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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the Maestro-김석철 아키반 대표

“탁월해지고 싶다면 ‘위대한 학생’이 돼라”

신수정 | 87호 (2011년 8월 Issue 2)


“수술 전날은 오히려 편안했다. 수술이 잘되면 대학 입학 때 뜻을 뒀던 한국 철학사를 쓰고 동양과 서양의 중세도시를 비교 연구하리라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제1 차 세계대전이 최고조에 이를 무렵 여섯 편의 중요 논문을 썼는데 모두 두 달 안에 완성한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몸이 나으면 도시와 건축, 수학과 철학을 다시 하리라고 생각했다. 수학은 10대에 꽃이 피고 20대에 시든다. 수학에 빠졌던 10대는 황홀했다. 20대에 건축에 열광해 ‘하늘의 마을’을 그렸고 30대에 도시에 몰두해 한강·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만들었다. 40대에 예술의 전당을 설계하고 50대에 다시 도시설계로 돌아와 취푸와 인천 신도시를 설계하다가 60대에 심장병과 암이라는 덫에 걸렸다…. 암과 심장병을 앓았던 3년 동안 반은 쉬고 반은 책을 읽으며 지내면서 중세도시와 한국 건축을 다시 공부했다….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암은 앎이 됐다.” - 2009년 2월 ‘암과 앎 사이’.
 
김석철(68)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이자 명지대 석좌교수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많다.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이자 도시설계자로 수학, 철학, 물리학 등 여러 개의 프리즘을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예술의 전당, 서울대 캠퍼스, 여의도 마스터플랜, 쿠웨이트 자하라 주거 단지, SBS 탄현 스튜디오, 베이징 경제개발특구 등이 있다.
 
서울 북촌 가회동에 있는 아키반 사무실에서 만난 김석철 대표는 3시간가량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그는 2002년 암 선고를 받은 후 위암과 식도암 수술을 거듭한 탓에 목으로 음식을 잘 넘기지 못한다. 음식 대신 독서를 통해 지식을 주로 흡수한다는 그는 위를 잘라내는 16시간의 큰 수술을 마치고 쉴 때 손으로 글 쓰기가 힘들자 경복궁과 창덕궁 벤치에 앉아 녹음기를 들고 책에 쓸 내용을 목소리로 풀어냈다. 이날도 그의 책상 위에는 최근 추진하고 있는 제주도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로젝트 등 일거리가 잔뜩 쌓여 있었다.
 
칼럼니스트 김서령 씨는 김석철 대표를 “아이 같은 천진함 뒤에 희로애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유가적 품성이 비쳤다. 자유와 절제, 상상력과 현실인식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인간 유형”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실제로 만나본 김 대표는 김서령 씨의 설명 그대로였다.
 
한 분야에서 거장(maestro)이라는 평가를 받기까지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탁월함을 향한 열정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를 들어봤다.


