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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 Interview with Legendary CEO: 김동수 전 듀폰 아태지역 사장

“나쁜 사람에 둘러싸인 좋은 리더는 세상에 없다”

정지영 | 176호 (2015년 5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2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 듀폰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아시아태평양(AP) 사장을 지낸 김동수 고문은 영속기업의 비결로사람변화하려는 의지를 꼽았다. 그는 변화를 포착하고 기회의 순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했다.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 회사는 일찍부터 잠재력이 있는 후보들을 골라내고, 오랜 시간 지켜보며 트레이닝을 시켜야 한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 분야에서만 성과를 발휘하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 한 우물을 깊이 파는 것이 영속성의 비결은 아니라며 변화를 향한 계속된 노력을 주문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한서연(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경영학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기업이 있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 듀폰이다. 1802년 미국의 작은 화학공장에서 시작한 듀폰의 역사는 213년이 넘는다. 글로벌 1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약 30, 이들 기업이 70년간 존속한 확률은 18%에 불과하다는 2011 <포브스> 자료와 비견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오래된 역사만큼 성과도 탁월하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인의 옷에 사용한 고성능 소재를 비롯해 다양한 과학적 솔루션을 제공해왔다. 오늘날 의류 및 실생활에 대중적으로 쓰이는 나일론, 테플론, 스판덱스 등이 모두 듀폰의 작품이다.

 

듀폰의 화려한 역사 속에서 빛나는 한국인이 있다. 듀폰에서 아시아인 최초로세계 불소 생산 담당 총책임자’ ‘세계 부직포 사업부 총책임자 겸 본사 부사장’ ‘아시아태평양(AP) 사장등을 거친 김동수 페트로나스(Petronas) 사외이사 겸 고문(68)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인이지만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 현업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다.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나스에서 고문을 담당하는 것 외에도 삼성SDI와 코칭경영원에서 각각 고문과 파트너를 맡고 있다. 김 고문은 기업을 영속시키는 힘은사람변화하려는 의지라고 했다. 그는글로벌 기업과 글로벌 CEO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에 적합한 인재를 발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돈을 잘 버는 조직이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100% 실패한다며 변화를 향한 계속된 노력을 주문했다.

 

김동수 전 듀폰 아태지역 사장

 

동양인 최초로 듀폰 아태지역 사장이 됐다.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인으로서, 아시아인으로서 듀폰에서 이처럼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준비와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매 단계 성실하게 장애물을 뛰어넘고 나니 기회가 왔다. 리더의 자리까지 오르는 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무래도서양인에 대한 콤플렉스였다. 이것을 극복한 게 큰 힘이 된 것 같다. 서양인을 리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힘들 때마다 늘나는 할 수 있다라고 마인드세팅을 했다. 돌이켜보니 콤플렉스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더라. 용기를 내어 많은 미국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강연하고, 업무를 지휘하면서 콤플렉스를 지워갔다.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논리를 가지려고 노력했던 게 도움이 됐다.

 

1998년 아태지역 사장이 된 후 중국에 가서 신입사원 200여 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한 젊은 직원이 손을 들고어떻게 남들이 못한 일을 해냈나요(What does it take to win)?”라고 물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어떻게 사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묻는 것이었다. 그때는 제대로 대답을 못 했는데 최근 다시 한번 자문해 봤다.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고, 어떤 자리에서건 중요하게 생각했던 몇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글로벌 시민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고객도, 경쟁자도 모두 국제인이다. 이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 나타날지 모른다. 무한경쟁 시대다. 이런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화에 대한 감각이다. 자기의 세상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과정에서 언어가 유창하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해서 영어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두 번째는 지속가능성이다.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직하고, 안전을 지키고, 환경을 보호하고, 변화를 리드할 수 있어야 하며, 창조력이 있어야 한다. 한탕주의자나 한 방을 노리는 사람이 끝에 가서 이기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세 번째는 생산성이다. 최대의 생산성을 가지기 위해 애썼다.

 

그 다음은 리더십이다. 예전의 리더는 어떤 문제에 대해 솔루션을 제시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문제에 대해 바로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는 거의 없다. 매 순간 상황이 바뀌는데다 그 영역도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답을 주는 리더가 아니라 조직에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불어넣어 조직 자체의 질을 높이는 리더가 되고자 했다. 군림하는 리더가 아니라 직원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그래서 솔선수범하려고 했다. 사람들은 직접 나서서 행동하는 리더를 따르기 마련이다. 예전에 큰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의 사무실에 찾아간 적이 있다. 회사 전체가 금연이었는데 친구의 사무실에 재떨이가 있었다. “웬 재떨이냐고 했더니 “CEO는 다르지라고 하더라. CEO이기 때문에 회사 정책 강령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때이 회사에 금연정책이 제대로 실행되긴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회장이 담배를 피는데 직원들이 억지로 금연을 하지 않았다. ‘Walk the Talk.’ 리더라면 말하는 대로 본인 스스로부터 실행해야 한다. 말하는 대로 걸어가라. 실천하지 않는 리더의 메시지는 없는 것만 못하다. 늘 이것을 실천하려고 했다.

