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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한국벤처농업대학

농민에게 전략과 마케팅 심어, 열정과 감동의 열매 수확하다

이방실 | 123호 (2013년 2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조은영(연세대 사회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모든 문제는 한 분야에서만 바라보면 새로운 발상을 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발상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열린 마음()으로 시대 흐름에 앞서가며, 새로운 생각이 숨어 있다면 작은 것()이라도내 것으로 만들고, 한국 농업이 지닌 고유의 색을 찾아내는() 실천 전략을 통해 길러지는 것입니다.”

 

한국벤처농업대학(학장 김동태·전 농림부 장관)이 내놓은 2013년 신입생 모집 안내문 내용의 일부다. 2001년 시작해 올해로 13년째를 맞는 한국벤처농업대학은 지금까지 수많은스타 농업인을 배출한부자 농부들의 사관학교로 불린다. 연간 15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청매실농원 대표인 홍쌍리 여사,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농업 벤처기업으로는 최초로이노비즈(혁신기업)’ 인증을 받은 장생도라지 대표인 이영춘 사장 등이 모두 한국벤처농업대학 출신이다. 1년 과정으로 운영되는 비()인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졸업생 수는 무려 1000여 명에 달한다. 1기 졸업생 수는 총 27명에 불과했지만 10년 뒤인 11기 졸업생 수는 185명으로 늘었다. 모두연개소문(連開小紋)’ 전략을 통해 위기에 빠진 한국 농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려고 한국벤처농업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학생들의 면면도 다채로워졌다. 1∼2기 학생들만 해도 쌀, 버섯, 인삼, 오미자 등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민이나 농업 관련 기업 종사자들이었지만, 지금은 대형마트·홈쇼핑 업체 직원, 공무원, 대학 교수, 의사 등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양적인 측면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균형 있는 성장을 일궈내고 있다는 증거다. 권영미 한국벤처농업대학 사무국장은벤처농업대학 신입생 정원은 150명이지만 매년 600∼700명이 지원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인가도 받지도 않은, 어찌 보면 그저 그런 민간 스터디 모임에 불과할 수 있었던 한국벤처농업대학이 해마다 눈부시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DBR에서 분석했다.

 

농촌봉사 사조직에서 출발한 한국벤처농업대학

한국벤처농업대학은 1996년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당시 수석연구원)가 주도한 농촌 봉사단체유산(流山)마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95년 일본 도쿄대에서 농업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민승규 전무는 주말마다 경기도 인근 농촌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처음엔 단순히 농촌을 알고 싶다는 이유에서 개인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농촌과 농업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연구소 직원들 10여 명을 규합해 유산마을을 조직했고 동료들과 함께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체계적인 봉사 활동에 나섰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활동은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교육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전국적으로 다양한 정보 네트워크가 빠르게 확산돼 나가고 있었지만 농촌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가장 시급한 게 정보활용능력이라고 판단한 민승규 전무는 1997년 당시 연구소에서 쓰던 오래된 컴퓨터 15대를 경기도 화성시 남양면 농협에 기증했다. 지역 농민들을 대상으로 PC 활용 및 농업정보화 교육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민승규 전무는처음에는 농민들이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왔다는 소리를 듣고 컴퓨터 장사나 하러 온 것 아니냐는 오해를 했다이렇게 시작한 일이 결국 3년 동안 이어졌고 100명이 넘는 농민들이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산마을의 봉사활동은 3년 넘게 이어졌다. 급기야 2000년에는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벤처농업에 대해 설명하는 대규모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전국에서 250여 명의 의식 있는 농민들이 모여들었고집단 시위나 국민 정서에 호소하는 시대는 지났다” “정보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스스로 변신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농민들을 회원으로 하는 한국벤처농업포럼(www.vaf21.com)이 출범한 것도 이때다. 농업 분야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농민들 간 아이디어와 정보를 교환하고 사업에 필요한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게 주 목적이었다.

 

한국벤처농업포럼의 운영을 맡은 민승규 전무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농민들을 위한 오프라인 교육시설 설립을 주도했다. 농민들에게 경영 전략과 마케팅 교육만 체계적으로 시킨다면 농업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산업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바로 한국벤처농업대학이다. 커리큘럼 기획 등 제반 운영은 한국벤처농업포럼 운영진이 맡기로 했다. 민승규 전무의에 빠져 10년 넘게 다니던 농촌진흥청을 그만두고 아예 농업과 예술을 접목한 전시기획 전문 벤처기업 에이넷디자인앤마케팅을 창업한 권영미 대표가 무보수로 사무국장 자리를 맡아 안살림을 챙기기로 했다.

