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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욱 행복나눔 125운동본부 회장

“‘내가 말하면 그렇게 될 것’이란 리더의 착각, 혁신 실패의 첫 걸음”

정지영 | 169호 (2015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혁신

국내에서 기술경영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손욱 전 농심 회장이다. 농심으로 오기 전 이건희 회장 수행팀장, 삼성SDI 사장, 삼성종합기술원장, 삼성인력개발원장 등을 지내면서 다양한 혁신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손 전 회장은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혁신의 가치를 깨닫는 것, 혁신의 진정성을 직원과 공유하는 것, 핵심 인재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스시그마 전도사’ ‘최고의 테크노 CEO’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을 모두 보좌하며 삼성의 기술 혁신을 주도했다. 삼성전기와 삼성전자, 삼성SDI의 프로세스 혁신과 전사적 정보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삼성SDI에 식스시그마를 최초로 도입했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삼성 신경영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수행팀장으로 이 회장을 보필했다. 2003년 서울대와 한국공학한림원이 공동으로 발표한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에 선정됐고, 2006년 현직 CEO로는 최초로 서울대 공과대학 최고산업전략과정 주임교수로 임용됐다.

 

손욱 회장의 화려한 이력이다. 2008년 농심 회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1975년부터 30년 이상 삼성에서 근무했다. 삼성SDI 사장을 비롯해 삼성종합기술원과 삼성인력개발원의 초대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삼성에서 잇달아 혁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한국에서 기술경영(Management of Technology)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현재는 1주일에 한 번 선행을 하고, 1개월에 책을 두 권 읽으며, 하루 다섯 번 감사하자는 취지의 운동인 행복나눔125운동본부 회장으로 사회에 감사와 긍정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일을 주도하고 있다. 손 전 회장을 만나 혁신에 대한 그의 경험과 통찰을 들었다.

 

혁신이란 무엇인가.

혁신은 전 세계에서 앞서가는 방법들을 찾아내거나 스스로 개발해 자사의 현실에 맞춰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고객의 가치를 창조하고 경쟁사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선진기업과 일류기업, 후진기업과 보통기업의 차이도혁신에서 나온다. 현실에 안주하고 새로운 혁신을 두려워하는 기업은 진정한 일류기업이 될 수 없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적극적으로 선진국의 혁신방법을 도입하고 발전시킨 기업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성도 처음부터 이렇게 큰 기업이었을 리가 없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혁신을 받아들이고 시도하고 도전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이 됐다. 꾸준히 체질을 튼튼하게 바꿔가려는 노력이 있었다. 삼성 신경영이 혁신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바꿔 말하면 현재 일류기업이 그러했듯 중소기업도 혁신에 성공하면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혁신을 하려면 바닥에서 기본적인 것부터 쌓아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둑을 둘 때 정석은 공부하지 않고 일류 기사의 기보만 외워 대국을 하려고 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인 것처럼 혁신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외국 기업의 혁신 방법을 따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회사가 가진 문제점과 현실을 파악하고 이를 계승 발전시켜 적용해야만 한다.

 

 

