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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두려워 말고 관리하라

케빈 뷸러(Kevin Buehler),앤드루 프리먼(Andrew Freeman),론 흄(Ron Hulme) | 18호 (2008년 10월 Issue 1)
케빈 뷸러, 앤드루 프리먼, 론 흄
 
위기가 닥치면 리스크에 관한 논의가 떠들썩하게 오가지만, 위기 국면이 지나가고 상황이 평상을 회복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리스크에 대한 논의는 사라진다. 현재 세계 금융 시장에서 유동성 및 신용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구조화투자(SIVs), 대출 문턱을 낮춘 약식 대출(covenant lite loan) 등으로 인한 손실이 자칫 세계 경제 침체를 불러올 수도 있는 신용경색을 유발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주요 금융회사들이 상각한 부채 규모가 약 4000억 달러에 육박하면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유동성을 살리기 위한 응급 처방을 내놓고 있다. 조금만 과거를 돌아보면 19801990년대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파산 사태, 1987년 ‘검은 월요일’,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 및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파산, 2000년 IT 버블 붕괴, 2001년 엔론의 몰락이 가져온 상업 발전시장 붕괴 등 다양한 위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각종 위기 사례가 전달하는 한 가지 메시지는 바로 위기가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기업 중역들도 이런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수학적 모델링이 점차 중요시되다 보니 금융부서나 금융 서비스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리스크 관리에 관한 논의 및 연구를 이해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 결과 많은 관리자가 지난 30여 년 동안 꾸준히 발전해 온 강력한 리스크 관리 도구와 위험 회피를 할 수 있는 각종 파생상품 시장을 외면하게 됐으며,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기회를 놓치게 됐다.
 
본 연구의 목적은 관리자들이 신용·유동성 위기와 관련이 있는 시장 및 도구의 이점과 한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리스크 관리가 발전해 온 궤도, 새로운 시장이 금융 서비스 및 에너지 부문에 몰고 온 변화를 살펴보고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경쟁력을 얻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설명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리스크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높이고 기업 전략 및 조직에 리스크 요인이 숨어 있을 경우 사소해 보이는 리스크가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보여 주고자 한다. 이번 호에 함께 발표한 다른 연구에서는 전략결정 과정에 리스크를 반영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
20세기에 들어선 후 70여 년 동안 기업의 리스크 관리 수단은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전부였다. 금융 부문의 리스크 관리도 기초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은행 규제를 담당하는 기관들조차 리스크 측정 방법을 알지 못했고, 그 결과 건설적인 방법으로 은행 활동에 간섭하기가 어려웠다. 은행들도 대출 포트폴리오 내에서 금리에 관한 리스크를 통제하거나 신용 리스크를 산출하고 관리할 능력이 없었다. 보험을 대체할 만한 대안을 찾기 힘든 것도 한 가지 원인이었다. 물론 선물이나 옵션 계약을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각 상품의 가격을 책정하기 위한 안정적인 방법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이런 종류의 상품을 판매하는 시장 규모 자체가 무척 작았으며, 외환 매매 가격차가 큰 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의 가치는 자본 구조나 리스크 분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프랑코 모디글리아니와 머턴 밀러의 무관심 이론,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분산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하는 윌리엄 샤프 등 전문가들의 자본자산 가격결정 모형(CAPM) 등이 리스크 관리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낮추는데 한 몫 했다.(리스크 관리 분야에서 나타난 주요 이론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싶으면 ‘리스크 관리의 진화’표를 살펴보라)
 
