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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심리적 합병이 M&A 성공열쇠

하미드 부치키(Hamid Bouchikhi) | 117호 (2012년 11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글은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SMR)> 2012년 가을 호에 실린 ESSEC 경영대학원 경영/기업가 정신 교수 하미드 부치키(Hamid Bouchikhi)와 와튼 경영대학원 경영학 교수 존 R. 킴벌리(John R. Kimberly)의 글 ‘Making Mergers Work’를 번역한 것입니다.

 

유럽에 기반을 두고 있는 건축 자재 제조업체 BPC(가명) CEO는 세계 시장에서 자사의 입지를 강화하기로 마음먹은 후 이를 위해서 북미 지역에서 사업을 확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CEO는 인수 대상을 물색하던 중 미 남부 지방에 위치한 대형 시멘트 생산업체가 적격이라고 판단, 이 기업의 주식을 공개매입하기 시작했다. 표적기업 경영진이 인수에 반대한다는 뜻을 이사회 측에 피력했음에도 불구하고 BPC는 갖은 책략과 압박을 동원해 마침내 거래를 성사시켰다. BPC CEO는 인수 당시 적대적으로 굴었던 경영팀을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 CEO는 인수를 마무리한 지 1년이 지난 후 유럽 본사 출신 임원 2명을 북미로 파견해 역할이 명확하지 않은 자리에 앉혔다. 당시 북미로 파견됐던 한 임원은 필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당시 통합을 도우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내가 통합에 별 다른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사실 나는 BPC의 입장을 피인수 기업 경영진에게 전달했을 뿐이다. 피인수 기업의 CEO가 모든 결정을 내렸다.”

 

BPC는 시멘트 제조회사를 인수한 후에도 몇 년에 걸쳐 북미 지역에서 몇 차례 다른 기업을 인수했다. 하지만 BPC가 북미에서 인수한 기업들은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CEO 자리에 앉아 여러 건의 인수를 추진했던 인물의 후임자가 필자들을 찾아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해 줄 것을 부탁했다. 성과 데이터를 분석하고 북미 자회사 및 유럽 본사의 임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심리적 시너지 효과에 관심을 쏟지 않은 탓에 기대했던 경제적 시너지 효과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북미 자회사의 임원들은 전반적으로 봤을 때 BPC라는 기업의 변방에 위치해 있으며 자원 할당 결정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심리적 참여도가 현저히 낮았으며 이런 현상이 유럽 본사에 대한 공공연한 적대감의 형태로 표출되는 경우도 있었다. 모기업과 자회사 간의 격차가 너무도 큰 탓에 유럽에서 일하는 관리자들은 북미 지역 계열사 CEO의 공식적인 허가 없이는 방문조차 할 수 없었다.

 

BPC 북미(BPC North America) 사업부의 CFO는 이 같은 간극을 직접 경험했다. “회의 차 피인수 기업 중 한 곳을 방문해 그쪽 CFO와 미팅을 한 적이 있다. 회의가 끝나자 그쪽 CFO가 모든 자료를 다시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문서를 가져가도 좋다고 허락해줄 권한이 자신에게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자회사 사람들은 우리를 싫어했다.”

 

