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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ential Cases in Books

속도의 시대, 달팽이는 살 수 없다 컴퓨터를 생선처럼 팔아라

서진영 | 132호 (2013년 7월 Issue 1)

 

 

()의 본질(本質)을 파악하라. 늘 듣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까. 늘 차별화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 경영진이 회사의 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제록스는좋은 복사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사무실의 효율을 올리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생각했고 사무기기 종합업체로 성장했다. 소니는 소비자에게즐거움을 파는 것을 업으로 생각했고 영화와 음악, 게임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이처럼 회사가 업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회사의 발전방향에 많은 영향을 준다.

 

코카콜라의 전 회장인 로베르토 고이주에타(Roberto Goizueta)는 시장을 단순히 탄산음료시장에 한정하지 않았다. “코카콜라의 경쟁상대는 다른 탄산음료가 아니라 모든 음료수다. 모든 음료수와 경쟁했을 때 우리의 시장점유율은 40%가 아니라 3%밖에 되지 않는다.” 시장을 넓게 정의한 코카콜라는 사업을 다른 음료시장까지 넓혀서 새로운 매출을 창출했고 현재 비탄산음료 부문에서 매출과 이익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내고 있다.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업의 개념을 다시 정의해서 위기를 극복한 사례도 있다. 할리데이비슨은 다른 모터사이클업체들의 등장과 자동차의 보편화로 사업이 위기에 처하자 자기들의 사업을운송수단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하며 차별화에 성공했다. 그런데 앞에서 업종 정의와 관련한 사례를 4개나 살펴봤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개념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을까. 국내 사례는 없을까. 한국 기업의 사례를 통해 업의 본질에 관해 생각해 보자.

 

이명우 박사는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4년간 근무하면서 주로 해외영업을 담당한 마케팅 전문가다. 미국의 가전사업을 총괄하는 부문장으로 활약했다. 그의 저서 <적의 칼로 싸워라(문학동네, 2013)>에서는 컴퓨터 판매업의()의 본질생선 장사로 밝히고 있다. 1990년 여름 삼성전자 영국법인에서 가전제품을 위주로 영업하던 이명우 박사는 컴퓨터와 정보통신제품의 유럽판매 책임자(독일 주재)로 발령을 받았다. 가전을 담당하던 사람이 정보통신 제품의 책임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지 3년째로 컴퓨터사업을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컴퓨터 부문의 해외 사업은 아직 준비단계였다. 막중한 책임을 안게 된 이명우 박사는 유럽 총괄법인 설립과 유통망 확보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해 겨울 가장 큰 위기가 발생한다. 해외사업장을 순방하며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사업장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이가전 하던 사람이 여기 왜 있어요?”라고 질문한 것이다. 가전과 컴퓨터는 일견 비슷한 제품같지만 이 회장은 엄연히 다른 제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가전부문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단순히 자리만 옮겨 가전제품과 똑같은 방식으로 컴퓨터를 판매하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당장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요. 그리고 외부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데려오도록 해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자네 생각은 어떤가?” 만약 이 마지막 질문이 없었다면 이명우 박사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대답은 이렇게 이어진다.

 

“한 6개월 정도 일하다 보니 제가 이전에 하던 가전제품 영업이 건어물 장사라면 새로 시작한 컴퓨터 영업은 생선 장사쯤 된다는 감을 익힌 것 같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생선 장사를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가전과 컴퓨터 정보통신을 각각 건어물과 생선 장사에 비유한 것이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컴퓨터 영업을 생선 장사에 비유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당시 새롭게 태동하던 컴퓨터시장은 기존의 다른 어떤 제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유럽법인이 설립됨과 동시에 286컴퓨터의 판매목표가 할당됐는데 판매하기까지 생산 6주와 창고입고 6주 등 총 12주가 소요됐다. 막상 제품이 도착했을 때는 더 이상 286컴퓨터를 팔 수 없었다. 유럽 각지의 거래처들에서는 고객들이 새로 출시된 386컴퓨터를 찾으니 286컴퓨터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해당 내용을 본사에 보고했더니 이미 알고 있었다. 그동안 시장이 바뀌어서 그런 것이라며 다시 만들어 보내겠다고 했다. 12주 뒤 386컴퓨터가 도착했지만 시장은 또다시 변해 있었다. 불과 3개월 사이에 386보다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새로운 표준이 돼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시장이 바뀌는 셈이었다. 컴퓨터사업에서는 무엇보다 제품의신선도가 중요했다. 이명우 박사는 신선도가 사업 성공의 주요 키워드라는 점에서 컴퓨터와 생선 장사가 같다고 본 것이다.

 

이에 더해 이명우 박사가 컴퓨터 사업을 생선 장사에 비유한 것은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품이나 사업의 특성에 따라 판매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건어물은 비교적 유통기간이 길어서 가격이 낮을 때는 그냥 보관하고 있다가 명절이나 성수기에 높은 가격으로 팔 수 있다. 하지만 생선은 싱싱할 때 바로 팔지 않으면 제값 받기가 어렵다. 신선하게 유통하기 위한 운송방법과 보관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배경으로 가전과 컴퓨터가 제품은 비슷하게 보이지만 건어물과 생선의 판매처럼 그 성공요인은 다르다는 것을()’의 개념과 연결해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것은 취임 초기부터 업의 개념을 설파한 이건희 회장의 말과도 상통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냥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업의 개념을 명확히 해야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보인다.”

