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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는 나중에, 과자는 당장 배달해주세요

김현정 | 69호 (2010년 11월 Issue 2)

사람들은 대개 며칠 전 빌려 놓은 다큐멘터리보다는 쿵푸 영화나 십대를 겨냥한 별 볼일 없는 코미디 영화를 먼저 보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이유로 사람들은 온라인 식료품매장에서 주문을 할 때 아이스크림은 오늘밤 당장 배송을 받을 수 있게 주문하면서 브로콜리를 주문할 때에는 며칠 후에나 배송을 받게 설정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의 영업/정보 관리 교수 캐서린 밀크맨(Katherine Milkman)과 두 명의 동료들은 이런 사실에 흥미를 느껴 온라인 쇼핑 패턴을 연구했다. 연구진은 소비자들이 정말 고칼로리 디저트나 스낵처럼 ‘원하는’ 음식을 주문할 때에는 즉각적인 배송을 요구하면서, 과일 야채 등 ‘필수적인’ 식료품을 주문할 때에는 주문한 날로부터 며칠 후에 배송을 받는 경향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밀크맨은 연구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식료품의 주문일과 배송일이 크게 차이가 날수록 해당 소비자가 지출한 전체 금액이 줄어들고, 주문내역 중 정크푸드 대신 농산물처럼 좀 더 건강한 식품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커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밀크맨은 이렇게 말했다. “미래에 소비할 식품을 주문할 때 지출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즉각적인 만족이 클수록 좀 더 자유롭게 지출을 한다.”
 
밀크맨은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식료품 쇼핑과 관련한 소비자들의 구매 습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아이스크림은 곧장, 채소는 나중에: 온라인 식료품 구매 및 주문 리드 타임에 대한 연구(I’ll Have the Ice Cream Soon and the Vegetables Later: A Study of Online Grocery Purchases and Order Lead Time)’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공개했다. 이 논문은 마케팅 전문 학술지인 <마케팅 레터스(Marketing Letters)>에 실렸다. 밀크맨은 위 논문을 분석가 협회(Analyst Institute)의 토드 로저스(Todd Rogers)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맥스 H. 바제르만(Max H. Bazerman)과 공동 집필했다.
 
인터넷 쇼핑의 발달은 밀크맨이 소비자의 의사결정 심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데 한몫 했다. 인터넷 쇼핑이 발달한 덕분에 설문조사나 각종 연구 방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훨씬 정확하며 광범위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과거, 온라인 쇼핑의 규모는 다른 형태의 상거래에 비해 한참 뒤졌다. 하지만 2006년 온라인 쇼핑은 연 매출 1000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성장했다.
 
밀크맨은 “인터넷 덕택에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결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온라인 쇼핑으로 생겨난 데이터는 연구원들이 특정한 개인 소비자가 오랜 기간에 걸쳐 어떤 소비 습관을 보이는지 추적하고 다양한 변수가 소비자의 결정에 미치는 효과를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빠른 효과 = 다른 선택
밀크맨은 여러 연구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쇼핑 데이터가 쇼핑객들의 심리에 관한 어떤 사실을 알려주는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밀크맨은 특히 인터넷 쇼핑 데이터가 소비자가 갈망하는 즐거움을 주는 품목 및 장기적인 관심사와 건강을 고려했을 때 소비자가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고’ 느끼는 품목과 관련이 있다고 예상했다. 온라인에서 다른 제품을 구매할 때와 달리 식료품을 구매할 때에 소비자들은 배달 시간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연구진은 이 때문에 온라인 식료품 쇼핑에 특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연구진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결정으로 인한 결과가 좀 더 먼 미래가 아니라 단기간 내에 실현될 때 사람들은 좀 더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도 보면 사람들은 좀 더 큰 수익을 얻기 위해 기다리기보다는 적은 수익을 당장 손에 쥐는 쪽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또 내일 당장 봉사활동을 하는 쪽보다는 2주 후에 자선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쪽을 선택한다. 유권자들은 실행이 어렵지만 ‘반드시’ 진행해야만 하는 정책이 있을 때 그 정책이 미래에 실행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려 한다.
 
밀크맨은 이미 식료품과는 다른 부류인 ‘온라인 DVD 대여’ 부문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주문할 때와 ‘반드시 봐야 하는’ DVD를 주문할 때 어떻게 다른지 살펴봤다. 연구진은 과거 <어려운 영화는 외면당한다: 시간 불일치 선호도와 온라인 DVD 대여(Highbrow Films Gather Dust: Time-Inconsistent Preferences and Online DVD Rentals)>라는 논문 역시 공동 집필했다.논문에서 저자들은 소비자가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와 같은 어려운 영화와 ‘탈라데가 나이트(Talladega Nights)’라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주문했을 때, 쉬운 영화를 먼저보고 빨리 반납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어려운 영화를 먼저 빌리고 쉬운 영화를 늦게 빌렸을 때에도 순서는 달라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연구진은 소비자들이 자신의 습관을 깨달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현상이 줄어든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현재 밀크맨은 소비자들이 ‘필수적인’ 것보다 ‘원하는’ 것을 먼저 선택하도록 만드는 또 다른 요인(불확실성)에 관한 세 번째 논문을 집필하고 있다. 밀크맨은 현재 집필 중인 새로운 연구를 통해 불확실한 상황에 처한 소비자들이 초콜릿과 같이 ‘원하는’ 품목을 좀 더 갈망하고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한다.
 
