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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ODM기업 코스맥스

고객사 고통 나누고, 시장 파이 함께 키우고.. 로레알 넘어 중국 女心까지 사로잡다

이방실 | 166호 (2014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전략, 운영관리 

 

 

화장품 ODM 업체 코스맥스의 성공 요인

1) 활용(Exploitation)과 탐색(Exploration) 전략 동시 추구

R&D 역량을 끊임없이 확충하고 품질 경영에 매진. 국내 유통 채널 변화 시점에 저가 브랜드숍 시장으로 발 빠르게 진출(활용 전략). 사업 초창기부터 해외 박람회에 적극 참가해 아시아 ODM 업계 중 최초로 로레알과 공급 계약 체결. 중국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일찌감치 간파해 해외 생산기지 구축하며 국제화 추진(탐색 전략).

2) 기술 역량 확보 및 혁신 경영

사업 초기 다양한 기업과의 기술제휴를 추진, 부족한 역량 확충. 2000년대 후반 이후 R&D 인력 강화 등 독자적인 기술역량 확보 위해 노력. 2008년 출시 이후 전 세계적으로 4000만 개가 팔린 젤 타입 아이라이너 등 혁신적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인정받음.

3) 고객사와의 상생 추구

외환위기 당시공급 가격 동결최소 물량 제한 폐지적기 공급 원칙 등 고객사와 고통을 분담하는 정책을 통해 위기 극복, 절대 매출액은 줄었지만 시장점유율은 상승. 중국 시장 진출 시 중국을저임금 생산기지가 아니라잠재력 있는 시장으로 간주, 중국 현지 화장품 업체들을 집중 공략함으로써 현지 화장품 시장의 파이를 키움.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정권(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코스맥스는 화장품 ODM(Original Development & Design Manufacturing, 제조자 개발생산) 전문기업이다. 자체 브랜드가 없어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화장품 구매 시 용기나 포장재 뒷면에 적혀 있는 제조업체 정보를 살펴보면 코스맥스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같은 국내 선도 화장품 기업은 물론 에이블씨앤씨, 네이처리퍼블릭 등 중저가 브랜드숍 업체에 이르기까지 무려 150여 개 업체(200여 개 브랜드)의 화장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국내 업체뿐 아니다. 코스맥스는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으로 꼽히는 로레알을 포함해 메리케이, 존슨앤존슨 등 유수의 글로벌 화장품 업체들에도 자체 연구개발해 생산한 제품을 공급한다. ‘메이블린’ ‘로레알파리같은 대중적 브랜드부터슈에무라’ ‘입생로랑’ ‘랑콤’ ‘헬레나 루빈스타인등 고급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무려 30여 개의 해외 브랜드가 모두 코스맥스의 거래처다.

 

현재 코스맥스가 만든 제품은 일본,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지역은 물론 호주,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230여 개 브랜드를 달고 팔리고 있다. 특히 이 회사가 2008년 개발해 로레알에 공급한 젤 타입 아이라이너는 출시 이후 지금까지메이블린’ ‘로레알파리’ ‘슈에무라등의 브랜드를 달고 전 세계적으로 4000만 개 이상 판매된 글로벌 히트 제품이다.

 

20년 전 경기도 화성의 한 제약공단 공장을 빌려 제품을 생산했던 코스맥스는 현재 중국 상하이와 광저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물론 미국 오하이오에 이르기까지 총 4곳에 해외 생산 기지를 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3년 기준 매출액 2607억 원, 영업이익 180억 원(개별재무제표)을 올린, 국내 화장품 업계의히든 챔피언이다. 코스맥스의 성공 요인에 대해 DBR이 집중 분석했다.1

 

 

화장품 회사, 제약공단에 둥지를 틀다

코스맥스 창업자인 이경수 회장은 동아제약, 오리콤, 대웅제약 등 제약업체와 광고대행사에서 20여 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1992년 창업에 나섰다. 제약회사를 새로 차리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 필요하고 기술 장벽도 높아 대안으로 화장품 OEM(주문자 상표부착 생산)/ODM 사업에 눈을 돌렸다. 서울대 약대를 나와 20여 년간 관련 업계에서 쌓아 온 전문성을 살릴 수 있고 한국에선 ODM 시장이 초창기라서 향후 성장 가능성도 크다고 봤다. 이에 따라레브론등 유명 브랜드에 ODM 방식으로 화장품을 공급하던 일본 미로토와 기술제휴 계약을 맺고 한국미로토(코스맥스 전신)를 세웠다.