그러나 1973년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가 옵션 가격결정 모형을 발표하고 로버트 C 머턴이 개념을 확장시키면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등장한 옵션 가격결정 모형은 가격 책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리스크를 낮춰줬다. 사용자가 총 다섯 종류의 데이터를 갖고 있기만 하면 옵션 가격결정 모형을 이용해 주식을 구매하기 위한 옵션의 가치를 산출할 수 있게 됐다. 옵션 가격결정 모형을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다섯 가지 데이터는 무위험 자산 수익률(보통 미 재무부에서 발행하는 3개월 채권 수익률을 지칭), 해당 주식을 구매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금액(대부분 주어지는 정보), 해당 주식의 현재 거래 가격(시장에서 정보 확보 가능), 옵션을 실행할 수 있는 기간(주어지는 정보), 해당 주식의 가격 변동성(그동안의 가격 정보를 통해 측정할 수 있으며 현재는 시장에서 해당 옵션이 거래되고 있는 경우 옵션 자체의 가격을 기준으로 가격의 변동성을 산출함)을 뜻한다. 옵션 가격결정 모형의 이 등식은 해당 주식의 가격이 엔지니어들이 흔히 브라운 운동이라 일컫는 일정하지 않은 공기처럼 움직인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블랙-숄즈 모형의 핵심은 모든 방법과 자본 구조 및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에는 만기가 있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며, 매각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옵션은 계약 내용이 분명하게 정의돼 있으며, 옵션에는 제약이 따른다. 즉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가격을 주고 GE의 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형태의 옵션도 존재한다. 블랙과 숄즈가 1973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는 자본구조 내에 부채가 있는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는 해당 기업의 부채 규모에 상응 하는 권리행사 가격을 주고 채무자로부터 해당 기업을 되사들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실물 옵션 분야에서도 기업의 운영에 내재되어 있는 옵션, 즉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취소하거나 연기할 수 있는 옵션이 등장했다. 순현재가치(NPV) 계산 방식에서는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경영상의 유연성을 간과하곤 한다. 그러나 실물 옵션 이론은 경영상의 유연성에 높은 가치를 둔다.
 
블랙-숄즈 모형은 휴대용 전자계산기의 보급과 맞물려 아주 적절한 시기에 시장에 등장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는 초기 전자계산기 모델을 출시한 다음 ‘이제 여러분도 계산기를 이용해 직접 블랙-숄즈 값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내걸어 금융 전공 교수들에게 계산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옵션 거래 전문가 사이에서 계산기 보급률이 늘어나면서 파생상품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으며, 표준 가격책정 모델이 발달했다. 블랙-숄즈 모형이 등장한 이후 첨단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1975년에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가 시장에 출시됐으며, 1979년에는 댄 브리클린과 밥 프랭스턴에 의해 PC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전자 스프레드시트 비지칼크(VisiCalc)가 등장했다. 비지칼크 등장으로 관리자들은 예상되는 여러 시나리오를 간편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됐다. 금융 부문에서는 리스크 관리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기법이 속속 등장했고, 미국의 시카고 옵션 거래소를 시작으로 여러 거래소 및 장외 파생 상품 시장에서 리스크 관리 상품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가 되자 눈부시게 발전한 계산 역량 덕에 다양한 옵션 상품을 찾아내고, 가격을 책정하고, 거래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다양한 첨단기기 중에서도 단연 가장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 것으로는 파생상품 시장에 일대 혁신을 몰고 온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디지털 이퀴프먼트의 워크스테이션, 채권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 블룸버그 터미널의 워크스테이션을 들 수 있다. 크리스탈 벨은 몇몇 업체들과 힘을 더해 최첨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그 덕에 거래 담당자들은 밤새 메인프레임 컴퓨터에서 작업하는 대신 노트북으로 단 몇 분 만에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초가 되자 옵션, 선물, 스와프 등 다양한 종류의 파생상품을 이용해 수많은 리스크를 관리하는 상품이 시장에 등장했다.(다양한 파생상품이 섞여 있는 리스크 관리 상품도 등장했다) 화폐·주식·금리에서 시작된 파생상품 시장은 성장을 거듭해 에너지·금속 등 다양한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금융시장에 두 번째 혁신의 바람이 불어와 리스크 분산 및 신용 리스크 거래를 가능케 한 상품이 등장했다. 당시 리스크 분산은 금융 리스크의 중요한 범주로 분류되는 한편 은행 규제기관 사이에서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1990년대 말이 되자 파생상품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파생상품 시장에서 거래되는 전체 주식 금액은 1998년 72조 달러에서 2006년 370조 달러로 폭증했다. 2007년 말에는 파생상품 시장 규모가 무려 600조 달러에 이르렀다. 시장이 고도로 세분화되자 ‘합성자산담보부 증권(synthetic CDOs)’, 즉 파생상품의 파생상품으로 구성된 파생상품이 등장함으로써 합성자산담보부증권 부문은 2007년 말 신용 경색이 발생하기 전까지 수백조 달러 규모의 자산담보부증권 시장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옵션은 비단 금융 서비스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옵션에는 기업의 자산이 해당 기업이 보유한 다양한 리스크를 모아놓은 바스켓 옵션과 같다는 의미가 내재돼 있다. 개별 주주는 투자 대상이 갖고 있는 리스크 중 일부에 노출돼 있다. 결국 기업의 대차대조표를 바라보는 한 가지 단순하고 유용한 방법은 바로 기업의 자산을 저조한 성과를 보일 리스크를 흡수하는 완충장치로 바라보는 것이다. 기업의 시장 가치가 하락할 리스크는 주주들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기업의 성과와 무관하게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부채는 그 어떤 완충작용도 해내지 못한다.
 
