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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B

B=브랜드, 오직 브랜드뿐. 광고?온라인?시의성 없는 유쾌한 ‘괴짜’

조진서,송상영 | 163호 (2014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마케팅

 

괴짜 월간지매거진B’가 레드오션 잡지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

1. 블로그처럼 가볍고 시각적으로 즐거운 콘텐츠에 단행본 책처럼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외형을 결합

2. 얇은 독자층을 인정하는 대신 시작부터 세계시장을 노리고 글로벌 콘텐츠로 승부

3. 과월호 판매를 위해시의성 없는 콘텐츠기획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정완 씨(경희대 경제학과 3학년)가 참여했습니다.

 

“광고를 받는 순간 독자를 배신하는 겁니다.”

2013 6, 한국의 월간지매거진B’ 2013년 칸 광고제에서 그래픽 디자인, 디자인 크래프트 부문 은상(은사자상)을 받았다. 광고업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 행사에서 정기간행물로서 상을 받은 일은 세계 최초였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이렇게 유명한 광고상을 받은 매거진B에는 정작 광고가 하나도 없다. 광고가 없기에 오히려 미디어로서 정보를 전달하는광고와 같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게 주최 측의 선정 이유였다.

 

이 잡지는 매호에 하나의 상업 브랜드를 다룬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오직 한 개 브랜드 얘기만 한다. 그리고 해당 브랜드로부터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는다. 잡지가 나온 후에 대량으로 구매하겠다면 서점 공급가로 주는 혜택,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 정도 해줄 뿐이다.

 

수익은 100% 판매수익에 의존한다. 광고가 없으니 값은 비싼 편이다. 권당 1 3000(합본호 1 6000)에 판다. 다른 잡지들처럼 부록이나 정기구독 사은품은 주지 않는다. 독특한 점은 또 있다. 국내 최대 인터넷 회사 NHN(현 네이버) 부사장을 지낸 조수용 대표가 만들었는데 온라인이나 모바일 서비스가 없다. 오직 종이 책만 판다.

 

매거진B 2011 11월 출간 이후 3년째 매호 2만 부(한국어, 영어 각 1만 부)를 꾸준히 찍고 있다. 30호를 발행할 때까지 완판된 경우도 7회 있다. 호수가 쌓이면서 과월호 판매 증가에 따라 매출도 자연스럽게 늘고 있다. 전년대비 매출 성장률은 2013 53%, 2014년은 10월 기준 21%. 또 첫 호부터 영어로 번역해 영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으로 수출하고 있다. 회사 측은 2014년 말에는 처음으로 해외 판매량이 한국 내 판매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마니아층도 있다. 인터넷 중고시장에 가면 매거진B 1권부터 전질로 사겠다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현재 한국의 잡지업계는 레드오션 시장이다. 진입장벽이 거의 없는 데다가 수익성이 아닌 공익이나 개인적인 만족감을 위해 창간하는 매체들도 많아 시장은 전반적으로 항상 공급과잉 상태에 있다. 2011년 기준 등록 잡지(주간지는 제외) 수는 6000종이 넘는다.1 반면 수요는 줄어드는 추세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범람으로 월간잡지 시장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현상유지만으로도 성공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매체들은 대부분 명품 등 광고 수주에 의존한다. 반면 매거진B는 판매만으로 꾸준히 수익을 내며 시장에 안착했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업계에서 인정받는 브랜드를 확립했고 지속가능한 수익구조를 확립했다.2

 

대표적 레드오션 시장인 월간지 시장에서 살아남는 데는 콘텐츠와 유통구조의 차별화 전략, 그리고 뚝심 있는 브랜드 전략이 주효했다. 매거진B의 성공비결을 분석했다.

 

 

영화처럼 보는 브랜드 잡지를 기획하다

매거진B를 만드는 제이오에이치는 NHN(현 네이버)에서 디자인·마케팅 담당 부사장을 지낸 조수용 대표가 2010년 퇴사 후 만든 회사다. 최태혁 편집장은월간디자인에디터로 일하다 창간호 제작을 위해 스카우트됐다. 이들이 주도해 만든 매거진B는 텍스트보다 사진과 그래픽 등 시각적 요소가 강하다.

