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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 괜히 스폰서 나섰나?

DBR | 9호 (2008년 5월 Issue 2)
올 여름 2008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전 세계 곳곳에서는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경호원과 경찰에 둘러싸인 성화 봉송자들이 각국의 수도를 지날 때마다 시위대가 끼어들어 이를 저지하는 데모를 벌이고 있다. 이달 초 런던과 파리에서 이런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중국 올림픽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됐다. 하지만 코카콜라, 레노보, 삼성전자 등 올림픽 성화 봉송 후원업체들은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군중의 시위 장면에 가려 이들 기업의 로고가 제대로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 개최가 불과 몇 달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이 행운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현재 인권 운동가, 유명인사, 정치 지도자, 일반 시민들은 중국이 티베트의 인권을 탄압하고, 아프리카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역에서 자행되는 대량 학살을 지지하며, 중국 내 종교 지도자와 반체제 인사를 박해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상당수는 올림픽 기간 동안 중국에 압박의 수위를 높일 계획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티베트 국기를 다는 등 이른바 ‘선동’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자격을 박탈할 것이라는 엄포까지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너럴일렉트릭(GE), 존슨앤존슨(J&J), 비자카드 로고를 배경으로 중국 공안들이 시위자의 머리를 내리치는 끔찍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나올 수 있을까?
 
스폰서 자격을 얻기 위해 7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한 올림픽 후원기업 12곳 중 중국 기업은 레노보 하나뿐이다. 와튼스쿨 교수진은 다국적 후원사들이 중국 외의 다른 국가에서 벌인 사회 공헌활동을 인정받으면서도 이번 올림픽 후원사로서의 이익을 얻으려면 까다로운 두 단계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와튼 스포츠 비즈니스 이니셔티브(Wharton Sports Business Initiative)의 케네스 슈롭셔는 “수십 년 전부터 올림픽이 개최될 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시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처럼 중요한 행사를 개최하는 국가라면 이제 유사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올림픽을 개최할 자격이 없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각 후원사들이 중국 발전에 얼마나 많이 기여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홍보 전략을 짤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금까지 일부 후원사들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을 통해 중국과 협력함으로써 사회공헌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코카콜라는 수단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성명서에서 “주권국의 정책 결정에 개입할 처지는 아니지만, 코카콜라는 올림픽을 지속적으로 후원함으로써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간 코카콜라가 다르푸르 난민을 위해 연간 수백만 달러를 기부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카콜라는 티베트에 대해서도 비슷한 성명서를 내고 이에 대해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하지만 코카콜라는 “스포츠, 우정, 공정한 경기를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올림픽 운동의 이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코카콜라 대표단은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와치(Human Rights Watch)’와 만나기도 했다. 코카콜라는 중국 정부에 인권 문제를 직접 제기해달라는 HRW의 요청은 거절했지만, 대신 IOC에 우려를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지난 2월 “아무도 IOC에 국제 문제 해결을 촉구할 수는 없다”며 중국을 압박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성화 봉송 저지 시위와 관련, “올림픽이 위기에 빠졌다”고는 언급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로게 위원장이 IOC와 상관없는 정치적 문제를 언급했다며 비난했다.

정치적 위험 관리를 연구하고 있는 와튼스쿨의 위톤드 헤니츠 교수는 올림픽이 전적으로 스포츠 행사일 뿐이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헤니츠 교수는 정치적 위험을 미리 고려하는 후원사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기업들이 올림픽이 국제적 이슈로 확대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올림픽 후원을 통해 수십억 명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정치 문제는 크지 않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정치는 돈이 아니라 희망, 공동의 목표와 정체성에 관한 겁니다.”
   
 
세계 시청자를 잠재고객으로
와튼스쿨의 존 장 마케팅 교수는 다국적기업들에게 2008 베이징 올림픽은 전략적 측면에서도 매우 가치 있는 행사라고 평가했다.
 
“베이징 올림픽의 매력은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올림픽과 베이징이죠. 올림픽이 어디서 열리든 다국적기업은 이를 통해 세계 수십 억 명의 잠재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흔치 않은 홍보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업들은 경쟁, 힘, 완벽, 아름다움, 인내와 같은 올림픽의 정신과 자사 이미지를 연결시키려 합니다.”
 
이와 함께 급속히 팽창하는 중국 소비재 시장을 감안하면 베이징 올림픽 후원의 파급 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그는 평가했다.
 
“고객군 확보와 사업의 기회가 상당한 만큼, 올림픽 후원을 통한 자본이익률(ROE)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사와 지나치게 경쟁하는 것만 피하면 됩니다.”
 
1984년 LA 올림픽 개최를 위해 3년간 일한 슈롭셔는 1980년 IOC가 처음 공식 후원 제도를 도입한 후 엄청난 자금이 유입됐다고 말했다. 1984년 총후원비용은 400만 달러로 1980년의 25만 달러에서 10배 이상 급증했다. 보스턴글로브는 베이징 올림픽의 12개 올림픽 후원사가 IOC, 각국 올림픽 위원회, 국제 스포츠 연맹 등에 총 8억6600만 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12개 올림픽 후원사에는 삼성, 레노보, 코카콜라, 존슨앤존슨, GE, IT 서비스업체 아토스 오리진, 캐나다 금융 서비스업체 메뉴라이프, 코닥, 맥도날드, 오메가, 파나소닉, 비자카드가 있다. 후원 금액이 늘어나면서 후원 계약 역시 정교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특정 업체가 올림픽 공식 차량을 공급하더라도 스키팀은 다른 차량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 후원 계약을 체결하면 완전한 독점권을 얻을 수 있다.
 
