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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e View: 방찬영 키멥대 총장 인터뷰

“부패한 나라일수록 비리 찾는 능력도 발달 오히려 투명성과 직원 교육으로 승부하라”

이방실 | 133호 (2013년 7월 Issue 2)

 

 

중앙아시아 최초의 서구식 대학인 카자흐스탄의 키멥대(KIMEP University) 총장 방찬영. 웬만한 카자흐스탄 국민들이라면 다 아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방 총장은 과거 미국 샌프란시스코대에서 공산주의 경제를 가르치던 경제학자였다. 샌프란시스코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을 겸임하며 구소련 개방 및 개혁에 대한 자문을 하던 그는 1989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첫 인연을 맺는다. 이후 1991년 카자흐스탄 대통령 경제 담당 특보를 맡으며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 나라를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특히 진정한 경제 개혁을 위해선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보고 1992년 카자흐스탄경영경제전략대학(Kazakhstan Institute of Management Economics and Strategic Research, 현 키멥대) 설립에 앞장섰다. 이후 1997년 공개입찰을 통해 학교를 인수했고 2002년엔 국립대에서 사립대로 전환시켰다.

 

현재 키멥대는 카자흐스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최고 명문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러시아가 공용어인 카자흐스탄에서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 수는 약 8000. 졸업생들의 6개월 내 취업률은 무려 90%가 넘는다. 대부분 P&G, 언스트앤영 등 카자흐스탄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기업에 취직해 카자흐스탄의 시장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웬만한 서구 명문 대학에 버금가는 높은 학비( 8000달러)로 카자흐스탄 일각에선귀족 학교라고까지 불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든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을 할 때왜 국립대학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데 키멥처럼 높은 취업률을 달성하지 못하는가라고 질책을 할 정도다. 사회 지도층 재능기부 단체인 ㈔창조와혁신의 공동대표이기도 한 방찬영 총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구소련 시절의 공산주의 잔재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서구식 대학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키멥대가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하다.

 

투명성을 지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게 주효했다고 본다. 설립할 때부터 그저 그런 대학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는 위대한 대학을 목표로 잡았다. 이런 꿈을 실현하려면 가장 먼저 전 세계에서 뛰어난 교수들을 영입해야 한다. 그러려면 높은 보수를 주고 실력에 응당한 대우를 해 줘야 한다. 당연히 학비를 높게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비를 많이 내는 걸 좋아할 학생들은 없다. 이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그래서 키멥대는 대학에서 결정하는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 학생들을 참여시킨다. 예산위원회 구성 시 30%의 투표권을 학생 대표들에게 준다.왜 그렇게 높은 등록금을 내야만 하는지에 대해 학생들에게 속속들이 공개한다. 최상의 교육을 받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점도 설득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어떨 때는 반나절 내내 학생들과 토론해야 한다. 하지만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같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하며 설득해 나가면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 지난해 키멥대 1년 평균 학비는 7500달러였고 올해는 8000달러가 좀 넘는다. 카자흐스탄의 경제 규모를 고려했을 때 상당히 비싼 액수다. 하지만 학생들이 모두 수긍해 등록금 인상에 동의했다. 이는 등록금 인상이라는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 거쳐야 하는 중간 의사 결정 과정에 학생들을 동참시켰기 때문이다.

 

학교 경영이나 기업 경영이나 조직을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똑같다고 본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투명 경영을 이야기할 때 결과만 공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큰 착각이다. 진정한 투명성은 조직 내 의사 결정 과정의 모든 단계에 구성원들을 참여시켜 의견을 공유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일련의 의사 결정 과정 속에서 각 단계마다 나오는 정보를 공유하고 그로 인해 그런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바로 투명 경영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선 조직 구성원 간 두터운 신뢰 관계가 먼저 구축돼 있어야 한다. 노사 간의 갈등은 대부분 양자 간 신뢰가 부족하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투명 경영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왜 그렇게 높은 등록금을 받아야 하는지, 왜 등록금을 10%씩 인상해야 하는지, 그런 과정에 대한 정보 공유와 명확한 설명 없이 경영진끼리 모든 의사 결정을 내리고 일방적으로 결과를 통보하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투명 경영이 개도국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에 특히 중요하다고 보나?

