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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as a Practitioner Journal 1

경영 지식과 실천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준 나침반

신동엽 | 74호 (2011년 2월 Issue 1)

어떤 경영지식이 좋은 지식일까? 경영지식의 수월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경영지식은 어디에서 오나? 경영에서 지식과 실천의 관계는 무엇일까? 또 경영지식을 창출하고 확산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학계, 컨설팅업계, DBR(동아비즈니스리뷰)과 같은 경영전문지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이는 경영지식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들에 종사하는 모든 개인과 조직, 매체들이 항상 고민해야 하는 근본적 질문이다. 특히 경영 지식과 실천 모두에서의 획기적 발전에 기여할 수준 높은 지식을 생성하고 확산시키겠다는 미션과 비전 아래 창간된 DBR과 같은 경영전문지는 잠시도 잊어버리면 안 되는 질문들이다.

DBR 창간은 우리나라 경영지식의 생태계에서 전례 없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경영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하려는 중요한 실험이었다. DBR은 기존 대부분의 경영잡지와 달리 독자층이 매우 적을 수도 있는, 어렵고 수준 높은 내용들을 집중 전달하는 특이한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나 초기 우려와 달리 DBR은 창간 후 짧은 시간 내에 국내 굴지의 경영전문지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또 광범위하면서도 열렬한 마니아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창간 3주년을 맞이해 DBR이 앞으로 우리나라를 넘어서서 글로벌 경영지식의 생태계에서 더욱 중요한 가치창출을 하려면 경영지식의 본질과 원천, 그리고 그 생성과 확산에 관한 깊이 있고 체계적이며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매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경영지식들은 어디에서 온 것이며, 이들 중 진정한 지식은 무엇이고, 지식이 아닌 것은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이런 근본적 질문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DBR과 같은 하이엔드 경영전문지의 사회적 역할을 제시하기 위해, 이 글은 경영지식의 원천과 대상에 대한 실증주의와 해석학 간의 지식철학적 논쟁에 초점을 맞춘다.

현대 경영지식의 실증주의적 헤게모니

현대 사회에서 가장 폭넓게 인정되는 경영지식의 원천과 대상에 관한 철학적 관점은 19세기 중후반 이후 자연과학은 물론 사회이론 전 분야들에 강력한 헤게모니를 행사한 실증주의(Positivism). 18∼19세기에 걸쳐 서구에서 계몽주의와 경험주의, 과학혁명이 급속 확산됐다. 지식은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사유나 주관적 판단, 선입관, 편견, 직관, 감각, 감정 등 비합리적 요소들에 의존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 현상과 사실을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정착됐다. 이는 과학과 합리성의 시대인 20세기에 더더욱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특히 19세기 이후 자연과학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형이상학적 담론을 통한 지식 창출에 몰두하던 철학가들과 사회이론가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자기반성을 했다. 즉 이들은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탄생과 죽음, 역사의 발전과 변동, 정신현상, 심리현상 등이 서구 철학은 물론 동양 철학에서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철학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생물학에서 출발한 실험심리학이나 다윈의 진화론 등으로 이는 철학이 아닌 자연과학의 영역이 됐다. 이로써 철학은 근본적인 정체성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모두 주도한 철학적 관점이 바로 실증주의다. 이는 콩트(A. Comte)를 중심으로 시작된 뒤 20세기 초 슐릭(M. Schlick), 카르납(R. Carnap), 라에헨바흐(H. Reichenbach), 헴펠(C.l Hempel) 등에 의해 발전됐다.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로도 불리는 실증주의는 다른 철학 학파들로부터 다양한 비판을 받았지만, 20세기 현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가장 대표적 철학적 조류인 분석철학의 탄생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고, 현대 사회의 주류에 해당하는 지식철학으로 자리잡았다.