 

나이 마흔여섯에 시작한 창업은 녹록지 않았다. 충남 예산에 공장 부지를 확보했는데 정작 공장 허가가 계속 지연됐다. 마냥 기다리다가는 자칫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초기 투자금이 바닥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대웅제약 입사 선배이기도 한 윤동한 현 한국콜마 회장이 이경수 회장보다 2년 앞선 1990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한국콜마를 창업하고 이미 화장품 OEM/ODM 사업을 개척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공장 가동 시기가 늦어지는 만큼 선발 업체인 한국콜마와의 격차 또한 커질 게 뻔했다.

 

이경수 회장은 결단을 내렸다. 반드시 자가 공장을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공장을 임차하기로 생각을 바꾸고 경기도 화성에 있는 향남제약공단에 입주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것도 쉽지는 않았다. 임대 공장을 구해 임대 계약을 맺기 직전 사업 허가를 받으려고 면사무소를 찾아갔는데 담당 공무원이 난색을 표했다. 향남제약공단은 제약특화단지라서 제약회사가 아닌 다른 업종의 기업을 입주시킬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경수 회장은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경기도청, 향남면사무소 등을 찾아 다니며 해결책을 찾았다. 그리고 당시 공단에 입주해 있는 제약업체들의 전원 동의를 받으면 입주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결국 이경수 회장은 30여 개 제약업체들을 3개월간 일일이 찾아 다니며 동의서를 받아냈고 그 결과 향남제약공단에 둥지를 틀었다.

 

1)코스맥스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지난 3월 투자사업 부문(코스맥스비티아이)과 화장품 ODM 사업 부문(코스맥스) 2개 회사로 인적 분할했다. 코스맥스비티아이(존속법인)가 지주회사 역할을 하며 분리된 신설법인 코스맥스를 산하의 사업 자회사로 두는 형태다.

 

 

첫 고객사인 나드리화장품과 트윈케이크 제품 공급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공장을 가동하려고 할 즈음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기술제휴사였던 일본 미로토가 이경수 회장이 자체 R&D 역량을 키우기 위해 외부에서 영입해 온 연구소장을 놓고연구소장을 자르지 않으면 기술제휴 관계를 끊어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이경수 회장은 그러나 단순 OEM 업체에 머무르지 않고 ODM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회사 설립 초기부터 자체 R&D 역량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미로토의 요구를 거부했다. 합작회사도 아닌데 연구소 하나 만드는 것까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기술 종속으로 인해 향후 독자적인 R&D 역량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1994년 두 회사의 기술제휴 계약은 깨졌다. 회사 이름도 한국미로토에서 코스맥스로 바꿨다. 신생 ODM 업체이자 업계 후발 주자로서 선발업체와의 기술 격차를 줄이려면 미로토와의 기술제휴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자칫 회사의 존폐를 가를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었지만 그의 결심은 단호했다.

 

