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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Interview 비제이 고빈다라잔 교수

역혁신 원한다면 방금 화성에 착륙했다고 가정하라

김선우 | 137호 (2013년 9월 Issue 2)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세준(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최윤영(Assumption대 국제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비제이 고빈다라잔(Vijay Govindarajan) 다트머스대 터크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의리버스 이노베이션(역혁신)’은 지금까지의 혁신에 관한 선진국 중심의 생각을 180도 바꿔놓은 이론이다. 역혁신은 미래의 기회는 선진국 시장이 아니라 신흥개발국 시장에 있으며 신흥개발국에서 이뤄진 혁신, 즉 역혁신이 결국 선진국 시장으로 역류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고빈다라잔 교수는 선진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가격이나 성능을 낮춰 신흥시장에 내놓지 말고 신흥개발국의 니즈에 맞는 제품을 현지에서 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 1월 말 롯데 전 계열사의 팀장급 직원 2000여 명은 고빈다라잔 교수의 책 <리버스 이노베이션(Reverse Innovation)>을 선물로 받았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원서로 이 책을 먼저 읽어본 뒤 아시아 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는 롯데에 시사점이 많은 내용이라고 생각해 임직원들에게 추천한 것이다. 신 회장은 책을 사서 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8월 고빈다라잔 교수를 직접 초청해 롯데 임직원들 앞에서 강연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고빈다라잔 교수는 길지 않은 23일간의 방한 일정 동안 2번에 걸쳐 롯데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혁신과 전략에 대한 강연을 했다. 1990년대에 한국을 딱 한 번 방문한 이후 롯데그룹 강연을 위해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고빈다라잔 교수를 826일 만났다.

 

당신은 대표적인 전략과 혁신 전문가다. 전략은 무엇이고 혁신은 무엇인가?

 

전략은 미래의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미래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다르게 말하면 바로 혁신이다. 그리고 혁신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새롭고 다른 것을 하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전략=미래의 리더십=변화에 적응=혁신이다. 그러므로 전략은 곧 혁신이다.

 

기업경영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단어 중 하나가 혁신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혁신은 말한 바와 같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변화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모든 혁신은 이 적응의 과정에 해당한다. 어떤 산업들은 다른 산업들보다 빠르게 변하지만 변화가 없는 산업은 없다. 그러므로 혁신은 절대 없어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아마 기업들 중에는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모르는 기업도 있겠지만 혁신 없이는 생존할 수가 없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역혁신이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기업들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혁신을 한 후 제품을 인도와 같이 가난한 나라로 들여와서 팔았다. 역혁신이란 이러한 과정을 완전히 반대로 하는 것이다. 가난한 국가에서 혁신을 한 뒤 선진국으로 제품을 가져가 판매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혁신이 시사하는 바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역혁신은 기업들이향후 수십 년간 걸쳐 가장 큰 기회는 비소비 계층을 소비 계층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회를 잡기를 원한다면 근본적으로 혁신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혁신에 대한 정의는 더더욱 많은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적게 쓰면서 혁신을 이뤄야 한다. 혁신이라는 것은 들어가는 비용 대비 가치이고, 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 가격은 극적으로 낮추면서 높은 질과 극대화된 성능 및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역혁신을 이루면 세계적인 문제인 불균형을 줄일 수 있다.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역량과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기업들에 이러한 역량, 기술, 인력을 활용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불균형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역혁신의 핵심이다.

  

비제이 고빈다라잔(Vijay Govindarajan)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전략과 혁신 전문가다. 인도에서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해 인도 기업에 취직한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택한 건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책 덕분이었다. 고빈다라잔 교수는 자신이 기술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회계학을 인간의 행동에 건설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이라고 주장한 로버트 앤서니(Robert Anthony)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책을 읽은 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학자의 길을 걸었다. ‘역혁신(Reverse Innovation)’ 개념으로 2011년 영향력 있는 경영 대가 50(Thinkers 50) 3위에 올랐으며 GE의 전속 교수 겸 최고 혁신 컨설턴트를 지냈다. 저서로는 <리버스 이노베이션> <퍼펙트 이노베이션> <늙은 코끼리를 구하는 10가지 방법> <스텔라는 어떻게 농장을 구했을까> 등이 있다. 새 책 <혁신하려면 실행하라> 9월 출간됐다.

