학전문 디자이너들을 가동했다. 대체로 허리를 숙여 세탁물을 집어넣는 소비자들의 사용습관 특성상 어떻게 하면 좀 더 소비자들의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최적의 각도와 동선을 고민했다. 그 결과 세탁물 투입구의 아래 부분을 물리적으로 6도가량 위로 끌어올렸다. 빨래감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아 양말이나 속옷처럼 작은 빨랫감을 놓칠 때가 많다는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였다.

 

또 전원, 빨래 코스 선택 버튼 등이 달린 조작부를 본체에서 분리해 도어 부위에 갖다 붙이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를 통해 세탁조의 공간을 더욱 확보하면서 전체적으로 세탁기 안이 좀 더 넓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이 제품은 세계 4대 디자인상 중 3개를 싹쓸이하는 쾌거를 이뤘다. 가전업계에선 보기 드문 성과다. 올해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lDEA(International Design Excellence Awards) 2015’를 수상한 데 이어 9월 말에는 일본디자인진흥회가 주관하는굿 디자인상 2015(Good Design Award 2015)’에서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굿 디자인상은 해마다 1000개 이상 기업에서 3000개 이상의 제품들이 응모돼 치열한 경합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호일 H&A디자인연구소 수석연구원

 

 

고정관념에 도전한 역사

 

트롬 트윈워시를 소비자조사 단계부터 상품력 검증과정까지 전체 과정을 관통해 공정 관리를 진행한 역할을 한 프로젝트 매니저는 사실상 조 사장이었다.

 

이번 트윈워시 조사 및 개발에 참여한 실무자들은 한결같이조 사장이 꼼꼼히 전체 일정을 챙기면서 한번에 ‘OK 사인을 내는 대신 수십 번씩 재검토하도록 요청한 것이 결과적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조 사장은 LG전자가 전 세계 세탁기 시장을 주도할 수 있게 이끈 1등 공신이다. 1975년 용산공고를 졸업하고 LG전자(당시 금성사) 전기설계실에 입사해 올해 9월로 입사 40년 차를 맞게 된 현재까지 LG그룹 유일의 공고 출신 사장으로 세계 가전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입사했을 때에는 우리나라에 세탁기 보급률이 1%도 되지 않았다.

 

조 사장이 ‘Mr. 세탁기란 명성을 얻은 것은 통돌이 세탁기를 개발하면서부터다. 이제는 일반 세탁기를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쓰이는 통돌이는 사실 큰 혁신의 산물이다. 당시 개발실장이던 조 사장을 필두로 한 개발팀은 1996, 세탁통과 세탁판을 역회전시키는 알고리즘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고정관념을 깨는 데 성공했다. 1998, LG전자가 이 제품을 내놓기 전까지 모든 세탁통은 세탁기 안에 고정돼 있었다. 바닥의 세탁판만 돌아가며 물살을 만들었다. 조 사장과 연구팀은 바로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한 것이었다.5 이 통돌이 세탁기의 세탁 효과는 엄청났다. 기존 세탁기에 비해 세탁물 엉김 현상이 51% 줄고, 세탁력은 22%, 헹굼력은 24% 개선됐다.

 

LG전자가 주도한 세탁기 혁신의 역사를 통틀어 LG전자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가장 혁신적이었다고 꼽는 기술은 바로 다이렉트 드라이브(Direct Drive·DD) 기술을 통한 세탁기 모터 혁신이다. 당시 세탁기는 세탁통과 모터를 벨트로 연결해 클러치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세탁통과 모터의 연결 부분에서 결함이 자주 발생했고 이로 인해 소음과 진동이 컸다. 모터의 힘이 세탁통에 바로 연결되지 않아 세탁기 용량을 키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세탁통에 직접 모터를 부착한 것을 시도한 회사는 지금까지 없었다. 조 사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철야 연구까지 마다하며 열정을 불태웠지만 당시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고비용이 드는 모터 기술 개발을 포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상사의 눈을 피해 일과 후 팀원들과 몰래 숨어 개발한 것이 바로 DD 기술이었다. LG전자가 내놓는 모든 드럼세탁기에는 이때 만들어진 DD모터가 장착돼 있다. 이 기술은 그해 미국에서 열린 가정용·산업용 기기 학술행사 AMCE에서 논문 대상의 영예를 거머쥐기도 했다.

