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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영컨설팅

21세기형 비전에 절차정당성을 장착하라

신동엽 | 121호 (2013년 1월 Issue 2)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 배워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에선 유권자가 보수와 진보, 기존 세대와 신세대로 나뉘었다. 선거 과정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치열했다. 박근혜 후보는 75%가 넘는 높은 투표율에서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어 향후 대한민국의 5년을 이끌 대통령에 선출됐다. 대선에서 지지했던 후보와 관계 없이 정치권은 물론 국민 모두가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도와야 한다.

 

박 당선인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 위해선 승리에서 오기 쉬운 과도한 자신감을 경계하고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은 박 당선인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다. 자신감에 넘쳤다. ‘고소영이나강부자내각이라는 비판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취임 후 1년이 채 안 돼 당내 분란과 광화문 촛불시위 등으로 위기에 빠졌다. 이 대통령이 임기 내내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은 박 당선인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임기 5년은 광범위한 국정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효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엔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마이클 델(Michael Saul Dell) 델컴퓨터 회장은 선거 승리의 축배를 들 시간은 1000분의 1초도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NANO Second Celebration). 박 당선인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21세기 창조사회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확실하고 급변하기 일쑤다.

 

그렇다면 박 당선인이 역사에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기록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모든 조직의 리더가 성공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 방법 중 하나가 전임자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대통령직도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한국을 이끌어온 모든 대통령은 나름대로 성과를 냈다. 그러나 동시에 실패의 쓴맛도 봐야 했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성공에서 배우는 벤치마킹의 효과는 그리 좋지 않다. 성공은 한두 가지 요소로는 창출되기 어렵다. 비전과 전략, 시스템, 역량, 리더십, 상황적합성 등 수많은 요소들이 동시에 효과적일 때 달성된다. 이에 반해 실패는 이 중 한 가지만 문제가 있어도 발생한다. 실패 요인을 미리 파악해서 대비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제임스 마치(James G. March)를 비롯한 조직학습 이론가들은실패로부터의 학습(learning from failure)’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반면 앨버트 밴두라(Albert Bandura)사회학습(social learning)’ 모형에선 모든 경험을 직접해보는 것이 유일한 학습방법은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서 간접적으로 배우는모방적 학습(vicarious learning)’이 직접 학습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 배우는 간접 학습은 성공을 바라는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전임 대통령의 실패 원인 중 박 당선인이 특히 주목해야 할 사항으로 (1) 구체적인 정책보다 역사적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 중심의 리더십 (2) 결과지상주의보다는 절차의 정당성 준수 (3) 일방적인 경쟁이나 협력보다 코피티션(Coopetition)형 정치 등 3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역사의식과 방향성의 실종:

정책보다 21세기형 비전이 우선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 대통령은 가시성 높은 구체적인 정책에 매우 강했다. 그러나 이를 하나로 아우르고 시대정신에 맞게 큰 방향을 보여주는 미래지향적인 비전 제시에는 약했다. 장점이자 한계다.

 

국민에게 이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책이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서울시장 시절을 포함해 청계천 복원사업, 버스 중앙차로제, 4대강 사업 등 굵직굵직한 정책을 떠올릴 것이다. 이에 반해 이런 다양한 정책들을 통해 보여준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단기적으로 실행가능한 구체적인 정책에 선택과 집중하는 부분에는 강하다. 그러나 이런 모든 정책을 아우르고 통합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궁극적으로 달성하려는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에는 취약했다. 이게 한계였다.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이 부족한 문제는 이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다수 리더의 공통적인 약점이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 모두에게도 가장 두드러진 한계였다. 선거 때마다 언론과 많은 전문가들은 정책중심의 선거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보다는 비전중심 선거가 돼야 한다. 정책과 비전은 모두 중요하나 두 가지는 전혀 다르다. 리더의 핵심 역할은 정책보다 비전이다. 비전은 반드시 투철한 역사의식에 기반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미래지향적인 방향이라야 한다.