 

이 잡지는 매월 1권씩, 하나의 상업 브랜드를 주제로 잡는다. 잡지 표지에는 ‘B’라는 제호와 함께 해당 호에서 다루는 브랜드의 이름이 크게 들어간다. 여름과 겨울에는 합본호가 있어 연간 총 10회 발행된다. 그렇게 지금까지 총 30개 브랜드를 다뤘다. 이 중에서 오직 하나, 전통소주화요만 한국 브랜드다. 나머지는 모두 글로벌 혹은 외국 브랜드다.

 

잡지의 제호는 균형(balance)과 브랜드(brand)의 앞 글자를 따서 붙였다. 꼭 누구나 아는 유명 브랜드, 혹은 고급 브랜드를 다루는 건 아니다. 마케팅에 큰돈을 쓰는 이른바명품브랜드는 오히려 피한다. 그보다는 뭔가 생각이 있어 보이는, 자기만의 철학을 고집하는 듯한 브랜드를 택한다. 예를 들어 1호에서 다룬 브랜드는 재활용 천막으로 만드는 가방인프라이탁(Freitag)’이다. 한국에서 주로 20만 원대부터 팔리는 브랜드로, 싸구려는 아니지만 고가품도 아니다.

 

14호에 나온(Bic)’은 일회용 면도기와 볼펜, 라이터를 만드는 회사다. 26호에 나온 동물 모양의 털인형을 만드는 필리핀의한사(Hansa)’는 더욱 낯설다. 이 회사는 인형 제조에 집중하고 유통과 판매는 딜러망에 맡긴다. 인형 애호가가 아닌 이상에야 이름조차 알기 힘들다. ( 1) BMW나 벤츠가 아닌 아우디를 고른 이유도, 스타벅스나 일리 커피가 아닌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를 고른 이유도 마찬가지다. 조 대표의 말에 따르면실용성, 아름다움, 가격, 브랜드 철학의 네 가지 요소의 균형을 갖춘 브랜드가 매거진B의 대상이다.

 

잡지의 구성 역시 전통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는다. 목차가 있긴 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깊이 있는 분석이나 새로운 발견도 없다. 대신 마치 하나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책장을 술술 넘기면서 그 브랜드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는 조 대표 자신의 생활 스타일에서 나왔다. “자전거를 보든 카메라를 보든, 화장품을 보든 안경을 보든, 어떤 브랜드를 볼 때 시작과 끝까지 보려는 게 내 오래된 습관이다. 청바지가 예쁘다고 바로 사는 게 아니라, ‘이게 뭐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더 알고 싶어한다. 어떤 대상을 두루 살피는 게 내 패턴이다. 매거진B 역시 꼭 다큐멘터리라는 콘셉트를 차용했다기보다는 그런 습관대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나온 말이다. 시점을 넓게 보다가, 깊게 들어갔다가 하면서 카메라가 줌인 줌아웃을 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최태혁 편집장은다큐멘터리가 너무 좋아서 브랜드 다큐멘터리를 만든 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을 담는 그릇으로서 다큐멘터리라는 포맷이 최적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인다.

 

28호에 다룬 구글 편이 이런 구성을 잘 보여준다.

① 일반적인 매체라면 구글이 어떻게 시작됐고 창업자는 누구인지부터 다루겠지만, 매거진B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구글 어스(Google Earth)’ 서비스에서 보여주는 인공위성 촬영 사진들을 죽 보여준다. 그렇게 10페이지가 흘러간다.

 

② 그런 다음에는 트위터, 블로그 등 각종 소셜미디어(그리고 DBR)에서 찾은 구글 관련 문구들을 옮겨놓았다. 특별한 목적이나 공통 주제를 갖고 모았다기보다는 짤막짤막한 감상들을 모자이크처럼 보여주는 형식이다.

 

 

③ 이어서 한두 페이지짜리 인물 인터뷰가 이어진다. 역시나 별 일관성은 없다. 개중에는 컴퓨터 과학자나 금융 애널리스트와 같이 구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유튜브(구글이 소유)에서 개인방송을 하는 미국 여성 등 회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이 더 많다.

