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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서울대 CFO 전략과정 Case Study 15: 대성전기의 공급망 관리

매출 뚝뚝 떨어질 때도 투자 공급망 혁신으로 호황기 날개달다

최종학 | 137호 (2013년 9월 Issue 2)

 

 

 

 

 

편집자주

DBR이 서울대 경영대학과 함께 서울대의 임원 교육 과정(주임교수 황이석)서울대 CFO 전략과정의 최신 경영 사례들을 연재합니다. 국내외 기업의 임원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서울대 CFO 과정의 교육생들은 총 6개월의 교육기간 중 각자 회사에서 겪은 경험과 강의를 통해 배운 지식을 접목, 자사의 경영 사례들을 공유합니다. 이때 발표된 사례 중 한국 기업에 도움을 줄 만한 내용을 엄선해 DBR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기업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사례들이 가득 담긴 이 코너를 통해 기업 경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세준(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속이 탔다.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자정까지 약속한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라인이 몇 개나 설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라인이 하나 설 때마다 1분당 100만 원씩 패널티가 붙는다. 안 되겠다. 도저히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다. 황재구 생산관리팀 부장은 협력사가 있는 인천으로 직접 차를 몰았다. 현장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쉬는 기계가 한 대도 없었다. 직원들 모두 달라붙어 만들며 나르느라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황 부장도 팔을 걷었다. 상자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쌓을 새도 없이 대기 중이던 용차에 실렸다. 상자들을 가득 실은 용차는 곧장 시동을 걸었다. 울산행이었다.

 

“매일이 전쟁이었다.” 황 부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1년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단다. 2009년 하반기까지만 해도 뚝뚝 떨어지는 매출을 손놓고 보고 있어야 했는데 2010년 봄부터 주문이 밀려들더니 혹시 시간 안에 못 맞출까 마음 졸이는 날들이 그해 내내 이어졌다는 얘기다. 아울러 이 기간은 대성전기가 물류 체계를 체계적으로 정비해 발주 정보에 의존하던 후행 생산 체계에서 스스로의 생산 계획과 재고 관리를 통한 선행 생산 체계로 탈바꿈한 혁신의 시기이기도 했다. 급변하는 주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허둥대던 위기의 날들은 대대적인 물류 체계 개편을 통해 정확하고 신속한 입출고 시스템을 갖추며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대성전기에서 시행한 물류 혁신 과정을 박찬성 경영지원본부장(상무) 및 황재구 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살폈다.

 

LS로의 인수, 혁신의 발판

 

대성전기가 LS에 인수된 것은 2008년이다. LS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기존에 보유하던 전기·전자·전력 부문 기술과 연관성이 높은 자동차부품업체 인수를 추진했다. 대성전기가 대상이 됐다. LS는 대성전기가 보유하고 있던 각종 기술과 현대·기아차의 1차 협력사로 일정 수준 이상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점을 높이 샀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인수 직후 금융위기가 불거졌다. 자동차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부품업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수주 물량이 없어 주 4일 근무를 해야 할 정도였다. 인수 후 생긴 제약들도 걸림돌이 됐다. 든든한 모기업을 확보한 것은 이점이었지만 새로 받게 된 규제들이 많았다. 기업 분류상 대기업 그룹에 속하게 되면서 채권기일이 120일로 늘어났다. 인수 전까지만 해도 현대·기아차를 포함한 고객사 대부분이 대금을 현금으로 줬지만 2009 1월부터는 120일짜리 어음으로 주기 시작했다. 최장 150일까지 가능하던 매입대금 지급은 60일로 단축됐다. 이전에는 구매한 물품 대금을 구매 후 150일 안에만 지급하면 됐는데 이 기간이 60일로 짧아진 것이다. 다시 말해 받을 돈은 현금 아닌 어음으로 들어오면서 늦어지고, 줘야 할 돈은 이전보다 짧은 만기로 돌아왔다. 인수 직전 월 300∼350억 원을 기록하던 매출이 계속 줄어들면서 2009 1 130억 원을 밑돌았다. 급기야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LS 산하로 편입되면서 새로 부임한 이철우 대표가 총대를 멨다. 이 대표는 원래 혁신에 관심이 많았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고 강조하던 그였다. LS산전에서도 경영혁신부문장(CIO)을 맡은 바 있던 그는 취임하면서부터 근본적인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IT 인프라가 튼튼하지 않으면 결코 경영 수준을 올릴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상황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재무구조가 나빠졌을 때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비용을 절감하거나 매출을 늘리는 것이다. 대성전기도 두 가지 방향으로 전략을 짰다. 현재 지출하는 비용을 전면적으로 검토해서 최대한 줄이고 매출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인다는 목표였다.

