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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해진 4륜구동?그렇다고 눈길 마구달리면…

로버트 C. 머튼 | 140호 (2013년 11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3 4월 호에 실린 로버트 C. 머튼의 글 ‘Innovation Risk: How to make smarter decision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2013 Harvard Business School Publishing Corp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는 사람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혁신에는 위험이 따른다. 어떤 혁신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상당 부분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해 내리는 결정에 달려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만일 눈보라치는 날씨에 보스턴에서 뉴욕까지 운전해야 한다면 4륜 구동 자동차와 2륜 구동 자동차 중 어떤 것이 더 안전할 것으로 느껴지는가? 아마 당신은 4륜 구동 자동차를 택할 것이다. 그러나 사고 통계를 들여다보면 4륜 구동 자동차가 눈 오는 날 거리당 사고 비율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이는 혁신이 눈길 운전을 더 안전하게 만든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할지도 모른다.

물론 혁신이 더 안전하게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해졌다고 느낀 사람들이 운전 습관을 바꿨다는 것이 정확한 사실이다. 눈 오는 날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전보다 늘었고 아마 그들은 더 부주의하게 운전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전과 같은 속도로 같은 도로를 이용해 뉴욕까지 운전한다면 실제로 4륜 구동 자동차는 훨씬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과 다른 사람들이 모두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달린다면 눈보라 치는 날씨에서 마주치는 위험의 정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위험 축소와 성과 향상 사이의 선택인 셈이다.

만약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혁신의 위험이 달라진다면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정신을 똑바로 차릴수록 위험이 낮아질 것이다. 하지만 기업과 정책결정자들이 혁신의 결과들 - 사람들이 선택하는 상충관계(trade-offs)와 행동을 혁신이 어떻게 바꾸는가 - 을 고려할 때는 사람들이 혁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데 기반이 되는 모델들의 한계를 염두에 둬야 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모델 중 일부는 개선할 수 있지만 일부는 근본적으로 흠이 있어 폐기해야 한다. 일부 모델은 특정한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고 일부는 사용자가 정교해야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심지어는 혁신을 어떻게 사용할지 적합한 모델을 통해 선택하더라도 - 위험과 성과 사이에서 알맞은 균형을 유지하면서 - 바뀐 행동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내린 다른 선택과 행동의 위험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전혀 무관해 보이는 영역에서도 종종 그렇다. 이것은 물론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혁신이 발생하는 시스템이 복잡할수록 그 결과는 더 가혹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혁신과 관련된 많은 위험들은 혁신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적용될 환경에서 비롯된다.

핵심은 모든 혁신이 위험과 이익 사이의 상충관계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위험과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자와 기업, 정책결정자들 모두 어떻게 하면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결정을 내릴지 알아야 한다. 특히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음의 다섯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라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받아들일 때 위험과 이익에 대한 당신의 결정은 인지과학자들이 멘탈 모델(mental model)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정보를 얻는다. 눈이 오는 날 뉴욕까지 운전해야 할 때 당신은 아마도 가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전부를 통제할 수는 없더라도 운전할 자동차의 유형과 속도는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위험과 이익의 상충관계를 평가하는 간단한 멘탈 모델은 자동차 유형과 속도 대비 안전을 도식화한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모델은 지극히 단순화한 결과다. 안전과 속도 사이의 관계는 날씨, 도로 상황, 교통량, 도로 위 다른 차량들의 속도 등 다른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부분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올바른 선택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런 변수들과 당신이 선택한 속도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많은 요소를 고려할수록 특정 속도에 대한 위험성을 평가하는 일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 데이터를 편집하고, 각 요소의 매개변수(parameter)를 추정하고, 그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결정한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실제 현실 상황에 적용했던 모델 중 대부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반의식적으로(semiconsciously) 존재해왔다. 심지어 오늘날 우리는 운전을 할 때도 부정확하지만 강력한 멘탈 모델에 반사적으로 의존한다. 여기서 각 요소들의 관계는 경험을 토대로 추정된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기술이 등장하면서 이제까지 인간의 인지를 요했던 많은 활동들이 점점 더 정규화된 수학적 모델링으로 가능하다는 점이 입증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가고 있다고 하자. 비행기의 대부분은 컴퓨터로 작동할 것이다. 속도와 고도, 비행경로 등에 대한 컴퓨터의결정들은 위치와 기압, 비행기의 무게와 항공 교통의 위치, 바람의 속도와 다수 기타 요인들의 연속적 입력을 처리하는 수학적 모델에 의존한다. 컴퓨터 비행사는 너무나 정교해서 심지어 착륙도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다.