그렇게 볼 수 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투명 경영은 중요하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같은 개도국에서 외국 기업이 들어와 비리를 저지르면 문제가 정말 많이 생긴다. 카자흐스탄의 경우 공산주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래서 사업을 하려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공무원들이 뇌물을 요구하는 게 관례로 돼 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이에 제대로 대처하는 방법을 잘 몰라 비자금을 조성해 뇌물을 주다가 결국 큰 화를 입곤 한다.

 

개도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중 상당수는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면서 공무원들에게 사업 인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뇌물을 주는 게 당연하고 이를 위해 비자금 조성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큰 잘못이다.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르라는 건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라는 의미이지 법을 어겨가며 옳지 않은 일을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비자금 조성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피해야 한다. 최근 한국에서 모 대기업 ceo가 비자금을 조성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유감이다. 경영자라면 모름지기 정직하고 청렴한 경영을 통해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더 나아가 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회사의 번영과 직원 복지를 위해 쓸 돈을 훔쳐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재벌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아 유감이다. 매우 비극적인 일이다. 이래서는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없다.

 

물론 개도국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공무원의 허가가 필요하므로 일정 금액의 사례를 안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그렇더라도 합법적인 방식을 취해야지 비자금을 조성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개도국 현지에 있는 로비 회사에 컨설팅 비용 등으로 합법적 용역 계약을 맺고 그 용역 회사에 대관 업무 전체를 맡기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사회 문화적 특성상 공무원들에게 촌지를 줘야만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구조라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비리가 만연한 국가일수록 그 비리를 찾아내는 일에도 귀신 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방식으로 정부에 뇌물을 주게 되면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집중 감리 대상이 되고 결국 나중에는 그 비리가 족쇄로 작용한다. 돈은 돈대로 주고 화는 화대로 입는 꼴이다.

 

 

 

 

카자흐스탄에 진출하려는 국내 기업들에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현지화를제대로해야 한다. 보통 한국 기업들이 현지화에 대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현지 사람들을 채용만 하면 끝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접근이다. 물론 현지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 개도국과 한국 간 경제수준 차이로 한국 사람을 개도국으로 데려가 근무를 시키려면 카자흐스탄의 경우 1년에 1인당 최소 10∼15만 달러를 써야 한다. 집도 줘야 하고 자동차도 제공해야 하고 비서와 통역까지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돈이 너무 많이 든다. 현지인을 채용할 경우와 비교해 최소 4∼5배 정도 비용이 더 소요된다. 이런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더욱이 현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현지인을 채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문제는 현지인들의 생산성이다. 대개 개도국 시장의 현지인 수준은 한국인들에 비해 낮다. 한국 사람들이 한 시간이면 끝낼 일을 두 시간, 세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못 끝낸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들이 현지화를 한다고 현지인을 채용한 후 생산성이 낮아서 못 해먹겠다고 푸념하기만 한다. 그럴 시간에 현지인들에 대한 교육 훈련을 통해 그들의 생산성을 높일 생각을 해야 한다. 카자흐스탄처럼 키멥 같은 서구식 대학이 현지에 있다면 그런 교육기관과 연계해 교육을 하면 된다. 만약 믿을 만한 전문 교육기관이 현지에 없다면 한국 본사에 다만 몇 개월이라도 데려가 집중 훈련을 시켜야 한다. 단순히 현지 채용만 해 놓고 끝내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직원들의 능력 계발을 위해 힘써야 한다.