 

 

우선 비용 절감이다. 이를 위해 대성전기는 PI(Process Innovation)팀을 신설했다. 경영 인프라부터 다시 정비하자는 의도였다. 협력사 120여 곳의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기 위해 Web-Van 시스템을 구축했다. 주문과 재고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다.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의 업그레이드가 이어졌다. 기존에 갖고 있던 ERP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여기서 수집되는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시각화할 수 있는 도구를 새로 깔았다. 임직원이 재무나 영업, 생산지표들을 손쉽게 파악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작업에만 2009년 한 해를 모두 썼다. 기존에 사용하던 시스템을 보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면적으로 다시 구축했기 때문이다. 박 상무는당시만 해도 어디서 비용이 새는지 파악하고 관리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시스템을 개편했는데 이것이 훗날 이렇게 크게 도움이 될지 몰랐다고 말했다.

 

다음은 매출 증대다. 자동차부품산업은 전형적인 수주 산업이다. 지금 당장 주문을 받는다고 재무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 지금 확보한 물량은 2년 후에야 재무제표에 반영된다. 따라서 현재의 재무제표를 개선하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대성전기는 미래의 씨앗을 뿌려둔다는 생각으로 매출원을 다각화하기 위해 애썼다. 해외사업본부를 만들어 아우디와 닛산, 크라이슬러 등 신규 해외 고객사와 접촉을 시작했고, 중국에도 사업본부를 신설해 현지 내수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기존에 납품해오던 부품 대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제작하기 위해 전장사업본부도 새로 세웠다. 투자비용을 감수할 만큼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시기였지만 박 상무는당장 이익이 안 된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연이은 적자에 회사 분위기가 침체돼 있었지만 그럴수록 하나라도 더 따내기 위해 뛰던 때라고 회상했다.

 

 

상황의 급변, 그리고 새로운 위기

 

상황은 생각보다 빨리 개선됐다. 아니, 오히려 기대 이상으로 좋아졌다. 문제는 너무 빠르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는 데 있었다. 2010년으로 넘어가면서 잔뜩 침체돼 있던 글로벌 자동차시장에 봄바람이 불었다. 특히 최대 고객사인 현대·기아차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자동차 시장이 재편되면서 기존 승자가 쓰러지고 새로운 강자가 도약하던 시기였다.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면서 부품 주문량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2009년부터 새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해외 고객사로부터도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아웃소싱 다각화에 나섰던 선진업체들에 현대·기아차의 주요 협력사인 대성전기는 믿을 만한 거래처였다.

 

