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Mind Management

무대의 정전… 그래도 연주는 계속됐다

정현천 | 94호 (2011년 12월 Issue 1)
 
 
 
 
지난 9월에 영국 런던으로 출장을 갔었다. 일을 마친 주말에 런던 남서쪽으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길포드(Guildford)라는 곳에서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차이콥스키의 곡들을 연주한다고 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가보았다. 길포드는 유서 깊고 매우 아름다운 도시였다. 이번 공연은 길포드에 새로이 문을 연 지-라이브(G-Live) 공연장의 개관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관객 중에는 단정하면서도 편안한 옷을 갖춰 입은 노부부들이 많았는데 참 부럽고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첫 곡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 서곡’이 연주됐다. 이어 두 번째 곡으로는 올해 차이콥스키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스무 살의 청년 다닐 트리포노프(Daniil Trifonov)의 협연으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연주했다. 그런데 1악장의 중간쯤 지났을 때 갑자기 무대 위가 깜깜해졌다. 새로 개관한 공연장의 설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객석에서는 약간의 술렁임이 일었다. 그러나 곧 암흑 속에서 연주가 계속됐다. 가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야외공연을 위해 갖고 다니는 소형 랜턴을 보면대 위에 설치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연주는 아무 문제없이 계속됐다. 지휘자는 몸짓을 좀 더 크게 하며 지휘를 계속했고 피아노 연주자는 흔들림 없이 건반을 두드렸다.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객석의 관객들은 이 모든 장면을 긴장 속에서 숨죽이면서 지켜보았고 약간의 술렁임은 금새 잦아들었다. 1악장이 끝났을 때 나는 마치 2002년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을 상대로 골을 넣었을 때와 비슷하게 머리칼이 서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 주로 나이가 지긋한 길포드의 주민들로 구성된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기립 박수를 보냈다. 원래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때는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 관행이 있지만 이날만은 예외였다. 마치 팝콘서트처럼 관객들은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고 엄지를 치켜세우고 옆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해댔다. 도저히 예견할 수 없고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상황에서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를 포함한 모든 연주자들은 관객들에게 최고의 감동을 선사했다. 1악장 후 무대조명 수리를 마치고 나머지 연주가 계속됐고 그 후의 모든 공연은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극장 지배인은 상황을 설명하면서 유머를 잃지 않았고 연주회를 마친 후에는 훌륭한 매너를 보여준 관객들에 대한 배려로 칵테일을 무료로 대접했다.
 
신뢰의 힘
이 경험은 며칠 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엄청난 위기상황을 반전시켜 관객들에게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모든 연주자들의 실력이 아주 뛰어나고 악보를 보지 않고도 전곡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연습이 뒷받침돼 있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단원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마음이 흔들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 연주자가 자기는 아무리 잘하더라도 오케스트라 전체의 연주가 흔들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했다면 바로 그 단원의 연주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명 한 명의 연주가 흔들리고 템포를 놓치거나 자신 없는 소리가 나오게 되면 바로 옆의 연주자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면 금방 전체의 소리가 무너지고 연주는 중단됐을 것이다. 미리 쌓아뒀던 기본기와 충분한 연습 외에도 ‘믿음’이라는 요소가 또 있었던 것이다.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진리나 진실, 원칙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은 종교적인 경우에는 신앙(信仰)이 되고 과거의 객관적,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적 사실 또는 원칙에 대한 경우에는 신념(信念)이 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 또는 이웃에 대한 것이다. 때로는 애완동물이나 다른 생명체에 대한 믿음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에 대한 것인데 이 믿음은 신뢰(信賴)라고 한다.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믿을 신()자 뒤에 다른 한 글자를 붙이는데 신뢰의 경우에 들어가는 뢰()라는 글자는 약간 예상을 벗어난 뜻을 가지고 있다. ‘의뢰할 뢰’라고 읽는데 원래 “남에게 말을 하거나 전해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거나 이익을 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신뢰한다는 것은 아무 반대급부 없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내가 무엇인가 얻는 것이 생긴다는 의미다. 이익을 전제로 믿는다는 것인지, 믿으면 이익이 생긴다는 것인지 그 선후관계는 여기서 따지지 말기로 하자. 이웃이나 동료 또는 어떤 사람을 믿으면 믿는 것으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이 생겨서 믿는 사람에게 돌아오거나, 또는 그럴 것을 기대하고 믿는다는 것이다.
 
경영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조직은 힘이 아니라 신뢰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강한 조직의 대표적인 예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을 든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치열한 경쟁으로 부침이 심한 항공산업에서 창업 이래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이익을 올린 유일한 미국 항공사다. 이 회사는 ‘일하기 좋은 기업(GWP:Great Work Place)’에 연속해서 선정되고 노조 조직률이 미국 항공사 중 가장 높은데도 거의 유일하게 노사분규가 없는 기업이다. 그 비결은 공동 창업자이자 1978년부터 2001년까지 CEO를 맡았던 탁월한 리더, 허브 켈러허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승무원, 정비공, 사무원 등 직원 누구나 회사의 비전, 가치, 철학을 CEO인 자신보다 유창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공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마 다른 회사와 우리 회사의 자본은 똑같을 것입니다. 또 다른 회사의 서비스 질도 우리 회사와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회사들이 우리 회사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직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마인드와 태도입니다.” 종업원에 대한 신뢰는 그들을 자부심으로 충만하게 만들었고, 그 자부심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나타났고, 최종적으로 높은 성과로 이어졌다.
 