BPC CFO의 경험이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M&A 과정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BPC CFO의 경험담이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새로운 합병 공식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1 1을 더해 2 이상의 결과를 얻고 싶다면 심리적인 측면에서 1+1=1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M&A를 성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한 성과를 얻을 수 없다면(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심리적인 시너지 효과가 부족한 탓일 가능성이 크다. (심리적인 시너지 효과의 부재가 전적인 원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심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새로 생긴 조직이 분열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합병의 목표는 합병을 통해 구성 요소들이 갖고 있는 개별적인 가치를 산술적으로 단순하게 더한 것보다 커다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필자들이 직접 진행한 연구와 이 분야에서 진행된 광범위한 연구 자료를 볼 때 심리적인 측면에서 2개의 기업을 하나로 통합해야만 이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연구 내용참조) 하지만모두가 한마음이 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단순한 개념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단순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합병을 진행하면서 정체성 통합(identity integration) 문제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합병 후에 어떤 식으로 통합을 진행할지 계획을 수립할 때 두 회사의 제품 라인과 재무 정보 시스템, 인사 정보 시스템을 비슷하게 수정하는 문제, 재훈련을 시킬 직원 및 내보낼 직원을 결정하는 문제 등 운영과 관련된 문제에 집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합병된 기업의 정체성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인수 기업의 이름이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다. 혹은 새로운 로고나 새로운 이름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심리적 시너지 원칙이 작용하기 바란다면 임원들이 좀 더 복잡하고 심층적인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새로운 조직의 본질을 정의하고, 직원들에게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며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저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수많은 조직 중 해당 조직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가에 관한 조직 구성원들의 관점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외부인들이 믿는 게 곧 조직의 본질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심층적인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직원들의 참여 의식이 약화되고 결국 합병된 조직의 성과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요점은 간단하다. 하지만 중요하다. 합병 후에 운영 부문을 통합하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적인 성과를 얻기에 충분치 않다. 성공을 원한다면 정체성 통합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BPC가 오랜 기간 부진한 성과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정체성 문제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전에 계획을 세워두면 합병 후에 정체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을 미리 세우지 못한 탓에 문제가 발생한 후에 엄청난 돈과 시간을 문제 해결에 쏟아붓는 기업이 많다.

 

M&A를 통해 경제적인 시너지를 얻으려면 심리적인 시너지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심리적 시너지를 얻으려면 관리자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필자들은 연구 끝에단 하나의 왕도(one best way)’는 없지만 상황에 따라 동화(assimilation), 연방(federation), 연합(confederation), 변형(metamorphosis) 등 정체성 통합에 도움이 되는 4개의 방법 중 하나를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림 1) 인수나 합병을 앞둔 상황에서 관리자가 고민해야 하는 2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접근방법이 네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질문은합병을 하는 당사자들이 합병 시에 갖고 오는 정체성(다시 말해서 합병 이전의 정체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것이고, 두 번째 질문은미래를 위한 공통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관리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 우리는 합병을 하는 각 당사자의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는가, 혹은 보존하기를 원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중 일부를 제거해야 하는가, 혹은 제거하기를 원하는가?

 

● 우리는 새로운 조직 정체성을 정립해 공통의 미래를 추구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양측이 갖고 있는 기존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통합할 것인가?

 

 

앞서 언급한 4개의 접근방법을 하나씩 살펴보자.

동화(Assimilation)

사전 계획에 따라 피인수 기업의 정체성이 새로운 모기업이 갖고 있는 정체성 속으로 녹아들 때 동화 현상이 나타난다. 피인수 기업은 기존의 이름과 시각적 정체성(로고, 사무용 서신용지에 인쇄돼 있는 문구 등)을 버리고 모기업의 이름과 시각적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피인수 기업의 경영 구조는 해체되며 해고되지 않은 직원들은 모기업에 속해 있는 여러 조직 단위에 배치된다. 이 같은 과정은 피인수 기업 구성원들에게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고용주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명료한 신호를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도앞으로 새로운 조직을 상대해야 할 것이라는 명료한 신호를 보내게 된다.

 

이런 설명이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피인수 기업의 직원들과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반드시 피인수 과정을 그런 식으로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피인수 기업이 과거에 갖고 있었던 정체성을 심리적으로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M&A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모기업의 정체성이 얼마나 바람직하고 우수하다고 인식하는지 그 정도에 따라 직원들과 이해관계자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예컨대, 시스코(Cisco)에 인수된 소규모 기술 기업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기업의 설립자와 직원, 투자자, 고객들은 인수 건 자체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자사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시스코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심각한 손실로 여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시스코의 직원이 되면 여러 가지 이익이 발생하는 만큼 피인수 조직의 구성원들이 이미 사라져버린 정체성을 기리며 애도할 이유는 많지 않다.