금융도 비행기와 마찬가지다. 스톡옵션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블랙-숄즈 공식(Black-Sholes Formula) - 1970년대 내가 개발에 참여했다 - 은 측정할 수 있거나 관찰할 수 있는 외부 요소들과의 관계를 수립하려는 시도다. 구체적으로는 기초자산(underlying asset)과 가격 변동성, 이자율, 만기 등과 특정 자산을 구입할 수 있는 옵션(call option) 가격과의 관계다. 금융회사들은 컴퓨터가 거래를 수행할 수 있도록 블랙-숄즈와 같은 모델을 활용한다. 예를 들면 실제 주가와 옵션 가격이 블랙-숄즈 또는 다른 정밀한 가치 측정 모델에서 추정한 밸류에이션에서 벗어나면 주식이나 옵션을 사고파는 주문을 내도록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해 둘 수 있다.

모델에 더 많은 요소를 포함할수록 어떤 혁신을 받아들일지 여부와 그 방식을 결정할 때 마주칠 수 있는 위험을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은 타당해 보인다. 이는 수학적 모델링의 인기를 충분히 설명한다. 기술적이거나 금융적인 혁신과 관련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런 모델의 다수가 꽤 잘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면 블랙-숄즈의 핵심인 일반 복제 방법론은 경험적 사례로 잘 증명된다. 실제 옵션과 다른 파생상품들의 가치는 심지어 이 모델의 간단한 버전으로 예상한 가치와도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 평가에 안도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때가 진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때다.

 

 

모델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라

모델을 구축하고 사용할 때 - 그것이 재무적 가격 결정 모델이든, 비행기의 자동 조종 기능이든 - 부정확한 모델과 불완전한 모델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부정확한 모델은 내부 논리나 근본적인 가정 자체가 명백히 틀린 경우다. 원둘레를 계산하는 수학적 모델이 파이(pi) 값으로 4.14를 사용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부정확한 부분을 짚어내는 것이 항상 쉽다는 얘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한 비행기의 내비게이션 모델이 뉴욕의 라구아디아(La Guardia) 공항을 보스턴에 있는 것으로 나타냈다고 해도 그 방향으로 인도된 비행기들이 직접 날아가기 전까지는 결함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단 한 모델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가정 아래 만들어졌다는 것이 발견되면 그 모델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불완전함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모든 모델이 갖고 있는 특성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수학자인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은 실제를 완벽히 묘사하는 것일 뿐 어떤 모델도이지는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파이 모델에서 3.14는 틀린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이다. 3.14159를 사용하는 모델은 조금 덜 불완전하다. 덜 불완전한 모델이 기존 모델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기본 버전을 개선해가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 주의하라. 기본 모델은 잊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덧붙여져야 한다.

부정확함과 불완전함을 구별하는 것은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그들은 세상을 묘사하고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들을 개발하면서 부정확하다고 밝혀진 모델의 사용을 거부한다. 이는 작업에 대한 형식 분석(formal analysis)이나 근본적인 가설에 대한 테스트를 통해 진행된다. 여기서 살아남은 모델은 부정확하다기보다는 불완전하다고 여겨지며 따라서 개선할 수 있다. 블랙-숄즈를 다시 생각해보자. 옵션 모델은 특화된 적용을 위해 더 많은 변수와 더 강한 가설들을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기본 공식을 넘어 근본적인 방법론을 확장하면서 더 많은 무기를 갖게 됐다.

일반적으로 어떤 모델의 수학적 계산에서 근본적인 위반이 발견되거나 포함하고 있는 가설에서 오류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 모델을 폐기하기보다는 개선해가는 것이 논리적이다. 하지만 실제 행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다음의 도전을 가져다주는 요인이기도 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라

 

아무리 노력하고 재주를 부려 봐도 모델에 적용되는 어떤 요인들은 간과될 수 있다. 혁신의 모든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뒤늦게야 깨닫게 될 뿐이다. 특히 혁신과 다른 변화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날 때 그렇다. 변화 자체와는 연관성이 없어서 사전에 위험 요인으로 알아챌 수 없을 때 말이다.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의 금융위기는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의 좋은 예다. 주택 모기지 시장에서의 혁신이 거래 비용을 대폭 낮췄고 주택의 구매뿐 아니라 차환과 대출 증액이 모두 쉬워졌다. 사람들은 기꺼이 부동산 소유권을 부채로 바꾸고, 쉽게 돈을 빌려 차를 사고, 휴가를 떠나고, 사고 싶었던 재화와 서비스를 누렸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모기지 대출 혁신이 의도한 (그리고 선한) 결과는 낮은 비용의 선택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함께 나타났다. 이자율 하락과 집값 상승이라는 각각의 경제적 흐름과 대출의 변화라는 요인이 동시에 발생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주택 소유자들이 한꺼번에 주택 지분의 일부를 저금리-장기 대출로 돌려 모기지론 리파이낸싱에 나서려는 동기를 가졌다.

