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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창조 신화의 비밀

월터 아이작슨 | 118호 (2012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2 4월 호에 실린 아스펜 연구소 CEO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의 글 ‘The Real Leadership Lessons of Steve Job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2012 Harvard Business School Publishing Corp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파란만장한 삶은 엄연히 기업가적인 창조 신화다. 1976년에 부모님 집 차고에서 애플(Apple)을 공동 설립한 잡스는 1985년에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1997년에 애플에 복귀해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른 회사를 되살려놓았다. 2011 10월에 세상을 떠날 즈음 잡스는 애플을 세상에서 가장 비싼 회사로 키워놓았다. 그 과정에서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 전화, 태블릿 컴퓨터, 소매 매장, 디지털 출판 등 총 7개 산업의 변화에 기여했다. 이와 같은 혁혁한 공로로 인해 잡스는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헨리 포드(Henry Ford), 월트 디즈니(Walt Disney)와 함께 미국의 위대한 혁신 영웅 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이들 중 그 누구도 성인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가 잊혀진 지 한참이 흐른 후에도 역사는 이들이 기술과 비즈니스에 어떻게 상상력을 덧입혔는지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필자가 집필한 잡스 전기가 세상에 공개된 후 몇 달 동안 수많은 논객들이 그 글에서 경영에 관한 교훈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제법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중 상당수가(특히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잡스의 성격 중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듯 모가 난 부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잡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잡스의 성격이 비즈니스 운영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잡스는 보편적인 규칙이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듯 굴었고 자신의 일상 생활에 접목했던 열정과 집중력, 극단적일 정도로 감정을 중시하는 태도를 자신이 만들어내는 제품에도 똑같이 쏟아부었다. 쉽게 발끈하고 초조해하는 성격은 잡스가 추구했던 완벽주의의 핵심이었다.

 

전기 집필 작업이 거의 끝나가던 무렵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던 잡스를 만나 사람들을 거칠게 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질문이 끝나자 잡스는 결과를 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데리고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얼마든지 다른 회사로 옮겨가 최고의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그런 다음 잡스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아쉬운 듯한 어조로 다시 말을 시작했다. “우리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 사실 잡스와 애플은 지난 10여 년 동안 아이맥(iMac), 아이팟(iPod), 아이팟 나노(iPod nano), 아이튠즈 스토어(iTunes Store), 애플 스토어(Apple Stores), 맥북(MacBook), 아이폰(iPhone), 아이패드(iPad), 앱 스토어(App Store), OS X 라이언(OS X Lion) 등 현대에 등장한 그 어떤 혁신 기업이 내놓은 것보다 훌륭한 히트작을 수없이 선보였다. (픽사(Pixar)에서 제작한 모든 영화는 두말할 것도 없다.)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병마와 싸우는 동안에는 다정한 아내, 여동생, 4명의 자녀, 오랜 세월 동안 잡스로부터 영감을 얻고 잡스에게 충성을 다해 온 동료들이 그의 곁을 지켰다.

 

따라서 필자는 스티브 잡스가 주는 진정한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실제로 잡스가 무엇을 이뤄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잡스에게 자신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창조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잡스가 아이패드나 매킨토시라고 답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잡스는애플’, 회사 그 자체라고 답했다. 잡스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오래 지속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훨씬 힘들고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잡스는 어떻게 그토록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경영대학원들은 지금부터 한 세기는 지난 후에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연구할 것이다. 필자가 잡스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핵심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집중하라(Focus)

잡스가 복귀한 1997년 당시 애플은 십여 종의 매킨토시 제품을 비롯해 수많은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닥치는 대로 생산하고 있었다. 몇 주 동안 제품 검토 과정을 거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잡스가 마침내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그만해! 이건 미친 짓이야.” 잡스는 마커펜을 집어 들고서 아무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화이트보드를 향해 걸어간 다음 2x2 매트릭스를 그렸다. 잡스는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것이라고 선언했다. 잡스는 2개의 행 위에일반인용(consumer)’이라는 단어와전문가용(pro)’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그런 다음 2개의 열 앞에데스크톱(desktop)’이라는 단어와휴대용(portable)’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잡스는 팀원들에게 각 사분면에 해당되는 제품을 하나씩 결정해 총 4개의 위대한 제품에 주력해야 하며 나머지 제품은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직원들은 모두 망연자실한 듯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잡스는 애플이 단 4개의 컴퓨터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애플을 구원했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이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기업도 마찬가지고, 제품도 마찬가지다.”

 

잡스는 애플의 문제를 바로잡은 후 매년 브레인스토밍을 위해최우수 직원 100을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아이디어 워크숍을 떠났다. 마지막 날이 되면 잡스는 으레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질문을 던졌다. (잡스는 화이트보드를 무척 좋아했다. 화이트보드를 사용하면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사람들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10가지 일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제안한 내용이 최종 목록에 올라갈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잡스는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간 다음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제안을 지워버리곤 했다. 치열한 토론 끝에 총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목록이 완성되면 잡스는 가장 순위가 높은 3개의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7개 항목을 지워버리고선 선언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3개뿐이지.”