 

④ 이렇게 구글 바깥의 사람들이 구글을 보는 시선, 또 구글에 대해 느끼는 감상을 보여주는 데 수십 페이지를 할애한 다음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구글이라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창업자에 대한 소개와 회사 연혁 등이 짤막하게 소개되고, 내부인 7명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이것 역시 텍스트 분량은 많지 않고 대신 감각적이고 세련된 사진이 위주다. 내용도 딱히 심도 있는 분석이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담고 있지는 않다. 구글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특별할 것 없는 얘기들이다.

 

⑤ 잡지의 마무리는 길거리에서 찍은 스냅숏들로 채워져 있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으로 웹서핑을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 즉 구글 유저들을 보여주며 특별한 결론 없이 매조졌다.

 

초기(7)에 나온 스타우브(Staub) 주물 냄비편 역시 스타우브라는 회사보다는 그 제품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프랑스제 냄비를 쓰는 국내외 요리사들을 인터뷰해서 장점과 단점을 듣는다. 요리사들은 냄비와는 별 상관이 없는 자신들의 개인적인 얘기도 말한다. 심지어 맛집 소개하는 잡지처럼 음식점의 대표 메뉴와 위치, 전화번호도 적혀 있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한쪽에는 스타우브 무쇠 냄비 하나, 반대편 페이지에는 양은 냄비 15개를 겹쳐놓은 사진을 실었다. 무쇠 냄비 하나가 양은 냄비 15개를 합쳐놓은 것만큼 무겁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글로 쓰면 한 줄이면 되는 것을 두 페이지나 할애했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텍스트는 최소화되어 있고 대신 수백 장의 사진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작품 사진처럼 공들여 찍은 사진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지나가면서 찍은 스냅숏 같은 장면들도 있다.

 

굳이 따지고 들면 이 잡지를 왜 돈을 주고 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브랜드가 나오면 일단 구매해놓고 정작 잘 들춰보지는 않는 소비자들이 많다. 매거진B가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잡지에 쉽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 브랜드만 집중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전문가 수준으로 깊게 분석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의 눈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데 힘을 쏟는다. 브랜드의팩트를 나열하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일반 소비자, 사용자의 입장에서 그 브랜드를 일상적으로 어떻게 접하고 무엇이 그 분위기와 아우라를 만드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 브랜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넘기고 나면 늘 쓰던 제품인 것처럼 친숙하게 만들어준다.

 

조 대표는 이를 음식점에 비유한다. 희귀한 재료로 복잡한 요리를 만드는 고가의 레스토랑만 단골을 모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디서나 파는 것 같은 김밥, 떡볶이를 파는 동네 작은 분식집도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발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나 관심을 가질 특별히 어려운 내용을 만들기보다는 브랜딩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훌렁훌렁 넘기면서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잡지, 그러면서도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잡지를 만드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솔직히 잡지에 있는 글을 다 읽는 사람은 없다. 잡지사에 근무하는 기자도, 잡지사 사장님도 아마 글을 다 읽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을 보고 넘기다가 눈에 걸리면 멈춰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브랜드나 비즈니스에 아무 관심이 없어도 그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전문가 수준으로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알아도 되는 정도의 수준까지만 가야 호감을 갖고 볼 수 있다. 어느 선에서 멈추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해당 브랜드의 마니아들은 막상 (그 브랜드가 실린 매거진B) 나오면 실망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깊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깊게 다뤄주길 바라지만, 그렇게 하면오타쿠들이 읽는 잡지가 되는 거고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일반인을 위한 브랜드 잡지라는 전략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모든 일반인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소비자 기호를 파악하기 위한 시장조사도 따로 하지 않았다. 기존 시장에 어떤 틈이 있으니 그 틈을 공략하자는 분석보다는, ‘우리의 정체성만 명확하다면 우리의 자리는 분명 생긴다라는 믿음이 바탕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정량적인 시장조사와 데이터 분석은 하지 않는다. 구매를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설문조사 응답자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콘텐츠를 뒤흔드는 것보다는, 제작진의 취향과브랜딩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끌어모으는 데 집중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잡지의 유통기한을 없애다

창간 준비에는 6개월이 소요됐다. 조 대표, 최 편집장은 책을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구성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조 대표는 네이버에 근무할 당시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이 글을 읽을 때 블로그 한 포스트 정도가 인내심의 한계가 됐다. 모든 정보를 그 단위로 읽으려고 한다. 책을 읽으라고 하면 지루해서 못 읽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신문 주말판이나 잡지에서 특집으로 다루는 정도의 깊이가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정도다.

