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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인문 고전 강독

통념과 맞서 싸워라, ‘무모한 용기’를 갖고…

김원철 | 93호 (2011년 11월 Issue 2)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DBR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이 영국 유학 시절 겪었던 이야기다. 하루는 그의 지도 교수가 별생각 없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보기엔 말이야 일본인들은 너무 공손하고 인도인들은 너무 무례해!”

 

인도인인 센에게 불쾌감을 주기 충분한 언사였지만 센은선생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라고 공손히 답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줄 요량으로 대든다면 그 자신이 무례한 인도인이 될 터이니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센의 지도 교수가 범했던 잘못을 논리학에서는일반화의 오류라고 부른다. 대표성이 떨어지는 몇 개의 표본들에서 얻은 지식을 집단 전체에 적용시킬 때 발생하는 오류다. 일상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다 보니 일반화의 오류는 유머집의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다음은 센도 한 차례 인용한 적이 있는 이탈리아의 유머다.

 

파시스트 국민당의 세력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던 무렵 한 열성당원이 시골 영감에게 입당을 권유했다. 하지만 영감은 시종일관 마이동풍이다. “내가 어떻게 당신네 정당에 가입하겠소? 우리 아버지도 사회주의자고 할아버지도 사회주의자였는데! 난 정말 파시스트 국민당에 들어갈 수 없단 말이오!” 영감의 고리타분한 생각을 깨뜨리지 않고는 승산이 없다고 여긴 당원은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되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 그러오? 만일 당신 아버지가 살인자이고 할아버지 또한 살인자였다면 당신은 어떻게 했겠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인자였다고 해서 당신까지 살인자가 되라는 법은 없듯이 그들을 핑계 삼아 사회주의자 정당을 고집하는 태도도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걸 지적했다. 잠시 망설이던 영감은 당원에게 말했다. “당신 말대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인자였다면 나는 파시스트당에 입당했을 거요.” 파시스트 국민당의 폭력성을 비웃는 재치 만점의 답변에 당원은 할 말을 잃었다.

 

논리적으로만 따지자면 당원의 말이 옳다. 집단의 몇몇 성원들이 우연히 공유했던 성질을 집단 전체의 성질로 간주하는 것은 크나큰 실수다. 하지만 남의 눈의 가시는 보아도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법. 무솔리니의 파시즘 치하에서 많은 사람들은 당이 제시한 시민 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다. 시민이면 반드시 갖춰야 할 품성을 임의적으로 정한 파시스트 정권이야말로 잘못된 일반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일반화의 오류가 마력을 발휘하는 데 물리적인 강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공손한 인도인 행세를 해야만 했던 센의 경우처럼 물리적 강제 없이도 상대방의 주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일상에 비일비재하다. 심한 경우에는 그것이 오류인지도 모른 채 이리저리 통용된다. 일반화의 이러한 마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문제에 앞서 잠시 다른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인도인은 무례하다는 선생에 대해 센이 취했던 전략이 효과적일까? 선생의 주장을 조금 확대시켜 보면 다음과 같은 삼단논법이 된다.

 

모든 인도인은 무례하다.

센도 인도인이다.

따라서 센은 무례한 행동을 할 것이다.

 

이에 맞서 센은 공손한 학생처럼 행동하는 전략을 취했다. 요컨대, 자기 스스로가 선생의 주장을 반박하는 사례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삼단논법으로 표현하면

 

‘센’이라는 학생은 무례하지 않다.

그는 인도인이다.

따라서 모든 인도인이 무례한 것은 아니다.

 

순수 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센의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주장을 뒤집기 위해서 수백 개의 반증사례를 나열할 필요는 없다. 흰색 까마귀가 단 한 마리만 존재해도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주장은 거짓으로 판명된다.

 

그렇다면 센의 전략은 심리학적으로도 효과적일까? 그의 선생은 이번 일을 통해 인도인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깨뜨릴 수 있을까? 단언컨대 선생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다. 인도인의 무례함은 인도에서 온 학생마저도 동감하는 바가 아닌가. 사실 사람들의 관심은 세상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주장에 더 강력하게 끌리는 법이다. ‘모든 인도인은 무례하지 않다는 주장은 인도인 일반에 대해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데 반해모든 인도인은 무례하다는 주장은 인도인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성질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센이 몸소 보여준 반증세례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믿음이 후자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일반화의 오류 뒤편에는 아주 오래된 믿음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이 믿음에 따르면까마귀’ ‘백조’ ‘인도인등과 같은 일반 명사로 불리는 것들은 그것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도록 하는 공통적인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은 그것이 믿음인지도 모르는 채 철학자들에 의해 통용돼 왔다. 그 이유는 철학의 임무가 사물들에 대한 진정한 설명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간에 대한 진정한 설명은 인간의 본질을 진술하는 것이며 이러한 진술이 인간이라는 개념의 참된 정의가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진술이 하나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철학적 논쟁은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인간 본성이 있다는 믿음은 결국 언어의 미혹일 뿐 다른 무엇도 아니다.

 

자신도 한때는 추종했던 이 믿음을 타파하고자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도입했다. 하나의 개념으로 포섭되는 대상들 사이에는 가족의 구성원들 사이에 발견되는 종류의 유사성이 존재할 뿐이다. 가족 중 몇몇은 얼굴 생김새가 서로 닮았고, 몇몇은 걸음걸이가 서로 닮았고, 또 몇몇은 기질이 서로 닮았을 뿐이지만 그들 모두는 한 가족의 구성원이다. 다양한 유사성들이 겹치고 교차할 뿐이지 가족의 구성원들 모두에게 존재하는 어떤 본성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개념이 지칭하는 대상들도 마찬가지다. ‘놀이라는 말이 지칭하는 것들에는 카드놀이, 공놀이 등 다양한 부류가 있다. 이 모든 것들에 공통적인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게임들에서 많은 공통점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두 번째 부류로 옮겨오는 순간 대다수는 사라지고 다른 특징들이 새롭게 등장한다. ‘놀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는 명확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 무지하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어떤 것은 놀이이고 어떤 것은 놀이가 아닌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한계를 알지 못하기에 개념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 한계를 알지 못하는 것은 아무런 한계도 그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적 탐구, §69)

 

개념에 상응하는 어떤 실재가 있을 거라는 믿음은 버려야 한다. 이 믿음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논쟁들이 발생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함량미달로 낙인찍혀 박해를 받았는가. 해결돼야 할 문제는 없고 오직 해소돼야 할 문제만이 남았을 뿐이다.

 

철학의 깊이는 문법적 농담의 깊이와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말장난식 농담은 논리가 아니라 심리적인 효과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공손하지 않다. 철학사의 위대한 스승들을 불쾌하게 만들 법한 언사로 그릇된 믿음들을 조롱하며 놀려댄다. 세상의 통념에 맞서 싸우려는 자가 어찌 공손함을 미덕으로 삼겠는가? 사고의 해방은 뛰어난 통찰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모할 정도의 용기가 없다면 통념의 굴레 속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리라.

 

 

 

김원철 철학박사 won-chul-kim@hanmail.net

필자는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파리 고등사회과학원(E.H.E.S.S)에서 스피노자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특히 윤리학의 역사, 스토아철학, 아우구스티누스에 관심을 갖고 관련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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