두 가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선 어떤 기업에든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 적정 부채비율이 있게 마련이다. 완충장치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은(필요 이상으로 자기자본이 투입된 경우) 곧 해당 업체가 자본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과도한’ 자기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을 발행했다면 과거의 수익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자기자본 수준이 지나치게 낮은 편이라면 재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상보다 저조한 ‘운영 현금 흐름’으로 인해 성장의 기회를 놓치거나 미루게 될 수도 있다.
 
두 번째 적정 부채 수준은 기업의 주요 시장, 금융 리스크, 운영 리스크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관련 리스크를 완화시키기 위해 어떤 행동에 나설 경우 적정 부채 수준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관리자들은 자기자본이라는 완충장치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대신 훨씬 저렴하게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식으로 가치를 더할 수 있게 됐다. 로버트 머턴이 2005년 11월 하버드대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논문 ‘당신에게는 생각보다 더 많은 자본이 있다(You Have More Capital than You Think)’에서 설명한 것처럼 다른 기업들에 비해 특정한 리스크 요인을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기업들이 있다. 리스크의 가격을 책정해서 해당 리스크 요인을 다른 기업이나 기관에 팔 수 있다면 기업의 경쟁우위와 관련이 없는 리스크는 아예 없애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 때문에 기업들은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 다른 기업에 파는 것이 더 비용이 많이 드는 리스크를 직접 관리하기 위해 자기자본을 유지하는 형태의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머턴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의 연구로 인해 점점 성장하고 있던 리스크 관리 분야와 무관심 이론에 대한 기반이 다져졌다. 금융 서비스 부문에서 리스크 관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자.
 
금융 서비스 부문의 혁신
리스크 관리 부문에서 나타난 중요한 혁신 중 상당수가 은행업 및 증권업에서 시작됐다. 누구라도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겠지만 그 원인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금융 회사는 사실상 리스크를 중재하는 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최고의 금융 회사들은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리스크를 설명하고, 값을 매기고, 관리하는 능력이 핵심 역량 중 일부가 돼야 한다. 두 번째 은행업 및 증권업이 보유한 데이터의 양이 방대하다 보니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리스크를 측정하려는 시도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마지막으로(어쩌면 가장 중요한 내용일지도 모르지만) 은행 및 증권사들은 보통 부채가 높은 편이며, 금융 기업의 실패가 몰고 올 여파를 우려하는 규제기관으로부터 철저한 감시를 받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좀 더 나은 리스크 관리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됐다. 1974년 독일 은행 헤르슈타트가 파산하면서 해외 결제 시 발생하는 시차로 인해 해외 은행들까지도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면서 규제기관의 감시가 강화됐다. 헤르슈타트가 파산선고를 할 당시 해외 거래 시 발생하는 시차 때문에 독일에서는 외환 거래가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뉴욕에서는 해당 거래가 마무리되지 않은 탓에 엄청난 손실이 발생했다.
 
