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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 이머크 (E.Merck KG)회장

346년 가족기업 장수의 비밀 다음 세대에 돈이 아닌 가치를 물려줬다

이방실 | 151호 (2014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 전략

 

346년 역사를 갖는 독일 가족기업 머크(Merck KGaA)의 장수 비결

가족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보다 회사의 이익을 언제나 우선시해온 가치관. 가족 구성원들 스스로 머크의 오너(owners)라는 생각을 버리고 후대를 위해 신탁을 관리해주는 사람들(trustees)로 생각

 

 

전문경영인 영입 시 발생할 수 있는 대리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지주회사인 이머크(E. Merck KG)와 운영회사인 머크(Merck KGaA)로 회사를 분리한 후 머크 최고경영진이 무한책임 파트너(unlimited liable partners)로 참여토록 함

 

 

머크에서 일하고자 하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적용하는 원칙

가문의 일원이라는 후광 없이 순전히 자신의 능력만으로도 승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일족에게만 머크에서 일할 기회를 제공

 

 

한국 경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떠나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알고 미련 없이 떠날 것.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10∼15년 정도 최고 위치에 있다 보면 창의성이 고갈됨. 20∼30년 이상 장기 집권 시 회사에 악영향을 끼침

 

 

 

 

올해로 창립 346주년을 맞는 독일 머크(Merck KGaA)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화학 기업이다. 1668년 창업자인 프리드리히 야콥 머크가 독일 중남부 헤센 주()의 소도시 담슈타트에 있던 작은 약국 하나를 인수한 게 효시가 됐다. 이후 머크가() 자손들은천사약국(Engel-Apotheke)’이라는 이름의 이 약국을 대대로 운영해왔고 19세기 초반 엠마뉴엘 머크가 알칼로이드1  대량 생산에 성공함으로써 본격적인 화학 제품 양산에 뛰어들게 됐다. 머크는 현재얼비툭스(항암치료제)’ 같은 의약품부터 코팅제, 액정(liquid crystal) 등 기능성 소재, 바이오시밀러 같은 생명과학 제품에 이르기까지 55000개가 넘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전 세계 66개국에서 연 매출 111억 유로(2013)를 올리는 글로벌 기업2 으로 성장했다.

 

 

최근 한국머크의 사업 점검 차 방한한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 박사는 머크의 지분 70.3%를 소유하고 있는 지주회사 이머크(E. Merck KG)의 회장이자 머크가() 일족을 대표하는 협의체인 가족위원회(Family Board) 회장이다. 하버캄 회장은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머크의 장수 비결에 대해가족 구성원들 스스로 머크의 오너(owners)라고 생각하지 않고 후대를 위해 신탁을 관리하는 사람들(trustees)이라고 여기는 가치관 덕택”이라고 말했다. DBR은 머크 가문의 수장 격인 하버캄 회장을 만나 장수기업의 DNA가 무엇인지, 또 효과적인 지배구조를 어떻게 정착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머크 가문의 후손이자 지주회사(holding company)인 이머크(E. Merck KG)의 회장으로서 운영회사(operating company)인 머크(Merck KGaA)에 끼치는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머크와 머크의 관계에 대해 이해하려면 먼저 머크의 지배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생존해 있는 머크가() 일족은 약 230명에 달한다. 엠마누엘 머크의 직계 후손, 혹은 그들과 혼인 관계로 맺어진 배우자 및 그들의 후손들이 모두 포함된다. 이머크는 이들 가운데 총 153명의 파트너들이 출자해 만든 합자회사3 . 파트너들은 매년 총회(General Partners Meeting)를 열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5년 임기의 대의원들을 선출한다. 이렇게 선출된 12명의 가족 대표들로 구성된 게 바로 가족위원회(Family Board). 머크 가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최상위 위원회(Top Board)로 가족위원회 회장이 이머크 회장을 겸임하게 된다.