국내외 주문이 밀려들면서 출하량이 2009년 대비 2배로 뛰었다. 밤새 공장을 돌려도 물량을 대기가 어려웠다. 긴급 운송을 사용하거나 마감을 넘기는 날이 늘었다. 단지 제작 속도가 주문받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면 생산 능력을 키우는 일에만 주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은 약 25000. 완성차업체들은 수백, 수천 곳의 협력사를 통해 필요 부품을 조달한다. 문제는 1차 협력사가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하지 않고 2, 3차 협력사를 통해 조달한다는 데서 시작된다. 현대차와 거래하는 1차 협력사는 300∼400곳으로 알려진다. 이들과 거래하는 2, 3차 협력사가 5000여 곳, 4차 이상 협력사는 수만 개에 달한다. 물고 물리는 피라미드 구조다. 무엇보다도 처음의 주문이 이중삼중 겹겹이 쌓인 단계를 거치며 수시로 달라지고 조정되는 것이 문제다. 중간에서 어느 한 곳만 수요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필요 부품이 예상보다 많거나 적어지면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느 한 곳에서 밀리면 줄줄이 멈춰 서야 하고 인력풀이 뻔하기 때문에 일손이 달리면 이곳저곳에서 아우성이 터진다. 완성차의 생산계획을 미리 받아 어느 정도 생산 물량을 예측하기는 하지만 소비자의 옵션 선택에 따라, 또는 시장 트렌드나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실제 주문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대성전기가 다루는 부품들을 작업별로 분류하면 플라스틱을 사출기로 찍어내는 사출 작업과 철 관련 작업을 하는 프레스 가공, 전자회로와 관련된 PVC 작업 등으로 나뉜다. 대성전기와 직접 거래하는 협력사는 120여 개. 작업마다 다시 수십, 수백 개 협력사가 따라붙기 때문에 이들까지 합하면 부품마다 각각의 생태계가 형성된다. 부품에 따라 반제품을 가져오거나 완제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있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운반하는 배달업체나 이곳저곳에서 부품을 받아 조립만 하는 업체 등이 이 생태계에 속한다. 워낙 많고 다양한 부품들이 공존하다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JIT(Just In Time)라는 경구가 자동차업계의 핵심 목표인 데서 알 수 있듯 제시간에 필요한 모든 부품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단 한 대의 완성차도 만들어질 수 없다. 박 상무는매출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되고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있는 곳은 그나마 낫지만 덩치가 작은 중소업체들은 감과 눈치로 물량을 가감해 주문을 낸다 “3∼4단계를 거치면서 단계마다 해당 업체들의 사정이 반영되고 원래의 주문이 계속 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주문량이 갑작스럽게 늘어나면서 주먹구구로 예측하고 생산하는 기존 관행의 문제점이 더욱 두드러졌다. 발주에 따라 생산량이 요동쳤고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으며 시간 안에 물량을 대지 못할까봐 밤샘 작업하는 날이 늘었다. 늘어난 주문량에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여기저기서 인력을 구하지 못해 난리였다. 때 마침 안산 일대에 외국인 근로자 단속이 돌면서 인력난이 한층 심해지기도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류 혁신활동에 시동이 걸린 시점이었다.

 

 

 

물류 혁신활동에 돌입하다

 

대성전기가 다루는 부품은 약 190개다. 이를 위한 하위 부품들까지 합하면 매달 움직이는 부품만 65000여 가지, 물동량으로는 1억 개에 달한다. 목표는 분명했다. 주문을 받으면 그때부터 생산에 착수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부품을 미리 확보해서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것. 재고에 여유를 두면 주문 변동성이 크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재고를 부품 단위로 쌓을 것인가, 완성품 단위로 쌓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부품 단위로 쌓는 상황을 가정해봤다. 하청업체들을 통해 부품을 미리 많이 받아두면 주문이 들어왔을 때 조립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이 단축된다. 문제는 백여 개에 달하는 하청업체들이 계획에 맞게 체계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99개 업체와 손발이 맞아 필요 부품을 제시간에 모두 받는다고 해도 꼭 들어가야 할 부품 하나가 들어오지 않으면 조립이 불가능했다. 부품마다 물량을 확보해두려니 장소도 부족했다. 조립하는 단계에 인력이 부족하면 생산까지 시간이 늘어지는 것은 기존 방식과 다를 바가 없었다. 완성품 단위로 확보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렸다.