 

조 사장이 이를 악물고 특허 기술 개발에 매달린 이유는 입사 직후부터 약 10여 년간 일본 기술을 들여와 세탁기를 만드는카피형 제품개발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 가전 시장을 휩쓸었던 일본제 세탁기는 세탁 사용 습관이 비슷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이를 좀 더 접근 가능한 가격의 한국형으로 만드는 일은 당장의 수익에는 도움이 됐지만 비전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세탁기 연구실장 시절까지 기술 트렌드를 살피기 위해 일본 전자업체들이 모여 있는 오사카를 제집처럼 드나들다보니 자연스레 오사카 사투리에 익숙해졌다.

 

그는 사실 업계에서 출신을 알 수 없는 독특한 말투로도 유명하다. 고향은 충남 대천이지만 30년 이상 경남 창원에 위치한 공장과 연구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지나다보니 자연스레 경상도 사투리가 입에 붙었다. 여기에 일본어의 오사카 사투리까지 입에 붙어 경상도 사람인지, 재일교포인지 실제 출신을 대번에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일생을 현장 밀착형으로 일했다는 의미다. 본부장이 된 이후에도 일주일에 절반은 공장과 연구소가 있는 창원에서 직원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낸다.

 

 

‘트롬 트윈워시는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 전시회 ‘CES 2015’에서 처음 소개돼 호평을 받았다.

 

그가 주도한 혁신은 2005년 세계 최초의 듀얼 분사 스팀 드럼세탁기로 이어졌고트롬브랜드를 북미를 비롯한 전 세계 시장에 널리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올해 미국 시장에 출시한 세계 최대 용량 LG 드럼세탁기(모델명: WM8000)는 미국 컨슈머리포트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단일 국가로는 최대 규모 가전시장인 미국에서 지난해까지 8년 연속 드럼세탁기 부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북미 시장의 올 상반기(1∼6) 기준, 900달러 이상 프리미엄 드럼세탁기 부문에서는 점유율이 30.1%에 달한다.6 2010년 업계 최초로 점유율 10%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에는 역대 최고 기록인 12.4%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1, 2)

 

 

 

 

‘세탁기 달인으로서 조 사장의 역량은 이번트롬 트윈워시에서 다시 한번 제대로 발휘됐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트윈워시는 지금까지 출시됐던 세탁기 가운데서도 미디어 및 일반 소비자 사이에 화제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침 국내 경쟁사인 삼성전자도 도어에 작은 창문을 달아 언제든 세탁물을 추가할 수 있게 한 신제품버블샷 애드워시를 출시해 6주 만에 국내 판매 1만 대를 돌파하는 등 호평을 얻었다. 최대 경쟁사가 혁신 제품으로맞불 작전’에 나선 것 역시 전반적인 세탁기 붐을 일으키는 동반 상승 효과를 내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의 다음 목표는 세탁기에 머물지 않는다. 세탁기를 통한 ‘1 DNA’를 조 사장이 맡고 있는 생활가전사업 본부 전체에 불어넣는 것이 그의 다음 도전 과제이기 때문이다.

 

LG전자 가전사업은 지난 2분기, 매출 44853억 원, 영업이익 2918억 원, 영업이익률 6.5%를 기록했다. 이는 월풀(영업이익률 5.2%), 일렉트로룩스(2.9%) 등 주요 글로벌 가전 업체 이익률을 크게 웃도는 실적이다.7

 

성공요인 및 시사점

 

경영구루인 짐 콜린스는 스탠퍼드 경영대 재직 당시 동료 교수인 제리 포라스와 함께 위대한 기업에 대해 연구했다. 1등 기업의 특징을 다룬 이 연구는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콜린스는 이 연구의 후속으로 처음부터 1등이 된 기업이 아니라 평범한 기업으로 오랜 기간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1등으로 도약한 기업에 대해 수년간 심층 연구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된 이 연구는 콜린스를 경영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두 책에서 소개된 HP, 소니, 모토로라, 패니마이 등 몇몇 기업은 이후 몰락의 길로 들어서 1등은 고사하고 매각되거나 상장 폐지되는 운명을 맞는 경우가 발생했다. 책에 소개된 기업은 아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로 추앙받던 노키아가 주력사업을 매각하고 손을 뗀 사례도 있다. 이에 콜린스는 또 다른 연구를 통해 자만이나 현실 안주 등이 1등 기업을 몰락하게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1등으로 올라서는 것도 어렵지만 1등이 됐다고 지속적으로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8년간 1위를 지속하고 있는 LG전자 세탁기 사업부의 성적은 눈부시다. 지속적인 1등의 비결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시장을 선도해 1등을 지키려는 ‘1등 강박증

