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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 Inspiration from Creative people : 이현종 HS애드 대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Advertising → Productising, Copywriter → Writer 가슴의 시대,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자

고승연 | 175호 (2015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마케팅, 혁신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광고를 넘어선 광고를 실행하는 이가 있다. 이현종 HS애드 대표 CD. 그는공감경제시대에는 기능적으로 분화해 벽을 쳐놓은 기존 기업 조직으로는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개념이 ‘product’ ‘advertising’을 조합한 ‘productising’이다. ‘광고를 넘어선 광고를 해야 할 정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기업인들은 어떤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짜야 할까. 그가 제시하는 통찰은 다음과 같다.

 

1) ‘광고 카피를 만들지 말고개념을 만들라.

2) ‘가슴의 시대에 맞게소비자와 기업의 관계를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바꿔라.

3) 기술과 반기술의 양립 시대에 발맞춰본질주의로 승부하라.

4) 마케터와 광고인은성동격서의 전략 내에서 함께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한서연(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씨와 유준수(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대한민국 광고 역사에는모르면 간첩수준으로 유명한 광고 카피가 몇 개 있다. SNS는커녕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도 사방팔방 패러디되며 퍼져나가던 문구들이다. 배우 최진실 씨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던 한마디남편은 여자하기 나름이에요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 드려야겠어요등이 바로 그런 광고 카피다. 전지현, 이영애 등 당대 톱 배우들이 모델로 등장해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보여주며 던졌던엘라스틴 했어요라는 광고문구 역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한마디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바로 그 광고카피를 만들어냈다.

 

1988 HS애드(당시 LG애드)에 입사해 카피라이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광고회사 웰콤 부사장, Wisebell 대표 등을 지냈다. HS애드 CCO(Chief Creative Officer)를 거쳐 현재는 HS애드 대표 CD(Creative Director). “엘라스틴 했어요캠페인, 올림푸스의마이 디지털 스토리’, LG 명화 광고, 배스킨라빈스 닉네임 캠페인과 프로스펙스 워킹화 캠페인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공 캠페인을 직접 설계하고 만든 사람 중 한 명이다.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대한민국 광고상등 큰 상을 휩쓸기도 했다. 저서로는 <스틸러>가 있다.

 

카피라이터로 시작했다. 수많은 히트작을 남겼고 광고 전반의 기획을 총괄하면서부터는 독립된 회사를 운영하던 시절이든,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 시절이든 바로 그의 이름값만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엄마는 외계인이라는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의 이름까지 직접 만들며 광고를 제작했고, ‘천지 창조감자먹는 사람들같은 세계적 명화에 모 전자회사의 제품을 집어넣거나 동서양의 최고 유명 화가가 함께 배를 타고 여행하는 콘셉트의 기업 이미지 광고로 충격을 주는 한편 각종 광고상을 휩쓸기도 했다. (그림 1)

 

 

바로 이현종 HS애드 대표 CD(Creative Director) 얘기다.

 

광고인으로서 이룰 만큼 다 이룬 그가 최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얼마 전 <스틸러>라는 책을 내 자신의 수십 년 광고 경험을 정리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한편, Over The Rainbow(이하 OTR)라는 사내 벤처 형식의 조직을 만들어 Advertising이 아닌 Productising을 시작했다. 그동안의 ‘creativity’ 활동을 돌아보고 정리하면서 새로운 ‘creativity’ 활동에 나선 셈이다. Productising이란 Product+Advertising의 합성어로, 제조업체에서 먼저 제품을 만든 뒤에 광고대행사에 광고마케팅을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광고회사에서 먼저 제품 콘셉트를 제안하고 실제 제품을 디자인까지 해서 광고주인 제조업체에서 생산하도록 한 뒤 다시 본인들이 광고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첫 작품은 LG전자에서 주력폰인 G 시리즈와 별도로 10대와 20대 초반을 타깃으로 내 놓은 아카(AKA)폰이다. (그림 2) 일반적인 형태의 스마트폰과 달리 캐릭터 커버가 씌워져 있고 문자나 SNS가 오면 눈을 깜빡이며, 기분에 따라 캐릭터 커버를 바꿔 끼울 수도 있는 콘셉트였다. ‘대성공까지는 아니었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알려졌다. 한국 제품 생산과 광고 역사상 최초의 시도였던 만큼 산업계와 광고업계 전반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DBR Productising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를 만났다.

 

 

 

광고를 넘어서

아카(AKA)폰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건 맞는데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이른바대박이 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회사로서는, 적어도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시도였다. 리테일, 디지털 기술 적용, 공장에서의 생산만 안 했을 뿐이지 거의 모든 걸 한 거다. ‘advertising’(광고)을 중심으로 보면 ‘before ad’(광고 전), ‘after ad’(광고 후)를 전부 다 한 첫 번째 케이스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방점을 찍었다고 본다. 예전에 제품 아이디어를 조금 내서 광고 전에 부분적으로 반영시키거나 브랜드 네이밍에 참여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광고회사가 이렇게 완전히 제품 사상의 형성부터 디자인, 마케팅 단계까지 총괄한 경우는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없었던 듯하다.