이후 수십여 년 동안 은행업계에서는 금리, 신용 등을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리스크가 나타났다. 악명 높은 저축대부조합 파산 사태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초 경제가 둔화되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상업 은행 대출자 중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났다. 대형 금융 기관 중 상당수가 파산의 위험에 처했다. 그 중 한 업체는 개인 투자자의 엄청난 투자 덕에 가까스로 파산을 모면했다. 위기에 처한 많은 금융기관 중 뉴잉글랜드 은행은 결국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근본적으로는 부실한 리스크 관리가 비난의 대상이었다. 은행은 대출 포트폴리오에 내재된 신용 리스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부채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며, 대다수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는 손실을 야기할 만한 문제가 많았다. 1980년대 초반에도 대부분의 상업은행들은 리스크 노출가치, 신용리스크 포트폴리오 모델, 리스크조정자본수익률 등 흔히 사용되는 위험 관리 도구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반대로 증권회사 및 투자은행들은 리스크관리 도구를 제법 잘 활용해 왔다. 증권회사와 투자은행들은 주식 및 채권의 거래 방식을 상업은행 거래의 상당 부분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은행 대출도 하나의 상품으로 시장에 내놓고, 증권으로 발전시키고, 거래할 수 있으며, 대출 포트폴리오를 회사의 주식처럼 하나로 묶어 상품화시키며, 금리 리스크를 신용 리스크에서 분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식회사 및 투자은행들은 리스크를 묶어서 거래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고 상업 은행들은 신용 거래를 시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합병 바람이 불어 닥쳤다. 결국 두 조직 사이의 경계가 무너졌으며, 규제 장벽도 낮아졌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모든 종류의 리스크를 거래하는 유동성 높은 시장이 진화를 거듭하면서 금융 부문은 리스크가 집중된 거대한 시장으로 변신했다. 과거와는 달리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자기자본을 마련하는 대신 리스크 거래가 가능해지자 자연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사업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상업은행에서는 금리 리스크 요소를 제거하고, 더 많은 예금을 유치하고, 더 많은 대출을 내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됐다. 이후 상업은행들은 금리 리스크와 함께 신용 리스크까지도 제거할 수 있게 됐고, 그 덕에 성장 역량이 배가됐다. 물론 이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 증권화 시장 및 신용 거래 시장의 유동성 고갈로 인해 대출 자체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지금 당장 예측할 순 없다. 그러나 복잡한 파생상품 시장의 문제가 드러난다 하더라도 금융 시장 혁신을 선도하는 세력이 리스크 재분류 및 거래를 멈출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리스크 거래 증가 및 리스크 관리 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는 시장 및 기관을 살펴보자.


 
담보대출 담보대출 시장의 특성을 살펴보면 어쩌면 리스크 관련 상품이 사업의 범위와 본질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으며, 지나치게 시장에 의존해 리스크를 관리하려고 했을 때 어떤 한계점이 나타나는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은행들은 주로 담보대출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구성하곤 했다. 1980년대 초, 특히 미국 은행들에서 포트폴리오를 증권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즉 담보대출을 모아서 증권으로 나눈 다음 다른 은행이나 연기금, 보험 회사 등 제3의 투자자에게 판매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담보대출 연체 리스크가 대출을 제공한 은행의 장부에서 지워지면 해당 은행은 또 다른 담보대출을 내준 다음(물론 수수료도 받는다) 새로운 대출을 또다시 모아서 판매했다. 관련 사업의 규모가 증가하자 은행업계도 유례없이 높은 수준의 이익을 얻게 됐다.
 
2007년 초 담보대출을 바탕으로 하는 포트폴리오와 담보대출 등급 규제가 지나치게 느슨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서브프라임 연체율이 증가하자 심각한 금융 위기가 몰아닥쳤다. 금융위기 여파는 여전히 세계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연체율이 높아지자 담보대출 증권의 가치가 급락했다. 등급이 낮은 대출의 가치가 떨어지는가 싶더니 뒤이어 등급이 높은 대출의 가치마저 하락했다. 직접 미국의 주택 소유주에게 대출해 준 건 아니지만 몇몇 글로벌 은행은 고평가된 주택저당채권이나 부채담보부증권(신용등급이 낮은 주택저당채권들을 모아 리스크에 따라 재분류해 이를 기초로 발행한 증권)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었다. 증권의 신용 등급이 하락하자 은행의 자기자본이 줄어들었다. 은행은 자산 가치 중 수십억 달러를 상각하고, 엄청난 자본을 쏟아 부으며, 대출 규모를 줄여야만 했다. 이 결과로 발생한 신용 경색은 정책에도 영향을 미쳐 금리인하 압력이 커지는 한편 절실하게 유동성을 필요로 하는 금융 기관을 위해 특수 대출 기관이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크를 쪼개 여러 요소로 나누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은 은행이 시장을 이용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규모가 크고 유동성이 뛰어난 파생상품 시장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파생상품의 근간이 되는 자산의 질에 따라 시장의 성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리스크 거래가 리스크를 제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매신용 금융혁신은 기업 신용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 결과 기업 대출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상업은행들은 비교우위(개별 고객이 모두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는 시장에서의 정보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종류의 리스크만 보유할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수정할 수 있다. 은행은 해당 기업의 재정 문제를 막기 위한 파생상품인 신용파산스와프(credit default swap)를 이용해 리스크를 조정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은행은 인덱스 파생상품을 이용해 신용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싸다고 생각될 때 하나의 자산으로서의 신용에 대한 리스크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또한 은행은 해당 고객이 속해 있는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리스크 노출 정도를 높이지 않고도 특정한 고객에게 더 많은 대출을 해 줄 수 있으며, 신규 대출 없이도 특정한 분야에 대한 리스크 노출 정도를 높일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리스크 거래는 이런 방식으로 자본을 기업 성장을 위해 투입할 수 있게 해 줬으며, 은행들이 더 많은 신용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 줬다.
 