 

잡지는 한 번 나오면 곧 콘텐츠의 유통기한이 지나고 버려진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에서 브랜드, 비즈니스를 다루는 잡지를 사 보는 구매층은 한정되어 있다. 매거진B의 취향과 정체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는 더욱 제한적이다. 일반적인 잡지의 판매 형식으로는 현재 시장 규모에서 타산을 맞추기 힘들다고 내다봤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조 대표는 출간하고 한참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과월호를 구매하게끔 만드는 반영구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거나 최신 트렌드를 보여주는 대신 장수하는 브랜드들만 다루기로 했다. 이것 역시 인터넷 업계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에서 나온 통찰이었다. “블로거들이 쓰는 글은 인터넷상에 계속 남아 있지만 잡지기사는 해당 호가 지나가면 수명이 끝나버린다. 작년, 재작년에 좋은 기사를 썼더라도 계속 다른 좋은 기사를 만들어내야 한다. 나는 그런 정보가 계속 살아남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버려지지 않으려면 정보가 시의성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시류를 타지 않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과월호를 쉽게 구매하도록 돕는 장치도 필요했다. 잡지는 접근성이 떨어지면 구매율도 낮을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교보문고 등 대형 서점에 자체 매대를 구매해 신간과 함께 과월호 잡지들을 배치했고, 온라인 서점과 자체 웹사이트에도 과월호가 쉽게 눈에 띄도록 배치했다. 광고를 할 때도 항상 과월호를 같이 보여줬다. 회사 내부에서는과월호라는 말 자체를 잘 쓰지 않는다. 대신 직원들은컬렉션이라는 말을 대신 쓴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계속 걸어갈 수 있는 코드를 가져갔다라는 게 조 대표의 표현이다.

 

잡지에 광고를 넣지 않기로 한 것도 돈이 싫어서가 아니라 바로 이런 맥락이다. 광고는 어쩔 수 없이 시의성을 띤다. 1년 전, 2년 전 광고를 보면 촌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광고가 들어 있으면 소비자는 그 책을 모으기가 싫어진다. 광고를 모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시간적인 확장 외에 공간적 확장도 매체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조 대표는이 모든 것은 한국시장만으로는 턱도 없는 소리다라고 말한다. 타깃을 글로벌 시장으로 가져가다 보니 글로벌하게 먹히는 코드, 즉 사진과 이미지에 방점이 찍혔다. 한국 잡지지만 한국 브랜드는 거의 다루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앞으로도 한국 브랜드를 우대할 계획은 없다.

 

이런 전략으로 시작한 매거진B 1호는 1 3000여 부를 찍었고 이후 국영문판을 합해 매호 2만 부씩 찍고 있다. 영문판은 한국어판 콘텐츠를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 1달 후에 나온다. 과월호 판매가 늘면서 국영문판이 각각 완판되는 사례들도 나왔다. ( 2)

 

 

다 팔린 호는 재판을 찍기도 하지만 품절된 채 놓아두기도 한다. 이런 정책 때문에 소비자들은다 팔리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빨리 사두자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인터넷 중고시장에서 과월호가 비교적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알라딘 등 중고서점에서 매거진B 과월호는 보통 정가의 70%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유료 배송비를 포함하면 정가와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 ‘한정판이라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편집진은 이렇게 한정 수량이라는 조건이 독자들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과 책이 소진되는 속도, 또 해당 호 브랜드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판 인쇄 여부를 결정한다.

 

 

브랜드는 브랜드 오너의 개성이다

매거진B가 출판시장에서 자리 잡기까지 잡지 자체의 완성도도 중요했지만 조 대표 개인의 인지도도 도움이 됐다. 그는 디자인/마케팅 업계의 유명인사다. 서울대에서 산업디자인으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인터넷 초창기였던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프리챌에서 웹디자인을 맡았다. 네이버로 옮긴 후에는 디자인 팀장으로 일하다가 2007년부턴 마케팅까지 총괄하는 CMD(Creative Marketing·Design) 직을 맡았다. 그가 30대 초반이었을 때다.