 

 

 

 

듀폰에서 많은 일들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1998년 아태지역 책임자로 오게 된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도, 회사에도 중요한 순간이었다. 아태지역은 듀폰에서 꾸준히 10% 이상의 성장률을 내는 곳이었는데 아시아 외환위기 때문에 당시에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회장이 본사 사업부장들을 모아 아시아 시장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나를 뺀 17명의 사업부장이 아시아 시장에 대해부정적의견을 제시했고, 시장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장은 유일하게 긍정적 전망을 내비친 나의 의견에 관심을 보였다. 나에게아시아 시장을 직접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본사를 떠나 6개월 동안 아시아를 떠돌면서 시장을 조사했다. 국내 대기업인 삼성, LG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각지의 기업을 조사하며 시장을 탐방했다. 분석 결과이 외환위기는 장기간 불황인 경제난과는 다른 것으로 조만간 경제회복을 기대해볼 만하다란 결론이 나왔다. 나는 이 분석결과를 회장에게 보고했고 회장은 나를 믿어줬다. 그래서 아태지역 책임자로 발령을 받았다.

 

아태지역 담당자로 와서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하나는 코스트 다운이었다. 돈을 못 버니까 비용을 절감해야 했다. 또 하나는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였다. 당시 경기가 좋지 않아 많은 기업에서 좋은 인재들을 내보냈는데 나는 오히려 그때를 기회로 활용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엄청난 수의 직원을 뽑았다. 그즈음 특히 중국에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그 시작이 사람이었다. 사람을 뽑아서 교육시키고 이들을 통해서 보다 나은 비즈니스를 창출한다는 계획을 실행했다. “지금 회사가 얼마나 어려운데 사람을 뽑고 그렇게 돈을 쓰느냐는 반대의견이 많았지만 6개월의 시장 조사는 나에게 중국의 성장에 대한 확신을 줬다. 당시 중국은 거의 진공 상태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적절한 시기에 인재를 육성해 기회를 포착한다면 이는 회사에 큰 수익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다. 아시아 시장을 직접 돌았던 현장 경험이 내가 좋은 투자기회를 잡도록 해준 셈이다.

 

사실 이때가 미국 글로벌 회사의 맹점을 본 순간이기도 했다. 미국 사람들은 자신 위주의 사고를 하다 보니 세계화의 선두에 서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기도 한다. 분명 아시아 시장의 잠재성과 회복력이 뛰어난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나중에는 나의 예상이 맞아떨어져 듀폰은 아태지역에서 다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장을 세심하게 살피고, 꾸준히 사람에게 투자하고, 예리하게 순간의 기회를 포착하려고 했다. 이때 가장 중요했던 것이 시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였다.

 

리더로서

모임에서 주도적인 스피커가

되려고 하지 않고 후배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고 애썼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없다면

경쟁력 있는 리더가

될 수 없다.

 

아쉬웠던 결정이나 후회하는 일은 없나.

실패한 사례도 있다. 듀폰은 화약 기업에서 화학 기업으로 체질을 변화시켰다. 최근에는 다시 바이오 쪽으로 변화하려고 한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변신을 해온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위험요인은 피할 수 없다. 1998년 듀폰이 갖고 있던 석유회사 코노코를 매각할 때가 기억이 난다. 석유가격이 배럴당 30달러 이상이냐, 이하냐에 따라서 코노코 매각을 결정해야 했다. 30달러 이상이면 안 파는 것이 이득이고, 30달러 이하면 파는 것이 이득이었다. 우리는 30군데의 에너지 전문가에게 예상 석유 가격에 대해 물어봤다. 그랬더니 한 회사를 빼놓고는 모두 앞으로 석유 가격이 30달러가 안 넘을 것이라고 했다. 듀폰은 그 의견을 신뢰했고 코노코를 팔았다. 그런데 매각한 지 6개월 만에 석유 가격이 100달러로 치솟았고, 매각 1년 후에는 150달러까지 올라갔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예상은 틀렸고 듀폰은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놓친 셈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많다. 변화를 시도하다 보면 항상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다. 모든 사업이 100% 성공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한번은왜 이런 리스크를 떠안으면서까지 변화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결론은리스크를 취할 때 실패할 수 있는 확률이 10∼30%라면 변화하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은 100%가 된다였다. 변화냐, 아니냐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답은 뻔하다.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 듀폰도 변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했지만 그 과정에서 더 큰 성공을 이뤄냈다.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할 때만 해도 듀폰 주식은 30달러였다.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를 위해 노력했고 그 사이 모든 사업이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지금 회사 주식 가치는 75달러 수준이다. 작은 실패를 겪었지만 우리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변화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 바이오 기업으로 변화한다는 우리의 전략은 옳았고, 끊임없이 이를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던 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전략을 성공시키려면 행동이 필요하고, 행동하려면 전략을 수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의 솔루션은 결국 사람이 된다.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듀폰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는가.