 

20세기 산업사회는 상대적으로 불확실성이 낮았다. 나가야 할 방향이 명확했기 때문에 구체적 정책에만 초점을 맞춰도 괜찮았다. 그러나 극도로 불확실한 21세기 창조사회에선 비전의 부재가 치명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비전은 파도에 흔들리는 배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등대의 역할을 한다. 좌우로 흔들어대는 거친 파도 때문에 앞으로 똑바로 나갈 수 없더라도 등대의 빛이 뚜렷하면 결국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따라서 비전은 21세기 창조사회와 같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정책은 추구하는 목적을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라는 기술적인 방법론이다. 반면 비전은 궁극적으로 나가고자 하는 미래의 방향성이다. 비전이 10년이나 20년 뒤의 미래라면 정책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실천해야 하는 방법이다. 즉 비전이(why)’어디로(where)’의 문제를 다룬다면 정책은어떻게(how)’무엇(what to do)’을 이야기한다. 정책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비전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선거에 나서는 정치지도자는 정책보다는 비전 경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책은 선거로 선출되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역량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스태프인 전문 관료나 지식 기술자들의 영역이다.

 

정책이 아무리 정교해도 비전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국가를 이끌어 나갈 뚜렷한 미래 비전에 대한 제시 없이 세부 정책의 나열에만 함몰된 기술자형 정치지도자는 매우 위험하다. 국가 전체의 미래 비전과 같은 큰 꿈을 이루려면 한두 가지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다. 수많은 방법이 일관성 있는 방향을 지향해야 한다. 수많은 정책들이 결과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미래의 궁극적인 꿈이 비전이다. 비전은 개별 정책이 왜 중요하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부여해준다.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등의 문제가 있음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문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리더십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바로경제성장을 통한 조국 근대화라는 출중한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달성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관리자나 보스와 달리 리더의 핵심 역할은 구성원에게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함께 실천하도록 이끌고 나가는 것이다. ‘리드(lead)’라는 단어가어디론가 데리고 간다고 뜻하듯이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 조직이나 사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비전이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는 미래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탁월한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인이념이 사회를 여러 대립 집단으로 갈라놓는 데 반해 꿈으로서의 비전은 갈라진 사회를 다시 통합한다. 가치관과 입장은 달라도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공동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할 때 갈등관계는 자연스럽게 협력관계로 전환된다. 그래서 사회의 역량과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좋은 비전은 과거-현재 추세와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퀀텀점프적 변화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미래 창조의 꿈을 담고 있어야 한다. 또 미래의 불확실성을 꿰뚫고 나가는 등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무엇보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역사발전의 방향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와 투철한 시대정신에 기반한 미래지향적 방향이어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 비전은 투철한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에 적합한 미래지향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듣기에 아무리 좋은 비전이라도 역사의식이 결여된 시대착오적인 꿈이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비전은 미래라는 역사 속에 우리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것이므로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의 맥락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결코 통시적으로 일반화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20세기 산업화 시기라면 좋은 정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창조사회의 비전으로는 부적절하다. 시대착오적인 내용이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 누구도 21세기의 시대적 특수성과 역사의식을 강조하지 않았다. 박 당선인도 수많은 개별적 정책 공약들을 제시했으나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통합적 미래 비전은 명확하지 않았다. 21세기 창조사회적 시대정신에 맞는 미래지향적 비전의 제시가 시급하다.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공약 대부분은 양극화 문제의 해결을 통한 기존 사회 통합 위기 극복이 핵심이었다. 기존 문제의 해결과 새로운 미래의 창조는 다르다. 21세기 창조사회는 모든 면에서 20세기 산업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존 강점을 지키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강점과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원래 학문적 관점에서의 창조경제론은 이런 21세기적 역사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제시된 박 당선인의 창조경제 공약은 21세기 시대정신보다는 단순히 정보, 통신, 방송 등 특정 산업이나 기술에 치중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박 당선인은 선거 기간 중 제시한 모든 정책 공약들을 21세기 창조사회의 맥락에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21세기적 역사의식에 기반한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시해야 전임자의 비전 부재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비전은 단순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결과지상주의와 신뢰 붕괴:

절차 정당성이 민주적 리더십의 출발

 