 

이건희 회장은 컴퓨터 사업을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주목하면서도 컴퓨터사업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기존 가전제품과 같은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던 것이 못마땅한 마당에 이명우 박사의건어물과 생선비유가 와 닿았던 것 같다. 이 박사는 그 자리에서 계속 일할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본사 컴퓨터사업 부문과 유럽법인은컴퓨터=생선이라는 업의 개념을 바탕으로 기존의 판매전략과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제품을 발주하고 실제로 창고에 도착할 때까지 걸리는 리드타임(lead time)을 줄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정확한 수요예측과 생산 관리의 유동성 제고, 물류 관리의 혁신 등으로 기존 생산과 판매방식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기존의 가전제품은 선박이 주 운송수단이었지만 컴퓨터제품은 운송기간을 줄이기 위해 선박항공혼용(sea&air, 예를 들어 서울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비행기로, 거기서부터 유럽까지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 등의 대체운송 방법을 본격 개발했다.

 

이렇게 가전제품에 대비해 컴퓨터 사업에서 업의 본질을생선 장사로 명확히 정의하고 나자스피드 경영전략이 나타난 것이다. 이어지는 사업의 성공. 그런데스피드를 업의 본질로 정의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한국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한국의빨리빨리경쟁력을 <한국의 황제경영 VS 일본의 주군경영(김현철 지음, 강신규 옮김, 21세기 북스, 2011)>에서는요시노야와 국밥, 누가 더 빠른가라는 질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일본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요시노야(吉野家)라는 패스트푸드점이 있다. 요시노야는 불고기덮밥 전문점이다. 맛이 있을 뿐 아니라 한정된 메뉴만을 취급하기 때문에 주문하면 금방 음식이 나온다. 밥 위에 고기만을 얹으면 되기 때문이다. 24시간 영업을 하고 가게의 회전율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가격 또한 저렴하다. 요시노야의 기업 슬로건은빠르고 싸고 맛있게.

 

요시노야가 한국에 진출한 적이 있다. 한국에는 쇠고기를 먹는 문화가 있으니 일본식 노하우만 잘 활용하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시도는 참담하게 무너졌다. 요시노야는 2007년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한국 국밥집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밥은 큰솥에 한가득 끓여놓은 음식이라 주문을 하기가 무섭게 음식이 나온다. 이에 비하면 요시노야는 전혀 빠르지 않다. 자동식권 판매대에서 무엇을 주문할지 한참 헤맨 다음에 식권을 구입하면 차가 나온다. 그리고 음식을 주문하면 밥을 넣고 불고기를 얹은 다음 여러 가지 반찬을 차려 함께 제공한다. 일본인에게는 대단히 빠른 서비스지만 한국인에게 이 정도의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요시노야와 국밥의 스피드 차이가 도요타자동차와 현대자동차의 경쟁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10년 도요타자동차는 대량 리콜 사태를 일으켜 미 하원청문회에서 해명을 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몰렸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원인에는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구원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도요타자동차가 지나치게 확대 노선을 추구한 데 있다. 도요타가 타격을 입었던 이유는지나친 복잡화에 원인이 있다. 도요타는 계열화를 유지하려고 자동차 모델을 계속 늘린데다 해외시장을 확대하면서 거래 관계가 굉장히 복잡해졌다. 다수의 모델 × 다수의 부품 × 다수의 시장의 형태로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졌다. 이렇게 되자 완벽주의로 일관하던 도요타조차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리콜 사태가 일어난 뒤 오랫동안 문제 발생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반해 현대자동차는소수의 모델 × 소수의 부품 × 다수의 시장이라는 형태를 취했다. 자동차 모델 수는 기아자동차까지 더해도 10여 개밖에 되지 않았다. 부품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플랫폼을 공유하면서 현대모비스를 통해 모듈로 구입해서 그 수를 줄였다. 거기에다 시장 자체도 미국과 중국, 인도, 유럽, 동유럽, 중남미 등 여섯 개 권역의 국가에 한정해서 도요타자동차보다 적은 수의 시장을 공략했다. 이 때문에 모든 현장의 상황을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 둘 수 있었고 즉시 원인을 밝혀내 신속하게 대응해서 기업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스피드의 현대가 복잡성의 도요타를 이긴 것이다. 이렇게 스피드를 업의 본질로 삼을 때 우리만의 경쟁력이 나타난다. 오늘날의 비즈니스는 업의 개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바탕으로 살아 있는 생선을 제때 전 세계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업체들만이 생존하는 환경이 됐다. 바로 스피드가 업의 본질로 등장하는 시대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국내 전자회사들이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세계 TV시장과 휴대전화 시장을 석권한 사례도 이런 스피드에 관한 업의 개념에 충실한 사례다. 경쟁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공급망관리(Supply Chain Management·SCM)의 혁신을 이뤄냈고 TV와 휴대전화의 세계시장 석권은 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팔고 있는 것은 건어물인가, 아니면 생선인가. 우리는 대부분 생선을 팔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산업과 기술, 고객의 욕구, 외부환경 등이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하면서 핵심역량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업의 개념을 스피디(speedy)하게 끊임없이 재창조하며스피드(speed)’를 경쟁력의 원천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있다. 신작로가 깔리고 차들이 다니기 전까진 달팽이가 가진 두 개의 예민한 더듬이는 생존에 충분한 감각기관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어 8차선 대로가 뚫리고 16톤 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이 도로 위를 달팽이가 두 더듬이에만 의존해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명확한 업의 본질의 재정의스피드. () 읽고 행복하시길….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sirh@centerworld.com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과 인사 전문 컨설팅 회사인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이면서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를 운영하고 있다.

 

 

  • 서진영 서진영 | - (현) 자의누리경영연구원(Centerworld Corp.) 대표
    -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경영 서평 사이트(www.CWPC.org)운영 - OBS 경인TV ‘서진영 박사의 CEO와 책’ 진행자
    sirh@center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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