성공적인 혁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혁신을 얘기하면서 삼성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병철 회장은 늘선진기업보다 더 좋은 기업을 만들자고 강조했다. “이왕에 하려면 세계 최고의 기술, 최고의 설비, 최고의 원료를 가지고 하자” “선진기업의 노하우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말고 우리만의 플러스 알파를 더하자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삼성이 설립될 당시만 하더라도 힘든 시절이어서 한국 기업 가운데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은 전혀 없었다. 이병철 회장은 아무도 한국 기업에 관심을 갖지 않고, 그저 생존 자체가 목표였던 때부터 세계 일류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혁신의 시작점에는일류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혁신을 실행할인재. 삼성은 초기부터 제일주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제일주의의 기본은 인재라고 봤다. 인재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데려왔다. 회사 복지에도 신경을 써서 젊은 인재들이 다른 회사로 가는 대신 삼성에 올 수 있도록 했다. 최고의 인재를 뽑을 뿐만 아니라 입사한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데에도 늘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삼성처럼 직원 교육에 투자하는 기업은 세계에서도 흔하지 않다. 지역전문가 제도라는 것은 삼성이 세계 최초로 시행한 직원 교육 제도다.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1990년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주로 대리, 과장급에서 뽑힌 사원들이 외국의 한 지역을 정해 가족 없이 홀로 1년간 지내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현업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체류비용뿐 아니라 급여도 받는 파격적인 제도다. 삼성은 늘 최고의 인재를 데려왔고, 또 그들의 능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운 일을 할 때 처음부터 모든 조직구성원이 100% 만족하고 그 일에 달려드는 경우는 없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전부 다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우선 혁신에 공감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직원들, 즉 불씨를 몇 명이라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핵심 인재를 기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GE에서는 우수 인력 20%를 따로 뽑아서 교육시키고 보상을 준다. 그런데 20%를 교육시켜도 이 안에서의 핵심인력은 4%에 불과하다. 20%를 뽑아서 교육시키면 그중 4%가 핵심인재로 작동한다고 보면 된다. 보통 이 4%가 불씨가 된다. 100 가운데 4. 만약 인사관리에 자신이 없는 조직이라면 애초에 교육 집단을 늘려 전체 직원의 30%를 교육시키는 게 좋다. 최고의 조직에는 늘 A급 인재, 핵심인재가 있다. 전체 교육 외에 이처럼 조직 내 핵심인력으로 키울 인재들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

 

혁신은 커다란 조직 내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리더십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삼성의 혁신에서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예견력과 추진력이 없었다면 삼성의 모습은 오늘날과 달랐을 수도 있다. 역사를 통해 보면 리더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체계적인 리더 육성에 힘써 온 기업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리더라면 시대적 변화를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비전과 목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또 남다른 방법으로 조직원들을 무장시킬 줄도 알아야 한다.

 

오랫동안 조직생활을 하면서 어떤 혁신을 경험했나.

오랜 회사 생활을 돌이켜보면 혁신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나는 한국비료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공장 정비 파트에 들어갔다. 당시 세계적인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한국비료의 공장 정비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세계 최고의 정비 시스템과 품질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다. 좋은 설비를 갖고 있었지만 당시 한국비료에는 데이터베이스(DB) 관리란 개념이 희박했다. 이 때문에 공장 정비와 관련해 궁금증이 생기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도 당장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회사가 갖고 있어야 할 자료를 선배들이 필요할 때 가져가고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은 까닭에 생긴 일이었다,

 

그때 나는 신입사원이었지만 회사 측에 먼저 제안했다. 회사에서도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했다. 선배들에게 집으로 가져간 회사 자료를 가져오면 복사해서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선배들에게 십시일반 받은 자료들을 다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따분하고 귀찮았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회사는 유용한 시스템을 구축했고, 개인적으로는 공장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처음으로 조직생활에서 혁신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한 순간이다. 앎에 대한 욕구, 불편한 것을 개선하려는 의식, 최고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이 있었다. 육체적으로는 정말 힘들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이때 혁신의 첫 단추가 끼워졌던 것 같다. 나중에 삼성으로 회사를 옮기고 나서 전사적 품질관리 프로젝트, 생산성 관리기법 프로젝트, 원가혁신 프로젝트 등의 혁신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혁신 관련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맡기 시작했다.

 

1996년 삼성SDI 사장으로 발령받았을 때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는 삼성SDI 주력 제품이던 브라운관 값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회사가 매우 어려웠다. 부임하자마자 삼성SDI 역사상 최초로 적자를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간접 부문의 비용을 줄이는 일이 급선무였다. 미국이나 유럽의 앞서가는 회사들은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간접 부문의 비용을 크게 줄였지만 국내 기업에서는 여전히 그 비용이 높았다. 선진국에서는 시스템으로 처리되는 간단한 서류작업들이 삼성SDI에서는 사람 손을 빌려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선진 기업과 삼성SDI의 생산성 차이가 300%나 됐다. 이를 줄이기 위해 세계적인 혁신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두 번째는 식스시그마였다. 식스시그마는 100만 개 중 평균 3.4개 정도의 불량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품질 분야의 대혁신 시스템을 일컫는 말이다. 삼성전자에서는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도입에만 6년 정도를 예상했지만 삼성SDI에는 그만한 여유가 없었다. 당장 회사를 살리지 않으면 존립이 위태롭다고 생각해 1년 만에 두 가지 프로젝트를 끝내자고 제안했다.