 

시스코가 1999년에 69억 달러를 주고 세렌트(Cerent)를 인수한 후 통합을 추진한 방식을 살펴보면 시스코가 어떤 식으로 동화를 실천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시사 전문지 <유에스 뉴스 &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는 당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를 발표했다. “시스코가 세렌트를 인수한 날 아침 회사에 도착한 직원들은 이미 새로운 직함, 새로운 명함, 새로운 보너스 정책, 새로운 의료보험 정책 등이 모두 마련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시스코의 컴퓨터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완료돼 있었다.”1 인수 후 첫 6개월 동안 퇴사한 직원은 400명 중 4명에 불과했다. 애널리스트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는 피인수 조직의 직원을 인수 기업의 직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문제와 관련해시스코보다 이 문제를 잘 해결한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이야기했다.2

 

동화 방식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모든 기업이 시스코처럼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은행 웰스파고(Wells Fargo)는 와코비아(Wachovia)를 인수할 때 일부러 더딘 속도로 통합을 추진했다. M&A 계약을 체결한 건 2008 1231일이었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를 마지막으로 와코비아의 모든 지점이 완전히 통합된 건 2011 10월이었다. 웰스파고 CEO 존 스툼프(John Stumpf)는 통합 작업을 시작할 무렵 더딘 속도로 일을 진행할 계획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문화를 섞고 기업과 제품, 시스템을 결합하고 이름을 바꾸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2∼3년쯤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을 제대로 해낼 생각이기 때문이다.”

 

2개의 조직이 서로 대등하게 여겨지거나 매수 기업의 정체성이 피인수 기업의 정체성보다 가치가 덜한 것으로 여겨질 때는 동화 방식이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 새롭게 모기업이 될 기업과 인수 표적기업이 규모, 수익성, 평판 등의 측면에서 서로 비슷한 경우에는 피인수 기업의 직원과 이해관계자들이 자사의 조직 정체성이 새로운 모기업의 조직 정체성만큼 가치 있다고 느끼며 기존의 정체성을 잃는 것을 불쾌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피인수 기업이 새롭게 생겨난 모기업에 의구심을 가질 경우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유럽과 일본 기업들이 미국 기업을 인수한 후 통합 작업을 추진할 때 이런 문제를 겪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미국 지사에서 일하는 관리자들이 인수를 통해 모기업의 지위를 취득한 유럽이나 일본 본사의 경영 역량 및 유효성을 신뢰하지 않고 기존의 정체성이 외국 기업의 정체성에 녹아든다는 사실에 분개할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3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 출신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 기업을 인수할 때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다.

 

연합(Confederation)

연합은 동화와는 정반대다. 연합의 형태로 통합이 진행될 경우 두 기업 모두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융합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각 조직은 기존의 이름, 법적 독립성, 경영 구조, 자주적인 의사 결정 권한을 유지한다. 연합 방식으로 통합을 추진할 때는 두 조직을 조율해야 할 필요성이 낮다. 일부 제한적인 지역에서 시너지 효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로만 조율을 하면 된다.

 

르노(Renault)와 닛산(Nissan), 에어프랑스(Air France) KLM M&A 사례를 살펴보면 연합 방식의 통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르노와 닛산이 M&A를 추진할 당시 경제적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두 기업이 전면적으로 합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를로스 곤(Carlos Ghosn)은 닛산과 전면적인 합병을 추진하는 대신 전략 및 운영의 측면에서 닛산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그와 동시에 닛산이 갖고 있는 핵심적인 정체성, 즉 일본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할 것임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대신 곤은 르노와 닛산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구매 조직을 설립했으며 르노와 닛산의 신제품 관리자 및 엔지니어들이 동일한 부품과 플랫폼을 사용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임시 대책 위원회를 꾸렸다.

