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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CEO 이채욱 사장의 의사결정 노하우

“정보 70% + 직관 30%… +α는 비전”

박용 | 41호 (2009년 9월 Issue 2)
인천공항공사는 올해 2월 이라크 아르빌 공항과 3150만 달러 상당의 위탁 운영 계약을 했다. 인천공항의 운영 노하우를 수출하기 위한 글로벌 전략이었다. 직원 31명도 파견하기로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라크전과 테러 위험 때문에 아르빌 공항에 대한 사내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곳에 직원을 보낼 수 없다는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이채욱(63)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의사결정을 위해 정보를 모았다. 처음 올라온 보고서는 부정적인 내용 일색이었다. 판단을 위해 제프리 존스 미래의 동반자 재단 이사장, 하태윤 주이라크 대사 등 전문가의 조언을 구했다. 전문가의 의견은 달랐다. 심지어 “영국 런던보다 안전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 사장은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해 직원 파견을 최종 결정했다. 중동에 공항 소프트웨어를 수출하는 일은 회사와 국가의 장래에 중요한 일이며, 공항은 한 국가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하고 안전한 곳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장은 8월 말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각종 통계,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의사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며 “100% 완벽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기 때문에 70%의 자료와 30%의 직관으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더가 통계나 자료를 지나치게 맹신하거나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의사결정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채욱 사장은 삼성물산 해외영업본부장을 거쳐 삼성-GE의료기기 대표이사, GE코리아 회장 등 한국 최고 기업인 삼성과 세계 최고 기업인 GE에서 모두 최고경영자(CEO)로 일한 경력이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삼성과 GE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방식이 서로 다르다. 어떤 방식이 옳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GE의 문화는 유연하고 열려 있다. 사장, 임원 식으로 위계에 따라 앉는 고정석이 없다. GE는 아이디어를 아주 자유롭게 던지고, 직원의 지혜를 모은다. 한국 기업은 이런 부분이 약하다. 중앙 집중식 의사결정이고, 위에서 지시만 할 때도 있다.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통합하는 과정 없이 일방통행식이다. 워크숍에서 임원들이 ‘가자!’ 하고 외치지만, 정작 직원들은 왜 가는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 공사도 고정석이 없다. 지금 인터뷰에 배석한 직원이 내 자리에 앉아 있는 걸 봐도 알지 않느냐(인터뷰는 사장실 원탁 테이블에서 진행됐으며, 배석 직원이 앉은 자리에는 사장이 방금 전까지 읽고 있던 보고서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누가 어디에 앉아야 하고, 누가 높은 사람이고 하는 식의 얘기는 소모적일 뿐이다. 어제 외부 사람들이 회사에 와서 발표를 하는데,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나한테 ‘사장은 언제 오시냐’고 묻더라.(웃음) 이게 조직의 유연성이다.
 
삼성식 의사결정의 강점은 빠르다는 거다. GE는 앞서 언급한 프로세스를 진행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지만, 삼성은 몇 사람이 모여서 하니까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2가지 모델의 장점을 결합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본인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무엇인가?
“GE에서는 워크아웃이라는 프로세스를 통해 지혜를 모은다. 아무나 아이디어를 던지고 칠판에 적는다. 10명이나 20명이 의견을 내면 웬만한 아이디어는 다 나온다. 이때 팔짱을 끼고 참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문제다.
 
실행은 아이디어와는 다르다. 프로세스를 거쳐 의사결정이 내려지면 곧바로 실행해야 한다. 그래야 반대했던 사람도 따라온다. 실행할 때는 가장 좋은 사람을 써야 한다. 실행이 잘 안 되면 반대자들이 ‘거봐라, 잘 안 되지 않느냐’고 문제 제기를 한다. 반대 의견이 많아지면 공감대가 끊긴다. 실행 사항을 계속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어떤 일이 잘못됐을 때를 대비한 절차와 잠재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도 준비해야 한다.
 
