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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Sloan Management Review

시장 파괴 않고 새 시장을 만드는 혁신

김위찬,르네 마보안(Renee Mauborgne) | 270호 (2019년 4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질문
그동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기존 시장을 무너뜨리는 ‘파괴’가 혁신의 동의어처럼 사용됐다. 그러나 과연 파괴가 혁신을 위한 유일한 해법일까?

연구를 통해 얻은 해답
1.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고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내는 ‘비파괴적 창조’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파괴만큼이나 중요한 혁신과 성장의 열쇠였다.
2.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회를 포착하면 비파괴적 창조가 일어난다. 기존 문제를 재정의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면 파괴적 창조와 비파괴적 창조가 동시에 일어난다.
3. 사회적이며 인도적인 경제의 영역에서 비파괴적 창조의 기회가 무르익고 있다.


편집자주
이 글은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19년 봄 호에 실린 ‘Nondisruptive Creation: Rethinking Innovation and Growth’를 번역한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파괴’는 비즈니스의 모토가 됐다. 파괴는 어떤 혁신이 기존 사업자들의 몰락을 야기하는 새로운 시장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할 때 발생한다. 사진을 쉽게 찍고, 공유하고, 저장할 수 있어 모두에게 사랑받는 디지털 사진의 파괴력은 한때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필름 시장과 코닥이라는 기업의 종말을 가져왔다. 필요할 때 바로 부를 수 있는 우버(Uber) 서비스는 수백만 명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많은 택시 회사를 존폐 위기로 몰았다.

그렇다 보니 많은 이들이 파괴를 혁신의 동의어로 여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떻게 하면 파괴적 혁신을 통해 성공할 수 있고 파괴적 도전자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지 조언하는 글도 자주 접한다. 기업 리더들은 파괴적 세력이 우리 주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으며, 그 속에서 생존하고 성공하고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관련 산업은 물론 자신의 회사까지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경고한다.

하지만 파괴만이 혁신과 성장을 위한 유일한 해법일까? 파괴가 정말 최선일까? 필자들이 지난 3년간 수행한 연구와 분석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 파괴라는 주제가 사람들 대화에 오르내리고, 중요하고,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기업이 오로지 파괴에만 몰두하면 혁신과 성장을 이루는 다른 요소, 즉 필자들이 파괴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성장의 요건을 간과할 수 있다. 1


필자들은 이 요소를 비파괴적 창조(non disruptive creation)라고 부른다. 비파괴적 창조는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해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강조한다. 그리고 파괴나 중단 없이 창조를 이뤄낸다. 이런 유형의 혁신은 완전히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낸다.

대부분의 기업이 창조를 위해서는 파괴나 중단이 필요하다는 기존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 그러나 이제는 파괴 없이도 창조할 수 있다는 개념을 완전히 수용해야 할 때다. 비파괴적 창조는 혁신과 성장에 대한 기존 프레임을 깨부수고 그보다 훨씬 더 넓은 시각을 갖게 한다. 진정한 기회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확장한다.

필자들은 이 기사에서 비파괴적 창조가 어떻게 중견 기업, 스타트업, 사회에 각각 고유한 방식으로 이익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혁신을 주도하는 리더들이 각자 회사에 가장 적합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법론도 제시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다음 어떤 전략들이 비파괴적 창조를 일으키고, 어떤 전략들이 파괴를 일으키는지 조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리자들이 해결할 문제는 무엇인지, 비파괴적 창조를 통해 포착 가능한 기회들을 어디서,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비파괴적 창조 이해하기
비파괴적 창조라는 용어가 생소할 수 있겠지만 그 존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비즈니스 세계의 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자. 엑스레이가 없었던 시절에는 뭐가 있었을까? 엑스레이 시장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외과의사가 칼로 환자의 살을 절개해 무언가를 찾아냈을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스피린이 없었을 때는 어땠을까? 집집마다 할머니가 전수해 주신 비법으로 만든 약초가 아스피린을 대신했다. 콘서트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음악을 다시 재생하는 것은 또 어땠을까? 사진 촬영과 녹음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인간의 기억력이 우리가 가진 전부였다.