 

잡스는 집중하는 능력을 타고난데다 선() 수행을 통해 집중력을 한층 강화시켰다. 잡스는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요인을 가차없이 걸러냈다. 잡스는 법률 문제, 의학 진단 등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따라서 잡스의 동료와 가족들은 잡스가 이런 일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애를 쓰다가 잡스의 고집 때문에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잡스는 냉담한 눈으로 상대를 빤히 쳐다보면서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집중하고 있는 일에서 조금도 관심을 옮기지 않겠다며 거부의 뜻을 밝히곤 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구글(Google)을 공동 설립했으며 머지않아 구글의 CEO가 될 채비를 하고 있었던 래리 페이지(Larry Page)가 잡스를 찾아왔다. 애플과 구글이 오랫동안 반목한 것이 사실이지만 잡스는 기꺼이 페이지에게 조언을 해줬다. 잡스는 당시 페이지에게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집중이라고 이야기해줬다. 또한 잡스는 페이지에게 구글이 어떤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는지 생각해 보라고 제안했다. “지금은 모든 곳에서 구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주력하고자 하는 5개 제품을 꼽으라면 무엇을 택하겠는가? 나머지는 제거해야 한다. 주력해야 할 대상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대로 일을 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구글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로 변해가고 있다. 그것들 때문에 구글이 위대한 제품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제품을 내놓게 된다.” 페이지는 잡스의 조언을 따랐다. 2012 1, 페이지는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직원들에게 안드로이드(Android), 구글 플러스(Google+) 등 몇 가지 우선순위에 주력하고 우선순위에 해당되는 것들을아름답게(beautiful)’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단순화하라(Simplify)

잡스는 선 수행자답게 뛰어난 집중력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본질에 신경을 집중시키고 불필요한 요인을 제거해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려는 본능적 감각을 갖고 있었다. 애플이 내놓은 최초의 마케팅 책자에는단순함이야말로 궁극적인 차원의 정교함(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이라는 말이 인쇄돼 있었다. 이 문장의 뜻이 궁금하다면 어떤 것이든 좋으니 애플에서 발매한 소프트웨어를 하나 골라 마이크로소프트 워드(Microsoft Word)와 비교해보기 바란다. 날이 갈수록 추해지는데다 전혀 직관적이라고 볼 수 없는 온갖 표시와 거슬리는 장치들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와 비교해 보면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이뤄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잡스는 대학을 중퇴한 후 전자게임 회사 아타리(Atari)에서 야간 근무를 하며 단순함을 숭배하는 법을 익혔다. 아타리는 술이나 마약에 취한 신입생들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고 설명서조차 필요치 않을 만큼 단순한 게임을 제작했다. 스타트렉(Star Trek) 게임을 선보일 때 아타리가 제시한 설명은 딱 2개뿐이었다. 첫 번째는 25센트짜리 동전을 집어넣으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클링곤(Klingon, 스타트렉에 나오는 외계인)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1970년대 말 바우하우스 양식(화려한 장식이나 복잡한 요소를 배제하고 깔끔한 선과 기능적인 디자인을 강조하는 양식)으로 지어진 캠퍼스에서 열린 아스펜연구소 주최 디자인 콘퍼런스에 여러 차례 참석한 후 단순한 디자인을 향한 잡스의 사랑이 한층 강렬해졌다.

 

제록스(Xerox) 팔로 알토 연구소(Palo Alto Research Center)를 방문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raphical user interface)와 마우스를 발견한 후 잡스는 좀 더 직관적이고(잡스는 팀원들과 협력해 사용자들이 가상 데스크톱에서 문서와 폴더를 끌어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만들었다) 단순한 디자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3개의 버튼이 달려 있는 제록스 마우스의 가격은 300달러였다. 잡스는 인근의 산업 디자인 회사를 찾아가 그 회사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인 딘 호베이(Dean Hovey)에게 하나의 버튼이 달려 있고 구조가 단순한 15달러짜리 마우스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호베이는 잡스가 요구한 마우스를 만들어줬다.

 

잡스는 단순히 복잡성을 외면하기보다 복잡성을 정복해 단순함을 얻고자 했다. 잡스는 이토록 심오한 수준의 단순함에 도달하면 사용자들에게 도전하기보다 우호적인 방식으로 사용자의 의견을 따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잡스는단순한 것을 만들고 근본적인 도전을 제대로 이해하고 품격 있는 해결방안을 제시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애플의 산업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Jony Ive)는 잡스의 소울메이트였다. 그는 피상적인 단순함이 아니라 심도 깊은 단순함을 추구했다. 잡스와 아이브는 단순함이라는 것이 단순히 미니멀리즘적인 양식을 추구하거나 어수선한 요소들을 모두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사와 버튼, 지나치게 많은 것이 들어 있는 화면을 없애려면 먼저 각 요소가 담당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했다. 아이브는 진정한 단순함을 추구하려면 정말 심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그 제품이 매우 난해하고 복잡해진다. 좀 더 심층적으로 단순함을 추구하고 그 제품에 관한 모든 것과 그 제품을 생산하는 방법을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아이팟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한창이던 무렵, 잡스는 회의를 할 때마다 어수선한 요소를 배제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잡스는 아이팟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건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3번 이상 클릭할 필요가 없도록 단순하게 디자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팟 탐색 화면과 관련된 사례를 살펴보자. 아이팟의 탐색 화면 가운데 사용자에게 노래, 앨범, 아티스트 중 무엇을 기준으로 검색을 할지 물어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잡스가 어느 날 의문을 제기했다. “도대체 그 화면이 왜 필요한 거지?” 잡스의 말을 듣고서 디자이너들은 그런 화면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팟 팀을 총지휘했던 토니 파델(Tony Fadell)은 당시를 떠올리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팀원들이 사용자 인터페이스 문제를 놓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잡스가이걸 생각한 건가하고 말하곤 했다. 잡스의 이야기를 들은 팀원들이정말 놀라운 걸하고 탄식할 때가 많았다. 잡스가 문제나 접근방법을 새롭게 정의하고 나면 우리가 갖고 있던 사소한 문제들이 사라져버리곤 했다.” 잡스가 더 이상 단순할 수 없을 만큼 극도로 단순한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전원을 켜고 끄는 버튼을 없애자고 제안한 것이다. 맨 처음 팀원들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전원 버튼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용자가 기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서서히 전원이 꺼지고 다시 작동을 시작하면 전원이 들어오게 만들면 그것으로 충분할 터였다.