공장 하나 임대하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했고 첫 제품 생산을 앞두고 기술제휴선과 결별해야 하는 등 코스맥스는 출발부터 위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이전화위복이 됐다. 우선 예산에 자가 공장을 짓지 않고 화성에 공장을 임대한 덕택에 초기 투자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건 수도권이라는 고유의 입지적 특성이 안겨주는 이점이었다. 고객사인 화장품 업체 대부분이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불과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코스맥스 공장과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 신제품 개발 등을 위해 고객사와 미팅을 한번 한다고 해도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이경수 회장은만약 원래대로 예산에 공장을 설립했더라면 왕복으로 최소한 반나절을 길바닥에서 버려야 하는 거리라서 고객사와 지금처럼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협력사들이 부천, 인천, 부평 등에 밀집해 있다는 것도 코스맥스에겐 천운이었다. 화장품 산업은 업종 특성상 다양한 원료를 많이 다뤄야 하고 용기, 포장재 등 부자재도 복잡하기 때문에 협력사와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적이다. 위치적으로 같은 수도권 지역에 있다 보니 물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고, 무엇보다 고객의 다양한 주문 요구에도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경수 회장은솔직히 향남제약공단에 입주할 때만 해도 이런 이점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공장 입지를 정할 때에는 초기 투자 비용만 생각할 게 아니라 향후 사업을 지속하면서 얻게 될 유·무형의 생산 편리성을 다각도로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미로토와의 결별도 장기적으로는 코스맥스에 득으로 작용했다. 결별 당시엔 어려움을 겪었지만 코스맥스는 이후 △1996년 일본 헤어케어 제품 생산 업체 ITC △1999년 미국 기능성 화장품 전문기업 나테라 △2002년 이탈리아 화장품 ODM 기업 인터코스 등 주요한 시기마다 적절한 기술제휴 파트너를 찾아 부족한 역량 확충에 나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코스맥스는 2002년 인터코스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색조화장품과 관련한 기반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메이크업 제품의 사용감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현재 ODM 업계에선한국콜마가 기초화장품에 강하다면 코스맥스는 색조화장품에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코스맥스가 이런 평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적절한 시기에 최적의 기술 파트너를 만나 부족한 역량을 확충한 덕택이다. 만약 코스맥스가 일본 미로토와 종속적인 기술제휴 관계를 계속 이어갔다면 이처럼 다양한 기술력을 시의적절하게 확보해 나가면서 역량을 확충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코스맥스 기술연구원(Research & Innovation Center)

코스맥스는 창립 초기 자체 연구소 설립을 위해 일본 미로토와의 기술제휴를 과감하게 끊고 회사 이름까지 바꿨을 정도로 독자적인 R&D 역량 확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ITC, 나테라, 인터코스 등 해외 업체들과의 기술제휴를 적극 추진하면서 선진 기술 역량 흡수에 중점을 뒀다면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외부에서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자체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7년 국내 화장품 ODM 업계 최초로 한방화장품 연구소와 효능평가팀을 별도로 만든 것이나 2008년 이후 시세이도, 샤넬 등 글로벌 화장품 기업의 연구소 출신 인력들을 고문으로 초빙해 연구원들에 대한 교육을 맡긴 것이 대표적 예다.

 

 

코스맥스는 2011년 중앙연구소, 한방화장품 연구소 등 기존 R&D 조직을 화성에서 판교로 이전하면서 기술연구원(Research & Innovation Center)으로 확대 개편했다. 현재 코스맥스 R&I 센터는 1) 스킨케어 연구소(항노화, 미백 등 다양한 효능의 기초화장품 개발) 2) 메이크업 연구소(뷰티 트렌드 변화에 맞춰 혁신적인 메이크업 신원료 및 신제형 개발) 3) 한방화장품 연구소(나노·바이오 기술과 한방 소재를 접목한 기초화장품 개발) 4) 기반기술연구소(화장품 원료 효능 분석 및 안정성 평가, 법규·제도 연구 및 각종 인증 업무 담당)

5) 해외화장품 연구소(해외시장용 제품 연구) 6)향료 연구소(제품별 향료 개발) 6개 조직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분야별 전문화를 통해 시장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세분화된 R&D 활동을 통해 고객사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한 예로 파운데이션의 경우 국내용 화장품에 납품할 제품은 브랜드별 요청에 따라 2∼4개 색상을 기본 구성으로 구비해 두고 있지만 해외 고객사에 수출할 제품은 최소 5개에서 많게는 20개까지 컬러를 세분화해 놓고 있다. 흑인, 백인, 아시아계, 히스패닉 등 인종에 따라 피부색과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지역, 어떤 회사에서 요청이 오더라도 제품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놓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색조화장품 연구소와 해외화장품 연구소가 해당 지역 마케팅팀과 함께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신제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

 

2013년 기준 코스맥스 기술연구원에 근무하는 연구개발 인력은 총 150여 명으로 전체 직원의 약 30% 수준이다. 2014 5월 말 기준 코스맥스가 식약처로부터 기능성 화장품으로 승인받은 품목 건수는 총 1078건이며 화장품 관련 특허 출원 및 등록 건수는 88건에 달한다.