 

뿌리 없는 나무가 오래 가지 못하고 쓰러지듯이 외국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그 나라 문화를 잘 이해해 현지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이는 절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먼저 응당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현지인들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 훈련에 힘쓰는 것도 그중 하나다. 당장 돈을 벌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이곳에서 남길 수 있는 유산(legacy)이 무엇일지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생각해야 한다.

 

한국 기업 중엔 아직도무대포경영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업체들이 있는 것 같다. 유전 개발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제지업체가 신성장 동력 발굴이라는 미명으로 카자흐스탄 광구 개발에 뛰어든다든지 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개도국이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닌데 A나라에서 성공했으니 B나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신시장 개척에 나서는 업체들도 종종 있다. 이런 업체들의 공통점은 그 나라 문화를 깔본다는 것이다. 물론 조직 운영 방식이나 경영 노하우, 경영 시스템은 개도국보다 한국의 시스템이 훨씬 앞서 있다. 따라서 이런 원칙들은 본사인 한국의 시스템을 개도국으로 들여오는 게 맞다. 하지만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개도국 경제 수준에 맞춰 채산성 있는 사업을 하기 위해선 현지인을 고용하고,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현지인들의 생산성을 높여 나가는 현지화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오랫동안 조직을 이끌어 왔다. 본인이 생각하는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인가?

한 가지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하고 싶다. 카자흐스탄 교육부는 걸핏하면 키멥대의 교육 관련 면허를 정지시키곤 한다. 학생 1인당 확보해야 할 공간 면적이 좁다느니, 도서관 장서 보유 수량이 적다느니 하는 식의 이유를 들어 인가를 취소하곤 한다. 키멥대가 훌륭한 대학이라고 칭송받고 있긴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를 시기하고 질시하는 세력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교육 관련 면허 4개가 모두 취소됐다. 상황은 이랬다. 카자흐스탄 교육부에서 구소련 시절 규정을 들어 교육 기관 명칭에 대학(university)이란 이름이 없으면 대학원을 운영할 수 없다고 물고 늘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출범 초기 ‘institute’로 출발한 키멥도 명칭을 바꿔 키멥대학으로 바꿨다. 그랬더니 이번엔 이름이 바뀌었으니 과거 키멥 시절에 허가했던 교육 관련 면허를 모두 취소했다. 이는 곧 일반 교육기관, 대학 면허, 대학원 면허, 교육부 인준 등 학위를 수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인허가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인허가 작업은 아무리 일사천리로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석 달 이상 걸린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당장 졸업식도 할 수 없고, 이사회도 열 수 없으며, 신입생도 받을 수가 없다. 심지어 교육부는 총장인 나에 대해 형사 고발도 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과거 대학(university)이란 명칭 없이 ‘institute’라는 단어를 썼던 키멥 시절에 석사, 박사 학위를 수여한 것은불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위기에 직면하자 나와 함께 학교 경영을 맡고 있는 부총장 휘하 교수진은총장을 구속시킬 수는 없으니 실무 담당자들을 해고하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의견을 표명해 왔다. 하지만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그들에게내가 이 세상에서 못 해본 게 단 하나 있는데 키멥 때문에 감옥 가는 일이다. 이번 일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책임이다. 만약 이 문제로 감옥을 가게 된다면 더할 수 없이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엄두도 못 냈던 운동 실컷 하면서 편안하게 기숙사 생활한다고 생각하면 그뿐이다라고 농담까지 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을 얘기하자면 석 달 만에 필요한 교육부 인가를 모두 받아내 졸업식과 이사회, 신입생 선발 모두 정상적으로 다 해냈다. 나도 무사하다. 리더에겐 기본적으로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부하들에게저 사람이라면 지옥에라도 따라갈 수 있다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카리스마를 가지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용기란 남들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고 모든 것은 리더의 책임이라고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자세,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갖는 태도를 뜻한다. 아무리 나쁜 소식에 직면하더라도 농담을 할 수 있고, 아무리 두려운 일이 벌어져도 웃어 넘길 수 있는 유머와 배짱이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리더십이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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