 

에어프랑스와 KLM은 르노와 닛산이 택한 통합 방식을 따랐다. 에어프랑스는 2004년에 네덜란드 항공사 KLM을 공식적으로 인수했다. 하지만 당시 에어프랑스는 KLM이 향후 8년 동안 기존의 기업명과 경영 구조를 고수하고 독립적인 운영권을 보장받게 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에어프랑스의 KLM 인수를 지휘한 에어프랑스/KLM그룹의 전 회장 겸 CEO 장 시릴 스피네타(Jean-Cyril Spinetta)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KLM과 관련해서는 매우 실용적인 방침을 유지할 생각이다. 우리 그룹은 2개의 기업으로 구성돼 있으며 두 기업은 공동 지분과 경제 성과를 바탕으로 통합돼 있고 에어프랑스 회장 겸 CEO의 지휘를 받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조율이다. 하지만 화물 운송과 같이 브랜딩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부문에서는 좀 더 강하게 통합을 추진할 준비가 돼 있다. 일반 탑승객과 관련된 시장은 좀 더 복잡하다. 이 부문에서 통합을 서두르면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4

 

일상적인 운영 측면에서 두 조직을 긴밀하게 묶어두지 않더라도 매출이나 비용의 측면에서 만족스러운 수준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때 연합 방식의 통합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경우라면 포괄적인 전략 지침과 몇 개의 조율 방안을 마련해두는 것만으로도 두 조직이 자율성과 개별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그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을 따지는 데서 그치지 말고 합병된 기업 간의 심리적 거리 역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경제적인 부분만을 생각한다면 르노와 닛산을 좀 더 강도 높게 통합하는 게 최선의 방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르노와 닛산은 매우 달랐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두 기업 모두 자동차 제조업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르노와 닛산은 모두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전혀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두 나라에 기반을 두고 성장했다. 르노와 닛산의 직원들은 서로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며 각기 다른 공급업체와 비즈니스 파트너를 상대한다.

 

뿐만 아니라 르노에 인수될 당시 닛산은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었지만 닛산의 이해관계자들은 닛산의 정체성이 프랑스 자동차 회사의 정체성에 흡수되는 것을 용인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면 곤이 좀 더 강력한 통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과 두 기업 간의 심리적 거리를 외면했을 때 발생할 비용 사이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을 한 듯하다.

 

마찬가지로 에어프랑스와 KLM 사이에도 엄청난 심리적, 문화적 간극이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두 회사 모두 유럽 기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리적, 문화적 간극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연합 방식을 택한 덕에(에어프랑스와 KLM CEO서서히 하나로 묶는다(gradually bringing together)’는 뜻의 프랑스어라프로슈망(rapprochement)’을 조심스레 언급했다) 양측 직원들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서로를 알아가고 비공식적으로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갈 수 있게 됐다. 에어프랑스-KLM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5 합병 후 8년이 흐른 만큼 두 항공사가 좀 더 심도 깊은 통합을 추구할 때가 됐다고 발표했다. 인터뷰에서 공개된 내용에 의하면 에어프랑스와 KLM 간의 통합이 연방의 형태로 발전하고 두 기업을 모두 관리하는 기업 중앙부의 역할이 한층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 방식의 통합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면 먼저 최고경영진이 얼마나 심도 깊게 통합을 추진할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양측의 직원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르노와 닛산의 경우 직급을 막론한 모든 르노 관리자들이 몰락 직전의 상황에서 살아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닛산의 관리자들을 향해 마치정복자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지금은 닛산이 곤경에서 벗어나 영광스러운 과거를 되찾게 된 만큼 일본 관리자들이 프랑스 관리자들을 향해 오만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하다. 통합 과정을 겪고 있는 두 조직의 직원들이 서로를 향해 존경심을 잃지 않도록 하려면 두 조직을 잇는 고위급 관리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방(Federation)

연방 방식의 통합은 두 조직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두 조직 모두와 관련이 있고 일체감이 느껴지며 두 조직 모두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상위 정체성, 혹은 포괄적인 정체성을 수립하는 것이다. 연합 방식의 통합과 비교해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연방 방식의 통합과 가장 가까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 바로 러시아의 마트로시카 인형이다. 마트로시카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인형이고 인형의 전면에 얼굴도 그려져 있다. 하지만 하나의 마트로시카 인형 안에는 별도의 얼굴과 존재성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여러 개의 인형이 들어 있다.

