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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s from the Past

감성을 자극하라, 코끼리도 다룰 수 있다

김용성 | 63호 (2010년 8월 Issue 2)

 
편집자주 과거는 경영자들에게 큰 통찰을 줍니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인류의 과거 행동양식을 분석해 직관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용성 휴잇어소시엇츠 상무가 비즈니스에 응용할 수 있는 선조의 지혜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TV를 통해 대조적인 삶의 모습을 본다. 얼마 전 ‘아마존의 눈물’ 다큐멘터리가 20%에 가까운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원시림이 보존된 아마존 풍광도 볼거리였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시선을 끌었다. 특히, 조에족의 행복한 모습은 이기심과 계급화가 자리잡기 전 원시공동체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반면 지극히 인공적인 삶을 사는 모습도 TV에서 볼 수 있다. 가상 신혼부부의 일상을 관찰하는 설정의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고 있노라면, 출연자가 느끼는 애틋한 감정도 연출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현대인의 건조한 일상은 감정을 자극하는 대중매체의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인공적이든 원초적이든 TV는 인간의 감성을 적극 활용해 소비자(시청자)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반면 비즈니스 세계는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냉철한 이성이 활성화된 비즈니스 세계에서 감성이란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운 ‘코끼리’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최근 감성에 대한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과를 높이는 조직들이 발견되고 있다. 과연 이들이 인간의 감성을 어떻게 재발견하고 활용하는지 알아보자.
 
이성적 사회에서 질식하는 감성
주변의 자연도 통제할 능력이 없었던 과거에 인류는 거대한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영매(靈媒)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영매들은 트랜스(Trance) 상태에서 자연의 신비와 지혜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원시공동체는 나이 든 장로에게서 과거로부터 축적한 지식과 지혜를 구했다. 장로의 축적된 지혜와 영매의 감수성은 이성과 감성의 균형잡인 사용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지식과 기술로 자연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영매들의 예언은 농업기술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감수성보다는 합리성, 창의성보다는 분석력이 주도적인 사고력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성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영매들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일부는 예술 활동을 전업으로 삼기도 했는데, 이들은 대체로 ‘2류 시민’의 위상을 벗어날 수 없었다.
 
서구사회에 계몽주의와 산업화가 자리잡으면서, 감성은 이성을 보조하는 보조적 역할 또는 이성을 방해하는 동물적 특성 정도로 취급받았다. 산업화가 한창인 19세기에 인류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무한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과학적 관리기법의 도입으로 자본사회는 극단적인 생산성 경쟁으로 직원들을 내몰았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는 20세기 초 인간에 대한 자본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비즈니스의 시각은 1930년대에 뜻밖의 발견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 통신제조업체인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은 호손 공장에서 조명과 생산성의 상관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엘튼 메이요에게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당시 메이요 연구팀은 조명을 밝게 하면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웨스턴 일렉트릭의 용역을 받은 연구팀은 당연히 조명을 낮추면 생산성이 낮아지리라 가정했다. 하지만 조명이 어두워져도 생산성은 증가했다. 의아하게 여긴 연구자들이 조명을 다양하게 변화시켰는데, 생산성은 예상과 달리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이랬다. 연구팀이 지목한 생산조 직원들은 연구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리더를 중심으로 단합하자 주변환경에 구애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인 것이었다. 생산조 직원들이 연구과정에서 긍정적 자극을 받은 것도 한몫 했다.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로 알려진 이 연구결과로 노동자는 기계 부품이 아니라 감정과 의지를 지닌 인격체라는 사실을 재발견하게 됐다. 또 인간의 감성적 측면과 생산성의 상관 관계가 높기 때문에 현장 실무자의 감성 논리와 관리자의 비용 및 효율 논리가 충돌하면 문제의 불씨를 낳을 수도 있다고 예상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발견한 인간의 가치는 1940년대 전쟁의 포화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피터 드러커는 정보화 사회와 지식노동자의 삶을 예견하면서 사람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부가가치는 정보의 가공과 생산과정에서 발생할 것이며, 지식노동자는 육체노동자와 달리 생산의 주체성을 인정받을 것이라는 그의 통찰은 지금 돌아봐도 경이로울 뿐이다. 드러커의 주장대로 지식노동자의 업무는 결국 두뇌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지식노동자는 스스로 자기관리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지식노동의 부상으로 인간의 전인격적인 재조명이 시작됐고, 감성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이는 지식노동자의 생산성이 감정 상태에 따라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었다. 열정을 가지고 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간신히 해낼 때 생산성은 크게 달라진다. 지식노동의 생산성이 열정에 비례한다고 깨닫자, 비즈니스 세계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간의 감성에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감성 활용
피터 드러커가 1960년대에 지식노동의 특성에 대해 논했지만, 지식노동자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1990년대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됐다.
 
