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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들과 호손 효과

하정민 | 78호 (2011년 4월 Issue 1)

야구계의 속어 중양아들이란 말이 있다. 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유난히 아끼는 바람에 자주 출전하는 선수를 말한다. 스타 선수 중에는 무명 시절 양아들이라는 핀잔을 들었던 선수들이 꽤 있다. 대표적 예가 두산베어스의 김현수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구단으로부터 지명을 받지 못했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2007년 입단한 그를 3번 타자로 기용했다. 신고 선수를 중심 타선에 넣으니 말이 많았다. 성적도 좋지 않았다. 김현수는 시즌 초 종종 삼구삼진을 당했고 5월에는 2군도 다녀왔다. 많은 야구 관련 게시판에는김현수가 감독의 양아들이냐는 글이 올라왔다. 결국 그는 규정 타석을 못 채우고 2007년을 마감했다.

김 감독은 2008년에도 그를 계속 중심 타선에 기용했다.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도 발탁했다. 이 역시 말이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결국 김현수는 올림픽 일본 전에 대타로 나와 일본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이와세 히토키를 상대로 역전 결승타를 쳤다. 좌타자인 그가 좌투수를 상대로 경기의 흐름을 바꾼 적시타를 친 장면은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2008년 타격왕이 됐고, 이후 최정상급 타자로 군림하고 있다.

김현수의 선전 뒤에는 김 감독의 용병술, 부동의 4번 타자인 김동주의 우산 효과 등이 있다. 하지만 감독이 자신을 남다르게 보고 있다는 점을 알고, 그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그가 열심히 노력했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사람은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쏟을 때 평상시보다 훨씬 분발하고 노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라 한다.

1920년대 미국 일리노이 주의 호손 공장에서 생산성에 관한 실험이 이뤄졌다. 연구진은 적정 노동 시간을 정하거나 작업장의 조명을 밝게 하는 등 환경 개선에 주력했다. 하지만 생산량은 별 차이가 없었다. 이에 연구진은 몇몇 직원을 다른 작업실에 격리했다. 작업 규칙을 완화하는 등 특별 대우를 해 주자 이들의 생산성이 증가했다. 효과가 오래가진 않았지만 원래의 작업 규칙을 적용했을 때도 이들의 생산량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호손 효과는 주위의 관심이 임금이나 근무 여건만큼 업무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타인의 관심을 얻은 직원은 자신을 생산 활동의 주체로 인식하고 성과 향상에 강한 의욕을 갖는다. 양아들로 불리던 무명 선수가 한국 최고의 타자로 거듭난 비결도 여기에 있다. 물론 리더의 관심과 애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하지만 이게 없으면 애초에 무명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가 쉽지 않다. 훌륭한 리더는 이 점을 잘 활용할 줄 안다.

김경문 감독은 2010년에도 두 명의 양아들을 뒀다. 그는 다른 대안이 많음에도 한 번도 붙박이 1군 선수가 아니었던 양의지와 이성열을 각각 주전 포수와 주전 우익수로 기용했다. 두 선수는 모두 넓은 잠실 구장에서 2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두산베어스가 매년 훌륭한 신인들을 여럿 배출하며 화수분이라는 칭찬을 듣는 이유다.

리더의 관심과 애정이 중요한 이유를 역으로 한국에 온 용병 선수의 성적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2008년 기아타이거즈에서 뛴 호세 리마는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에 무려 21승을 거둔 적도 있는 투수였다. 하지만 리마는 14경기 만에 36, 평균 자책점 4.89의 초라한 성적으로 퇴출당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환경, 30대라는 나이도 문제였지만 단기간에 실적을 보여줘야 하는 용병의 현실, 즉 리더의 특별한 신뢰와 인내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선수를 압박한 측면도 적지 않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최고 타자 이승엽의 상황도 비슷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자신의 관심과 주목이 부하 직원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아는 리더는 많지 않다. 될성부른 떡잎을 판별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떡잎에 물과 거름을 주는 리더의행동이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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