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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우 GE디지털 코리아 대표 인터뷰

스마트공장의 지향점은 ‘경쟁력 강화’ CEO의 도전적 리더십에 성패 달려

이방실 | 227호 (2017년 6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GE는 ‘디지털 산업 기업(digital industrial company)’으로의 변신을 위해 전사적으로 디지털 변혁(digital transformation)을 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항공, 전력 등 각 사업 부문별로 뚜렷한 사일로(silos)가 존재해 서로 단절돼 있던 각각의 비즈니스를 ‘디지털’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GE디지털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항공, 전력, 오일&가스 등 GE 각 사업부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혁신 활동은 해당 사업부 대표가 아닌 GE디지털 대표, 즉 GE 전체 CDO(Chief Digital Officer·최고디지털책임자)의 의사결정이 언제나 우선시된다. CDO 체제를 도입하며 기존 IT 조직도 비용발생부서(cost center)에서 수익실행부서(profit center)로 근본 역할을 바꿔나가고 있다. 이제 GE에는 더 이상 CIO(Chief Information Officer·최고정보책임자)란 직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디지털 테크놀로지 리더(Digital Technology Leader)를 중심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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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엔진과 발전기 터빈은 전 세계적으로 3∼4개 업체가 각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엔진은 GE, 롤스로이스(Rolls-Royce), 프랫앤휘트니(Pratt & Whitney)가, 터빈은 지멘스, GE, 베스타스(Vestas), 에너콘(Enercon) 등이 각각 시장을 틀어쥐고 있다. 기술집약적, 자본집약적 특성이 강한데다 둘 다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산업이기 때문에 신규 업체의 시장 진입이 어렵다. 하나도 어려운 걸 둘 다 만들기는 더더욱 힘들 터. 그런데 GE는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내는” 업체다. 올해로 설립 139년을 맞는 GE가 전통적인 제조기업의 대명사로 오랫동안 회자돼온 이유다.

요즘 GE는 하드웨어 기반의 제조업이 아닌 소프트웨어 중심의 디지털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것도 그 어떤 기업보다도 격렬하게. 6년 전 GE는 실리콘밸리 북부 샌 라몬(San Ramon)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소프트웨어 개발 단지를 만들었다. 그 후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을 엄청난 속도로 흡수해 나갔다. 2011년 말 불과 30명 정도에 그쳤던 GE글로벌소트프웨어센터(GE Global Software Center)는 2년 만에 750명(2013년 말)이 일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현재 GE 내 소프트웨어 개발자 수는 총 1만5000여 명에 달한다.

GE는 오는 2020년까지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겠다는 원대한 비전을 밝힌 바 있다.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2015년 9월 GE디지털을 만들었다. GE디지털은 GE 안에서도 가장 GE스럽지 않은, 매우 독특한 조직이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같은 조직 문화도 그렇지만 물리적인 ‘제품’이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 분석과 통찰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스마트공장 구현을 위해 개발한 클라우드 기반의 플랫폼 서비스(PaaS·Platform as a Service) ‘프레딕스(Predix)’가 대표적 예다. 프레딕스는 GE항공, GE파워 등에서 자체적으로도 쓰이고 있지만 외부 기업 고객들 대상의 클라우드 서비스 형태로도 제공되고 있다. GE는 오는 2020년까지 프레딕스 관련 매출액만으로 150억 달러를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조원우 GE디지털 코리아 대표를 DBR이 인터뷰했다.



GE에서 GE디지털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달라.

IT 시설투자에 집행하는 예산 규모로 따질 때 GE는 지난 10년간 ‘글로벌 톱 5’에 꼽힐 정도로, 소위 IBM 같은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였다. GE디지털이 출범하기 전까지 GE에선 GE항공, 파워, 헬스케어, 오일&가스 등 각 사업 부문별로 독립된 IT 조직을 두고 사업 특성에 따라 다양한 IT 및 시스템들을 적용해 왔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실제로 각 사업에 적용되는 IT와 소프트웨어 중 40∼60%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이는 엄청난 비효율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때부터 기업 내부적으로 디지털화가 필요하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됐고, 각 사업부서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IT 플랫폼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지난 2011년 GE디지털의 모태라 할 수 있는 GE글로벌소프트웨어센터를 캘리포니아 샌라몬에 만들게 된 계기다.

