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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영감은 고객에게서 온다

김용진 | 40호 (2009년 9월 Issue 1)
와인을 마시지 못하게 해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본 테마파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프랑스 파리 근교의 테마파크인 유로디즈니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미국의 월트디즈니는 1992년 39%의 지분을 투자해 유로디즈니를 설립했다.
 
유로디즈니는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와 일본의 도쿄 근교 디즈니랜드와 유사한 형태의 미국화된 테마파크로 기획됐다. 야심 차게 첫발을 내디뎠지만, 출범 6개월 만에 3400만 달러의 손실을 냈다. 50만 명 정도가 찾을 것으로 예상했던 개장 첫날 5만 명만이 이곳을 찾았고, 개장 첫해인 1992년 방문객은 당초 예상(1100만 명)의 80%가 조금 넘는 900만 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프랑스인 방문객은 전체 방문객의 30%에 불과했다. 반면 이 기간 동안에도 수많은 유럽인들이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를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디즈니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아이즈너가 “우리가 프랑스에 창조한 것은 미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외국에 대한 투자다. 조만간 우리는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과는 이처럼 참담했다.
 
유럽인들이 유로디즈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로디즈니보다 훨씬 먼 거리에 있는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유럽인들이 ‘유로디즈니는 미국 상업 문화의 유럽 침탈’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내에서는 유로디즈니가 개장하기도 전에 “미국의 가족형 놀이공원이 프랑스의 개인주의적인 문화적 전통을 위협할 것”이라며 강력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실제로 기자회견장에서 아이즈너에게 썩은 계란을 던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유럽인들, 특히 프랑스인들은 유로디즈니가 세운 몇 가지 원칙과 놀이공원 운영 시스템 때문에 유로디즈니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디즈니는 종업원들이 콧수염이나 구레나룻, 꽁지머리 등을 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는 유럽인에게는 아주 친숙한 차림새였다. 유로디즈니 내의 단 하나밖에 없는 프랑스 식당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도 금지했다. 와인이 없는 프랑스, 얼마나 엄청난 변화인지 한번 상상해보라. 또한 유로디즈니는 놀이공원 곳곳에 야구를 상징하는 핫도그 카트를 배치했는데, 이 카트의 모양은 축구를 좋아하는 프랑스인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이처럼 미국의 디즈니월드나 미국화된 일본의 디즈니랜드에서 사용되는 많은 규칙과 시스템들을 그대로 유로디즈니에 이식하려 한 행동이 프랑스인 등 유럽인들의 분노를 자극했다고 볼 수 있다. 놀이공원의 명칭에 ‘유로(EURO)’를 사용한 것도 패착이었다. 유럽의 다양한 국가와 민족들을 하나의 개체인 ‘유럽인’으로 인식해, 각국 또는 개인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차이를 수용하는 데 실패했다. 월트디즈니사는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려는 노력 없이 미국의 제품에 약간의 표준적 변화만 곁들여 유럽에 판매하려다 결국 쓴잔을 들어야 했다.
 
뼈아픈 실패를 거울삼아 월트디즈니는 1994년 10월 ‘유로디즈니’의 명칭을 ‘디즈니 리조트 파리’로 바꾸고 과감히 경영진을 교체했다. 덕분에 1995년부터는 성공적인 비지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프랑스 고객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해 시스템을 갖추고, 프랑스어와 문화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면서 얻은 결과다. 유로디즈니 시절에는 영어가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으나, 디즈니 리조트 파리로 바뀐 뒤에는 프랑스어가 중시됐다. 돈과 물질적 성공을 중시하는 미국적 가치보다 프랑스 문화에서 강조하는 친근함, 협동, 낮은 스트레스 수준, 그룹 의사결정 등의 가치가 우선시됐다. 디즈니는 고객들의 문화적 기대 욕구 등을 충족시키기 위해 놀이공원 곳곳에 고객 의견함을 설치하고, 고객 면담을 실시하는 등 고객에게 한 발 더 다가서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23명의 미국 출신 고위 경영자들은 유럽 출신으로 교체됐다.
 