 

 

 

 

또 다른 의미는 지난해 8, 드디어 Productising을 하는조직이 생겼다는 거다. 아카폰 출시는 Over The Rainbow라는 조직에서 했다. OTR에서는 작년에 아예 제품 디자이너를 뽑았다. 물론 광고회사로서는 최초다. 보통 디자이너를 뽑아도 시각디자인, 광고디자인 전공자들을 뽑는 게 광고회사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 제조업체에 있어야 할 제품디자이너를 우리가 뽑았다. 이 역시 신선한 충격일 수 있다. 당연히 이번 아카폰 디자인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물론 그 디자이너도 OTR에 들어오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수년 전 ‘wisebell’이라는 광고회사를 창업해 운영할 할 때부터 Productising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때 이런 생각을 공유하던 과정에서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였다. 그땐 다른 휴대폰 제조회사에 있었다. 본인도 사실 제조업체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하다 보면 부딪히는 문제들이 꽤 많았다고 하더라.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라든지, 제품 기획의 핵심인 디자이너가 단순 오퍼레이터로 전락하게 되는 문제랄지. 그렇게 되면 디자이너가 제품에 대해 상당히 좁게 보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맥락을 모르고 일을 하게 된다는 거다. 디자이너가 욕심이 있다면 당연히 답답해지는 부분이다. 제품이 어떤 사상에서부터 출발하고, 어떤 마케팅 지점에 와 있는지, 총괄하는 맥락을 보고 싶은 욕심이 아마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을 거다. 제품디자이너가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커리어상으로 상당히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왔다.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조직이 생겼고, 아직회사까지는 아니지만 인큐베이팅 단계에 있다. 그 과정에서의 첫 작품이 아카폰이었고, 그런 측면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애초에 왜 Advertising이 아닌

Productising을 하게 됐나?

광고회사 입장에서 Productising을 하는 건 최초 사례가 맞겠지만 제품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총괄하는 개념은 사실 존재하던 거였다. 누구 한 명이 떠오르지 않나? 맞다. 스티브 잡스다. 잡스는이런 사상의 제품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런 콘셉트의 디자인이 나왔으면 좋겠어’ ‘이건 이런 사상을 갖고 있으니 마케팅은 이렇게 하고 광고는 저렇게 해야 돼라며 본인이 모든 걸 총괄했다. 광고를 맡은 미국 광고회사는 파트너이고 잡스의 마케팅 아이디어를 실현해주는 일만 했던 거다. 물론 애플 내에 사내 광고 에이전시도 있다. 이 방식이 진짜 어렵긴 해도 분명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기업들 조직을 보자. 모든 게기능위주다. 기획부서에서 상품기획하고, 엔지니어들이 개발하고, 예산 운영하고, 마케팅 조사하고, 유통 담당 쪽에서 채널 확보하고 영업한다. 전달, 전달, 전달되는 식인데, 혹시 예전가족오락관프로그램에서 하던 게임 생각나지 않나? 시끄러운 음악 나오는 헤드폰 끼고 입 모양만 보고 최초의 단어를 맞히는 그 게임. 항상 마지막에는 황당한 단어로 바뀌어 모두가 웃게 된다. 기업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애초에 제품 콘셉트, 사상, 철학, 디자인이 각 부서를 넘어가면서 이런저런 제약과 오해 속에 엉뚱하게 바뀌어가는 거다. 내가 추진한 Productising이라는 게 다소 미련해 보이는 구상일 수 있다. 진짜 힘들었다. 더군다나 LG전자같이 큰 기업이었으니 상품 하나하나마다 전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가 컸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면 우리 조직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자꾸 오해가 생기는 구나’ ‘이 프로세스는 이렇게 고쳐야겠구나하는 것들이 보인다는 얘기다.

 

전혀 다른 차원에서 보면 광고회사 입장에서도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광고회사가 전 세계적으로 수익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광고업이라는 비즈니스 자체가 위기다. 사실 광고대행사는 마진이 높은 비즈니스모델이었다. 과도한 경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근본적인 위기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최근 광고 관련한 이니셔티브가 점점 광고주한테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미디어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미디어가 4대 매체(신문, TV, 라디오, 잡지) 중심이었을 때는 광고 전략이나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가 않았다. 해당 미디어와 접점을 갖고 있는 광고회사가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해도 좋은 인력이 다들 광고회사로 들어왔다. 좋은 마케터들, 광고를 하겠다는 좋은 인재들이 많았다. 그런데 점점 세상이 디지털화하면서 4대 매체가 붕괴했다. 이는 소비자 접점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은 100개도 넘을 거다. 이렇게 미디어가 파편화됐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광고 전략 설계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사실은 광고주조차도 이걸 다 컨트롤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나마 컨트롤할 수 있는 게 광고주다. 그래서 광고주가 관리하게 된 것이다. 좋은 인력들도 자꾸인하우스로 이동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예전에는 우리가 가서광고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주도권을 쥐었는데 이제는 광고주가광고 이렇게 하세요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광고회사는전모를 모르고는 맥락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고회사들은 대형화 아니면 전문화할 수밖에 없다. 대형화해 그 그룹 안에 여러 네트워크를 다 갖고우리는 너희의 모든 걸 커버해줄 수 있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아예 광고주가 자신의 니즈에 맞는 특화된 업체를 뽑아서 설계해버리는 거다. 따라서 어중간한 종합광고대행사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Productising이라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동안 우리 시대는

성장과 효율 중심의 시장구조였다.

