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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e View 베벌리 아쇼카 글로벌마케팅 부사장

‘자폐증=긍정적 산만함’ 생각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이방실 | 126호 (2013년 4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별(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씨가 참여했습니다.

 

 

지난 5일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국제 비영리조직 아쇼카(Ashoka)의 한국 지부가 공식 출범했다. 1980년 출범한 아쇼카는 사회적기업가(social entrepreneur)라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정립하며 사회 혁신 분야의 글로벌 리더 역할을 해왔다. 그동안 그라민뱅크의 창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를 포함해 전 세계 70여 개 국에서 약 3000명의 사회 혁신가들을 아쇼카 펠로(Ashoka Fellows)라는 이름으로 발굴해 지원해 왔다. 2012년 말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전 세계 사회적기업가 30인 가운데 11명이 아쇼카 펠로 또는 아쇼카 출신 직원일 정도다. ㈔아쇼카한국 출범 및 아쇼카 펠로 18명의 혁신 사례를 소개한 의 한국어판 출간 기념 행사를 겸해 방한한 베벌리 슈왈츠(Beverly Schwartz) 아쇼카 글로벌 마케팅 부사장을 만났다. 슈왈츠 부사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최근 의 한국어판 <체인지메이커 혁명>을 내놓았다. 원서 제목인리플링(Rippling)’과 한국어판 제목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는 어떻게 연결되나.

빈곤이나 불평등, 부당함과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인의 행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바꿔놓음으로써 결국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뜻한다. 창의적인 기업가가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그것만으로 사회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는 없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변화의 물결에 동참할 때에만 온전한 사회 변혁이 가능하다. 마치 연못에 돌을 던지면 잔물결(ripple)이 일면서 호수 전체로 파문이 확산되는 과정과 같다. 혁신은 단지 개별 기업가에 의해서만 확산되지 않는다. 기업가를 둘러싼 주변인들이 변해야만 한다. 그 사람들이 변화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이렇게 해서 변화된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변화를 일으켜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체인지메이커라고 부른다.

 

한 사람이 동시에 창의적 기업가이면서 체인지메이커가 되기란 힘들다. 기업가는 사람들에게 그들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체인지메이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 연못에 던져진 돌처럼 기업가는 잔잔한 수면에 처음으로 물결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건 물 위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체인지메이커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두가 창의적 기업가에 반응해 변화를 함께 이끌어 나아갈 때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기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아쇼카가 지향하는 목표이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다.

 

아쇼카 펠로 18명을 인터뷰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내가 만난 아쇼카 펠로들은 모두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뚜렷한 목적의식(purpose)을 갖고 있다. 뜨거운 열정(passion)을 갖고 소신껏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특히 사회 혁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남들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과 새로운 패턴(pattern)을 만들어낸다. 지속 가능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참여(participation)를 이끌어냄으로써 연못에 물결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이를 요약하면 ‘4P’로 정리할 수 있다. , 모든 아쇼카 펠로들은 목적(purpose), 열정(passion), 패턴(pattern), 참여(participation)라는 4가지 공통된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 나름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전 세계 곳곳에서 사회혁신을 이뤄가고 있지만 그들 모두 4P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사회 혁신가들이라 할 수 있는 아쇼카 펠로들은 낡은 사고방식의 틀을 바꾸는 데 아주 탁월하다. 예를 들어 남들은 장애로 인식하는 자폐증도긍정적인 산만함(positive distraction)’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앞을 못 보는 이들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맹인이기 때문에 무엇을 못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앞을 못 보기 때문에 무엇이 가능한가에 초점을 맞춘다.

 

낡은 사고방식의 틀을 바꾼

사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자폐증이 있는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해 컴퓨터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토킬 손(Thorkil Sonne)의 예를 들어보겠다. 덴마크의 사회적기업가이자 아쇼카 펠로 중 한 명인 토킬 손은 직원들을 자폐증 환자가 아니라 전문가라고 본다. 그가 회사를 창업하며 사명을스페셜리스트라고 이름 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토킬 손은 자폐 성향 사람들의 집중력과 세심함이 일반인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봤다. 그리고 소프트웨어에서 버그(bug)를 잡아내는 컴퓨터 컨설팅처럼 사회에 이들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고 보고 사업화했다. 자폐증을 갖고 있는 스페셜리스트 직원들은 특별 취급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컨설턴트라고 불린다. 이는 자폐증을 장애로 보는 시각에서 그 장애가 만드는 경쟁력에 주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일 DSE(Dialogue Social Enterprise)의 창립자이자 또 다른 아쇼카 펠로 중 한 명인 안드레아스 하이네케(Andreas Heinecke)는 장애란 무언가를할 수 없게 된(disabled)’ 것이 아니라다른 쪽으로 능력을 지닌(differently abled)’ 것이라는 신념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DSE에선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침묵 속의 대화(Dialogue in Silence)’ 같은 독특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예를 들어 어둠 속의 대화는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암흑의 공간을 일반인들이 시각장애인 안내자의 인도에 따라 경험해 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와중에 그들을 안전하게 이끄는 시각장애인들을 접하게 되면다른 쪽으로 능력을 지닌 사람들정상인들보다 얼마나 유능해질 수 있는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두 경우 모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단 정상인들이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 앞 못 보는 이들과 만나서 그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만남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도록 만들기란 힘들다. 당연히 사회에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스페셜리스트의 컨설턴트 대부분은 고객 회사에 가서 일반인들과 섞여 근무한다. 스페셜리스트의 고객사 직원들은 자폐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이들에게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지시를 내려주기만 한다면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 힘들어 하고, 확 트인 넓은 공간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사실도 알아가며 그에 맞춰 사무실 인테리어를 조정하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도 좀 더 신경을 쓴다고 한다. 자폐 동료들과 일하면서 그들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고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의 능력을 존중하며 스스로도 변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서로 만나 상대방의 세계를 경험해보는 게