리스크를 구매하는 주요 고객으로는 연금, 헤지펀드, 보험회사, 수익이 주식 및 채권 시장과 직접 연결돼 있지 않은 자산을 통해 다각화를 추구하는 업체 등이었다. 그러나 담보대출 시장의 유동성과 마찬가지로 도매신용시장의 유동성도 장담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증권 시장 및 신용 거래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용 리스크 노출 정도를 추정하는 역량은 신용 리스크 상품의 발달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2007년에 은행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느라 애를 태웠다. 기업 측에서는 개별 리스크를 분리해 거래할 수 있지만 이 같은 거래 방식으로 인해 거래 상대방의 신용 리스크가 발생한다. 따라서 도매신용 리스크 거래 시장을 감시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A라는 기업이 신용 리스크를 제외한 자사의 기타 리스크를 떠안은 B라는 기업에 신용공여를 할 경우 간접적으로나마 기타 리스크의 영향도 받게 된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리스크 거래 시장의 성장으로 인해 투자관리 산업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문 투자자들은 전통적인 형태의 펀드(주로 일반인에게까지 공개된 펀드 상품)를 대상으로 하는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투자 상품을 개발해 다양한 종류의 리스크를 거래하는 새로운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헤지펀드가 그 중 하나다. 헤지펀드는 가파른 성장을 거듭했고 투자자들은 다양한 자산 등급, 투자 기간 등 원하는 조건에 대한 리스크의 노출 정도를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부채담보부증권 및 기타 자산유동화증권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는 은행 시스템으로부터 신용 리스크를 흡수했다.
 
아직 헤지펀드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차입자본을 이용, 금융 시장에서 새로운 리스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헤지펀드가 실제로 리스크를 통제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기타 투자세력의 유동성 충격이나 농간에 노출된 상태인가.’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파산선고, 2006년 단 한 주 만에 천연가스 선물에 투자해 관리 중이던 90억 달러의 자산 중 60억 달러를 날린 상품 헤지펀드 아마란스 어드바이저 사태 이후 이런 질문이 제기됐다. 최근에도 몇몇 헤지펀드의 투자전략이 실패로 돌아갔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경우는 베어스턴스 사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요동치는 20072008년에도 헤지펀드는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사모펀드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 방식을 갖고 있으며, 자본이 풍부한 사모펀드 업체들이 상장 기업을 개인 소유 기업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세계시장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리스크 관리를 얘기할 때 사모펀드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대부분의 사모펀드 업체는 금융 및 지배구조 역량을 강조한다) 사모펀드 업체는 최첨단 리스크 관리 기법을 활용하는 금융조직이기도 하다. 사모펀드 거래는 부채 및 헤지 등의 방식을 기초로 자본 비용 감소를 위해 복잡한 구조화 금융 도구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2007년 말 유동성 하락으로 사모펀드가 얼마나 많은 손실을 겪게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사모펀드도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로 자리잡은 리스크: 골드만삭스 사례
리스크 시장이 진화하면서 기업의 성공은 기업 문화에서 리스크가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한층 명확해졌다. 금융 부문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세계 최고의 투자 은행, 증권, 투자 관리 기업이라 부를 수 있는 골드만삭스만큼 훌륭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현재 골드만삭스는 리스크 관리 사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때 골드만삭스의 대표 분야이던 은행업무 및 컨설팅 부문이 골드만삭스 순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한 반면 거래(trading) 및 자기자본투자(principle investment)는 순수익의 68%를 차지한다.
 
