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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애경 '트리오 곡물설거지'

합리적 가격의 ‘착한제품’ 주방세제에 구수한 바람을 일으키다

주재우 | 122호 (2013년 2월 Issue 1)

 

 

인지도는 높지만 저가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는 낡은 소비재 브랜드가 있다. 시장에는 매일같이 좀 더 세련된 신제품들이 쏟아지고 이 기업은 불과 2년 사이에 해당 카테고리에서 시장점유율 5분의 1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최악의 경제위기가 몰아쳐 시장의 소비심리는 바닥이다. 직원들이 머리를 짜내어 신제품을 기획했지만 경영진은 불경기에 추가 홍보비를 투입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외부 상황도 나쁜데 내부적인 지원마저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신제품으로 브랜드를 살려낼 수 있을까?

 

2008년 애경산업의트리오주방세제 브랜드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트리오는퐁퐁과 함께 오랜 기간 한국의 주방세제 시장을 양분해온 브랜드였지만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참그린(CJ)’ ‘자연퐁(LG)’ 등의 대기업 제품들에 급속도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2006년에 30%선을 유지하던 애경의 주방세제시장 점유율은 불과 2년 만에 24%까지 떨어졌다.

 

더군다나 2008년은 전 세계적인 호황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금융위기가 시작되던 때였다. 이러다 큰일 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리오팀이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것은 신제품트리오 곡물설거지뿐이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낡은트리오브랜드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또 상큼한 과일향에 투명한 제품들이 주방세제 시장을 이끌고 있는데곡물설거지는 텁텁한 누룽지향에 색깔도 불투명해 깔끔하지 못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불안 요소였다.

 

출시를 앞두고 마케팅팀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제품에 대한 신뢰, 팀원들의 열정과 주인의식, 그리고 행운이었다. 서울 서남부, 구로구청 앞에 위치한 애경산업 본사는 1981년에 지어진 아담한 6층 건물이다. 트리오가 탄생했던 애경의 옛 영등포공장 부지에서 멀지 않은 이곳은 한국 주방세제 산업의 역사와 함께해왔다는 자부심이 묻어 있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회사와 브랜드에 강한 애착을 갖게 된다. 고경표 브랜드 매니저를 비롯한 트리오팀은 경영진을 설득해서 이 제품을 시장에서 반드시 띄워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불황에서 궁여지책으로 만든저가마일드세제

1954애경유지공업으로 창립한 애경은 1956미향비누를 발매한 데 이어 1966년에는 영등포 공장에서 한국 최초로 주방세제트리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창업주인 채몽인 사장이 1970년 타계하자 당시 35살이었던 부인 장영신 씨가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이후 40여 년 동안 총매출 43000억 원(2011)의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주방세제 트리오는 1966년 출시된 이래 애경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마일드주방세제들이 등장하면서 시장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취향이 고급화되면서 세정력뿐 아니라 손에 자극을 덜 주는 고급 성분을 쓴 세제를 찾게 된 것이다. 애경의순샘’, LG생활건강의자연퐁’, CJ참그린등이 바로 이때 등장한 제품들이다.

 

마일드 세제들의 등장 이후 기존 퐁퐁과 트리오는 저가 제품군으로 분류돼 업소와 단체납품용 제품으로 포지셔닝하게 된다. 또한 2000년대 중반에는 마일드 카테고리에서 다시고가 마일드(프리미엄)’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등장한다. LG 생활건강의세이프가 대표적으로 이 고가품 시장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빠르게 성장하며 기존 업체들의 시장을 잠식했다.

 

한때 퐁퐁과 트리오의 단일 시장이었던 주방세제 시장은 불과 10년 만에 일반(저가), 마일드, 고가 마일드, 그리고 기타(할인점 자체 브랜드, 농축 세제 등) 4개 카테고리가 경합하는 복잡한 경쟁시장으로 진화했다. 특히 이 중에서도 마일드 부문이 덩치가 가장 컸다. 이 부문의 강자는 LG생활건강의 자연퐁이었다. 애경의 문제는 저가시장에서는 트리오가 확실한 브랜드파워를 갖고 있지만 마일드 시장에서는 순샘이 그만큼의 힘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LG생활건강과 CJ 등 경쟁사들이 대기업의 역량을 집중해 마일드 시장을 공략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애경의 전체 주방세제 시장점유율은 2006 30% 안팎에서 2008 24%선까지 떨어졌다.