비파괴적 창조는 오늘날의 현상이기도 하다. 소액 금융(microfinance), 비아그라, 인생 코칭(life coaching), 포스트잇, 헬스클럽, 환경 컨설팅이 모두 비파괴적 창조의 주된 예다. 더 최신 현상으로는 온라인 데이팅 플랫폼, 크라우드펀딩, 스마트폰 액세서리 등이 있다. 이 산업들은 기존에 있던 시장이나 사업들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점점 규모를 키워 왔다.

본 연구에서 다룬 여러 사례 중 먼저 소액 금융을 예로 들어보자. 소액 금융은 오늘날 번창하고 있는 산업이지만 35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1∼2달러로 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자본에 접근조차 못했다. 그러던 중 그라민은행(Grameen Bank)이 그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이 문제를 풀면서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다. 담보 없이 소액 자본을 대출해 주는 소액 금융은 가난한 사람들도 사업을 시작해 부의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렇다고 소액 금융이 기존 시장을 파괴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전까지 시중 은행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했을 뿐이다. 그라민은 한때 은행의 고객이 될 수 없었던 이들이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모델을 창조했다.

또 인생 코칭 산업을 생각해 보자. 인생 코칭은 현재 산업 규모가 수십억 달러에 이르고 미국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업종 중 하나다. 그런 인생 코치도 25년 전에는 없었던 직업이다. 누군가 타인의 사적, 직업적 삶의 질을 높이도록 돕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뿐이다. 인생 코칭도 기존 시장이나 산업을 파괴하지 않고도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비아그라 또한 기존 산업이나 기업의 희생 없이 수십억 규모의 사업으로 부상한 사례다. 비아그라는 이제껏 없던 라이프스타일 의약품 시장이라는 한층 더 폭넓은 기회의 문을 열었다.

이 밖에도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고도 중요한 신시장을 창조한 예는 계속 찾을 수 있다. 온라인 데이팅 산업 때문에 사라진 게 있다면 아마 외로움이 유일할 것이다. 크라우드펀딩은 벤처 투자가들과 은행이 기존에 무시해 왔던 영역에 발을 들이면서 생긴 시장이다. 열정은 가득하지만 꿈을 이뤄줄 자본에 접근할 만한 인맥이나 실적이 없는 개인들이 겪던 좌절감을 없애 줬다. 휴대폰 액세서리 역시 그 무엇도 대체하지 않고 현재 700억 달러 이상 연매출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비파괴적 창조라는 렌즈를 착용하면 그런 기회들이 전부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에서 발행하는 북미 표준산업분류(North American Industry Classification Standard) 데이터의 변천사를 살펴보자. 이 분류 자료는 1997년 산업들의 창조와 재창조, 성장 속도에 발맞춰 여러 차례 개정됐다. 최근 개정판을 보면 파괴적 혁신은 분명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비파괴적 방식으로 창조된 시장과 산업, 즉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들도 등장한다. 2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역사는 비파괴적 창조가 파괴만큼이나 혁신과 성장의 열쇠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비파괴적 창조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파괴적 상충 작용 극복하기
우버는 단 9년 만에 약 7500만 명의 이용자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도시들은 이 회사들을 통제하기 위해 애썼다. 이유가 뭘까? 교통체증이 악화되고, 대중교통 이용자 수도 점점 감소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버의 성공이 택시 기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예컨대, 뉴욕시에서는 오랫동안 영업용 택시를 은퇴 후 좋은 투자 수단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우버 덕분에 영업용 택시의 가치는 100만 달러 이상에서 최저 17만5000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우버를 필두로 한 여러 승차 공유 서비스의 등장 이후 택시 기사들의 수입은 20% 이상 감소했고, 택시 기사 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디지털카메라로 인한 의한 필름 카메라 시장의 붕괴는 오랫동안 코닥 본사가 자리 잡고 있던 뉴욕주 로체스터(Rochester)시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코닥이 파산하면서 5만5000명의 주민들이 안정된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실업은 코닥 협력사와 유통업체들은 물론 서비스 회사, 비영리기관, 부동산 가격에까지 줄줄이 타격을 줬다. 회사 하나가 파괴되면서 작은 공동체 하나를 전멸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괴는 성장을 이끌고 최종 사용자에게 강력한 가치를 창출하지만 사회에는 고통스런 조정 과정이 따른다. 이해 상충이 생기기 때문이다. 시장 창조와 시장 파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회사가 문을 닫고,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사회가 손상되는 것은 파괴에 의한 자연스런 결과다.