그런데 이제는 계속 나오는 얘기가,

용어는 사람마다 좀 다르지만,

‘공감경제시대’라는 것이다.

 

사회 전반의 변화와 연결되는 이유도 있지 않나?

물론이다. 아주 솔직하고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느 쪽이 돈이 되느냐의 문제로 접근하면 그 축이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는 성장과 효율 중심의 시장구조였다. 그런데 이제는 계속 나오는 얘기가, 용어는 사람마다 좀 다르지만, ‘공감경제시대라는 것이다. 결국공감이라는 키워드가 돈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메이커들은 아직도 성장과 효율 중심의 패러다임을 갖고 있다. 아이팟의 성공에서 아직도 제대로 못 배웠다. 아이폰도 아닌 10여 년 전의 아이팟에서도 말이다. 아시다시피 조너선 아이브가 다 디자인한 제품들인데 그는 예전 <타임스>지 기고에서나는 기계를 function(기능)의 합으로 안 본다고 밝히고 있다. 사람과 감정적 교감을 하는 대상으로 본다는 뜻이다. 근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여전히이야, 이것도 돼요. 이 기능도 되고, 다 돼요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리고 나서 생각한다. ‘근데 이렇게 다 되는데 왜 안사는 거야?’

 

우리는 아직도 기계를 ‘tool’로 보는데 그들은 ‘pet’으로 본다. 디자인하는 사람 입장에서 봐도 tool로 보는지, pet으로 보는지에 따라 색깔 하나도 달라지고, 버튼 하나의 이름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만큼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제품을 개발할 때부터 중요한 가치가 되는 거다. 상황은 이런데 지금 제조업체들한테 습관화돼 있지 않다. “기술적으로 이게 돼, 안 돼, 메탈바디야, 훌륭해.” 이러지 않나. 하지만 소비자의 니즈부터 시장경제 전체가 계속 공감경제 흐름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아예 소비자의 감정, 감성이나 시장의 트렌드나 문화 등을 잘 아는 사람들이 제품 개발할 때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니즈가 있는 것이다. 작년 OTR을 만들고 디지털 뉴스를 여기저기 발송했는데 기업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굉장히 뜨거워서 놀랐다. 아카폰 같은 경우는저희는 이렇게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얘기하기도 전에 먼저 연락이 왔다.

 

 

 

 

자연스레 아카폰 개발 과정으로 얘기가 넘어갈 것 같다.

OTR에서 가서 사업설명회도 안 했는데 상품기획팀에서 연락이 왔다. 그쪽에서도 프로세스 파괴적인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들의 프로세스로 일을 하면 원하는 제품이 안 나올 것 같다고 느낀 것으로 보인다. 계속 기술 기반, 제조 기반, 기능 기반으로 생각하고 일을 하니까 이걸 깨보자고 생각했던 거다. 11월쯤에 거기서 역으로 같이 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과 똑같다는 얘기였다. 당시 처음 요구는 조금 달랐다. ‘수첩형 폴더폰’을 좀 중저가로 할 수 있는 구상을 하고 있더라. 그런데 몇 번 회의하다가아예 nothing에서 출발해도 된다고 말했다. 몇 가지 안이 있었는데 아카폰은 맨 마지막에 제안한 거였다. 젊은층을 중저가로 공략해야 하는데 좀 모험해도 되는 것 아니냐 하는 뜻에서 나온 제안이었다. 그래서요즘 10대의 문화가 반영된 폰쪽으로 제안을 했다. ‘아카라는 게 ‘also known as’, 즉 나의 닉네임을 의미한다. 힙합 아티스트들이나의 아카는다’ 이렇게 말한다. 그런 문화가 있다. 조금 트렌디한 젊은이들은 아카라는 게 뭔지 안다. 어쨌든, LG 같은 경우선도적인 무엇에 대한 갈증이 있는 기업이다. 그래서 주력 제품이 있음에도 새로운 생산라인을 만들어 아카폰을 만드는 데 적극 협조해줬다.

 

또 다른 차원에서도 접근해봤다. 스마트폰이라는 게 제품을 지칭하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진짜누가 더 똑똑한가, 누가 더 지적이고, 누가 더 뭘 해 주느냐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이건이성적 스마트. 그래서 이젠감성 스마트로 해보자고 한 거다. 기술 쪽으로 발전시키는 건 어차피 제조업체에서 잘하는 일이니까, 광고회사는 감성 쪽으로 더 잘할 수 있으니 고객들이 감정적으로 밀착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예이 스마트폰 자체에 인성을 부여하자’ ‘하나의 페르소나로 만들자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눈도 그래서 만들었다. 도구에서 애완동물로 간 게 아이폰이라면 이젠또 다른 나로서의 제품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쉬운 것도 많다. 인성이라든지, 감성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조금 더 재밌게 구현할 수 있었던 아이디어들도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너무 만화 같은 생각들이라 구현이 덜 된 부분도 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온다면 그런 부분들을 넣어 볼 생각이다.