 

연방 형태로 통합을 추진할 때는 기존의 정체성과 이미지 위에 새롭게 추가할 정체성과 이미지를 만든다. 정치계에서 연방 방식으로 대규모 정체성 통합이 이뤄진 사례로 유럽연합을 들 수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의 국민들은 자국의 국가 정체성을 포기할 것을 요구받지 않았으며 그럴 것으로 기대되지도 않았다.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 대신 각국의 국가 정체성 위에 덮어 씌울 수 있는 유럽의 정체성을 서서히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리스 등 일부 국가에서 발생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하나의 정체성 위에 또 다른 정체성을 배치하는 방법에 내재돼 있는 태생적 위험이 드러나고 있다.) 유럽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프랑스(혹은 독일이나 이탈리아) 국민인 동시에 유럽 국민이라고 여기게 되는 날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연방 프로젝트가 성공을 맞이할 것이다.

 

성공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연방형 통합을 추진한 기업으로는 미국의 대기업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과 파리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여러 고가품 브랜드를 보유한 LVMH을 들 수 있다.

 

존슨앤드존슨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며 건강 관리 산업에서 세계적인 선두업체로 인정 받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은 60개 국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갖고 있는 250개 이상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으며 직원 수는 약 128000명에 이른다.6 존슨앤드존슨은 각 기업이 별도의 경영 구조 및 현지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경영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존슨앤드존슨은 최근 자회사인 맥닐 컨슈머 헬스케어(McNeil Consumer Healthcare)의 품질 관리 문제(펜실베이니아 포트워싱턴과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생산 시설에서 발생한 문제 포함)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 사건은 매우 분권화된 시스템 내에서 여러 운영 조직 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할 때 관리의 측면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일깨워준다.

 

현재 LVMH의 회장 겸 CEO를 맡고 있는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는 서로 모순되는 두 원칙 간의 균형 유지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연방 모형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첫 번째 원칙은고가 브랜드를 뒷받침하는 조직의 독특성을 유지하는 것이고, 두 번째 원칙은엄선한 영역에서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아르노는 연방 모형을 채택한 덕에 루이비통(Louis Vuitton), 모에 & 샹동(Moet & Chandon), 헤네시(Hennessy), 크리스찬 디올(Parfums Christian Dior), 태그호이어(TAG Heuer), 셀린느(Celine), 세포라(Sephora) 등 고가 기업 및 브랜드를 뒷받침하며 매우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갖고 있는 기라성 같은 조직들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아르노는 LVMH그룹의 정체성을 활용해 수많은 조직과 브랜드로 구성된 LVMH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었다. 그 결과 LVMH는 유통, 광고, 인재 관리, 효율적인 금융시장 접근성 등의 부문에서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었다.

 

변형(Metamorphosis)

변형은 합병된 기업의 정체성이 녹아들어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으로 융합되는 과정을 일컫는다. 이 통합 방식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장점은 통합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M&A의 승자와 패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불확실성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결합된 조직을 위해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할 때 최고경영진은 중립 지대(neutral terrain)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변형 형식으로 통합이 진행되면 조직 구성원들이 기존 조직의 정체성을잊을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당사자들에게 각자 목소리를 내고 조직에 기여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며 모든 당사자들이 공유 가능한 공통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

 