 

디자인 전문가로서 이름을 외부에 알린 대표작은 네이버의 초록색 검색창이다. 이전까지 쓰던 모자 로고를 없애는 대신 단순히 박스 형태였던 검색창에 초록색 띠를 둘러 네이버만의 느낌을 줬다. 또 네이버가 본사로 쓰고 있는 분당의그린 팩토리건물도 그가 담당했던 프로젝트다. 이 건물은 로비에 사원들을 위한 도서관을 두는 등 독특한 내·외관과 편의시설로 잘 알려져 있다. 네이버에서의 성공과 함께 자연스럽게 각종 언론매체 인터뷰에도 등장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트위터에서 그를 칭찬한 것도 화제를 모았다. 조 대표가 트위터상에서 현대카드가 내놓은 신상품인 리퀴드메탈 카드를완벽하다라고 칭찬하자, 이에 대해 현대카드 정 사장이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인의 대가의 평이라고 화답한 것이다. 팔로어 10만 명이 넘는 정 사장의 언급이었던 만큼 조 대표의 개인 브랜드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였다.

 

2010년 조 대표가 네이버를 퇴사하고 자기 이름을 딴 제이오에이치(JOH)를 설립한 다음 가장 먼저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매거진B.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라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말한다. 잡지의 콘텐츠 전략을 시장조사가 아니라 본인의 생각에 바탕을 두고 정한 것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그가 잡지 사업을 부자의 취미생활 정도로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비즈니스 철학이 확고했기 때문에 이런 접근을 했다. 매거진B뿐 아니라 제이오에이치에서 그가 벌이는 여러 가지 사업은 모두 그의 브랜드·비즈니스 철학에 기반을 둔다. 그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브랜드를 인격에 비유해왔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예쁜 로고나 디자인이 브랜드가 아니라 그 기업의 임직원들, 특히 오너가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기업의 브랜드여야 한다고 말한다. 실무자들과 외부 디자인·브랜딩 컨설팅 업체들이 아무리 열심히 시장조사를 하고 최신 기법을 동원해 예쁘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만들어도, 실제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직원들과 그들을 이끄는 오너 혹은 창업자의 스타일이 담기지 않았다면 진실성이 없는 껍데기라는 것이다. 브랜드를 가장 잘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오너다. 오너나 대표이사가 실무진에게우리 회사의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까라고 묻는 회사는 미래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매거진B도 그와 다른 직원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제작되고 여기 실리는 브랜드들도 이런 기준으로 선정된다. 그게 당연하고 바람직하다고, 자신들이 가장 맘에 들어하는 브랜드를 독자들에게도 소개하면서 연대감을 느끼고 싶다고 생각한다.

 

 

시류에 따라가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가 보급되면서 잡지 시장은 장기 침체 상태에 접어들었다. 정기간행물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고 가판대와 서점 같은 전통적인 유통망도 대부분 붕괴되거나 위축됐다. 많은 매체가 생존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한다. 첫째는 디지털 플랫폼 강화다. 자체 웹사이트에 올리는 콘텐츠를 늘리거나 인터넷 포털과 제휴를 강화한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매거진B는 발행인이 인터넷 업계 출신인데도 디지털 플랫폼에 콘텐츠를 올리지 않는다. 디지털 제작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매체 웹사이트는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온라인 상점 역할만 한다. 매거진B의 기사들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종이 위에서 이어졌을 때 의미가 있지, 기사 하나하나, 사진 한 장 한 장만 떼어놓고 보면 즐거움이 크게 줄기 때문에 굳이 웹에 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디지털이 대세니까 디지털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고 압박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전달하고 싶은 콘텐츠를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이에 맞는 표현방식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콘텐츠는 잡지 페이지를 몇 장 옮겨놓은 것, 그리고 5분가량의메이킹동영상이 전부다. 취재원을 인터뷰하는 모습, 해당 회사의 제품과 본사 정경을 담은 영상 등을 음악과 함께 편집해 짧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올린다. 그나마 이것도 잡지를 만드는 힘든 과정을 소비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홍보 수단이지 그 자체만으로 판매 가치가 있는 콘텐츠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시류를 거스르는 특징은 광고 수익 포기다. 광고는 대부분의 신문, 잡지를 먹여 살린다. 수백 페이지짜리 패션 잡지가 고작 3000∼4000원 정도에 팔릴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명품, 화장품, 의류 광고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른바네이티브 리포팅(native reporting)’ 혹은애드버토리얼(advertorial)’이라고 불리는 광고성 기사의 비율도 늘어났고 또 정교해지고 있다. 업계의 이런 두 가지 추세에 대해 매거진B는 반대 전략을 취한다.