 

돌파구는 신제품으로 찾아야 했다. 2007년 말부터 세계 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고경표 트리오 브랜드매니저(현재 제주항공 마케팅팀장)와 김광현 사원(현재 2080 치약 브랜드매니저)은 불황형 상품을 출시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시장에서 마일드 세제는 저가 세제의 평균 1.5배 정도의 가격으로 팔린다. 트리오팀은 이 50% 갭의 중간을 공략하는 것으로 전략을 세웠다. 마일드와 저가 카테고리 사이, 1.25배 가격대에 새로운 프라이싱 포인트를 잡았다. 2008 3월의 일이었다.

 

원가를 줄이되 새로운 가치를 준다

세제의 원가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계면활성제다. 석유를 정제해 나오는 계면활성제는 세정력에 관계된 부분으로 BASF, Shell 등 외국 기업들이 주로 생산하며 단가가 가장 비싼 원료다. 따라서 기존의 마일드 세제보다 가격이 저렴한 저가마일드 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계면활성제의 비율을 낮춰야만 했다. 마일드 세제인 순샘의 계면활성제 비율이 15%이니 원가 비율대로 하자면 새로운 저가마일드 세제의 계면활성제 비율은 12∼13% 정도가 적당했다. 또한 계면활성제는 그릇에 묻은 음식찌꺼기뿐 아니라 피부의 탄력을 유지시키는 기름기도 빼앗아가는 성질이 있으므로 화학적 계면활성제 비율을 낮춰 손에 자극을 덜 준다는저자극 친환경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을 수 있었다.

 

이제 당면한 문제는 계면활성제 비율이 적어도 그릇을 씻는 데는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연구소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세정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기존의마일드급 세제에 비해 거품이 덜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성질이 급해 설거지도 빨리빨리 끝내기를 좋아하는 한국 주부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하느냐는 것이 다음 문제였다.

 

계면활성제의 비율이 낮으면서 가격이 싸고 세정력이 다소 떨어지는 듯하더라도 구입할 만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제품 고유의 기능적 밸류가 있어야 했다. 단순히저자극 친환경이라는 구호만으로는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힘들다고 봤다. 이들은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곡물이라는 콘셉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연구소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시각적, 후각적으로 밀과 쌀누룽지의 느낌을 주는 세제 용액을 만들어냈다. 기존 세제들이 투명한 색깔과 상큼한 과일향이 나는 반면 ‘트리오 곡물설거지는 색깔도 희끄무레하고 냄새도 구수텁텁했다. 어차피 세척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면 색깔과 냄새 등으로 친환경, 저자극이라는 특성을 강조하기로 했다. “사실 이 제품은 순샘보다 거품이 덜 납니다. 이런 부분에서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감을 없애준 것이곡물로 설거지를 한다, 자연 친화적 성분을 가지고 설거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품이 덜 나더라도, 이것은 친환경 성분이니까 거품이 덜 나는구나라고 소비자들이 인정해 준 것입니다.” 이석주 전무의 말이다.

 

다음 결정해야 할 문제는 브랜드였다. 저가제품에서 쓰는트리오브랜드를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마일드 제품에서 쓰는순샘브랜드를 가져갈 것인가, 혹은 제3의 신규 브랜드를 론칭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결론은 트리오였다. 불황기에는 소비자들이 위험한 시도는 하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전통 있는 브랜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비자가 신뢰하는 전통 있는 브랜드가 필요하기 때문에 트리오를 사용하자고 했습니다. 트리오는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제품의 디자인은 기존의 순샘 브랜드에 못지 않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기로 했다. ‘트리오지만 트리오 같지 않게만들자는 기획이었다. 결과적으로 탄생한 최종 제품은 <그림 2>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이미지로 기존의 트리오 제품과는 확연히 차별되고 오히려 순샘 쪽에 가까웠다. 제품 출시는 2008 7월로 정해졌고 한 달 앞서 6월부터 시장에서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를 진행하기로 했다.

 

주방세제에 목장갑 사은품을?

 

제품을 새로 하나 내놓는 것과 그 제품을 시장에서 팔리게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주방세제 시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이 나온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와는 다르게 소비자들이 미리 제품의 성능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보고 구매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주부들은 쓰던 제품, 익숙한 제품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매장에 진열된 제품들을 보고 가격과 사은품, 전체적인 느낌 등을 보고 즉흥적으로 구매결정을 내린다. 따라서 매장에서 어떻게 진열하느냐, 또 가격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느

냐 아니냐가 매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성공할 수 없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신제품 출시와 함께 A&P (advertising & promotion·광고 및 판촉) 예산을 집행해 대형 유통채널로 밀어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트리오 곡물설거지팀은 그런 지원을 크게 기대할 수 없었다. 워낙 경기가 좋지 않았던데다가 대형 유통업체 입장에서도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카테고리의 제품을 밀어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이 제품에 A&P 예산을 많이 배정할 수 없었다. 또 고가도, 저가도 아닌 애매한 가격대의 제품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도 내부적으로 없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대형 유통망이 아닌 소매 유통, 특히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했다. 이들은 애경으로부터 물건을 받아 지방의 소매상들에게 배급하는 대리점들을 찾아가 트리오 곡물설거지를 시험 삼아 팔아달라 부탁했다. 대형 할인점이 안 되면 시골 슈퍼마켓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심정이었다. 파일럿 테스트를 위해 처음 찾아간 곳은 전통적으로 애경과 관계가 좋은 영업점들이 많은 경상도 지역이었다.