당시 글로벌소프트웨어센터에선 항공, 운송, 헬스케어 등 GE 내 각 사업의 운영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주력했다. 즉, 1차적으로 GE라는 기업 ‘내부’에 존재하는 비효율을 제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GE가 주창하는 ‘디지털 변혁(digital transformation)’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비단 GE뿐 아니라 산업계 전체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고 그 결과 GE디지털이 탄생했다.

GE디지털은 ▲GE 내 기존 IT 조직과 ▲공장자동화 사업을 추진해 왔던 GE인텔리전트 플랫폼(GE Intelligent Platforms)에 ▲GE 글로벌 소프트웨어센터 및 ▲지난 2014년 GE가 인수한 캐나다 사이버 보안 업체 월드테크(Wurldtech) 등 크게 4개 조직이 합쳐져 출범했다. GE가 ‘디지털 산업 기업(digital industry company)’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탄생한 사업 부문이라 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전략의 방향도 과거 글로벌소프트웨어센터 시절엔 개별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집중했지만 GE디지털이 출범하면서는 데이터 관리 및 분석 플랫폼 개발로 바꿨다.

GE디지털은 GE항공, GE헬스케어, GE파워 등 다른 사업부와 달리 GE 안에서도 매우 독특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 자체로 독립된 사업 부문으로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기도 하지만 항공, 전력 등 각기 서로 다른 사업 부문의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며 디지털 산업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GE는 전통적으로 항공, 전력 등 사업 부문별로 뚜렷한 사일로(silos)를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각각의 비즈니스는 매우 전문화돼 있어 서로 단절돼 있는 측면이 강했다.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디지털 산업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렇게 흩어져 있는 사업 부문들을 디지털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하나로 묶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서로 다른 사업부서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은 무엇이고, 각각의 전문성을 기초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인지를 파악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역할을 하는 게 바로 GE디지털이다.

현재 GE는 전 세계에 500여 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오는 2020년까지 이 공장 모두를 스마트공장, 즉 ‘생각하는 공장(Brilliant Factory)’으로 만든다는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선 각 사업부가 추구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인지, 가장 효율적인 인력 배분 방식과 협업 모델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하나하나 정의하는 작업부터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GE디지털이 주력해 온 일이다.




GE는 CDO(Chief Digital Officer· 최고디지털책임자)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GE 전사적으로도 CDO가 있고 사업 부문별로도 CDO가 존재한다. GE 전사적인 CDO 역할은 GE디지털의 CEO가 맡고 있다. 지난 2011년 이멜트 회장이 시스코(Cisco)에서 영입한 소프트웨어 전문가 윌리엄 루(William Ruh)가 현재 GE의 디지털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GE파워, GE헬스케어, GE항공 등 비즈니스 부문별 CDO들은 각 사업부 CEO에게는 물론 GE디지털 CEO에게도 이중 보고를 한다. 매트릭스 조직에서의 보고 체계로 따져 본다면 직접 보고 라인(direct report line)은 각 사업부 CEO, 점선 보고 라인(dotted report line)은 GE디지털 CEO다.



원래 매트릭스 조직은 사일로 조직에서의 정보 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수의 상급자의 지시를 받도록 하지만 실제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직접 보고 계통에 속한 상급자의 결정이 점선 보고 계통에 있는 상급자보다 더 중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점선 보고의 경우 정말 ‘보고’에 그칠 뿐 실제 구체적인 사업 방향이나 전략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는 많지 않다. GE디지털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각 사업부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혁신과 관련해선 해당 사업부 CEO가 아니라 GE디지털 대표의 의사결정이 언제나 우선시된다. 즉, GE디지털에서 결정하는 전략이 각 사업부서의 디지털 전략으로 고스란히 실행된다. 이게 바로 GE가 전사적으로 디지털 혁신을 추구해 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유명무실한 매트릭스 조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매트릭스 조직이다. 이는 디지털 산업 기업 구현을 향한 이멜트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 덕택이다.