 

두 가지 혁신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간접비용을 줄여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철저한 제품관리로 품질 경쟁력을 올릴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 대만과 기술 경쟁력을 갖춘 일본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처음에 내부 직원들은 물론 컨설턴트들도뭐 이런 회사가 다 있지” “불가능하다라며 두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직원들을 일일이 설득하고 동기부여하면서 결국에는 변화 관리를 이끌어냈다. 1996 3000억 원의 적자를 냈던 삼성SDI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이 기간 동안 이뤄낸 원가절감액만 11000억 원이었다.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을 해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직원들에게 혁신의 성공에 대한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나는 삼성SDI 직원들을 설득하면서 삼성전자에서 이미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도입에 참여했던 경험을 적극 활용했다. 회사 임원과 간부들이이건 이래서 어렵다고 할 때마다이건 이렇게 할 수 있다라고 답을 줬다. 답을 주기 위해 직원들보다 수백 배는 더 많아 알고 있어야 했다. 리더가 돼서위기다’ ‘힘들다라고만 하면 안 된다. 혁신을 억지로 하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일이 끝나면 쉬지 않고 혁신 사례를 찾고 관련 책을 틈틈이 읽었다. 또 혁신을 하자고 직원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자료를 만들었고, 직접 발표도 했다. 아무리 고위직이라도 진정 혁신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면 리더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를 시켜서 하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이 많을 때는 거의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다. 삼성에서 타워팰리스를 분양할 때 계열사 사장단 및 고위 임원들에게 신청을 받았다. 그때 거의 대부분이 타워팰리스 분양을 신청했는데 나는 너무 바빠 이 문제에 관심을 둘 수 없었다. 어느 날 보니까 분양이 끝나 있었고 결국 타워팰리스에 못 들어갔다. 하나에 빠지면 다른 게 눈에 안 들어오는 성격이라 바쁠 때는 일에만 몰두했던 것 같다.

 

직원들을 설득할 때는 술도 엄청 마셨다. 경영회의를 하고 밤에 직원들과 술을 먹는데 혼자 위스키 10병을 마신 것 같다. 임원과 간부 등 100명에게 한 잔씩 돌리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엄청 많이 마신 거다. 이처럼 직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했다. 일년 내내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직원을 다독이고 격려했다.

 

이순신 장군은 참여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명장이다. 그는 전쟁에 나서기 전에 늘 장수들을 모아놓고 토론을 했다. 어떻게 해야 일본군을 무찌를 수 있지? 더 좋은 전략은 뭐지? 이런 식으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책을 세우고 공감대를 형성했다. 말이 통하고,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할 때까지 이런 과정을 반복했다. 이런 것들이 자리를 잡으니까 전쟁에서 이순신 장군의 진정한 리더십이 나왔다. 진정한 리더십의 상징인 이순신 장군이 위기에 처하니까 어부와 마을 주민들까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나.

 

결국 중요한 것은 리더와 직원들의 마음가짐이다.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리더만 잘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리더는 직원들의 꿈을 이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면 직원들은리더는 우리가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 리더가 스스로의 성공과 안위를 위해서 일해서는 안 된다. 조직원들이 스스로가 우리 팀이, 혹은 우리 프로젝트가 성공해야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 내부 직원들은 물론 컨설턴트들도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지” “불가능하다라며

두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직원들을 일일이 설득하고

동기부여하면서 결국에는 변화 관리를 이끌어냈다.