 

보통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주방세제 신제품을 출시할 때는 대리점 채널에도 리베이트 등으로 현금 혜택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트리오 곡물설거지는 한정된 예산으로 불가능했다. 그대신 관행대로 사은품으로 수세미 같은 주방용품을 함께 끼워주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막내인 김광현 사원이 수세미가 아닌 목장갑을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증정품으로 수세미를 주면 최종 소비자들이 받게 되지만

 

 

목장갑을 주면 중간에서 대리점 점주와 영업사원들이 자기들이 쓰려고 가져가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목장갑이 딸려오는 제품을 선호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김광현 매니저는 이렇게 회상한다. “어떻게든 영업사원들의 머릿속에 제품을 집어넣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대리점주나 영업사원들이 우리의 1차 소비자니까요.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판촉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지만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니 너 하고 싶은 거 한번 해봐라며 밀어주셨습니다. 멋모르는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습니다.”

 

 

이석주 전무 역시사실 마케터는 그렇게 움직이면 안 됩니다. 하지만 그때는 어떻게든 이 제품을 살려보고 싶었던 겁니다라고 말한다.

 

파일럿 테스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순샘보다는 저가 트리오 브랜드에 익숙한 소규모 지방 상권의 소비자들은 트리오 곡물설거지도 친숙하게 받아들였다. 소규모로 시작한 파일럿 시장의 규모를 점점 키워나가며 고무적인 반응을 얻자 이제는 경영진에서도 곡물설거지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기 시작했다. 연습경기를 끝내고 본게임인 할인점과 대형 슈퍼마켓 시장으로 진출할 준비가 된 것이다.

 

회사의 지원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공중파 TV에 광고할 정도의 여력은 없었다. 마케팅팀은 대신 막 시청자 수를 늘리고 있던 IPTV 시장을 눈여겨봤다. IPTV를 보는 30대 후반∼40대 부모들을 타깃으로 삼아 어린아이들이 즐겨보는명탐정 코난등의 프로그램 앞뒤에 곡물설거지 CF를 넣었다. 아동 프로그램이지만 IPTV는 엄마가 조작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홍보팀에서는 언론을 통해 곡물소재 세제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알리는 데 힘썼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할인점 바이어들을 하나둘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일단 매대에 올라가자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가격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면 목표 판매량의 150%, 200%를 달성하곤 했다.

 

다음 해인 2009년부터는 경쟁사들도 곡물설거지의 성공을 카피해 저가마일드 세제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할인점들도 이제는 저가마일드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인정하고 따로 진열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불황기에 궁여지책으로 만든 중저가 상품인 곡물설거지 세제가 틈새상품이 아닌 주력 상품의 하나로 성장한 것이다. 경쟁사들의 진입으로 제품 점유율은 떨어졌지만 시장규모가 커지면서 곡물설거지 매출 역시 급상승했다. < 1>에서 보듯이 이 카테고리의 2010년부터 2012년까지의 연평균 성장률은 46.7%로 성장이 정체된 다른 카테고리와 비교된다.

 

2012 6월 기준 애경은 저가마일드 시장에서 48.9%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경쟁사인 LG생활건강(‘아침보리’) 29%, CJ(‘매실 청정설거지’) 15.9%. 곡물설거지의 성공으로 애경이 주방세제 명가의 자존심을 세운 것이다. 이제 전체 주방세제 시장의 점유율도 33%로 위기 전 수준을 되찾았다.(그림 4) 유현석 주방세제 부문장에 따르면 순샘, 일반 트리오 같은 다른 애경 상품에 대해 곡물설거지에 의한제살 깎기(cannibalization)’ 현상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저가마일드 시장의 성장이 멈추는 때가 있을 수 있겠죠. 그 상황까지 저희가 계속 시장을 키워가며 점유율 50%를 유지해가며 선도해가고 싶습니다.” 그의 말이다.