 

비용만 낮추면 역혁신이라고 할 수 있나?

 

역혁신이라는 것은 단순히 비용만 낮추는 것은 아니다. 고품질의 서비스를 굉장히 낮은 비용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 훨씬 더 많은 것을 더 적은 것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빈곤국의 비소비 계층이 요구하는 질은 선진국의 부유한 소비계층이 요구하는 질보다도 훨씬 더 높기도 하다. 의족의 예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서 의족 구매자는 잘 포장된 도로를 걷게 될 것이다. 하지만 태국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비포장 도로를 접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의족은 손상되기 쉽다. 또 태국은 미국과는 달리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주로 바닥에 주저앉아 일을 한다. 또한 태국 국민의 9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의족을 착용한 채로 농사 일을 해야 하는데 젖어 있는 논에서 의족을 착용하고 활동하기는 매우 불편할 것이다. 더불어 태국 사람들은 단순히 자전거를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보지 않고 생계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 나무를 타야 하는 일도 많기 때문에 의족을 하고 나무를 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국에서의 의족은 2만 달러에 이르는 선진국의 의족보다 훨씬 더 높은 질을 요구한다. 그러나 30달러 이하의 가격으로 이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비용 대비 높은 질을 제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가 실현해야 할 역혁신의 본질이다.

 

혁신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합해서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역혁신을 실행하기가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역혁신을 실행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실행이 핵심이다. 혁신은 그냥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실제로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혁신은 가난한 나라에서 혁신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에는 그런 국가들에 자원을 배치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서 혁신을 시작한다고 하면 아프리카에 제조, 마케팅 등의 기능들을 배치해야 한다.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예를 들어 미국 회사는 미국 땅에 앉아서 아프리카에서의 혁신을 주도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혁신은 되지 않는다. 실행의 가장 중요한 사항은 혁신하고자 하는 국가에 어떻게 자원을 배치시키느냐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아프리카에서 혁신을 이뤄내고 싶다면 거기에 R&D 기능을 만들고 현지인들을 채용해야 한다. 최고경영자들 또한 그곳에 가서 현지의 이슈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의 자원에 있다. 그리고 의사결정도 현지에서 이뤄져야 한다. 미국 같은 곳에서 온 전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해외 지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외의 많은 이유로도 기업들이 의사결정권을 내려놓기는 매우 힘들 것 같다.

 

통제력을 내려놓는 것과 결정의 대리권을 주는 것은 다르다. 결정권한을 부여하면서도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지금 당장 기존의 결정권자가 그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지 않을 뿐이다.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은 의사결정 구조가 중앙 집중화돼 있다. 결정권한을 넘겨주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언제나 통제력을 잃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한다. 하지만 요지는 의사결정과정을 현지화시키고도 현지 의사결정자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이 있을 것 같다.

 