실증주의는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 사유, 감정, 의지 등 비합리적 요소에서 나오는 지식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관찰이나 경험, 실험 등으로 검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만을 지식의 대상으로 인정한다. 이런 관점에서 실증주의는 관찰이나 경험 가능한 객관적 사실들 간에 성립하는 인과관계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이를 보편화하고 일반화해서 지식을 창출한다. 실증주의적 접근은 경영학은 물론,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등 대부분의 사회과학적 지식 창출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경영지식의 압도적 다수가 바로 실증주의 철학에 기반한다. 이런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경영지식의 목적은 객관적인 실제 경영 현상과 관련 사실들을 최대한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과학적 탐구다. 즉 실증주의적 경영지식의 대상은 실제로 관찰이나 경험할 수 있는 경영현상에 제한된다. 또 경영지식이란 객관적인 경영현상의 서술과 표현, 그리고 분석과 정리로 본다. 따라서 실증주의적 관점에서의 좋은 경영지식은 조직과 경영 현상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서술하고, 표현하고, 정리한 지식이다. 바로 이런 실증주의의 영향을 받아 20세기 초 이래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이론이나 사회철학을 자연과학을 모방해사회과학(social science)’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주류 경영학 역시 자신들의 연구 분야를경영과학(management science)’으로 부르기도 한다.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과학적 경영지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경영학자들을 중심으로 발전된 경영학에서는 실제로 발생한 경영 현상에 대한 계량적 데이터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일반화할 수 있는 보편적 지식을 창출하는 실증 연구가 실증주의 관점을 택한 대표적인 예다. 보다 실천적 영역에 속한 컨설팅이나 실무 경영계에서의 실증주의는 모든 상황이나 기업에서 항상 최적의 성과를 창출하는 보편적 경영 지식을 찾으려는 20세기 초의 테일러(F. W. Taylor)를 중심으로 한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 20세기 후반 다른 기업들의 실제 경험에서 높은 성과를 창출한 것으로 인식되는 지식들을 일반화하려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접근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실증주의적 경영지식은 그 영역이 학술적이냐 실무적이냐를 막론하고 실제 관찰이나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을 분석해서 객관적으로 일반화할 수 있는 논리적 경영지식을 창출하는 것이다.

경험적 지식의 한계와 해석학적 반론

실증주의는 19세기 후반 이후 거의 모든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분야들에서 지식 창출과 판단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반이 됐다. 그러나 몇 가지 심각한 한계로 인해 끊임없이 비판을 받았다. 그 중에서 특히 관찰이나 경험 가능한 현상만을 지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실증주의의 가장 중요한 전제가 비판의 표적이 됐다. 그 관찰과 경험이 실제 발생한 현상을 정확하게 포괄할 정도로 충분히 범위가 넓고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으면 지식 자체의 범위와 정확성을 대폭 축소시키거나 왜곡시킬 수 있다. 즉 실증주의는 관찰자가 직접 경험하거나 관찰하지 못한 현상에 대한 지식의 창출이나 수용을 아예 불가능하게 하는 폐쇄성과 경직성을 초래한다

더욱이 실제 경험하거나 관찰한 현상의 기반 논리를 일반화해서 지식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지식 창출자의 주관이나 선입관 자체를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 또 다양한 경험과 관찰들의 기반이 되는 공통 논리를 일반화함으로써 지식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원래 실제 현상들의 고유한 특수성과 차이를 무시해버려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더 부정확하고 비과학적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모순도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경험과 관찰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경험이나 관찰을 종합하고 총칭할 수 있는 개념을 도출하려면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사유를 완벽하게 피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즉 지식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실증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나 심리 현상과 자연 현상 사이의 차이를 간과하고, 사회와 심리 현상에 대한 지식 창출 과정에 자연과학의 모델을 그대로 모방 적용하려는 데 심각한 한계가 있었다.

지식 창출 과정에서 실증주의의 이런 한계를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제시된 지식철학이 바로 해석학(hermeneutics)이다. 이는 19세기 후반 독일 철학자 딜타이(W. Dilthey)를 중심으로 시작돼 20세기 전체에 걸쳐 가다머(H. G. Gadamer), 아펠(K. O. Apel), 리쾨르(P. Ricoeur) 등에 의해 발전됐다. 딜타이는 지식의 대상인 과학을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으로 나누었다. 그는 이 두 가지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같은 지식창출 방법론이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정신과학의 방법론으로 해석학을 제시했다. 이 정신과학이 바로 경영학을 비롯한 오늘날의 인문사회과학이다. 딜타이는 객관적인 현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설명(Erklären)하는 게 지식의 목적인 자연과학과 달리, 정신과학의 대상인 인문사회 현상에 대한 지식은 이해(Verstehen)가 주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딜타이가 말하는 해석이란 바로 이해를 통한 지식 창출의 방법론이다.