LG전자가 세탁기 사업에서 글로벌 1등으로 올라선 과정은 우리나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산업과 비슷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선진기업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고, 모방하고, 빠르게 추격했으며, 따라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 그 시절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어떤 우여곡절 끝에 1등으로 올라섰건 이후 LG전자 세탁기사업부는 1등 효과를 제대로 맛봤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줄곧 새로운 제품을 내놓아 시장을 선도했다. 1등 위상에 걸맞은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자존심에 제품을 허투루 만들지 않게 됐다. 10만 대에 1대꼴의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출시 날짜를 연기하면서까지 완벽을 기한 것만 봐도 LG전자 세탁기의 위상 변화를 알 수 있다. 또 끈기가 생겨 어려운 목표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됐다. 대부분의 1등은 손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한번은 커다란 고비를 넘겨야 한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어려움에 직면해도 이것만 극복하면 1등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끈기가 생긴다. 이른바 인지적 끈기다.

 

 

그런데 1등은 이런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콜린스가 지적했듯 자신감이 지나치면 자만심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결국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1등의 현실에 안주하는 경우도 많다. 이미 이룬 성과를 자랑하느라 조직 내에서 긴장감이 사라진다. 또 자연스레 성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게 된다. 지속적으로 1등을 유지한 기업은 1등 강박증으로 이런 부작용을 방지한다. 그들은 자신감은 있지만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이미 지나간 성과보다는 미래에도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선도적으로 준비한다.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설립된 후 140년 동안 줄곧 1위를 유지해온 GE 1등 강박증을 가진 대표적인 기업이다. GE는 항상 미래사업을 철저히 준비하고 남보다 먼저 실행한다. GE에서 사업구조조정이 잦은 것은 사업이 망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GE가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는 방식만 봐도 알 수 있다. GE는 현 CEO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후계자를 뽑아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CEO들은 자신과 비슷한 후계자를 신임하지만 GE는 반대다. ‘다음 세대의 GE를 이끌어나갈 인재를 기준으로 후임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LG전자 세탁기사업부가 지속적으로 성공한 것도 이런 1등 강박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탁기의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해 온 조성진 사장의 리더십이 영향을 줬겠지만 이제는 사업부 전체가 지금의 1등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에도 1등을 지속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동안 LG전자 세탁기에서 이룩한 혁신은 항상 미리 준비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번에 히트를 기록한 트윈워시의 경우도 이미 10년 전부터 준비해왔기에 이런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아마도 LG전자 세탁기사업부는 지금도 차세대 모델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2) 핵심인재의 육성과 유지

1등 강박증이 생각을 넘어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이걸 실행하는 핵심인재가 필요하다. LG 세탁기 조직은 경영진부터 선배 사원, 중간리더, 후배 사원 등으로 이어지는 인재의 축이 매우 탄탄하게 구축돼 있다. 선배들의 오랜 경험과 후배들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만나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이다. LG 세탁기 조직은 이직률이 다른 곳에 비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탁기처럼 현장의 암묵적인 지식과 아날로그적 경험이 필요한 곳에서는 뛰어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길러지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평균 근무연한이 긴 LG 세탁기사업부 연구조직은 강점을 가지고 있다.

 

 

우연한 결과겠지만 HR적 관점에서 보면 LG전자 세탁기사업부의 연구소 등 핵심조직이 경남 창원에 위치해 있다는 것도 인재의 육성과 유지에 이점이 되고 있는 듯하다. 도요타가 뛰어난 인재를 육성해 지속적으로 보유할 수 있었던 것도 지방인 아이치현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의 경쟁사인 닛산은 수도인 도쿄에 위치해 있어 일본 최고 명문대인 도쿄대 졸업생들을 선발해왔다. 하지만 이들은 회사에서 일을 배워 성과를 낼 때쯤 되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도요타는 지역의 인재를 흡수해서 일을 통해 핵심인재를 키우고 이들이 경영진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도요타의 지속적인 혁신이 가능했다. LG 세탁기 조직 역시 상당 부분 지역 인재를 흡수해 업무를 통해 역량을 키운 다음, 지속적으로 유지, 활용했기에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몇몇 기업들은 일부러 본사와 연구소를 지방에 옮기는 곳들도 있다. 독일의 숨겨진 강소기업의 특징을 연구한 헤르만 지몬에 의하면 독일 강소기업의 3분의 2가 지방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들은 그 지방에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지방 주민은 이 기업들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직원들도 본업에 집중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3) 작은 것이더라도 고객의 불편함에 천착