의사결정의 룰은 사람마다, 사안마다 다 다르다.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 등이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애매할 때는 ‘마스터’를 적어두면 좋다. 예를 들어 ‘공항을 지을 때는 꼭 갖춰야 할 조건이 무엇이냐’를 자문해본다. 이용객에 대한 편의가 가장 중요하다면 이를 ‘마스터’로 결정하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의사결정을 할 때는 ‘마스터’를 찾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하위 사항을 정해야 한다.”
 
워크아웃을 통한 의사결정 사례를 소개한다면?
“올해 3월 워크아웃 회의를 통해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협력업체 지원 방안을 찾았다. 직원들이 주차 비용 할인, 임대료 감면 등 각종 아이디어를 냈다. 이렇게 해서 협력업체와 입주업체의 직·간접 비용 1139억 원 정도를 감면했다. 동시에 공항 경영 수지도 맞춰야 했다. 올해 경영 계획 목표가 1500억 원 정도의 수익을 내는 것이다. 효율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 목표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얘기했다.”
올해 1월 직위 공모제 등 파격적인 인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런 변화가 조직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사장은 본부장까지만 인사를 담당한다. 나머지는 각 부서장이 직접 직원을 채용하고, 의사결정에 책임을 지는 방식이다. 팀장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이 쓸 사람을 직접 뽑아야 한다. 고위 간부가 압력을 넣어 특정인을 채용하도록 하면 팀워크가 나빠진다. 과업 수행에 문제도 생긴다. 나중에 ‘조직 내에 쓸 사람이 없다’는 핑계도 나온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을 주면 조직의 성과에 도움을 줄 사람을 뽑는다.
 
공기업에서는 뭔가를 열정적으로 하려고 해도 주위에서 따라주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터치’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 일을 찾아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조직을 신바람이 나고 활기차게 움직이도록 바꾸려면 조직원 스스로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직원들이 희망 부서를 지원하고, 상사는 이 가운데 함께 일할 사람을 직접 선택하게 했다. 선택을 받지 못한 직원은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고 마인드 세트를 바꿔야 한다. 상사도 자신이 뽑은 직원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고 돕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회사가 교육을 시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팀장과 같은 실무 담당자가 직접 인재를 채용하면 외부에서 인사에 부정적으로 개입할 방법이 없다. ‘아무개에게 기회를 주라’는 전화가 오기도 하지만 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공정성, 투명성, 일관성의 3가지 원칙을 이야기한다. 다만 이 시스템이 돌아가려면 혈연, 지연, 학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내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이 꼭 필요한데 혈연, 지연, 학연에 얽매여 자격 없는 사람을 뽑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의사결정에 대한 저항과 시행착오도 적지 않을 텐데.
“조직 내에서 소통이 돼야 한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직원들로부터 모은 지혜를 갖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사장이 자신의 아이디어만을 갖고 갈 수는 없다. 내 강점을 굳이 얘기하자면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을 잘 안다’는 점이다. 지혜를 모으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변화를 추진하면 저항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프로세스를 따라 했는지, 모두가 참여해 의견을 내도록 만들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슬로건을 만들어보자’고 할 때, 모든 직원들이 의견을 내도록 해 가장 좋은 표를 얻은 아이디어를 채택하면 직원들의 사기가 오른다. 결과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진다. 이런 절차가 없으면 ‘내 아이디어가 좋았는데, 왜 저 사람의 제안이 뽑혔지’라는 의문이 조직 내에서 일어난다. 정당한 프로세스를 밟아 결정하면 이런 문제가 줄어들고 공감도 얻을 수 있다.”
 