 

 

이머크 가족위원회의 핵심 기능은 하위 위원회인 파트너위원회(Board of Partners) 구성원 9명을 선출하는 것이다. 파트너위원회는 머크 가문의 후손들 가운데 5, 머크가() 사람은 아니지만 제약, 화학 등 머크가 영위하는 사업 분야에 정통한 외부 전문가 4명으로 구성된다. 참고로 나는 올해 1월 파트너위원회 회장에서 가족위원회 회장으로 승진했지만 여전히 파트너위원회를 구성하는 가족 멤버 5명 중 1명으로 일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이머크와 운영회사인 머크 간 접점은 바로 이 파트너위원회에서 이뤄진다. 전 세계 66개국에서 191개 자회사를 총괄하는 머크그룹(Merck KGaA) CEO·CFO 등 최고경영진(중역회의인 Executive Board 멤버들)을 선출하는 게 바로 파트너위원회이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머크의 지주회사인 이머크에는 가족위원회와 파트너위원회 등 두 개의 위원회가 있고, 이 중 머크 가문과 비()머크가 사람들로 혼합 구성돼 있는 파트너위원회에서 운영회사인 머크의 최고경영진을 뽑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Choi Hoon-Seok

 

엠마누엘 머크의 11대손인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 이머크(E. Merck KG) 회장은 20여 년간 코메르츠방크, 베어링브라더스, 함브로스 등 영국 런던 금융가에서 활약했던 IB(투자은행) 전문가였다. 30년 전인 1984년 파트너위원회(Board of Partners) 멤버로 참여하며 머크 경영 감독 업무를 시작했고 이후 파트너위원회 부회장(1994∼2003) 및 회장(2004∼2013)을 거쳐 올해 15년 임기의 가족위원회(Family Board) 회장으로 선출됐다.

 

 

지배구조가 복잡한 것 같다.

 

솔직히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머크와 이머크의 이중적 지배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정교하고 논리적인 구조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업에 대한 가문의 통제력은 계속 유지하되 자본의 소유와 회사 경영은 엄격하게 분리하기 위해 고안된 지배구조다. , 일상적인 회사 운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면서도 경영에 대한 관리 감독은 가족의 직접적인 영향과 통제하에 두기 위해 이 같은 지배구조를 선택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를 꼽자면 2000년 이후 상장회사인 머크(Merck KGaA) CEO·CFO 등 최고경영진 가운데 머크 가문의 사람들은 한 명도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엄격한 평가를 거쳐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 경영인들로 일상적인 사업 운영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신들의 책임하에 자율적으로 업무를 추진한다. M&A나 사업부 매각 등과 관련된 결정이라고 해도 그 규모가 1억 유로를 넘지 않는 한 머크가() 사람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재량껏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기업의 전통에 서 있는 만큼 머크가() 사람들은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머크 최고경영진에 대한 선임/해임 권한을 파트너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이유다. 머크의 일상 업무는 전문 경영인들에게 일임하지만, 이들을 감독하고 그룹의 전체 전략 수립 같은 중대 사안에 대해 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1억 유로가 넘는 대규모 M&A처럼 그룹 전체의 전략을 바꿀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선 반드시 파트너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참고로 거래 규모가 5억 유로를 넘어가는 초대형 M&A라면 파트너위원회뿐 아니라 가족위원회의 승인까지 떨어져야 한다.

 

 

가족기업으로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외부 전문가들을 영입하는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 대리인 문제를 생각할 때 우려가 컸을 것 같다.

 

머크에서 외부 전문경영인들을 영입하기 시작한 건 1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부분 오너들이 경영 일선에서 전권을 휘두르는 게 일상적인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드문 시도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복잡다단한 머크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선 우수한 인재가 필요한데 머크 가문의 사람들만으론 필요한 인력을 모두 충원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가족기업인 만큼 무조건 가문의 사람들만이 회사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폐쇄적 사고는 진작에 버렸다. 핏줄로 얽혀 있는 내부인이든, 혈연 관계라곤 전혀 없는 외부인이든 능력만 있다면 누구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고 봤고 1920년대부터 역량 있는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하지만 지적했듯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할 경우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을 잃어버리기는 너무나 쉽다. 그래서 머크는 전문 경영인들이 회사를 위험에 빠트리거나 머크 가문의 부()를 훼손시키지 못하게 하는안전장치를 만들었다. 바로무한책임 파트너(unlimited liable partners)’ 개념을 머크 최고경영진에게 도입한 것이다.

