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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의 HR 의사결정

슬럼프는 다반사… 신뢰를 거두지 말라

하정민 | 41호 (2009년 9월 Issue 2)
‘8888577’. 야구 팬에게는 유명한 비밀번호다. 이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이 거둔 시즌 순위를 나열한 숫자다. 4년 연속 꼴찌, 7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 심지어 2002년에는 35승 1무 97패를 거둬 승률이 0.265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롯데 자이언츠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신했다. 한국 야구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 제리 로이스터 감독 때문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부임 첫해인 2008년 꼴찌 이미지가 강했던 롯데를 단숨에 시즌 3위로 올려놨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4, 5월에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며 꼴찌를 면치 못했지만, 6월 이후 무서운 상승세를 발휘하며 4위로 올라섰다.
 
로이스터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매우 이질적인 존재다. 단순히 피부색과 국적이 다른 이방인이라서가 아니다. 그는 감독이 선수단을 장악하고 경기 흐름도 좌우하다시피 하는 한국 야구계에서 드물게 순수한 ‘자율 야구’를 한다. 선수를 훈육한다는 이미지가 강한 국내 지도자와 달리, 선수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또한 훈련부터 게임 운영까지 철저히 선수들을 믿고 맡긴다. 대신 무한한 자유 속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이 따른다.
 
로이스터 감독은 자신이 한국에서 빠른 시일 안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집중한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바람직한 전략을 세우고, 그 전략을 그대로 실행하면 좋은 결과는 당연히 따라온다는 뜻이다. 결과가 나쁘다고 전략을 자주 바꾸거나 자신의 논리를 고수하지 못하면 결코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룰 수 없다고 덧붙였다. 올해 초 극심한 부진을 보였던 이대호와 카림 가르시아를 계속 기용한 것도 그들이 팀에 가장 필요한 선수라는 자신의 결정을 믿었기 때문이며, 두 선수의 부활 덕에 꼴찌에서 4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3연전을 위해 대구를 찾은 그를 8월 26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만났다.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성공한 의사결정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외국 선수 중 적합한 사람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 일은 감독이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의사결정입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프로 선수로 뛰어야 한다는 건 단지 야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카림 가르시아 선수를 기용한 건 가장 성공한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가르시아를 롯데에 데리고 오는 것, 올해 초에는 그가 좋은 성적을 내지 않았음에도 계속 데리고 있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는 게 큰 화두였습니다. 특히 올해 초에는 정말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죠. 그럼에도 가르시아를 기용한 건 제가 가진 모든 정보와 경험을 통해 그만한 선수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초 가르시아는 롯데가 데려올 수 있는 외국인 선수 풀(pool) 중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일단 과거 성적이 우수했고, 메이저리그 외에 일본 프로야구도 경험해 한국 리그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선수였죠. 결국 지난해 한국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요.
 
올해 초 분명히 그는 부진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가진 능력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다른 외국인 선수를 영입한들 가르시아보다 나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고요. 야구는 기록 스포츠이고, 과거의 성적이 그걸 증명해주니까요. 저는 가르시아의 기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가진 정보와 논리로 그를 대신할 만한 선수는 없다고 설득했습니다. 결국 가르시아는 제 예상보다 훌륭하게 슬럼프에서 탈출했죠.
 
이대호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즌 초반에는 타격도 부진했고, 3루 수비에서 실수도 있었죠. 하지만 그는 롯데의 4번 타자이자 주전 3루수입니다. 현재도 홈런 2위를 기록하고 있고요. 이대호와 가르시아는 지난해 롯데가 3위를 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선수입니다. 그런 선수에게는 성적에 걸맞은 존경과 신뢰를 보여줘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안 좋다고 해서 그 신뢰를 거둔다면 결코 지난해와 같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할 겁니다.”
 