비파괴적 창조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이해상충을 깨뜨린다는 점이다. 비파괴적 창조는 사회적 고통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동반하지 않고도 세력을 넓힐 수 있다. 이는 파괴의 제로섬(zero-sum) 특징에 반하는 포지티브섬 전략(positive-sum approach, 이해관계자들과 상생을 이루는 전략-역주)이라 할 수 있다. 소액 금융은 사람들과 일자리, 사회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1억4000명 이상의 가난한 사람들이 자영업을 시작해 소득을 창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빈곤에서 탈출해 희망을 꿈꾸게 됐다. 게다가 소액 금융을 통한 대출은 전통적 방식의 대출보다 상환율도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DBR mini box: 파괴는 어떻게 혁신의 대명사가 됐을까?

비파괴적 창조가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고유한 장점들도 많은데 어떻게 파괴가 혁신의 대명사로 거론돼 왔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혁신과 성장의 기본 이론부터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혁신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창조적 파괴라는 이론을 발전시킨 이래로 이 개념은 혁신과 기업가정신의 밑바탕이 돼 왔다. 슘페터가 정의한 것처럼 창조적 파괴는 어떤 혁신이 이전에 존재하던 기술이나 제품 및 서비스를 대체하는 신규 시장을 창출할 때 일어난다. 슘페터는 이런 창조적 파괴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주장했다.

파괴라는 개념에는 슘페터의 통찰이 반영돼 있다. 파괴에 관한 많은 연구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고, 이는 후에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으로 확장된다. i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는 새롭게 등장한 뛰어난 기술이나 제품 및 서비스가 기존의 것들을 붕괴시킬 때 발생한다. 반면 파괴적 혁신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술이 시장의 저층부에 진입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위한 발판을 만들면서 시작된다. 파괴적 혁신은 주류 시장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거나 가장 수익성이 높은 고객층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이에 기존 사업자들은 쉽게 이런 혁신을 간과한다. 파괴는 열악했던 신기술의 수준이 우월하게 발전해서 주류 고객까지 유인하고 시장 리더 자리를 꿰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때 발생한다.

슘페터가 제시하는 통찰 가운데 주목할 점은 어떤 산업을 공략하는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 서비스가 늘 더 뛰어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트로이의 목마처럼 초기에는 제품 역량이 조금 떨어지는 것처럼 가장해서 주류 시장에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 경우 기존 사업자들은 신규 진입자를 눈여겨보지 않다가 뒤늦게야 위협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 두 접근법 모두 새로운 사업이 궁극적으로 기존 사업을 붕괴하고 대체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며 파괴적 창조를 성장의 핵심 원천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창조적 파괴와 파괴적 혁신은 보통 서로 대체 가능한 개념으로 간주된다. 게다가 파괴라는 축약된 명칭은 혁신과 시장 창출, 성장에 대한 슘페터의 개념을 전달하는 대명사로 점점 더 많이 사용되는 추세다. 필자들이 파괴와 파괴적 창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도 창조적 파괴와 파괴적 혁신이란 두 접근법이 가진 공통점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킥스타터(Kickstarter) 같은 크라우드펀딩의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해 보라. 일반적으로 예술과 사진, 음악 분야의 창조적인 프로젝트들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투자를 받고 사업을 하기가 어려웠다. 잠재적 가치가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자금 부족으로 사장된 아이디어나 작품들이 수없이 많았다. 킥스타터는 이런 창작 활동가들이 은행이나 투자자를 거치지 않고도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비파괴적 온라인 플랫폼을 개발했고, 기존의 현실에 변화를 가져왔다. 후원자들에게 금전적 혜택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창조적인 활동에 관심을 갖고 타인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유형의 투자자들이 탄생했다고도 볼 수 있다. 킥스타터의 영향력을 최초로 연구한 펜실베이니아대 조사에 따르면 2016년을 기준으로 이 회사는 킥스타터 플랫폼을 통해 총 30만 개의 정규직과 파트타임 일자리를 창출했다. 8800개의 회사와 비영리 기관도 출범했다. 이들이 창작자와 창작자 공동체에 가져온 경제적 가치도 53억 달러를 넘어섰다. 3  킥스타터는 어느 일방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예술 공동체가 다 같이 번성하도록 도왔다.