 

 

우선, 머크의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이른바 중역회의(Executive Board) 멤버 5명은 엄밀히 말해 머크가 아닌 이머크에 소속돼 있다. , 월급을 주는 주체가 머크의 모회사인 이머크로, 전 세계 38000여 명의 머크 직원들과 고용주가 다르다. 머크 최고경영진의 소속이 일반 머크 직원들과 다른 이유는 그들이 머크를 위해 일하는 기간 동안만큼은 외부인이 아닌 머크가에입양된 가족 구성원(adopted family members)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매우 작은 금액이긴 하지만 합자회사인 이머크에 파트너로 출자할 수도 있다. 가족들을 대신해 머크 사업을 이끄는 중책을 맡기는 만큼 그에 걸맞은 자격을 주는 게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주식은 머크를 떠나는 순간 이머크에 되돌려주거나 머크 가문 사람들에게 되팔아야 한다.

 

 

대리인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바로 이 대목에서 나온다. 전문 경영인이 머크 가문의 입양 가족이 된다는 말은 그에 필적하는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게 바로 무한 책임이다. 머크 중역회의 멤버 5명은 가족위원회 회장인 나와 파트너위원회 회장과 함께 자신이 내린 업무 결정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퇴사한 이후에도 5년간 적용된다. , 재임기간 중 자신이 직접 관여한 결정에 대해서는 회사를 떠난 이후로도 5년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굳이 회사를 머크와 이머크로 구분해 놓고 머크의 최고경영진을 합자회사인 이머크 소속으로 둔 이유다. 핵심은 가족위원회와 파트너위원회 회장 등 머크 가문을 대표하는 2명과 함께 5명의 입양가족들에게 똑같이 막중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비록 외부에서 영입된 비()머크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오너와 같은 입장에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림 1 머크 그룹의 지배구조

 

 

※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면서도 정교한 지배 구조를 통해 가족기업으로서 가문의 통제력을 유지

 

단언컨대 만약 리먼브러더스의 최고경영진이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개인적으로 무한 책임을 지는 파트너들로 구성돼 있었다면 그 회사는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을 것이다. 감히 말하지만 머크의 지배구조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지배구조라고 자부한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추구함과 동시에 기업에 대한 가문의 통제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기업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153명이나 되는 이머크 파트너들의 이해 관계를 하나로 결집시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파트너들의 의견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가문에 사람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1993년 이머크(E.Merck KG)를 만들면서 가족위원회를 구성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파트너 총회에서 가문의 입장이 결정됐지만 이제는 현재 12명으로 구성돼 있는 가족위원회로 의사결정 권한이 넘어왔다. 쉽게 말해 가족위원회가 연차총회의 축소판이 된 셈이다. 그 결과 파트너위원회 멤버 선출 등 가문의 중지를 모아야 하는 일에서의 의사결정이 훨씬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파트너들 가운데 회사 주식을 팔아 치우려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지 않나? 3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가족 기업으로서의 명맥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온 것이 놀랍다.

 