 

아쉬운 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에 대해 좀 더 말해 달라.

이 제품은매스존(Mass Zone)’보다는니치존(Niche Zone)’을 지향한다. ‘예쁘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10∼20대 젊은층, 본인의 스타일을 중시하는 마니악한 키덜트(kidult) 등의 틈새시장을 노린 상품이다. 단순히 시장점유율만으로 이 폰의 가치를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주류 폰들과는 처음부터 다른 노선을 걸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카폰을 생산한 LG전자에서는 이를 중국, 대만, 싱가포르, 터키는 물론 중동 각국에 순차적으로 출시해 해외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제품 세분화 전략의 일환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소비자들이일탈을 감행하는 걸 좀 주저하고 있는 상황인 듯하다. 대중들이 즐겨 써왔고, 타인들이 주로 쓰는 폰의 형식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폰 시장은 결국 다양화될 수밖에 없다. 아카는 따라서 그 지점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두 달간은 판매가 꾸준히 늘면서 우리도 놀라고 있는 상황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번엔 확실히 더 인터렉티브하게 만들 구상을 하고 있다. 나하고 얘기를 하고, 내가 우울하면 음악이 저절로 나오는, 이 정도로 상호작용이 돼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장점을희소(rare)가치이자유일(unique)하고 독창적인 가치로 소비자들에게 호소하고 마케팅적으로 풀어낸다면 모든 걸 감수하고라도 사고 싶은 매력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Productising과 관련한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

아까 잠시 언급했지만 사실 광고회사가 제품기획 단계부터 아이디어 내고, 개입하고 이런 것들은 분명히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나이키 퓨얼밴드를 봐도 광고회사의 아이디어가 크게 작용했다. 많은 광고회사들이 제품 최초 단계에서부터 도움을 주자는 방향으로 간다. 기본적으로 소비재 같은 경우, 첨단 소비재, 특히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시장 쪽에서는 프로덕트 라이프 사이클이 굉장히 짧다. 회의 하다 보면 벌써 다른 제품이 나온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같이해서 빨리 만들어 내놓는 방식으로 가는 게 좋다.

 

 

광고라는 개념을 봐도 광고회사가 ‘beyond advertising’으로 가야 한다. 이제는 광고회사가 콘텐츠 회사가 될 수 있다. 방송국이 콘텐츠 배급회사가 되는 것과 똑같이 광고회사가 이제는 방송국이 하던 일을 할 수 있다. 광고의 형태도 바뀌고 있지 않나. 몇 년 전 미국 TBWA가 만든 게토레이 광고를 보자. 광고회사가 광고를 만든 게 아니라 아예 콘텐츠를 만들어서 방송사에 팔았다. ‘REPLAY’라는 프로그램이었다. (‘DBR minibox’ 참조.)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1993년 펜실베이니아 이스튼고교와 뉴저지 필립스버그고교 간 미식축구경기가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연고전같은 학교 대항전인데, 이때 결승전에서 77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걸 다시 하자는 기획이었다. 원래 방송국에서 할 수 있는 기획인데 광고회사에서 한 거다. 마흔 살이 넘어 다시 모여 경기를 하니까 국민적인 관심도 생기고, 당시의 치어리더도 다시 모였다. 똑같이 모여서, 똑같은 환경에서 다시 하는 거다. replay라는 프로그램을 케이블TV가 방송했다. 게토레이에서는 그 선수들이 게토레이를 마시는 걸 방송에 넣는 조건으로 비용을 댔다. 광고회사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다시 광고주를 유치하고 광고효과를 냈고, 방송국은 그걸 산거다. 광고 하나 만들어내고재밌네라는 평가만 들으면 됐던 시대가 지났다. 통신사와 단말기회사 간 구분도 없어질 것이고 방송국과 광고회사, 콘텐츠 만드는 회사 간 경계도 없어졌다.

 

다시 Productising의 얘기로 돌아가면 빅뱅이 일어날 수 있는 스폿은 광고 이전에 굉장히 많다. 근데 지금은 광고회사까지 왔을 때는닥광(닥치고 광고나 해)’이 돼 버린다. 하지만 요즘 광고는 하는 것이 아니라해 지는 것이다. 광고 이전에 이미 승부가 끝난다. 광고회사한테 어떤마법을 바라는 광고주들은 제품 개발에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제품 기획단계에서부터 모든 게 더 정교해지고, 보면 저절로 광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제품이 나오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그게 바로 Productising의 핵심이다.

 

‘소비자와 기업을 넘어사람과 사람으로

요즘 미디어 환경 등이 바뀌면서 카피의 중요성에 대해

회의적인 분들이 많아졌다. 어떻게 생각하나?