철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대표님의 인생에서 건축과 도시설계는 무엇인지요.
“할아버지는 한말 중추원 의관을 지내신 분으로 의사와 한의사를 겸하셨어요. 할아버지 앞에서 정좌하고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을 배웠죠.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공부보다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이가원 선생의 한문강독을 혼자 공부했고 한학자이신 해암 선생께 매일 3시간씩 고전 한문을 배웠어요. 반년 만에 다시 성균관대 교수를 지낸 호정 선생에게 사서삼경을 배웠습니다. 어렸을 때 배운 한학과 고등학교 때 접한 철학에 매료돼 논리학과 수리철학을 더욱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집에서는 3대째 의사 가문을 이어야 한다고 의대를 권했습니다. 아버지는 서울대 치대를 나오셨지만 사업가로 활동하셨고 제가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의사가 되기를 원하신거죠. 그런데 저는 의사와 판검사는 정말 하기 싫었습니다. 의사들은 한정된 환자만을 치유하고 판검사는 남을 판단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싫었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고 그게 철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에 누나가 건축가로서의 길을 추천했습니다. 집안과도 잘 알고 지내던 박종홍 선생과 진로를 상의했는데 선생께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건축을 하면 그것은 역사에 남는 하드웨어가 될 것이다. 건축은 법과 제도, 문화, 도시 등 다양한 분야와 관계돼 있어 이것이야 말로 큰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건축과로 가기로 결정한 후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테스트먼트(A Testament)’를 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화가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평생 그린 그림은 20개를 넘지 않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남은 작품 중 그의 작품으로 확실시 인정되는 것은 겨우 8개 정도죠. 다빈치는 그림 외에 도시설계, 건축, 수학, 물리학, 수리학,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뛰어난 천재였고 그림은 그 중 한 부분이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생각을 담은 코덱스(codex)를 작성하면서 보냈습니다. 건축은 저에게 다빈치의 그림 같은 존재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저는 건축가와 도시설계사로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외에도 많은 시간을 다양한 공부와 활동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활동이 건축과 도시설계의 바탕이 됐죠. 또 건축가와 도시설계자는 일종의 ‘성직자’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물과 도시는 현재 우리의 소유이기도 하지만 미래에도 계속 남아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세속의 이익을 추구하면 안 되지요.”

지금까지 반세기 가까이 건축과 도시설계를 하셨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무엇인지요.
“건축물 중에서는 한샘시화공장을 가장 좋아합니다. 설계를 부탁한 한샘의 조창걸 회장이 원하는 것은 3가지였습니다. 첫째, 이 세상 최고 효율의 공장, 둘째, 일하는 사람이 최고의 공간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공장, 셋째, 아름다운 공장이었어요. 이러한 공장을 설계하기 위해 조 회장과 함께 1년 동안 세계의 자동화 라인공장을 돌아다녔습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도입한 것이 전 세계 최초로 노동자들이 직접 라인을 조절할 수 있게 한 설계입니다. 직원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자유롭게 생산라인을 바꿀 수 있죠. 부엌가구 재료는 원목이나 ‘PB(particle board)’라는 가공목재인데 자르고 구멍을 뚫다 보면 엄청난 톱밥가루가 나옵니다. 이 먼지는 고스란히 공장 노동자들에게 들어가죠. 먼지를 없애기 위해 톱밥먼지를 배관을 통해 공장상부 집진장치로 모이게 해 연료로 재활용하게 만들었어요. 이러한 건축 설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단지 건축뿐 아니라 수학, 공학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치밀한 건축 설계를 위해서는 탄탄한 수학, 공학적 능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도시설계 중에서는 비록 실현시키지는 못했지만 ‘취푸(曲阜)’를 가장 아낍니다. 취푸는 공자가 태어난 도시로 유학의 본고장이죠. 공자의 묘가 있고 자금성에 버금가는 큰 성이 있습니다. 칭화대 객원교수로 있을 때 맡게 된 프로젝트인데 도시의 역사성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현대 도시로서의 기능도 수행하기 위해 내부를 그대로 두고 외부에 도시를 만드는 안을 제안했습니다. 취푸는 역사를 품고서 최고의 에너지 효율을 내는 도시모델입니다. 중국은 도시화 시작 단계인데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 모델을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의 위대한 도시들의 흐름 속에서 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러한 도시들은 화석에너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도시의 질서 틀을 동양적 원리로 짤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도시가 된다는 것을 취푸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죠. 열심히 작업하던 중에 암에 걸려 실현할 기회는 얻지 못했습니다.”
 