 

다음은 재고를 파악하는 기준이다. 이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될 수 있다. 대성전기는 출하량과 출하빈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일단 가장 많이 쓰이는 기준을 택해서 운영하되 필요시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출하량과 출하빈도를 기준으로 모든 제품을 A, B, C, D 네 그룹으로 나눴다. A B는 일주일에 4회 이상, 사실상 거의 매일 나가는 제품이다. 출하빈도가 높은 제품인 셈이다. 전체 출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채 안 되지만 전체 물동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5%에 달할 정도로 자주 나가는 제품이다. A B그룹 제품은 어차피 거의 매일 나가므로 별도 주문이 없을 때도 매일 생산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A B그룹에 해당하는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은 하청업체에서도 매일 받았다. 수주와 관계없이 사흘 치 소모량에 해당하는 일정량이 창고에 유지되도록 했다. C D그룹 제품은 주 1, 2주에 1, 뜸하면 월 1회 정도만 출하되는 유형이다. 이런 품목들은 종류는 많지만 물동량은 많지 않다. 이런 품목에 대해서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최대 6개월 치까지 재고를 보유하고 있기로 했다. A B그룹 제품을 6개월 치 보유한다면 창고 부족으로 감당할 수 없었겠지만 뜸하게 나가는 물건들은 6개월 치라고 해봐야 실제 물량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가능했다. 6개월 치 재고를 한꺼번에 보유한다는 것은 협력업체에서 6개월에 한 번만 부품을 받는다는 의미와 같다. 황 부장은이렇게 하면 협력업체가 6개월에 한 번만 해당 부품 생산라인을 돌리고 나머지 기간에는 자주 사용되는 부품 생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모니터링과 관리다. 제품을 아무리 잘 분류해놨더라도 현재 재고가 얼마나 쌓여 있고 목표치에서 얼마나 부족한지 파악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제까지는 주문을 받은 후에야 생산에 돌입했고 주문량을 채우는 것을 생산의 최종 목표로 했기 때문에 재고를 별도로 관리하거나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재고를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일정량을 유지하기로 계획한 만큼 전체적인 물량을 파악하는 일은 필수였다.

 

제품 관리를 위해 도입한 것이 POP(Point Of Production) 시스템이다. POP 시스템은 물류 전체의 모든 자재 이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시스템이다. 지정된 위치마다 부품 상자에 부착된 바코드를 스캐닝하고 이렇게 파악한 데이터를 메인 시스템으로 전송해 부품의 입출고를 파악한다. 하루에 몇 상자가 들고나는지 체크하는 것은 물론 부족하거나 남는 부품을 신속하게 파악해 보완할 수 있다. 흔치 않기는 하지만 수요 변동 등으로 A그룹이었다가 C그룹으로 떨어지는 부품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럴 때 즉시 목표치를 달리하고 창고에 현재 얼마나 재고가 쌓여 있는지를 파악해 다음 생산 또는 주문에 반영할 때도 요긴하다. 이 과정에는 2009년 전면 개편한 Web-van 시스템이 활용됐다. 최신 IT를 활용해 인프라를 구축해둔 덕에 바코드를 스캐닝하는 신규 시스템과 연계해 전체적인 물류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일이 한층 수월했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협력업체와의 협업이었다. 대성전기 내부의 POP 시스템과 협력사와의 Web-van 시스템이 하나로 결합되고 정보와 물류 흐름이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으려면 전체적인 과정에 대한 하위 협력업체들의 이해와 공감이 필수였다. 이전까지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재고 관리를 시스템화하는 일도 협력업체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했다. 협력업체의 생산기지에서부터 바코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정확한 재고 파악에 제한이 있다. CEO가 직접 나섰다. 매주 협력사와 대화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 달에 한 번씩 QnA Day를 열고 활발한 토의의 장을 만들었다. 물류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전 시스템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새로운 시스템의 장점은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거나 관심이 없던 협력업체들이 CEO가 직접 나서서 설명하는 자리에 수시로 참여하면서 점차 자세를 달리했다. 새로 도입되는 바코드 스캐닝 시스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사내 물류점검회의는 2010년 내내 매일 열렸다. 물류 변동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신규 시스템에 대한 내부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도 강하게 작용했다. 전날 상황을 파악하고 재고 관리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나누는 회의가 매일 아침마다 열렸다. 안팎의 회의를 합하면 2010∼2011 2년 동안 가진 회의만 1100회에 육박한다. 그만큼 대화와 토의가 활발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생산기지 조정을 통한 리드타임(lead time) 단축