카피의 중요성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죽으면 인류가 죽는 거다. ‘시각화역시 다 언어에서 출발해서 나오는 거다. 우리가 생각을 언어로 하지 않나. 언어가 ‘nothing’인 채로 비주얼만 떠오르는 경우가 있나? 그건 인간이 아니다. 언어는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다. ‘시각화라는 것은 언어를 기반으로 또 다른 도구가 정교하게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하는 거다. 언어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래리 바커라는 CD우리가 21세기 아이들이 이렇게 편지를 많이 쓸 줄 어떻게 알았느냐는 말을 했다. 단지 그 글이 얄팍하고, 감정이 부스러기 같아서 그렇지, 사실 글 자체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더 많이 쓴다. 말 줄임도 많아지는 건 언어적인 감각이 늘어나는 걸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언어라는 건 절대 안 죽는다. 오히려 나는카피 회의론자들과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카피는 더 중요한 요소다. 단지 카피가 옛날과 같은 모습이 아닐 뿐이다. 이전 같은 문학적인 나열들이 없어졌을 따름이지 카피의 힘은 여전하다. 다만카피라이터라기보다는 라이터(writer)라는 말이 더 좋을 것 같다. 카피라이터라고 스스로 규정하면 진짜 그냥광고카피를 만들게 된다.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아침마당에 편지 보내는 것보다도 못한 설득력이다. 카피가 아니라 진짜 글쓰기를 해야 된다. 정말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글, 말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카피라이터는 일종의 개념확립자(conceptualist)가 돼야 한다. 예를 들어, “엘라스틴 했어요이렇게 하면 샴푸가 머리를 감는 비누의 연장이 아닌 화장품의 연장으로 개념이 바뀌어 버린다. 새로운 개념과 키워드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없으면 광고가 없다. 키워드가 곧 사상이다. 카피 하나 없이 비주얼만을 만든 광고가 나왔다고 하자. 그래도 카피가 죽은 게 아니다. 키워드가 있는 거다. 단지 그게 시각화된 것일 뿐이다. 카피는 영원하다.

 

 

 

 

말씀하신카피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면?

최근에 만든 것 중에새로운 나를 만나다라는 광고가 있다. 스마트폰 광고인데 2분 동안 아무것도 없는, 그냥 음악과 단편 애니메이션이 나올 뿐이다. 그냥 여자아이가 휴대폰을 타고 여기저기 날아가는,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옛날 광고 같으면나의 폰은 나의 분신, 거기서 나는 놀고 뭐 하고 한다이렇게 했겠지만 이건 애니메이션만 있고새로운 나를 만나다이것으로 끝이다. 근데 이것의 출발은 결국 폰의 콘셉트를 생각해낸 것이다. ‘나의 분신’이라는 게 사고의 출발점이다. 자나 깨나 갖고 다니고, 내가 눈뜨면 얘도 깨고, 감으면 얘도 감는 나의 분신, 나의 욕망, 나의 의식, 무의식. 그래서 새 휴대폰이 나왔다는 건 새로운 인생을 만나는 것 아닌가, 이렇게 개념화(conceptualizing)를 한 거다. 이게 카피다. 없어질 수가 없다. 오히려 시각화하려 할수록 카피가 더 중요해진다. 아웃도어 업체 K2인생은 한번뿐이니까광고도 마찬가지다. 현빈이 알몸인 채 늑대도 나오고 불도 지른다. 두려움을 떠올릴 때의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생은 한번뿐이니까. 나의 두려움이라는 무의식과, 한번 가보겠다는 도전 의식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자는 개념이었다. 어떻게 보면 무의식 광고다. 내 내면, 무의식 속의 두려움과 싸우는 장면들을 형상화하고인생은 한번 뿐이니까이러면서 눈을 팍 뜨는 광고다. 이런 걸 카피라이터가 하는 거다.

 

 

 

언어라는 건 절대 안 죽는다.

오히려 나는카피 회의론자들과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카피는 더 중요한 요소다.

단지 카피가 옛날과 같은 모습이

아닐 뿐이다.

 

이 시대의 카피라이터란 무엇인지 설명했는데

이 시대의 소비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지금의 소비자들은참여형 소비자인 건 틀림없는 것 같다. 흔히수용자 주권시대’ ‘소비자주권시대라는 얘기를 한다. 예전에는 송신자 중심이었다. 시장 용어로 설명하면 ‘sellers market’일 거다. 시장 자체도 만들고 밀어내고 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아까 말한 공감경제의 시대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 감정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수용자 측으로 공이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떻게 확대 재생산될지 모른다는 거다. 모든 엔터테인먼트 사업 쪽이 가지는 어려움 중 하나다. 어떻게 될지를 모르는데 광고가 그 부분까지 전부 예측하고 설계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래도 해야 한다. 기업들이나, 광고인들이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변해가야 할 것 아닌가.