대니얼 골먼은 1995년 자신의 저서를 통해 감성을 다루는 능력이 지능의 일부며,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리더십의 중요한 항목이라고 주장했다. 감성을 이성의 보완적 장치 정도로 여기던 서구의 전통적 사고에서 볼 때, 감성도 지능이라는 개념은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그는 감성지능을 감성상태를 파악, 조절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특히 리더십의 본질에 감성지능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대니얼 골먼의 감성지능 개념은, 지식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고민하던 비즈니스 세계에 희망을 제공하는 빛으로 받아들여졌다. 1990년대 비즈니스 세계는 지식노동자의 생산성이 리더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리더의 감성지능 개발에 열을 올렸다.
 
2000년대에 들어 지식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을 가능케 할 또 하나의 개념이 도입된다. 긍정심리학 계열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미국 클레어몬트대학 교수가 행복추구의 방법으로 몰입(Flow)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물질의 소유가 행복의 기준이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결국 경제적 약자는 행복해질 수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반론으로 제시된 이 개념은 뜻밖에도 비즈니스 세계에서 환영받았다. 칙센트 미하이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도 잊는다는 사실에 관심을 뒀다. 동양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물아일체’라고 알려진 바로 그 심리상태다.
 
그는 서양의 과학자답게 다수의 실험대상자를 상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적 에너지를 쏟아 붓는 사람은 시공간적 감각을 상실하고 행복감을 느낀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언뜻 생각하면 이익 추구를 본질로 삼는 비즈니스 세계가 개인의 정신적 행복추구 방법론을 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칫하면, 노동자들이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함으로써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비즈니스 세계는 몰입이 가져오는 부수적 효과(side effect)인 역량 향상에 주목하고 몰입 개념을 적극 수용했다.
같은 수준의 자극을 반복하면 식상해지듯 과제의 난이도가 동일하면 몰입은 일어나지 않는다. 몰입을 추구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더 어려운 과제를 지향하는데 이 과정에서 역량 향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몰입 개념은 개인의 행복추구와 역량향상을 통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모두 가능한 일석이조의 방법론, 21세기형 경영이론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몰입을 이해할 때에도 단순한 점수가 아닌 사람들의 문화와 감성을 감안해야 한다. 몰입이 곧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휴잇어소시엇츠가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직원몰입 수준의 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과 일본이 늘 바닥에 위치한다. 아시아 국가들을 비교하면 필리핀, 대만, 인도 등의 직원 몰입수준이 한국보다 더 높다.(표1) 그렇다면 필리핀이나 인도 기업들의 생산성이 한국, 일본 기업의 생산성을 뛰어넘는단 말인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이다.
 
직원몰입 수준과 생산성이 일치하지 않는 데에는 문화적 요소 때문이다. 이는 이성과 감성 중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실리는가 하는 이슈와 관련이 있다. 몰입수준 조사에 응하는 직원들은 자신의 이성적 사고를 통해 기억을 더듬으며 응답한다. 자기절제를 강조하는 유교문화권에서는, 응답자의 이성적 사고가 활성화해 이런 조사에 비판적으로 응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은 실제 경험한 몰입수준보다 낮은 몰입수준을 보이게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 심리학에서 최근 발견하기 시작한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두 자아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당신이 20분짜리 클래식 명곡을 감상한다고 가정하자. 연주 마지막 30초에 갑자기 CD에서 불쾌한 잡음이 들리면 당신은 감상을 망쳤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당신은 분명히 19분 30초간 명곡을 감상했다. 마지막 30초의 불쾌한 기억으로 인해 당신은 앞선 19분 30초마저 망가진 기억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억하는 자아는 비판적 사고를 통해 행복한 기억마저 왜곡할 수 있다.
 
직원몰입 수준이 낮아 고민하는 한국 기업들이 귀 기울일 대목이다. 경영진은 낮은 수치에 대해 분명히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몰입수준 측정결과가 낮다고 해서 실제 몰입수준이 낮다거나, 낮은 생산성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직원들은 조사 과정에서 회사가 제공한 긍정적 경험을 비판적으로 기억하고 답변하며, 그래서 실제 긍정적 경험은 조사 결과보다 더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깊은 성찰이 부족한 일부 기업들은 직원들의 몰입수준을 점수로만 관리하고 감성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자칫 관리자들의 점수 올리기 경쟁으로 이어져 오히려 위선적 조직문화를 야기한다.
 