어떤 혁신의 실행이든 전담팀이 필요하다. 신흥국가에서 혁신을 진행할 것이라면 신흥국에 혁신팀을 만들어야 한다. <리버스 이노베이션>에서는 이를 로컬성장팀이라고 불렀다. 로컬성장팀은 소규모 다기능 조직으로 모든 경영기능을 갖추고 전략을 수립하고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하는 폭넓은 권한을 갖고 있다. 로컬성장팀을 만들 때는 세 가지 원칙이 있는데 우선 조직을 신생 기업을 창립하는 것과 같이 백지 상태에서 설계해야 한다. , 신흥시장의 니즈를 이해하는 사람과 신흥시장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이뤄져야 한다. 둘째, 로컬성장팀은 글로벌 조직과 연결돼 있어서 전체 조직의 자원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로컬성장팀은 통제된 실험을 실시해야만 한다. 통제된 실험, 작은 실패들을 통해 알지 못하는 것을 빨리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로컬성장팀이 한 곳에서 성공했다면 다음 단계의 혁신을 통해 로컬성장팀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GE의 초음파 기기 사업은 방사선과, 순환기내과, 산부인과의 3개 세그먼트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중국 시장을 겨냥한 소형 초음파기기 개발을 시작했을 때 GE는 기존 3개 조직이 신규 사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GE는 소형 초음파기기 개발업무를 독자적으로 맡는 팀(로컬성장팀)을 중국 우시에 만들었다. 이 팀은 제품개발, 공급사슬, 제조, 마케팅, 판매, AS까지 모든 것을 갖췄다. 이 팀은 현지 시장 상황에 정통한 인재를 채용했고 글로벌 경쟁 기업인 지멘스나 필립스에서 직원을 고용하는 대신 중국 경쟁업체인 민드레이에서 인재를 유치했다.

 

<리버스 이노베이션>에 보면 신흥시장에서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방금 화성에 착륙했다고 가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썼다.

선진 시장에서 성공을 누렸던 기업들이 성공방식을 내려놓고 신흥시장에서 백지 상태로 다시 시작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미국에서 성공하면 그 성공 자체가 문제를 만들어버리는 거다. 미국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했던 일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겸손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겸손하지 않다면 신흥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방법들, 접근법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겸손이 핵심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달라.

 

겸손에 더해 사고방식(mind set)을 바꿔야 한다. 우선 신흥시장으로 중심을 이동시켜야 한다. 여기서 중심이동이란 인적자원, 권한, 자금, 관심을 성장의 기회가 있는 곳으로 옮긴다는 얘기다. 그리고 신흥시장에 관한 지식과 전문가를 증가시켜야 한다. 임직원들의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마인드 셋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들이 신흥시장 또는 빈곤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줘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에 확 띄는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서 직원들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GE의 최고경영진 600명은 전략상 우선 순위를 논하기 위해 매년 플로리다에서 글로벌 리더십 회의에 참석하는데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2008년 이 자리에서신흥시장 최강자 되기라는 주제에 하루를 할애하며 18건의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한 적이 있다.

 

실패 사례도 많을 것 같다.

 

다국적 기업들이 현재는 역혁신 기회를 잡는 데 뒤처져 있다. 오히려 성공적인 다국적 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이는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마인드와 논리의 문제다. 미국의 마인드 자체가 자신들의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성공적인 미국 기업일수록 비소비 계층을 소비 계층으로 전환시키는 데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식의 마인드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미국식의 마인드를 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글로벌 브랜드인 켈로그는 35년 전에 인도 시장에 진출했는데 5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인도에서의 매출이 500만 달러라면 거의 입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침 식사 시장은 가장 크고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시장인데 왜 그럴까? 신흥시장에 접근을 할 때 미국적인 마인드와 미국에서 썼던 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이었다. 켈로그는 인도 시장에서망고 콘플레이크’ ‘바나나 콘플레이크등 다양한 것을 첨가한 나름의 현지화된 콘플레이크를 판매 중이다. 하지만 켈로그는 인도인들이 아침에 따뜻한 식사를 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래서 시리얼에 따뜻한 우유를 붓는다. 콘플레이크의 종류와 상관 없이 뜨거운 우유를 부어버리면 다 불어서 눅눅해져 버리고 만다. 그것을 누가 먹고 싶어 할까. 미국 시카고 켈로그 본사에 앉아 있는 매니저는 인도에서의 500만 달러의 매출이 괜찮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인도인들이 점점 더 세련돼지면 이런 식사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누가 더 교양 있고 세련돼지는가를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느냐 말이다.