변동성이 매우 높은 거래 수익에 대한 높은 의존도에도 불구하고(뿐만 아니라 골드만삭스의 거래 수익은 경쟁업체의 거래 수익에 비해 변동성이 더욱 높은 편이다) 골드만삭스는 주요 경쟁업체들과 달리 대규모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골드만삭스는 일반적인 기업의 접근방식과는 반대로 리스크를 피하기보다 리스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변동성이 높은 자산에 대한 높은 의존도임에도 큰 손실을 겪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자본 손실 가능성을 감내해가며 수익을 창출한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 옵션 가치가 증가하고, 노련한 리스크 관리 역량의 가치도 높아진다. 골드만삭스는 자사의 관리자들이 리스크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제재에 대한 두려움 없이 리스크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필요한 경우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의사가 있다고 확신한다.
 
2007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시장에서 공격적인 리스크 분산을 시도한 것도 일례가 될 수 있다. 골드만삭스의 능력도 뛰어났지만 행운도 따랐다. 골드만삭스는 리스크를 감지하고 변화를 위해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는데 있어 탁월한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운이 따랐기에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보편적인 사람들의 본능과 두려움에 반대되는 문화를 구축해 나가기는 쉽지 않다. 본 연구진은 골드만삭스의 성공이 크게 네 가지 요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네 가지 요소 중 어떤 것도 골드만삭스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요소는 아니었지만, 골드만은 네 가지 요소 모두를 아주 효율적으로 잘 활용했다.
 
금융 시장 분석가 1980년대 초부터 골드만삭스는 ‘퀀트(금융 시장 분석가)’라 불리는 수리 모델링 분야 전문가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가 채용한 인재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당시 공동 회장 중 한 명인 로버트 루빈이 1984년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스카우트한 피셔 블랙이었다. 블랙은 골드만삭스의 수리 전략 그룹 지휘를 맡았으며, 여러 업무 중 특히 고정수입 옵션의 가치를 산출하기 위한 현대 포트폴리오 관리 및 금리 변동 관리를 담당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론 물리학 박사이자 블랙의 뒤를 이어 수리 전략 그룹의 지휘를 맡게 된 에마뉴엘 더만, 경제학 박사이자 블랙-리터만 글로벌 자산 할당 모델의 공동 개발자인 밥 리터만도 채용했다. 골드만삭스에서 채용한 전문가들은 골드만삭스가 복잡한 거래 및 파생산업 비즈니스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수리적·지적 도움을 주었다.
 
강력한 단속 1994년에 예상치 못한 금리 상승으로 여러 채권 거래업체가 심각한 손실을 겪었다. 시장에서 우수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던 골드만삭스의 수익성이 급격하게 떨어졌을 뿐 아니라 직원들의 사기도 저하됐다. 위기가 닥치자 당시 골드만삭스의 지휘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존 코르진은 전 세계의 시장 및 신용 리스크를 감시하기 위해 사내 전체를 아우르는 리스크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골드만삭스의 리스크 통제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했다.
 
이 위원회는 회사 전체에 특정한 리스크/수익 기준을 일관성 있게 적용하기 위해 매주 회의를 진행했다. 현재 골드만삭스의 리스크위원회에서 매일 작성하는 보고서에는 거시적인 리스크 요인의 변화가 끼치는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표, 1998년 가을에 발생한 신용 스프레드 증가와 같은 다양한 시나리오 아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의 정도를 보여 주는 표 등 회사가 직면한 리스크가 자세히 정리돼 있다. 골드만삭스의 일부 중역들은 리스크 보고서를 살펴보고 당일의 시장 변화만 파악하고 있으면 그날의 손익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골드만삭스는 다른 종류의 리스크도 중요하게 여긴다.
 
비즈니스관행위원회는 골드만삭스의 평판 리스크 및 운영 리스크, 자본책임위원회는 부채 및 손해보험 리스크, 금융위원회에서는 유동성 리스크를 각각 관리하고 있다.
 