 

포럼 운영진은 가장 먼저 정부를 포함해 일절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오직 학생들의등록금만으로 대학을 운영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벤처 정신에 위배된다는 판단에서였다. 교육 기간은 총 1년으로 잡았다.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오다 보니 자주 모이기가 쉽지 않은 만큼 한 달에 한 번씩 수업을 하되 학생들 간 밤새도록 깊은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12일 과정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수업은 민승규 전무를 포함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및 대학 교수, 기업체 마케팅 실무자, 법률 전문가, 방송국 PD 등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들을 강사로 초빙해 진행하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받은 등록금은 숙식비와 교재비로만 쓸 뿐 강사료는 한 푼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벤처농업대학은 특히 신입생 선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스타 농업인 양성이 목적인 만큼될성부른 떡잎자질을 갖춘 농업인만 엄선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한국벤처농업대학 전임 교수로 자원 봉사 중인 남양호 한국농수산대학 총장은어차피 모든 농민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키는 건 불가능한 만큼선택과 집중원칙에 따라 성공사례를 만들 가능성이 높은 농민들을 우선 선발하는 전략을 택했다숫자는 적더라도 농업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하나둘 씩 나오기 시작하면 나머지 농민들은 쉽게 따라올 것이라고 보고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서류 전형과 면접을 통해 명함과 e메일이 없는 사람은 무조건 탈락시켰다. 비즈니스를 할 기본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만든 기준이었다. 외부 지원 한 푼 없이 대학을 운영하는 것처럼 신입생들에게도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똑같이 내세웠다. , 숙식비와 교재비를 포함한 수업료 전부(1기 입학생 기준 1인당 67만 원)를 학생들이 자비로 부담하도록 했다. 정부 지원금을 받아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교육에 참석하려는 학생들은 애초에 경쟁력 있는 사업가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동기부여도 돼 있지 않다고 보고 만든 원칙이다. 무슨 일을 하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안일한 농민들을 걸러내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2001 527, 대망의 첫 수업이 충남 금산군 제원면의 한 폐교(옛 금강초등학교)에서 시작됐다. 충청도는 물론 경기·강원·전라·경상도 등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이등교했다. 2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첫날 수업은농업도 진정 홍보가 우선이다벤처농업을 위한 디자인의 이해등 두 과목. 80여 명의 농민 학생들은 선풍기 두 대가 돌아가는 허름한 시골 초등학교 강의실에 옹기종기 앉아서 강사로 초빙된 현직 방송국 PD와 전문 그래픽디자이너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학생들은 밤 늦도록 교실을 떠나지 않고 한국 농업의 한계를 극복할 마케팅 기법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였다. 인근 여관방에서 잠을 청한 학생들은 이튿날 다시 등교해한국 벤처산업의 전망과 사업 전략등의 수업을 들으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캠퍼스는커녕 변변한 강의실조차 없었지만 학생과 교수들의 열정만은 남부러울 것 없는 대학이었다.

 

 

 

 

농민들에게 전략과 혁신, 마케팅을 논하다

‘새로운 기업가 전략’ ‘전략적 의지와 창의적 혜안’ ‘고객만족 관리 방안’ ‘고객 니즈와 유망상품 키워드’ ‘브랜딩 전략의 모든 것’ ‘마케팅 전략의 이해’ ‘마음을 사로잡는 고객서비스’…. 모두 한국벤처농업대학의 세부 교육 프로그램 이름들이다. 대부분 전략이나 혁신, 마케팅 관련 강좌로 강의 제목만 봐서는 이 커리큘럼이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농업교육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예상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남양호 총장은이제 농업도 단순 생산에 그쳐서만은 안 되고 유통과 판매까지 농부들이 기획하고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됐다농부도 경영자로서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제품에 디자인을 가미할 수 있는 기업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보고 만든 교육과정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 현재 한국벤처농업대학 수업은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3시부터 시작해 다음 날인 일요일 오전1130분에 끝난다. 제주도에서 매달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는 수강생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학생들이 어렵게 모이는 만큼 1 1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교수들의 강의와 학생들의 발표 및 토론이 쉴 틈 없이 이어지고 찜질방에서는 밤을 새 가며끝장 토론까지 벌어진다. 사실 찜질방은 학생들의 기숙사를 대신할 장소를 물색하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대안이었다. 학생 수가 50여 명 안팎이었을 때만 해도 여관에서 대충 숙박을 해결했지만 수강생 수가 100명 이상 늘어나면서 이마저 어려워졌다. 대규모 인원을 한데 수용할 숙박시설은 오로지 찜질방밖에 없어 숙소를 옮겼고 자연스레 철야 워크숍 분위기가 형성됐다. 민승규 전무는강의실과 찜질방을 오가는 12일의스킨십 강의와 토론이 벤처농업대학의 진정한 경쟁력이라며워낙 열띤 토론이 이어지다 보니 사실상무박2에 가깝다고 말했다.

