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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김창근 SK 상생경영위원회 위원장

“협력업체와의 기술 융합 상상 초월하는 지각변동 불러올 것”

하정민 | 76호 (2011년 3월 Issue 1)
 

 
SK그룹은 2006년 주요 대기업 중 최초로 협력업체의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인 SK 상생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SK 협력업체의 부·차장급을 대상으로 경영전략, 재무, 회계, 마케팅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교육 과정이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 진정으로 중소기업을 돕는 것이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지난 5년간 총 10만 명, 연 평균 2만여 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SK는 2008년 9월 SK 상생경영위원회도 만들었다. 협력업체를 위한 그룹 단위의 상생 경영 체제를 구축해 성과를 극대화하자는 취지에서다.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협력업체를 방문해 애로사항을 듣는 ‘찾아가는 릴레이 상생경영’ 제도도 도입했다. 2009년에는 SK그룹이 은행에 예치한 예탁금에서 발생하는 이자를 재원으로 협력업체의 대출이자 인하를 지원하는 제도인 SK 상생 펀드도 만들었다. SK는 이 펀드를 통해 시중 금리보다 낮은 수준으로 업체당 최고 30억 원의 자금을 빌려주고 있다. 수혜 대상에는 SK와 직접 거래하지 않는 2, 3차 협력업체도 포함된다.
 
한 발 앞서 체계적인 상생 경영 시스템을 구축한 SK는 지난 5년간의 성과 및 상생 경영의 앞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SK 상생경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창근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을 만나 상생 경영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SK 상생 아카데미를 설립했을 당시와 현재의 상생 경영이 어떤 면에서 달라졌나.
상생은 더 이상 대기업의 사회공헌이나 도의적 책임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특정 개별 기업의 생존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 속해 있는 산업계 전체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게 상생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시장에서 단일 기업들 간 경쟁이 이뤄졌지만, 현재는 중소기업을 포함한 기업 생태계 간의 경쟁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들과 협력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상생 아카데미를 처음 만들었을 때 교육을 받으러 온 협력업체 임직원들의 반응은 대개 “얼마나 가겠어. 이러다 말겠지” “우리를 자사 홍보에 이용하는 거 아냐” “안 그래도 바쁜데 우리 직원들을 왜 부르는 거야”였다. 그 부정적 생각이 “생각보다 오래 가네” “이 교육 생각보다 쓸 만하네”로 바뀌었다. 이제는 “상생 아카데미에서 받은 교육이 우리 회사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는 수준으로까지 변화했다. 이 변화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진행됐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상생 경영이 대기업의 성과 창출에 실질적으로 어떻게 기여하는가.
기업의 규모가 작을 때는 자사가 잘하는 부분에만 집중하면 된다.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어도 자사의 핵심 역량에만 집중하면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업의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커지면 잘하는 부분보다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큰 회사라 해도 자사 제품의 연구개발, 생산, 마케팅,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자사 직원에게만 맡길 수 없다. 조직이 커지면 관리해야 할 위험도 그만큼 늘어난다. 그때 조그마한 누수 하나가 언제 어떻게 해당 기업을 큰 위험에 빠뜨릴지 모른다. 때문에 우리의 약점을 보완하려면 협력업체와의 상생이 꼭 필요하다.
 
협력업체와 제대로 된 기술 융합에 성공하면, 간단한 의미의 보완 정도가 아니라 핵분열 이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지각변동을 불러올 수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진정한 혁신은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게 아니라 기존 기술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달려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운신의 폭이 넓고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대기업은 자본력과 조직을 통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을 사업화하는 능력에서 앞선다. 때문에 양자의 장점을 적절히 결합해야 한다.
 