변형 방식으로 통합된 대표적인 기업이 SSL 인터내셔널이다. SSL 인터내셔널은 1998년에 진행된 세톤(Seton, 튜브형 붕대와 의약품을 제조하는 제약업체)과 숄(Scholl, 의료용 신발 제조업체) 간의 합병, 그리고 뒤이어 1999년에 이뤄진 런던 인터내셔널(London International, 듀렉스 콘돔 및 병원에서 사용하는 일회용품을 제조하는 업체)과의 합병을 통해서 탄생한 기업이다. 합병을 총괄 지휘했던 CEO는 한 기업의 정체성을 토대로 다른 기업을 통합하거나 연합 구조나 연방 구조를 택해 합병된 기업 간의 적정거리를 유지하기보다 합병을 통해 탄생한 기업에 어울리는 새로운 조직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SSL 인터내셔널의 CEO는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통합적인 기업 전략과 조직 구조를 설립하고 합병된 3개의 기업에서 인재를 선발해 단일 경영팀을 꾸렸다. 또한 경영대학원에 경영자 훈련 프로그램 설계를 의뢰했고 이 과정에서 필자들이 정체성 부문을 담당하게 됐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SSL 인터내셔널은 2010년에 레킷 벤키저에 인수되고 말았고 레킷 벤키저는 동화 방식으로 합병을 추진해 SSL 인터내셔널의 조직 구조와 정체성을 해체시켜 버렸다.

 

정체성 통합을 위한 상징적인 수단과

실질적인 수단

관리자들은 서로 다르지만 상호 보완적인 작용을 하는 2개의 수단(상징적인 수단과 실질적인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조직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강화할 수 있다. 상징적인 정체성 관리 수단이란 합병된 조직이 무엇을 지지하는지, 혹은 무엇을 지지해야 하는지에 관한 담론을 뜻한다. 기업의 사명이나 정체성을 명시하는 성명서를 작성하는 방법, 조직적 가치를 정의하는 방법, 기업 브랜딩(이름, 로고, 슬로건, 시각적 정체성)을 추진하는 방법 등이 상징적인 정체성 관리 수단에 해당된다. 기업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기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법, 인도적인 차원의 대의나 스포츠 종목, 문화 운동 등 하나의 활동 범위를 정해 조직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등 후원 예산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역시 상징적인 정체성 관리 수단에 포함된다.

 

그동안 필자들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고위급 관리자들은 대개 정체성 관리를 상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기업의 정체성이 곧 조직의피부(기업의 이름과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피부에 관심을 쏟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새롭게 탄생한 기업을 매력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한 겹의 화장만 덧입힌다고 해서 고위급 관리자의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기업의 외양을 아름답게 가꾸어줄 미용사를 부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조직의 외양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외적으로 드러나는 상징을 구체화하고 외적인 상징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실질적인 정체성 관리 수단이란 단순한 담론이 아니라 조직에 관한 행동과 결정을 뜻한다. 소유권, 지배구조, 경영팀 구성 등에 관한 결정 역시 실질적인 정체성 관리 수단이다. 새로운 조직 정체성을 구체화하고 홍보할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방안, 새로운 정체성과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내보내는 방안, 조직 구조 및 경영 시스템을 수정하는 방안,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과 새로운 정체성 간의 일관성 유지를 돕는 방안 역시 실질적인 정체성 관리에 도움이 된다.

 

 

합병 후에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하는 경우라면 신속하게 상징적인 결단(기업 강령, 기업명, 로고 등)을 내려야 관리자들도 지체 없이 새로운 정체성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상징적인 결단과 일치하는 실질적인 결정(인재, 비즈니스 전략, 운영 등)이 뒤따라야 한다. 상징적인 결단을 내린 후에 인재, 비즈니스 전략, 운영 등과 관련된 실질적인 결정을 내릴 때는 일관성을 고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결정을 내리기가 좀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리자가 상징적인 결단을 내린 후에 실질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실질적인 결정을 내리면서 상징적인 결단과의 일관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겉모습과 영혼 사이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정체성 통합을 위한 제언