 

리드타임을 줄이고 생산을 효율화하기 위해 생산기지의 위치를 조정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즈음이다. 대성전기는 1991년과 2003년 중국 칭다오와 우시, 2곳에 현지 법인을 세운 바 있다.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당시만 해도 중국 인건비가 한국에 비해 크게 낮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산한 부품을 중국으로 보내 조립하게 하면 물류비용을 제하고도 원가 절감이 가능했다.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 중국의 인건비가 꾸준히 올랐다. 연평균 15%씩 상승했다. 전사적으로 추진하던주문 변동성에 대한 유연성 제고에도 중국에서 조립해 다시 들여오는 방식은 방해가 됐다. 여기서 부품을 만들어 중국까지 보내는 데 2개월, 다시 들여오는 데까지 또 2개월이 걸렸다. 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다른 대안 없이 무조건 비행기를 띄워야 했다. 평상시 물류비에 긴급수송비를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마이너스였다. 대성전기는 중국에 부품을 보내 조립하던 물량을 전부 국내로 돌렸다. 중국 법인은 현지 수요를 뚫어 자체적으로 운영하게 했다. 이 같은 조치는 리드타임을 평균 52일에서 10일로 단축시키고 연간 7억 원에 달하던 긴급물류비를 1000만 원 수준으로 절감시켰다.

 

또 다른 축은 수도권에 몰려 있던 생산기반을 고객사 인접지역으로 이전시킨 일이었다. 대성전기는 본사가 있는 아산을 거점으로 두고 인근지역에 대부분의 생산업체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물류비용 감축과 고객사 응대 강화를 위해 본사 이외의 지역에 거점을 신설하기 시작했다. 내수 물량의 18%가 최대 고객사인 현대차가 공장을 두고 있는 울산 지역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해 부산 지역의 신규 협력사들을 발굴해 계약을 맺었다. 아울러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해 바로 조립할 수 있도록 고객사 근처에 새로운 생산기지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연간 물류비 28억 원, 업무출장비 15000만 원을 줄일 수 있었다.

 

효과 및 시사점

 

물류 체계 혁신의 효과는 직접적인 경비 절감과 직원과 협력사, 고객사들의 만족도 향상으로 나타났다. 부품 운송은 정기 노선과 긴급 노선을 이용한다. 정기 노선은 장기 계약을 맺고 매일 일정시간 일정 무게의 트럭이 정해진 곳을 왕복하는 것이다. 계획에 따라 생산되고 운송되는 부품은 정기 노선을 타고 운반된다. 하지만 시간이나 무게를 맞추지 못한 물량이 발생하면 긴급 노선을 이용해야 한다. 말 그대로 예상치 못한 긴급 상황에 이용하는 운송이다. 급하게 용차를 추가로 부르는 일은 약과다. 전용기나 긴급 선박을 띄우기도 하고 정말 급하면 특급 운송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때 들어가는 비용을 긴급물류비라고 하는데 물류 시스템 정비 후 긴급물류비가 매출액 대비 차지하는 비중이 2.8%(2010)에서 1.6%(2012)로 낮아졌다. 미리 만들어 둔 재고에서 출고되느냐, 즉석에서 만들어 급하게 나가느냐를 측정하는 재고출하율은 같은 기간 50%에서 95%로 높아졌다. 미리 만들어 저장해둔 재고에서 출고되는 비율이 두 배 가까이 높아진 셈이다. 고객사 납기를 맞추기 위해 협력업체에서 입고되는 시간을 기준으로 측정하는 야간 입고율은 44%에서 5%대로 떨어졌다. 오후 8시 이후까지 남아서 물건을 받는 비율이 하락했다는 의미다. 잔업과 야간작업 비중이 줄면서 툭하면 연장 근무를 해야 했던 납품 담당자들의 업무 만족도는 크게 높아졌다.