건축과 도시설계 분야에서 한국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분야에 관계 없이 탁월함을 이룬 사람은 해당 분야에서 자기를 버리는 헌신과 사랑이 있습니다. 중국의 유학자 주자(朱子)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잠시 벼슬을 했습니다. 하지만 학자로서 이러한 사실을 매우 부끄러워했고 남은 평생 동안 학문에 헌신했습니다. 주자는 논어를 다 읽고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과 같다’고 말했어요. 화가 마티스는 췌장암 선고를 받고서 의사에게 3년만 더 살게 해주면 내가 아직 못 이룬 것을 마저 끝내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마티스는 3년 동안 걸작들을 완성했고 또 다시 3년을 더 살게 되자 아픔 속에서도 휠체어를 타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탁월함이란 이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 국가 같은 차원을 뛰어넘어서 자신을 던지는 것, 지극한 사랑 그 자체죠. 탁월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집념도 필요합니다. 사랑과 헌신만으로는 부족하죠. 저도 암 때문에 죽음이 문턱에 오고 유산을 정리해야 하는 순간에도 새벽 3시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취푸 프로젝트를 마저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렸을 때 본 논어를 다시 읽었습니다. 지금도 밤에 수시로 책을 보고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청년 시절 한창 열심히 일할 때는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자지 않았어요. 온 몸에 파스를 붙이고 손의 통증 때문에 붕대를 감은 채 작품들을 스케치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최근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기업 CEO들이 많습니다. CEO들이 인문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건축은 인문학에 포함돼 있어요. 저는 영국에 갈 때마다 ‘브리티시 라이브러리’에서 책을 꼭 읽는데 건축 관련 서적들이 ‘humanities’에 분류돼 있어요. 인문학이란 공동체의 큰 흐름을 보게 하는 학문으로 우리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설명해주죠. 세상이라는 거대한 하드웨어를 이해하기 위한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의 바탕 없이는 어떤 일에서도 탁월함을 이룰 수 없어요. 우리의 삶과 죽음, 이 세상 모든 지혜가 인문학에 담겨 있는데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거나 모르고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없는 거죠. 가장 손쉽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역시 독서입니다. 물론 일부 뛰어난 사람들 중에는 책을 읽지 않고서 스스로 깨닫는 이들도 있지만 드문 일이죠. ‘책에 길이 있다’는 말이 참 맞는 말 같습니다. 사실 스스로 명상하고 사색하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보통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반면 책은 그냥 읽으면서 빨려 들어가면 되니깐 비교적 편안하잖아요. 위대한 인문학자들이 너무나 많지만 특히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문학자를 꼽는다면 러셀과 톨스토이예요. 투병할 때는 엘리엇을 많이 읽었습니다. 한국의 인문학자 중에서는 박종홍 선생과 백낙청 선생의 글, 박경리 씨의 토지를 좋아합니다.”
 