온라인 식료품 쇼핑 행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밀크맨과 동료들은 2005년 한 해 동안 북미 도심 지역 온라인 쇼핑몰에서 개인 소비자들이 어떤 쇼핑 패턴을 보이는지 분석했다. 저자들은 배송 하루 전날 식료품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배송 25일 전에 주문하는 경우도 제법 많아서 상당량의 데이터를 수집하기에 충분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어떤 식료품이 ‘원하는’ 품목에 포함되고 어떤 식료품이 ‘필수적인’ 품목에 포함되는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연구진은 154명의 소비자에게 117개의 식품 카테고리를 평가하는 조사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하고 조사 참가비를 지급했다. 예상대로 초콜릿 간식류 과자 등 고칼로리 식품은 ‘원하는’ 품목으로 분류된 반면 신선한 과일, 채소, 고기, 해산물 등은 ‘필수적인’ 품목에 포함됐다.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그 결과, 같은 소비자가 주문을 하더라도 배송 시간을 좀 더 빠르게 설정할 경우 소비가 늘어난다(충동적인 선택이라는 징후)’는 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또 연구진은 주문에서 배송까지 이틀이 걸리는 경우와 닷새가 걸리는 경우를 비교했을 때 배송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원하는’ 품목의 비중은 줄어드는 반면 ‘필수적인’ 품목의 비중이 꾸준히 증가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런 내용들이 과거의 연구 결과와 대개 일치하지만 과거에는 이런 행동이 나타나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밀크맨은 논문에서 밝힌 내용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신문에서 읽은 내용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신문에는 애플비(Applebee’s)와 같은 미국의 대형 레스토랑 체인들이 건강하고 칼로리가 낮은 음식을 메뉴판에 추가해 달라는 소비자들의 요청을 따랐지만 정작 저녁을 먹으러 와서 그런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소비자들이 미래에 ‘필수적인’ 음식을 선택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매장 운영진에게 건강한 음식을 메뉴판에 추가해 달라고 요청을 해 놓고서는, 실제 음식을 주문하는 순간에는 ‘원하는’ 음식을 주문했던 것이다. 결국 소비자들의 요청을 따랐던 레스토랑 체인들은 소비자들이 구매하지도 않을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주문하느라 많은 돈을 지출하는 바람에 상당한 손해를 입었다.
 
원하는 것/필수적인 것’을 구분해
마케팅 하는 방법
밀크맨의 연구 내용은 식료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소매업체뿐 아니라 책 영화 의류 등 ‘원하는 것’과 ‘필수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 다른 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소매업체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밀크맨은 소비자들이 배송 시간을 짧게 선택할 때와 길게 선택할 때에 각기 다른 습관을 드러내 보인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수요를 예측하기가 한결 쉽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배송 기간을 짧게 설정할 때 더 많은 돈을 지출했으며, 소매업체들이 이런 사실을 근거로 단기간 내에 배송이 완료되는 주문을 더 많이 하도록 소비자들을 부추길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의 이런 성향을 잘 활용하면 수익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밀크맨은 쇼핑객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 관심품목 목록을 제공하는 추천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이 있는 소매업체들에 이런 사실이 특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주문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소비자들에게 언제 배송을 원하는지 물어볼 수 있다. “만일 다음주에 배송을 받겠다고 선택한다면 고칼로리 식품을 덜 강조하는 한편 좀 더 건강에 좋은 식품을 추천할 수 있다.”
 
밀크맨은 이같이 말했다. “오프라인 식료품점을 방문할 때 매장에 들어서면 먼저 채소가 눈에 들어오며 간식거리는 계산대 주변에 진열돼 있다. 어쩌면, 가게 주인은 소비자들이 구매를 하는 시점에서 멀수록 건강한 ‘필수 식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반면 계산대 옆에서는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원하는 식품’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연구진은 미국인들이 고지방 식품을 줄인 건강한 식생활을 유도하기 위한 방법을 고심 중인 건강 관련 정책 입안가에게 자신들의 연구 내용이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의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구내식당에서 바로 메뉴를 선택하는 대신, 식사를 하기 한 주 전에 미리 식단을 주문하도록 요청함으로써 좀 더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도록 장려할 수도 있다.
 
밀크맨은 “기업도 직원들이 사전에 건강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 다음 그 방법이 좀 더 건강한 생활방식으로 이어지는지 관찰해 볼 수 있다”며 “이런 방법을 통해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원들의 건강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이 글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MBA스쿨의 온라인 매거진 <Knowledge @ Wharton>에 실린 ‘Hold the Vegetables: How ‘Now vs. Later’ Affects Customer Choice’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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