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만성피로증후군, 조직을 벼랑 끝으로 몰 수 있어

240호 (2018년 1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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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t a Glance
업무에 치여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리더들은 자신의 피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다. 극한 경우, 충분한 휴식을 취해도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치닫는다. 정신의학계에선 이를 ‘만성피로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이라고 한다. 이렇게 리더가 스스로의 피로감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면 개인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회사에 막대한 경영적 손실을 입힐 수 있다. 2011년 10월 유로존 위기를 수습하던 안토니오 호르타-오소리오(Antonio Horta-Osorio) 영국 로이드은행그룹 최고경영자(CEO)가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자 로이드 주가는 4.5%나 하락했다. 그만큼 리더가 자신의 피로도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또한 리더의 피로는 조직 전체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임직원들의 적당한 휴식을 장려하는 회사 내 분위기 조성과 관련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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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로이드은행그룹 최고경영자(CEO) 안토니오 호르타-오소리오(Antonio Horta-Osorio)는 2011년 9월 유로존(Euro Zone) 위기에 대응하던 상황에서 업무량이 너무 많아 몸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그의 피로감은 점차 심해져 급기야 같은 해 10월27일부터는 5일 연속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그는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CEO의 갑작스러운 병가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고, 로이드 주가는 4.5%나 하락했다. 그는 다음 해 1월 복귀했지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많다. 제프 킨들러(화이자제약), 팀 마틴(JD Wetherspoon 설립자) 등 많은 경영자가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사직하거나 병가를 냈다. 로이드은행그룹 사례에서 보듯이 이들의 과로는 그 개인의 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에 막대한 경영적인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 과도하게 쌓인 피로감이 결국 회사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CEO들이 꼭 적절한 휴식을 취해야 함을 알려주는 사례다.

국내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많은 임원과 중간관리자들이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일상이다. 임원들은 오너가 출근하는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은 술자리까지 피곤한 하루를 보낸다. 그런 임원들의 모습을 보며 일반 직원들은 “승진해서 저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승진하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정작 많은 임원은 자신이 그러한 상태에 처해 있음을 깨닫지도 못한다. 실제로 치료를 받기 위해 필자를 찾아온 CEO나 대기업 임원들 중에도 만성피로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을 그저 바쁜 직장인의 피로쯤으로 치부하고 넘겼다가 더 큰 후폭풍을 겪게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만성피로증후군은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피로나 소진이 며칠의 휴식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고 만성적으로 쌓여 개인의 일상생활과 직업적 기능에 현저한 영향을 끼친 경우다. 즉 장기간 지속되는 피로와 여러 증상으로 인해서 개인의 일상 활동과 삶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의학적 상태다.

가장 널리 쓰이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CDC)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만성피로증후군의 피로는 단순히 피곤한 것과는 다르게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휴식이나 수면으로 회복이 안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피로의 특정한 원인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며칠 동안 연말 결산을 해야 해서 야근을 한 결과,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만성피로증후군의 피로는 이와 달리 특별히 어려운 활동의 결과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연속 야근으로 인한 보편적인 피곤은 충분한 휴식 또는 휴가로 쉽게 풀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반면 만성피로증후군의 피로는 잠을 푹 자고 잘 쉬는 것만으로 회복이 되지 않는다. 사실 이 증후군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잠 자체도 쉽게 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유지도 안 된다. 더불어 여러 신체 증상들이 동반될 수 있는데 근육통, 관절통, 두통, 겨드랑이 등의 임파절 압통 등의 통증을 겪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설사 같은 과민성대장증후군의 증상을 느끼기도 하고 마치 감기 걸린 사람처럼 오한이 오기도 한다. 또한 주변 자극에 예민해지면서 냄새나 소리, 음식물, 화학품 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만성피로증후군은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서 커다란 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만성피로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노동생산성이 정상적인 상태 대비 약 54%가 줄어든다.1  미국에선 이로 인한 생산성 감소가 1년에 91억 달러에 이른다고 봤다.

감이 잘 안 오는가? 이는 모든 감염 질환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100억 달러)에 필적하는 수준이고, 신경계 질환의 생산성 저하(64억 달러)보다 압도적으로 더 크다.