 

논의를 좀 확장시켜보자. 인류가 신이나 미신을 믿는머리 위의 시대가 있었다. 그 다음이머리의 시대’, 이성의 시대다. 이제는 가슴의 시대가 됐다. 얼마 전에 과학 다큐멘터리를 봤더니 사람 머리를 움직이는 게 가슴이라고 하더라. 심장박동 사이가 뇌를 자극하는 시간이라는 거다. ‘뇌를 움직이는 게 가슴이라는 거다. 실제로 이공감의 시대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가슴의 시대에 대해 좀 더 설명해 달라.

감정을 이해하고, 감정을 배려하고, 감정을 설득하는 능력이 대단히 중요해지는 거다. 이건 대통령부터 조직의 리더까지 다 똑같다. 이 능력이 곧 소통의 능력이다. 부부간도 그렇고, 상하 간도 그렇고, 정부 기관의 장도 그렇고. 아침 조회한다고 CEO가 소통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유머를 구사한다거나 그 사람이 울 수 있는 얘기를 한다거나, 이것이 소통이다.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는 그런 게 공감경제 시대의 소통이다.

 

그러면 이런 시대에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사람 대 사람으로 봐야 한다. 왜 친구가 좋냐. 사람 대 사람으로 보니까. 그래서 친구와 있으면 편하고 일상의 부스러기 같은 작은 얘기를 해도 편하고 웃고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 안 보고 계급 대 계급으로 보면 소통도 안 되고 세상 모든 게 갑을관계로 변해버린다. 감정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생길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소비자라는 단어를 별로 안 좋아한다. 판매 대상으로 보는 거니까. 기업 대 소비자, 제품 대 소비자, 브랜드 대 소비자 이렇게 보지 말고 사람 대 사람으로 봐야 한다. LG도 사람이고, 고객도 사람이고. 그렇게 보면 때론 미안한 마음도 들고, 같이 울어줄 수도 있는 거다. 이렇게 해야지만 오히려 아이디어도 잘 나온다. 사실 기업도 법적으로 사람이 맞지 않나. ‘법인이라는 게 하나의 인격체를 가진 것으로 규정된다. 법조용어로법인격이라고 하는 그거다.

 

사람 대 사람으로 보는 것이 되게 중요하다. 이러한 접근법 자체가 많은 부분을 해결할 것으로 본다.

 

 

[DBR Mini Box] 게토레이에서 진행한 REPLAY 캠페인

 

미국 30대 남성 중 70% 이상이 운동을 하지 않아 스포츠 음료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획됐다. 어릴 적 스포츠 음료를 즐겨 마셨던 30대 이상 남성을 타깃으로 했다. 그들의 감성을 자극할 스토리를 활용해 스포츠를 통한 감동과 함께 직접 하고자 하는 열망을 일깨워주는 것이 목표였다. 먼저 시즌 1 2009년에 진행됐는데 펜실베이니아의 이스튼고교와 뉴저지의 필립스버그고교 간 미식축구 경기를 ‘replay’ 하는 것이었다. 두 학교는 1905년부터 매년 추수감사절마다 경기를 치렀던 100년 전통의 라이벌 고등학교다. 그런데 1993년 정기전에서 77 무승부를 기록했는데 이들의 재경기를 게토레이가 지원했다. 게토레이가 당시 선수를 찾아내 끝내지 못한 승부를 겨루는 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두 달간 현역 미식축구 선수와 코치에게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았고 이 과정을 REPLAY 공식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노출했다. 실제 경기 티켓 15000장이 90분 만에 매진됐고 캠페인은 준비부터 실제 경기, 그 이후까지 웹사이트와 SNS를 통해서 퍼져나갔다. 이 모든 과정은 또 FOX TV를 통해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다.

 

캠페인 성과도 대단했다. 경기가 열린 지역에서는 게토레이 판매량이 63% 증가했고, 225000달러의 비용으로 3415255달러어치의 미디어 노출 효과를 달성했다. 57회 칸국제광고제 PR 부문과 프로모션&액티베이션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CNN이 선택한 2009년 최고의 스토리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어시즌 2’ 역시 기획돼 큰 성공을 거뒀다. 1999년에 있었던 Trenton Trojans Detroit Catholic Central Shamrocks 간 아이스하키 경기가 ‘replay’됐다. 당시 Trenton 팀의 한 선수가 심각한 부상을 입어 44로 게임이 종료됐는데, 이 선수들을 다시 모아 8주간 훈련을 진행하고, 2010 5월에 다시 경기를 진행했다.

 

11년 만에 이뤄진 재경기였다.

 

‘시즌 3’ 2000년에 있었던 블룸고교와 브러더라이스고교 간 농구 경기였다. 당시 블룸이 4240으로 이겼지만 시간 지연 등 여러 논란이 있었고 2010 9월에 다시 모여 경기를 치렀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맞는 광고전략은?