또 다른 비결은 1등 강박증을 지닌 핵심인재들이 고객의 니즈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흔히 오랜 기간 1등을 지속하고 있는 기업은 소비자보다는 공급자 중심적인 생각에 빠지기가 쉽다. 시장을 선도한다는 명분 아래 기술 중심적인 사고로 빠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엔지니어가 세탁기를 사용하는 가구를 직접 방문하는 프랙티스를 실천해온 것은 LG 세탁기사업부가 얼마나 고객 중심적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사례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고객이 불편해 하는 것은 없는지 항상 생각하는 자세가 오늘날 LG전자 세탁기를 명품으로 만들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잘되는 기업은 다양한 영역과 기능이 모두 잘 돌아간다. 반면 체인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에서 결정되듯이 기업조직의 어느 한 영역에서 구멍이 나면 전체의 성과하락으로 이어진다.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LG전자 세탁기사업부가 7년간 글로벌 1위를 유지해온 것은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디자인, 생산, 품질, 마케팅, 서비스 등 모든 영역에서 탁월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은 성공비결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언급한 성공비결은 기능적인 영역을 넘어 조직 전체 관점에서 바라본 것으로 한정했다.

 

끝으로 LG전자가 좀 더 분발해야 할 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세탁기의 기술혁신을 한 단계 더 도약시켜야 한다. 오늘날 많은 제품들은 기술적 성숙기에 들어섰다. 기술 수준이 소비자들의 니즈를 넘어섰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탁기는 아직도 소비자들이세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는 니즈를 모두 충족시켜주지는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세탁기는 우리가 입는 모든 옷을 세탁하지 못하고 있다.상당 부분 세탁소에 맡겨야 한다. 원래 양복이나 블라우스는 세탁소에 맡기는 것이란 고정관념을 버리고왜 세탁기에서는 양복이나 약한 소재를 빨지 못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기 바란다. 1등은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존재다. 세탁기의 기능에 한계를 두지 말았으면 한다.둘째, 세탁기사업부의 1등 경험을 다른 가전사업에도 빠르게 확산시켜야 한다. 냉장고, 에어컨 등 다른 가전제품은 상대적으로 스마트폰이나 미디어제품에 비해 세탁기와 특성이 비슷하다. 세탁기의 성공비결을 적용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향후 세탁기사업부의 1등 경험과 1등 강박증을 다른 사업부에도 확산, 이전시킨다면 LG전자는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강한 체질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DBR Mini Box

 

 

 

 

세탁기 혁신의 역사

 

 

 

 

원시적인 형태로나마 빨래를 돕는다는 목적으로 세계 최초로 개발된 세탁기는 1691

영국에서 개발된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계를 활용한 현대적 개념의 세탁기가 나온 것은 1851년 미국 제임스 킹이 발명한 실린더식 세탁기다. 하지만 이는 수동 세탁기여서 실제 여성을 해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진 못했다. 실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세탁기가 발명된 것은 1908년으로 최초의 전기 세탁기는 미국의 발명가 알바 피셔가 만든토르로 알려져 있다.i

 

 

1911년 미국의 가전 업체 메이택이 상업용 전기 세탁기를 세계 최초로 고안했다. 같은 해 월풀이 자동 세탁기를 개발해 가정용으로 보급하면서 본격적인 자동 전기 세탁기 시대를 열었다.ii 세탁기 제조업체들이 세탁기에 타이머를 단 것은 1930년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탈수 기능이 추가된 세탁기가 탄생했다.

 

 

우리나라에는 1960년대 처음으로 세탁기가 국내에 유입된 이래 1969년 금성사( LG전자)가 처음으로 국산 세탁기를 생산했다. 이후 1974년 삼성전자도 세탁기 사업에 발을 들였다. 대우전자(현 동부대우전자) 1980년대에 사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경제 성장이 가속화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세탁기 산업도 성장기를 맞게 됐다. 1990년대 들어서는 혁신적인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 예로 꼽히는 것이 LG전자의통돌이 세탁기.

 

 

LG전자의 세탁기 부문에는최초실적이 많다. 세계 최초로 DD모터를 적용한 통돌이세탁기(1998)와 드럼세탁기(2001), 스팀 기능 적용 세탁기(2005), 세계 최초로 손빨래 동작을 구현한 6모션 세탁기(2009), 터보워시 적용 세탁기(2012) 등에 이어 분리세탁을 구현한 트윈워시 세탁기 등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이병주 생생경영연구소장 capomaru@gmail.com

 

 

이병주 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LG경제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창의성, 변화관리, 리더십 등을 연구했다. 저서로 <애플 콤플렉스> <> <3불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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