필자들은 이 글을 통해서 여러 조직을 모아 하나의 조직을 만들 때 활용할 수 있는 4개의 방법을 소개했다. 각 모형은 공통의 미래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때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필자들은 각 모형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살펴봤다. 이 사례들을 보면 주변 상황 및 합병의 목표와 잘 맞기만 하면 4개의 방법 모두 성공적인 통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들은 잘 알려진 대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정체성 통합 작업을 진행하는지 직접 관찰하고 경험했으며 이를 토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첫째, 효과적인 합병을 위해서는임원들이 경제적인 시너지 효과와 심리적인 시너지 효과, 둘 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 합병을 고려하고 완료하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시너지의 중요성이 완전히 간과되거나 저평가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필자들이 M&A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무 구조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재무 구조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둘째, 정체성 문제가 성공적인 통합에 얼마나 걸림돌이 될지 합병 전에 미리 평가를 해야 한다. 사전 평가를 위해 실사 과정에 정체성 감사(identity audit)를 포함시키는 방법도 도움이 된다. 정체성 감사를 실시하면 극단적인 경우에 관리자들이 경제적인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시너지 효과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유로 합병을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정체성 감사참조)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관리자들이 정체성 감사를 통해 성공적인 정체성 통합을 위해 미리 해결해야 할 문제와 장애물을 발견할 수 있다.

 

셋째, 통합을 위해 실제 활용하는 모형을 적용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다른 통합 모형을 적용할 때 사용하는 언어를 쓰는 건 위험하다. 실제로는 동화 모형의 통합을 추진하면서 변형이나 연방 모형과 관련된 표현을 사용하고픈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특히 동화 방식으로 통합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낼 경우 M&A가 실패로 돌아가거나 M&A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실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통합을 진행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픈 욕구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 신뢰성이 훼손돼 장기적으로 매우 높은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다. 예컨대, 결국 실패로 끝난 합병을 추진했던 위르겐 슈렘프(Jürgen Schrempp)는 합병 당사자인 두 회사의 이름을 더해 회사의 이름을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라고 명했으며동등한 기업 간의 합병(mergers of equals)’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슈렘프가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자 크라이슬러 직원들 사이에서 연방 모형으로 통합이 추진되고 크라이슬러가 자율권, 미국인 경영진,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 슈렘프는동등한 기업 간의 합병이라는 표현 자체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7

 

이와 같이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통합 방법과 실질적인 통합 방법이 서로 다른 경우는 매우 흔하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괴리로 인해 피인수 기업의 고위급 임원들이 합병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인수 기업이 자신들을 속였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장기적으로 매우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넷째, 관리자들은 4개의 통합 모형에 대해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천편일률적으로 하나의 방법만 고집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유니레버(Unilever)의 벤앤제리(Ben & Jerry, 아이스크림 제조업체) 인수 사례와 코카콜라(Coca-Cola)의 어니스트티(Honest Tea) 인수 사례를 통해 피인수 기업이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을 경우 합병 후에 통합을 추진할 때 표준화된 방법이 아닌 예외적인 방법을 사용해도 좋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동화 방식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피인수 기업을 통합해 왔던 유니레버는 2000년에 벤앤제리를 인수한 후 벤앤제리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보장하겠다며 여러 차례 공식적인 약속을 했다. 벤앤제리 웹사이트에는 유니레버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어니스트티는 2011년에 코카콜라에 완전히 인수됐지만 여전히 독립적인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스코는 예술의 경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피인수 기업의 정체성을 완전하게 해체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스코 역시 2003년의 링크시스(LinkSys) 인수 건을 시작으로 사이언티픽-애틀랜타(Scientific-Atlanta), 아이언포트(IronPort), 웹엑스(WebEx) 등의 기업을 인수할 때 예외적인 통합 방법을 택했다.8 시스코는 자사가 그동안 활약해 왔던 핵심 비즈니스 부문에 속하는 기업을 인수할 때는 동화 모형을 적용하고, 다각화를 위해 새로운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업을 인수할 때는 연방 모형을 적용하는 등 하이브리드 정체성 통합 모형을 개발했다.