 

혁신을 시도한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혁신은 새로운 것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늘 반발과 경계가 있기 마련이다. 추가적인 비용에 대한 걱정과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 성공에 대한 회의도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처음 삼성SDI 사장으로 가서 당시 조건을 토대로 경영계획을 짜보니까 상황이 안 좋았다.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적자를 볼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때 임원과 간부들을 소집해 부산에서 경영회의를 했다. 내가적자 3000억 원을 흑자 3000억 원으로 바꾼다”라고 하니까 다들말도 안 된다면서 우는 소리를 했다. 아무리 해도 1년 만에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리더라면 자신의 강한 신념을 전 조직원과 함께해야 한다. 변화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일부 리더들은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게 옳은 일이니까 직원들도 당연히 여기에 동조하겠지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매우 안일한 태도다. 왜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 일을 하면 무엇이 개선되는지, 이 일을 하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는 설득이 꼭 필요하다. 이 과정은 아주 어렵지만 직원들과 마음이 통하면 시너지 효과는 엄청나다. 리더가내가 말하면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착각을 가지는 것이 혁신 실패의 첫걸음이다.

 

진정성을 갖고 끊임없이 직원을 다독여야 한다. 삼성SDI 직원이 몇 달 동안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일만 하니까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됐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당신 눈이 왜 이렇게 됐나. 계속 무리하면 실명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진단서 써 줄 테니까 꼼짝하지 말고 당분간 여기서 쉬도록 해라고 했다. 그런데 의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환자가 사라졌다. 일을 하기 위해서 다시 공장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의사가 공장장에게 전화해서도대체 무슨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까. 자기 눈이 실명한다는데도 다시 회사로 도망을 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라고 따진 적이 있었다.

 

이게 바로 몰입이다. 그 직원은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사가 쉬라는 권고도 물리치고 직장으로 돌아갔다. 본인이 프로젝트를 성공하면 간접 부문의 생산성을 300% 높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 회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화 관리는 모든 조직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다. 유명 컨설턴트 상담 비용이 만만치 않다. 삼성SDI에서 KPMG의 변화관리 컨설턴트를 초청할 때 비용을 보니까 전체 프로젝트 추진 비용보다도 초청 비용이 더 비쌌다. 그런데도 불렀다. 컨설턴트를 초청하는 게 어렵고 까다로운데다 비용 부담도 컸지만 그만큼 변화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혁신에 대한 가치를 믿고 몰입하도록 해야 한다.

 

 

혁신을 시도했다 실패한 적은 없나.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실패에 대한 정의다. 어떤 일을 당장에 못 이뤘다고 해서 그걸 실패로 규정할 순 없다. 당장에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에디슨이 얘기한 것처럼실패가 아니고 잘 안 돼간다는 것을 확인한 성공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시킬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단기적인 프로젝트의 결과만 두고 실패냐 성공이냐 단정하는 사람들은 과정관리를 안 하는 사람이다. 하나의 시도를 계속해서 수정하고, 발전시켜 결국 성공하도록 이끄는 게 리더의 일이다. 올바른 방향을 설정했고 원하는 바를 목전에 뒀지만 끝까지 가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포기했다면 그건 실패다. 하지만 성공하기 위한 과정에서 겪는 사소한 어려움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혁신하는 사람이라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끊임없이 변화과정을 검사해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그때마다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현장 경영이다. 리더나 간부들이 회의실에 앉아서 직원들에게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현장을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라면 현장 상황에 대해 그 어떤 말단 직원들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실패라는 것이 생기지 않는다.

 

나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일에서 완벽하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1982년 삼성전기에 갈 때 이병철 회장이 “5년 동안 회사를 10배 이상 성장시킬 것을 주문했다. 이 주문을 맞추려면 매년 67% 성장해야만 가능했다. 이를 위해 회사에서는 신규 사업 25개를 시작했다. 25개 사업을 모두 성공시켜야만 했다. 사업을 25개나 새로 해야 하는데 경영책임자들도 제대로 육성돼 있지 않았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대리나 과장도 프로젝트를 하나씩 전담해야 했는데 이러다 보니 사장이나 고위 임원 몇 명이 여러 가지 이슈에 다 훈수를 둬야 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그때는 진짜 두더지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오락실에 있는 두더지 게임기에서 9마리 두더지들이 수시로 올라오는 것처럼 언제 예상치 못한 이슈나 문제가 터져나올지 몰랐다. 책임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부터는 늘이 프로젝트에서는 이게 문제인데’ ‘개선책을 마련해줘야 하는데라는 고민을 안고 살았다.