이런 기류는 스스로 점점 더 강해졌다. 집값이 오르면서 주택 소유자들의 지분을 증가시켰다. 이는 현금화돼서 소비에 사용될 수 있었다. 모기지론을 대출받은 사람들은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서 주택 소유자들은 이 같은 현금화 과정이 특별한 구매나 투자를 위한 일시적인 자금 마련 수단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소비를 위한 고정적인 자금 출처로 생각하게 됐다. 그 결과 오래된 집을 소유한 사람들의 레버리지가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새로 집을 산 사람 수준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는 통상 집값이 오를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 세 가지 조건(효율적인 모기지 리파이낸싱 시장과 저금리, 그리고 특히 집값의 지속적인 상승)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그렇게 조직적인 리레버리지(re-leverage)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 조건이 하나로 수렴하면서 미국의 주택 소유자들은 금융위기 전 10년간 대규모로 레버리지를 일으켰다. 그 결과 그들 중 대다수가 집값 하락이라는 동일한 위험에 노출됐고 체계적인 위험으로 발전했다.

위험을 더 키우거나 대출 규모를 줄이는, 주택 소유자들의 능력 사이에 나타난 불균형이 위험을 가중시켰다. 집값이 오를 때는 돈을 더 빌리거나 주택 가치 상승분을 대출 담보로 제공하기 쉽다. 하지만 추세가 뒤집혀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주택 가치가 하락하면서 주택 보유자들의 지분이 축소되는 반면 그들의 레버리지와 위험은 증가한다. 주택 보유자가 이를 인식하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위험을 조정하고 싶어 하더라도 불균형에 직면하게 된다. 대출을 점차적으로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집은 일부만 팔 수는 없기 때문이다.(위험 조정의 불균형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아미르 칸다니(Amir Khandani)와 앤드루 로(Andrew W. Lo), 로버트 머튼(Robert C. Merton) <체계적 위험과 차환의 톱니 효과(Systemic Risk and the Refinancing Ratchet Effect, 출판예정,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를 읽어보라.) 이 같은 근본적인 불가분성 때문에 주택소유자들은 대부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집값이 다시 오르거나 최소한 하락만이라도 멈추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결국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으면서 집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집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이런 현상은 집값 추세가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다. 대출 시장은 이런 상황에 특히 취약하다. 집값이 조금만 떨어지거나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최근의 경제 위기에서 나타났던 시나리오다.

위험을 만들어내는 데 관계가 있었던 세 가지 요소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 효율적인 리밸런싱 기회와 금리 하락, 집값의 상승이 각각 영향을 미쳤다. 이 중 어떤 것도 규제 기관이 경고의 깃발을 들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2000 IT 버블의 붕괴나 9.11 쇼크, 경기 침체의 위협 등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는 기준금리(Fed Funds Rate) 2000 5 6.5%에서 2003 6 1%로 낮췄다. 이는 모기지 대출의 차환과 그 수단들을 자극했다. 2007년에 그랬듯 저금리와 새로운 모기지 상품은 더 많은 가구가 이전에는 구입할 수 없었던 주택을 사들이게 했다. 집값이 오르면서 새로 집을 산 가구는 꽤 많은 부를 얻었다. 더 효율적인 리파이낸싱 기회는 새로운 수입을 깨닫게 하며 민간 수요와 경제 성장을 부채질했다. 어떤 정치인이나 규제 기관이 선순환처럼 보이는 이 상황을 중단시키려 하겠는가?


용도와 사용자를 이해하라

 

 