, 해석학은 서로 본질적으로 다른 시공간과 관계 속에서 발생한 각 행위자의 다양한 역사적 경험들을 자연현상의 법칙과 같이 획일적으로 객관화하고 일반화하기 때문에 주관적 선입관 없이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또 딜타이는 실증주의와 달리 진정한 인간 지식의 원천은 경험, 관찰, 분석, 실험 등과 같은 이성적인 과정뿐 아니라, 감정이나 의지, 주관적 성향 등까지도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인 삶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학은 각 행위자가 다양한 역사적 맥락에서 경험한 내용을 표현한 학문, 예술, 풍속, 관행, 예술, 문화 등 인간 정신의 산물들을 이해하고 해석해 지식을 창출하려는 것이다. 즉 딜타이는 원래 행위자의 경험인원체험(原體驗)’을 완벽하게 그대로 재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각자가 자신이 속한 시공간과 사회문화적, 관계적 맥락 속에서 주관적으로 새롭게 다시추체험’(追體驗·nacherleben)’해서 이해하는 게 올바른 지식창출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철학적 이론을 해석학이라고 불렀다.

실증주의에서는 선입관이나 주관이 객관적 현상의 정확한 설명과 분석을 교란하는 편향적이고 왜곡된 사고 방식으로서 과학적 지식창출의 가장 중요한 장애요인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해석학에서의 선입관이나 주관은 오히려 각자 처한 고유한 역사적 상황에서 다른 행위자들의 원래 경험과 관찰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해석해서 바람직한 지식을 창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20세기 해석학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가다머는 실증주의에서 주관적 판단이나 선입관을 왜곡된 편향성과 비과학성으로 부정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오히려 이성만으로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인간 이성에 대한 근거 없는 맹목적 낙관론과 맹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가다머에게는 각 행위자들의 주관이나 선입관은 과학적 지식을 창출하기 위해 배제되고 극복돼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지식창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하는 각 행위자들의 역사성과 특수성이었다.