 

마침 그때 회사 옆에 밤늦게까지 하는 해물탕 집이 있었다. 10시든, 11시든 문제만 생기면 그집에 가서 직원들과 이슈에 대해 토론했다. 계속 밤 늦게 가니까 우리 팀 때문에 마감 시간을 늦출 정도였다. 25개 프로젝트를 하니까 사실상 매일 문제가 생겼다. 이런 시간을 거치면서 아무리 힘들더라도 토론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체질을 갖게 됐다. 25개가 다 성공하지는 못했다. 3∼4개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기는 매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이때 잘 안 됐던 게 프린터 사업과 인쇄회로기판(PCB) 사업이었다. 둘 다 계속 사업을 하면서 문제점을 개선해갔고 나중에는 두 사업부 모두 의미 있는 실적을 내기도 했다.

 

어떤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처음부터 사업 아이템이 안 맞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인 것 같다. 훌륭한 인재가 있으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 이게 성공의 비결이다. 직원들이 스스로 성공하는 방법을 깨닫도록 해줘야 한다. 옛날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물처럼 직원들이 혁신에 대해 깨우침을 얻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혁신에 실패하는 다른 기업들은 왜 그런건가.

혁신피로증이라는 말은 실패에서 나왔다. 혁신의 효과가 안 생기면 여기에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혁신 실패의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 리더나 의사결정권자에게서 발견된다.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선두에 서서 몰입해야 한다. 리더라도 부하 직원에게 시키기만 해서는 안 된다. 지시만 내려놓고 본인은할 일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전남 장성군의 혁신 성공 사례가 있다. 1995년 장성군이 만든장성아카데미는 지역혁신 성공사례의 대표적인 모델로 여러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장성아카데미는 매주 국내 최고 인사를 초청해 군 공무원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강연을 펼치는 것.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든 교육비만 10억 원이 훨씬 넘는다. 그런데 효과는 더 크다. 공무원들이 정부에 아이디어나 프로젝트를 제안해 상을 많이 받았다. 프로젝트로 따낸 금액만 100억 원이 넘는다. 투자 대비 10배 이상 효과를 거둔 것이다. 이 사례를 보고 다른 곳에서 너도나도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그런데 다 안 됐다. 왜냐고?

 

직접 강연을 가보니까 성공한 장성아카데미와 실패한 다른 지역 자치단체 아카데미의 차이점이 보였다. 장성아카데미 교육에 가면 늘 맨 앞자리에 군수가 앉아 있다. 그런데 다른 곳에 강연하러 가보면 안 그렇다. 처음에는 시장이나 군수가 와서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그래 놓고 강연이 시작하면 바쁘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작 강연을 들어야 할 지역자체단체 의사결정권자들이나 고위 공무원들도 따라서 자리를 비운다. 반면 장성군수는 첫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아카데미에 참석했다. 장성군수는 아카데미 초반에 직원들이 강연을 잘 듣는지 보기 위해 아예 청중석을 향해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훈련이 안 돼 있어서 교육의 가치를 잘 모르고 도망가니까 급기야 자리의 방향까지 바꿔 앉은 것이다. 군수가 이렇게 교육을 강조하고 아카데미에 열정적이다 보니 지역 내 의사결정권자들이 강연을 빼먹을 수 없는 일. 교육생들은 강연 시작 5분 전에 자리에 앉아 메모할 준비를 했다. 이처럼 배움과 혁신에 대한 가치를 느끼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다. 혁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방향을 잘 잡은 사람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데,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이 실패했다고 하는 것이다.

 