당신이 근본적으로 정확한 어떤 모델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이 모델은 자연의 법칙이나 무차익거래(no-arbitrage)의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명백하게 흠이 있는 가설을 포함하고 있지도 않다. 현재 존재하는 다른 어떤 모델보다도 좀 더 완전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이 모델이 유용할 것인지는 보장할 수 없다. 어떤 모델의 효용은 모델 자체뿐만 아니라 모델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그 모델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적용 이슈를 먼저 살펴보자. 간단히 말해 당신은 오프로드를 여행하기 위해 페라리를 선택하지 않는 것처럼 이탈리아의 고속도로를 달리기 위해 랜드로버를 고르지도 않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블랙-숄즈 공식은 실시간 주가를 필요로 하는 초고속 옵션 거래(ultra-high-speed options trading)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옵션 가치(option-value)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고속 거래(high-speed trading)를 위한 모델은 일반적인 회계 원칙을 따르는 경영자 스톡옵션의 비용 공시에는 쓸모가 없다. 이 같은 맥락에서 모델의 활용이 분명하고, 여러 회사에 지속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보고된 것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며,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서 제시한 블랙-숄즈 방정식은 표준화와 재현성을 갖고 있다. 입력해야 할 변수가 제한적인데다 변수들의 예측 값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모델을 사용하는 사람이 모델 자체나 그 한계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그 모델을 신뢰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에게 원 둘레를 구하는 데 적절한 모델은 파이 값으로 7분의 22를 가정한 것이다. 이 모델은 소수점 두세 자리까지의 결과를 제공하므로 고등학교 수준의 작업에는 대체로 충분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이보다 더 복잡한 모델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에게 페라리를 운전하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고 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그들은 그렇게 빠른 속도로 학교에 올 필요가 없다.

누가 그 모델을 사용하며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 생각할 때는 특정 작업을 위한 자격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톰 크루즈(Tom Cruise)가 연기한 영화톱건(Top Gun)’의 남자 주인공은 많은 이들에게 이상적인 전투 비행사의 전형으로 남았다. 과감하게 규율을 파괴하고 계기 장비에 의존하기보다는 본능과 직감으로 비행기를 모는 사람이다.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가 연기한스타워즈(Star Wars)’의 한 솔로(Han Solo) 역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날 전투 비행기는 외부 환경 변화에 1000분의 1초당 반응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운전할 때 가장 잘 운행된다. 인간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다. 사실 엄청난 가격의 항공 컴퓨터 시스템을 직감을 따르는 독불장군의 손에 맡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모델을 잘 알고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신호를 빠르게 찾아낼 수 있도록 훈련받은 컴퓨터 괴짜(geek)가 더 나은 비행사일 것이다. 또한 비정상적 상황에서는 운전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중단하는 것이 최상의 대응방법일 것이다.

 

 

 

잘나가는 스타와 컴퓨터 괴짜 중에 누가 나은지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모델은 모델 자체와 그 적용, 사용자라는 세 가지를 통해 의미 있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사용자가 작업 수행에 적절한 자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더 완전하지만 더 복잡한 모델은 더 큰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 딱 맞는 사례가 바로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신용 평가 위기(credit-rating crisis). 수많은 투자 매니저들이 모델을 잘못 사용하면서 AAA등급 채권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에서 그처럼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 이는등급 평가: 숲을 보지 못한 채 나무만 보기에서 설명한다.

 

 

기반시설을 점검하라

마지막으로 혁신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그 혜택과 위험은 대부분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선택이 아니라 그것이 적용되는 기반시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혁신가들과 정책 결정자들은 이 위험에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고속 열차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하자. 만약 기존 시스템의 철로가 빠른 속도를 감당할 수 없는데도 이를 무시하거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고속 열차를 운행했다면 어느 순간 사고가 날 것이며 승객들은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철로는 파괴될 것이고 그 철도망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든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직장에 가지 못하고 병원이 새 설비를 들여오지 못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철로를 책임지는 사람들의 첫 번째 임무는 철로가 그 위를 지나다니는 열차를 안전하게 지지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들은 당신의 고속 열차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가장 간단하고 즉각적인 답은 안전 속도 제한을 두는 것이다. 이것이 유일한 답이라면 철도 교통에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을 것이다. 고속으로 운행하지도 못할 열차를 개발할 이유가 무엇인가?

더 나은 해결책은 철로를 개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동시에 제품과 기반시설 사이의 기술적 불균형이 해결될 때까지 속도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이처럼 간단한 답변이 항상 쉽게 나오지 않는다. 주요한 혁신 중에 고속 열차처럼 확실한 성공작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혁신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일부 산업의 혁신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실패 확률 또한 높다. 따라서 등장하는 모든 혁신에 맞춰 기반시설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성공적인 혁신의 유통기한은 고속열차의 그것보다 훨씬 짧기 때문에 기반시설을 쉴 새 없이 변화시켜야 할 수도 있다.