해석학은 실증주의적 지식철학에 대한 강력한 대안으로서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인문사회과학 분야들로 확산됐다. 경영지식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은 모든 조직과 경영 상황에 일반화시킬 수 있는 지식을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변수들 간의 인과관계를 통계적 분석을 통해 찾으려는 주류 경영학의 실증주의적 경향을 비판했다. 각 조직이나 경영 상황마다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각 상황의 고유한 전개 과정 그 자체와 행위자들의 주관적 의미 부여(sense-making)를 통한 실체의 재구성(construction) 과정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춰 지식을 창출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랐다. 이는미시간 경영대학원의 와익(K. E. Weick) 교수의 현상학(phenomenology)적 조직이론각 조직의 역사적 발전과 변동과정에 대한 질적(qualitative)이고 심층적인 사례연구를 통해 경영지식을 창출하려고 시도하는 MIT 경영대학원의 반 마넨(J. Van Maanen) 교수의 민속학(ethnomethodology)적 조직이론조직필드에서의 조직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한간주관적(inter-subjective)’ 실체의 사회적 재구성(social construction)에 의해 특정 조직 형태나 관행이 당연시되는 과정을 강조하는 디마지오(P. DiMaggio) 교수 등의 신제도이론(Neo-institutional theory) ▲전략과 성과 간 인과관계보다는 전략 수립과 실행의 전개 과정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민즈버그(H. Minzberg) 교수나 바우어(J. Bauer) 교수 등의 과정지향적(process-oriented) 전략경영이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실무 경영계에서는 업계에 일반화된 경영방식을 모방하기보다는 자기 기업만의 특수한 전통과 문화,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만의 고유한 경영모델을 찾아내려는 노력들이 이어졌다. 컨설팅업계에서는 다른 여러 기업들이나 산업들, 또는 국가들에서 반복적으로 검증되고 사용돼 온 상황진단 템플릿(template)이나 처방을 사용하지 않고, 각 고객 기업마다 제로베이스(zero base)에서 각 조직의 특수한 상황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심층적이고 질적인 연구를 통해 컨설팅에 필요한 기반 지식을 얻으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됐다. 맥킨지 등의 고객특화적 접근 등이 이런 해석학적 지식철학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경영에서 지식과 실천의 2중 해석학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해석학적 지식철학은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당시 압도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실증주의에 대한 강력한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사회현상들을 이해할 때 객관적 조건들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경시해서 각 현상마다의 개별적 특수성을 중시했다. 또는 지나치게 관념적으로 치우치게 될 우려가 있으며, 무엇보다 지식의 축적과 발전 면에서 지식창출이 고유한 개별 경험별로 구분되기 때문에 매우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경영학계에서 이런 두 가지 지식철학적 관점 간의 차이와 대립은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페퍼(J. Pfeffer) 교수와 MIT 경영대학원의 반 마넨(J. Van Maneen) 교수 사이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1990년대 초반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Organization Science 등 경영학계 최고의 학술지들에서 전개됐다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페퍼는 과도하게 다양하고 개방적인 이론적 관점들과 각 상황별 특수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수많은 방법론들의 난립 등이 경영학의 지식 창출과 축적, 그리고 패러다임 발전에 결정적 장애 요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체 경영학계가 합의하는 객관적이고 표준화된 계량적 실증연구에 집중해서 모든 조직과 경영 상황에 일반화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과학적 경영지식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반 마넨은 해석학적 관점에서 페퍼를 정면 비판했다. 반 마넨은 각 조직과 역사적 상황마다의 고유한 특수성에 대한 심층적 이해야말로 진정한 경영지식의 원천이고 심지어 연구 대상 상황에 따라 지식창출을 위한 연구 방법론은 물론, 글쓰기 스타일 등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선택의 과정 자체도 중요한 지식이 된다고 했다.

이상에서 살펴봤듯이 경영지식 창출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철학적 이슈들을 내포하고 있다. 상반된 지식철학은 우리가 주변에서 접해왔고 또 매일 쏟아져 나오는 모든 경영지식의 바탕 전제로서 지식의 내용과 방향성, 해당 지식이 경영학과 경영 실무에 미치는 영향력을 좌우하고 있다. 경영지식을 창출하고 확산시키는 주체의 역할을 하는 경영학계와 컨설팅업계, 실무 경영계, DBR과 같은 경영관련 매체들이 의식적으로 이런 서로 대립하는 철학적 세계관들을 인식하고 있거나 또는 그 중 어느 편을 선택하고 있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경영지식의 지식철학적 이슈는 바로 지식과 실천 간의 관계다. 경영지식은 실제 조직과 경영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시사점 도출을 목적으로 하는 실천적 지식이다. 경영지식의 창출과 확산에 종사하는 행위자들은 지식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는 순수 지식과 달리 반드시 지식과 실천 간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그 지식이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창출되느냐, 반대로 해석학적 관점에서 창출되느냐의 여부를 막론하고 모든 경영지식은 실제 경영 현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만 실증주의적 경영지식은 실제 경영 현상 중 직접 경험하고 관찰할 수 있는 객관적 경영 현상만을 지식의 대상으로 본다. 또 이를 일반화해서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을 지식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해석학은 실제 경영 현상마다의 특수한 시공간과 역사적, 사회관계적 맥락에 초점을 맞춰 지식 창출자가 처한 고유한 역사적 상황에서 주관적 판단에 따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지식의 본질로 본다. 즉 경영에서 실천의 영역인 실제 경영 현상을 바로 경영지식의 근본적 원천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경영 현상으로부터 형성된 경영지식은 지식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반대로 실천의 영역인 경영 현상에 거꾸로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경영학계나 컨설팅업계, 각 기업의 실무 경영자들이 실제 경영 현상으로부터 창출한 경영지식은 거꾸로 실무 경영자들이 경영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 적극 반영되고 경영 현상 자체를 변화시킨다. 경영학 조직이론분야 신제도이론(Neo-Institutional Theory)의 거장인 프린스턴 대학의 디마지오 교수는 실제 조직경영의 형태와 관행이 경영학자나 컨설턴트, 실무 전문경영인 등 경영 전문가들이 보유하고 규범적으로 내면화해서 믿고 있는 경영지식에 의해 바뀌는 현상을 규범적 동형화(normative isomorphism)라고 불렀다.