건축과 도시설계는 고도의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즉 영감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요.
“독서는 토지처럼 바탕이 되는 것이고 토지 위에서 자라는 나무 같은 존재는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앨런 튜링이라는 컴퓨터 발명가가 있습니다. 그는 최초의 컴퓨터를 발명한 천재였지만 동성애 혐의로 인해 여성 호르몬 투여라는 치욕적인 처벌을 받았죠.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면서 그의 사고는 조금씩 멈춰가기 시작했고 그는 자살의 길을 택했습니다. 앨런 튜링은 ‘나는 이 세상의 가장 많은 것을 사람으로부터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俄師: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 만한 것은 있다는 의미)죠. 사람으로부터 배우라는 말은 각종 모임에 참가하고 사교활동을 많이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한번 스치는 인연이라도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이지요. 앨런 튜링은 친한 친구와 풀밭에 앉아 별을 바라보며 했던 이야기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은 글을 쓰는 겁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기 전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항상 직접 글로 써봅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내 중심적으로 과장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만사 다 아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기억장치는 왜곡될 수밖에 없어요. 기억장치는 머릿속에서 가지런히 저장되지 않고 나에게 유리한 것, 편안한 것 위주로 저장시키는 경향이 있어요. 글을 쓰다 보면 생각보다 자신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글을 쓰면 머릿속 생각 및 지식의 부족함을 깨달아 자기 반성과 성찰의 기회가 생깁니다. 도시 속에서 사람 사이를 걸어다니는 것도 좋아합니다. 1주일에 2번은 꼭 창덕궁에 가는데 창덕궁을 거닐다 보면 어느 순간 ‘아’ 하면서 고민했던 문제에 관한 답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베니스, 칭화대, 컬럼비아대에서 근무할 때도 각 도시의 곳곳을 구석구석 다녔습니다. 저희 누님이 미국 맨해튼에서만 50년 넘게 살았는데 제가 오히려 맨해튼 골목을 더 잘 압니다. 베니스에서 태어난 동료 교수는 저에게 베니스 지리를 물을 정도고요. 도시를 걸으면서 그곳에서 스치는 사람들로부터 신선한 영감을 얻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을 포함해 많은 유명인들이 조언을 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업 CEO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지요.
“저에게 의견을 구하러 오는 리더들에게 꼭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첫째, 하루에 2시간은 아무도 만나지 말고 자신의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음악을 듣든지, 영화를 보든지, 책을 읽든지 2시간은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문제에 봉착할 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아닌, 본인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들어줄 사람이 3명은 있어야 합니다. 저에게 3명은 우리 각시, 아키반에서 같이 일하는 제자, 백낙청 선생입니다. 사실 이 3명 외에도 저는 제 깊은 고민이나 생각을 이야기할 만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시인 고은 선생과도 1년에 한두 번은 꼭 만나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마지막으로 리더라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특히 자신을 뽐내고 과시하려는 CEO들이 많은데 인간은 타인이 존재함으로 인해 본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CEO를 집단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사람(Creative Energy Officer)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Chief는 왠지 위에서 누군가를 누르고 제압하는 의미인 것 같아서 별로고요. 타고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자꾸 자기 얘기를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자기도 모르게 선생이 되려고 하는데 위대한 학생이 돼야 합니다. 위대한 학생의 특징은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듣는 게 아니라 남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호기심과 흥미를 느껴 마음으로 잘 듣는 것이지요. 한번은 백낙청 선생과 술을 마시다 제가 술이 좀 과해서 ‘요즘 영문학자들이 셰익스피어만 공부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D. H. 로런스 같은 사람을 공부해야 한다’며 제가 읽은 로렌스의 얕은 지식들을 백 선생 앞에서 소리 높여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백 선생이 제 이야기를 너무나 즐겁고 흥미 있게 들으셨죠. 그런데 글쎄 나중에 알고 보니 백 선생은 하버드대에서 D. H. 로런스로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었습니다. 백 선생께 왜 나 같은 사람의 로런스 강의를 그렇게 열심히 들었냐고 물어보니 ‘아 로런스를 저렇게 읽고 해석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정말 재미있게 들었다고 답하시는 겁니다. 고은 선생 역시 남의 말을 참 많이 듣습니다. 주로 본인이 하시기보다 들으시는 편이시죠. 탁월한 사람은 남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새로운 견해를 들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본인을 낮추는 것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또 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패배가 확실시되면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져야 합니다. 이후 패배에서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유도를 배웠는데 유도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낙법입니다. 공격은 그 다음입니다. 깨끗하고 멋지게 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만큼 좌절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좌절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전진하려면 승자에게 깨끗하게 승복하는 자세, 패배 속에서 배우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고 고민 중이거나 천착하고 있는 화두는 무엇인지요.
“현재 제주도 힐링파크 작업을 한창 진행 중입니다. 암 투병이 끝나고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고 암 이후의 삶을 다룬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병들고 나이 들고 지친 사람들이 다시 회복하고 쉴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말 즈음에는 도시설계와 관련해서 지식이 필요한 공무원들을 위한 도시설계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습니다. 어떻게든 수업을 듣게 해서 도시경영의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게 해주고 싶어요. 버클리음대 아시아 캠퍼스도 설계 작업 중입니다. 고전음악도 좋지만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도 중요하죠. 한국의 대중음악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하는 작업이 한국의 대중음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일이 아닌 개인적으로 깊이 빠져든 취미는 중국 미술품 수집입니다. 골동품 관련 서적은 모조리 사서 읽고 있는데도 원래 가치보다 자꾸 비싼 가격을 주고 있어요. 역시 평생 천착하고 공부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제 취미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한국, 중국,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미술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전시회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중국이 100년 만에 다시 대국으로 일어섰고, 일본은 쓰러져 가고,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내용을 담아서요.”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김석철의 단상
“하루 열다섯 시간을 일했던 정릉 시절과 많은 것이 초기에 포기됐음에도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일하던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알고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성실성과 신뢰를 잊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찮은 세속적 성공과 개인적 성취가 삶의 장애가 돼서는 안 된다. 정릉 시절의 스케치들을 모아보자. 그때의 순수했던 집념의 궤적을 다시 보자.” - 1989년 3월, 서울∼카이로 간 기상에서.
 