비즈니스 세계는 끊임없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연구를 거듭해왔다. 산업화 시기에는 물리적 요소를 조절해 생산성 향상을 추구했고, 정보화 사회에서는 인간의 감성을 조절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비즈니스 세계는 유동성이 심한 인간의 감성을 측정하는 수준을 벗어나 인간의 감성을 다룰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코끼리를 움직이는 두 가지 방법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학 교수 칩 히스는 자신의 저서 <스위치(Switch)>를 통해 감성관리야말로 성공적인 변화관리의 핵심이라고 설파한다. 이성적 선택이 아무리 옳은 결정이라도 감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는 기수와 코끼리의 비유를 인용하면서, 기수(이성)가 제시하는 방향이 옳더라도, 코끼리(감성)는 제 나름의 논리로 움직일 수 있다고 일갈한다. 그러니 논리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코끼리가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변화의 방법을 모색하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체중조절을 하려면 과식의 위험성에 대해 논하기보다 시각적 포만감을 일찍 느낄 수 있도록 그릇을 작은 것으로 교체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일단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면 두 번째 그릇에 쉽게 도전하지 않는 코끼리(감성)의 특성을 활용한 방법이다.
 
10여 년 전, 삼성전자는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출근시간을 오전 7시로 당기는 ‘7-4제’를 실시했다. 세계 경제 운운했을 때에는 꿈쩍 않던 직원들도 출근시간이 바뀌자 얼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혹자는 7-4제가 비인간적인 근무시간제도여서 실패했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거대조직에 변화의 바람을 성공적으로 불어넣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변화를 거대 담론 속에서 논하는 대신, 직원들이 일상에서 변화를 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이성적 관점에서 보면 조직의 변화는 ‘분석-이해-변화’라는 수순을 밟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감성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보고-느끼고-변화’하는 순서로 변화를 경험한다.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기술(The Heart of Change)>이라는 책에 소개된 어느 임원의 사례는 변화가 감성의 영역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임원은 구매과정 효율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장황한 프레젠테이션을 하지 않았다. 그는 회사가 구매하는 장갑을 종류별로 한 켤레씩 사서 회의실 탁자 위에 쌓아놓고 임원들을 불렀다. 임원들 입에서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뭐야, 우리가 이렇게 많은 종류의 장갑을 사고 있단 말이야. 도대체 이게 제정신으로 할 일이야?”
 
게다가 이 자리에서는 같은 장갑인데도 공급 업체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것을 보게 됐다. 이후 임원들은 즉시 구매과정 최적화 작업에 동참했다. 사례를 통해 우리는 성공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공식을 발견할 수 있다. 공식은 다음과 같다.
 

Effective Implementation =
Solution x Acceptance
(성공적 변화 = 솔루션 x 호응도)
 
아무리 뛰어난 솔루션이더라도 직원들의 호응이 부족하면 조직 내에 안착하지 못한다. 변화를 주관하는 경영진 관점에서 볼 때 직원들이 변화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할지라도 직원들은 주저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고대하던 변화라 할지라도 변화는 불편을 수반하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호응도가 낮아진다.
 
변화를 촉진하고 직원들의 호응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이 흔히 선택하는 방법은 흔히 ‘불타는 갑판(Burning Platform)’이라는 위기의식 조장 방법이다. 1988년 북해에 있던 석유 시추선에서 폭발사고가 있었을 때 생존자들은 극지방의 얼음물과 붕괴하는 갑판 위의 죽음 중 하나를 선택했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 비극적 사고를 계기로 비즈니스 세계에서 ‘불타는 갑판’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위기의식 조장법이 조직의 변화를 촉진하는 정석으로 자리잡았다.
 
이게 효과적인 이유는 인간의 머릿속에 파충류의 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는 뇌간, 대뇌변연계, 신피질의 3층 구조로 돼 있다. 이 중 신피질은 고등영장류에게만 있으며, 추리와 분석 등 고등사고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파충류적 본능을 가진 뇌간 위에서 고등사고를 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까닭에 제 아무리 수준 높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도 뿌리깊은 동물적 본능과 감정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불타는 갑판’의 위기의식은 신피질을 우회해 파충류의 뇌(뇌간)에 직접 말을 건다. ‘지금 뛰어내리지 않으면 불에 타 죽어!’라는 메시지만큼 분명하고 직접적인 말이 있겠는가! 하지만 리더들은 위기의식 조장법의 치명적 약점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위기의식은 우리에게 뛰라고 하지만 어디로 뛸 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진 조직원들은 심사숙고 없이 리더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일제히 내달린다. 그래서 위기의식을 조장하기 전에 리더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위기의식 조장법은 국내기업에서도 많이 쓰이는 변화촉진 방법이다. 변화가 불가피하고 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분명할 때에는 이 방법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경쟁이 심한 산업에서 1위 탈환을 꿈꾸는 2위 업체, 즉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1위 기업의 그늘에서 망하고 말 것이다”라는 기업에는 ‘불타는 갑판’의 접근법이 정석이다. 얼마 전 삼성전자가 인트라넷을 통해 ‘교병필패(驕兵必敗)’라는 격언을 공유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스마트폰인 갤럭시S의 국내 성공을 통해 애플의 공세를 막아낸 듯 기쁨에 들뜬 직원들에게 교만함을 경계하라는 경영진의 메시지였다. 경영진이 보내는 위기의 메시지는 직원들에게 즉각적인 행동을 자아내는 강력한 동기부여 효과를 불러온다.
 

