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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학(好學)하는 리더만이 살아남는다

이치억 | 178호 (2015년 6월 Issue 1)

조선에서 왕 노릇하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본적인 정무 외에도 임금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중요한 의무가 있었다. 바로 경연(經筵)이다. 경연은 임금이 학생이 돼 신하들에게 수업을 받는 개인교습 시간이었다. 학문적 토론이 오갔고, 때로는 정사도 논의됐다. 적어도 조강(朝講석강(夕講)의 두 번, 많게는 주강(晝講)까지 세 번 의무적으로 경연에 참여했고, 밤늦게 이뤄지는 야대(夜對)는 옵션이었다. 그야말로 밥 먹듯이 공부한 것이다. 세종이나 성종, 정조와 같이 학문을 좋아했던 군주에게는 오히려 정무의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였겠지만 학문에 별 관심이 없는 왕이라면 큰 곤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세조와 연산군은 경연을 아예 폐지하기도 했다. 위대한 임금일수록 경연을 즐겼고, 어리석은 임금은 경연을 멀리했다. 조선에서는 최고경영자인 왕에게 왜 이토록 빡세게(?) 공부를 시켰을까?

 

최고경영자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시시콜콜하게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높은 분이 세세한 것까지 알아서 일일이 신경 쓴다면 아랫사람은 피곤해지고 능률은 저하된다. 최고경영자가 할 일은 바른 눈으로 전체를 조망하고 정확하게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에게 가장 크게 요구되는 능력은 정확한 판단력이다.

 

정확한 판단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중용>에서 말하는 배움과 판단, 실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참고해 보자.

 

첫째 박학(博學), 즉 폭넓게 배우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지적 편식을 해서는 안 되며, 모든 분야에 대해 열린 자세로 배워야 한다. 둘째, 심문(審問), 자세히 살피고 묻는 것이다. 무작정 지식을 쌓는 것이 공부는 아니다.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히 알아서 모르는 것을 묻고, 아는 것은 더 심도 있게 탐구해야 한다. 셋째, 신사(愼思),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공자는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논어> 위정 편)고 했다. 자기 생각에만 빠져서 그것이 옳고 그른지 객관적으로 점검하지 않으면 그 생각이 위험한 길로 빠질 수 있다. 반면 남이 제시한 지식만 습득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진정한 나의 앎이 되지 못한다. 넷째, 명변(明辨), 밝게 분별하는 것이다. 무엇이 적절하고, 적절하지 않은지 정확한 판단은 이러한 배움의 종합적인 과정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그리고 옳게 판단된 사안이 있다면 현실에 적용돼야 한다. [독행(篤行)]

 

어떠한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은 이 박학·심문·신사·명변·독행의 순환·반복으로 이뤄진다. 만일 판단이 잘못됐다면 다시 배우고 묻고 생각함으로써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결정을 내려 시행한다. 새로운 사태에 직면했을 때 역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판단을 잘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부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후인들이타고나면서 모든 것을 안 사람이라고 칭송했던 공자조차도 한번도 자신이 능력자임을 자처한 적이 없다. 단지 스스로배움을 좋아하는(好學)’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제자 역시도 공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큰 찬사는호학이었다. 공자의 눈에는 단지 실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바람직하게 비춰졌을 것이다. 배움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만큼 변화와 향상의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오늘날에 배움의 중요성은 더 부각된다. 물살이 약한 강은 작은 힘으로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물살이 센 곳에서는 온 힘으로 노를 젓지 않으면 제자리도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오늘날 배움을 좋아하지 않는 리더는 도태된다.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차종손)으로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면서 유교에 대한 반발심으로 유교철학에 입문했다가 현재는 유교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성균관대 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성균관대·동인문화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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