첫 번째는진정성이다. 이 글자 가운데자리에 한자로 쓸 수도 있고 쓸 수도 있다. 쓰게 되면 예술작품의 순수함, 완성도 이런 것들을 평가할 때 쓰는 단어가 된다. 제품으로 말하자면완성도와 연결되는 개념이다. ‘진짜인 것이고, 정제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으로 많이 옮겨간다.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우리 시대의 대단히 중요한 가치가 된 것이다. 제품이든, 커뮤니케이션이든 진정성 획득 과정은 결국 권위, 구태, 거짓이 무너지는 거다. 커뮤니케이션이든 광고든,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광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연예인도신비주의보다는생계형’ ‘민낯이런 캐릭터가 더 각광받는다. 세계적 미술 작품에 전자제품을 집어넣었던명화 광고는 일종의 탈권위였다. 저 위에 올라가 있던 것들을 데리고 내려와서 장난하는, 그런 탈권위에서 사람들이 쾌감을 느끼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진심이 짓는다광고는 탈구태다. 원래 아파트 광고는 빅 모델들이 나와서 했는데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는 그 부분에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더라. 상투적인 것들을 벗어나는 솔직함에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얘기다. 탈거짓 광고들도 많아졌다. 옛날 광고들은 관심을 얻기 위한술책’(gimmick)과 속임수(trick)에 의존하는 걸 ‘creative’ 하다고 봤다. 광고 시상식을 가도 그런 게 많이 상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나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광고들이 많아졌다. 실증형 광고들이 더 많아졌다는 거다. 김치냉장고 광고할 때도 실증하듯이 김치가 익는 소리와 장면을 보여준다. 아이폰도 사실 실증형 광고다. gimmick이나 trick이런 게 아니다. 그냥 내 걸 그대로 보여주고, “저렇게 쓰니 멋있네하고. 그래서 아까 말했듯 광고 이전에 이미 끝난다는 거다. 광고는 그저 입증(prove)하면 되는 시대니까.

 

두 번째는통섭전략이다. 통섭은 비단 아이디어를 만들 때만 중요한 게 아니다. OTR이나 Productising 등 모든 게 사실 다 통섭이다. 그동안 ‘functional’한 것들, 내 분야, 내 것만 하자, 이랬던 것을 허물어버리는 시대가 온 거다. 모든 게 정교해졌다가 셔플링 되고 또 정교해지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선의자본주의기반 전략을 써야 한다. 리먼브러더스 사건 이후로 탐욕에 대한 질타, 이런 것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사실 자본들이 선의자본주의 쪽으로 이동하는 이유는 결국 그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얼굴을 써야 돈이 된다는 걸 안 거다. 삼성도 백혈병환자들과 결국 화해했는데 이제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본다. TOMS 등등 사례를 봐도 공정무역과 같은 움직임이 점점 많아진다. 광고전략도 바로 이런 토대 위에서 다시 짜야 할 것이다.

 

앞으로 또 세상은 어떻게 얼마나 더 변해갈까.

여전히 화두는디지털이다. 디지털이 어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상황인데 지금까지는 디지털이 주도권을 쥐고 세상을 변화시켜왔다. 앞으로는 양상이 좀 달라질 거다. 세상은 결국 작용과 반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이라는 큰 흐름이 있으면, 그에 대한 반작용인 안티테크놀로지가 등장하게 되며, 현재 이게 굉장히 중요한 가치가 돼가고 있다. 옛날에아바타영화가 나와서 놀라운 3D, 4D 경험을 제공할 때,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도 해외에서 굉장히 인기를 끌었다. 수도사들이 피정을 가서 2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안 하는 그런 내용의 영화다. 그걸 10만 명 이상이 봤다. 개인적으로 그 현상을 상당히 놀랍게 봤다. 아바타와 아이폰이 판을 치는 세상에 10만 명 이상이 그 영화를 본다는 건 결국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기술을 숭배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두려움이라든지, 정신적 공허함이 있다는 거다. 이게 또 힐링마케팅으로 이어지는 거다. TV프로그램에서도힐링캠프’ ‘아빠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삼시세끼’ 등 허한 감정을 감싸 안으려는 흐름이 나오는 거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영화아바타도 굉장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용 자체가 ‘anti technology’ 아닌가. 엄청난 첨단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낸 영화인데 그 내용은반기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진정성으로 표현되는 것들은본질주의라는 개념으로 더 깊게 들어갈 것으로 본다. 본질주의적인 입장의 문화현상들이 디지털 첨단기술과 굉장히 큰 쌍벽을 이루면서 가고 있다는 얘기다. 광고 쪽에서도 본질주의적인 입장을 따르는 것들이 또 하나의 큰 흐름으로 갈 거다.

 

이런 시대 변화 속에서 미래의 주축이 될,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만지고 자라난 그 집단. 사실 광고인 입장에서 그동안 가장 고민이 많았던 지점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내 아이들도 나하고 비슷한 TV프로그램을 본다. 웃는 지점이나 우는 지점도 비슷하다. 그들이라고 특별히 다른 건 아니다. 오히려 앞서 말한본질주의가 그들을 푸는 열쇠가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모 프로그램에서 했던 ‘90년대 가수들특집도 굉장히 좋아했다. 기술이나 첨단 디지털 경제의 팍팍함에 시달리니까,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세상이 그랬으니까, 겪어보진 않았지만 뭔가 본질적이고 사람다운 무엇에 대한 갈증이 있다. 추억을 공유하진 못하지만 ‘retro’ 문화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연결감이나 끈끈함을 더 좋아한다는 뜻이다. 어쨌든,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너무 얄팍하거나 경쟁 지향적이면 싫어한다. 이들을 완전히 다르게 segment하는 게 마케팅의 오류일 수 있다. 내가 볼 때는 똑같다. 너무 고민할 것 없다.