 

광고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브랜드로부터 금전적 협찬을 받거나 업체의 구미에 맞게 콘텐츠를 바꾸는 일도 없다. 공정한 기준으로 선정된 브랜드라는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다. 물론 업체가 모르도록 비밀스럽게 취재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취재를 도와달라는 협조 요청은 하지만 돈을 받고 기사를 써주거나 콘텐츠에 대해 협상하지는 않는다.

 

레고 편을 만들 때의 일이다. 덴마크의 레고 본사 측과 이야기해 현지로 출장 취재를 갈 준비를 거의 끝마쳤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취재를 도와주는 대신 출판되기 전에 우리가 내용을 먼저 검토하고 싶다라고 요구해왔다. 어차피 브랜드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내용이 담긴 기사가 실리는 적은 거의 없기 때문에 충분히 응할 수도 있는, 회사의 홍보 담당자 입장에선 이상할 것이 없는 요청이었지만, 매거진B는 나쁜 전례가 될 것 같아 이런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레고 본사 취재를 포기하고 매거진의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구성했다. 현직 임직원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 뼛속부터 레고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을 인터뷰하고 퇴사한 전직 직원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어린아이와 성인의 레고 블록 쌓기 대결을 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순수하게 외부인의 입장에서, 브랜드 팬의 입장에서 취재해 만든 레고편이 오히려 대박이 났다. 재판도 찍었고 시리즈 중 최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드물게는 업체 측과의 접촉 후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취재를 접는 경우도 있었다. 글로벌 회사의 한국 유통 파트너들의 태도가 나쁘면, ‘직원들의 태도가 좋지 않으니 그 브랜드 역시 좋지 않을 수 있겠다. 우리가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매거진B의 취재를 요청받는 업체들은 긍정적으로 응한다. 광고 협찬 등 다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상 브랜드 중에는 직원과 고객에게 나눠줄 생각으로 잡지를 대량 구매하는 회사가 있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런 점을 고려해 브랜드를 선정하지는 않는다.

 

매거진B 2013년 칸 광고제에서 은상을 받았다.

 

글로벌 콘텐츠 경쟁력

매거진B는 창간 때부터 글로벌 시장을 보고 기획했지만 올해 초까지 영문판의 해외 판매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한 권 두 권 호수가 늘어나면서 해외에서도 이 잡지에 주목하는 서점들이 생겨났다. 일본의 대형 서점인 츠타야가 대표적이다. 특히 2013년 칸 광고제 수상이 전환점이 됐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지 않지만 제이오에이치는 2014년 말 해외 판매량이 국내 판매량을 앞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 잡지가 해외에 수출된 건 매거진B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1996년에 럭셔리 잡지노블레스는 태국에 15만 달러의 로열티를 받으며 제호를 수출한 바 있고 이듬해에는 중국에도 제호를 수출했다. 2004년부터는 아예 합작법인을 통해 중국어판을 발행했다. 20대 여성들이 주로 보는쎄씨역시 2008년부터 중국에서 팔리고 있다. 그런데 매거진B는 중국이나 동남아 등 한류 연예인 코드가 먹히는 시장이 아닌 선진국 시장에서 주로 팔린다는 점에서 다르다. 상위 판매 10개국 중 7개국이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높다. ( 3) 또 각 나라에 맞는 라이선스 판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글로벌 판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도 한국 잡지 업계 최초다.