 

마찬가지로 직원들이 아이DVD(iDVD·사용자들이 디스크에 동영상을 굽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용 탐색 화면이라며 어수선한 디자인을 내놓자 잡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이트보드 위에 단순한 직사각형 모양을 그린 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여기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이 있지. 여기에 하나의 창을 만들어야 해. 이 창 속에다 동영상을 끌어 넣는 거지. 그런 다음굽기라고 적힌 버튼을 클릭하면 돼. 그거면 돼. 우리는 바로 이런 걸 만들 거야.”

 

혁신적인 파괴를 필요로 하는 산업이나 카테고리를 찾고자 할 때 잡스는 항상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어디인지 묻곤 했다. 2001년에는 휴대용 음악 기기와 온라인에서 음악을 구입하는 방법이 그랬다. 이런 사실을 포착한 잡스는 아이팟과 아이튠즈 스토어를 내놓았다. 그 다음은 휴대전화였다. 언젠가 회의 도중 휴대전화를 집어 든 잡스는 주소록을 포함해 전체 기능 중 절반이라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물론 잡스의 말이 옳다.) 잡스가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으로 가장 눈여겨본 대상은 텔레비전 산업이었다. 잡스는 텔레비전 산업이 지나치게 복잡해진 탓에 소비자가 무언가를 원하는 바로 그 순간 단순한 형태의 기기를 조작해 곧바로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라

(Take Responsibility End to End)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주변기기들을 빈틈없이 통합시키는 것이 단순함을 얻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애플 생태계(: 아이튠즈 소프트웨어가 깔린 맥 컴퓨터에 연결돼 있는 아이팟)를 활용하면 기기가 더욱 단순해지고 동기화(同期化)가 원활해지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대폭 줄어든다. 새로운 재생목록을 만드는 것같이 복잡한 일을 컴퓨터에서 처리하도록 조절하면 아이팟의 기능과 버튼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잡스와 애플은 사용자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이런 태도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 아이폰에 장착된 ARM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성능에서부터 애플 매장에서 아이폰을 구매하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고객 경험과 관련된 모든 측면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80년대에 다양한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이 자사가 개발한 운영 체제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접근방식을 활용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구글도 같은 접근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이처럼 개방적인 접근방식이 비즈니스 모델로서 좀 더 효과적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개방적인 접근방식이 곧 쓰레기 같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비결(잡스가 실제로 사용하는 표현을 딴 것)이라고 믿었다. 잡스는 개방적인 접근방법을 비난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바쁘다. 컴퓨터와 각종 기기를 통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성격 또한온전한 기기(whole widget)’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잡스의 강박적인 책임감에 한몫했다. 하지만 완벽함을 향한 열정과 품격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른 회사에서 만들어낸 전혀 독창적이지 않은 하드웨어상에서 애플의 위대한 소프트웨어가 구동된다는 상상을 하면 잡스의 몸에서 두드러기가 돋을 정도였다. (혹은 그보다 심각한 경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잡스는 애플이 승인하지 않은 애플리케이션이나 콘텐츠가 애플 기기의 완벽성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선 치를 떨곤 했다. 이와 같은 잡스의 접근방법이 항상 단기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쓰레기 같은 기기, 뜻 모를 오류 메시지, 짜증나는 인터페이스로 가득한 세상에서 잡스와 애플은 이 같은 접근방법을 택한 덕에 사용자 경험을 즐겁게 선사하는 놀라운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애플 생태계의 일원이 되는 일은 잡스가 사랑했던 교토의 정원을 걷는 것만큼이나 숭고한 일인지도 모른다. 또한 개방성을 숭배하거나 1000송이의 꽃을 피우는 방법으로는 둘 중 어떤 경험도 할 수 없다. 만사를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는 사람의 손에 모든 일을 맡겨두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

 

 

뒤처졌을 땐 뛰어넘어라

(When Behind, Leapfrog)

혁신적인 기업의 특징은 먼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뿐 아니라 뒤처질 경우 아예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상대를 뛰어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잡스가 맨 처음 아이맥을 선보였을 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잡스는 사용자가 사진과 동영상을 편리하게 관리하도록 도움을 주는 기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음악 쪽에는 많은 신경을 쓰지 못했고 결국 경쟁업체들보다 뒤처졌다. 개인용 컴퓨터를 소유한 사람들은 음악을 다운받고 서로 교환했으며 직접 CD를 구웠다. 하지만 아이맥의 CD 드라이브로는 CD를 구울 수 없었다. 잡스는 당시멍청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그 부분을 놓쳤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잡스는 단순히 아이맥의 CD 드라이브를 업그레이드해 경쟁사들을 따라잡는 대신 음악산업 전체를 뒤집어놓을 통합 시스템을 선보이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아이튠즈와 아이튠즈 스토어, 아이팟을 통합시킨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은 사용자들이 다른 어떤 기기를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간편하게 음악을 구입하고, 공유하고, 관리하고,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도록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아이팟이 대성공을 거둔 후 잡스가 오랫동안 성공의 기쁨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신 잡스는 무엇이 아이팟을 위태롭게 만들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잡스는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휴대전화에 음악 재생장치를 추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잡스는 아이팟 판매 감소를 감수하고 아이폰을 내놓았다. 잡스는우리가 우리 회사 제품의 판매 감소를 가져올 만한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다른 누군가가 그럴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윤보다 제품을 중시하라