 

 

 

 

고객의 관점에 서서 위기를 극복하다

1994년 첫 제품을 내놓은 이후 코스맥스는 순조롭게 사업을 영위해 나갔다. 주문량은 해마다 늘어났고 1996년부터는 OEM보다 ODM 주문 물량이 더 많아졌을 정도로 사업도 안정 궤도에 올랐다. 1997년엔 공장을 임대해 제품을 생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향남제약공단에 자체 공장을 세워 가동할 정도로 규모도 제법 커졌다.

 

한창 성장세를 달리던 코스맥스에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외환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당시 코스맥스는빨간통 파우더로 유명한 도도화장품과섹시마일드브랜드로 유명했던 생활용품·화장품 업체인 동산씨앤지 두 회사에 납품하던 매출액이 코스맥스 전체 매출액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여파로 두 곳 모두 부도로 사업을 철수했다. 핵심 거래처 외에 중소 규모 거래처들 역시 대부분 매출액이 반토막 나는 상황이다 보니 코스맥스가 받는 타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경수 회장은 위기를 극복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고객사 중심에서 접근했다. 고객사인 화장품 기업들이 살아나지 않으면 코스맥스의 미래도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무엇보다 고통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환율로 원가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급 가격을 동결했고, 최소 주문 물량 제한을 폐지했으며, 적기 공급 등 새로운 원칙을 세웠다. 수입 원료의 가격이 크게 상승해 원칙대로라면 공급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예전과 동일한 가격을 유지했다. 과거엔 최소 3000개 정도는 주문을 내야 공장을 돌렸지만 1000개 미만의 주문도 받아줬다. 코스맥스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고객사의 재고 부담을 덜어주는 게 장기적으로는 서로에게윈윈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주 주중에 팔 물량이 없다며 월요일 아침까지 납품을 요구하는 고객사의 요구에도 흔쾌히 응했다. 주말에 공장 근로자에게 휴일 수당을 주면서까지 공장을 돌려 납기일을 지켰다. 이경수 회장은이런 노력 덕분에 코스맥스는 고객의 입장에서 일을 한다는 믿음을 고객사에 심어줄 수 있었고 그 결과 회사의 절대 매출액은 줄었지만 시장점유율은 크게 상승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코스맥스는 일찌감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부터 아시아 최대 화장품 박람회인 홍콩화장품박람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경수 회장은생산 전문 회사는 자체 브랜드가 없기 때문에 내수 시장에만 매달려서는 금세 성장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판단했다전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는 데 박람회만 한 것이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더욱이 외환위기를 겪으며 특정 고객사가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으면 위기 시 리스크가 증폭된다는 점도 뼈저리게 깨달은 후였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신규 고객을 발굴해 고객선을 다변화하는 건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처음엔 별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박람회에 꾸준히 참가하다 보니 차츰 코스맥스 부스로 외국 기업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 결과 2001년엔 영국 화장품 업체 더바디숍에 립글로스 제품을 시험 수출할 수 있었고, 2002년엔 유니레버 베트남 현지법인에서 판매할폰즈브랜드 제품에 대한 OEM 수출 주문도 따냈다. 품질과 기술을 중점으로 한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각종 인증 획득에도 힘썼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고객사를 확보하려면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생산 및 품질 관리 시스템을 보유하는 게 당연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지금까지 코스맥스는 △1998 CGMP 기준 획득을 시작으로 △2000 ISO 9001(품질경영) △2005 ISO 14001(환경경영) △2006년 호주 의약품관리국 GMP(우수 제조 기준) △2007 OHSAS 18001(안전보건경영) △2008 ECOCERT(유기농 생산물 국제감시단체) 유기농 인증 △2012 ISO 22716(국제우수화장품 제조 및 품질관리) 7개의 인증을 획득했다.