 

비상식적인 곡물설거지의 성공 요인 분석

트리오 곡물설거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애경의 주방세제팀이 합리적인 소비 트랜드를 제때 읽었고, 기존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십분 활용했으며, 다양한 유통채널을 현명하게 활용했다. 그러나 소비 트렌드에 대한 이해와 브랜드 파워, 유통 채널의 활용만으로 특정 제품이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기존 상식을 뒤엎는 곡물설거지의 특별한 4가지 성공 요인을 찾아본다.

 

1)제약은 신제품 개발의 어머니다

상품 기획자들은 제약 조건을 제거하는 것이 창의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 사무실의 천장이 높거나, 사용하는 테이블이 크거나, 시간이나 돈이 풍족하면 창의적인 콘셉트가 도출된다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창의성 연구에 따르면, 이와 반대로 시간, 공간, 자원 등에 있어서 다양한 제약(Constraint)이 가해질 때 오히려 결과물이 더욱 창의적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형태가 주어진 어린이 장난감은 자유롭게 형태를 선택해서 만든 어린이 장난감에 비해서 더욱 창의적이면서 동시에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고(Moreau and Dahl 2005)1 , 캘리포니아의 디자인 컨설팅 업체 점프(Jump Associates)는 몸을 숙이고 들어가 조그만 공간에서 일하면서 창의적인 콘셉트를 만들 수 있는 선방(Zen room)을 만들어두기도 한다.

 

애경의 곡물설거지도 제약 조건의 결과로 탄생한 신제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신제품 개발에 대한 환상은 놀라운 신기술이 개발된 상태에서 충분한 시장 조사가 이뤄진 후 경영 자원의 풍족한 뒷받침을 받아서 시장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기술과 직관에 근거한 시장 조사, 그리고 부족한 경영지원 등 다양한 제약 조건이 오히려 쓸모 있는(meaningful) 창의적 신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2)미드 럭셔리(매스티지) 시장을 노려라

 

마케터들은 제품의 차별화를 위해서 럭셔리 마케팅을 추구한다. 소비자들에게 럭셔리 제품으로 인식되는 경우에는 경쟁 제품에 비해 가격 우위를 점하면서도 안정적인 시장점유율을 유지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마케팅 학자들은 단순 럭셔리 마케팅보다 최적의 가치를 제공하는 미드 럭셔리(Mid-luxury) 마케팅이 더욱 성공적이라고 주장한다(Strach and Everett 2006)

2 . , 럭셔리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비용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기존 럭셔리 시장보다 한 단계 낮고 시장 규모가 더욱 큰 미드 럭셔리 시장에 진입하면 규모의 경제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에 비용 대비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부각되는 것이다. 지난 해
DBR
에도 소개된 빙그레의 끌레도르 아이스크림 사례3
에서 배스킨라빈스, 나뚜루, 하겐다즈 등 다른 브랜드보다 뒤늦게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에 진입한 빙그레 끌레도르는 경쟁사 제품에 비해 제품의 질이 크게 뒤지지 않지만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매스티지(Masstige) 브랜드를 만들어 후발주자의 약점을 극복하고 미드 럭셔리 아이스크림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했다.

 

 

애경의 곡물설거지 사례도 미드 럭셔리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진입 비용이 높은 기존의 마일드 세제(럭셔리) 시장에 진입하지 않고 시장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된 저가마일드 세제(미드 럭셔리)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했다. 빙그레가 유통 원가를 줄여서 끌레도르의 가격을 럭셔리 아이스크림보다 낮추는유통형전략을 취했다면 애경은 제품 원가를 줄여서 곡물설거지의 가격을 마일드 세제보다 낮추는제조원가형전략을 취한 차이점은 있다. 이는 애경이 향후 유통 원가 등의 비용을 추가적으로 줄여서 가격을 더욱 낮출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3)착한 제품의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

지속가능한(sustainable), 환경친화적인(environmentally friendly),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socially responsible), 인체 유해도가 낮은(mild) 제품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마케팅 분야에서도착한제품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예전에는 착한 제품의 구매 동기나 구매자 특성을 알아내는 등 착한 제품의 긍정적 측면에 관한 연구가 주를 이뤘으나 최근의 마케팅 연구자들은 착한 제품에 관해서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상반된 견해에 관해서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 착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간접적이고 불분명한 미래의 이익(지속가능, 환경친화, 사회적 책임, 인체 무해 등)을 얻기 위해 직접적이고 분명한 현재의 비용(가격, 성능, 행동변화 등)을 감수해야 하므로 이익보다 비용이 강조되는 상황에서는 착한 제품이 기업이나 소비자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예를 들어, 부드러운 세척이 요구되는 경우에는(보디워시) 착한 세척 제품의 선호도가 올라가지만 강한 세척이 요구되는 경우에는(세차액) 착한 제품의 선호도가 내려가는 지속가능 부채(Sustainability Liability) 효과가 나타난다(Luchs et al. 2010). , 착한 손 세정제나 구강 청정제는 기능상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제품을 쓸 때는 일반 제품을 사용할 때보다 더욱 많은 양을 사용해야만 효과가 있다고 믿는, 즉 일반 제품과 착한 제품에 대한 이중잣대(Double Standard) 현상이 나타난다는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Lin and Chang 2012)4 .