(Put Products Before Profits)

1980년대 초, 소규모 팀과 협력해 최초의 매킨토시(Macintosh)를 디자인할 당시 잡스는유별날 정도로 훌륭한제품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반면 이윤 극대화나 비용 분석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잡스는 매킨토시팀을 지휘했던 첫 번째 팀장에게가격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말고 그저 컴퓨터의 성능만 집중하라고 이야기했다. 매킨토시 팀과의 첫 아이디어 워크숍 자리에서 잡스는 화이트보드에타협하지 말라(Don’t compromise)’는 글귀를 적었다. 그 결과로 탄생한 기계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았고 결국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는 원인이 됐다. 하지만 매킨토시 역시 잡스의 말처럼우주에 흔적을 남겼다.’가정용 컴퓨터 혁명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잡스도 결국에는 성공적으로 균형을 유지했다.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아붓자 돈이 자연스레 뒤따랐기 때문이다.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애플의 경영을 맡았던 존 스컬리(John Sculley)는 애플의 CEO가 되기 전 펩시(Pepsi)에서 마케팅과 판매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잡스가 애플을 떠난 후 스컬리는 제품 디자인보다 이윤 극대화를 더욱 중요시했고 애플은 점차 쇠퇴했다. 잡스는 필자에게기업이 쇠퇴하는 원인에 관한 나만의 이론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잡스는 위대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나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판매와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회사를 장악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판매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회사 경영을 맡게 되면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예전처럼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중 상당수는 아예 흥미를 잃는다. 스컬리가 애플에 들어오자 바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물론 스컬리를 영입한 건 내 잘못이었다. 발머(Ballmer) CEO로 영입한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애플에 복귀한 잡스는 애플이 다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할 수 있도록 회사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고 애플은 뛰어난 컴퓨터 아이맥, 파워북(PowerBook),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차례로 출시했다. 잡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제품을 만들어내려는 의욕을 북돋워줄 수 있는 영속적인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을 갖고 있다. 그 외 모든 것은 부차적이다. 물론 이윤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윤을 내야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이윤이 아니라 제품이다. 스컬리는 우선순위를 뒤집어버렸고 결국 돈을 버는 것이 목표가 돼버렸다. 둘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변할 수밖에 없다. 고용하는 사람, 승진시키는 사람, 회의에서 논의하는 이야기 등 모든 것이 변한다

 

 

포커스 그룹의 노예가 되지 말라

(Don’t Be a Slave To Focus Groups)

잡스가 최초의 매킨토시팀과 함께한 첫 번째 아이디어 워크숍 자리에서 한 팀원이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시장조사를 해야 하는지 물었다. 잡스는그럴 필요가 없다고객은 우리가 무언가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설명했다. 잡스는 헨리 포드의 말을 인용했다. “내가 고객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면좀 더 빠른 말!’이라고 답했겠지.”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해서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형성되지 않은 고객의 욕구에 대한 직관과 직감이 필요할 뿐이다. 잡스는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 종이에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잡스는 시장조사에 의존하기보다 특유의 공감능력(고객이 갖고 있는 욕구를 꿰뚫어보는 직관)을 키웠다. 잡스는 대학을 중퇴한 후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하면서 직관(경험을 통해 누적된 지혜를 토대로 하는 느낌)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잡스는 당시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인도 시골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지적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들은 직관을 활용한다. 직관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나는 직관이 지적 능력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직관을 중요하게 여긴 탓에 잡스는 단 1명으로 이뤄진 포커스 그룹을 활용하기도 했다. 1명은 다름 아닌 스티브 잡스 자신이었다. 잡스는 자신과 친구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2000년에는 다양한 휴대용 음악 기기가 시중에 유통됐다. 하지만 음악을 무척 좋아했던 잡스는 시중에 나와 있는 기기들이 하나같이 변변치 않다는 데 불만을 느꼈고 주머니에 수천 곡의 노래를 넣고 다닐 수 있을 만한 단순한 기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아이팟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절친한 친구, 가족을 위해서 무언가를 할 때 결코 허술한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다.”

 

 

현실을 왜곡하라(Bend Reality)