“일에 대한 집요함은 건축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욕심이 아닌 흔들리지 않는 집념이 필요한데 쉽게 현실과 타협한다. 건축은 건축주의 것이 아니다. 한시적 주인보다 영원한 주인들에 대한 포괄적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일 욕심보다 세속의 욕심이 크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이미 작가가 아니다. 세속적 처세는 스스로를 배반하는 것이다. 역사에 참여해 자기를 실현하려는 순수한 열정을 지녀야 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 1997년 1월, 건축의 도전.
 
“시간은 지나지만 공간은 남는다. 건축가는 시간의 내용을 공간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대의 상형문자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건축가로서 이 시대 한가운데에서 역사의 흐름을 정면에서 부딪치는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다. 건축은 이제 나의 삶 그 자체다. 참으로 좋은 건축은 진실한 삶과 같은 것이다.” - 2002년 9월, 나의 건축 이야기.
 
<대학>과 <논어>를 읽던 그 명증하던 날들을 잊고 살았다. 2년 동안 두 번 큰 수술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잊고 살았다. 취푸 계획을 하던 베네치아와 베이징에서는 몰두했으나 돌아와 잊었다. 논리학과 수리철학을 함께하려고 한문과 독일어를 배우던 순수한 시간으로 돌아가자. 취푸 세계 도시화 계획을 하면서 읽던 사서삼경을 다시 읽고 주역을 수리철학과 함께 공부하리라던 열망을 잊고 잠시 세속의 박수에 취해 살았다. 진부한 삶을 거듭하는 것은 자기를 배반하는 일이다.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나인 것이다.”
 
- 2005년 8월, 중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쓴 글.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암은 앎이 되었다…. 생로병사의 고해바다를 지나고 있다. 병든 것은 자기 잘못이다. 마음과 정신을 밝고 바르게 하는 것 못지 않게 몸도 바르고 맑게 해야 한다. 몸의 게으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병이다. 몸이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나려면 몸과 마음을 함께 치유해야 한다. 몸을 떠나면 마음과 정신도 허상이다. 병든 것을 반성해야 한다. 병은 사고가 아니라 응보다. 일도 탐욕이다. 정신의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상상력 과잉이 탐욕을 낳는다.” - 2009년 2월, 암과 앎 사이.

김석철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도시설계자다. 1943년 태어나 경기고, 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김중업, 김수근 선생에게 사사했다. 1970년 서울대학교 응용과학연구소를 창설했고 <현대 건축>을 창간, 주간을 지냈다. 현재 ‘아키반(ARCHIBAN)’ 건축도시연구원 대표, 명지대 석좌교수이자 명예건축대학장이다. 뉴욕 컬럼비아건축대학원, 베이징 칭화대, 충칭대 초빙교수, 객좌교수를 지냈다. 제1회 한국건축문화대상, 제1회 올해의 건축인상,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과 이탈리아 정부 국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예술의 전당> <제주영화박물관> <한샘시화공장> <비원 스튜디오> <시네시티> <쿠웨이트 주거신도시> <베이징 경제개발특구> <해인사 신불교단지> 등이 있다. 저서로는 <아키반 선언> <한국인의 집 2000> <천년의 도시 천년의 건축>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김석철의 도시계획·도시설계>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 등 수십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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