클래스룸 리더십 프로그램도 유용하지만 인재가 계발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실무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어떤 인재 계발 프로그램도 실무만한 것은 없다. 세일즈에 대해서 제일 많이 배울 때는 세일즈 업무를 할 때, 연구개발에 대해 제일 많이 배울 때는 연구개발 업무를 할 때다. 그래야 업무의 기본부터 일을 잘하는 요령까지 제대로 알 수 있다. 기업이 CEO에게 원하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책임자, 리더의 역할이다. 리더라면 세일즈만 알아서는 안 된다. 생산, 연구, 제조, 인사관리, 안전, 해외 업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을 필요가 있다. 나도 공장 짓는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것부터 시작해 공장장, 판매 책임자, 여러 공장을 책임지는 오퍼레이션 디렉터, 부회장, 제너럴 매니저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본사에서는 나를 잠재 리더 목록에 올려놓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각 업무에서 성과를 내면서 나는 5년 만에 8번 승진했다. 듀폰에서는 연차보다는 잠재력과 그간 이룬 성과에 주목해 인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런 것이 가능했다. 과거 다양한 경험들이 내가 CEO가 돼서 종합적이고 빠른 판단을 내리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CEO가 될 사람을 키우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은 몇 년의 일이 아니라 10, 20,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다. 듀폰에는 ‘Corporate Promotables’라고 하는 핵심 인재 선발 과정이 있다. 보통 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보다 일찍 일을 시작한다. 30대가 되면 조직에서 이사급의 위치에 도달한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30대 직원들의 성과를 유심히 보고 그 사람이 리더 재목인지, 아닌지 1차적으로 판단한다. 그 사람이 인재라면 리스트에 올려놓고 여러 가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한다.

 

기업문화상 이 제도가 우리나라 기업에 최적이 아니라는 비판이 있다. 일찍부터 특정 인물을 정해놓고 리더로 키우자고 하면 본인이 그것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우가 많다. 또 주변에서 견제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회사는 피라미드 조직이다. 모든 사람을 계속해서 고용할 수는 없다. 언제부터 리더 자리에 오를 경쟁에 뛰어드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일찍부터 좋은 인재가 될 수 있는 덕목을 배우고 훈련을 받는다면 그가 좋은 리더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왕이면 일찍부터 다양한 부서를 거치면서 리더로서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이 조직을 이끄는 게 전체 조직 차원에서도 옳다고 생각한다.

 

듀폰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기회가 있더라도 기회를 잡아챌 수 있는 인재가 없다면 안 된다. 본사 사업부장으로 발령받은 첫날 회장이 찾아왔다. 팻말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거기에는 “Leaders make it happen through people”이라고 적혀 있었다. 리더는 사람을 통해서 뜻한 바를 이룬다는 의미였다. 이 팻말을 책상에 놓아두면서도 당시에는 진정한 의미를 몰랐다. 아태지역 사장으로 와서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비즈니스 결과를 낼까를 고민하는데 문득 그 문구가 떠올랐다. “우리는 기회를 잡아서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리더는 항상 좋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쁜 사람에 둘러싸인 좋은 리더는 세상에 없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데려오려고 많이 애를 썼다. 사람을 데려오고, 그들을 인재로 성장시키고, 만약 노력했는데도 성장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내보내기도 했다. 그런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좋은 사람들로 조직을 채워놓으면 리더는 별로 할 일이 없다. 리더십의 솔루션은 조직원에게 있다. 그래서 리더가 되고 나서도 직원들을 성장시키는 데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썼다.