이멜트 회장은 “각 사업부에서 내리는 의사결정과 GE디지털의 의견이 상충할 경우 언제나 GE디지털의 손을 들어주겠다”는 견해를 공개 석상에서 누차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본인이 왜 이런 견해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들어 조직원들에게 설명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30년 넘는 세월 동안 GE에서 일하면서 저질렀던 가장 큰 실수는 “과거 GE헬스케어 비즈니스의 CEO였을 때 기존 헬스케어 사업을 오랫동안 해왔던 사람들 위주로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추진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멜트 회장이 잭 웰치의 뒤를 이어 GE의 수장이 되기 직전에 맡았던 사업부가 바로 헬스케어 비즈니스였다. 당시 이멜트는 GE가 2009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헬시매지내이션(Healthymagination)’의 초기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고, 헬스케어 사업 내에서 소프트웨어 사업을 모색해 보려 했다. 하지만 당시 의료 장비를 파는 데 익숙한 기존 사업부는 모든 의사결정을 돈 되는 하드웨어 사업 위주로 내렸고, 소위 돈벌이가 얼마 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산업은 등한시했다. 그 결과 20여 년 전에 그가 헬스케어에서 추진했던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는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멜트 회장은 아마 그때부터 GE에서 소프트웨어 사업, 디지털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별 사업부서의 한계를 넘어 전사적으로 추진해야만 한다는 교훈을 얻었던 것 같다. 이멜트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없었다면 GE디지털이 전통적으로 사일로가 심한 GE 내에서 지금과 같은 위상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CDO라는 직책이 생기면서 기존 CIO (Chief Information Officer·최고정보책임자) 체제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제 GE에서 IT 조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2월을 기점으로 IT 조직은 디지털 테크놀로지(Digital Technology) 조직으로 진화했다. 당연히 CIO라는 직책도 폐기했고, 대신 디지털 테크놀로지 리더(Digital Technology Leader)라는 직책을 사용하고 있다. 단순히 부서 이름, 직책명만 바뀐 수준이 아니다. 그에 부여된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다.

CIO란 용어가 생겨난 건 대략 1980년대 중반 이후다. CEO가 주관하는 임원 회의에서 CFO, COO 등과 어깨를 견주며 CIO가 참여하기 시작한 게 대략 이때부터다. 이 시기에 기업 경영에 있어서 IT 부서, IT 인력의 위상이 급격하게 높아졌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IT가 실제 비즈니스 손익에 끼치는 영향이 컸다. 회사에 IT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IT 부문은 수익실행부서(profit center)라기보다는 일종의 비용발생부서(cost center) 성격이 점점 더 강해져 갔다. 주어진 예산을 가지고 생산성을 더 높이거나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해내기보다는 기존 설비를 관리하고 유지·보수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쉽게 말해, 과거 컴퓨터가 없던 시절엔 100만 원의 예산으로 컴퓨터를 구입해 1000만 원의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20여 년이 지난 후엔 단순히 컴퓨터 교체, 수리 등으로 예산을 소진할 뿐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내는 일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만큼 IT가 범용화됐기 때문이다. 이는 IT 전문가의 역할도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클라우드 서비스의 등장으로 인해 IT 시설을 관리하거나 유지·보수하는 등의 일은 굳이 회사 내부에서 직접 담당하지 않고 외부에 맡겨도 되는 시대가 됐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훨씬 더 저렴한 비용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GE디지털은 출범 이후 지난 1년 반 동안 조직 내 IT 인력들이 기존 시스템의 단순 유지·보수·관리자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는 데까지 역할을 확장하도록 유도하는 데 힘썼다. 이는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비용발생부서에서 수익실행부서로 근본적인 역할 자체를 바꿔야 하는 지난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GE디지털 출범 초기엔 각 사업부별로 기존 CIO를 CDO 밑에 두고, 종전의 IT 부서가 디지털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를 모색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오라클, SAP, 시스코 등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에서 일했던 외부 인사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했다. 현재 각 사업부서에서 디지털 사업을 추진하는 임원급들의 90% 이상은 외부 인사라고 보면 될 정도로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을 바깥에서 대거 수혈했다. 이렇게 IT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 기존 GE의 제조 인력들과 함께 일하게 유도함으로써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기회를 모색하도록 독려했다.