하지만 최근 성장세를 거듭하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혁신적 성공을 보면 ‘불타는 갑판’의 접근법과는 다르다. 여기에는 불타는 갑판과는 정반대의 논리가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직원들의 호기심과 자부심을 자극하는 변화 관리법이다. 경쟁에서 1위를 고수하는 기업이거나, 블루오션을 창출해가는 기업에 적합한 방식이다. 세상에 없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직원들에게 이것 저것 시도할 수 있는 여유가 제공돼야 한다. 이런 새로운 시도는 필연적으로 혼란과 낭비를 동반한다. 경쟁 후발업체는 감히 상상하기도, 감당하기도 어려운 투자다. 식스시그마 등 경영효율화 기법으로 무장한 기업에서 창의성을 논하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창의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는 위기의식 대신 직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접근법이 효과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에서 영입한 수석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기아자동차이다. 기아차는 과거에는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디자인만 내놓더니, 외부의 전문가를 수혈하자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피터 슈라이어의 인터뷰를 보면 기아차가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자동차를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욕망의 목적으로 본다.”
 
자동차를 기계(교통수단)가 아닌 예술적 감상품(욕망의 목적)으로 재설정한 창의성이 응축된 설명이다. 패러다임을 바꾸기 시작한 기아자동차가 과거의 패러다임을 유지하는 현대자동차로부터 얼마나 차별화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한 곤충학자의 관찰은 앞서 설명한 불타는 갑판의 접근법과 직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접근법이 어떻게 다른지 선명하게 설명해준다. 이 곤충학자는 한쪽만 열려있는 유리관에 파리와 벌을 담아 불빛 앞에 놓고 관찰했다고 한다. 직진성이 강한 벌은 빛이 보이는 유리관 벽 앞을 떠나지 못하고 날아다니다가 죽었다. 반면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파리는 우연히도 반대편 유리관 입구를 통해 바깥으로 살아나갔다. 위기의식 조장법은 직원들에게 직진성을 강화하지만 호기심/자긍심 조장법은 직원들의 탐구정신을 강화한다.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되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도 중요한 이슈다. 한국발 글로벌 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예전에 ‘빠른 추격자 전략’을 유지할 때처럼 기업들이 계속해서 위기상황을 강조하면 어느 순간 직원들로부터 거짓말쟁이 양치기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호기심과 자부심을 자극하고 창의성을 부양하는 기업들이 많아져야 한다.
 
이성과 감성,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두 바퀴
서구사회가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이성을 추앙했고, 감성은 변덕이 심한 불안정한 특성으로 간주됐다. 이성에 기초한 합리적 사고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생산성을 증가시켜 인류를 가난에서 구해냈지만 인류가 그만큼 더 행복해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근대 들어 인류가 감성의 중요성을 재발견했지만 감성은 여전히 보조적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비즈니스 세계는 한동안 감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생산성 향상도구와 판촉 수단으로만 활용했다.
 
그러다가 정보화 사회가 발전하면서 지식노동자가 생산의 주체로 위상이 높아지자 기업도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감성지능 개념은 리더들이 직원들을 인격체로 대우하도록 격려했다. 몰입 개념은 개인의 행복추구와 기업의 생산성 향상 노력이 병존할 가능성을 제공했고 많은 기업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인간의 감성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익극대화를 추구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감성을 무시해서는 인재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감성에 대한 우리의 시각 자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성과 감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상호보완적 요소며, 어느 것 하나만으로는 인간이 완성되지 않는다.
 
또 감성의 중요성을 인식하더라도 부정적 감성만 자극하는 평면적 접근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의 경쟁력은 전략과 구조, 프로세스와 설비 등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구성원의 역량과 몰입, 호기심을 자극하는 조직 문화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 직원의 행복까지도 소중히 여기는 기업이 정보화 사회와 그 다음에 올 미래에 살아남는 승자가 될 것이다.
 
필자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와 미국 상무부에서 근무했다. 현재 휴잇어소시엇츠에 재직하면서 글로벌 컨설팅 기법을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에 맞게 변화시켜 기업 성과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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