 

켈로그의 영업조직은 인도에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현지 켈로그에서도 이미 미국 본사에 뜨거운 우유를 부어버리면 맛이 없어져 버리게 때문에 수요가 적은 것이라고 얘기를 했다. 시카고에 있는 경영진은 이러한 얘기를 이미 다 들었지만 이러한 보고를 듣고도왜 우리가 수억 달러를 들여 따뜻한 우유를 부어도 맛있는 시리얼을 만들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미 우위 순위가 있고 진행 중인 다른 프로젝트가 많다고 대응했다. 자신들의 전략보다는 오히려 인도인의 아침 식사 습관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아침 식사를 미국인처럼 먹도록 교육시킨다면 달라질 것이다라는 사고를 했기 때문에 인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난하지만 소비 계층이 아닌 것은 아니다. 빈곤층이지만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적정 가격만 제시한다면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60억 명에 달하는 이들이 현재는 비소비 계층이지만 앞으로 소비 계층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있다. 켈로그 외에도 할리데이비슨, ESPN 등은 글로벌 시장 전략을 그대로 신흥시장 옮겨가서 구사했기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신흥시장 내 소비 계층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해결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노키아는 인도 시장에서 혁신을 통해 성공했지만 지금은 부진하다. 반면 애플은 역혁신을 잘 실행해나가고 있는 회사라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재 성공을 누리고 있다.

 

노키아는 신흥시장에 집중을 했지만 스마트폰에서 좋은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 차리지 못했다. 반면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의 리더다. 그러므로 애플에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나 역혁신은 중요하지 않다. 노키아는 부유한 고객층을 공략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놓쳤다. 그들은 그저 신흥시장에만 집중했다. 역혁신이 중요하다고 해서 신흥시장, 가난한 나라에만 올인 하는 것은 위험하다. 선진국 시장도 중요하다.

 

애플도 더 이상 시장의 리더는 아니다. 애플은 요즘 그들이 더 이상 중국이나 인도에서 리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런 시장에서는 저비용의 경쟁자들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한동안 매우 잘해왔으나 삼성 또한 다른 기업들에 추격을 당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에는 더 낮은 비용으로 경쟁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태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성도 더 분발해야 한다.

 

삼성이 중국과 인도에서 맞고 있는 여러 기업의 도전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

 

중국과 인도 시장 모두에 삼성보다 더 낮은 가격 수준을 내세우는 경쟁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삼성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능 대비 가격 측면에서 얼마나 더 내려갈 수 있을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에 있는 스마트폰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얼마나 비슷한가?

 

모든 제품이 같은 성능을 지닐 필요는 없다. 미국에서 500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판매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인도의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면 500가지 기능이 모두 필요하지는 않다. 그들은 그냥 5가지 기능만 필요할 수도 있다. 그 스마트폰은 매우 좋은 품질의 제품이기는 하지만 인도의 시골 사람들에겐 나머지 495가지 기능은 쓸모가 없다. 고가의 스마트폰들은 다양한 옵션이 있지만 모두에게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가격을 더 떨어뜨릴 수 있는 기능이 적은 제품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품질은 좋아야 한다. 인도의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도 나쁜 품질을 원하지는 않는다.

 

같은 성장시장, 또는 신흥시장으로 분류되더라도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가들이 존재한다. 역혁신의 틀 안에서 각 국가에서 조금씩 다른 전략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모든 신흥시장이 같지는 않다.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또한 신흥시장 안에서도 고가 지향의 고객들이 존재한다. 인도에서만 해도 미국의 부유한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제품을 구매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10%는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신흥국가들을 세그먼트로 나눠야 한다. 국가별로 나눠서 어디에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 통하고 어디에 정반대의 전략을 취해야 할지 파악해야 한다.

 

역혁신이 일어나기 위한 선행조건이 있을까? 역혁신은 많은 기업들이 적용해볼 수 있는 매우 좋은 틀이지만 모든 기업들과 모든 국가에 적용 가능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 제품이 이미 너무 세계적이어서 역혁신이 필요가 없는 산업들이 있다. 다른 산업에 제품을 판매하는 전형적인 B2B 회사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소비재의 경우 역혁신의 적용 범위가 훨씬 넓다. 소비자들은 시장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에 어떻게 역혁신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궁금하다.