 

다섯째, 조직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건 결코 고위급 관리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물론 고위급 관리자들이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되는 강력한 상징적 수단 및 실질적 수단에 접근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체성은 조직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형성하고, 소유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정체성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관리자가 내세우는 조직에 대한 정의가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정의를 앞세우는 경우도 있다.) 합병된 기업이 지지하는 바를 둘러싼 의견 차이와 충돌을 피하려면 관리자가 합병 이후의 시기에 대비해 계획을 세울 때 직원, 고객, 주주, 기타 이해관계자가 합병된 기업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감시하기 위한 방안을 계획에 포함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들은 정체성을 통합할 때 시간적 요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리자들은 심리적인 시너지 효과 극대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며 전략 및 운영 측면과 달리 정체성 측면에서 일관성(alignment)을 정립하려면일회적인관심이 아니라 수년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르노와 닛산의 합병 사례를 살펴보면 필자들이 점진적인 정체성 통합(gradual identity integration)이라는 표현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산업의 세계화, 잠재적인 시너지 효과와 규모의 경제 등을 고려하면 전면적인 통합이 가장 훌륭한 통합 방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르노와 닛산 모두 동화(르노에 닛산이 동화되는 방식)나 변형(두 자동차 회사를 완전히 통합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방식) 방식의 통합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연방 통합 시나리오를 택할 경우 르노와 닛산이 갖고 있는 기존 정체성보다 한 차원 높은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 공동 경영 구조를 발전시켜야 하는 만큼 지리적, 심리적 거리가 먼 두 기업이 연방 모형의 통합을 추진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연합 모형은 두 기업 모두에 훌륭한 출발점이 됐다. 하지만 상황에 어울리는 통합 방식을 택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KLM과 에어프랑스의 경우에서 보듯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연방 방식의 경영 구조로 옮겨가야 할 수도 있다. 르노와 닛산이 연방 형태의 통합 방식을 채택할 경우 두 조직이 각자 별도의 경영 구조와 운영 자율성을 유지하지만 그와 동시에 중앙 책임자가 르노와 닛산을 대신해 중대한 결정(: 단계적인 신제품 출시, 공동 부품 숫자 확대, 교차 사용 가능한 조립 플랫폼 숫자 확대)을 내리게 된다. 연방 단계를 통해 유대감과 공동의 목적 의식이 충분히 형성되면 전면적인 변형을 시도할 때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 단계에 다다르면 르노와 닛산이 더 이상 별개의 조직으로 운영되지 않으며 단지 브랜드로서 홍보된다.

 

통합은 장기적인 과정이다. 정체성 통합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M&A의 경제적 측면을 검토할 때와 마찬가지로 심리적 측면을 검토할 때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해야만 여러 조직이 보유한 자원을 하나의 소유권 구조하에 두는 방법이 효과를 발휘한다.

 

번역 |김현정 translator.khj@gmail.com

 

하미드 부치키· R. 킴벌리

하미드 부치키(Hamid Bouchikhi)는 프랑스 세르지 퐁트와즈에 위치한 ESSEC 경영대학원(ESSEC Business School)에서 경영과 기업가정신을 가르친다. R. 킴벌리(John R. Kimberly)는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 와튼 경영대학원(Wharton School)의 헨리 바워 기업가학 교수(Henry Bower Professor of Entrepreneurial Studies)이자 경영학 교수다. 이 논문에 관한 의견이 있으신 분은 http://sloanreview.mit.edu/x/54118에 접속해 메시지를 남겨 주시기 바란다. 저자와의 연락을 원하시는 분은 smrfeedback@mit.edu e메일을 보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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