잡스는 불가능한 일을 해내도록 사람들을 밀어붙이는 유명한(악명 높은) 능력을 갖고 있다. 동료들은 외계인들이 온전히 정신력을 활용해 설득력 있는 대체 현실을 만들어내는 스타트렉의 한 대목을 본떠 잡스의 이런 능력을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 칭한다.오래 전, 아타리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시절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에게 단기간 내에 브레이크아웃(Breakout)이라는 게임을 만들어낼 것을 요구했다. 워즈니악은 게임을 만들려면 몇 달이 걸린다고 이야기했지만 잡스는 워즈니악을 가만히 쳐다보며 나흘이면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즈니악은 나흘 만에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워즈니악은 결국 잡스의 말대로 나흘 만에 게임을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잡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상대를 괴롭히고 거짓말을 하는 행위를 완곡하게 돌려 말하기 위해 현실왜곡장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잡스와 함께 일을 해본 사람들은 몹시 짜증이 나긴 하지만 현실을 왜곡하는 잡스 특유의 성격으로 인해 비현실적일 만큼 놀라운 일을 해내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잡스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인 규칙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록스(Xerox) IBM에 비해 매우 적은 자원을 갖고도 컴퓨터 역사를 변화시키도록 팀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잡스가 처음으로 꾸린 맥 팀의 일원이었으며 잡스에게 가장 잘 맞선 직원으로 선정돼 상을 받은 적이 있는 데비 콜맨(Debi Coleman)자기 충족적인 왜곡이었다며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어느 날, 잡스는 매킨토시 운영 체제를 설계 중이던 엔지니어 래리 케년(Larry Kenyon)의 자리로 찾아가 부팅 시간이 너무 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케년은 부팅 시간을 줄이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잡스는 케년의 말을 뚝 잘라버린 후 질문을 던졌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부팅 시간을 10초 줄일 방법을 찾을 수 있겠나?” 케년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잡스는 화이트보드로 걸어가 500만 명이 맥 컴퓨터를 사용하고 매일 맥 컴퓨터를 켤 때 10초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면 결국 컴퓨터를 부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연간 3억여 시간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부팅을 하는 데 연간 소요되는 시간이 최소한 100여 명의 사람이 평생을 사는 데 걸리는 시간과 필적할 정도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로부터 몇 주가 흐른 후 케년은 맥 컴퓨터의 부팅 시간을 28초나 단축시켰다.

 

아이폰을 디자인하던 중 잡스는 아이폰 전면에 플라스틱이 아니라 긁히지 않는 강화 유리를 부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코닝(Corning) CEO 웬델 윅스(Wendell Weeks)는 잡스를 만난 자리에서 자사가 1960년대에 개발한 화학 교환 공정 덕에고릴라 글래스(Gorilla glass)’라 불리는 튼튼한 유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잡스는 6개월 후에 고릴라 글래스를 대량 배송받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윅스는 코닝이 고릴라 글래스를 생산하고 있지 않으며 그럴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잡스는두려워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잡스의 현실왜곡장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윅스는 예상치 못한 잡스의 답변에 당황했다. 윅스는 자신감에 대한 잘못된 인식만으로는 기술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잡스는 윅스가 내놓은 전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거듭 전했다. 잡스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윅스를 가만히 응시하며해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잡스는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윅스는 깜짝 놀라 머리를 저었지만 이내 오래 전부터 LCD 디스플레이를 생산해 왔던 켄터키주 해로즈버그 공장의 관리자들을 소집해 즉시 LCD 디스플레이 생산을 중단하고 고릴라 글래스 생산에 전념할 것을 주문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잡스가 요구한 일을 모두 해냈다. 최고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모두 투입한 결과 고릴라 글래스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는 코닝이 미국에서 생산한 유리가 장착되고 있다.

 

 

강인한 인상을 남겨라(Impute)

사회생활 초기 잡스의 멘토 역할을 했던 마이크 마쿨라(Mike Markkula) 1979년에 잡스에게 3개의 원칙을 권고하는 메모를 전했다. 첫 번째 원칙은공감(empathy)’이었고 두 번째 원칙은집중(focus)’이었다. 세 번째 원칙은 쉽게 떠올리기 힘든 단어인상(impute)’이었다. 하지만 마쿨라가 제안한 세 번째 원칙은 잡스의 핵심적인 신조 중 하나로 발전했다. 잡스는 사람들이 제품이나 회사가 보여지고 포장되는 방식을 근거로 그 제품이나 회사에 대한 의견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잡스는 필자에게마이크는 사람들이 표지만 보고 책의 내용을 판단한다는 사실을 내게 가르쳐줬다고 이야기했다.

 

1984, 매킨토시를 매장으로 배달할 준비를 모두 마친 잡스는 상자의 색깔과 디자인에 집착했다. 비슷한 일화로 잡스는 마치 보석상자처럼 아이팟과 아이폰을 소중하게 품고 있는 종이 상자를 직접 디자인하고 수정했다. 뿐만 아니라 잡스는 아이팟과 아이폰이 들어 있는 상자의 디자인 특허를 신청할 때 특허 출원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도 포함시켰다. 잡스와 아이브는 상자를 여는 행위가 마치 연극과 같은 하나의 의식이며 자랑스러운 애플 제품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믿었다. 잡스는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상자를 열 때 상자에서 느껴지는 촉각이 해당 제품에 대한 고객의 인식을 결정짓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잡스가 단순히 기능적인 요소를 강화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인상을 남기기 위한 신호로 기계의 디자인을 활용한 경우도 있었다. 애플에 복귀한 후 새로운 컴퓨터 아이맥을 개발하던 잡스에게 아이브가 꼭대기 부분에 조그마한 매립형 손잡이를 설치한 디자인을 내놓았다. 그 손잡이는 유용한 기능을 갖고 있다기보다 상징적인 기호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맥은 데스크톱 컴퓨터였다. 데스크톱 컴퓨터로 만들어진 아이맥을 이리저리 들고 다닐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잡스와 아이브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손잡이가 달린 데스크톱 컴퓨터를 내놓으면 사용자들이 아이맥이라는 새로운 기계가 우호적이고 공손하며 유용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손잡이는 곧 아이맥을 만져봐도 좋다는 허락을 뜻했다. 생산팀은 비용이 추가로 든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잡스는 설명을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우리는 무조건 손잡이를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완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라