 

역혁신을 처음 떠올린 것은 GE에서 일할 때였다. 인도에서의 혁신 방안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을 때다. 얼마 지나지 않아 GE팀은 인도의 시장이 낮은 가격과 동시에 비교적 높은 품질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우리 팀은 그러한 괜찮은 품질과 낮은 가격의 제품을 만든다면 곧바로 높은 품질 수준을 요구하는 미국에 적용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챘다. 높은 품질과 낮은 가격은 선진국들에게도 매우 매력적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역혁신의 발상을 떠올렸다.

 

럭셔리한 브랜드가 신흥시장에 들어가 역혁신을 하려고 하면 브랜드 가치가 손상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나?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브랜드로 진출을 해볼 수 있다. 기존 브랜드와 같은 이름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도요타는 렉서스라는 브랜드로 고가 시장에 진출했다. 기존에 중저가의 차를 만들다가 다른 브랜드 이름으로 고가의 차량을 팔 수 있었다.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저가 시장으로 그렇게 진출을 해야 할 것이다. 진출하지 않으면 현지의 기업들이 그 시장을 차지할 것이다.

 

역혁신과 Bottom of the Pyramid 이론을 비교해 달라.

 

둘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역혁신의 전제조건은 가난한 국가에서 혁신을 진행해 그 결과물을 더 잘사는 국가들로 가지고 오는 것이다. 인도와 같은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고객들을 한 10가지군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은 이 중 상위 10%만을 위해 해외시장에 진출한다. 하지만 Bottom of the Pyramid는 하위 30%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상위 10%와 하위 30% 사이에는 middle of the pyramid라는 커다란 중간층이 존재한다. 핵심은 고객이 누구이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에서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에 해주고 싶은 충고의 말이 있다면?

 

한국 기업들에 세계화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작은 나라기 때문이다. 내수 시장에서는 할 것이 많이 없다. 비록 세계화 전략 중의 하나지만 정말 성공적으로 역혁신을 이뤄내고자 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통제력을 내려 놓을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의사결정권을 쥐고 싶어 하지만 놓아줘야 한다. 핵심은 현지 자원의 배치와 현지 인력의 활용과 그들에게 자율권을 주고 스스로 혁신하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신흥시장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요즘 성장이 더뎌진 것 같다. 글로벌 금융 및 재정 위기의 여파가 주 원인이겠지만 전망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모든 것들은 더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인도와 중국이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크다. 그들은 지금까지 열심히 성장해왔고 항상 중요한 위치를 지킬 것이다. 물론 모든 국가들이 균등하게 성장하지는 않으며 신흥시장들을 한 바구니로 묶어서 볼 수는 없다. 또한 다음에 주역이 될 국가는 어디일지를 고민해보는 것도 매우 좋은 일이다. 어떤 국가들이 20년 전의 인도나 중국처럼 될지 고민해보고 그런 국가들에 인도와 중국이 했던 과정들을 대입해보는 거다.

 

역혁신을 믿지 않는 기업도 있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일본 경쟁자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일본 회사들은 싸구려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1980년대에 와서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역사 속에는 문제를 부인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이러한 사례들이 굉장히 많다. 정말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면 성장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성장은 혁신이 필요한 세계 어딘가에 꼭 있다. 이것이 성장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고향인 인도에서 회계사로 성공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미국 유학에 도전했고, GE 회장 제프리 이멜트와의 30분 일대일 면담 요청으로 GE 최초의 전속 교수가 되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한국의 경영인들이나 학생들에게 기회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해달라.

 

기업가정신을 갖추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사람들은 기업가정신을 갖추고자 노력해야 한다. 창업을 한 사람들에게만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업가정신은 현재 자신이 가진 자원을 넘어서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한다. 기업가들은 강한 동기와 용기, 위험을 포용할 담력들을 지니고 있다. 그게 내가 권하고 싶은 덕목이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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