협력업체와 거둔 성과는.
SK
텔레콤은 스마트폰 보급 확산에 따른 데이터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쏠리테크 등 7개 협력업체들과 공동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그 결과, 2010년 초에 저전력, 고효율의 대용량 중계기 개발에 성공했다. 중계기 개발에 참여한 협력업체들은 2010년 상반기에만 350여 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SK 역시 장비 운용비 등을 대폭 절감했다. 관련 개발로 2010년 SK텔레콤의 비용절감 효과만 약 355억 원에 달한다.
 
SK텔레콤은 2010년 10월 5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OIC·Open Innovation Center)도 마련했다. 외부 개발자들에게 개발 공간, 자금, 마케팅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통로다. 지난해 12월에는 T맵과 문자메시지 등의 기반 기술(API)도 공개했다. 외부 개발자들이 T맵이라는 밑바탕을 활용해 한 단계 더 진화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회사 내부에서 우려가 많았다. 비즈니스 파트너는 물론 경쟁회사들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공개한 거나 다름없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중계기 계발에서 보듯 우리의 도움을 얻은 외부 업체가 혁신에 성공하면 결국 그 몫은 우리에게도 돌아온다는 점에서 옳은 결정이었다.
 
상생 경영 추진 시 조직 내부의 반발은 없었나.
협력업체를 단순 업무만 수행하는 존재로 여기거나, 소위 갑을관계 구조 하에서 원가절감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구성원들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SK그룹 역시 1970년대까지는 자금력과 조직력이 부족한 전형적인 중소기업이었다. 1세대 오너의 부인은 항상 사채를 빌리러 다니고, 직원들의 식사를 위해 직접 김장을 했다. 상생을 낯설어하는 직원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대기업은 없다”고 말한다.
 
상생을 통해 우리도 배운다. 중소기업 오너 중 기업가정신이 뛰어난 분들이 많다. 중소기업의 경영 현실이 여러 면에서 열악한데도, 가끔 놀랄 정도의 배포를 가진 분들을 만난다. 한 협력업체 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 “죽기 전에 우리 회사를 SK처럼 큰 회사로 키우는 게 내 목표다.” 그 분 나이가 일흔이었다. 실현 여부를 떠나 이런 포부와 야망이 없다면 한 조직의 리더가 될 수 없다. ‘일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하다가 안 되면 회사를 떠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대기업 직원들이 종종 있다. 중소기업에는 ‘이번 일이 안 되면 죽는다’는 태도로 달려드는 분들이 많다. 한마디로 야성성과 도전 의지가 살아있다. 우리 직원들이 그런 자세를 배웠으면 한다.
 
상생 경영의 정착을 위해 CEO가 해야 할 일은.
위에서 “문호를 개방하라. 걱정하지 말고 내줘라”고 말해도, 정작 실무 직원들은 “이건 나의 핵심 경쟁력인데 알려주면 나는 어떡하나. 내 자리가 없어지는 거 아닌가”라는 걱정을 할 수 있다. 결국 그 걱정을 없애주고, 조직 구성원들이 스스로 상생 경영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CEO의 몫이다. 성과 평가 지표에 상생을 반영하는 식의 동기 부여책이 필요하다.
 
사내 방송이나 사보 등에 경영진의 상생 경영에 대한 철학과 메시지를 꾸준히 담아야 한다. 홍보용이나 일회성으로 이 일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SK텔레콤은 상생 경영의 글로벌 트렌드와 주요 사례, 자사의 상생 경영 활동, 협력업체를 대할 때의 바람직한 자세와 태도 등 상생 경영 실천을 위한 온라인 교육 과정도 개발했다. 2010년 하반기에 개설된 이 강좌를 SK텔레콤 전체 임직원의 70%가 수강했다. 이 움직임이 다른 계열사로도 확대될 것이다. 상생 아카데미도 수강을 희망하는 협력회사의 숫자가 계속 늘고 있어 강의 시간과 교육 인원 등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김창근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
김창근 부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4년 선경 인더스트리에 입사한 후 SK 구조조정 추진본부 사장, SK(주) 대표이사 사장, SK 경영경제연구소 소장 등을 거쳤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이창하(26·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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