(Push of perfection)

어떤 제품을 개발할 때 건 잡스는 거의 항상 일정한 시점에 도달하면일시정지 버튼을 누른후 설계 단계로 되돌아갔다.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토이스토리(Toy Story)’를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토이스토리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갖고 있었던 제프 카젠버그(Jeff Katzenberg)와 디즈니(Disney) 영화 제작팀이 픽사팀에게 좀 더 혁신적이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자 잡스와 존 래스터(John Lasseter) 감독은 영화 제작 자체를 중단한 후 관객이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스토리 자체를 새로 작성했다. 애플 스토어 출시를 앞두고 있던 잡스와 잡스에게 많은 도움을 준 유통 전문가 론 존슨(Ron Johnson)은 돌연 모든 것을 몇 달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제품 카테고리 중심으로 배치돼 있는 애플 스토어의 레이아웃을 제품 카테고리뿐 아니라 활동 중심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이폰을 개발할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알루미늄 케이스에 유리 스크린을 장착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다. 월요일 아침에 회사에 출근한 잡스는 곧장 아이브를 찾아가그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에 어젯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잡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이브는 놀랍게도 잡스의 말이 옳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브는잡스가 그런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 너무도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아이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디스플레이인데 당시의 디자인에서는 케이스가 디스플레이를 돋보이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디스플레이와 경쟁하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기기 전체가 지나치게 남성적이고 과업 중심적이며 효율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잡스는 아이브가 지휘하는 디자인팀에게 선포했다. “지난 9달 동안 이 디자인을 만들어내느라 죽을 만큼 노력한 걸 잘 알고 있지만 디자인을 바꿔야 해. 밤이건 주말이건 가릴 것 없이 다시 일을 해야 할 거야. 원한다면 총을 나눠줄 수도 있어. 그 총으로 우릴 쏴 죽이게.”하지만 디자인팀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잡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잡스는 그때를 떠올리며애플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고 이야기한다.

 

잡스와 아이브가 아이패드를 마지막 손질할 무렵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개발 중이던 아이패드 모형을 쳐다보던 잡스는 약간 불만을 느꼈다. 가볍게 들어올려 휙 채갈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하고 친숙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잡스와 아이브는 사용자들에게 별 어려움 없이 한손으로 쉽게 쥘 수 있다는 신호를 전달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사용자들이 아이패드를 조심스레 집어 올리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낚아챌 수 있도록 모서리를 둥그스름하게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잡스와 아이브가 원하는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팀이 아래쪽으로 부드럽게 꺾여 있는 얇고 단순한 테두리 부분에 반드시 필요한 연결 포트와 버튼을 모두 집어넣어야만 했다. 잡스는 이런 변화를 이뤄낼 때까지 제품 출시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잡스의 완벽주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어린 시절, 잡스의 아버지는 뒤뜰 주위에 담장을 치는 일을 거들던 아들에게 담장의 앞쪽 못지 않게 뒤쪽을 작업할 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잡스가그 누구도 담장 뒤쪽이 어떤지 모를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잡스의 아버지가 말했다. “하지만 너는 알잖니.” 잡스의 아버지는 진정한 장인은 수납장을 만들 때 벽과 맞닿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뒤쪽에도 좋은 나무를 사용하며 담장 뒤쪽을 작업할 때도 그래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것은 완벽을 향한 열정을 갖고 있는 예술가의 특징이었다. 애플 Ⅱ(Apple Ⅱ) 컴퓨터와 매킨토시를 감독할 때 잡스는 기계 내부에 있는 회로판에 이 교훈을 적용했다. 애플와 매킨토시를 개발할 당시 잡스는 회로판이 세련돼 보일 수 있도록 반도체를 말끔하게 정리하라며 엔지니어를 되돌려 보내곤 했다. 잡스가 이미 고객이 매킨토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도록 완전히 봉인할 것을 지시했던 터라 매킨토시 엔지니어들은 회로판을 정리하라는 잡스의 지시를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어느 엔지니어가 “PC 보드를 들여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잡스의 지시에 항의했다. 잡스는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가능한 아름다웠으면 한다네. 수납장의 뒤쪽을 굳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훌륭한 목수는 아무리 수납장 뒤쪽이라 하더라도 형편없는 나무를 사용하지 않는다네. 자네들은 진정한 예술가지. 그러니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네.” 회로판 디자인 수정 작업이 끝난 후 잡스는 매킨토시팀 엔지니어를 비롯해 매킨토시 작업에 참여했던 직원들을 불러진정한 예술가는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며 케이스 안에 이름을 새겨 넣도록 했다.

 

 

오직 최고의 인재만 용인하라

(Tolerate only “A” Players)

잡스는 주위 사람들에게 냉정하고 까다롭고 인내심이 없기로 유명했다. 물론 잡스가 주위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그리 훌륭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잡스의 태도는 완벽을 향한 열정과 오로지 최고의 인재들만 받아들이려는 강렬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관리자들이 지나치게 정중하게 구는 탓에 보통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조직 내에 머무르는집단 바보화(bozo explosion)’ 현상을 막기 위한 잡스 나름의 예방책이었다. 잡스는 이런 평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가 사람들을 거칠게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형편없는 일이 벌어지면 나는 면전에다 대고 이야기를 한다. 정직하게 구는 것이 내 일이다.” 좀 더 온화하게 굴어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겠냐고 거듭 물어보자 잡스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은 방법일 수도 있다. 모두 넥타이를 메고 뉴잉글랜드 상류층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손하고 완곡한 어법으로 대화를 나누며 신사답게 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대하는 법을 모른다. 나는 캘리포니아 중산층 출신이기 때문이다.”