하드웨어 기반으로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조직이 갑자기 디지털 서비스를 통해 매출을 창출하라는 과제를 수행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GE 같은 현장 기술자 중심, 하드웨어 기반의 거대 제조 기업이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해 산업 인터넷화를 추진하겠다는 건 항공모함의 방향을 트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쾌속정처럼 쉽게 뱃머리 방향을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잡음은 불가피하다. 시행착오도 겪었고, 지금도 분명히 겪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마저 예상하고 디지털 산업 기업이라는 미래 비전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려 한다는 게 GE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업부서와 GE디지털의 의견이 상충할 때 언제나 GE디지털의 손을 들어준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파격적인 일이다. 솔직히 당장의 매출만 생각한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단적인 예로, 각 사업부서 CEO 입장에선 “엔진 하나를 팔면 1000억 원을 벌 수 있는데, 소프트웨어는 100만 원씩 팔아서 언제 1000억 원을 만드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선 기존에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 예를 들어 IT 시스템이 범용화된 것처럼 언젠가 엔진도 범용화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도발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그런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을 하나씩 그려나가야 한다.



1년 전 이멜트 회장이 한국에 방한했을 때 한 외부 행사에서 “디지털 산업 기업으로서 GE의 현재 수준은 어떠하며 다음 행보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이멜트 회장은 “디지털 산업 기업이라는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하려면 총 50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라 생각하고, 현재 GE는 대략 15단계까지 올라와 있는 것 같은데, 그다음 단계는 어떤 모습일지 정확하게 모르겠다”는 답변을 했다. 한국 경영자들이 특히 주목해야 할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한국 기업들은 각 단계별로 1부터 50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서 있지 않으면 임원진에게 보고되기는커녕 일개 부서에서조차 의견이 묵살되기 쉽다. 하지만 GE의 경우, 지향점이 분명하다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완벽하게 마련돼 있지 않다 하더라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각오하고 막대한 투자를 하며 목표를 향해 한 단계, 한 단계씩 전진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바로 다음 단계의 모습은 무엇이 될지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며 청사진을 그려나간다. 한국적 시각에서 보면 비효율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 돈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게 바로 GE의 방식이다. 더욱이 디지털 산업 기업이라는 비전은 현재 우리의 지식과 경험 수준에서 고정시켜 놓고 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각 비즈니스마다 처해 있는 상황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GE가 생각하는 스마트공장의 정의와 현재 도입 현황에 대해 설명해 달라.

단 하나의 정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GE디지털에서 추구하는 스마트공장, 소위 ‘생각하는 공장(Brilliant Factory)’은 전문 지식의 데이터화, 프로세스화, 시스템화라고 요약하고 싶다. 흔히 스마트공장 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의 로봇을 투입하고, 3D프린팅 같은 신기술을 도입하면 구현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큰 착각이다.

터빈을 생산하는 GE그린빌 공장의 경우 외양만 봐서는 절대 ‘스마트’ 한 공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공장을 연상하면 응당 그렇듯이 엄청 시끄럽고, 사람도 많고, 자재도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생각하는 공장의 핵심은 눈에 ‘보이는’ 기계나 생산 라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보와 지식의 흐름이다. 즉, 공장 시설과 컴퓨터가 산업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품질을 유지하고, 돌발적 변수로 인해 공장 가동이 멈춰서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단순히 공장뿐 아니라 공급망과 서비스, 유통망 등이 모두 인터넷을 통해 연결돼 최적화된 생산을 유지하는 게 진정한 지능형 공장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무형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DB로 만들어 체계화하고 그 정보와 지식이 공장 전체에 물 흐르듯 흘러가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작업이다.