유로디즈니의 사례는 많은 기업, 특히 상당히 성공한 대기업조차 새로운 사업이나 서비스에서 왜 실패하는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1990년대부터 많은 기업들이 ‘고객 지향적 서비스’ 또는 ‘고객 지향적 제품’이라는 용어들을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공급자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고객들이 어떻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활용하는지 적극적으로 탐구해 개선안을 찾는 데 실패했음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은 고객을 중심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판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웅변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실패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안으로부터 바깥으로의 혁신’, 즉 기존에 갖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 자원, 역량을 중심으로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유로디즈니의 예에서 보듯, 이러한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답은 아주 간단하다. ‘바깥으로부터 안으로의 혁신’, 즉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고객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에 어떤 불만을 갖고 있는지, 기존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고객들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등을 자세히 관찰하고 연구하면 새로운 시장을 여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비스 혁신은 ‘서비스 기업이 가진 기술적·조직적 역량을 바탕으로 새롭거나 상당히 변화된 서비스 모델, 고객 인터페이스, 서비스 전달 체계, 또는 서비스 기술을 도입해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라 정의한다. 예를 들면 슈퍼마켓 체인점인 테스코가 금융, 보험, 전화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나, 은행들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나 인터넷을 사용해 새로운 서비스 전달 시스템과 고객 인터페이스를 도입한 것, 페덱스가 인터넷과 위성통신 기술을 활용해 위치 추적 시스템을 도입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새로운 서비스는 기존의 서비스 요소를 결합하거나 분리한다든지, 고객에게 특화된 새로운 서비스 상품을 개발한다든지, 서비스 전달 방식을 바꾼다든지 하는 형태로 진행돼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종합해보면, 서비스 혁신은 크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새로운 서비스 상품’ ‘새로운 고객 인터페이스’의 3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서비스 모델의 혁신은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수익과 이익을 벌어들이는 체계를 바꾸는 일이다. 새로운 서비스 상품은 제품처럼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인데, 도입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점이 신제품과 다르다. 새로운 고객 인터페이스는 어떤 서비스에서든지 핵심 기능인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 간의 정보교환 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형태가 무엇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욕구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충족해야 할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펫스마트, 로우스, GE, 20미누텐 등 상당히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성공적으로 창출하거나, 기존 시장에서 강자로 떠올랐다. 이 글에서는 성공한 기업의 예를 3가지 고객 유형의 혁신(사용자, 지불자, 구매자로서의 역할 혁신)으로 분류하고 분석하고자 한다.
 
고객 혁신의 유형
서비스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고객이 왜 특정 기업과 가치를 공동으로 창출하는 프로세스에 참여하지 않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즉 고객이 특정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왜 사용하지 않는지를 아는 일이다. 제품 기반 경제에서는 기업이 모든 가치를 창출한다고 믿었지만, 서비스 기반 경제에서는 기업은 가치를 제공할 뿐이다. 실제 가치의 창출은 고객과 기업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관점에서 고객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는 단일한 개체가 아니라, 가치 창출 프로세스상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여러 개체의 집합일 수도 있다고 인식된다. 즉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고객은 실제로 그러한 서비스나 제품을 이용해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또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과정에 참여하거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지불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역할을 한 사람이 수행하기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 수행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유모차를 생각해보자. 유모차를 구매하기 위해 시장 조사를 하고, 성능을 분석하고, 사용 위험을 판단하는 일은 주로 엄마의 몫이다. 이것이 구매자의 역할이다. 그런데 시장에서 팔리는 유모차의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면 아기의 할머니나 외할머니가 이 유모차 가격을 대신 지불하기도 한다. 지불자는 구매자와 달리 할머니나 외할머니가 된다. 마지막으로 이 유모차를 실제로 이용하는 아기와 엄마는 사용자가 된다. 물론 아기의 엄마가 돈을 지불했다면 엄마가 구매자이자 지불자인 동시에 사용자가 된다. 따라서 단순히 돈을 지불하는 사람만을 고객으로 인식한다면, 실제 가치 창출 과정에 참여하는 많은 고객을 무시하게 된다.
 