스마트 기기가 인간이 담당하던 많은 일을 대체하는 4차 산업혁명이 부상하면서 시장 창조와 시장 파괴 사이의 파괴적 상충 작용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옥스퍼드대의 한 연구는 앞으로 20년 안에 미국의 일자리 절반 정도가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4 이렇게 퇴출당한 인적 자본을 흡수하려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다른 일자리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 비파괴적 창조는 이런 변화의 시대에 아주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파괴와 달리 비파괴적 창조를 일으키는 조직들은 공동체에 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고도 성장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파괴적 창조의 이점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은 기존 시장을 파괴하는 데 초점을 맞춰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태도는 기업의 시야를 좁게 만들고 비파괴적으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혁신의 기회를 차단한다. 비파괴적 접근법은 중견 기업과 스타트업에 각각 고유한 이점들을 제공한다.

정서적, 정치적으로 더 원만한 사업 실행. 모든 기업은 혁신을 원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파괴가 일어날 때 기존 기업들은 사업 실행을 가로막는 높은 장애물을 만난다. 파괴는 곧 기존 사업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은 자신의 일자리나 현재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파괴적 사업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거나, 자원 투입을 꺼리고, 과도한 간접비를 부과해 부담을 준다. 많은 이가 잊었겠지만 디지털카메라를 최초로 발명한 기업은 코닥이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가 필름 사업을 파괴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에 코닥 직원들은 심각한 감정적, 정치적 갈등에 빠졌고, 코닥은 끝내 스스로 변화를 외면했다. 이렇게 파괴에 저항한 사례는 기존 기업이 절대 취하지 말아야 할 태도로 흔히 거론된다. 그러나 기존 사업을 휩쓸어버리는 파괴에 직면한 조직들이 코닥의 행동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비파괴적 창조는 기존 기업들이 혁신을 추구하는 데 있어 덜 위협적인 경로를 제시한다. 기존 사업 방식이나 그 방식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기업일지라도 파괴적, 비파괴적 창조 모두를 수용하면서 더 광범위한 혁신을 설계한다면 조직 내 정치와 직원들의 불안감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파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비파괴적 창조는 시장 파괴자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다. 일례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 사업이 비행기의 등장으로 붕괴됐을 때, 위기에 처한 큐나드 라인(Cunard Line)은 배만으로는 비행기가 제공하는 속도와 편리성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큐나드는 대중을 위한 초호화 유람선 사업을 시작했고, 비파괴적으로 시장을 창출하고 주도해 나갔다. 큐나드는 여객선을 단순한 교통수단으로 여기던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 자체를 또 하나의 휴가 경험으로 만들었다. 크루즈 여행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개척한 것이다. 큐나드 라인은 오늘날 카니발(Carnival Corp)이라는 다른 기업에 속해 있다. 그러나 이들이 40년 전에 시작했던 크루즈 여행이라는 비파괴적 창조는 100만 명 이상의 일자리를 책임지는 1200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이어졌고, 아직까지 회사와 사회 모두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5

