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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朝鮮:왕위 승계 프로세스

세자를 체계적으로 교육한 '시강원', 리더의 도덕성을 최우선 가치로

김준태 | 241호 (2018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안정적인 후계 구도는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다. 갑작스러운 리더십의 공백은 언제든지 구성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대내외적인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가 세자 책봉에 공을 들인 이유도 리더십의 공백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조선은 적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면서도 시강원을 통해 세자 교육에 힘썼고, 대리청정 같은 기제를 통해 세자의 능력을 평가하고 검증했다. 조선이 중국이나 우리나라 다른 어떤 왕조보다 왕위 승계가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왕의 자질 논란이 적었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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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으니 세자(世子)를 세워 인심을 진정시켜야 합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 조정은 황급히 세자 책봉을 논의했다. 신하들은 “오늘 기필코 결정하셔야 합니다”라며 임금을 채근했는데, 주저하던 선조는 결국 광해군을 세자로 삼는다.1  왜군이 파죽지세로 수도 한양을 향해 몰려오고 있던 그때, 왜 세자를 세우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졌던 것일까?

세자는 왕의 후계자로서 ‘저부(儲副)’ ‘저이(儲貳)’ ‘저군(儲君)’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만약을 대비해 마련해 둔, 임금에 버금가는 자리라는 뜻이다. 세자의 궁극적인 책무는 기업(基業)을 계승하여 미래에도 왕조가 번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지만, 우선은 리더십 공백을 방지하는데 그 역할이 있다. 왕의 유고가 발생하더라도 세자가 차질 없이 국정을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 왕조가 혼란 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신뢰를 주기 위해서다. 더욱이 당시는 전쟁으로 인해 왕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고구려 고국원왕이나 백제 성왕처럼 전장에서 전사할 수도 있고, 명나라 영종처럼 적의 포로로 잡힐 수도 있었다. 선조가 25년이나 미뤄뒀던 세자를 책봉한 것은 세자를 통해 위험을 분산함으로써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백성들의 불안도 잠재우고 말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케이스를 예로 들긴 했지만 리더의 공백은 언제 닥칠지 모른다. 멀쩡하다가도 하룻밤 사이에 사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자는 평시에도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게다가 즉각적인 승계가 요구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차질 없이 대응할 수 있다.

적장자 승계의 장단점

그렇다면 세자는 누가 되는가? 다시 말해 왕위를 계승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원래 유교의 이념대로라면 임금은 나라 안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맡아야 한다.2  후계자를 결정하는 기준도 마찬가지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손꼽히는 요 임금이 아들 단주가 아닌 순 임금에게 보위를 물려준 것도 그래서였다. 요 임금은 “천하가 손해를 보게 하면서 한 사람만 이롭게 할 수는 없다”고 했는데, 순이 임금이 되면 단주 한 사람만 손해를 보고 천하가 모두 이롭지만 단주가 임금이 되면 단주 한 사람만 이롭고 천하가 모두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3

하지만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세습군주제가 정착되면서 이 원칙은 더 이상 지켜지지 않았다. 장남이 가문의 대를 잇는다는 종법(宗法)과 정치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인 목적이 결합되면서 적장자 승계 기준이 세워졌다. 정실 왕비의 소생 중 맏이가 세자가 되고, 적자가 없거나 자질이 현저하게 부족한 경우 등 부득이할 때만 ‘입장(立長, 서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을 세움)’이나 ‘입현(立賢, 가장 현명한 사람을 세움)’이 적용됐다. 중종 때 문신 김극핍의 설명을 보자. “무릇 적자를 세우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고 나이 많은 사람이나 어진 이를 세우는 것은 권도(權道)입니다. 민심과 물정이 귀속하는 것을 살펴야 합니다.”4  민심과 형편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적자가 세자가 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적장자 승계는 후계 싸움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안정적인 왕위 계승이 이루어지도록 하며, 리더십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왕이 되기에 부적합한 인물이 단지 적장자라는 이유로 세자가 된다면 공동체에 큰 해악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다. 무조건 적장자를 세자로 세우게 되면 후보자들 간의 건전한 경쟁을 통해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 경쟁에 따른 긴장감이 없으니 적장자 역시 자기계발에 소홀해질 것이다. 임금의 입장에서도 비교를 통해 보다 나은 후계자를 고를 수가 없게 된다.

이와 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조선에서는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세자 교육을 실시했다. 세자로 책봉됐을 당시에는 비록 최고의 후계자가 아니더라도, 왕이 됐을 때에는 최고의 후계자가 돼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자 교육을 오랜 기간 정석대로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연산군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적장자로 세자가 된 사람이라도 끝내 보위를 이을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교체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필자가 DBR 217호의 ‘리더의 공백은 예고 없이 찾아올 수도… 승계 프로젝트 준비하라’에서 다룬 태종처럼 말이다. 태종은 적장자인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았다. 영조의 사례도 유사한데 영조는 유일한 아들이었던 사도세자를 죽이고 손자인 정조에게 왕위를 넘겼다. 각기 정치적 상황과 교체의 이유는 달랐지만 보다 나은 자질과 능력을 갖춘 후계자를 선택하겠다는 의지에서였다.