 

유통구조 패러다임 바꾼 브랜드숍과 함께 성장하다

2003년까지만 해도 200억 원대 매출액에 머물렀던 코스맥스는 2000년대 후반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 2009년엔 1000억 원대 매출액을 돌파했다. 이는 이경수 회장이 국내 화장품 유통구조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브랜드숍의 성장세를 일찌감치 간파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코스맥스는 전문점에서 브랜드숍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돼 가는 화장품 유통구조의 변화에 주목,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개당 몇 만 원대에 달하는 고가 브랜드 제품만 공급하던 전략에서 탈피해 개당 가격이 1만 원도 안 되는 저가 브랜드 제품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결단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브랜드숍 유통 초기였기 때문에 1만 원 이하 가격의 제품은 중소 ODM 기업이 하는 게 대부분이었고,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대형 ODM 기업은 이미지 하락을 우려해 저가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걸 꺼려했다.

 

이경수 회장의 결단은 적중했다. 브랜드숍 유통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기존 전문점 유통을 대체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브랜드숍의 성장과 함께 코스맥스의 매출액(개별재무제표 기준) △2004 385억 원 △2005 515억 원 △2006 534억 원 △2007 710억 원 △2008 930억 원 △2009 1276억 원 등 해마다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유통구조의 패러다임 변화를 발 빠르게 간파한 덕택에 저가 브랜드숍 업체들과 동반 성장하는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한편 코스맥스는 2004년 로레알그룹의메이블린브랜드에 아이섀도와 메이크업라이너 2개 품목을 ODM 방식으로 수출하는 계약을 맺으며 해외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는 로레알이 아시아 ODM 기업과는 최초로 체결한 계약이었다. 당시 중국 쑤저우 공장에서 아이섀도와 메이크업라이너를 생산하던 로레알이 보다 나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줄 협력사를 찾던 중 홍콩화장품박람회에 참가한 코스맥스를 눈여겨보고 생산을 의뢰해 성사된 거래였다.

 

 

로레알과의 수출 ODM 계약은 코스맥스에 단순한 계약 이상을 의미했다. 코스맥스의 제조설비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로레알은 코스맥스와 최종 계약을 맺기 전 고위경영진은 물론 생산설비, 품질관리, 환경, 안전 등 각 분야별 전문가를 순차적으로 코스맥스 공장에 파견해 가면서 무려 2년간이나 실사를 진행했다. 과연 코스맥스가 로레알에서 요구하는 품질 수준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 친환경적이면서도 안전하게 제품을 생산해 제때 납기할 수 있을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경수 회장은돈 주고도 못 받는 컨설팅을 받는다는 심정으로 실사에 임했다이 과정에서 화재 위험성이 있는 유화제품 제조시설을 별도 분리하는 등 코스맥스의 생산 시스템을 로레알 공장 수준에 맞게 선진화하려는 노력을 보였고 로레알도 이런 점을 높이 사 ODM 계약이 성사됐다고 말했다.

 

 

특히 코스맥스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젤 타입 아이라이너를 개발해 로레알에 납품하면서 명실공히 글로벌 시장에서도 품질 경쟁력을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코스맥스는 고가의 명품 브랜드 일부에서만 판매되던 젤 형질의 아이라이너를 단 두 달 만에 개발, 로레알의 저가 브랜드인메이블린제품으로 판매할 것을 제안했다. 땀이나 물에 쉽게 지워지는 리퀴드 타입 아이라이너와 마찰에 약해 쉽게 번지는 펜슬 타입 아이라이너의 단점 모두를 해결하는 품질 좋은 젤 타입 아이라이너를 싼 값에 내놓자 글자 그대로날개가 돋친 듯팔려나갔다. 처음 판매가 시작된 일본에선 출시 이듬해인 2009년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까지 등극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코스맥스는 이 제품 덕택에 2010년 로레알이 글로벌 협력 기업 중 우수 회사에만 수여하는혁신상(Innovation Excellence Award)’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2004년 로레알과 첫 인연을 맺은 후 코스맥스는 현재 저가 브랜드인메이블린외에도슈에무라’ ‘랑콤등 로레알의 명품 브랜드로까지 제품을 납품하면서 전략적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해나가고 있다. 초기엔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등 주로 로레알의 아시아 지역 법인과의 거래에 국한됐지만 점차 미국은 물론 유럽과 중남미로까지 수출 대상지가 넓어지고 있다.