파트너십의 유산 골드만삭스가 처음 설립된 1869년부터 기업공개가 이루어진 1999년까지 골드만삭스의 파트너들은 대부분의 자본을 직접 조달했다. 라자르 프레르를 비롯한 일부 개인 투자은행의 파트너들은 매년 수익의 80% 이상을 나눠 가지지만 골드만삭스의 파트너들은 보통 연간 수익의 80% 이상을 회사 자본으로 남겨뒀다가 은퇴할 때에만 상당한 금액의 자본을 회수하곤 했다. 골드만삭스의 파트너들은 개인 자본을 회사에 직접 투자한 만큼 회사 자본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골드만삭스의 고위 중역들은 이 전통을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회사 자본 상당 부분을 직원들이 소유하고 있다 보니 파트너십 문화가 더욱 강해졌다.
 
비즈니스 원칙 마지막으로, 골드만삭스에서 중시하는 가치가 리스크 관리 교훈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골드만삭스는 회사 명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골드만삭스 신입 직원들은 개인이 회사에 성공을 안겨줄 순 없지만 회사 명성에 누를 끼칠 수 있다는 교육을 받는다. 골드만삭스는 신입 직원들에게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리스크, 법률 등 각종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로부터 독립적인 의견을 구할 것을 권한다. 골드만삭스에서 해고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돈을 잃는 것이 아니라 회사 명성을 위태롭게 하는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에너지 부문 혁명
금융 리스크를 거래하는 시장이 훌륭한 성과를 나타내자 다른 업계에서도 유사한 메커니즘을 도입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몹시 불안정한 현물 시장을 포함한 상품 거래 시장은 리스크 거래 메커니즘을 필요로 했다. 에너지 부문에서도 리스크 거래에 대한 잠재 욕구가 큰 편이었다. 가격 위험을 낮춰 채권 금융을 활성화하고 탐사 및 시추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면 정유 업체 및 가스 업체는 엄청난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정유 업체 및 기타 에너지 기업의 경우 원유뿐 아니라 최종 상품의 경우에도 마진 변동성이 높은 편이다. 전기는 생산이 되자마자 바로 판매해야 하는 상품이다 보니 전력 생산량이 적을 때는 가격이 높아지고, 많을 때는 가격이 떨어진다. 이런 특성을 지닌 전력 시장의 규제가 사라지자 발전 업체들은 그 어떤 시장에서보다 커다란 변동성에 직면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발전 업체들은 업계 전체의 기복과 기술 발달을 겪게 될 만큼 긴 시간인 3050년이라는 기간에 엄청난 금액을 사업에 쏟아 붓게 된다.(정유시설, 석유 굴착용 플랫폼, 발전소 하나를 짓는 데만 수십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장외 파생상품 시장과 함께 뉴욕상품거래소, 런던선물시장 등 에너지 선물 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1990년대가 되자 BP를 포함한 대형 석유 업체, 듀크에너지·셈프라·RWE를 포함한 전력업체, 디너지·엘파소·윌리엄스 등 천연가스 업체들은 많은 돈을 투자해 엄청난 규모의 상품 거래 및 리스크 중개 사업에 뛰어들었다.
 
물론 가장 두각을 나타낸 업체는 1000명이 넘는 에너지 거래 담당자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연간 20억 달러가 넘는 거래 이윤을 기록한 엔론이었다. 엔론도 석유 및 가스 생산업체들을 대상으로 리스크 관리 및 구조화 금융 서비스를 제공했다. 파산 직전에 엔론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매일 40억 달러를 초과하는 거래가 진행되었다.
 
엔론의 파산 이후 에너지 상품 시장은 일시적인 자금 부족 현상을 겪었다. 디너지·엘파소·릴라이언트·마이런트 등 상품 거래 활동에 참여한 여러 기업이 엄청난 손실을 겪었고, 몇몇 기업은 가까스로 파산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엔론 사태로 인한 신용에 대한 우려와 유동성 고갈로 거래 이익은 급락했다. 상품 거래 서비스 및 파생상품과 거리를 두기를 원한 많은 기업이 객장을 닫았다.
 