물론 태종과 영조의 방식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조선을 통틀어 자신이 세운 세자를 스스로 교체한 것은 오로지 이 두 임금뿐이었다. 다만 적장자인 세자라 하더라도 잘못을 저지르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폐위될 수도 있다는 전례가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세자는 어떻게 세자다워지는가

설령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세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기란 힘들다. 지식과 안목, 경험이 부족하고 국정 전반에 대한 파악도 돼 있지 않다. 제대로 파악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주목할 것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이다. 세자에 대한 유교 경서 교육과 덕성 증진을 담당했던 시강원은 영의정 등 2품 이상의 고위급 대신이 겸임하는 직책과 정3품∼정7품의 전임(專任) 문관으로 구성된다.5  이들은 일차적으로 ‘서연(書筵)’을 통해 세자의 공부를 돕는 것이 임무지만 세자에게 국정을 알려주고 세자의 인재풀 역할을 하는 목적도 있다. 요즘에야 CEO 후보자가 재무, 마케팅/영업, R&D, 생산 등 핵심 분야의 실무를 골고루 경험하고 대통령과 같은 국가지도자도 정당, 국회, 행정부 경험을 쌓고 올라가지만 왕조의 세자는 직접 직무를 익힐 기회가 없다. 선임자인 임금이 집무를 볼 때 세자를 배석시켜 놓고 국정을 배울 수 있게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오랜 정치·행정 경험을 가진 정승과 판서가 세자의 스승이 돼 국가의 주요 현안을 가르쳐주고, 세자가 전체를 조망하며 균형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것이다. 또 시강원에는 조야에서 두루 인정받는 학자와 촉망받는 젊은 문관들이 배치된다. 이들이 세자와 함께 학문을 도야하고 성장하면서 미래의 정승이 되고, 판서가 되는 것이다. 세자가 시강원을 연결고리로 조정의 주요 포스트를 맡고 있는 대신들을 파악하고 인재를 찾아냄으로써 임금이 됐을 때 신속히 조직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도 있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부분의 세자는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궁궐 안에서 자라고 생활한다. 가장 중요한 정책현장, 즉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임금이 된 후 각 지역에 어사를 파견하고 능행과 순문(巡問)6 을 통해 백성과의 스킨십을 시도하더라도 일회성에 그치기 쉽다. 이어서 소개하는 세조의 조치는 그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1464년(세조 10년), 세조는 궁궐 밖에 집을 지어 세자를 거주하게 하면서 자유롭게 민생을 살피고 사람들을 만나도록 했다.7  세조는 “깊은 궁궐 가운데에 나서 부인(婦人)의 손에 자란다는 말이 있는데 세자를 교양함에 있어서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세자가 이미 성장했고 내가 가르칠 만한 것도 다하였으니 대군청 북쪽에 한 채의 집을 지어 세자로 하여금 여기에 나가 있게 하고자 한다. 주공이 말하기를 ‘먼저 곡식 농사의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세자로 하여금 백성의 삶을 알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책상 위에서 이론으로만 배우는 업무는 한계가 있다. 임금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임금이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현장을 직접 찾아 배우게 한 것이다.

이 밖에 세자가 국정을 맡아 보는 ‘대리청정(代理聽政)’도 중요한 기제였다. 본래 ‘대리청정’은 임금이 노쇠하거나 병으로 인해 정무를 볼 수 없을 때 도입되는 임시체제다. 외교·군사 등 국가의 중대사를 제외한 일상 업무를 세자가 대신 담당한다. 왕들은 이 제도를 세자의 능력을 점검하고 왕의 역할을 훈련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순조가 아들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지시하며 내린 비망기를 보자.

“세자는 총명하고 영리하며 나이도 장성했으니 열성조(列聖朝)께서 대리청정한 일을 본받고자 한다. 이는 노고를 분담하여 과인이 몸을 조섭할 수 있도록 돕고, 세자에게는 치도(治道)를 통달하게 하려는 뜻이니 종사와 생민의 복이 될 것이다.”8  자신의 몸이 아파서 업무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지만 강조점은 세자가 치도를 익히도록 하는 데 있었다.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직접 바람막이가 돼주면서 세자가 임금으로서 일들을 직접 처리해보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장차 세자가 임금이 돼 나라를 다스릴 왕조의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묘사직과 백성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순조의 판단이다. 세자로서도 ‘대리청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야 차기 왕으로서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부단히 정진하는 동인(動因)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상으로 세자를 세자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 살펴봤는데, 가장 중요한 전제가 남아있다. 세자에게 요구된 제일의 가치는 도덕성이다. 학문과 수양을 통해 도덕적 인격체를 완성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얼핏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임금이 온갖 사무를 처리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주체를 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공동체를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도덕적 가치 기준이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더욱이 임금은 만인의 모범으로서 구성원을 격려하고 계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 때문에 도덕성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번스(James MacGregor Burns)가 ‘변혁적 리더십’ 이론에서 조직혁신과 팔로어의 자발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리더의 도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대 경영학에서도 중요한 주제라는 점에서 참고할 부분이다.

조선에서도 경쟁이나 능력 검증 작업 없이 출신성분에 따라 책봉된 세자가 왕위 계승자로서의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다. 왕이라는 포지션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고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전문 육성기관인 ‘시강원’을 설치해 세자를 훈련했고, 육성된 결과를 피드백하고 코칭함으로써 세자의 능력을 함양시켰다. 덕분에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 수준과 후보자의 자질 간 격차는 신속히 좁혀질 수 있었다. 후계자 없이 왕이 승하하고 정변이 일어나는 등 일부 예외적인 사례가 있지만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다른 어떤 왕조에 비해서도 조선이 안정적인 왕위 승계가 이루어졌고 왕의 자질논란이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왕조시대의 왕위 승계 프로세스를 현대사회에 적용할 필요는 없겠지만 후보자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다각도의 육성책을 마련했다는 점,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하여 승계 계획을 상시 운용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김준태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연구원 akademie@skku.edu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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