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믿음 있는 사회, 좋은 리더가 만든다

이치억 | 191호 (2015년 12월 Issue 2)

 

한 가지 우문(愚問)을 던져 보고자 한다. 믿음이 있는 사회와 믿음이 없는 사회, 어느 쪽이 더 좋을까? 답은 확실하다. 믿음 없는 사회를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누가 서로를 의심하고 반목하는 사회에 살고 싶겠는가? 믿음이 있는 사회에 산다면 얼마나 편안할는지 상상해 보자. “재물이 버려지는 것은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자기 것으로 만들려 욕심내지 않고” “대문을 열어 놓고도 발 뻗고 잘 수 있는”<예기·예운편> 그야말로 대동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이 비현실적으로 생각된다면 가정이나 절친한 친구 그룹을 표본으로 떠올려보자. 그러한 사회가 편안한 이유는 다름 아닌 믿음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삶은 보이지 않는 믿음이 전제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발을 땅에 디딜 수 있는 것은 땅이 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고, 음식점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이 해주는 밥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독이 아니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도처에 믿음이라는 보물이 묻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나라를 운영하는 데 경제와 국방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불가결한 것은 사람들의 믿음라고 했다.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진다면, 공자는 먼저 국방을 버릴 것이고, 다음으로 경제를 포기할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죽지만, 믿음이 없으면 애당초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논어·안연편> 경제나 국방은죽지 않기 위해필요한 소극적인 요소지만 믿음은존재하기 위해필요한 적극적인 요소인 것이다.

 

그러면 또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이와 같이 중요한믿음’,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또 사회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들은믿음을 갖추고, 믿음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 아닌, 다만속지 않는 기술에 지나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한다. 믿음 덕에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이 땅에 온전히 실현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믿는다는 것은 남에게 쉽게 속아 넘어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믿음이 가득한 사람은 남에게 속지 않는다. 사람을 믿으면서도 결코 어리석게 속지 않는 능력을 갖추라고, 공자는 이렇게 충고한다. “남이 나를 속일 것이라고 미리 추측하지 말라. 나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억측하지도 말라. 그러나 혹 나를 속이는 사람이 있다면 미리 알아차려야 한다. 이것이 현명한 사람이다.”<논어·헌문편> 남을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되 그에게 속지는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현자다. 물론 이러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리더라면 반드시 이러한 능력은 갖춰야 한다. 그래야만 그는 구성원들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리더가 이끄는 사회라면 사회 구성원들은 저절로 리더를 믿고, 또 구성원 상호 간에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힘 있는 자가 아랫사람을 믿어주기는 쉽지만 힘없는 사람이 윗사람을 처음부터 무작정 믿을 수는 없다는 점은 이해해 줘야 한다. 잘못될 경우, 힘 있는 자는 약소한 손해로 끝나지만 힘 없는 자는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플라이급의 회심의 일격에 헤비급은 타박상 정도를 입지만 헤비급의 한 방에 플라이급은 죽을 수도 있다.

 

믿음이 있는 사회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 사회야말로 구성원이 편안함을 느껴서 살 맛 나고 일할 맛 날 곳이다.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내가 먼저 남을 믿어주며, 또 믿음 있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 구성원 개개인의 이러한 노력 없이 성공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거기로 가는 길의 첫발은 리더에게 있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