올림픽을 통 후원사들은 개최국 시장에 대한 접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일본 기업인 후지필름과 타자기 제조업체인 브라더 인더스트리가 좋은 예다. 두 기업은 1984년 미국 기업들을 누르고 LA 올림픽 후원사로 뽑혔다. 슈롭셔는 “당시 두 기업은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세부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의 경우 올림픽 후원을 중국 내 입지 구축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중국 기업인 컴퓨터 제조업체 레노보는 다르다. 중국 전문가인 와튼스쿨의 마셜 메이어 교수는 올림픽 후원사 중 유일한 중국 기업인 레노보가 “중국 내수 시장뿐 아니라 외부까지 공략하고 있다”며 “레노보는 세계인들이 자사를 다른 거대 후원사들과 동등한 글로벌 기업으로 인식하기를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성화봉송 저지 등 인권 관련 시위에 대한 중국의 반감이 이 후원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후원사들이 직면한 가장 큰 리스크는 방송 제한 가능성입니다. 물론 중국 정부는 아직까지 경기 방송을 규제하지는 않고 있죠. 하지만 그들은 분명 세계인이나 중국 국민이 시위나 소요 사태를 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누군가 경기장에서 시위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펼쳐든다면 방송은 곧바로 중단될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TV나 인터넷 방송을 단속한다면 브랜드 인지도 등과 같은 올림픽 후원 효과는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와튼스쿨 마셜 메이어 교수) 
   
 
시위와 ‘TV 시청 반대’ 캠페인
지금까지 미국 기업들은 시위대들의 강한 반발을 사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국 내 여론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이달 뉴욕 소재 설문조사 기관 조그비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조사 대상 미국인 가운데 70%는 중국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한 IOC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답했다. 1년 전의 44%에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올림픽에 관여하고 있는 유명 인사 역시 중국의 정책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다르푸르 사태에 우려를 표명하며 올림픽 개막식 자문 업무에서 손을 뗐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마타이는 인권 문제를 이유로 성화 봉송 불참 의사를 밝혔다. 샌프란시스코 성화 봉송주자 몇 명은 작은 티베트 국기를 달기도 했다.
 
뉴욕 소재 인권단체 ‘드림 포 다르푸르(Dream for Darfur)’가 지난해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대응 정도를 기준으로 후원사들의 등급을 매긴 결과, 19개 기업 가운데 12개 기업이 낙제점을 받았다. 다만 GE는 다르푸르 기부, IOC에 우려 표명, 다르푸르 문제 담당자 지정 등으로 가장 높은 등급을 받았다.
 
‘드림 포 다르푸르’에서 올림픽 후원활동을 감시하는 엘렌 프로덴하임은 “우리는 중국 정부를 비난하거나 올림픽 보이콧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들이 자체 수단을 활용해 중국 정부가 수단 정부에 다르푸르 분쟁 종식을 촉구하도록 요청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올림픽 후원사들을 다르푸르 학살을 종식시키기 위한 동맹의 일부분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원사들이 다르푸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지 못할 경우, 압박 수위를 높일 계획이라고 그녀는 밝혔다. ‘드림 포 다르푸르’는 올해 봄 다르푸르 사태에 관한 업데이트 보고서를 발간했다. 베이징 올림픽 소프트웨어 공급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를 비롯해 미국 올림픽 후원사 본사 밖에서 시위도 벌일 예정이다. 또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광고 방송 시청 반대 캠페인을 실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후원사들이 시위대가 반길 만한 행동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국 투자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헤니츠 교수는 “대부분 기업들이 중국 시장의 잠재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를 자극할 만한 문제에는 침묵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시스코는 중국 정부의 커뮤니케이션 감시 체계 개선을 위해 기꺼이 라우터를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야후는 자사 채팅 게시판의 개인 정보를 적극적으로 중국 정부에 넘기기도 했다. 중국 시장은 매우 크기 때문에 무시하기 어렵다.
 
헤니츠 교수는 많은 기업이 중국 정부의 규정을 잘 따르면서도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반감을 드러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올림픽 개막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조지 부시 대통령 역시 불참 압력을 받고 있다.
 
“양국 정부와 기업들은 개막식에 불참하는 등 상징적으로 반대 의사를 드러낼 겁니다. 후원사들은 혜택을 양보하거나 교육 시스템, 환경오염 완화 등에 자금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티베트 문제와 같이 ‘윈윈’ 시나리오가 없는 복잡한 이슈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우려를 드러내지 않을 겁니다.”
 
장 교수는 시위 사태를 관망하며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 후원사들이 택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이라고 말한다.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올림픽은 언제나 그랬듯 모든 선수에게 가장 큰 무대이고, 복잡하고 극적인 일도 자주 일어나죠. 어쨌든 올림픽은 계속됩니다. 미국 기업들이 리스크를 최대한 피하고자 한다면 고객이 중시하는 올림픽 정신에만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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