 

잡스의 거칠고 모욕적인 모든 행동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플의 공동 설립자 워즈니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지 않았더라도 스티브는 얼마든지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좀 더 인내심 있게 구는 것을 좋아한다. 게다가 그렇게 잦은 충돌이 발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업도 얼마든지 사이 좋은 가족과 같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워즈니악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을 덧붙였다. “내 방식대로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더라면 모든 것이 엉망이 돼버렸을지도 모른다.”

 

잡스가 무례하고 거친 태도를 갖고 있긴 했지만 그 덕에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잡스는 애플 직원들에게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변치 않는 열정과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을 불어넣었다. 우리는 결과를 바탕으로 잡스를 판단해야 한다. 잡스의 가족은 굳게 단결돼 있었다. 애플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애플의 최우수 직원들은 다른 회사 직원들보다 오랫동안 애플에 머물렀으며 강한 충성심을 보였다. 잡스보다 친절하고 온화한 상사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CEO가 잡스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후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잡스의 능력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잡스의 거친 태도만 그대로 모방한다면 위험한 실수를 저지르게 될 수도 있다.

 

잡스가 필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정말 훌륭한 직원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응석을 받아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가 훌륭한 일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면 그 사람이 진짜 훌륭한 일을 해내게 된다. 누구라도 좋으니 맥 팀원을 찾아가 물어보기 바란다. 고통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대부분은 그렇다. 데비 콜맨은 이야기한다. “회의에서이 멍청한 녀석!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하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하지만 그분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었으니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대면하라(Engage Face-to-Face)

잡스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회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어쩌면 디지털로 인해 인간이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요즘 같은 네트워크 시대에는 e메일과 아이챗(iChat)을 통해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픈 유혹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창의성은 즉흥적인 회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무작위로 대화를 나눌 때 창의성이 발현된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가 상대의 답변에 자극을 받아 온갖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될 수도 있다.”

 

잡스는 픽사 사옥을 지을 때 예기치 못한 만남과 협력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건물 자체가 계획되지 않은 만남을 장려하지 못하면 뜻밖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혁신과 마법이 대폭 줄어든다.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 건물 중앙에 마련해 놓은 아트리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했다.” 정문과 중앙 계단, 복도는 모두 아트리움으로 통한다. 카페와 우편함도 아트리움에 자리를 잡고 있고 회의실 창문 역시 아트리움을 향하고 있다. 600석 규모의 극장과 2개의 소형 영화 상영실도 아트리움에 위치해 있다. 존 래스터 감독은 이야기한다. “첫째 날부터 스티브의 이론이 기대한 효과로 이어졌다. 몇 달 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계속 마주쳤다. 픽사 건물처럼 협력과 창의성을 증진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는 건물을 본 적이 없다.”

 

잡스는 공식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질색한 반면 모두가 얼굴을 마주 대고 자유분방하게 의견을 표현하는 회의를 사랑했다. 잡스는 매주 경영팀을 모아놓고 공식적인 의제 없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주고받았으며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마케팅 광고팀을 모아놓고 같은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슬라이드 쇼는 아예 금지였다. 잡스는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않고 슬라이드를 이용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 매우 싫다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프레젠테이션을 제작해 문제와 맞서려 한다. 내가 바라는 건 슬라이드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은 파워포인트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큰 그림과 세부 사항을 두루 섭렵하라

(Know Both the Big Picture and The Details)

잡스는 큰 문제와 사소한 문제, 양쪽 모두에 열정을 보였다. 훌륭한 비전을 제시하는 CEO도 있고 세밀한 부분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관리자도 있다. 둘 다 잡스에게 해당되는 설명이다. 타임 워너(Time Warner) CEO 제프 뷰크스(Jeff Bewkes)는 잡스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잡스는 디자인의 가장 세밀한 부분에도 빠짐없이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포괄적이고 중요한 전략을 구상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었으며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 잡스는 2000년에 개인용 컴퓨터가 사용자의 음악, 동영상, 사진, 콘텐츠를 모두 관리하는디지털 허브(digital hub)’가 돼야 한다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했고 그 결과 애플은 아이팟, 아이패드를 앞세워 개인용 기기 비즈니스에 뛰어들 수 있었다. 2010, 잡스가 디지털 허브를 뒤이을 전략(‘허브를 클라우드로 바꿔 놓아야 한다는 전략)을 내놓자 애플은 사용자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콘텐츠를 업로드한 다음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다른 개인용 기기로 옮길 수 있도록 거대한 서버 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잡스는 이와 같은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동시에 아이맥 내부에 들어갈 나사의 모양과 색깔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과학에 인문학을 더하라

(Combine the Humanities with The Sciences)

필자의 전기 집필 작업에 협조하기로 마음먹은 날 잡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에는 항상 내가 인문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전자기술을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존경하는 분이자 폴라로이드(Polaroid)의 설립자인 에드윈 랜드(Edwin Land)가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만나는 교차점에 서있는 사람의 중요성에 관해 언급했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다. 그후 내가 직접 그런 사람이 돼보기로 결심했다.” 당시 잡스는 마치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의 주제를 설명하듯 이야기했다. 필자는 잡스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깊이 파고들수록 그것이야말로 잡스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주는 본질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잡스는 과학에 인문학을, 기술에 창의성을, 엔지니어링에 예술을 접목했다. 워즈니악, 빌 게이츠(Bill Gates) 등 기술적으로 잡스보다 뛰어난 인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나 예술의 측면에서 잡스보다 뛰어난 사람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 프로세서에 우아함을 더해 혁신을 이뤄내는 역량의 측면에서 잡스보다 뛰어난 인물은 없다. 뿐만 아니라 잡스는 비즈니스 전략에 대해 직관적인 느낌을 갖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잡스는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인문학과 기술이 만나는 교차점에 서있는 표지판이 그려진 슬라이드를 세상을 향해 내밀었다.