기반시설의 변화가 제품이나 서비스의 변화에 비해 뒤처지는 데서 발생하는 불균형이 위험의 주된 원인이 될 수 있다. 금융 시스템에서 이런 현상은 낯설지 않다. 1970년대 상승장세 기간에 미국의 많은 중개회사에서 발생한 주식거래 처리 시스템의 붕괴를 생각해보라. 당시 주문처리 기술은 백오피스로 밀려들어오는 전례 없는 규모의 거래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처리되지 못한 물량은 회사와 그들의 고객이 금융 포지션에 대해 불완전한, 많은 경우 부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몇몇 회사들이 쓰러졌다.

주요 증권거래소들이 힘을 모아 임시 해결책을 마련했다. 그들은 일정 시간 동안 거래를 중단시켜 회사들이 밀린 주문을 처리하고 계좌 사이의 불일치를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중개 회사들과 거래소들이 데이터 처리 신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한 후에야 해결됐다. 이 사례에서는 기반시설의 문제가 정부 개입 없이 해결됐다. 하지만 오늘날 이와 비슷한 규모의 증권 거래 문제가 발생한다면 정부 개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 세계에서 경쟁 중인 무수한 중개회사와 거래소(파생증권 거래소를 포함해)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적이면서도 자발적인 협력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제품 및 서비스와 기반시설의 불균형에서 발생하는 위기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된 후 계속 진화한다는 점이다. 이런 진화는 기반시설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떤 은행이나 중개인이 맞춤형 상품을 금융시장에 소개했다고 가정해보자.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 상품 또는 서비스는 곧 표준화될 것이다. 교환시장 메커니즘(exchange market mechanism)을 통해 대폭 낮아진 가격으로 사용자에게 직접 제공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50년 전 뮤추얼펀드가 인기를 끌었을 당시 일어났던 현상이다. 이 혁신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개인이 분산된 시장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래소에서 주식을 직접 골라 사는 것뿐이었다. 이는 비쌌고 몇몇 대규모 투자자를 제외한 일반 투자자에게는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거래 비용이 굉장히 높았고 사고 싶은 주식은 분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작은 단위로 판매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뮤추얼펀드처럼 중개인들이 모여 이룬 혁신은 개인투자자들이 훨씬 더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이후 새로운 혁신들이 국내외 다양한 주가지수를 기초로 한 선물 거래를 가능하게 했다. 이 같은 장내 거래는 비용을 더욱 절감시켰고 시장의 다양성을 높였으며 국제적 다변화를 위한 기회를 확대했다. 레버리지를 선택하고 위험을 관리하는 데 투자자들이 더 유연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주가지수 선물은 다양한 포트폴리오에 대한 장내 거래 옵션을 만들 수 있게 했다. 가장 최근에는 중개회사들이 주가지수나 투자 기간, 심지어 통화를 섞은 특수 계약을 만들기 위해 주식 스와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원래 일반 가정이 주식을 다양하게 보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은 개인 기업 주식을 위한 시장에 불과했다. 혁신을 통해 뮤추얼펀드와 같은 중개회사들이 그것을 대체했다. 그리고 주가지수 선물을 통해 투자자들은 다시 한번 시장을 직접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한 중개인의 혁신을 보고 있다. 이는 거래소에서 보다 다양한 포트폴리오가 거래될 수 있도록 하는 요인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역동성은 어떤 정해진 시점에 기반시설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정확히 밝혀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위험을 지닌다. 심지어는 새로운 제품의 출시와 동시에 기반시설을 바꿀 수 있다고 해도 오래지 않아 그 변화가 더 이상 관련이 없어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해당 제품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른 경로를 통해, 다른 목적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복잡한 문제는 기반시설의 변화 자체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혁신과 관련된 위험을 적절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결과를 주의 깊게 모델링해야 한다. 하지만 위험의 모든 측면을 잡아낼 만큼 충분히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혁신은 언제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모델은 태생적으로 복잡한 현실을 불완전하게 따라할 뿐이다. 또한 사용자가 얼마나 능숙하게 활용하느냐에 제약을 받으며 잘못 적용되기 쉽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혁신의 위험 중 많은 부분이 기반시설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특히 경제나 IT처럼 복잡하고 빠르게 진화하는 업계에서는 기반시설에서 비롯되는 결과들을 예상하기 어렵다. 결국 모든 혁신은 미지로의 도약을 수반한다. 하지만 우리가 전진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이고 관리해야 할 사실이다.

 

 

로버트 C. 머튼

로버트 C. 머튼은 MIT 경영 대학원 Finance 분야 School of Management의 특훈 교수이자 하버드대의 명예교수다. 그는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번역 |최두리 dearduri@gmail.com

  • 로버트 C. 머튼 | - MIT 경영대학원 Finance 분야 특훈 교수
    - 하버드대 명예교수
    - 노벨 경제학상 수상(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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