즉 실제 경영 현상에서 나온 경영지식이 거꾸로 그 경영 현상 자체에 영향을 주고 변화시키게 되는 묘한 순환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지식과 실천의 쌍방향적 상호영향력을 < 3의 길>의 저자로 잘 알려진 기든스(A. Giddens) ‘2중 해석학(double Hermeneutics)’이라고 불렀다. 2중 해석학의 관점에서 볼 때 경영 현상에 대한 지식이 왜곡되면 그 지식에 기반한 경영의 실천 영역도 연쇄적으로 왜곡된다. 따라서 경영지식을 창출할 때에는 지식의 정확성은 물론, 그 실천적 시사점에 대한 깊이 있고 비판적인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지식의 영역에서 경영 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은 물론, 실천 영역에서 경영지식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도 주관적 왜곡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바로 이것이 실증주의자들이 비판한 지식 창출에서 주관과 형이상학적 사유의 위험성이다.

지식생태계에서 경영전문지의 사회적 역할

바로 이 지점이 DBR과 같은 하이엔드 경영전문지가 전체 경영지식의 생태계에서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이다. , 경영 지식과 실천 사이에 발생하기 쉬운 왜곡된 2중 해석학의 악순환 고리를 중간에서 끊어줘야 한다. 반대로 경영 지식과 실천이 서로의 왜곡과 결함을 보완하고 수정하는긍정적인 2중 해석학 과정을 통해 서로 공동진화(co-evolution)하도록 연결·조정해야 한다. 이는 경영지식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른 어떤 행위자들보다 하이엔드 경영전문지가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다.

즉 경영에 관련된 지식을 단연 가장 많이 창출하고 확산하는 경영학계는 지식 영역의 논리 그 자체에 함몰되기 쉽다. 실제 경영 현상의 이해와 해석 또한 학문적 선입관에 기반해서 실제 현상과는 괴리된 상아탑적인 형이상학적 사유에 사로잡혀 접근할 위험이 크다. 이때 경영학자들이 해석학적으로 실제 경영 현상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더라도 제로 베이스에서 그 현상 자체를 정확히 이해하려하기보다 대부분 자신들이 창출한 상아탑적 지식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취사선택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 반대로 실천의 영역을 담당하는 경영 실무계는 근시안적이고 표면적인 실용주의 논리에 빠져 자신의 단편적 경험을 과도하게 맹신해 일반화시킬 수 있다. 또는 자신의 주관적 감정이나 이해관계에 의해 선택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다양한 지식 대안들 중 자신의 선택과 일치하는 지식을 취사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경영에서 지식과 실천의 2중 해석학은 겉잡을 수 없는공동퇴화(co-degradation)’의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바로 이때 지식과 실천 중 양측 어느 편의 논리에도 치우치거나 함몰되지 않고 양측에 모두 비판적 피드백을 제공해 긍정적 2중 해석학의 경로를 회복시켜 지식과 실천이 공동 진화할 수 있게 하는 균형자 혹은 중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DBR과 같은 경영전문지가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다. 이런 관점에서 DBR이 우리나라 경영의 생태계에서 지식과 실천 사이에서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완벽한 비판적 균형자의 역할을 수행하여 우리나라 경영의 지식과 실천이 긍정적 2중 해석학을 통해 급속하게 공동 진화되기를 기대한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를 비롯해 다수의 저널에 논문을 실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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