 

도농(都農)을 가릴 것 없이 전국 각처에서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밤샘 토론 현장에선 엄청난 정보 교환이 이뤄지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샘솟는다. 농민, 농업벤처 기업가는 물론 한의사, 경찰서장, 공무원, 대기업 과장, 홈쇼핑 업체 MD 등 직종 불문의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 중 누군가나는 이렇게 했더니 잘 안되더라고 고충을 토로하면 곧바로 여기저기서 수십 가지 대안이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한국벤처농업대 12기 재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비즈니스모델클럽의 오창호 회장은농업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같은 지역에 살거나 동일한 작목, 비슷한 농산물을 재배하는 사람들과만 교류하게 되다 보니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하지만 이곳에선 여러 가지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인은 물론 농산물의 최종 소비자들이 사는 도시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어 다양한 사업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재학생은 물론 1000여 명에 달하는 졸업생 네트워크 덕택에 새로운 벤처 비즈니스를 시도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덧붙였다. 남양호 총장 역시각 지역에서 나름대로 내로라하는 우수한 학생들을 가려 뽑지만 정작 이들이 입학하면 주위에서 자신보다 훨씬 훌륭하고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학생들을 발견하고 서로 자극을 받는 분위기라며이른바 지역별무림의 고수들이 한데 모이다 보니 밤새 쉬지 않고 토론이 이뤄지며 아이디어의 융합과 재창조가 일어난다고 소개했다.

 

한국벤처농업대학 커리큘럼의 또 다른 특징은 농업과 문화, 예술의 접목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력계발을 돕고, 이를 마케팅 능력 강화로까지 연결시킨다는 데 있다. 해마다 학생들에게 농업과 예술을 접목한 전시회, 음악회, 패션쇼 등의 이벤트를 주도적으로 개최해 보도록 독려함으로써 자신이 직접 가꾼 농산물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방법에 대해 실습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 첫 출발은 2002 2월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한벤처농업과 문화벤처의 만남’부터 시작된다. 그림과 조형물이 자리잡고 있어야 할 화랑에 술상과 찻상, 음식상을 차렸다. 예를 들어, 조선의 궁중술인 가야곡왕주를 전문 도예가가 만든 대나무 청자 주기 세트에 담아 놓는 식이다. 진주 상황버섯차는 옻칠 찻잔에, 매실절임과 고추장 장아찌는 분청 그릇에 각각 담았다. 술과 차, 장아찌 등은 모두 한국벤처농업대학 학생들이 생산한 제품이고 주기 세트나 찻잔 등은 행사 취지에 공감한 도예가들이 선뜻 내놓은 예술 작품이다.

 

이후로도 한국벤처농업대학은인사동 블루스 (2003), ‘미술관으로 과일 따러 가자’(2004), ‘천년의 蔘木展’(2006), ‘미술관에서 보는 꿈의 대화- & 파머 스토리 전시’(2007) 등 스토리텔링 기법까지 적용, 해마다 농업과 예술을 접목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대형 마트나 지하철에서 흔히 접하는 ‘OO 농산물 홍보전같은 행사와는 제목부터 남다르다. 권영미 사무국장은소비자들에게 농산물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마케팅, 홍보 실전 훈련의 일환으로 농산물과 예술 간의 융합 전시회를 기획했다가판대에 수북이 쌓아 놓기만 하는 기존 농산물 전시회와는 천지차이인 품격 있는 전시회에 일반인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몰려 매번 성황을 이룬다고 귀띔했다.

 

자신이 직접 가꾼 농산물을 소재로 학생들이 연출하는 농산물 패션쇼 역시 한국벤처농업대학의 자랑거리다. 고추 농부는 고추를 가지고, 사과 농부는 사과를 소재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배추를 한 잎 한 잎 이어 치마로 만들어 입고 나오는 학생, 홍시를 모티브로 삼아 머리 장식을 만든 농민, 대추를 하나하나 이어 붙인 목걸이를 걸고 나온 농부 등 해마다 독특한 개성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세월이 지나면서 한국벤처농업대학은 커리큘럼을 계속 진화,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2010년 이후로는농식품경영(2011년부터 농식품가공 및 농식품생산으로 재편) △농촌관광경영수출농업경영 등 세부 전공을 나눠 세부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분과 토론을 유도하고 있다. 이 밖에 한국벤처농업대학 졸업자를 위한한국벤처농업대학원’, 귀농과 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을 위한한국예비농업스쿨’, 농가 맛집 운영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식문화스쿨등도 운영 중이다.