리더에 대한 조직원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방법은?
“새 리더가 조직에 안착하도록 ‘어시밀레이션’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상사 알기 프로그램’이다. 리더가 솔직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직원들에게 무기명으로 △새로운 리더에 대해 알고 있는 루머 △추가로 알고 싶은 것 △조직에 대해 알아야 할 것 △새로운 리더에 대해 우려하는 사항 △제안 사항 등 5가지 사항에 대한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리더는 즉석에서 이 질문에 대해 답한다. 이때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 4시간 정도 답변을 하다 보면, 리더의 성격은 물론 전략과 조직 문화에 대한 생각까지 알 수 있다. 사장에 취임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지금은 본부장, 노동조합장으로 확대됐다. 팀장급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11월 ‘조직 내 벽 허물기’ ‘같은 색깔의 피가 통하는 조직’을 화두로 미국 GE의 어시밀레이션 프로그램을 응용한 ‘상사 알기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인천공항에는 세관, 법무부, 항공사 등 570여 기관의 종사자들 3만5000여 명이 근무한다. 협업을 위한 효율적인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무엇인가?
“처음 부임했을 때 공항 내에 그렇게 많은 기관이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공항을 중심으로 각 기관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도록 하려면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캐치프레이즈가 대표적이다. 올해 인천공항은 4년 연속 최고 공항상(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 1위)을 수상했다. 내년까지 수상하면 5연패다. 그래서 ‘렛츠 고, 윈 파이브(Let’s go, win fiv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었다. 우리말로 하자면 ‘가자, 5연패’다. 공항 내 모든 기관 직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도 기획했다. 각 기관의 DNA는 달라도 같은 구호를 외치며 하나가 되더라. ‘서비스 개선위원회’라는 기관 간 실무 협의체와 매주 화요일 여는 ‘기관장 회의’ 등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는 절차도 있다.”
삼성물산 근무 시절, 고철용 폐선박을 수입했다가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당시 실패 요인은 무엇인가?
“그때 실패로 회사에 누를 끼쳤다. 지금도 후회스러운 일은 처음 고철용 폐선을 수입해 재미를 보고, 두 번째에 4척을 한꺼번에 주문한 결정이다. 두 번째에 1, 2척만 수입했다면 그렇게 큰 손해를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만심과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런 사고에 대비한 보험이 없었다. 당연히 자연재해를 예상하고 대비했어야 했는데, 그게 부족했다. 하지만 사고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고 느꼈다.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학생들에게 강연할 때 당시의 실패 경험을 소개하면서 ‘실패하더라도 절대로 달아나지 말라’고 얘기한다. 다시 그 일을 겪게 되더라도 당시의 수습 과정을 똑같이 반복할 것이다.”
 
이채욱 사장은 1980년 삼성물산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폐선박을 해체해 철강회사에 고철로 판매하는 사업을 맡았다. 처음엔 큰 수익을 냈지만, 태풍 어빙호가 강타하면서 수입한 폐선박 4척이 모두 부산 감천만에 가라앉는 사고를 당했다. 이 피해로 4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 사장은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부산에서 폐선박 인양 작업에 매달렸고, 4척을 모두 인양한 뒤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회사는 끝까지 최선을 다한 그를 문책하지 않고 두바이 지사장에 임명했다.
 
삼성에서 GE로, GE에서 다시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의 의사결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 ‘공기업에서 봉사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고, 백지를 꺼내 대화하듯 나름대로 떠오르는 생각을 적었다. 내가 평소 생각하는 가치에 맞는지, 공항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지, 내가 열정을 쏟을 수 있을지를 정리했다. 사람은 돈만 갖고 직업을 고르지는 않는다. 봉급도 여러 가지가 있다. 지갑으로 받는 봉급도 있고, 가슴이나 머리로 받는 봉급도 있다. 무엇이 자신의 가치와 연관된 것인지를 생각하고 이번 결정을 내렸다.”
 
가장 어려웠던 의사결정은 무엇인가.
“사람과 관련된 의사결정이 가장 어려웠다. 1989년 삼성-GE의료기기 대표이사로 부임하면서 103명을 감원해야 했을 때다. 당시 삼성그룹 입사 동기의 도움으로 103명을 삼성 계열사로 배치하는 대안을 찾아냈다. 이후 해마다 45%씩 성장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GE메디컬 아시아 사장으로 부임하고 1년 만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도 무척 어려웠다. 당시 내가 뽑은 사람을 다시 내보내야 했다. 다른 일자리를 알선하고, 명예퇴직금 등의 대안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때 직원들이 지금도 고맙다고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끝이라는 의사결정은 없다. 업무적인 관계가 끝나더라도 인간관계는 계속돼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김승환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대학생 인턴연구원(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이 참여했습니다.
  • 박용 박용 | - 동아일보 기자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설 국가보안기술연구소(NSRI) 연구원
    -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정책연구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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