GE가 프레딕스라는 산업인터넷 운영체제 플랫폼을 만든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프레딕스는 실제 제조 현장에서 발생하는 공통 업무들을 플랫폼화해 놓은 툴이다. 즉, 발전, 항공 등 각 사업 분야별 공장에서 벌어지는 작업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데이터 분석 및 관리를 위해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IT 시스템을 플랫폼화했다. 물론 플랫폼이 모든 걸 다 해결해주는 ‘요술램프’는 아니기 때문에 산업별로 구체적인 애플리케이션이 필요하지만 시스템의 중복을 막고 정보 처리 속도와 업무 효율성 및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GE디지털 출범 후 지금까지 GE는 전 세계에서 운영하는 500여 개 공장 중 총 17곳을 대상으로 생각하는 공장을 도입했다. 각 공장 특성에 따라 지능화의 초점은 다르다. 예를 들어, 비행기 엔진 제작 공장이라고 하면 굉장히 많은 부품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급망관리(SCM) 측면에서의 최적화를 가장 중시하고 있다. 반면 인도 푸네 공장은 애초에 혼류 생산(multi-modal production)이 목적이었던 만큼 공장라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유연 생산 시스템 구축에 초점을 두고 있다.



클라우드 플랫폼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기업들이 기밀이라고 말하는 데이터의 90%는 분석 자체가 의미 없는 ‘쓰레기’ 데이터인 경우가 많다. 산업인터넷을 통해 수집되는 데이터의 양은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고장이나 오작동 등 ‘중요한’ 사건이 실제로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GE가 만든 엔진을 탑재한 항공사에서 엔진 보수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은 100만 번 비행하는 동안 30번도 채 안 될 것이다. 산업과 기기 특성에 따라, 제품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10% 정도의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이란 걸 해볼 수 있고, 실제 의미 있는 통찰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데이터는 불과 1∼1.5% 수준에 그친다. 산업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때 방대한 규모의 빅데이터 분석과 클라우드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불과 1∼1.5% 정도의 데이터로 의미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도출해내기 위해선 그만큼 샘플 규모가 커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 클라우드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불과 5년 전과 비교해보면 훨씬 개선됐다고 본다. 이는 과거 우리나라에 빅데이터 열풍이 불었을 때 기업들이 무조건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다 낭패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기업들이, “빅데이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빅데이터 분석을 하려면 ‘하둡(Hadoop, High-Availability Distributed Object-Oriented Platform)’1 시스템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하니 일단 시스템 구축부터 하고 보자”며 수백억 원씩을 들여 시설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하둡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해 빅데이터를 분석할 역량이 부족해 투자 대비 효율이 형편없었다. 당시 기업들이 클라우드 기반의 하둡 서비스를 도입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의 데이터는 소중하기 때문에 절대 외부로 유출돼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이렇게 빅데이터 투자에서 한 번 시행착오를 겪었던지라 예전보다는 클라우드에 대한 인식이 훨씬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즉, 무조건 ‘정보 보안’을 이유로 클라우드 서비스 도입을 백안시하는 태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스마트공장 솔루션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요 그룹사별로 자체 시스템 통합업체들이 존재하고 있고 지난 수십 년간 회사마다 자사 사업 특성 및 구조에 맞는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제조실행시스템)를 개발해 공장을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급자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에는 기술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더욱이 모든 시스템을 내재화하려면 규모 측면에서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GE처럼 전 세계에 500여 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면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맞다. 하지만 5개 정도 공장을 운영하면서 모든 걸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 그것 말고도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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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마트공장 수준에 대해 평가해 달라.