가족 구성원들 간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독특한 약정 덕택이다. 머크 가족 구성원들은 이머크의 파트너로서 출자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머크(Merck KGaA)의 일반 주주들처럼 자본 차익 실현을 위해 유통시장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마음대로 주식을 팔 수 없다. 더욱이 파트너들은 모두 20년에 한 번씩 갱신되는 계약에 묶여 있다. 최근에 갱신된 계약은 2011년부터 발효돼 2030년까지 유지된다. 이런 독특한 약정으로 인해 머크가 사람들은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묶이게 된다. 만약 증권시장에서 유통되는 일반 주식을 갖고 있었다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내다팔 수 있었을 것이다. 이머크에선 그런 일이 구조적으로 불가능 하다. 머크가 사람들이 오랫동안 하나로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머크가 사람들 중에는 이머크에 출자하는 것 외에 실제 머크 경영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가문의 일원이라는 후광 없이 순전히 자신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승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일족에게만 머크에서 일할 자격을 주고 있다. 지난 10년간 가족위원회를 이끌었던 바움하우어 전 회장과 내가 계속해서 추진해 온 일이 바로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머크가() 자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 참여를 무조건 배제시켜서도 안 되지만 능력도 없는 사람이 단지 머크라는 이름에 기대어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현재 머크 가문의 일원이 머크 회사의 신입사원이나중간 관리자로 고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들이 머크(Merck KGaA)에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후 머크의 고위 직급에 지원하는 방법뿐이다. 제약 회사에서 근무 경력을 쌓았든 회계사로서 전문성을 쌓았든, 그 무엇이든 간에 스스로 역량을 인정받아 그 회사에서도 고위직 임원으로 일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의 능력자가 됐을 때에야 비로소 머크에 지원할 수 있다. 물론 지원을 했다고 다 뽑아주는 것도 아니다. 과거 가족위원회와 파트너위원회에 들어오고자 하는 머크가 사람들에게만 적용됐던 엄격한 평가 기준을 적용해 후보군을 철저히 검증한다.여담이지만 나 스스로도 런던 금융권에서 20여 년간 투자은행가로 일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30년 전 파트너위원회 멤버로 입성한 것이지 엠마누엘 머크의 11대손이라는 후광 때문에 들어온 게 아니다. 나와 바움하우어 전 회장은 이처럼 엄격한 평가 과정을 머크에서 일하고자 하는 고위 임원들을 고용할 때에도 적용함으로써 친족주의(nepotism)의 폐단이 발생하지 않도록 힘써 왔다.

 

 

체계적인 후계자 양성을 위해서라면 가족 구성원들도 머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도록 해서 일찍부터 경험을 쌓게 하는 게 낫지 않나.

 

머크가() 청년들 가운데 머크 사업을 직접 경험해보기 원하는 이들에겐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많은데 오스트리아, 미국, 영국, 한국 등 전 세계 66개국에 진출해 있는 머크 사업장에서 본인 희망에 따라 3∼6개월 정도 인턴으로 일할 수 있다.

 

 

매년 머크가 청년들을 연령대별로 모아 핵심 공장을 견학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 15세에서 21, 22세에서 35세를 각각 차세대 머크그룹 I(Merck Next Generation I), 차세대 머크그룹 Ⅱ(Merck Next Generation Ⅱ)로 나누어 독일 게른스하임에 있는 화학제품 생산공장이나 스위스의 생명공학센터를 방문하도록 하는 식이다. 실제로 머크의 비즈니스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볼 수도 있고 또래 친척들끼리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가문의 결속력을 돈독히 하자는 게 프로그램 운영 취지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머크 가족 일원이 신입사원으로 머크에 입사하는 건 권장하지 않고 있다. 혈연 관계 등을 통해 가문의 최고 웃어른과 선이 닿아 있는 가문의 몇 대손이 일반 사원들과 같이 일하면 곤란한 관계가 형성되기 쉽고 기업 명령 체계에 혼선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머크 가문에서 중시하는 문화와 가치가 있다면?

겸손함과 근면함, 검약 정신이다. 머크에는 흔히 많은 가족기업들에서 나타나는플레이보이가 없다. 대개 3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가족 기업의 일원이라고 하면 자가소유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거나 롤스로이스, 페라리 등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머크에 이런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세상 대부분 사람들처럼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면서 삶을 꾸려간다. 돈을 벌기 원하고 싶다면 스스로 일을 해야지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에 기대서 놀고 먹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한다.머크 가문의 일원이라는 건 대단히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지만 절대 공짜로 주어지는 선물은 아니라는 점을 어렸을 때부터 분명히 교육시킨다. 돈이 아닌 가치를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산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머크가 346년이나 장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엠마누엘 머크가 말했 듯언제나 회사의 이익을 가문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주효했다고 본다. 이런 가치관은 우리, 즉 머크가() 사람들은 회사를 소유(owners)한 게 아니고 후대를 위해 신탁관리(trustees)를 맡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믿음을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믿음 때문에 우리는 분기별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나 세대를 뛰어넘어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시각을 견지할 수 있었다.당장 돈을 버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다음 세대가 물려받을 유산을 키우는 데 더 큰 무게를 둔다. 머크(Merck KGaA)에서 수익이 나서 모회사인 이머크가 소유 지분(70.3%)에 해당하는 만큼의 배당을 받는다고 해도 이를 153명의 이머크 파트너들에게 전부 나눠주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파트너들에게 돌아가는 건 이머크가 받는 전체 배당수익의 약 30∼40% 정도고 나머지는 후대를 위해 전부 회사로 귀속시킨다. 이렇게 후대를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자본 투자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사업에 투자해 기대 수익을 올린 후엔 팔아 치우고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아니다.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를 위해 계속해서 혁신하고 새로운 사업을 창출해나가는 기업가들이다.