결과가 나쁠 때도 그 결정을 계속 고수할 수 있는 리더는 많지 않을 텐데요. 가르시아와 이대호가 부진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해도 계속 기용하셨을까요?
물론입니다. 감독으로서 제 임무는 한 시즌 전체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하는 겁니다. 하루하루의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게 아닙니다. 충분한 정보를 모아 각 선수의 능력에 가장 어울리는 포지션을 결정하고, 그걸 계속 유지하는 거죠. 올해 계획에는 이대호와 가르시아가 들어 있었습니다. 즉 처음 계획을 짤 때부터 이 계획은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가져야 하고, 그 계획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실패를 했다고 최초에 세웠던 계획을 자주 변경하면 안 됩니다. 그건 리더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어떤 조직에서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조직원의 반발이나 저항이 있습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신 적이 있나요?
지난해 초 제가 처음 롯데에 왔을 때, 코칭 스태프를 비롯한 많은 관계자가 제 방식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야구단 내 모든 사람들이 제게 친절했지만, 제 스타일의 야구를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하지만 신동빈 부회장께서 제가 많은 반대에 부딪힐 거라고 미리 말해주셨고, 저 역시 이를 예상했기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선수들은 제가 도착한 첫날부터 제 방식을 마음에 들어 했어요.(웃음) 덕분에 선수들을 제 방식으로 인도하는 게 쉬웠습니다. 스태프들은 제가 과거에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 선수들이 바뀌고 롯데가 좋은 성적을 내면서 그들의 생각도 달라졌죠. 지금은 코칭 스태프 전체가 절 믿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절 믿는 만큼 저도 그들을 믿고 있고요.
 
스태프들의 마음을 어떻게 얻었냐고요? 실수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한 믿음을 거두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요. 사람은 모두 실수를 합니다. 실수 하나 때문에 사람을 원망하거나,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 사람을 믿지 못하면 안 됩니다. 오늘 경기 결과가 나빴더라도 다음 날 경기를 이기면 됩니다. 그게 야구죠.”
 

지난주 SK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3루 코치의 판단 실수가 결정적 패인으로 작용한 적이 있었죠. 한국시리즈 7차전 경기에서 같은 실수가 나왔다고 해도 코칭 스태프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으실 건가요?
당연합니다. 저는 일반 경기건, 한국시리즈 경기건, 선수나 코치 중 누군가가 실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교체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을 겁니다. 다시 실수하면 어떡하냐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계속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건 그 사람이 그 포지션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당연히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그에게 그 일을 맡긴 리더의 책임이고요. 리더는 자신이 기용한 사람들을 믿고, 자신의 작전을 믿어야 합니다.”
 

한국식 의사결정과 미국식 의사결정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한국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윗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한국 기업에서는 연차 위주로 승진이 결정된다고 들었습니다. 나이, 직장에 머문 기간을 고려해 인사를 단행하는 게 과연 조직의 성공을 위한 최적의 구조인지 잘 모르겠네요.
 
얼마 전 다른 구단에서 선배 선수가 후배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죠.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도 위계질서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물론 문화적 차이가 있겠지만,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신체적인 위협을 가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제 선수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저는 그 선수를 쫓아냈을 겁니다. 그건 감옥에 가야 할 행동이기 때문이죠.”
 

불펜 투수 혹사는 한국 야구에 많은 논쟁을 낳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한국 감독도 별로 없고요. 하지만 감독님은 오늘 경기에서 지더라도 절대 투수 로테이션을 바꾸지 않는 분으로 유명합니다. 성적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감독으로서 이런 의사결정이 어떻게 가능했나요?
오늘 경기를 이기기 위해 내일 써야 할 선수를 미리 투입한다면, 정작 그 선수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는 그를 기용할 수 없습니다. 저는 경기에서 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제가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만 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저는 분명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 성과를 얻기 위해 장기 계획을 바꾼다면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도 이를 달성할 수 없을 겁니다.
 
