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2차 대전의 기발한 무기에서 배우는 창조의 지혜

98호 (2012년 2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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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어떤 전쟁에서든지 기발한 아이디어와 신무기가 등장하곤 한다. 산업혁명 이전에 발명된 전쟁 무기와 아이디어들은, 화약과 대포처럼 산업계와 사회에 영향을 마친 발명품도 간혹 있기는 했지만 대개 단발성 아이디어에 그쳤다. 인력과 축력에 의존하던 시대라 기술보다는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발명품이 많았고 그에 따라 파급효과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기계와 기술의 힘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기술과 발명, 한 명의 천재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계 산업은 전성기에 다다랐다. 또한 기계 산업에서 전자 산업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과거 그 어떤 전쟁에서보다도 기발한 아이디어와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첨단무기들이 획기적으로 등장했다. 가장 인상적인 무기는 역시 핵폭탄이다. 독일의 V1, V2로켓도 빼놓을 수 없다. 컴퓨터는 복합적인 기술의 산물로서 여러 시조를 지니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영국군 암호 해독 전문가이던 엘런 튜링이 고안한 자동암호해독기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의뢰로 미 국방성이 제작한 에니악을 꼽을 수 있다. 이 둘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모태에서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승리에 기여한 진정한 비밀병기는 레이더였다. 유명한 독일 공군의 영국 대공습에서 영국 공군에게 승리를 안겨준 무기가 레이더였다. 레이더 덕에 영국군은 독일군의 공격을 정확히 탐지하고 유리한 위치에서 공격할 수 있었다. 독일 조종사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전쟁 말기에는 레이더에 의존한 야간 비행술까지 등장했다. 잠시이기는 했지만 야간 공격은 오늘날의 스텔스 기술만큼이나 짜릿한 쾌감을 줬다.
 
굴러다니는 무인 자살폭탄 ‘팬잰드럼’
 
이런 수많은 발명품 중에서도 아주 독특하고 기발한 무기들이 있다. 첫 번째 주자가 ‘팬잰드럼(Panjandrum)’이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영국에서는 아예 특수무기를 개발하는 부서(DMWD·Directorate of Miscellaneous Weapons Development)를 설치하고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굴러다니는 무인 자살폭탄 팬잰드럼이다.

 이 무기는 소위 재래식 기계 기술과 첨단 기술, 더 정확하게는 첨단 기술이 접목된 아이디어의 결합품이었다. 일반 성인의 키 높이를 훌쩍 넘는 거대한 바퀴 2개를 큰 드럼통을 축으로 연결한 후 측면 바퀴살 부위에 소화기 모양의 로켓 분사기를 빙 둘러 붙인다. 로켓 분사기는 바퀴가 지면에 닿게 되는 부위 쪽에 비스듬히 붙어 있어서 로켓이 분사하면 그 힘으로 바퀴가 굴러 적진으로 돌진하도록 했다. 드럼통 모양의 바퀴 축에는 폭탄을 장착한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앞두고 해안에 설치돼 있는 독일군 방어시설과 포대의 처리를 두고 고민하던 연합군은 이 괴물 폭탄에 홀딱 매료됐다. 로켓 분사방식이라 물속에서도 꺼지지 않을 테니 구축함이나 상륙정, 잠수함에서 이 괴물을 풀어 놓으면 바다 밑을 달려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적진으로 돌격해 충돌할 것이라 생각했다. 갑자기 바다 밑에서 툭 튀어 나와 미친 듯이 달려드는 속수무책의 검은 불덩이. 생각만 해도 매혹적인 광경이었다.
 