 

 

일본 츠타야 서점에 비치된 모습

 

또 다른 긍정적인 신호는 과월호 판매량 증가다. 2013년 매출에서 과월호가 차지하는 비율은 40% 정도였다. 6월에는 이 비율이 50%, 9월호에는 67%까지 올랐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소비자들의 주목도가 높은 잡지 섹션에 진열되면서도 한 권이 아닌 여러 권이 동시에 놓여지도록 했다. 교보문고에는 독립 매대를 세우고 신간과 과월호를 같이 전시해놓았으며 다른 서점들에도 과월호가 서가에 나란히 꽂히도록 수시로 요청하고 있다. 잡지에 붙는 바코드를 만들 때도 각각의 과월호가 계산대에서 독립적으로 인식되도록 만들었다.

 

 

향후 계획

조 대표가 2011년 네이버를 나와 시작한 제이오에이치는 3년 정도 지난 지금 약 120명 규모로 커졌다. 이 중 매거진B 팀엔 프리랜서 제외 10명 안팎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나머지 직원은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일호식이라는 식당 2곳을 한남동과 논현동에서 운영 중이다. ‘워크앤레스트(walk&rest)’라는 신발도 만들어 팔고 있다. 이런 소비재·서비스 사업 외에 크고 작은 공간들을 설계하고 기획하는 일도 진행한다. 빌딩 설계부터 인테리어 디자인, 운영까지 기획하고 자문해준다. 삼성전자가 네이밍스폰서를 맡은 한남동 블루스퀘어 공연장, 그리고 대림산업이 소유한 광화문의 D타워를 맡았다. 2014 9월 영종도에 문을 연 대형 관광호텔네스트도 제이오에이치가 건물주의 의뢰를 받아 설계부터 운영까지 기획했다. 영등포에는 비즈니스호텔글래드를 준비하고 있다.

 

제이오에이치가 벌이는 이런 다양한 사업들은 모두 매거진B와 연관이 있다. 신발사업은 뉴발란스(2), 하바이아나스(18), 비브람(22) 등에서 다룬 바가 있고, 요식업은 스타우브(7), 조셉조셉(15)이 관련돼 있었다. 호텔업은 29호 에이스호텔 편에 나온 바 있다. 에이스는 최근 미국에서 각광받는 디자인 호텔 체인 브랜드로, 제이오에이치가 진행하는 영종도 네스트, 영등포 글래드호텔에 영향을 줬다. 한정 판매했던 ‘Ed Bag’이란 가방 역시 매거진B 1호 프라이탁에서 다뤘던 주제다.

 

이런 의미에서 조 대표는 이 잡지는직원들이 가장 큰 수혜자이며매거진B가 회사의 영혼이라고 말한다. 의도적으로 자체 사업을 위해 매거진B의 주제를 잡은 것은 아니지만, 좋은 브랜드를 선정하고 취재하고 이를 가지고 잡지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자와 에디터가 습득하는 노하우가 알음알음 다른 직원들에게도 전해진다. 이는 회사가 그 사업군에 직접 진출할 때 큰 도움이 된다.

 

매년 10개 브랜드를 다루고 있는 매거진B의 목표는 10주년 100호 발행이다. 이 마지막 호는 매거진B 스스로에 대한 얘기를 담고 싶다는 게 제작자들의 바람이다. 그때까지 전 세계의 쟁쟁한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잡지계에서 선망받는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매거진B의 브랜드가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이를 잡지 외 다른 사업으로 연결, 확장하려는 계획은 아직은 없다. 현재 진행 중인 회사의 여러 사업은 각자 어울리는 브랜드를 갖고 있기에 굳이 ‘B’를 가져다 쓸 필요는 없고 취재과정에서 얻는 경험도 다른 부문에 충분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성공요인 분석

‘블루오션’ 시장은 드물고 찾기도 어렵다. 대부분 기업은 레드오션에서 경쟁해야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의 바바라 칸 교수는 저서 <글로벌 브랜드의 성공 비밀(Global Brand Power: Leveraging Branding for Long-Term Growth)>에서 성공하는 브랜드는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 논의한다. 칸 교수의 관점을 채택해보면, 브랜드로서 매거진B의 성공 요인은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시작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렸다. 창업자를 닮은 브랜드 개성이 있다. 그리고 선택지를 분명하게 함으로써 경쟁자가 모방하기 힘든 포지셔닝에 성공했다.