이 대통령 리더십의 또 다른 특징은 결과 지상주의다. 현대건설 신화의 주역이었던 스타 CEO 출신답게 일단 목표를 수립하면 어떤 장애요인이나 난관이 있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인다. 정면으로 돌파해서 원하는 결과를 창출해내는불도저같은 추진력은 이명박표 리더십의 상징이 됐다. 과정이나 절차의 준수보다는 결과 창출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결과 지상주의 리더십은 이 대통령뿐 아니라 박 당선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문민정부의 문을 연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 결과 지상주의 리더십은 한국에서 강한 추진력과 뛰어난 리더십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민주적 리더십의 기본적 요건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신뢰 상실 원인이 되고, 또 궁극적으로는 심각한 갈등과 불신을 일으킨다. 전체 공동체를 붕괴시킬 우려도 있다. 따라서 최근 리더십 연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진정성의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 모형에서는 결과 못지않게 그 결과를 창출하는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이 중요하다는 관점이 강조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임기 초기를 뒤흔들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관련된 광화문 촛불시위를 둘러싼 갈등의 원인 중 하나는 절차 정당성을 경시한 데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결정은 결과 지상주의 관점에선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는 것이다. 한국에 훨씬 큰 이익을 줄 가능성이 높았으나 절차 정당성의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즉 수입 재개에 관련된 사전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서 부시 대통령을 만날 즈음 갑자기 깜짝 쇼 스타일로 발표해 그 의도 자체를 의심받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했다. 만일 이때 한미 정상회담 일정과 상관없이 정당하고 투명한 절차와 협상과정을 거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결정했더라면 반대운동의 강도가 훨씬 약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지난 5년 임기를 되돌아보면 성과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다. 해외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정도다. 하지만 국내에선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이유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신뢰 상실의 주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절차 정당성의 결여다.

 

박 당선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근대화에 기여한 성과 자체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등 절차 정당성의 결여 문제가 심각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하나회 해체나 금융실명제 도입 등 결과 측면에서는 우리 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중요한 성과들을 다수 만들어냈다. 문제는 그 과정과 절차가 항상깜짝 쇼스타일이라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깝게는 이번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민주통합당의 국가정보원 여직원 사건도 야당 입장에서 제기할 수도 있는 문제였으나 그 과정의 정당성은 완전히 무시됐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이런 관점에서 통합과 신뢰, 화합을 당선 일성으로 강조한 박 당선인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결과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 경영의 모든 과정에서 절차 정당성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진정한 리더십의 핵심 요건인 절차 정당성은의사결정 기준과 절차의 명확한 사전 공지공지된 기준과 절차의 예외 없는 철저한 적용의사결정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경청과 참여의사결정 후 그 결정의 논리적 배경과 이유에 대한 신속하고 자세한 설명과 피드백반론이 제기될 경우 재검토 허용의사결정 과정 및 절차의 철저한 공개와 투명성 등 6가지 요건에 따라 결정된다.

 

언뜻 상식적으로 보이는 6가지 절차 정당성의 요건이 실제 국가 경영은 물론 조직 경영에서도 철저하게 지켜지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전임 대통령의 임기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정치적 갈등의 주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절차 정당성의 결여였다. 특히 극도로 불확실하고 복잡하며 급변하는 21세기 창조사회에서는 의사결정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인과관계 자체가 극도로 모호하다. 의견차이나 갈등, 이해관계 충돌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구성원의 내면적 수용이 필요한 의사결정에서는 역설적으로 결과 자체보다는 절차에 초점을 맞춰야 장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

 

절차 정당성의 6가지 요건이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박 당선인이 취임 전까지의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은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듣고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박 당선인이 당선 소감에서 대통합을 강조했듯 이념과 계층, 지역, 세대별로 분열된 우리 사회에서 단연 시급한 과제는 화합이다. 이를 위한 첫번째 단계는 절차 정당성의 핵심 요건인 다양한 집단들의 의견 경청과 참여유도다. 특히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자신을 반대한 사람의 목소리까지 경청해서 미래 비전과 국정 방향 수립에 반영하는 것이 바로 절차 정당성의 확립과 신뢰받는 리더가 되는 첫걸음이다. 경청은 자기 입장의 설득이 아니라 선입견 없이 상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태도다. 이해라는 단어의 영어 표현인 ‘understand’는 상대방보다 아래(under)에 서서(stand) 듣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이나 리더들은 말로는 경청, 소통, 이해를 말하지만 구성원들의 위에 서서(up-stand) 자신의 탁월한 식견을 설득하려다 결국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한다. 따라서 절차 정당성에 기반한 국민의 신뢰확보와 국민통합을 위해선 박 당선인이 취임 전까지의 기간을 가장 가치 있게 활용하는 방법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다니며 이들의 목소리를 열린 마음으로 겸허하게 경청하는 것이다. 다양한 반대 의견의 중요한 경청통로인 언론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돼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진영 간 경쟁적 적대관계의 부메랑:

코피티션을 통한 상호견인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야당과의 관계나 심지어 당내 다른 계파와의 관계를 경쟁적인 적대관계로 봤다. 상대방을 견제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데 정치력을 쏟았다. 정치권은 적군과 아군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적 진영논리에 젖었다. 이분법적 편가르기 때문에 현대 정치사는 분열과 반목으로 점철됐다. 심각한 사회 통합 위기도 가중됐다. 이런 상호 경쟁적인 적대관계는 승자와 패자를 막론하고 부메랑으로 돌아와 정치권 전체가 국민에게 외면받았다.

 

상대방을 일방적인 경쟁자로 인식하는 전통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 당시부터 정치권을 뒤흔들어왔다. 국가를 수립하고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낸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은 상대 정치진영과의 관계를 경쟁적 적대관계로만 보고 상대를 분열시키고 견제하며 억압하려고 한 정략적 정치행태 때문에 심각하게 퇴색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또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탁월한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상대 정치진영을 일방적으로 경쟁자로 보고 억압하려는 권위주의적 정치모형 때문에 결정적인 오점을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대 진영에 대한 노골적 적개심의 표출은 금권선거 단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뛰어난 업적을 완전히 가렸다. 그의 임기를 분열과 갈등의 상징처럼 만들었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당선 직후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강력한 경쟁자였던 박근혜 당선인 진영을 끝까지 억압하려다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경선과정에서 강력한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국정운영 파트너로 적극 영입한 것과 대조되는 행보였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경쟁으로 보는 인식은 자신과 경쟁자, 즉 자기편인인그룹(in-group)’과 상대방인아웃그룹(out-group)’의 명확한 구분에서 출발한다. 그 구분이 명확할수록 경쟁의식은 더 강해진다. 이런 구분에 기초해서 자기 그룹 내부에서는 일사불란한 응집력을 강조하고 반대로 상대방에 대해서는 무한 경쟁을 통해 완전한 승리를 노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철저한 경쟁 지향성은 최근 기업경영에서도 그 한계가 지적되기 시작했다. 즉 자기편과 경쟁자를 지나치게 명확히 구분하고 전적으로 자기편만을 선호하는 인사정책, 그리고 자기편 내부에서 리더에 대한 완벽한 순응에 기초한 일사불란한 응집력 등은 가용 역량과 인력풀의 범위 및 다양성을 제약한다. 오히려 궁극적인 가치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특히 극도로 불확실하고 복잡하며 급변하는 21세기 창조사회에서는 어떤 거대 집단도 필요한 모든 자원과 역량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과 완벽한 자기편을 제외한 나머지를 역량과 자원 조달 풀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지나친 경쟁 지향적 접근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정과 같이 상대 진영의 참여와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 이런 일방적 경쟁지향성은 오히려 치명적인 통합 위기의 원인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코피티션논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코피티션(coopetition)’이란 협력을 뜻하는코퍼레이션(cooperation)’과 경쟁을 의미하는컴피티션(competition)’의 합성어다.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관계를 뜻한다. 코피티션 관점이 전제하는 것은 기업 경영은 물론이고 국가 경영의 궁극적 목적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치창출을 위해서는 경쟁자와도 기꺼이 협력할 수 있어야 합리적이라는 것이 바로 코피티션 논리의 출발점이다. 코피티션 관점은 21세기 창조사회의 도래와 함께 기업경영 분야에서 급속하게 확산돼 경쟁자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는 사례가 급증해왔다.

 