 

 

 

 

리더가 되고 난 후 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후배들이 적재적소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업무가 많은 와중에도 잠재력 있는 직원들과 늘 개인 멘토링 시간을 가졌다. 경영자가 일에 골몰하고 인재계발은 인사팀에만 맡겨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큰 알맹이를 빠뜨리고 경영하는 것이다. 경영자가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없다면 그 조직은 절대로 강한 조직이 될 수 없다.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든 절반은 사람을 위해 쓰고자 했다. 한국의 일부 경영자들은 후배와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갖는 것을 두고 후배와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혹은 인재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냐하는 게 아니라어떤 이야기를 나누느냐하는 것이다.

 

리더로서 모임에서 주도적인 스피커가 되려고 하지 않고 후배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고 애썼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없다면 경쟁력 있는 리더가 될 수 없다. 예전에는 리더가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면 지금은 직원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리더는 직원들에게 정보를 듣고 그것을 사업에 이용하려고 해야지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지시만 내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국내 기업의 인재 양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국내 기업만큼 인재 양성에 노력하는 나라도 별로 없다. 많은 기업에서 CEO 포럼을 비롯해 각종 스터디그룹을 운영한다. 미국, 일본도 우리나라만큼 열성적이지는 않다. 사람에 대해 많이 투자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그 방식에 있어서는 약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미래 리더들에 대한 투자가 일찍부터 체계적으로 행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은 비즈니스가 굉장히 복잡하고, 구체적이며, 빨리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편적인 경험을 가진 사람은 리더 역할을 하기 힘들다. 이상적인 것은 30대 초반부터 잠재력을 가진 후보를 찾고, 이들을 꾸준히 교육시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각을 나타내는 대기만성형도 있다. 그런 경우는 잠재력이 발휘되는 순간 그 사람을 즉각 미래 리더 후보 리스트에 올리고 훈련을 시키면 된다. 세일즈맨과 세일즈 매니저를 한번 비교해보자. 좋은 세일즈맨이 좋은 세일즈 매니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적이 좋은 세일즈맨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에게 세일즈 매니저란 직함과 직원 20명을 데리고 사업을 시켰다. 그런데 세일즈 매니저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일할 생각을 안 하고 기존의 방식대로 본인이 나가서 제품을 파는 데만 열중했다. 더 넓어진 판매 영역을 혼자서만 커버하려고 한 셈이다. 본인도 지치고 팀원들도 일에 대해 열정이 생길 리 만무하다.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에게 세일즈 매니저는 오히려내 고객인데 왜 네가 신경쓰냐며 역정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의외로 많이 일어난다. 좋은 세일즈맨이냐, 좋은 세일즈 매니저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전문가를 CEO 자리에 앉히는 것이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거다.

 

진정한 리더십은 적절한 보직 변경을 통해 실무를 배우게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많지 않다. 대부분 한 분야의 전문가로 키운 다음 단기간의 리더십 교육만 거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가 CEO는 아니다. 한 분야에서 꾸준히 쌓아올린 지식과 노하우는 분명 유용한 것이지만 좋은 전문가가 곧 좋은 CEO는 아니다. 리더의 잠재력은변화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느냐에서 발견된다. 창조력이 있으면서 빠르게 변하는 변화의 물결을 잘 타는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리더 후보군에게 다양한 일을 시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세일즈를 잘해서 세일즈 매니저를 시켰는데 하는 일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는 리더로서의 잠재력이 없는 것이다. 세일즈를 잘하는 사람은 세일즈 전문가로 성장시키면 된다. 리더는 리더로서, 전문가는 전문가로 성장시킬 수 있고 그에 응당한 보상 체계를 갖춘 시스템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을 잠재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육성하는가.

첫 번째는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의욕이 있고, 또 나름대로의 결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정직과 원칙이다. 솔직하면서 원칙을 따르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결국은 이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자기 스스로 미리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자신을 정진시키는 사람이 경쟁력이 있다. 네 번째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결국 리더는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 사람을 통해 조직을 얼마나 강하게 만드느냐가 핵심이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듀폰에서 부사장 이상까지 올라간 사람은 못 봤다. 듀폰의 리더들은 모두 네 가지 덕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듀폰은 대표적인 영속기업이다.

그 안에서 느낀 영속기업의 비결은 무엇인가.