그러나 약간의 물리학적 지식만 가지고 생각해 보더라도 팬잰드럼은 엉터리 무기였다. 우선 물체가 전진하려면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팬잰드럼은 로켓이 바퀴 자체를 돌리는 데 힘이 낭비된다. 엄밀히 말하면 자동차도 같은 원리이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로와 타이어가 자동차 바퀴의 회전력이 낭비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연합군이 예상하는 팬잰드럼의 경로는 바다 밑과 모래사장이었다. 즉, 힘의 분산을 막아 주는 충분한 지지력을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두 번째로 팬잰드럼은 방향을 조절할 수 없다. 경사와 장애물을 만나면 바퀴가 제멋대로 간다. 물론 DMWD에서는 넓은 해변에 수십, 수백 개의 팬잰드럼을 풀어놓으면 이리저리 비틀대다 어딘가에는 부딪힐 것이고 오히려 이런 경로의 예측불가능성이 적군을 더 당황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는 달랐다. 팬잰드럼을 해변에 풀어놓자 이 괴물은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중간에서 서 버리거나 쓰려졌다. 추진력을 높일 요량으로 로켓 분사기의 수를 더 늘렸더니 이번엔 맹렬하게 헛돌다가 자빠지거나 뒤로 돌아 아군 쪽으로 달려오기도 했다. 그제야 DMWD는 팬잰드럼의 개발을 중단했다. 팬잰드럼에 몰입하는 덕분에 진짜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는 사장됐다. 그중에는 반스 월리스(Barnes Wallis) 박사의 천재적인 아이디어도 있었다.
 
댐 파괴용 물수제비 폭탄 ‘업킵’
 
연합군이 정말 파괴하고 싶었던 전략목표는 독일 산업의 심장부인 루르 공업지대였다. 그래서 루르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댐을 폭파해서 전체를 수장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공중에서 공격해서는 댐을 파괴할 수가 없었다. 댐을 파괴하려면 폭탄을 담장처럼 가는 댐의 윗부분에 떨어뜨려야 하는데 맞추기도 힘들고 효과도 별로 없었다. 댐을 터트리려면 댐 벽에 균열을 내서 수압으로 그곳이 터지게 해야 했다. 댐 벽을 강타할 수 있는 무기는 어뢰뿐이었다. 하지만 독일군도 어뢰공격을 예상하고 호수에 그물을 쳐 두었다.
 
엔지니어였던 월리스는 아이들이 수면에 돌을 던져 돌을 튀기게 하는 물수제비 놀이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신무기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폭격기에서 둥근 폭탄을 회전을 주어 투하한다. 폭탄은 수면을 퉁퉁 튕겨 전진한다. 독일군이 쳐 놓은 그물을 가볍게 뛰어넘은 폭탄은 댐 벽에 부딪혀 가라앉는다. 그리고 물속에서 수압을 감지해 폭발한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중학생 때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는데 학교에 가서 이 이야기를 했다가 친한 친구들에게까지 허풍쟁이로 몰린 적이 있었다. 월리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사정이 있었다. 아이디어를 현상 공모하자 온갖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순수한 마음에서 낸 사람도 있지만 한몫 잡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전쟁 중이라고 해서 인간이 애국자가 되지는 않는다. 살기가 어려우면 인간은 더 이기적이 된다. 그들은 연구비를 탐냈고 인맥과 학연 등을 총동원해 연구비를 타 갔다. 월리스 박사는 불행히도 평범한 중산층 출신이어서 군에 인맥이 없었다. 그렇게 사장될 뻔한 아이디어가 우연히 빛을 보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여러 가지 기각된 아이디어를 검토하던 고위 장교가 월리스의 아이디어를 발견한 것이다.
 
이 폭탄은 ‘업킵(Upkeep)’이라고 명명됐다. 개발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손으로 돌을 던져도 정확하게 튀기기 어려운데 폭격기로 물수제비 놀이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실험을 촬영한 기록 필름을 보면 업킵이 제멋대로 튀어 물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집요한 노력으로 성공하기는 했지만 가혹한 조건이 붙었다. 수면 위로 60피트 고도에서 수평비행을 하면서 떨어트려야만 제대로 튄다는 것이었다. 적의 대공 포화 앞에서 이런 저고도로 수평비행을 한다는 건 자살행위였다.
 
여기에 더 기가 막힌 조건이 붙었다. 야간폭격을 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전자장비가 없어서 야간에 60피트 고도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날개 양쪽에 조명을 달아서 V자로 수면에 내리 비치는 것이다. V자의 높이가 딱 60피트여서 점차 하강하다가 두 개의 조명이 수면에서 한 점으로 만나는 순간 그 고도를 유지하며 수평비행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적의 대공 포화 앞에서 야간에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불을 밝히고 초저고도 수평비행을 하라는 것이었다. 믿기지 않지만 용감한 조종사들이 이 임무를 기꺼이 해냈다. 1대가 격추됐지만 업킵은 루르댐을 폭파시켰다.
 