 

좀 지났지만 이 사례를 하나 들어주면 이해가 쉬울 거 같다. 옛날에 LG CYON어머나 폰이 있었다. 스피커가 좋고 음악이 잘나오는 그런 콘셉트의뮤직폰이었는데, 그 광고를 모델도 안 나오고 그냥 음에 맞춰서오실로스코프가 움직이는 것만 써서 진행했다. 근데 만약 광고주의 segment로 하면 젊은층들은 힙합, 트렌디한 노래를 좋아할 것 같지 않나. 이게 편견이었다. 광고 중에 장윤정의어머나를 끼워넣었는데 힙합이 아니라어머나가 히트했다. 그래서어머나 폰이 돼 버렸다. 당시 아이들도 트로트를 더 좋아했다는 것이 참 재밌지 않나. 이론에 의하면 힙합을 좋아해야 한다. 너무 교과서적인 사고에 의해서 사람의 본질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소비자한테 광고하는 게 아니라 사람한테 광고하는 것이니까.

 

 

 

 

마케터와 광고인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돼야 할까?

좋은 마케터는 creative에 대해서도 상당한 식견과 취향을 갖고 있어야 하고, 좋은 creator는 마케팅에 대해서도 좋은 식견과 취향을 가져야 한다. 그런 둘이 만나면 기가 막힌 작품이 나온다. 마케팅은 사실확률을 높이는 작업이고 때로는 광고주를 설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케터가 구상한 대로, 어떤 공식이나 모델대로 움직이진 않는다. 당연한 얘기다. 사실 광고는 이상하게 터진다. 사람들이 이상한 지점을 좋아하기도 한다.

 

마케터와 광고인은성동격서전략 내에서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로 봐야 한다. 성동격서라는 게 서쪽 문을 열기 위해 동쪽 문에 가서 난동을 부리는 건데, 아직 많은 마케터들은 성동을 잘 이해를 못한다. ‘격서를 하려면 서쪽으로 가야하는데 왜 동쪽에 가서 난리야이러는 거다. 서쪽 문을 열기 위해서는 저 문을 따내야 할까, 더 큰 봉으로 밀어야 할까, 군사를 더 풀어야 할까 이렇게만 생각하는 거다. creative는 성동을 한다. 이런 게 광고인의 역할이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해야 된다. 마케터들은 서쪽의 문을 열심히 분석하는 것이 자기 일을 다 한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성동이 뭘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광고인들도 마찬가지로 동쪽에서 난동피우는 것이 서쪽 문을 부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될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게작전이라는 거다. 나는 개인적으로트로이 목마가 인류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creative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자,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들어내나?

정말 난감한 질문이다. 사실 책에 되게 많이 나와 있다. 다 맞는 말만 써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여러 가지 교집합을 찾아내서 저자들이 쓰신 거니까. 나도 보면서, 저렇구나하면서 오히려 내 방법이 정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주관적으로만 말씀드리자면 먼저 나는숙제를 풀기보다는문제를 푸는쪽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모범생들이 숙제를 잘한다. 근데 그러면 80점에서 100점은 나오는데 120, 150점은 안 나온다. 문제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 본질적인 문제는 과연 뭘까. 왜 저런 말을 썼을까. 왜 저런 단어를 썼을까. 행간을 읽으면서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근데 사실 아주 단순화시켜서 말하면물건을 많이 팔면되는 거다.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광고주가 주는 숙제도 중요하지만 진짜 본질적인 문제에 먼저 천착하는 게 낫다. 이렇게 접근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우선많이 모으는 게중요한 것 같다. 모으는 방법은 되게 많다.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대화. 내가 천재도 아니고, 계속 주워듣는 것이 필요하다. 광고주로부터도, 이 사람, 저 사람한테도. 얘기를 전부 주워들으면서 정보량이 많아져야 한다. 정보라는 건 말과 글이나 시각화된 자료부터 청각자료까지 엄청나게 많다. 직접적인 정보, 간접적인 정보도 있다. 그게 많아야 한다. 그걸 이렇게 엮고, 저렇게 엮고 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 엮어진다. 나는 꼭 ‘deadline’을 정해놓으라고 하는데, 많이 주워듣고 본질에 몰입하고 주워 모은 걸 갖고 엮기를 거듭하다 보면 deadline쯤에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사람은 다 그렇게 돼 있다. 회의를 할 때도 deadline 정해놓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냥열심히 해라하는 게 아니라내일 우리 8시에 회의해서 결론내자하면 답이 나온다.

 

모아놨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계속 읽고 있었고 몰입이 돼 있었으니까. 실제 그런 몰입이론도 있다. 아르키메데스가유레카!” 했던 것도 그동안 모은 게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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