역할을 중심으로 고객을 구분해보면 사용자와 지불자, 구매자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구분은 서비스 혁신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고객이 수행하는 역할에 따라 고객들이 겪는 문제나 해결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유모차를 구매할 때 가격, 성능, 위험에 대한 분석을 쉽게 만들어 주는 일은 구매자의 역할과 관련된 이슈다. 가격을 일시불로 할 것인지, 할부로 지불할 것인지는 지불자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실제로 사용하면서 느끼는 불편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용자에 관한 사항이다. <그림1>은 다음 절부터 논의할 사례들을 정리한 것이다.
 

사용자 역할의 혁신
사용자는 실제로 특정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해 가치를 창출하는 고객을 뜻한다. 사용자들은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창출하게 되는데, 서비스나 제품에 대한 지식의 부족, 사용하는 스킬의 부족, 시간의 부족 등에 의해 많은 문제를 경험한다. 이는 고객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가치를 제한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잘 해결하고 새로운 서비스 시장을 창출한 예로는 펫스마트, 로우스 등을 들 수 있다. 펫스마트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애완동물을 위한 물품 판매와 훈련, 새끼치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매 체인점이다. 이 회사는 고객들이 애완동물을 한 번 길러본 후 다시 기르려고 하지 않거나 심지어 버리기까지 하는 행동이 궁극적으로 사업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깨달았다. 자사에서 물건을 사야 하는 고객의 숫자가 줄어든다면 회사의 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회사는 고객들이 애완동물 사육을 포기하거나 버리는 이유를 조사했다. 그 결과 고객들은 여행을 가거나 회사에 출근할 때 애완동물을 돌보는 걸 어려워하고, 이 때문에 애완동물 기르기를 기피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애완동물을 돌보기 위해 회사에서 빨리 퇴근하거나 여행 기간을 단축하고, 심지어는 여행을 포기하는 일까지 있었다. 또 집을 비울 때 애완동물을 보호해줄 이웃이나 친구를 찾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고객도 많았다.
 
이 회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신 시설을 갖춘 애완동물 전용 ‘펫호텔(Pet Hotel)’ 사업을 시작했다. 고객들이 실제 애완동물을 기를 때의 행동을 관찰하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사업의 성장 기반을 다지고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또 다른 예로는 로우스가 있다. 로우스는 1946년 미국 노스캐
롤라이나에 설립된 주택 재료 및 가정용품 판매 체인점이다. 현재는 미국 50개 주에 1600여 개의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약 1400만 명의 고객이 방문하는 미국 2위의 주택 재료 및 가정용품 판매 회사로 성장했다. 이 회사의 점포에서는 주택을 짓고 관리하는 데 필요한 목재부터 꽃씨까지 거의 모든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대부분의 주택들이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인 데다 인건비도 워낙 비싸, 사람들은 직접 필요한 재료를 사서 주택을 관리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재료를 사서 집안일을 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붕을 교체하고, 부엌을 개조하거나, 카펫을 바꾸고, 무선 인터넷을 설치하는 일에 익숙한 건 아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얻어야 하지만, 이런 조언을 얻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결국 작업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고 만다. 로우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전문가를 배치하고, 고객들을 대상으로 무료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원하면 실제 설치 작업까지 도와주는 서비스도 도입했다. 이 서비스는 고객의 지식과 기술을 보완해 고객들이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돕고, 로우스의 성장에도 기여했다.
 
지불자 역할의 혁신
전통적인 제품 기반 경제에서 지불자는 고객으로서 많은 관심을 받아왔고, 실제 많은 서비스들이 지불자를 중심으로 제공돼왔다. 기존 경제 체제에서 지불자 역할에 대한 혁신은 무엇에 대해 지불하느냐보다는 어떻게 지불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왔다. 다시 말해 일시불이나 할부처럼 가격을 지불하는 방식, 또는 개별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돈을 지불하는지 아니면 패키지에 대해 지불하는지를 중심으로 혁신이 이뤄져왔다.
 