 

 

선제적 시장 공략으로 중국 여심(女心) 사로잡다

현재 국내 화장품 ODM 업계에선 코스맥스와 한국콜마가 1, 2위를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두 회사가 전체 화장품 ODM 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서로 비슷한 점유율을 유지하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시장은 다르다. 코스맥스가 돋보인다. 10년 전 중국 화장품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선제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던 코스맥스의 과감한 결단이 현재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코스맥스는 2004년 한국 ODM 업체로는 최초로 중국에 진출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외 대부분의 화장품 OEM/ODM 업계에선 코스맥스의 중국 시장 진출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 여성들이 화장을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이 별로 크지 않은데 자금 여력도 부족한 중소기업이 왜 굳이 중국에 공장을 세우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경수 회장은 생각이 달랐다. 앞으로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서 화장하는 인구도 점점 증가할 것이라고 봤다. 중국인들이 화장품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중국 진출을 결심하면 너무 늦다는 게 이경수 회장의 판단이었다. 일본 콜마, 이탈리아 인터코스 등 코스맥스보다 앞서 중국 시장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ODM 업체들이 몇몇 있긴 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중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에 제품을 납품하지 중국 현지 화장품 브랜드들과는 거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이경수 회장이 중국 시장 진출 결심을 굳히게 된 이유였다. 그는중국 현지 화장품 업체들은 비용 부담 때문에 글로벌 ODM 업체들과는 거래할 엄두를 못 내 대부분 품질이 떨어지는 저가 제품을 내놓고 있었다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 화장품을 코스맥스에서 대신 개발해준다고 하면 중국 현지 화장품 업체들도 고가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어 함께 시장의 파이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 진출 결심을 굳힌 이경수 회장은 2003년 최경 현 코스맥스차이나 대표(당시 코스맥스 마케팅총괄 본부장)를 중국으로 급파, 중국 시장을 분석하고 생산기지로 적합한 곳을 물색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최경 대표는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 등 중국 동부 해안 지역 도시를 집중적으로 돌아다녔고 법인과 공장을 세울 지역으로 상하이를 최종 낙점했다.

 