골리앗 피하기. 기업, 특히 스타트업이 기존 시장을 파괴하려 할 때는 종종 막강한 재무, 마케팅 자원을 바탕으로 탄탄한 입지를 다진 시장의 선두주자들과 대면하게 된다. 대중매체는 다윗이 늘 골리앗을 이기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골리앗이 이길 때가 훨씬 많다. 견고하게 뿌리내린 골리앗과 정면 승부를 벌이는 게 정말 최선일까? 그럴 수도 있다. 정면 승부는 분명 시장을 공략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비파괴적 창조를 이끄는 기회도 그만큼 거대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든, 중견 기업이든 이를 간과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사회적 이익집단 및 정부기관과 갈등 줄이기. 파괴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커지면 대개 사회적 이익 집단과 정부 기관들이 파괴자에 맞서거나, 파괴자를 단속하고, 통제하고, 세금을 부과한다. 우버가 진출한 도시들마다 우버의 전략적 행동과 확장을 막기 위해 규제를 가하고 위약금을 부과했던 것을 생각해 보라. 이에 반해 비파괴적 창조는 기존 회사들과 일자리를 대체하지 않으므로 사회가 부담해야 할 조정 비용을 최소화하고, 파괴자들이 받는 부정적인 반응들도 대부분 피할 수 있다.


혁신과 성장에 대한 시각 확장
혁신에 대해 폭넓은 시각을 가져야 할 순간이 왔다. 파괴적 창조와 비파괴적 창조는 성장을 향한 상호 보완적인 엔진이다. 이 둘을 모두 인식하고 수용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한쪽에만 초점을 두면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되고, 내일의 시장을 창조할 수 있는 회사의 잠재력이 어디까지 인지에 대해 스스로 한계를 지우게 된다.

그럼 어떤 혁신 전략이 파괴를 이끌고, 또 어떤 전략이 비파괴적 창조를 이끌까? 필자들의 연구는 기업이 혁신에 착수할 때 당면하는 문제 유형들을 토대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6


기업들은 혁신을 추구할 때 다음 3가지 기본 방식을 따를 수 있다.
● 업계가 가진 기존 문제에 대해 획기적 솔루션 제공하기.
● 새로운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하거나 새로운 기회 포착하기.
● 업계의 기존 문제를 재정의하고 그에 대한 솔루션 제공하기.

이 3가지 접근법이 파괴적 창조와 비파괴적 창조 사이 어디에 무게중심을 놓는지 살펴보자.

업계가 가진 기존 문제에 대해 획기적 솔루션 제공하기. 업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데 한 회사가 이에 대한 획기적 솔루션을 개발한다면 사업 초기든, 아니면 후기든 기존 기업들과 시장의 중심을 강타하게 된다. 파괴적 창조는 바로 이렇게 탄생한다. 음악 산업을 생각해 보라. CD는 녹음한 사운드를 최적의 상태로 저장하고 재생하는 문제에 대한 혁신적 해법이었다. CD는 다른 곡으로 넘어갈 때 카세트테이프 특유의 딸깍 소리와 테이프가 돌아가는 잡음 없이 ‘완벽한 음질을 영구적으로’ 제공했다. 이런 뛰어난 기술 덕분에 CD는 카세트테이프를 밀어내고 삽시간에 표준 음악 매체로 자리 잡았다. 그다음에는 애플이 아이팟이라는 MP3플레이어를 선보였다. 이는 음악을 저장하고 재생하는 문제에 대한 또 다른 획기적 솔루션이 됐다. 사람들은 다시 한번 옛 기술에서 새로운 기술로 재빨리 갈아탔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아이팟 같은 MP3플레이어에 똑같은 영향을 가하고 있다. 각 사례에서 기존 제품과 그에 파생되는 부수적인 사업은 파괴됐고, 새로운 제품으로 교체됐다.

똑같은 과정이 내비게이션 산업에서도 일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자동차에는 도로 지도가 한 권씩 꽂혀 있었다. 이 거대한 지도 모음집은 부피도 크고 읽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운전자들은 지도를 보기 위해 차를 세워야 해 자신이 올바른 경로를 제대로 외우고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이 문제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책이 나왔다. 차에 GPS 기기를 달면 된다. 이제 운전자들이 목적지만 입력하면 GPS 기기가 음성으로 단계별 지시를 내리고 나머지 일들을 알아서 책임진다. 지도 모음집은 쓸모없는 물건이 됐다.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모바일 앱이라는 한층 더 획기적인 솔루션도 나왔다. 오늘날에는 웨이즈(Waze)나 구글맵스(Googld Maps) 같은 길 찾기 앱들이 차량용 GPS 기기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따라서 업계가 기존에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솔루션을 개발할 경우 기존 제품은 사용이 중단되고 신제품으로 교체된다. 기존의 시장은 이런 식으로 그 중심에서 재창조되고 새로운 수요와 성장을 일으킨다.