 

협력사 및 고객사와의 관계도 좋아졌다. Web-van의 중앙 시스템은 대성전기가 관리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이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협력사들이 이전보다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하루, 일주일, 한 달, 6개월 단위로 필요 물량이 정해져 있고 들고나는 부품과 부족량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주문을 받을 때마다 물량을 맞추느라 연장 근무 또는 밤샘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납기를 맞추는 정확도가 높아지면서 고객사 만족도가 높아졌음은 당연한 결과다. 대성전기가 추진한 물류 혁신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과감한 의사결정과 즉각적인 실행 우선 적자를 기록하는 중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투자자금에 여유가 없었지만 IT 인프라를 구축하고 재정비하는 데 자원을 투입했고 시장 다변화를 위해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매출이 마이너스인 상황에 대대적인 IT 인프라 개보수에 나서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같은 결단은 자동차시장이 되살아났을 때 급격히 늘어난 수주 물량을 흡수할 수 있는 물류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됐다. 아울러 새로 확보한 고객사 덕분에 시장 회복기에 점유율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었다.

 

생산기지의 현지화 역시 과감한 의사결정에서 비롯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중국 시장 상황이 달라지고 자체적인 생산계획을 세워 운영하겠다는 목표가 분명해지자 대성전기는 중국에 위치한 공장을 국내로 옮겨오는 결단을 내렸다. 국내 각 공장과 협력사 입지를 고객사 주변으로 옮기는 변화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장 위치를 변경하는 일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는 리드타임과 물류비, 재고수량 등을 대폭 감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목표에 맞게 실행방안을 짜고 수립한 방안을 즉각 행동에 옮기는 과감함과 유연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확한 문제 파악과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 수주 변동성이 커지면서 물량을 제시간에 대지 못하는 날이 늘자 대성전기는 일단 정확한 사태 파악에 착수했다.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고질적인 수급 미스매칭(miss matching)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대성전기는 물류체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틀을 다시 짜야 한다고 판단했다. 가장 먼저 한 작업이 명확한 기준을 세워 들고나는, 혹은 현재 보유한 부품의 종류와 양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부품을 파악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대성전기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출하량과 출하빈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부품을 A, B, C, D 네 그룹으로 나눠 관리하기로 한 점이다. 200개에 육박하는 전체 부품을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관리하기는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비슷한 특징을 지닌 부품들을 그룹 단위로 관리하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부품 종류별로 출하량과 출하빈도에 따라 최적화된 계획을 가능하게 했고 체계적인 재고관리의 핵심이 됐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모든 부품의 스케줄링을 연계하고 통합해 공급망 전체를 관리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협력업체와의 협업 강화 자동차 산업은 기업 간 수직관계가 복잡한 특성을 지닌다. 이 때문에 상하위 협력업체들과 손발이 맞지 않으면 궁극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 대성전기는 재고 관리 시스템을 효율화하기 위해 하위 단계 협력업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CEO가 직접 나섰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CEO가 주재하는 간담회가 2010년 한 해에만 24회 열렸다. 한 달에 2차례씩 꾸준하게 대화의 장을 열었다는 의미다. CEO가 직접 안건을 챙기면서 간담회에 대한 관심과 집중도가 한층 더 높아졌다. 협력업체들과의 잦은 만남을 통해 Web-van을 도입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 모두에게 이롭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명했고 협력업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기존 시스템에 익숙해 있던 협력업체들이 차츰 관심을 높였으며 이는 대성전기가 구축하고자 했던 효율적 물류 시스템을 갖추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acchoi@snu.ac.kr

최종학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 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동시에 받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숫자로 경영하라>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가치평가>가 있다.

 

  • 최종학 최종학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 경영대학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회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우수강의상과 우수연구상을 다수 수상하는 등 활발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1, 2, 3, 4, 5권과 『재무제표분석과 기업가치평가』, 수필집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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