또 실패하거나 성과를 못 내는 조직에서는 인재의 가치를 모른다. 혁신적인 사람들이나 전문가, 선생님들은 많다.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콧대가 높고 자존심이 세서 요구사항이 많거나 까다롭다. 그럴 때 보통은저 사람 아니어도 잘할 수 있는데 되게 까다롭게 구네라며 외면해버린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삼고초려 하면서 같이 혁신하자고 설득해보라. 유능한 리더와 인재를 데려오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패하는 또 다른 원인은 혁신 방법론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변화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그런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혁신에 몰입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리더가 이것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성공의 요체는 태도다. 이 태도를 결정하는 99%는 생각, 즉 사고방식이다. 결국 사고방식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려면 리더의 생각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 혁신을 끊임없이 얘기하고, 직원을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혁신 실패의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 리더나 의사결정권자에게서 발견된다.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을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직원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혁신에 대한 가치를 설명하고 혁신 성공에 대한 확신을 공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리더는 책을 많이 읽고 혁신 전문가들을 자주 찾아가야 한다. 책을 보면 선생님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혁신을 할 때 기업이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업에 투자하면 5∼10%의 이익이 생기지만 혁신에 투자하면 투자금의 3∼4배씩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 혁신의 가치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원가 절감, 품질 혁신 등의 혁신을 하면 단순 투자보다 훨씬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혁신의 기본은 사람인데 사람한테 투자하면 그 효과는 특히 크다. 1억 원을 들여서 교육시키면 그 직원은 교육비의 10배 이상을 벌어온다. 삼성이 제일 잘하는 것 중의 하나도 인재 교육이다. 전국에 잘 지어놓은 삼성연수원만 하더라도 여러 곳이며, 그중에는 한 장소에 5000∼6000명을 모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곳도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혁신의 가치와 효과를 모르기 때문에 투자하기를 머뭇거리는 거다. 혁신을 하자고 하면 대부분요새 바빠서’ ‘돈이 없어서라고들 많이 하는데 그럴 때일수록 혁신을 해야 한다.

 

1980년대 초반 전체적으로 가전사업이 어려웠다. 그때 2차 오일쇼크가 생기고 난 후라 경기가 안 좋았다. 창고에는 재고가 넘쳤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적자였다. 기획실에 있던 나도 트럭에 제품을 싣고 나가서 팔 정도였다. 그때 일본의 컨설팅회사에서 삼성전자를 찾아와 원가절감을 할 수 있다며 가치 혁신(VE·Value Engineering)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쪽에서 제안한 컨설팅 비용이 한 건당 1500만 원이었다. 사업부장 회의에 가서 회사 간부들에게 VE에 대해서 소개했다. “일본에서 VE라는 새로운 기법을 갖고 왔는데 이것을 도입하면 1년에 2∼3억 원씩 개선된다고 하니 해봅시다라고 제안했다. 근데 반응이 별로였다. “믿을 수 있냐” “장사꾼 얘기에 불과하다” “또 돈을 더 내란 말이냐라는 말들이 나왔다. 이 프로그램이 좋다고 생각해서 기획실에서 전사비용으로 지원하겠다고 해도 부장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때 냉장고사업부에 적자가 심했다. 냉장고사업부장을 설득했다.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할 테니 사업부 비용은 없다. 대신 매월 손익 분석 보고서를 쓸 때 VE 효과로 발생한 이익을 계산해 그 부분을 따로 표시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처음 VE기법을 도입했는데 두 달 지나니까 서서히 효과가 나기 시작했다. 이익이 처음에는 1000만 원이던 것이 다음달에는 5000만 원이 됐다. 6개월 지나니까 냉장고사업부장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랬더니 다른 사업부에서도 다들 VE 기법을 지원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말하고 싶은 것은 경영자들이혁신을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혁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리더가 변해야 직원이 변하고, 그래야 조직도 변한다. 리더가 스스로 혁신에 대해 공부하고 직접 나서서 직원들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혁신 전문가를 찾아가 조언을 얻고 늘 새로운 것에 대해 공부하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게 혁신의 첫걸음이다. 일부 경영진은바쁜데 혁신은 무슨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로 답답하다. 이런 태도로는 절대 혁신할 수 없고 직원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방향성을 갖고 혁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 무조건 밤새워서 책상 위에서 씨름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다. 혁신의 등불을 따라가야 한다. 그러면 개선이 일어난다. 혁신에 대해 늘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라. 커다란 가치가 있는 일은 결코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할 수 없다. 리더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혁신을 시도하고, 또 이 과정에서 직원들을 변화시켜야만 한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손욱 행복나눔125운동본부 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한국비료공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손 회장은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 회장비서실, 삼성SDI,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인력개발원 등 삼성의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다. 손 회장은혁신의 가치를 직원과 공유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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