새로운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하거나 새로운 기회 포착하기. 스펙트럼의 반대편 끝에는 비파괴적 창조가 있다. 여기에서는 새로운 문제를 확인해 해결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조직들이 기존 산업의 핵심 시장과 빈틈을 장악하는 대신 업종 간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 비아그라라는 의약품은 이전에는 다뤄지지 않았던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냈다. 인생 코칭 산업은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해 냈다.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는 기존 유치원이나 도서관의 역할을 빼앗지 않으면서도 취학 전 아동들을 위해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라는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신시장을 개척했다.

이 접근법은 이미 알려진 문제에 대해 더 나은 해답을 찾는 대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끌어낸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문제가 있을까?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숨겨진 기회가 있을까? 나 자신과 회사에 관한 질문을 바꾸면 새로운 시장과 성장을 위한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최근 인시아드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이 설립한 두 회사가 어떻게 비파괴적 창조를 이끌었는지 살펴보자.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많은 학생이 유학의 길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 학생들이 방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담보나 신용이 뛰어난 보증인이 없는 한 외국 유학생 신분으로 대출을 받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유학의 꿈을 몇 년 미루거나 아예 접는 학생들이 많았다.

영국의 프로디지파이낸스(Prodigy Finance, 석·박사급 유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는 핀테크 플랫폼-역주)나 미국의 엠파워파이낸싱(MPower Financing, 유학생들의 학비 보조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기관-역주)을 운영하는 인시아드 졸업생들은 이 해묵은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이들은 먼저 인시아드 유학생들 중 학비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인시아드가 아니더라도 외국에서 선진 학문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 대부분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런 학생들이 유학 중인 나라에서 보증인이나 담보, 신용 이력 없이도 학비를 대출받을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프로디지와 엠파워는 유학생들의 신용을 학업 성적과 출신 대학, 학위로 가늠할 수 있는 미래 소득을 기초로 평가하기로 했다. 프로디지와 엠파워는 이전까지 간과돼 왔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그동안 ‘대출이 불가능했던’ 외국 유학생들이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

프로디지는 지금까지 130여 개국의 유학생들에게 총 6억9000만 달러 이상의 학자금 대출을 지원해 왔다. 또 엠파워는 2014년에 설립된 이래 110여 개국 학생들에게 재정 지원을 해 왔다. 두 기관 모두 연체율이 1% 정도로 낮아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높일 수 있었다. 프로디지는 최근 채권을 발행해 10억 달러의 기금을 마련했을 정도다. 또한 차세대 글로벌 인재 배출을 돕는 신시장을 개발해 꽤 괜찮은 수익을 내고 있다. 비파괴적 창조의 결과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산업 하나가 생겨난 것이다.

업계의 기존 문제를 재정의하고 그에 대한 솔루션 제공하기. 기존 산업의 문제를 재정의한 후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 전략은 파괴적 창조와 비파괴적 창조, 둘 다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를 재정의하면 조직이 오랫동안 당연시했던 가정을 다시 한번 의심해볼 수 있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업종 간 경계를 허물거나 바꿀 수 있다.