사실 상하이는 인건비가 높고 임대료 역시 비싸 대부분 공장을 설립하기 꺼려 하는 지역 중 하나다. 최경 대표는 그러나 상하이라는 무형의 브랜드 자산이 중국 소비자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간파했다. 중국에선 패션이나 화장품에 관한 한상하이산(Made in Shanghai)’이 최고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도서울 청담동 며느리들이 입고 다니는 옷이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다는 식으로 특정 도시, 특정 지역이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처럼 중국 본토에선 상하이가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화장품 용기 회사나 패키지 회사 등 각종 부자재 회사가 상하이에 몰려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부자재 업체가 몰려 있는 수도권 지역인 화성에 공장을 운영한 덕에 국내에서 물류비를 크게 줄일 수 있었던 만큼 상하이에서도 똑같은 이점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코스맥스는 이에 따라 2004년 중국 상하이 펑시안(奉賢)구 종합공업개발지구에 코스맥스상하이(2010년 코스맥스차이나로 상호 변경)를 설립하고 이듬해부터 제품 생산에 나섰다. 처음엔 공장을 짓지 않고 개발지구 내 한 공장을 빌려 제품을 생산했다. 연간 최대 생산 능력이 1800만 개밖에 안 되는 소규모 공장이었다. 처음부터 공장을 설립하지 않고 임대 방식을 택한 이유는 단기간 승부를 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무리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타깃 고객은 중국의 수많은 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아니라 중고가 브랜드로 잡았다. 여느 중국 업체보다 훨씬 앞서 있는 코스맥스의 품질을 고객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선 처음부터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해야 한다고 봤다. , 적은 물량이라고 해도 높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납기일에 맞춰 신속하게 제품을 공급하는 게 고객 신뢰 확보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사업 초기엔 주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바이어들은 가격을 낮춰달라는 요구를 끈질기게 해 왔다. 하지만 최경 대표는 높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신 고객사에 다른 부가가치를 제공했다. 우선 중국 법인에 마케팅 조직을 구성하고 현지 업체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영업에 나섰다. 특히 R&D 조직이 없거나 개발 능력이 부족한 중국 업체들을 핵심 공략 대상으로 잡고 글로벌 뷰티 트렌드에 대한 시장 정보를 제공했고, 중국인들의 피부 특성과 니즈에 특화된 신제품 제안을 끊임없이 진행했다. 이를 위해 중국 현지에 연구소를 만들고 한국인 연구원을 파견,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기술 지도에 나섰다. 코스맥스 본사의 중앙연구소에도 중국 시장용 신제품 개발을 전담하는 연구팀을 두고 중국 현지 R&D 활동을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최경 대표의 판단은 옳았다. 중국 현지 화장품 회사와는 차별화된 선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품질의 제품을 내놓다 보니 2007년부터 바이어들이 먼저 찾아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더 이상 임대 공장의 생산설비로는 물량을 조달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2008년부터는 자체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처음 연간 6000만 개 규모로 시작된 생산설비 용량은 현재 증설을 거듭, 연간 15000만 개에 달한다. 모든 설비는 국제적인 GMP(우수제조관리 기준)에 맞게 구축돼 있다. CCGMP, ISO9001 인증은 물론 프랑스 에코서트(Ecocert)로부터 유기농 인증까지 획득했을 정도다. 공장 운영 시스템은 한국에서 10년 넘게 ODM 사업을 해오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고스란히 중국으로 옮겨갔다. 이경수 회장은화장품 생산 과정에선 반드시 혹한혹염 상황에서 가혹 실험을 실시하고, 제품을 용기에 담기 전엔 최소 3일 동안 미생물 검사를 거치며, 최종 완제품을 출고해 놓고도 최소 2∼3년은 창고에 보관해 둠으로써 향후 소비자 클레임이 들어왔을 때 고객사에 문제의 원인이 유통 과정에 있는지, 보관 과정에 있는지에 대한 해답까지 줄 수 있는 코스맥스의생애 품질 관리 시스템’은 어떤 업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중국 화장품 업계의 품질 관리 기준은 코스맥스차이나가 세워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자부했다.

 

현재 코스맥스차이나는 홈쇼핑 업체 에이콘, 유통 전문점인 자연당 등 화장품 각 유통별 1∼2위 업체들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거래 업체 수는 총 100여 곳으로 이 중 80∼90%가 모두 중국 현지 기업이다. 코스맥스차이나는 2012년 중국 화장품 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받는 ‘2012 블루로즈 품질대상도 수상했다. 이경수 회장은코스맥스차이나는 매년 40% 안팎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06 20억 원도 안 됐던 매출액이 지난해 800억 원을 훌쩍 넘겼다고 말했다. 이어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하는 경우 대부분 인건비만 보고 중국에 생산공장을 만들어서 저가로 물건을 만들어 바깥으로 수출하는 경우가 많았다코스맥스의 경우 처음 진출할 때부터 중국 내수 화장품 시장 확대를 목적으로 삼았기에 큰 성공을 거둔 것 같다고 자평했다. 처음부터 중국 현지 화장품 업체들을 고객으로 보고 그들과 상생하는 전략을 취했기에 상하이시 당국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기업들과도 깊은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코스맥스는 펑시안공업지구에 입주한 200여 개 기업 중 납세액이나 투자금액 측면에서 지난 5년간 연속으로 상위 10위권에 들었다. 외국인투자기업 혜택으로 법인세를 내지 않는데도 부가세와 특별소비세 등을 포함해 매년 수억 원대의 세금을 납부해 상하이시로부터모범 납세자표창까지 받았다고. 상하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공로가 워낙 크다 보니 정부당국에서 먼저 찾아와 도와줄 게 없느냐고 물어올 정도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심지어 최경 대표는 최근 중국 상하이시가 매년 상하이의 경제·사회 발전에 공헌이 큰 외국인을 뽑아 수여하는백옥란 기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외 생산 네트워크 구축해 글로벌 ODM 기업으로 도약한다

현재 중국에는 2004년 상하이에 설립된 코스맥스차이나와 2010년 설립한 광저우코스맥스 법인 두 곳이 있다. 코스맥스차이나로 몰려드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4년 전 아예 광저우에도 법인을 따로 세운 것. 광저우의 경우 상하이에 비해 트렌드세터(trend-setter)로서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중국 현지 화장품 제조업체의 약 40%가 몰려 있는, 중국 화장품 산업의 본고장이자 최대 격전지 중 하나다.