하지만 서비스 기반 경제에서는 제품의 서비스화(servicization)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제품에 대해 지불하는 것보다 서비스에 대해 지불하는 형식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변화는 고객이 느끼는 가치와 지불해야 하는 가격이 큰 차이가 없도록 가격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가치에 중점을 두고 지불자의 역할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영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케이스는 넷플릭스의 DVD 렌털 케이스이다. 넷플릭스는 고객들이 블록버스터 등에서 DVD를 빌릴 때 편당 지불하던 방식을 월별 회비로 대체하고 무제한으로 빌려볼 수 있도록 했다.
 
이 글에서는 넷플릭스 이외에 GE, 모건 루이스, 20미누텐, 그라민폰의 예를 살펴보기로 한다. GE가 GE90이라는 비행기 엔진을 출시했을 때, GE는 기존의 엔진인 CF6이나 CFM56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엔진이어서 보잉 777기가 보다 빠르고 멀리 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엔진의 유지 비용이 불확실해 항공사들에 높은 가격을 청구하기가 어려웠다. GE는 저렴한 가격에 엔진을 팔기보다는 엔진 사용 시간에 따라 서비스 비용을 받는(power by the hour) 형태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고, 고객들에게 유지 보수 비용을 포함해 비행 시간에 따른 비용을 청구하기로 했다. 이 모델은 GE가 GE90 엔진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하는 디딤돌이 됐다. GE는 기존 지불 방식을 혁신하는 대신, 무엇에 대해 지불할 것인지를 보다 진지하게 고민함으로써 고객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공하기에 적합한 비지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순조롭게 시장에 진입했다.
또 다른 예는 모건 루이스와 버틀러 루빈이라는 법률 자문회사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이들 회사는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기존 법률 자문회사가 사용하던 시간당 서비스 비용이라는 가격 산정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고정 금액 방식의 계약을 제안했다. 이 방식은 대부분의 법률 자문회사들이 고객 기업과의 거래에서 사용하던 전통적 방식과는 아주 다른 형태인데, 고객이 인식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시간당 비용을 청구하는 체제에서 변호사들이 비능률적으로 일하고, 비용을 엄밀하게 산정하기 어려운데도 상당한 수임료를 물고 있다는 고객들의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점에 착안해 모건 루이스와 버틀러 루빈은 고정 금액 계약 방식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수 있었다.
 