 

 

 

 

성공요인

한국벤처농업대학이 10년 넘게 생명력을 유지하며 날로 번창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타깃 고객인 농민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린 데 있다. 한국벤처농업대학 이전까지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와 정책은 대개 농민을 농업에 종사하는노동자로 봤다. 반면 한국벤처농업대학은 농민을 농업이라는 비즈니스에 종사하는사업가로 정의했다. , 농민을 단순히 몸만 쓰는 육체 노동자에서 창의력과 혁신을 핵심 역량으로 삼는 지식 경영인으로 새롭게 규정했다.

 

농민에 대한 정의를 달리 내리다 보니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서비스의 초점도 달라졌다. 과거 농민 대상 교육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은 주로 생산성을 높여주는 영농 기술이 전부였다. , 작물 생산을 효과적으로 늘리기 위한 기술, 기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 토양의 질을 높이는 방안, 미생물 배양 기술 등 주로 노동자 농민으로서의 생산력 향상을 위한 기술 교육에 치중돼 있었다. 농민을 노동자로 봤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다. 하지만 한국벤처농업대학에선 사람들을 관리하고 설득하는 방법, 농작물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판매하는 기술 등에 대해 가르쳤다. , 이전까지 고객이나 시장에 대한 생각 없이 무조건 생산하기에 급급했던 농업 분야에 경영 마인드의 중요성을 불어넣은 것. 이전엔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교육을 접하게 된 농민들은 폭발적으로 환호했다. 소비자 니즈에 맞는 상품을 전략적으로 기획하고 스토리텔링 기법을 입혀 멋지게 홍보하고 포장하면 조금만 노력해도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게 농업이라는 사실도 비로소 깨달았다. 한마디로 한국벤처농업대학은 농민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잠재욕구(unmet needs)를 충족시켰다. 그 덕택에 정부 지원 한 푼 없이도 10년 넘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금껏 1000여 명이 넘는 졸업생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다양성에서 나오는 시너지 역시 핵심 성공 요인 중 하나다. 한국벤처농업대학 학생들은 연령, 경험, 출신지역 등 모든 면에서 천차만별이다. 강사들 역시 대학 교수, 기업가, 의사, 법률 전문가, 디자이너, 마케팅 전문가, 언론사 PD 등 스펙트럼이 넓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여러 주제의 강의를 듣고 난상토론을 한다. 이는 결국 지식의 융·복합으로 이어졌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이 활성화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열과 성의를 다하는 교수들의 진정성 역시 한국벤처농업대학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한국벤처농업대학 학생들이 입학해 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느끼는 반응은 한결같다. “도대체 저런 분들이 왜?”라는 의문이다. 사회·경제적으로 남부러울 것 없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번씩 어김없이 먼 길을 달려와 돈 한 푼 받지 않고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다. 단순히 한두 시간 때우고 가는 것도 아니다. 200여 명의 학생들과 찜질방에서 끝장 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회 각계각층에 있는 전문가들의 자원봉사는 그 자체로 농민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됐다. 이들의 진정성은 감동과 함께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한국벤처농업대학은 학생들을 감동시켜 이들을 학교의 충성고객(committed customer)으로 만드는 수준을 뛰어넘어 학생이 학교의 주인(customer owner)이라고 느낄 수 있게 했다. 우선무박2에 가까울 정도의 강행군을 통해 학생들 간 난상 토론을 벌이도록 함으로써 학생들 스스로 수업을 주도해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농업과 예술을 접목한 전시회나 패션쇼 등 각종 행사 역시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스스로 작품 활동에 참여해 보도록 했다. 이 행사들은 학생들이 실제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프랙티스 역할을 했다. 졸업 과제물 역시 향후 자신이 해나갈 비즈니스에 대한 계획을 동료와 교수들 앞에서 발표하게 함으로써 학교 수업과 행사를 자신의 생업과 동일시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통해 한국벤처농업대학은 필립 코틀러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가 기업이 고객과의 관계에서 추구해야 할 가장 궁극적인 단계로 꼽은주인으로서의 고객(customer owner)’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객들의 주인의식은 결국 한국벤처농업대학이 폐교 위기에 몰렸을 때 학생들이 사비를 털어 캠퍼스를 건립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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