 

애경의 곡물설거지는 착한 제품에 대해서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을 현명하게 극복한 사례로 살펴볼 수 있다. 세정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단점이 아니라 하나의 속성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세제의 콘셉트를 곡물이라는 물질로 상정하고 세제의 여러 감각적 속성을 곡물 콘셉트와 일치하도록 디자인함으로써(불투명한 액체, 텁텁한 곡물향) 소비자들이 기능상의 약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제품으로 이해될 수 있다.5

 

4)가격대가 유지돼야 프리미엄을 확보할 수 있다

마케터는 제품의 판매를 단기적으로 높이기 위해서 제품 가격을 일시적으로 낮췄다가 원상 복귀시키는 가격 할인을 종종 진행한다. 제품 가격이 내려갔을 때 그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준거 가격(reference price)은 함께 내려가지만 내려간 준거 가격을 다시 끌어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Bambauer-Sachse and Dupuy 2012)6 . 이에 따라 소비자의 준거 가격을 보존해 장기적인 제품 판매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특정 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가격 할인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고(, chanel) 심지어는 부르기 쉬운 가격으로 제품 가격을 오랫동안 동결하는 경우도 있다(, Swatch).

 

애경의 주방세제 마케팅팀은 곡물설거지에 대한 소비자의 준거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현명하게 실행하고 있다. 이 팀은 2008년에 곡물설거지를 개발한 이후 2009 12월에트리오 항균설거지라는 후속 제품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판매해 복수의 저가마일드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유행하던 조류독감(인플루엔자)에 맞서는 콘셉트로 출시한 제품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할인점과 대형마트에서 가격할인 프로모션 행사를 주기적으로 해줘야만 하는 주방세제 시장의 특성상 적절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다. 하나의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는 타사의 저가마일드 제품이 가격 할인을 2회 실시할 때 곡물설거지와 항균설거지는 번갈아 가며 1회의 프로모션만 실시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준거 가격이 더욱 강하게 유지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애경은 저가마일드 시장에서 평균 판매가를 가장 높게 유지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남은 과제

애경의 주방세제 시장점유율이 예전의 수준으로 돌아온 현재, 주방세제팀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누어 제안하고자 한다. 단기적으로는 미드 럭셔리 시장에서의 가격 인하 압박을 견디고 시장점유율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마케팅 기법이 필요하다. 유통 채널의 다양화를 통해서 유통 비용을 줄일 수도 있고 추가적인 제조 원가 인하를 위한 생산-유통-판매의 수직 계열화도 고려할 수 있다. 중기적으로는 곡물설거지를 넘어서는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가격 변화에 둔감하고 신제품에 쉽게 끌리는 새로운 소비자층을 형성해 여러 미드 럭셔리 시장에서 강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로 주방에서 식기를 세척하는 사람들에게 충족되지 못한 니즈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인류학적 조사를 시행할 수도 있고 빅데이터나 트렌드 분석을 통해 현재 주방 세제에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콘셉트를 발견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으로는 다른 카테고리의 제품들과 시너지가 날 수 있는 활동을 취해야 한다. 세탁 세제와 마케팅 활동을 함께할 수도 있고 세제보다 관여도가 높은 헤어 케어, 덴탈 케어, 화장품 등에서 개발 중인 새로운 콘셉트 제품 속성들을 끌어와서 주방 세제의 미래를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김영경(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주재우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jaewoo@kookmin.ac.kr

주재우 교수는 서울대에서 인문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를, University of Toronto Rotman School of Management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았다. Businessweek에서 세계 최고의 디자인 스쿨들을 선정하는 패널로 활약했다. 행동적 의사결정 심리학을 바탕으로 디자인 마케팅, 신제품 개발, 소비자 행동에 관해서 주로 연구하고 있다.

  • 주재우 주재우 |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필자는 서울대에서 인문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를 받았고 토론토대에서 마케팅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제품 개발과 신제품 수용을 위해 디자인싱킹과 행동경제학을 연구하며 디자인마케팅랩을 운영하고 있다.
    designmarketingla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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