 

 

이경수 회장은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고객사나 협력업체가 밀집해 있는 수도권 지역에 공장을 세운 덕택에 물류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고객사·협력업체와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신제품 개발에도 가속도가 붙었다중국에서도 이 같은 논리가 통할 것이라고 보고 광저우를 제2의 생산기지로 낙점했다고 말했다. 이어예전에 코스맥스가 상하이에만 진출해 있을 때에는 코스맥스 제품을 구입하고 싶어도 물류비 부담 때문에 망설이는 현지 고객사들이 많았다”며광저우 공장에서 상하이 이남 및 남서부 시장에 위치한 고객사들의 물량을 집중적으로 처리해 줌으로써 중국 동부 해안지대 전역을 커버한다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8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상하이 공장(연간 생산능력 15000만 개)과 작년부터 돌아가기 시작한 광저우 공장(4000만 개)의 생산능력을 합치면 연간 총 19000만 개에 달한다.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ODM 기업 중 최대 캐파(capacity)지만 코스맥스는 현재 상하이 공장 생산 설비를 추가(1억 개) 증설 중이다. 이 밖에도 충칭이나 베이징 중 한 곳에 생산 공장을 추가로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만큼 중국 시장의 성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코스맥스는 지난해 로레알이 인도네시아와 미국에서 운영하던 공장을 인수함으로써 동남아 시장 및 미주 시장을 직접 공략할 수 있는 생산 기지를 구축했다. 두 공장 모두 로레알이 자사 헤어케어 상품을 주력으로 만들어 내던 곳이었다. 이경수 회장은 “ODM 업체가 확보해야 하는 핵심 역량 중 하나가 생산능력이라며전 세계 수백여 개 브랜드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요구 사항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설비를 갖추고서 필요에 따라 생산 라인을 유동적으로 조직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 세계 주요 거점 지역에 생산기지를 직접 세워둘 경우 복잡한 통관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고 식약처 등 해당 국가의 규제당국으로부터 화장품 허가를 받기 위해 소요되는 유·무형의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고객사에 좀 더 신속하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는이탈리아 인터코스 같은 유럽계 글로벌 ODM 업체와 비교했을 때 코스맥스가 갖는 경쟁 우위는스피드’”라며시즌마다 다양한 신제품을 신속하게 내놓고 주문부터 납기에 이르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려면 글로벌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시장 진출은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었다는 게 이경수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글로벌 1 ODM 업체를 목표로 하는 만큼 세계 최고 화장품 소비국인 미국으로의 진출은 당연했다더욱이 로레알이 자사 공장을 인수하겠느냐고 적극적으로 제안해왔기 때문에 기존의 파트너십을 강화해 동반 성장한다는 차원에서도 인수 제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단순히 공장 건물만 인수한 게 아니라 직원과 기술력, 시스템을 포함한 포괄적 인수여서 코스맥스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코스맥스는 로레알로부터 인수한 공장에 파우더, 립스틱 등 코스맥스가 강점을 갖고 있는 색조 라인을 증설, 해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는 목표다. 이미 올 상반기부터 가동 중인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는 데, 오는 12월부터 미국 공장에서 만들어질 제품은 북미는 물론 멕시코, 브라질 등 남미 시장으로 거래처를 확보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이경수 회장은미국의 경우 아직 공장을 가동하기도 전인데 현지의 신규 고객사에 납품할 메이크업 물량을 따냈다로레알 이외 신규 고객사를 확보해 오는 2017년까지 미국 법인에서만 연 500억 원 이상의 매출액을 올린다는 목표라고 말했다.

 

이방실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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