더 큰 문제는 만성적이고 극심한 피로가 개인의 생산성 저하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고, 개인과 집단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람의 몸과 마음의 극심한 피로는 당연히 주변 사람들로 퍼져 나간다. 개인은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해서 영향을 주고, 역시 같은 과정을 통해 상대도 감정을 전하고 영향을 끼친다. 피로도 마찬가지다. 한 개인이 피로해지면 얼굴 표정, 말투, 자세가 변하게 되고 이는 앞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된다. 인간은 변연계를 통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람들은 서로 간에 감정을 전달한다.2  그 사람의 피로가 일시적이지 않고 만성적이라면 그가 속한 집단에 파급되는 부정적인 영향 또한 만성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리더가 만성적인 피로감에 빠져 있다면 이는 더 심각하다. 왜냐하면 정신의학적으로 리더는 집단 구성원들이 불안을 느낄 때 그들이 절망하지 않고 극복하도록 그들의 불안을 감당하고 수용해주는(holding) 역할을 해야 하는데 피로한 리더는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리더의 피로는 부하직원들에게 퍼져 나가 조직 자체가 불안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리더의 만성적 피로에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리더는 자기 자신의 만성적인 피로가 조직에 전염되지 않도록 스스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조직의 피로도도 잘 체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리더 자신과 조직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관찰자아(observing ego)’3  능력을 키워야 한다. 요즘 책이나 방송에서 많이 이야기되는 메타인지와 비슷한 개념인데 ‘관찰자아’는 정신의학적 용어로는 자기 성찰 능력을 중재하는 의식적인 정신 기능을 말한다.4

앞서 예를 들었던 영국 로이드은행의 CEO 안토니오 호르타-오소리오의 이야기를 다시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그는 유로존 위기 속에 있는 자신의 은행을 생존시켜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떠맡았다. 적절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관찰자아가 제 역할을 하지만 격심한 위기 상황에선 관찰자아의 기능이 떨어진다. 자신의 상태를 되돌아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그는 이미 9월부터 격무에 따른 피로감을 느꼈지만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한 발 떨어져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아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직원들은 리더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의 피로는 조직 속으로 전염돼 조직과 조직원들의 피로감이 늘어나고, 이는 업무 처리의 비효율로 연결됐을 것이다. 그는 현 상황을 직시하지 못했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생각해내지도 못했다. 대신 과도한 업무로 대처하는 악순환에 빠졌을 것이다. 10월이 되자 그는 수면장애와 극도의 피로로 입원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이로 인해서 그 자신과 회사가 입은 경제적 손실은 막대했다.

그렇다면 리더는 나와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찰자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고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일단, 휴식을 미루거나 아예 휴식 없이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면 적신호가 울리고 있다. 휴식은 내 마음속 관찰자아가 작동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준다. 쉼이 부족하면 관찰자아가 마비되고 현재 상황에 매몰돼 버린다. 만약 리더 자신이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밤과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 잘 버티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 그의 관찰자아가 점차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는 경고임을 인식해야 한다.

더욱이 리더가 자신의 일터와 집을 혼돈한다면 이 역시도 관찰자아가 위기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바쁜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가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그 개인의 관찰자아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리더 자신의 상호작용이 조직 안에서만 이뤄지면 결국 자신의 상황과 생각에 매몰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관계를 가지는 것은 리더의 관찰자아가 나와 가족, 더 나아가 세상을 구분할 수 있는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결국 리더 개인으로서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업에서의 지원과 인식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충분한 휴식과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보다 높은 성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이미 구글과 페이스북, 유니레버 등 많은 해외 선도 기업에서 증명되고 확산된 지 오래다. 넷플릭스나 버진그룹 같은 해외 기업들은 무제한 휴가제도를 도입하고 직원들이 언제든지, 원하는 기간만큼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들이 내는 효율이 휴가를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일 것
이다.

최근 국내 대표 대기업들이 앞다퉈 대규모의 힐링 및 명상센터, 정신의학과 상담, 코칭 프로그램들을 도입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삼성그룹은 지난 5월 경북 영덕에 1300억 원을 들여 임직원들의 휴식을 위한 ‘영덕 연수원’을 열었다. 회복탄력성 등 전문적 진단프로그램과 명상을 도입하고 상담 전문 인력을 배치했다. LG디스플레이도 지난 4월 경북 문경에 ‘LG디스플레이 힐링센터’를 개관하고 명상, 상담, 소통 프로그램 등을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기업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던 과거의 방식을 벗어나 리더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성찰의 기회를 - 굳이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제도적,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이용석 이머징 파트너 yslee@emerging.co.kr

이용석 이머징 파트너는 정신과 전문의로 조직병리 분석 및 임상 치료 전문가다. 아주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 타비스톡센터 정신분석학적 연구 석사(Master of Arts in Psychoanalytic studies at the Tavistock & Portman NHS Foundation Trust in London)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분석치료학회 정회원이자 학술이사, 학회지 편집위원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49호 꼰대, 현자가 되다 2018년 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