지난주 SK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불펜 투수로 나섰던 나승현 선수가 부진했습니다. 왜 빨리 그를 교체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많았던 걸 저도 압니다. 그런데 과연 그 경기에서 우리가 진 게 그의 탓일까요? 선발 투수가 잘 던졌다면, 수비수들이 에러를 하지 않았다면, 타자들이 적시타를 잘 날려줬다면 애초에 나승현이 그 상황에 놓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항상 부분만 보죠. 저는 제 판단이 옳다고 믿었기에 나승현 선수를 교체하지 않았고, 원래 계획을 밀어붙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경기를 잃었지만 후회하지 않습니다.”
 

리더에게 믿음과 고집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어떤 의사결정을 해야 고집이 아니라 믿음이 될 수 있습니까?
고집은 제 이익을 위해 선수를 이용하는 겁니다. 반면 믿음은 그 자리에 가장 훌륭한 적임자를 쓰고, 일단 기용한 사람에겐 최대한의 신뢰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려면 작은 실수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난해 한국에 오자마자 제가 왜 ‘No Fear’란 슬로건을 내걸었는지 아십니까. 선수들과 첫 회의를 하면서 그들이 실수를 지나치게 두려워한다는 걸 제일 먼저 깨달았거든요. 한국에서는 실수를 하면 그 실수의 악영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과거의 실수보다는 미래를 고민하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도 실수를 합니다.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실수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더 나은 플레이를 할 수 있죠.
감독으로서 제 역할은 선수 개개인의 기술적 부분을 일일이 조련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잘못된 생각 때문에 우수한 자질을 가졌음에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가 많습니다. 자신의 신체뿐 아니라 마음가짐까지 잘 관리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을수록 그 팀은 좋은 성적을 냅니다.
 
송승준 투수를 보죠. 제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선수였습니다. 언제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걱정했습니다.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죠. 그에게 ‘왜 네가 마운드 위에서 타자가 뭘 생각할까, 나의 어떤 공을 노릴까를 생각하느냐. 너는 네가 어떤 공을 던질 건지만 생각하면 그만이다’라고 누차 강조했습니다. 결국 올해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3경기 연속 완봉승을 거두지 않았습니까.”
 

야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1군에만 20명이 넘는 선수가 있고, 현실적으로는 에이스나 4번 타자 등 몇몇 스타 선수에게만 이목이 쏠리죠. 스타 선수와 무명 선수를 공평하게 대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요.
저는 칭찬을 할 때나 실수를 언급할 때, 개별 선수 이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가, 팀이 잘했다, 못했다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며칠 전 경기에서 이대호가 하루에 홈런을 2개나 쳤어요. 하지만 이대호가 홈런을 쳐서 이겼다고 하지 않고 ‘우리의 공격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팀 전체의 공로를 언급하며 팀의 화합을 도모해야 모든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게 팀을 승리로 이끄는 길이고요.”
 

선수나 코칭 스태프가 감독님의 지시에 반발하거나 자신의 의견이 더 낫다고 주장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회의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코치를 제일 싫어합니다. 저와 다른 의견을 내놓지 못한다면 우리 팀에 있을 필요가 없죠. 코치들은 제가 자리를 비울 때 저를 대신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려면 선수단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갖는 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 또한 저와 다른 의견을 접해야 독선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요.
 
저는 코치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려 애쓰고, 그 결과는 언제나 좋았습니다. 이상화 투수를 보세요. 비록 부상 때문에 올 시즌 많은 활약을 하지는 못했지만, 시즌 초 그가 보여준 투구는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지난해까지 2군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 그의 능력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우리 팀 코치들이 각 분야의 최고라고 생각해요. 2군 코칭 스태프들이 좋은 선수를 추천했고, 저는 코칭 스태프를 믿고 그를 기용했으며, 결국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제가 먼저 그 사람을 믿어야 그 사람도 저를 신뢰합니다. 그게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모르실 겁니다. 롯데가 그 증거 아닌가요?”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배수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대학생 인턴연구원(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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