가공할 위력의 지진폭탄 ‘톨보이’와 ‘그랜드슬램’
 
월리스의 능력에 고무된 DMWD는 그의 아이디어를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그리고 업킵보다 훨씬 과학적이면서도 가공할 위력을 가진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연합군 공군의 최고 목표는 독일의 산업시설, 특히 무기공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설은 방호가 충분하고 이때의 폭격은 부정확해서 아무리 폭탄을 쏟아부어도 효과가 신통치 않았다. 공포의 융단폭격도 보기만 굉장하지 의외로 효과는 적었다.
 
도로, 교량 건설 전문가였던 월리스는 그 원인을 찾아냈다. 모든 폭탄은 땅에 부딪히면 위로 폭발한다. 하지만 이것은 대인 살상용으로는 괜찮지만 건물을 파괴할 때는 비효율적이다. 중요한 건축물일수록 표면에 가해지는 폭발에 강하게 저항하도록 설계되므로 공중에서 투하되는 폭탄의 폭발력은 대부분 공기 중으로 분산돼 낭비된다. 따라서 건축물을 효과적으로 파괴하려면 건물의 지붕과 벽을 때리는 게 아니라 기반을 허물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고안된 폭탄이 지진폭탄(Earthquake bomb)이다. 탄두가 지표에 부딪혀 폭발하는 게 아니라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 지중에서 폭발한다. 그러면 지진파가 퍼지고 근처의 건축물은 붕괴된다.
 
월리스는 두 종류의 지진폭탄을 설계했다. 하나가 톨보이(Tallboy)로 중량 5.4톤이었다. 이 폭탄은 너무 커서 폭격기를 개조해도 한 발밖에 실을 수 없었으나 그 위력은 가공 그 자체였다. 과거엔 제아무리 집중 폭격을 가해도 전체 건축물의 20% 정도를 파괴하기도 힘들었는데 톨보이로는 거의 100% 가까운 파괴력을 보였다. 이 폭탄에 독일의 U보트 공장, V2로켓 기지들이 치명타를 입었다. 나중에 월리스는 9.5톤이나 되는 개량형 지진폭탄을 개발했다. 그랜드슬램(Grand slam)이라고 불린 이 폭탄의 위력은 톨보이의 2배에 달했다. 기존의 상식을 뒤엎은 이 지진폭탄은 오늘날 미군의 벙커 버스터(Bunker buster·지하에 숨겨진 적의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개발된 초강력 폭탄)와 같은 각종 기능성 폭탄의 효시가 됐다.
 
신무기 개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팬잰드럼의 실패는 비전문가에 의한 운영, 혹은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한 결과였다. 월리스의 아이디어가 거의 사장될 위기에 처했던 이유는 상상력을 포용할 수 없었던 경직된 조직 및 학연과 인맥이라는 암적인 요소의 합작품이었다. 너무나 평범한 교훈이지만 아는 것보다는 실천이 어려운 리더로서는 언제나 되새기고 경계해야 하는 교훈이기도 하다. 그래서 혁신을 이루는 조직은 언제나 소수인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이 있다. 핵폭탄은 우울한 비극이었지만 원자력을 에너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차 세계대전 중 항공기는 비약적으로 발달해 오늘날 항공 산업의 기반을 닦았다. 컴퓨터가 바꾼 세상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전쟁이 만들어낸 발명과 기술을 이야기하면 불쾌해 하는 분들이 있다. 혹자는 전쟁이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건 궤변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한다. 그러나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분명 전쟁은 기술 개발을 수십 년은 앞당겼다. 이런 주장에 비판적인 분들은 전쟁이 기술발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이 행여나 전쟁을 정당화하거나 전쟁도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다. 전쟁과 기술의 상관관계가 주는 진정한 교훈은 전쟁의 필요성이 아니라 경쟁과 필요의 힘이다. 전시가 아니라도 경쟁과 필요의 힘을 깨닫고 헌신하는 인재가 많은 조직, 그런 인재를 공평하게 인정하고 확보하려는 노력을 앞세우는 조직이 경쟁에서 이긴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yhkmyy@hanmail.net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73호 언더그라운드 정보와 기업 전략 2019년 5월 Issue 2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