그러나 자금을 조달하고 변동성을 줄이려는 근본적인 욕구가 있는 만큼 에너지 상품 시장은 곧 다시 활기를 띠었다. 투자은행(나중에는 헤지펀드)들은 엔론을 비롯한 몇몇 기업에 몸담고 있던 인재를 채용하는 등 재빨리 상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 2년 동안 업계 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2개 투자은행은 에너지, 상품 거래 및 리스크 관리를 통해 30억 달러가 넘는 이윤을 벌어들였다. 메릴린치, UBS, 스코틀랜드 왕립 은행, 리먼은 각각 상품 거래 부서를 사들였다. 2007년 말에 상품 거래 시장의 유동성은 2001년 수준에 근접했다.
 
그러나 리스크 거래 시장의 유동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금액의 위험 자본을 필요로 하는 소수의 에너지 기업들만이 전략적인 리스크 관리 방법을 받아들였다. 물론 상품 거래 시장에서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들과 파생상품의 복잡성도 전략적인 리스크 관리 방법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는 원인이 됐다. 그렇지만 에너지 업계 내 사실상 모든 부문에서 전례 없이 수익이 높아진 것이 더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19992005년에 스탠더드&푸어스(S&P)가 투자하고 있는 에너지 및 공공 부문 기업 64개의 연간 운영 현금 흐름이 950억 달러에서 2450억 달러로 증가했다.
 
전략적 리스크 관리를 받아들인 기업들은 모두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신생 업체 플로레스&럭스(이후 오션 에너지로 바뀌었다가 현재 데본 에너지와 합병함)는 용적 측정 생산 지불 방식, 즉 석유와 천연가스라는 기초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얻는 금융기법 및 기타 구조화 금융 방식을 활용해 우수한 성과를 내는 독립 생산업체로 거듭났다. 세사픽 에너지는 천연가스 가격의 리스크를 분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미국 가스 탐사 및 생산 부문의 선두 업체로 성장했다. 발레로, 토스코, 프렘코와 같은 정유 업체들은 인수를 중심으로 하는 성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헤지 전략을 사용해 오고 있다. 캐나다의 유사(油砂) 부문 선두업체인 선코는 업계의 성장세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자 자사의 자본 중심 프로그램을 지속하기 위해 헤지를 활용했다. 아나다르코는 브리지론과 헤지를 통해 부채를 끌어들여 전체 비용이 시가총액을 능가하는 두 건의 인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에서 살펴본 것처럼 리스크를 양도하면 어마어마한 전략적 이점이 생겨난다. 리스크를 양도하면 비교우위가 있는 인적 자산 및 금융 자본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줄 수 있는 리스크를 관리하느라 자기자본을 낭비하는 경쟁업체에 비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리스크 관리를 위한 다양한 도구와 기법이 등장했다. 이들 도구와 기법은 금융 서비스 및 에너지 부문에 일대 혁신을 몰고 왔으며, 특정한 종류의 리스크를 거래하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만들어내는 한편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이윤을 창출해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금액의 자기자본을 속박하던 제약이 사라지면서 관련 업계들이 다른 업계에 비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게 되었다. 미국 경제 규모가 1조 6000억 달러에서 14조 달러로 급증한 지난 30여 년 동안 금융업계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는 4%에서 8%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금융 및 에너지 부문에서 나타난 위기 사례가 보여 주듯이 리스크 관리 방법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고 결정하는 것은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리스크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겠다는 결정이 기업을 위기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에 소홀하면 그렇지 않은 때보다 성장 속도가 더뎌질 수도 있다. 리스크 관리와 관련한 시장 및 상품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해서 리스크 관리를 계속 피하기만 한다면 이미 저지른 실수만 더욱 악화된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정상적’인 기업에서 놀라울 만큼 강력한 리스크 관리 방법을 언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배워야 할 때다. 이 내용은 다음 아티클인 ‘Owning the Right Risks’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번역 김현정 jamkurogi@hotmail.com
 
케빈 뷸러(kevin_buehler@mckinsey.com)는 맥킨지에서 이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뉴욕에서 활동 중이다. 앤드루 프리먼(andrew_ freeman@mckinsey.com)은 런던 맥킨지 사무소에서 리스크 분석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론 흄(ron_hulme@ mckinsey.com)은 맥킨지 휴스턴 사무소에서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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