많은 한국 기업들이 스마트공장을 공장 자동화의 극대화 정도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공장 자동화 측면에서만 본다면 국내 대기업의 수준은 전 세계 어느 공장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공장 자동화가 스마트공장의 전부는 아니라는 데 있다. 물론, 중소기업들의 경우엔 그나마 이런 공장 자동화도 미비한 곳이 많다. 그렇다 보니, 일단은 공장 자동화를 추진하면서 스마트공장 구현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스마트공장 도입 목적은 기존 제조업 공장의 운영 노하우를 데이터화, 프로세스화, 시스템화함으로써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측면에서 아직 국내 기업들이 가야 할 길은 먼 것 같다. 특히 이 과정에서 스마트공장 도입이 기업 보안에 위해가 된다거나 근로자를 감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등의 오해를 불식시키지 않으면 국내에 스마트공장이 빠르게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공장은 기본적으로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ation)를 통해 각각의 공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파악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즉, 데이터 가시성(data visibility)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 가 보면 정보 공유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공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영업 비밀과 관련된 기밀사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학공장 같은 프로세스 산업의 경우 공정별 데이터를 다른 부서와도 공유하지 않는 게 관행처럼 돼 있는 경우가 많다. 특정 공정에서 벌어지는 일은 해당 공정 담당자들만 알아야 하는 사항이라고 간주한다. 여기에 데이터 시각화를 근무 행태 감시라고 오해하는 노조까지 존재한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고도의 공장 자동화가 이뤄진다 해도 정보의 흐름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스마트공장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스마트공장 도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언을 부탁한다.

무엇보다 CEO의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GE에서 가장 오래된 비즈니스 중 하나고, GE 안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로 유명한 GE파워의 CEO에게 “디지털 산업 기업으로의 변신을 위해 스마트공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나”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가장 힘들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어 그는 아직도 자신의 시간 중 30%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교육을 위해 투자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디지털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만 직원들한테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전문 용어부터 새로운 기술 트렌드에 이르기까지 배워야 할 게 끝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일평생 가장 하드웨어다운 비즈니스에 몸담아왔던 CEO부터 디지털 기업으로의 변화를 위해 이처럼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목표가 정해지면 모든 경영진이 한목소리로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GE의 강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GE는 디지털 기업으로의 변신을 위해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기업들에서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해 온 것은 물론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소프트웨어 회사 8개를 인수했을 정도다. 사실 이는 매우 과감하고 도전적인 전략이다. 많은 기업들이 성장을 위해 M&A를 택하지만, 많은 M&A가 이질적인 조직 문화를 제대로 통합하지 못해 실패로 끝나곤 한다. 특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그 DNA부터가 판이하게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M&A로 인한 갈등과 잡음은 예견된 수순이다. 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선 강력하고 일관된 리더십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말만 앞서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GE의 경우 GE PD(GE Performance Development)를 도입하며 연 1회 실시하던 임직원 평가를 수시 평가로 전환했다. 이는 모든 직원이 직급에 구분을 두지 않고 서로에게 언제든지 피드백을 주는 시스템을 뜻한다.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적극 발굴하고 그 아이디어를 보다 가치 있게 만드는 데 평가의 목적을 두고 있다.

스마트공장의 최종 지향점은 단순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 이는 조직 전체의 변화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오직 공장에서만, 혹은 특정 사업부서에만 국한해 추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력한 CEO의 리더십하에 조직의 DNA를 바꾸는 혁신 작업을 꾸준히 추진할 때 비로소 스마트공장 구현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One Point Lesson

1 스마트공장의 최종 지향점은 단순 생산성 향상이 아닌 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야 한다. 조직 전체의 변화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최고경영자(CEO)의 강력한 리더십하에 조직의 DNA를 바꾸는 혁신 작업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2 GE식 스마트공장인 ‘생각하는 공장(Brilliant Factory)’에서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기계나 생산 라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보와 지식의 흐름이다. 즉,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무형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체계화하고 그 정보와 지식이 공장 전체에 물 흐르듯 흘러가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작업이 핵심이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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