 

글로벌 시장 타기팅:한국 시장은 작다. 특히 대중, 즉 메인스트림 소비자를 타기팅하지 않는 상품은 자칫하면 극소수의 소비자만 열광하고 구매하고 끝날 수 있다. 이래서는 지속가능한 재무적인 성과를 낼 수 없다. 매거진B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주 공략 대상으로 정했고 이에 따라 전략과 전술을 고안했다. 문장으로 된 정보는 최소화되어 있고 사진과 이미지로 잡지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것도 이런 전략적인 판단의 일부다. 이미지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화보집처럼 사진을 그저 감각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지양한다. 하나의 브랜드를 첫 사진부터 끝 사진까지 모든 이미지의 시퀀스를 제작자가 정확히 의도한 순서대로 보여준다. 스틸 사진 모음이지만, 제작진이 바라보는 매거진B브랜드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조 대표는 자신들의 브랜드를 다루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아왔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의 생명은 감독의 독립성이다. 단지 광고를 싣지 않는 것뿐 아니라 브랜드 선정과 편집에 있어서 독립성(independence)이 매거진B의 정체성이다.

 

창업자를 닮은 브랜드 개성(brand personality):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창업자의 스타일과 사고방식 그리고 이미지를 브랜드에 그대로 투영하는 것이 브랜드 포지셔닝의 한 방법이다. 애플 하면 스티브 잡스, 버진(Virgin) 하면 리처드 브랜슨이 떠오른다. 매거진B는 개성 있고 성공한 젊은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조수용 대표의 이미지와 개인의 취향을 투사하고 있다.

 

 

포지셔닝:좋은 브랜드에는 특허처럼 다른 기업이 베끼거나 따라 하기 어려운 독특함이 있다. 포지셔닝은 선택을 요구한다. 무엇이 될 것인가만큼이나 무엇이 되지 않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코카콜라는 미국에서진짜배기(the real thing)’로 포지셔닝되어 있다.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와 가족을 연상시키며 전통을 의미한다. 대신 이들은다음 세대를 위한 것(a drink for the next generation)’이라는 이미지는 펩시에게 양보했다. 볼보는 안전의 대명사다. ‘안전한 차라는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를 선택했다. 승차감, 성능, 디자인이라는 선택지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매거진B는 브랜드를 선택할 때 상업적인 성공과 매출의 크고 작음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렇지만 속한 상품 카테고리 안에서 선명하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보한 브랜드를 일관되게 소개하고 큐레이팅함으로써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제언

 

내가 만드는 잡지가 단행본처럼 오래 소장되고, 발간 한참 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제공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이 되는 것은 아마 많은 잡지 출판인들의 희망일 것이다. 매거진B는 이 희망을 세심한 그리고 대담한 전략 설정을 통해 실현해가고 있다. “그러면 아예 단행본을 출판하지 잡지 형식을 고집하느냐라는 질문에 조 대표와 최 편집장은출판 비즈니스가 아닌미디어를 다루는 기업이 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미디어로서 대중과 스킨십을 하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화제가 되고, 잡지로서 이슈 메이킹을 하면서 독자들과 소통하려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정체성만 명확하다면 우리의 자리는 분명 생긴다라는 믿음은 위험할 수 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브랜드와 회사가 부지기수다. 정량적인 시장조사와 데이터 분석을 하지 않는 것도 위험하다. 어떤 브랜드에도 위기는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객과 잠재고객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없으면 그 위기가 무엇에 기인했는지 알아내기 힘들 수도 있다. 단발성의 피상적인 설문 기반의 리서치가 아닌,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리서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조진서기자 cjs@donga.com / 송상영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songs@ewha.ac.kr

송상영 교수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마케팅)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에서 경영학과 미학을 공부했고 동 대학에서 마케팅 석사를 받았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에서 Spatial Diffusion and Social Contagion 모델링을 주제로 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았고 뉴욕시립대에서 6년간 재직했다. 등 저명 저널에 논문을 발표했다. 마케팅 애널리틱스와 공간에 대한 모델링, 정보의 시각화가 현재 주 관심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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