 

 

머크의 전체적인 전략적 방향에 대해 현재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사안은 무엇인가?

머크는 현재 독일 담슈타트에 있는 그룹 본사가 중심이 되는 중앙집권화(centralized) 체제로 전환시켜 나가는 작업을 추진 중에 있다. 과거 머크는 상당히 분권화된(decentralized) 시스템으로 전 세계 비즈니스를 운영해왔다. 각국 지사장의 재량권이 매우 커서 국가별로 어떤 비즈니스를 할지 말지도 독자적으로 결정할 정도였다. 이렇게 분권화된 시스템을 따르다 보니 종종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곤 했다. 국가별로 분권화된 체제에서 담슈타트에 있는 머크 본사를 축으로 한 중앙집권화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머크의 사업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머크는 창립 350주년이 되는 오는 2018년을 기점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통합된 새로운 조직 구조와 리더십을 선보일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일명 ‘Fit for 2018’)를 추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경영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보다 떠나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알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라고 조언하고 싶다. 나는 20여 년간 투자은행 업계에서 일하면서 오너가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화를 당하는 가족기업 사례를 수없이 봐 왔다. 독일과 유럽에서 꽤 유명한 유제품 전문 가족기업 한 곳을 예로 들겠다. 창업자의 나이가 90세가 넘었는데도 그는 회사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를 않았다. 심지어 70세가 넘은 아들조차 일찌감치 은퇴를 했고 손자조차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흔도 넘은 늙은이의 독단이 심하다 보니 회사가 잘될 리 만무했다. 집안 사람들의 불만도 커서 그 집안에서 유일하게 행복해하는 사람은 창업자의 증손자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다. 증손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물려받을 때쯤 되면 분명 증조할아버지는 죽고 없어졌을 게 뻔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처럼 많은 가족기업, 특히 규모가 큰 가족기업들에서 오너들이 나이를 한참 먹었는데도 계속 경영 일선에 남아 있으려 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절대 피해야 할 일이다. 이는 한국의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10, 길어야 15년 정도 최고 위치(top position)에 있다 보면 창의성이 메말라가기 시작한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회사에 도움이 되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힘들다. 20∼30년 이상 장기 집권하면 필연적으로 기업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아예 연령 제한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머크에서 실제 경영을 하는 중역회의 멤버들의 연령을 65세로, 감독기능을 맡는 이머크 위원회 멤버들의 연령을 75세로 각각 제한한 건 이런 맥락에서다.

 

 

다시 강조하지만, 기업에 대한 소유와 경영을 모두 독점하려는 집착은 기업을 위험에 빠뜨릴 뿐이다. 오너들이 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머크의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이 전문 경영인을 영입한다고 해도 정교한 지배구조를 구축하면 통제력은 얼마든지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떠나야 할 때 떠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건 후계자들을 조기에 발굴해 잘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때 한 사람의 후계자만 발굴하지 말고 여러 후보들을 골라 후계자 양성에 나서야 한다. 후보군을 일찌감치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 5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후계자 교육에 나서는 건 너무 늦다. 최대한 일찍부터 승계 계획을 염두에 두고 복수의 후계자 발굴에 나서는 게 핵심이다. 일단 승계를 하면 전적으로 그들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들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방실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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