중요하다지만 일반인들이 장애인과 함께 동등한 입장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도록 만들기는 쉽지 않다.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사업 제안을 통해 상호 가치(mutual value)를 창조하는 게 중요하다. 스페셜리스트의 비즈니스 모델을 예로 들어보자.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빠질 수 없는 과정이 바로 버그를 찾아내는 일이다. 제품을 출시했을 때 작동이 실패하거나 오작동할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프로그램 소스 코드나 설계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나 오류를 찾아내야 한다. 문제는 이 작업이 매우 지루하기 짝이 없다는 데 있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일반인 대부분은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폐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일에 엄청나게 몰입하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한다. 토킬 손은 바로 이 점을 간파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 냈다.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을 고용했으니 잘봐달라는읍소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 사업자로서 매우 설득력 있는사업 제안을 한 것이다. 이건 고객사 입장에서도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양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점을 정확하게 끄집어 내 사업화한 경우다. 토킬 손은 자폐증 환자가 병자가 아닌 전문 컨설턴트로서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든다는 그 자신의이상적 생각과 꼭 필요하지만 누구나 하기 싫어 하는 일을 책임지고 대행해 주는시장의 요구를 동시에 추구해 리플리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관습적 사고를 바꾼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기존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공감(Empathy) 능력이다. 내가 인터뷰했던 아쇼카 펠로 모두 공감에서부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회적기업가도, 체인지메이커도 될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이들이 사회의 주변부와 외곽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했다면 자신들이 기존에 하던 일이나 관습, 생각들을 바꾸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공감 능력이라는 게 사람들을 책상에 붙들어 맨 후 칠판에 적어가며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공감이 일으키는 효과들을 직접 보고 느끼게 되면 스스로 공감 능력을 터득하게 된다. 일단 일반인과 장애인이 먼저 만나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고 이야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쇼카 펠로 중 하나로 공감의 뿌리(The Roots of Empathy)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메리 고든(Mary Gordon)공감 능력은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주변을 통해 노출됨으로써 습득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 사람들에게 공감 능력을 키우도록 직접 가르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이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주변에서 보게 되면 스스로도 공감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누군가 넘어졌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주변에 그냥 서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비웃기도 한다. 하지만 그중 어떤 사람이 넘어진 이에게 다가가 그 사람이 일어나는 걸 도와주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치자. 주변에 방관자로 서있던 사람들도 이 사건을 목도하면 뭔가 느끼는 바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비슷한 상황을 목격하게 되면 그저 주변에 서있거나 비웃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쇼카에서 초등학교 수준에서의 공감능력 개발 프로젝트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려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세상에 긍정적인 체인지메이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공감능력 배양교육이 필요하다는 게 아쇼카의 믿음이다.

 

물론 관습적 사고를 바꾸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나의 경우, 사물을 바라볼 때 기존과는 다른 시각을 갖기 위해 왜 꼭 이래야 하는 건지, 꼭 이 방법밖에는 없는 것인지, 변화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이 세 가지 질문을 늘 던진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 노숙자나 시각장애인을 보더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왜 저 사람은 집도 없이 길거리에서 돈을 구걸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훈련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한 걸까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하려고 노력해 왔다.

 

바람직한 사회적기업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회적기업가정신의 정의는최종 목표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아이디어. 물론 이때 아이디어는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 혁신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그 목적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돕기 위한 것이라면 그 형태는 어떤 모습을 취하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NGO의 형태를 띨 수도 있고 영리 법인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아쇼카는 정부로부터 단 한 푼의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다. 미국 정부뿐 아니라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통화기금(IMF) 등 유사 정부 기관으로부터도 일절 지원을 받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아쇼카의 취지에 공감하는 기업가나 민간 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는다. 그들은 모든 이들이 체인지메이커가 되기를 꿈꾸는 우리의 비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고 기꺼이 돈을 내놓는다. 한국에서도 ㈔아쇼카한국 출범을 계기로 정부 지원에 의존하기보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에 공감해 도움을 주고자 하는 민간 파트너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사회적기업가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한국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나는 스스로를 사회적기업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회사를 창업한 적도 없다. 대신 사내 기업가(intrapreneur)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나는 언제 어느 곳에서 일하든지 패턴과 시스템을 바꾸는 일에 주력해왔다.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현재 당신의 삶을 포기할 필요도, 당장 사회적기업을 창업할 필요도 없다. 지금 현재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다. 기존에 고착화돼 있는 패턴을 바꿀 수 있느냐의 문제다. 새로운 패턴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 내에서 사회적 인식을 환기시키는 게 중요하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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