2002년에 듀폰 200년 기념모임이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서 상당히 큰 행사가 열렸다. 회장이듀폰이 200년 동안 살아올 수 있었던 비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당시 회장은 세 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첫째는 우리가 새로운 물건을 발명했다는 것, 즉 창조력이다. 새로운 기술이나 소재를 개발한 원천기술뿐만 아니라 이것들을 시장으로 가져가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력이다. 어떤 소재를 발명했다고 해서 당연히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가지고 어느 정도 규모의 공장을 설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섬유산업에서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 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공장 규모가 너무 작으면 시장 테스트가 안 되고, 너무 크게 했다가 나중에 제품이 안 팔리면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듀폰은 제품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모든 과정에서 창조력을 가지려고 했다. 두 번째는 변화하려는 의지다. 듀폰은 처음 화약기업에서 시작해 화학기업을 거쳐 지금은 바이오 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성공했다고 멈추거나 자만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듀폰의 영속성을 도왔다. 한 우물을 깊이 파는 것이 영속성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세 번째는 안전, 환경, 윤리, 인간존중 등 듀폰의 네 가지 핵심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1987년 듀폰에 입사했는데 한 달 동안 네 가지 핵심 가치에 대한 부분을 교육받았다. 듀폰의 핵심 가치는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서저걸 가지고 한 달 동안 할 이야기가 뭐가 있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디테일에 대해 얘기했는데 내용이 정말로 방대하면서도 치밀했다. 성희롱 교육을 받을 때는 성희롱의 정의 및 어떤 사소한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세세하면도 분명한 내용의 강연을 들었다. 일을 잘했다고 직원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도 당사자가 기분이 나쁘면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상사가 직급이 낮다고, 또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후배나 동료에게 반말을 해서도 안 된다. 또 어떤 사람에 대해서날씬하다” “살이 쪘다는 말도 해서는 안 된다. 상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일을 같이 하는 동료로서 지켜야 할 에티켓에 대해서 제대로 배웠다. 이 교육을 통해서 회사 내에서 상사라는 이유로 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서 스스로 다시 한번 각인할 수 있었다. 기본을 지키는 힘, 그것이 기업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듀폰은 안전관리에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 일류 기업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안전, 환경, 윤리와 같은 원칙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안전에 대한 듀폰의 애착과 철학은 회사를 영속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듀폰은 안전 이슈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고민을 해왔다. 듀폰에서 늘 말하는 것이 ‘The Goal is Zero’. 안전사고를 제로로 만들자는 의미다. 많은 기업들은 안전사고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투자는 하지 않는다. 안전하고자 한다면 미리 준비하고 투자해야 한다. 지난해에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아시아나 사고와 세월호 사고를 비교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아시아나 사고가 났을 때 처남의 가족이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당시 얘기를 들어보니까 물건이 다 떨어지고 의자도 크게 들썩이는 등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직원들은 사람들을 돕는 데 기민하게 대처했다. 불과 1∼2분 사이에 사람들을 내보내고 후속 조치를 매뉴얼에 따라 재빠르게 했다. 반면 세월호를 보라.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 두 사고의 차이가 무엇인가. 바로 훈련이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면 꼭 하는 게 앉자마자안전벨트를 매라는 음성이 나온다. 그 다음 작은 화면에서는 산소마스크 쓰는 방법, 위험시 대피 방법 등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스튜어디스와 스튜어드들도 엄청난 훈련을 받는다. 세월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안전 교육에 대해 제대로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훈련비 등 얼마의 돈을 절약할 순 있었겠지만 이번 사고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봤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것을 내재화하고 습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듀폰에서는 안전이 삶의 방법이다. 여러 사람이 계단을 함께 올라가면 어느 사람이 듀폰 직원인지 바로 알 수 있다. 듀폰 직원은 계단을 오를 때 꼭 옆의 손잡이를 잡고 오르내린다. 계단에서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일 년에 여러 사람이 다친다는 것을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회사 계단의 핸드레일 및 안전기구도 항상 좋은 것으로 구비하고 직원들에게 사용법에 대해 철저하게 교육시킨다. 리더들은 회사를 경영할 때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늘 안전수칙에 대해 얘기한다. 그렇게 때문에 듀폰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기업으로 불린다. 안전에 대한 투자는 사고 나서 손해 보는 것보다 늘 비용이 적게 든다. 여러 기업에서 강연을 하면서 고위 임원들에게 소화기를 다루는 법에 대해 물어본다. 한 대기업 임원이나는 안전 책임자가 아니라 사용법을 모른다고 답했다. 그런데 듀폰에서는 모든 사람이, 특히 리더라면 안전에 대해 전문가가 될 정도로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장장이나 CEO를 할 수 없다. 듀폰 CEO와 다른 글로벌 기업 CEO의 가장 큰 차이가 뭐냐면 안전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다. 리더라면 언제 어디서든 직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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