닌텐도 위(Wii) 사례를 보자. 이 제품은 비디오 콘솔 산업에서 오랫동안 초점을 맞춰 왔던 문제를 재정의했다. 기존에는 가장 빠르고 그래픽 해상도가 높은 비디오 콘솔을 개발하는 게 핵심이었다. 반면 닌텐도는 누구나 가정에서 즐길 수 있는 가족 중심의 친근한 게임을 만들고, 마치 스포츠처럼 움직이면서 할 수 있는 간편한 콘솔 게임을 개발하는 쪽으로 문제를 다시 규정했다. 위가 선보인 가족 친화적인 게임들은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또한 버튼 대신 몸을 움직여 조작할 수 있다. 위는 이렇게 파괴적인 요소들로 기존 비디오 콘솔 게임 산업이 갖고 있던 수요를 일부 확보했다. 나아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비디오 게임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수많은 사람을 유인하는 비파괴적인 방식으로 산업을 확대했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도 어떻게 하면 서커스로 최고의 재미와 스릴감을 선사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뒀던 기존 문제를 재정의했다. 대신 어떻게 하면 서커스의 가장 큰 매력인 광대, 천막, 놀라운 곡예 등과 연극 및 발레의 매력인 예술 음악, 춤, 스토리를 결합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엔터테인먼트 형식들이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면서 각각의 공연을 즐기던 관객들을 한데 모을 수 있었다. 아울러 태양의 서커스는 공연 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우는 역할도 했다. 새롭게 만들어 낸 공연 시장으로 새로운 관객을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자녀가 없는 성인부터 이전에는 클라이언트를 모시고 서커스 보러 가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던 기업 임원까지 태양의 서커스 고객이 됐다.

이처럼 어떤 산업이 갖고 있는 기존 문제에 대해 획기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면 파괴적 창조가 일어난다. 아예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면 비파괴적 창조가 일어난다. 또 업계의 기존 문제를 재정의하고 재정의된 문제를 해결할 경우에는 파괴적 창조와 비파괴적 창조를 한꺼번에 이끌 수 있다. (그림1)



비파괴적 창조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방법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나 포착할 만한 새로운 기회를 잘 발견하는 리더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본 연구는 이런 사람들에게 혁신을 생각하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런 리더들은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 단계를 따른다.

첫째, 이런 사람들은 사회, 산업, 혹은 그들이 속한 직장에서 해결이 시급하지만 간과돼 왔던 문제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문제들이 정말 걱정스럽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들이나 조직이 그 문제로 힘들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말 걱정스럽다는 것은 문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믿을 만한 지표다. 또 사람들이나 조직이 힘들어 한다는 것은 그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풀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그라민은행의 창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는 조국 방글라데시의 빈곤 퇴치를 간절히 염원했다. 그는 극빈 계층의 가구들이 삶의 질을 높이려 발버둥치지만 간단한 의자를 만들 대나무를 살 돈이 없어 장사조차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킥스타터의 설립자들도 창조적인 예술가들이 금전적 지원을 받지 못해 꿈을 접는 일이 없도록 그들을 돕고자 하는 열정에 차 있었다. 프로디지와 엠파워의 설립자들 또한 불필요한 장애물 때문에 해외에서 중요한 공부를 하는 유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스스로에게 단순하지만 심오한 질문 하나를 해 보라. 이 세상에서, 당신이 속한 산업에서, 혹은 직장에서 사람들이나 조직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 당신 스스로도 깊이 고민하는 문제 중 해결이 시급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두 번째 단계는 일반적으로 어떤 조직과 산업이 그런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지를 찾고, 왜 그들이 문제를 간과해 왔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 원인을 알면 비파괴적 시장을 향한 문을 열기 위해 어떤 혁신이 필요한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무하마드 유누스는 왜 가난한 농촌 주민이 소액 창업을 하지 못하는지 파악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게으름이나 무절제한 생활 태도가 아니라 자본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금융 업계가 고심해야 할 문제였다. 은행들은 열정은 있지만 가난한 농촌 주민들을 효과적으로 고객에서 걸러냈다. 꾸준한 수입이나 담보가 없기 때문이었다. 킥스타터 창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예술가나 창조적인 사람들의 꿈이 그 꿈에 투자할 만한 산업이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은행 대출이나 벤처 자금은 투자 수익을 기준으로 결정되는데 예술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전부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간극은 대다수의 창작가를 전통적인 펀딩 서비스의 밖으로 내몰았다. 프로지디와 엠파워 설립자들은 은행 업계가 학업을 위한 학자금 지원이 필요한 외국인 유학생들을 고객에서 제외하는 이유도 알게 됐다. 일단 국경선을 넘으면 기존에 갖고 있던 신용이 근본적으로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신용이 지난 500년간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돼 왔기 때문에 외국에서 학위를 받으려는 대학원생 대부분은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세 번째 단계는 가치는 높이고 비용은 낮추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회를 포착해줄 새로운 기술이나 플랫폼,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디지와 엠파워는 최신 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신용평가 방법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학생들이 장래에 종사할 업종의 수요와 학위의 가치, 학교 졸업생들의 평균 소득을 더 쉽게 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누스도 새로운 신용도 판단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친족 관계와 집단 압력 등 빈곤층 공동체의 긴밀한 유대감을 토대로 그라민은행의 소액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 킥스터 설립자들 또한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구축하는 한편 후원자들의 이름을 아티스트의 웹사이트에 올리는 등의 새로운 보상 방식을 선보였다.