자사의 제품을 서비스로 바꾸거나 서비스에 대한 가격 정책을 바꿔 성공적으로 사업을 운영한 GE나 모건 루이스의 사례와 달리, 돈의 흐름을 바꿔 성공한 20미누텐도 지불자 역할을 혁신한 또 다른 사례다. 20미누텐은 스위스의 150개 기차역에 배포되는 독일어 무료 신문이다. 이 신문은 1999년 ‘20 Minuten Schweiz AG’라는 이름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78만 명 정도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대부분의 무가지처럼 20미누텐도 신문 발간, 운영, 배포에 드는 비용을 광고로 충당하고 있다. 무료 신문이기 때문에 독자는 더는 지불자가 아니며, 독자들을 대신해 광고주들이 신문의 지불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한 가지 측면을 무시하고 있다. 실제로 돈은 광고주가 부담하지만, 광고의 가치는 독자들이 신문을 열심히 구독해주는 사용 행위에서 나오기 때문에 독자들 또한 여전히 지불자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 사례는 그라민폰이다. 그라민폰은 방글라데시의 선도적인 전화 서비스 회사로서 2000만 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그라민폰은 방글라데시에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 기술을 처음 도입한 회사로, 고객 지원을 위해 24시간 콜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슬로건은 ‘고객 곁에(Stay Close)’로, 모든 방글라데시 국민에게 가용한 전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개발과 사업가를 위한 레가텀 센터’ 창립자이자 디렉터인 이크말 쿼디르는 방글라데시 서민들에게 소액 신용대출 서비스를 해주는 그라민 뱅크에서 농촌 지역에 광범위한 무선전화를 보급하는 사업을 착안했다. 그는 몇 년간의 노력 끝에 사업 자금을 마련하고, 1996년 11월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무선전화 운영에 관한 사업권을 얻어 1997년부터 실제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라민폰의 특징적인 사업은 ‘빌리지폰(village phone)’이라고 불리는 시골 지역의 전화 사업이다. 그라민폰은 농촌 지역의 여성들이 전화 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그라민 뱅크와 함께 자금을 지원하고, 가입자에게 전화 이용법과 서비스 비용 청구 방법을 알려줬다. 즉 여러 가정이 하나의 전화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전화기를 판매하는 수익이 아니라 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라민폰에 요금을 납부하는 고객은 가입자이지만, 이 가입자가 납부하는 요금은 가입자의 전화를 사용하는 시골 가정에서 나온다. 가입자는 이들로부터 사용료를 받아 자신의 요금을 충당하거나 이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요약하자면 그라민폰은 서비스를 중심으로 지불자 역할을 혁신해 아주 가난한 농촌 가정까지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를 통해 서로가 이익을 얻는 비지니스 모델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구매자 역할의 혁신
기술의 발전, 특히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구매자의 역할은 많이 달라졌다. 구매 프로세스를 변화시키거나, 공급 사슬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없앰으로써 구매자의 역할을 혁신할 수 있다. 구매자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구매 프로세스에서 무엇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돼 있다. 여기에 해당되는 예는 아주 많은데, 이 글에서는 익스페디아와 월마트의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익스페디아는 미국과 그 외 15개국에서 운영되는 인터넷 기반 여행사다. 이 회사는 비행기표와 호텔 예약, 자동차 대여, 크루즈 상품, 여행 패키지 등을 판매하는 곳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의해 시작됐다. 익스페디아는 고객들의 여행에 관한 구매 행위를 지원함으로써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누군가가 해외로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보자. 여행지를 결정해야 하고, 타고 갈 비행기표도 예약해야 한다. 여행지에서 타고 다닐 차도 빌려야 하고, 호텔도 예약해야 한다. 인터넷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 모든 절차를 각각의 회사에서 따로 처리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고객 스스로 처리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지금은 인터넷으로 가볼 만한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얻고 비교할 수도 있다. 비행기표, 호텔, 렌터카 예약도 간단히 끝낼 수 있다. 또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예약하면 할인도 받을 수 있다. 고객들은 여러 군데 여행사나 각각의 회사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서도 집 안에 앉아서 익스페디아를 통해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월마트와 P&G의 사례가 있다. 이들 회사는 공급 사슬을 변화시킴으로써 구매자의 역할을 혁신했다. 이 예는 공급 사슬에 관한 한 아주 고전적인 것인데, 고객의 역할 변화라는 측면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월마트는 EDI라는 시스템 도입 초기에 이를 자사의 체인점에 적용하고, 자사의 공급자들로 하여금 이 시스템을 사용하게 했다. 이 시스템은 공급 사슬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월마트의 각 점포에서 팔리는 P&G 제품에 대한 정보가 월마트의 물류 센터로 전송되고, 이 정보가 다시 EDI를 통해 P&G로 전송된다. P&G는 자신의 책임 아래 언제, 얼마만큼의 재고를 어느 지점으로 배송해야 하는지를 실시간으로 알게 된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월마트가 주문한 수량을 납품 기일에 맞춰 배송하면 그만이었다. 이제는 월마트의 의사결정을 기다릴 필요 없이 P&G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체계는 구매 의사결정에서 구매자인 월마트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지불자의 역할만 수행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고객의 역할과 관련된 서비스 혁신 사례를 살펴봤다. 주의할 것은 앞서 언급한 3가지 유형에서의 혁신이 항상 따로 일어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3가지 중 2가지, 혹은 3가지 모두 혁신이 일어나기도 한다. 고객 역할의 혁신을 통해 서비스 혁신에 성공하려면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고, 실제로 어떤 문제들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를 깊이 관찰하고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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