 

프랭클린(Franklin)과 아인슈타인(Einstein)의 전기를 집필할 때 필자는 창의성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다. 창의성은 강인함을 지닌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인문학과 과학, 둘 모두를 향한 직감이 공존할 때 생겨난다. 필자는 21세기에 혁신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창의성은 상상력 응용의 기본이다. 그것이 바로 미래에 창의성 부분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인문학과 과학, 둘 모두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생의 불꽃이 점차 사그라드는 순간에도 잡스는 더 많은 산업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잡스는 맥 컴퓨터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과서를 원하는 대로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예술적인 창작물로 변모시키기 위한 비전을 내놓았다. (애플은 2012 1월에 이 비전을 공개했다.) 잡스는 디지털 사진 촬영을 위한 멋진 도구를 개발하고 좀 더 단순하고 개개인의 욕구에 부합하는 텔레비전을 만들 방법도 고민했다. 이런 제품이 언젠가 시장에 등장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잡스가 두 눈으로 그 결실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잡스의 성공 법칙은 애플을 이 두 제품을 비롯해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놓을 수많은 파괴적인 제품을 생산할 것이다. 또한 잡스의 DNA가 조직의 중심에 남아 있는 한 영원히 창의성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있을 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살아라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는 1960년대 말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San Francisco Bay Area·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인근 해안 지역)에서 일어난 2개의 거대한 사회 운동으로 인한 산물이다. 첫 번째는 환각제, 록 음악, 반독재주의 등으로 상징되는 히피와 반전 활동가들의 반체제 운동이었다. 두 번째는 엔지니어, 괴짜, 컴퓨터광, 통신 시스템 해커, 사이버펑크족, 취미광, 차고에서 회사를 시작한 기업가 등으로 가득한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문화 및 해커 문화였다. 반체제 운동과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문화 및 해커 문화에 흠뻑 빠져든 잡스는 선 불교, 힌두교, 명상과 요가, 프라이멀 스크림 요법(primal scream therapy, 어린 시절에 경험한 트라우마를 바탕으로 치료하는 요법)과 감각 상실, 에설런 요법(Esalen·에설런 연구소에서 개발한 집단 심리요법), 심신 통일 훈련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개인적인 깨달음을 얻기에 이르렀다.

 

스튜어트 브랜드(Steward Brand)가 발표한지구백과(Whole Earth Catalog)’와 같은 출판물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두 문화의 결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자의 표지에는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담은 유명한 사진이 실려 있었고도구로의 접근(access to tools)’이라는 말이 부제로 기록돼 있었다. 이와 같은 표지의 기저에 깔려 있는 철학은 기술이 얼마든지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히피로 살아가며 체제에 저항하고 영적인 구원을 찾아 헤매며 통신 시스템을 해킹하고 취미로 전자 기기를 취급했던 잡스는지구백과의 열혈 구독자였다. 잡스는 자신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71년에 발매된지구백과마지막 호를 보고 특히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대학에 진학했을 때도, 대학을 중퇴한 후 한동안 사과 농장에 머물렀을 때도 빠뜨리지 않고 들고 갔을 정도였다. 언젠가 잡스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 호 뒷면에는 이른 아침에 촬영한 시골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할 만한 그런 길 말이다. 그 사진 밑에항상 갈망하고 우직하게 살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잡스는 비단 비즈니스와 엔지니어링에 관한 열망만을 뒤쫓기보다 예술을 추구하며 마약을 복용하고 깨달음을 찾아 반사회적인 삶을 살았던 시절에 습득한 히피적이고 관행을 거스르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잡스의 데이트 파트너, 암 선고를 받아들인 방식, 사업을 진행한 방식 등 어떤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잡스의 행동에는 이처럼 다양한 요인 간의 충돌, 융합, 최종적인 통합이 반영돼 있다.

 

애플이 법인이 된 후에도 잡스는 자신의 마음속에 여전히 해커와 히피가 살아 숨쉰다고 선포하기라도 하듯 현 질서에 저항하고 체제에 반대하는 자신의 성향을 애플 광고에 반영했다. 애플의 유명한 ‘1984광고에는 체제에 저항하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는 자신을 뒤쫓는 사상(思想)경찰보다 빨리 내달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를 연상케 하는 화면을 향해 커다란 망치를 내던져버린다. 애플에 복귀한 잡스는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광고 문구 작성에 도움을 줬다. ‘미친 자들에게 건배를. 부적응자.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 트러블메이커. 네모난 구멍에 박혀 있는 동그란 못…’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잡스가 이 같은 광고 문구를 통해 자신을 묘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한 줄을 통해 잡스는 이 같은 의심을 떨쳐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자들이 정신 나갔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서 천재성을 발견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정신 나간 사람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번역 |김현정 translator.khj@gmail.com

 

 

월터 아이작슨

아스펜연구소(Aspen Institute) CEO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은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전기를 발표했으며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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