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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壯에게 배우는 경영

혁신 리더가 ‘행복한 성장 체험’ 이끈다

안병민 | 286호 (2019년 12월 Issue 1)
편집자주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가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경영에 접목해 풀어보는 노장(老壯)경영 연재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노자와 장자의 통찰에 기반해 비즈니스를 새롭게 해석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천연가스 유통업으로 시작해 초고속 통신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사업 시작 15년 만에 연 매출 1000억 달러대 기업으로 급성장한 회사. 미국 경제 주간지 포천으로부터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혔던 기업. 바로 미국 에너지 기업 엔론 이야기입니다. 이 회사의 결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재계 서열 5위까지 올랐던 회사지만 역대 최악의 회계 비리 사건으로 2010년 파산했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엔론처럼 모두의 선망 대상이었던 회사가 급전직하한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폴크스바겐을 꼽을 수 있죠. 생산과 판매에서 GM과 도요타를 꺾고 세계 1위에 올라섰던 자동차 회사지만 한순간에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 때문입니다.

엔론과 폴크스바겐의 비극을 관통하는 요인은 ‘카리스마 리더의 탐욕’입니다. 제왕적 최고경영자(CEO)가 설정한 무리한 목표에 토를 달 수 없었던 직원들은 생존을 위해 윤리와 비윤리의 경계를 걷어차 버립니다.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입니다. ‘비즈니스 목적’의 상실도 커다란 배경입니다. 우리가 왜 이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돈과 성과만을 향해 내달립니다. 엔론과 폴크스바겐의 외형은 그렇게 키워낸 허상이자 허업이었습니다.



제로섬 경쟁의 함정

불상현(不尙賢) 사민부쟁(使民不爭) 불귀난득지화(不貴難得之貨) 사민부위도(使民不爲盜) 불견가욕(不見可欲) 사민심불란(使民心不亂).

『도덕경』 3장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똑똑함을 귀히 여기지 않으면 사람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사람들은 남의 것을 훔치지 않으며, 욕심날 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제로섬(Zero-Sum)의 경쟁을 조장하지 말라는 노자의 통찰이죠.

스페인 IE경영대학원의 크리티 쟌 교수는 직원 간 비교평가는 부도덕성을 자극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상대평가 방식은 직원 간 경쟁만 부추기고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게 만들기 때문에 거짓말과 성과 위조 등의 유혹에 빠지게 마련이라는 것이죠. 엔론과 폴크스바겐 사례가 고스란히 겹쳐 보이는 대목입니다.

전가의 보도처럼 위기 때마다 꺼내 드는 ‘인센티브’ 카드도 그렇습니다. 많은 학자의 연구나 실험 결과는 인센티브제도에 부정적입니다.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마이너스라는 겁니다. 인센티브에 대한 민감도가 금세 떨어져서입니다. 10만 원만 걸어도 활기가 넘치던 직원들의 표정이 어느샌가 시큰둥합니다. 그러니 다음번엔 20만 원을 걸어야 합니다. 직원들의 기준치는 끝없이 높아만 갑니다. 인센티브의 내성입니다.

인센티브는 직원의 자율성 파괴로도 이어집니다. 그저 돈만 보고 움직이는 겁니다. 꼭두각시 인형이 따로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창의성도 질식시킵니다. 인센티브를 받아야 하는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니 케케묵은 과거의 경험만 답습합니다. 혁신의 실종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일의 목적’ 자체가 사라져버린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고객 행복을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인센티브를 받으려 일을 하는 겁니다. 만약 이 둘 간의 충돌이 발생한다면? 승리는 당연히 후자의 것입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고객의 행복 따위야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겁니다. 인센티브의 역설입니다.



혁신 리더의 역할

성인지치(聖人之治) 허기심(虛其心) 실기복(實其腹) 약기지(弱其志) 강기골(强其骨).

‘성인의 정치는 사람들의 헛된 욕심을 비우고 근원적인 만족을 이뤄주며, 허망한 뜻을 약화시키고 본질적 뼈대를 강하게 만든다’는 『도덕경』의 또 다른 가르침입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허상과 허업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나 뿌리 차원에서의 성장과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게 성인의 정치라는 가르침입니다.

경영을 타사와의 전쟁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이기려고만 드는 경영 리더가 여기저기 넘쳐납니다. 직원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휘둘러보지만 제대로 된 성과는 요원합니다. 공(功)은 이루는 게 아니라 이뤄지게 하는 것이라는 노자의 말처럼 당근과 채찍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직원들의 업무를 ‘비윤리적 생존 경쟁’이 아니라 ‘행복한 성장 체험’으로 바꾸어주는 것. 이 시대 혁신 리더의 진짜 역할입니다.


필자소개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facebook.com/minoppa
필자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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