일반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처리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어떻게 최신 기술과 창의력을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자.


비파괴적 창조의 기회가 무르익은 분야들
본 연구는 앞서 언급한 3단계를 통해 비파괴적 창조의 기회가 무르익은 여러 분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많은 분야가 소위 사회적이며 인도적인 경제의 영역에 속했다. 정신 건강과 정서적 건강, 사이버 보안, 사생활 보호, 스마트 기계에 의해 대체될 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의 역량 강화 등이 포함됐다. 부의 피라미드 가장 하층부에 위치한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일도 여기에 해당했다.

세계 인구 증가와 산업화, 치솟는 에너지 수요, 늘어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폐기물은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해양 생물을 위험에 빠뜨리고 인간의 먹이사슬을 손상시키며 바다의 아름다움까지 파괴하는 거대 쓰레기 지대(Great Pacific Garbage Patch)를 예로 들어보자. 이 같은 문제는 비파괴적 창조의 기회를 제시한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지속가능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다.

인구 고령화와 도시화 같은 인구 통계학적 변화 역시 새로운 문제와 기회를 제공한다. 전성기가 지난 노인층의 지적, 사회적 참여를 더 많이 유도할 방법은 없을까? 이들이 오래도록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지속하려면 어떤 도움을 줘야 할까? 노인들이 그동안 삶에서 얻은 지혜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활용하고 인생 2막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플랫폼은 없을까? 이렇게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광범위한 비파괴적 창조의 원천이다.

혁신을 통해 새로운 습관과 취향, 지식이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만큼 새로운 수요와 문제, 기회도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그동안 기업과 정부, 기타 조직들은 사회 발전에 필요한 혁신을 이루기 위해 너무 오랜 기간 파괴에만 의지해 왔다. 이제는 비파괴적 창조를 이끄는 정책과 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할 때다. 그래야 사회의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지구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매우 심각하고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전략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파괴적 창조와 동일 선상에서 비파괴적 창조를 모색하는 모델은 새로운 성장의 물꼬를 틀 수 있다. 기업과 사회의 목표에도 더 잘 부합할 것이다. 폭넓은 시각은 우리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기회를 준다.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자.

번역 |김성아 dazzlingkim@gmail.com

필자소개
김위찬(W. Chan Kim) 르네 마보안(Renée Mauborgne)은 프랑스 인시아드(INSEAD)경영대학원의 전략 담당 교수이자 인시아드 블루오션 전략연구소(INSEAD Blue Ocean Strategy Institute)의 공동 소장으로 있다. 두 사람은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베스트셀러인 『블루오션 시프트(Blue Ocean Shift: Beyond Competing)』와 글로벌 베스트셀러인 『블루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의 공동 저자다. 이 글에 대해 더 궁금한 분은 www.blueoceanstrategy.com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 김위찬 김위찬 | - (현)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전략 및 경영 담당 교수
    - (현) 인시아드 블루오션 전략 연구소의 공동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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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 마보안(Renee Mauborgne) 르네 마보안(Renee Mauborgne) | -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전략 및 경영 담당 교수
    - 인시아드 블루오션 전략 연구소의 공동 소장
    - <블루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하버드 비즈니스 프레스, 2005년)의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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