여야 간 관계나 여당 내 계파 간 관계는 모두 경쟁이 아닌 전형적인 코피티션 관계다. 코피티션의 관점에서 보면 여야는 국가와 국민의 발전과 번영이란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 협력자다. 동시에 국가 경영에 대한 서로 다른 비전과 전략을 추구하는 경쟁자다. 만일 경쟁의 측면만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히거나 완전히 배제하면 결과적으로 공멸할 수도 있다. 반대로 협력만 강조하고 경쟁을 무시하면 다양한 정치적 대안의 경쟁이 사라진다. 국가 전체의 역동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여야의 관계 설정은상생이나상살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바람직한 정치권의 구도는 서로 다른 정치진영 간 경쟁과 협력이 반드시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코피티션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여야나 계파 간 분명한 차이, 즉 다양성이 존재해야 한다. 즉 여야가 국가경영에 대한 서로 다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전체 국가 수준에서 상호보완적 시너지를 추구하는 것이 코피티션의 핵심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박 당선인의 가장 중요한 코피티션 상대는 문재인 전 후보다. 두 사람은 선거기간 경쟁자로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두 진영은 서로 경쟁하는 공약들을 다수 제시했다. 그중 상당수는 상대 공약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내용이다. 이제 국가 전체 수준의 협력적 시너지 창출을 추구해야 하는 박 당선인은 코피티션 관점에서 문 전 후보의 공약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학습의 대상은 바로 경쟁자라는 것이 코피티션의 핵심 원리다. 예를 들면, 자본과 설비가 핵심 경쟁우위의 원천이던 20세기 산업사회와 달리 21세기 창조사회의 경쟁력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 원천이다. 박 당선인이 제시한 창조경제 공약은 문 전 후보의 사람중심 경쟁력 논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취임 전까지 문 전 후보가 제시했던 공약을 하나하나 꼼꼼히 점검해서 자신이 제시했던 공약에서 놓쳤던 점이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코피티션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박 당선인에게 지금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또 내각이나 청와대 참모진, 인수위원회 등에도 여야의 경계를 넘어 자신과 반대 관점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최대한 참여시키는 코피티션 리더십이 있어야 전환기 통합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21세기 창조사회의 문을 여는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건국 이래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당선 초기 과도한 자신감으로 무리한 시도를 남발하다 위기에 빠지곤 했다. 어떤 리더도 완벽하지 않고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결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겸허한 자세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특히 후보로서 대통령에 선출되는 데 필요한 역량이나 자질은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요건과 질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선거에서 이기는 데 효과적이었던 역량이나 전략, 행동에 집착하는성공의 덫에 빠져 정작 훨씬 더 중요한 대통령으로서의 국가 경영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 당선인은선거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선거에서 이기는 역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이것이 곧 탁월한 대통령의 자질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박 당선인은 성공의 덫을 극복하고 선거모드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서 후보가 아닌 자신만의 대통령 리더십을 제로베이스에서 확립해야 한다.

 

박 당선인의 효과적 대통령 리더십 확립은 현재가 역사적 대전환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국운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되는 전환기에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 도래한다. 구시대의 모순이 극대화되나 새 시대의 논리에는 아직 적응하지 못한 불안정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때 대부분은 몰락의 길을 걷지만 탁월한 전환기적 리더를 보유한 소수 집단은 급성장하기도 한다. 19세기 후반 산업사회로의 전환기에서 일본은 강국으로 발돋움했으나 우리는 전환기 리더십의 부재로 나라를 잃었다. 20세기 산업사회가 21세기 창조사회로 이행하는 역사적 전환기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 당선인의 대통령 리더십은 우리나라의 미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구시대와 새 시대로부터 오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위기를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전환기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어렵다. 박 당선인은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의 영광과 질곡을 상징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양극화와 통합의 위기를 극복해서 구시대를 마무리하고 동시에 21세기 창조사회로의 이행을 시작하는 미래지향적 역할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특히 21세기 창조사회에서는 여성의 리더십이 강조되는데 이것은 상시 창조적인 혁신이 경쟁의 규칙인 21세기의 시대정신과 부합되기 때문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성적 가치는 경쟁지향성, 상하 간 계층적 질서, 상향적 신분상승 욕구, 일사불란함 추구, 규모 성장 등으로 대표되고 여성적 가치는 협력지향성, 수평적 공동체 정신, 이타적 배려, 다양성의 포용, 정서적 감수성 등으로 대표된다. 그런데 여성적 가치로 강조되는 협력, 공동체 정신, 상호배려, 포용력, 다양성, 감수성 등은 창조적 혁신 창출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21세기 역사발전을 주도할 창조적 혁신은 다양한 가치관과 아이디어, 지식, 기술,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수평적으로 협력할 때 창출된다. 바로 여성적 가치가 중심이 된 조직이나 사회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 새 생명의 출산은 여성의 몫이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박 당선인이 상시 생존 위기의 전환기적 난국을 넘어 20세기 산업사회를 완결하고 21세기 창조사회를 개막한 진정한 시대교체의 리더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dshin@yonsei.ac.kr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등 저명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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