 
진정한 신뢰
그러면 모든 신뢰는 이처럼 좋은 결과로 연결되는 것일까? 이웃을 믿음으로 인해 나쁜 결과가 생긴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1964년 3월13일 새벽 3시쯤 뉴욕주 퀸스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지배인으로 일하던 술집에서 야간 당번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강도의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여러 언론에서 방관자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다뤄졌으며 국내에서는 신경숙의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도 소개됐다. 미국 영화 ‘The Salton Sea’의 도입부 미사장면에서 신부가 “악인보다도 무서운 것은 선량한 시민의 무관심이다”라고 한 설교는 이 사건을 두고 한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젊은 여성이 강도의 칼에 수차례 찔려 사망하기까지 인근 아파트 주민 가운데 자그마치 38명의 목격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차를 세워둔 주차장에서 불과 약 30미터 떨어진 아파트 입구로 가던 중 30분이 넘게 여러 차례 칼에 찔리며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를 때 아파트에 살던 주민들은 불을 켜고 사건을 지켜보았지만 아무도 돕지 않았고 심지어는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 범인의 칼에 찔린 피해자는 “맙소사, 누군가 나를 칼로 찌르려고 해요! 도와줘요!”라고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불을 켜고 창밖을 내다 본 주민들 중 한 사람이 “그만둬!”라고 외쳤다. 그 소리에 범인은 도망치려 했지만 아무도 그녀를 도우려는 기색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서 아파트 입구까지 기어서 도망치고 있던 그녀를 두 번째로 찔렀다. 몇몇 주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알고 다시 전등을 켰지만 아무도 문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칼에 찔린 피해자는 입구 쪽의 주민에게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는 우편물 투입구에 대고 “그녀에게서 떨어져!”라고 외치기만 하고는 투입구를 닫아버렸다. 그 소리에 놀란 괴한은 다시 도망쳤지만 또다시 돌아와 도망치는 그녀를 찔렀다. 그녀는 비명과 함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몇몇 주민들이 소란스러움에 다시 집 앞의 등을 켰을 뿐 아무도 도우러 나오지는 않았다. 전과도 없었고 두 아이의 아버지였던 범인 윈스턴 모즐리는 또 도망쳤다. 피해자는 겨우 자기 아파트 입구까지 기어갔지만 이번엔 차를 타고 다시 돌아온 범인에게 집 앞에서 또 공격 당했다. 경찰에 아파트 주민 한 사람으로부터 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사건이 시작된 지 30분이 지난 새벽3시50분께였고 경찰은 불과 2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무수히 난자당한 채 방치된 피해자는 이미 사망해 있었다. 죽음에 이르게 한 치명상은 마지막 공격 때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만약 최초로 습격당했을 때에 누군가 경찰을 불렀더라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6일 뒤에 잡힌 범인은 나중에 법정 진술에서 집집마다 불이 켜졌지만 사람들이 사건 장소로 내려올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고 재심에서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처음에 이 사건은 <뉴욕타임스>에 달랑 네 줄짜리 기사로 실렸다. 그러나 나중에 뉴욕주 섹션 담당 편집자 로젠탈이 사건을 목격하고도 도와주지 않은 38명의 방관자들에 관한 기사를 썼고 미국 전역에 38명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과 격렬한 비난이 들끓었다. 이후 여러 심리학자들이 이 사건에 흥미를 가지고 관련된 심리 실험을 해서 사람들이 자기밖에 도울 사람이 없는 상황에선 꽤 높은 확률로 도움을 주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고 있는 경우에는 쉽게 도우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제노비스 신드롬’은 바로 그런 현상, 즉 ‘방관자 효과’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가 됐다. 38명의 주민은 왜 그런 어처구니 없는 방관자가 됐을까? 그들은 이웃을 믿었고 이웃 중의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피해자를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믿음은 그들을 도덕적으로 비난받게 만들었고 한 여자를 죽게 만들었다.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단원들과 제노비스 사건 속 퀸즈 주민들의 믿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답은 동양의 고전 채근담에 잘 나와 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이 반드시 모두 성실하지 못할지라도 저만은 홀로 성실하기 때문이요,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은 사람이 반드시 모두 속이는 게 아닐지라도 저는 먼저 속이기 때문이다.”
 
즉, 믿는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 성실해야 한다는 것이며 진정한 신뢰는 믿되 거기에 편승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동시에 자기가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만 믿음의 반대급부로 좋은 결과가 찾아온다. 그리고 믿음의 바탕 위에 자기 할 일을 다하는 사람으로 이뤄진 조직은 개인을 뛰어넘는 강한 힘을 발휘해 경쟁에서 이기고 높은 성과를 내게 된다.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처럼….
 
 
정현천 SK에너지 상무 hughcj@lycos.co.kr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1986년 SK그룹에 입사해 회계, 국제금융, 투자가 관리, 구조조정, 해외사업, 전략수립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SK에너지 상무로 근무 중이다.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다독가(多讀家)이며 변화 추진을 위한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최근 포용을 주제로 한 <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 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